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들이 질문을 하지 않는 이유   

2024. 6. 10.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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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기자라는 직업을 ‘독자를 대신해 묻는 자’라고 정의합니다. 진실을 파헤치는 것도 중요하고 발빠르게 새소식을 발굴하거나 전달하는 것 역시 의미있는 기자의 역할이고 또 그렇게 기자들이 주장하지만, 애초에 ‘묻는 행위’ 없이 과연 그런 역할을 수행할 수 있을까요? 질문함으로써 정보를 얻고 진실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질문하지 않거나 질문할 줄 모르는 기자는 월급쟁이라는 직업에 충실할지는 몰라도 기자라는 정신을 온전히 추구하는 자라고 보기 어렵다, 라고 저는 단정합니다. 동의하시는지요?

이런 면에서 기자회견에서 기자들이 보아는 행태는 상당히 불만스럽습니다. 과연 기자가 맞는지 묻고 싶을 정도로 그들은 별다른 질문을 던지지 않았죠. 너무나 조용했습니다. 주최자가 달랑 몇 문장을 이야기하고 자리를 뜨는데도 기자들은 그를 막아서기는커녕 손 한 번 들지 않았죠. 발표자의 퇴장을 막아서거나 번쩍 손을 들어 질문을 날리는 기자가 한두 명 있을 줄 기대했지만, 너무나도 말 잘듣는 기자들은 착한 학생마냥 고개를 숙이고 받아쓰기에 여념이 없었습니다. 보이스 레코더가 있는데 굳이 뭘 받아쓰는 걸까요! 아니, 발표자가 손에 든 A4용지를 복사하면 될 텐데 말입니다. 받아 적을 시간에 질문을 던져야지요! 분통이 터지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기자회견’이라는 자리는 기자를 모아놓고 본인 할 말만 짧게 내뱉고 돌아서는 행사가 아닙니다. 주최자가 자기 생각을 밝힌 다음에 기자가 미진하다고 생각되는 것이나 더 파고들 필요가 있는 사항을 질문하여 주최자의 답변을 얻어내는 일련의 과정이 존재해야 제대로 된 기자회견이라 말할 수 있죠.

 



주최자가 A4 용지에 적힌 글만 읽으려 나왔다면, 그리고 진행자가 “질문은 하지 말아 주세요.”라고 사전에 양해를 구했다고 해서 “네, 알겠습니다. 그냥 듣기만 하겠습니다.”라고 고분고분하게 행동한다면, 그건 ‘독자를 대신해 묻는 사람’이라는 직업의 본질을 잃은 겁니다. 

처음에 저는 기자들이 질문을 던지지 않는 이유가 그들이 너무나도 ‘shy(샤이)’하기 때문이라고 봤습니다. 혹은 질문을 어색해하고 학창시절에 질문 던지기에 충분히 훈련 받지 못한 한국인들의 특성 때문은 아닐까, 라고요. 뒤에서 카메라 플래시가 팡팡 터지고 수십대의 비디오 카메라가 돌아가는 현장, 그리고 보이지 않는 수많은 장소에서 영상으로 지켜보는 수많은 시청자들. 그렇게 보는 눈이 많으니 가슴이 떨려서 질문할 엄두가 나지 않겠거니, 라고 말입니다. 게다가 다른 언론사에서 나온 동료 기자들의 시선도 있으니까요. 

하지만 그것이 이유는 아니라는 의심이 들더군요. 의심 끝에 저는 기자들이 질문하지 않는 이유는 그들이 '뭘 모르기' 때문임을 깨달았습니다. 그들의 샤이함은 바로 해당 분야의 지식이 부족하거나 돌아가는 상황에 대한 인식 수준이 낮은 것에서 기인한다고 말이죠, 

발표자가 언급한 사안을 충분히 파악하고 있거나 배경지식을 갖추고 있다면, 발표자가 대충 얼버무리거나 고의로 누락한 정보가 무엇인지 혹은 속임수가 무엇인지 등을 간파할 수 있는 관점이 생기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아무것도 모르고 그 자리에 앉아 있다면 뭘 질문해야 하는지 모를 수밖에 없죠. 다른 기자들은 다들 아는데 나만 모르는 건 아닌가 싶어서 궁금한 게 있어도 선뜻 손이 올라가지 않습니다. 창피함을 당할까 봐서요.

머리에 든 게 많아야 질문도 잘하는 법입니다. 질문하려면 샤이함을 극복하는 용기가 필요하고, 용기가 있으려면 아는 게 있어야 하며, 아는 게 있으려면 공부를 해야 합니다. 남들로부터 조롱 받지 않을 질문, 상황을 꿰뚫는 질문, 촌철살인 같은 질문을 던지려면 본인이 어떤 주제를 논하는 장소에 참석하는지 파악해야 하고 그 주제에 대한 관련 정보와 배경지식을 가능한 한 신속하고 심도 있게 학습을 해야 하죠. 그런 학습 없이 펜만 들고 기자회견에 들어가 스스로 '입틀막'하는 기자 생활을 반복할 거라면 ‘기레기’라는 조롱은 백번 천번 받아도 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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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유가 있을 가능성'에 투자하시겠습니까?   

2024. 6. 7.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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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길 확률이 10분의 1 인 게임이 있다고 해보세요. 누군가가 이렇게 제안합니다. “이 게임을 한 번 하려면 100 만원을 내야 합니다. 하지만 이기기만 하면 1,000 만원을 딸 수 있습니다. 어때요, 한번 해 보세요.” 혹시나 여러분이 이 제안에 구미가 당겼다면 다음과 같은 계산이 머리 속에서 순식간에 이뤄졌기 때문일 겁니다.

게임을 10번 하는 비용 = 100만원 x 10번 = 1,000 만원
한 번 이기면 딸 수 있는 금액 = 1,000 만원
게임을 아홉번 져도 한번만 이기면 본전이네. 확률이 10분의 1이니까 10번 하면 한번은 이기겠지? 그러니까 해보자!

하지만 이런 게임은 매우 위험합니다. 왜냐하면 10번의 게임을 모두 질 확률이 35퍼센트나 되기 때문이죠.

10번의 게임을 모두 질 확률 = (9/10)의 10제곱 = 약 35%

성공확률이 작고 비용 부담도 크지만 한번 성공하기만 하면 대박이 터지는 사업이나 투자가 있습니다. 그런 사업이나 투자를 여러 번 한다고 해서 ‘한 번은 성공할 테니 몇 번 정도는 실패해도 괜찮다’라고 간주하는 투자 습관이야말로 쪽박을 차는 지름길입니다. 

 



현명하지 못한 사람은 성공확률이 작은 대박 투자를 여러 번 하려고 하지만 현명한 사람은 성공확률이 높은 투자를 엄선하는 데에 노력을 기울입니다. 투자와 사업의 성공 여부가 성공확률에 달린 것이지 성공했을 때 호주머니에 들어올 돈의 크기가 보장하는 것이 아님을 잘 알기 때문이죠. 

지극히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우리는 너무나 자주 ‘보물선 투자’ 따위에 현혹되곤 합니다. 기억하실지 모르겠지만, 2000년에 동해에 빠진 보물선을 건져 올리겠다는 당찬 포부를 밝힌 업체(동아건설)가 있었습니다. 동해 바다에 침몰했다고 알려진 러시아 발틱 함대 소속 6,200t급 철갑 순양함 ‘도미트리 돈스코이호’가 바로 동아건설이 인양하고자 했던 보물선이었어요. 

당시 동아건설은 금괴를 싣고 가다 침몰한 보물선을 인양하면 엄청난 부를 얻을 수 있다고 광고하며 투자자를 대거 끌어 모았습니다. 부실경영으로 퇴출 위기에 몰려있던 이 회사는 보물선을 이슈화해서 회생의 발판을 마련하려 했습니다. 하지만 이 회사는 보물선 인양의 성공확률이 엄청나게 작다는 사실 뿐만 아니라 실패했을 때 투자자들이 입게 될 손실이 매우 크다는 점에는 입도 뻥긋하지 않았어요.

“투자자들이 바보도 아닌데 설마 그런 허무맹랑한 제안에 속았겠는가?”라고 반문할지 모르지만, 애석하게도 투자자들은 현명하지 못했습니다. 주당 315원이던 동아건설의 주가는 보물선 인양 계획 발표 후에 3,265원으로 10 배 이상 수직 상승했다는 사실이 바로 투자자들이 보물선의 유혹에 완벽하게 넘어갔다는 증거입니다. 17일 연속으로 상한가를 기록하던 동아건설의 주식은 얼마 지나지 않아 휴지만도 못한 수준으로 전락했죠.

일명 '대왕고래' 프로젝트. 최근 포항 앞바다에 상당량의 석유가 매장돼 있을 '가능성'이 높기에 시추 투자를 추진하겠다는 정부의 발표가 있었습니다. '석유가 있다'가 아니라 '석유가 있을 가능성이 있다'라는 말에 관련 주식들이 상한가를 기록했죠. 유전 개발의 성공확률은 보통 20% 언저리라고 하는데 말입니다.  여러분은 이런 현상이 바람직하다고 보시나요? 이 상황에서 현명한 자세는 무엇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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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용어를 많이 섞어 쓰나요?   

2024. 6. 5.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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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누구나 자기만의 편견을 가지고 있는데요,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저에게는 대화를 할 때 우리말 용어가 있는데도 굳이 영어로 된 말을 지나치게 많이 섞어 쓰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상대방에 배려심이 적다고 판단합니다. 이게 편견인 이유는 어떤 분야에 오래 근무하다 보면 어쩔 수 없이 영어 용어를 자주 접하고 억지로 한국말로 번역된 용어를 쓰느니 간명하게 영어 단어를 쓰면 의사소통 속도가 훨씬 빠르기 때문이죠.

문제는 제가 그 분야의 사람이 아닌 줄 잘 알면서도 제가 알아들을 수 없는 전문용어를 내뱉을 때입니다. 10년 전 쯤 어느 미팅 때 누군가가 자꾸만 ‘텔코.’라고 하길래 처음에는 무슨 말인지 알아 듣지 못했습니다. 이야기를 듣다보니 ‘텔코’는 ‘Telco.’이고 ‘Telecom Company(통신 회사)’의 줄인 말이라는 것을 겨우 알아차릴 수 있었죠.

자기네끼리는 하루에도 수십 번 내뱉는 단어겠지만, 저처럼 통신 쪽엔 문외한인 사람에겐 요즘 젊은 친구들이 자주 쓴다는 ‘강종(강제 종료)’. ‘갠소(개인 소장)’ 같은 외계어나 다름없었습니다. 제가 컨설턴트라고 하니까 그 정도 용어는 알아 듣겠거니 해서 내부인과 대화하듯 편하게 나를 대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듣는 입장에서는 ‘이 사람이 나의 배경지식을 과대평가한다’기보다 ‘상대방에 대한 배려가 조금 없구만’이라는 편견에 들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연구에 따르면, 전문용어의 과다 사용은 자신감이 낮음을 자신도 모르게 드러내는 현상이라고 합니다. 연구자는 지위가 낮아서 자신감이 떨어질 수밖에 없는 상황과 높은 지위에 있기에 자신감이 높은 상황, 이렇게 두 가지 상황을 설정한 다음에 참가자들이 전문용어를 얼마나 많이 쓰는지 살폈습니다.

그랬더니 상대적 지위가 낮은 조건의 참가자들이 상대적 지위가 높은 조건의 참가자들보다 전문용어를 더 많이 사용하려는 경향을 보였습니다. 상대적 지위의 낮음을 전문용어로 보호 받으려는 심리가 작동한다는 사실을 엿볼 수 있죠. 상대적 지위가 낮은 사람일수록 ‘그가 나를 어떻게 평가할지’에 더 많은 신경을 쓰는 것이라 해석할 수 있습니다.

앞으로 여러분은 외부인과 대화할 때 전문용어 사용을 자제하는 편이 좋습니다. 본인이 상대방보다 지위가 낮다는 것을 은연 중에 표현하는 것이니까요. 또한, 글을 쓰거나 말을 할 때 일단 상대방이 이쪽 분야의 지식이 별로 없다는 전제 하에서 시작해야 합니다. 몇 마디 주고 받으면서 상대방의 배경지식이 어느 정도 있다고 판단되면 그에 따라 대화의 수준을 상향해야 좋지 않을까요?


*참고논문
Brown, Z. C., Anicich, E. M., & Galinsky, A. D. (2020). Compensatory conspicuous communication: Low status increases jargon use. Organizational Behavior and Human Decision Processes, 161, 274-2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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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없이 어디 잘 되나 보자'....라굽쇼?   

2024. 6. 4.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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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은 한번쯤 이런 생각한 적이 있을 겁니다. '나 없이 어디 잘 되나 보자!' 회사를 그만 둘 때나 고의로 어떤 모임이나 프로젝트에 참여하지 않을 때 혹은 억울함을 보상 받고자 누군가와의 약속을 일부러 깰 때 우리는 속으로 이 말을 뇌까리곤 합니다. 

특히 불이익을 감수하면서까지 혼자서 이리 뛰고 저리 뛰며 열심히 일했는데 아무런 보상이 돌아오지 않거나 오히려 희생양으로 몰려 '그곳으로부터 이탈'을 결심할 때 우리는 이런 작은 '저주'를 속으로 날리죠. 솔직히 저도 몇 번은 그랬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어떻던가요? 여러분이 없어도 일이 잘 돌아가지 않던가요? 그곳에 속할 때는 여러분이 '없어서는 안 될 존재'였겠지만 어이없게도 누군가가 여러분을 '손쉽게' 대체하지 않던가요? 아니면, 아예 여러분이 하던 일이 없어도 되는 일이였다는 듯 잊혀지지 않던가요? 경우에 따라 다르겠지만, 여러분이 없어도(그리고 '내'가 없어도) 조직은 잘만 굴러갑니다. 겸연쩍게도 말이에요.

이 작은 '진리'를 오늘(일요일) 새삼 되새겼답니다. 오늘 낮에 OTT에서 시청한 일본 드라마 <브러쉬 업 라이프>는 몇 번의 인생을 되풀이해 살면서 실수나 사고를 예방하고 교정하는 주인공의 모습을 그리더군요. 일본 드라마 특유의 잔잔하고 조금은 지루하기까지 한 분위기로 진행되던 장면 중에서 '내가 없어도 세상은 잘만 돌아간다'를 느끼게 한 순간이 있었습니다.

 



다섯 번째 삶을 되풀이하는 주인공은 그 앞의 생애에서 벌어진 비행기 사고를 막으려고 직접 파일럿이 됐습니다. 비행기의 기장이 되어 '우주 쓰레기'와 충돌하지 않을 항로로 기수를 돌리려고 했던 거죠. 그 비행기에 탄 친구들과 승객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런데 주인공의 머리에 무언가가 퍼뜩 떠올랐습니다. 미생물 연구원으로 네 번째 삶을 살 때 그녀는 새로운 균을 발견했고 그 덕에 수많은 생명을 구하는 데 기여했습니다. 하지만 이번 생(다섯 번째 삶)에는 비행기 파일럿으로 살기에 당연히 그 균을 발견할 수 없었을 터였죠. 그녀는 180명의 승객을 구하려다가 그보다 훨씬 많은 수의 생명을 구할 기회를 놓친 것은 아닌지 걱정합니다.

그러다 그녀는 네 번째 삶에서 자신이 발표한 것과 같은 주제의 논문이 출판됐는지 검색하더니 복잡한 표정을 짓습니다. 누군가가 그 균을 발견했다는 내용으로 이미 논문이 나와 있었기 때문이죠. 게다가 출판 날짜를 보니 자신의 출판일보다 몇 년은 앞섰습니다.

'오히려 내가 이 균을 발견하지 못하게 막은 걸림돌은 아니었나?'

자기가 그 자리에 없어도 세상은 잘 돌아간다는 것, 아니 자기가 없었으면 누군가가 벌써 이룩했을 업적이란 점에서 세상은 더 잘 돌아간다는 것을 깨달은 그녀는 안도하면서 비행기 기장이 되어 승객을 구하겠다는 계획에 몰두합니다.

'내가 없어도 잘 돌아가나 보자!'는 우리 각자가 1인칭 시점(자기 얼굴을 보지 못함)으로 세상을 바라보기 때문에 어쩌면 '자연스러운' 생각입니다만, 얄밉게도 '그곳들'은 잘 돌아갑니다. 아쉽고 억울하기도 하겠지만, 누군가가 빠져도 세상이 잘 돌아간다는 것은 사실 굉장히 좋은 일입니다. 갑자기 동료가 회사를 그만두고 나간다고 팀이나 회사가 망하지는 않으니까요.

다행입니다. 세상은 사람들이 살면서 여러 번 내뱉은 '나 없이 어디 잘 되나 보자!'란 저주를 흡수하고 완충시킬 만큼 충분히 안전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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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절해도 된다'라는 말의 힘   

2024. 6. 3.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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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원이나 동료에게 무언가를 '급히' 요청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가정해 보세요. 마감일은 다가오는데 그걸 같이할 사람이 그 사람 밖에 없을 때, 그리고 그 사람도 원래 자신이 해야 할 일이 있을 때 여러분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어떻게 해야 그 사람이 "예, 제가 같이 하겠습니다."라는 대답을 할까요?

그런데 여기에서 더 중요한 것은 그 사람이 '압박감을 느끼지 않고 요청을 승락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여러분이 그 사람의 상사이거나 고객이라면 그 사람은 여러분의 요청을 압박이라 여길 수 있고 만약 요청을 거절한다면 비난섞인 소리를 듣거나 불이익을 받을 거라고 생각하겠죠. 

여러분이 가하는 압박에 못이겨 상대방이 요청을 '마지못해' 수락한다면 이 또한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대충 하는척 하면서 질낮은 결과물을 들고 오거나 마감일이 나중에 가서 "저, 못할 것 같은데요."라고 말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핵심은 그 사람이 압박감을 느끼지 않고 자발적으로 여러분의 요청을 수락해 좋은 품질의 결과물을 가지고 오도록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연구에 의하면, 상대방에게 '요청을 거절해도 된다'라는 것을 인식시킬 때 압박감을 덜 느낀다고 합니다. 상대방에게 자유를 주는 것이죠. 그런데 흥미로운 점은 "저의 부탁을 거절해도 됩니다."라는 점을 명시적으로 알려줘도 실제로 요청을 거절하는 경우는 별로 없다는 것입니다. 신기하죠? 

그런데 문제는 '거절해도 좋아요'란 뜻을 어떤 식으로 전달하냐는 것입니다. 요청을 해놓고 바로 "제 요청을 거절해도 됩니다."라고 말하기가 좀 그렇잖습니까? 혹여 상대방이 이 말을 듣자마자 "그러면, 저는 안 할래요."라고 대답하면 분위기가 상당히 뻘쭘해지고 두 사람 사이가 미묘하게 틀어질 테니까요.

크게 2가지 방법이 있는데요, 두 방법 모두 '거절할 시간'을 제공한다는 점이 공통점입니다.

첫째, 고민할 시간을 충분히 주는 것입니다. "부탁을 거절해도 좋아요."란 말을 듣고 바로 "안 하겠습니다."라고 냉정하게 말할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대부분은 분위기에 휩쓸려 마지못해 수락하고 말겠죠. 그러니 이렇게 요청하는 게 좋아요. "이것을 부탁 드리는데요, 거절해도 상관없습니다. 하지만 지금 바로 결정하지 말고요, 내일까지 고민해 보고 알려 주시겠습니까?"라고 말입니다. 물론, 상황이 급박하다면 상대방에게 고민할 시간을 충분히 주지 못할 수 있습니다. 그래도 "1시간 후에 대답해 주겠습니까?"라고는 할 수 있겠죠.

둘째, 이메일로 요청하는 것입니다. 이메일로 여러분의 요청을 상세하게 써서 보내면 상대방은 그걸 읽고 고민할 시간을 충분히 가질 수 있습니다. 거절하겠다는 이메일을 쓰려다가도 생각을 고쳐먹고 요청을 수락할 수도 있죠. 요청사항을 숙고할 시간을 충분히 가지면 요청을 압박이라고 여기지 않을 것이고, 수락한 후에는 자발적으로 일을 수행할 겁니다.

오늘은 요청을 압박이나 명령으로 느끼게 하지 않으면서도 자발적으로 그 일을 수행하도록 하는 팁을 알아봤는데요, 기본적으로 '존중'의 미덕이 여기에도 깔려 있습니다. '내가 막 부릴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 '나와 동반하는 사람'이라는 존중과 상호신뢰가 있을 때 상대방으로부터 최대한의 결과를 기대할 수 있다는 점을 기억하기 바랍니다.


*참고논문
Sommers, R., & Bohns, V. K. (2018). The voluntariness of voluntary consent: Consent searches and the psychology of compliance. Yale LJ, 128, 19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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