승진을 원하지 않는 직원들   

2024. 6. 12.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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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랍게도 상당수의 직원들은 '가능하다면 리더가 되고 싶지 않다, 팀장으로 승진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이 요즘의 실태입니다. 직원들을 인터뷰할 때 승진에 대한 욕구를 자연스레 감지하게 되는데, 과거 10년 전과 요즘의 분위기가 사뭇 달라졌음을 실감하고 있죠. 

요즘 젊은 직원들은 승진을 하지 못하면 ‘루저’라는 딱지가 붙을까 두려울 뿐이지, 그리고 팀원으로 남아 있으면 비슷한 보상에 만족해야 하기에 문제일 뿐이지, 만약 그렇지 않다면 굳이 리더가 되고 싶지는 않다는 속내를 그대로 내보입니다. 승진을 성공 척도라 보지 않는 것이죠.

이런 분위기는 가볍게 넘어갈 문제가 아닙니다. 그런데 이보다 더 큰 문제는 ‘능력 있는 직원’ 그러니까 리더 역할을 잘 수행할 만한 직원일수록 리더 역할을 주저할 가능성이 크다는 점입니다. 이것은 연구 결과로 증명된 것인데요, 이 결과를 좀더 해석하면 리더 역할을 자청하는 직원들은 대체적으로 능력이 뛰어나지는 않다는 것이니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리더의 자리가 능력은 뛰어나지 않으나 ‘정치적 수완’이 좋은 이들로 채워질 가능성이 클 테니 말이죠. 

그렇다면 왜 리더 자리를 거부하는 것일까요? 연구자들은 3가지 이유를 발견했습니다. 다시 말해, 이 3가지 리스크를 크게 느끼는 직원일수록 리더로 승진하려는 의지가 적다는 뜻이죠.



첫 번째는 ‘대인적(interpersonal) 리스크’로서, 리더가 행하는 조치들이 직원들과의 관계를 손상시킬 수 있다는 두려움이었습니다. “팀원일 때는 같이 밥을 먹었는데 팀장 되니까 자기네들끼리 놀려고 한다”는 말은 대인적 리스크를 그만큼 크게 인지한다는 뜻이죠. 

두 번째는 ‘이미지(image) 리스크’인데, ‘명색이 리더라면 이래야지’하며 사람들이 가진 이미지에 부합하지 못할 수 있다는 것을 뜻합니다. “잘 몰라도 겉으로는 모든 것을 아는 척을 해야 직원들이 무시를 못한다”는 말은 이미지 리스크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세 번째는 ‘비난 받을(being blamed) 리스크’였습니다.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무슨 문제만 터지면 팀장에게 책임을 물으니 ‘아무리 리더가 그런 자리라지만 내가 맡을 이유는 없지.’라며 거부하고 싶은 이유를 말하죠.

능력있는 직원들이 승진을 꺼린다면 그들 각자가 이 3가지 리스크를 얼마나 느끼는지 살펴보고 그걸 완화하려는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그들의 의견을 충분히 반영하고 공개적인 칭찬을 아끼지 말아야 하죠. 그들이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는 작은 기회를 부여하고 그런 '안전한 환경'에서 그들이 리더십 근육을 키울 수 있도록 배려해야 합니다.

작년까지만 해도 팀장이었던 사람이 금년에 만날 때는 팀원 명함을 별 부끄럼 없이 내밀곤 합니다. 부끄럼은커녕 이제 팀장이 아니라서 정말 다행이라는 감정이 표정에서 느껴집니다. 리더의 어깨에 짊어지우는 책임과 의무가 얼마나 컸던지 연봉이 깎였어도 싱글벙글인 얼굴을 보면 조금은 짠해지는 마음을 어쩔 수 없더군요. 여러분은 어떤가요? 승진을 원하십니까? 


*참고논문
Zhang, C., Nahrgang, J. D., Ashford, S. J., & DeRue, D. S. (2020). The Risky Side of Leadership: Conceptualizing Risk Perceptions in Informal Leadership and Investigating the Effects of Their Over-Time Changes in Teams. Organization Scie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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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 난다고 꼭 풀어야 할까요?   

2024. 6. 11.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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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보통 이렇게 말합니다. “화를 참으면 병이 된다. 화는 풀어야 한다.”라고. 자신에게 화가 나든, 타인 때문에 화가 나든 간에 참지 말고 그때그때 풀어야 한다고 말이죠. 일리 있는 조언입니다. 화는 풀어야 합니다. 그러나 ‘푼다’라는 의미를 잘못 이해해서는 곤란하죠.

화를 남에게 전이시키거나 되갚는 것, 다시 말해서 나의 화를 외부로 ‘풀어 해치는’ 방법은 분노를 올바르게 푸는 방법이 아닙니다. “내가 화났으니 내 심기를 건드리지 마! 똑바로 하지 않으면 가만히 안 둘 테야.” 혹은 “네가 날 화나게 만들었으니 나도 너를 화내게 만들어야겠어.”라며 분노를 상대방에게 그대로 앙갚음하는 방식은 화를 올바르게 푸는 방법이 아니죠.

나를 화내게 만든 사람 혹은 자기 자신을 증오하고 저주까지 하면서 술을 마시거나 상관없는 이들(보통 자신보다 약자인 자들)에게 분노의 화살을 돌린다고 해서 그 화가 줄어들지는 않습니다. 순간적으로 가슴이 뻥 뚫리는 듯한 카타르시스를 경험할지 모르지만, 그런 행위는 화를 외려 증폭시킬 뿐이죠. 그리고 자기 자신을 모나고 비뚤어진 인간으로 변모시킵니다.

 



처음 한 두 번은 상대에게 미안한 마음이 있겠지만 그것이 지속되면 차츰 익숙해지면서 일상이 됩니다. 반대로 상대방이 크게 반항하면 상대방 때문이 아닌 분노가 상대방 때문에 발생한 분노로 전이되고 말죠. 그리고 “너 잘 만났다!”라는 심정으로 그에게 있는 분노, 없는 분노를 다 쏟아 붓는 과정에서 화는 자기증식을 합니다. 어느덧 성격은 괴목처럼 비뚤어진 모습으로 굳어지겠죠. 

화는 화로 풀어서는 안 됩니다. 불 난 집에 불씨를 던져 넣는다고 불이 꺼지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죠. 불은 물로 끄는 게 상식입니다. 틱낫한 스님의 말처럼, 화는 ‘자각(自覺)’이라는 물로 꺼뜨려야 하죠. 이것이 진정으로 화를 참는 방법입니다. 가슴 속에 분노가 일렁이면 그것에 일차적으로 반응하려는 본능에 제동을 걸어야 합니다. 그리고 활활 타오르는 화를 마치 내 것이 아닌 듯 바라봐야 합니다.  

그런 다음, 나를 화내게 한 사람으로부터, 혹은 화가 발생한 물리적 장소에서 잠시 벗어나 사색에 잠겨 보세요. 깊은 숨을 쉬며 마음을 가다듬어 보세요. 화가 어디에서 기인했는지, 나를 힘들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 나를 화나게 한 사람(자신 또는 타인)이 지금 어떤 상태일지, 시간이 지나고 나면 지금의 화가 어떻게 변할지 등을 제3자가 되어 찬찬히 생각해 볼 시간을 가지세요. 이렇게 자각의 냉각기를 거치면 전보다 화가 엷어진 게 느껴지고 자기 자신을 용서할 마음이 생겨날 겁니다.

화를 밥먹듯 내면 감정의 노예가 됩니다. 노예가 되면 자신의 삶을 노예의 삶 이상으로 결코 만들 수 없겠죠. 분노가 치밀어 오를 때마다 자신이 화를 다루는 주인임을 자각해 보면 어떨까요? 분노가 내 감정의 주인 행세를 하도록 열쇠를 내어주면 안 됩니다. 자각이 화를 올바르게 푸는 방법이고 나를 화내게 만든 사람(자신 또는 타인)을 진정으로 용서하는 길이기도 합니다. 

물론 쉽지는 않아요. 이렇게 말하는 저도 자각에 실패하는 때가 아주 많으니까요. 하지만 10번 분노를 폭발시킬 걸 서너 번으로 줄인다면 그것으로 족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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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들이 질문을 하지 않는 이유   

2024. 6. 10.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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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기자라는 직업을 ‘독자를 대신해 묻는 자’라고 정의합니다. 진실을 파헤치는 것도 중요하고 발빠르게 새소식을 발굴하거나 전달하는 것 역시 의미있는 기자의 역할이고 또 그렇게 기자들이 주장하지만, 애초에 ‘묻는 행위’ 없이 과연 그런 역할을 수행할 수 있을까요? 질문함으로써 정보를 얻고 진실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질문하지 않거나 질문할 줄 모르는 기자는 월급쟁이라는 직업에 충실할지는 몰라도 기자라는 정신을 온전히 추구하는 자라고 보기 어렵다, 라고 저는 단정합니다. 동의하시는지요?

이런 면에서 기자회견에서 기자들이 보아는 행태는 상당히 불만스럽습니다. 과연 기자가 맞는지 묻고 싶을 정도로 그들은 별다른 질문을 던지지 않았죠. 너무나 조용했습니다. 주최자가 달랑 몇 문장을 이야기하고 자리를 뜨는데도 기자들은 그를 막아서기는커녕 손 한 번 들지 않았죠. 발표자의 퇴장을 막아서거나 번쩍 손을 들어 질문을 날리는 기자가 한두 명 있을 줄 기대했지만, 너무나도 말 잘듣는 기자들은 착한 학생마냥 고개를 숙이고 받아쓰기에 여념이 없었습니다. 보이스 레코더가 있는데 굳이 뭘 받아쓰는 걸까요! 아니, 발표자가 손에 든 A4용지를 복사하면 될 텐데 말입니다. 받아 적을 시간에 질문을 던져야지요! 분통이 터지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기자회견’이라는 자리는 기자를 모아놓고 본인 할 말만 짧게 내뱉고 돌아서는 행사가 아닙니다. 주최자가 자기 생각을 밝힌 다음에 기자가 미진하다고 생각되는 것이나 더 파고들 필요가 있는 사항을 질문하여 주최자의 답변을 얻어내는 일련의 과정이 존재해야 제대로 된 기자회견이라 말할 수 있죠.

 



주최자가 A4 용지에 적힌 글만 읽으려 나왔다면, 그리고 진행자가 “질문은 하지 말아 주세요.”라고 사전에 양해를 구했다고 해서 “네, 알겠습니다. 그냥 듣기만 하겠습니다.”라고 고분고분하게 행동한다면, 그건 ‘독자를 대신해 묻는 사람’이라는 직업의 본질을 잃은 겁니다. 

처음에 저는 기자들이 질문을 던지지 않는 이유가 그들이 너무나도 ‘shy(샤이)’하기 때문이라고 봤습니다. 혹은 질문을 어색해하고 학창시절에 질문 던지기에 충분히 훈련 받지 못한 한국인들의 특성 때문은 아닐까, 라고요. 뒤에서 카메라 플래시가 팡팡 터지고 수십대의 비디오 카메라가 돌아가는 현장, 그리고 보이지 않는 수많은 장소에서 영상으로 지켜보는 수많은 시청자들. 그렇게 보는 눈이 많으니 가슴이 떨려서 질문할 엄두가 나지 않겠거니, 라고 말입니다. 게다가 다른 언론사에서 나온 동료 기자들의 시선도 있으니까요. 

하지만 그것이 이유는 아니라는 의심이 들더군요. 의심 끝에 저는 기자들이 질문하지 않는 이유는 그들이 '뭘 모르기' 때문임을 깨달았습니다. 그들의 샤이함은 바로 해당 분야의 지식이 부족하거나 돌아가는 상황에 대한 인식 수준이 낮은 것에서 기인한다고 말이죠, 

발표자가 언급한 사안을 충분히 파악하고 있거나 배경지식을 갖추고 있다면, 발표자가 대충 얼버무리거나 고의로 누락한 정보가 무엇인지 혹은 속임수가 무엇인지 등을 간파할 수 있는 관점이 생기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아무것도 모르고 그 자리에 앉아 있다면 뭘 질문해야 하는지 모를 수밖에 없죠. 다른 기자들은 다들 아는데 나만 모르는 건 아닌가 싶어서 궁금한 게 있어도 선뜻 손이 올라가지 않습니다. 창피함을 당할까 봐서요.

머리에 든 게 많아야 질문도 잘하는 법입니다. 질문하려면 샤이함을 극복하는 용기가 필요하고, 용기가 있으려면 아는 게 있어야 하며, 아는 게 있으려면 공부를 해야 합니다. 남들로부터 조롱 받지 않을 질문, 상황을 꿰뚫는 질문, 촌철살인 같은 질문을 던지려면 본인이 어떤 주제를 논하는 장소에 참석하는지 파악해야 하고 그 주제에 대한 관련 정보와 배경지식을 가능한 한 신속하고 심도 있게 학습을 해야 하죠. 그런 학습 없이 펜만 들고 기자회견에 들어가 스스로 '입틀막'하는 기자 생활을 반복할 거라면 ‘기레기’라는 조롱은 백번 천번 받아도 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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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유가 있을 가능성'에 투자하시겠습니까?   

2024. 6. 7.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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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길 확률이 10분의 1 인 게임이 있다고 해보세요. 누군가가 이렇게 제안합니다. “이 게임을 한 번 하려면 100 만원을 내야 합니다. 하지만 이기기만 하면 1,000 만원을 딸 수 있습니다. 어때요, 한번 해 보세요.” 혹시나 여러분이 이 제안에 구미가 당겼다면 다음과 같은 계산이 머리 속에서 순식간에 이뤄졌기 때문일 겁니다.

게임을 10번 하는 비용 = 100만원 x 10번 = 1,000 만원
한 번 이기면 딸 수 있는 금액 = 1,000 만원
게임을 아홉번 져도 한번만 이기면 본전이네. 확률이 10분의 1이니까 10번 하면 한번은 이기겠지? 그러니까 해보자!

하지만 이런 게임은 매우 위험합니다. 왜냐하면 10번의 게임을 모두 질 확률이 35퍼센트나 되기 때문이죠.

10번의 게임을 모두 질 확률 = (9/10)의 10제곱 = 약 35%

성공확률이 작고 비용 부담도 크지만 한번 성공하기만 하면 대박이 터지는 사업이나 투자가 있습니다. 그런 사업이나 투자를 여러 번 한다고 해서 ‘한 번은 성공할 테니 몇 번 정도는 실패해도 괜찮다’라고 간주하는 투자 습관이야말로 쪽박을 차는 지름길입니다. 

 



현명하지 못한 사람은 성공확률이 작은 대박 투자를 여러 번 하려고 하지만 현명한 사람은 성공확률이 높은 투자를 엄선하는 데에 노력을 기울입니다. 투자와 사업의 성공 여부가 성공확률에 달린 것이지 성공했을 때 호주머니에 들어올 돈의 크기가 보장하는 것이 아님을 잘 알기 때문이죠. 

지극히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우리는 너무나 자주 ‘보물선 투자’ 따위에 현혹되곤 합니다. 기억하실지 모르겠지만, 2000년에 동해에 빠진 보물선을 건져 올리겠다는 당찬 포부를 밝힌 업체(동아건설)가 있었습니다. 동해 바다에 침몰했다고 알려진 러시아 발틱 함대 소속 6,200t급 철갑 순양함 ‘도미트리 돈스코이호’가 바로 동아건설이 인양하고자 했던 보물선이었어요. 

당시 동아건설은 금괴를 싣고 가다 침몰한 보물선을 인양하면 엄청난 부를 얻을 수 있다고 광고하며 투자자를 대거 끌어 모았습니다. 부실경영으로 퇴출 위기에 몰려있던 이 회사는 보물선을 이슈화해서 회생의 발판을 마련하려 했습니다. 하지만 이 회사는 보물선 인양의 성공확률이 엄청나게 작다는 사실 뿐만 아니라 실패했을 때 투자자들이 입게 될 손실이 매우 크다는 점에는 입도 뻥긋하지 않았어요.

“투자자들이 바보도 아닌데 설마 그런 허무맹랑한 제안에 속았겠는가?”라고 반문할지 모르지만, 애석하게도 투자자들은 현명하지 못했습니다. 주당 315원이던 동아건설의 주가는 보물선 인양 계획 발표 후에 3,265원으로 10 배 이상 수직 상승했다는 사실이 바로 투자자들이 보물선의 유혹에 완벽하게 넘어갔다는 증거입니다. 17일 연속으로 상한가를 기록하던 동아건설의 주식은 얼마 지나지 않아 휴지만도 못한 수준으로 전락했죠.

일명 '대왕고래' 프로젝트. 최근 포항 앞바다에 상당량의 석유가 매장돼 있을 '가능성'이 높기에 시추 투자를 추진하겠다는 정부의 발표가 있었습니다. '석유가 있다'가 아니라 '석유가 있을 가능성이 있다'라는 말에 관련 주식들이 상한가를 기록했죠. 유전 개발의 성공확률은 보통 20% 언저리라고 하는데 말입니다.  여러분은 이런 현상이 바람직하다고 보시나요? 이 상황에서 현명한 자세는 무엇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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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용어를 많이 섞어 쓰나요?   

2024. 6. 5.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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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누구나 자기만의 편견을 가지고 있는데요,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저에게는 대화를 할 때 우리말 용어가 있는데도 굳이 영어로 된 말을 지나치게 많이 섞어 쓰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상대방에 배려심이 적다고 판단합니다. 이게 편견인 이유는 어떤 분야에 오래 근무하다 보면 어쩔 수 없이 영어 용어를 자주 접하고 억지로 한국말로 번역된 용어를 쓰느니 간명하게 영어 단어를 쓰면 의사소통 속도가 훨씬 빠르기 때문이죠.

문제는 제가 그 분야의 사람이 아닌 줄 잘 알면서도 제가 알아들을 수 없는 전문용어를 내뱉을 때입니다. 10년 전 쯤 어느 미팅 때 누군가가 자꾸만 ‘텔코.’라고 하길래 처음에는 무슨 말인지 알아 듣지 못했습니다. 이야기를 듣다보니 ‘텔코’는 ‘Telco.’이고 ‘Telecom Company(통신 회사)’의 줄인 말이라는 것을 겨우 알아차릴 수 있었죠.

자기네끼리는 하루에도 수십 번 내뱉는 단어겠지만, 저처럼 통신 쪽엔 문외한인 사람에겐 요즘 젊은 친구들이 자주 쓴다는 ‘강종(강제 종료)’. ‘갠소(개인 소장)’ 같은 외계어나 다름없었습니다. 제가 컨설턴트라고 하니까 그 정도 용어는 알아 듣겠거니 해서 내부인과 대화하듯 편하게 나를 대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듣는 입장에서는 ‘이 사람이 나의 배경지식을 과대평가한다’기보다 ‘상대방에 대한 배려가 조금 없구만’이라는 편견에 들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연구에 따르면, 전문용어의 과다 사용은 자신감이 낮음을 자신도 모르게 드러내는 현상이라고 합니다. 연구자는 지위가 낮아서 자신감이 떨어질 수밖에 없는 상황과 높은 지위에 있기에 자신감이 높은 상황, 이렇게 두 가지 상황을 설정한 다음에 참가자들이 전문용어를 얼마나 많이 쓰는지 살폈습니다.

그랬더니 상대적 지위가 낮은 조건의 참가자들이 상대적 지위가 높은 조건의 참가자들보다 전문용어를 더 많이 사용하려는 경향을 보였습니다. 상대적 지위의 낮음을 전문용어로 보호 받으려는 심리가 작동한다는 사실을 엿볼 수 있죠. 상대적 지위가 낮은 사람일수록 ‘그가 나를 어떻게 평가할지’에 더 많은 신경을 쓰는 것이라 해석할 수 있습니다.

앞으로 여러분은 외부인과 대화할 때 전문용어 사용을 자제하는 편이 좋습니다. 본인이 상대방보다 지위가 낮다는 것을 은연 중에 표현하는 것이니까요. 또한, 글을 쓰거나 말을 할 때 일단 상대방이 이쪽 분야의 지식이 별로 없다는 전제 하에서 시작해야 합니다. 몇 마디 주고 받으면서 상대방의 배경지식이 어느 정도 있다고 판단되면 그에 따라 대화의 수준을 상향해야 좋지 않을까요?


*참고논문
Brown, Z. C., Anicich, E. M., & Galinsky, A. D. (2020). Compensatory conspicuous communication: Low status increases jargon use. Organizational Behavior and Human Decision Processes, 161, 274-2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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