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정치에 관심이 1도 없습니다. 정치인들은 다 그놈이 그놈이에요.”
누군가의 이 말이 제 심기를 건드렸습니다. 정치 무관심을 '쿨한 취향'인 것처럼 이야기하는 그의 '난 정치에 관심없으니까 그런 소리는 듣고 싶지 않아'라는 태도는 더욱 껄끄러웠습니다.
정치에 관심이 없다는 그의 말은 무슨 뜻일까요? “위정자들이 나라를 어떻게 경영하든 나는 모르겠다, 알아서들 잘하겠지, 내 할일이 많아서 신경 쓰고 싶지 않아. 정치는 그들이 할 일이야.”라는 의미라고 짐작합니다. 정치인들의 작태에 환멸과 염증을 느끼다가 급기야 그쪽으로는 쳐다도 보지 않는 길로 들어섰다면야 그 심정은 이해 받을 만 합니다.
그러나 애초부터 쿨한 척 ‘정치는 내 알 바 아니다’라고 선을 긋는 것은 이 땅에 살며 투표권을 가진 성인이 해서는 안 될 소리죠. 알다시피 ‘정치는 생활 그 자체’이기 때문입니다.
굳이 이유를 말하자면, 정치인들이 어떻게 법을 만들고 집행하는가가 우리 생활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칩니다. 세금이 그러하고, 부동산 정책이 그러하며, 각종 복지 정책들이 그러하죠. 군 복무기간을 몇개월로 결정하는가가 (남성) 청년들의 학업과 경력개발에 영향을 미치고, 기업들을 대상으로 한 정책들이 취업 성공률과 가처분소득 등에 중장기적으로 긍정적 혹은 부정적 효과를 가져옵니다.
그러니 “정치에 난 1도 관심이 없어.”라는 말은 절대 쿨하지 않습니다. 그저 “난 자랑스러운 무임승차자야.”라는 소리로밖에 들리지 않죠. 혹은, 가만히 있으면서 정치로 인한 혜택은 모조리 누리겠지만 손해를 볼라치면 ‘공정’을 외치며 가만 안 두겠다는 의미, 즉 “나는 기회주의자”라는 뜻으로 들릴 뿐입니다.
정치 무관심은 사실 부끄러운 일입니다. 저 역시 정치에 관심이 없다는 소리를 간혹 하곤 하지만, 그것은 “나는 피선거권에 관심이 없어.”라는 뜻입니다. 직업이라는 관점에서 정치인이 되고 싶지 않다는 의미죠. ‘정치 무관심’은 이럴 때나 쓰는 말입니다.
예전에 알고 지내던 사람 중에 일상과 관련된 이야기를 할라 치면, 혹은 그에게 어떤 정보를 알려줄라 치면 “전 그것에 관심이 없어서…”라고 거의 반사적으로 말하던 자가 있었습니다. 가정사에 관련된 주제이었음에도 그는 관심없음을 즉각 표명하며 상대방의 '입틀막'했죠. 본인이 추구하는 아티스트적 삶에 오점을 남기는 것이라도 되는 양 “제가 그걸 알아야 돼요?”라며 상대에게 무안을 주었습니다. 그런 소리를 버릇처럼 말하는 게 영 마뜩찮았고, 그렇게 말하면 쿨해 보일 거라 착각하는 듯해서 안쓰러워 보이기까지 했습니다.
가정사에 대한 무관심이 비판 받아 마땅하듯, 정치 무관심도 어디가서 떠벌릴 소리는 절대 아닙니다. 혹 그런 마음이더라도 속에 담아두는 게 좋습니다. 정치에 관심 많은 보통사람들을 질척이며 징징대는 자들로 낮춰 보는 것 같아 기분이 별로이니까요. 아니, 어디 자랑할 게 없어서 '아무 생각없는 두뇌'를 자랑하나 싶어 안쓰러울 뿐이니까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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