샐리라는 아이가 사탕을 상자 안에 넣은 다음 방에서 나갑니다. 샐리가 없는 동안 누군가가 들어와 상자에서 사탕을 꺼내 바구니로 옮겨 놓은 후 사라집니다. 샐리가 돌아오면 상자와 바구니 중 어디에서 사탕을 찾으려 할까요? 당연히 상자를 먼저 들여다 볼 겁니다. 하지만 4살 미만의 아이들에게 이런 광경을 보여주면 샐리가 바구니에서 사탕을 찾으려 할 것이라고 대답합니다. 자기가 아는 것(누군가가 사탕을 옮겨 놓았다는 것)을 샐리도 알고 있으리라 여기기 때문입니다. 타인의 입장이 되어 생각할 줄 모른다는 것이죠.
헌데 이런 현상이 비단 미성숙한 아이들에게만 나타나는 것이라고 우습게 넘어갈 일이 아닙니다. 성인들도 자기가 아는 정보로 인해 객관적인 판단을 하지 못하는 '지식의 저주'에 빠지는 경우가 상당히 많기 때문입니다. 브리티시 콜럼비아 대학의 수잔 비르히(Susan A.J. Birch)와 예일 대학의 폴 블룸(Paul Bloom)은 155명의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실험을 통해 지식의 저주를 경고합니다.
비르히와 블룸은 참가자들에게 짧은 상황을 전달했습니다. "방 안에는 파란색, 빨간색, 보라색, 녹색의 상자가 있다. 바이올린 연습을 끝낸 '비키'라는 여자아이가 바이올린을 파란색 상자에 넣은 후에 밖으로 놀러 나갔다. 비키가 없는 사이에 동생인 데니스가 들어와서 바이올린을 다른 상자로 옮겼다. 그런 다음, 모든 상자의 위치를 바꿔 놓았다. 비키가 방으로 돌아와 어느 상자에서 바이올린을 찾을 것 같은지 각 확률을 써보라." 데니스가 상자의 위치를 바꾸기 전의 모습과 바꾼 후의 모습은 다음과 같습니다.
(출처 : 아래 링크의 논문)
(출처 : 아래 링크의 논문)
참가자들은 세 그룹으로 나뉘었는데, 1그룹은 위와 동일한 설명을 들었고, 2그룹은 '데니스가 바이올린을 '빨간색' 상자로 옮겼다는 설명을, 3그룹은 '데니스가 바이올린을 '보라색' 상자에 옮겼다는 설명을 전달 받았습니다. 1그룹에겐 데니스가 바이올린을 어느 상자로 옮겼는지 가르쳐 주지 않았지만, 2그룹과 3그룹에게 비키가 모르는 정보를 알려준 것입니다. 참가자들은 모두 데니스가 네 상자의 위치를 뒤섞을 때 원래 파란색 상자가 있던 자리에 빨간색 상자를 놓았다는 점을 알았지만, 그 의미는 2그룹에게 특별하게 느껴졌을 겁니다. 왜냐하면 2그룹은 데니스가 빨간색 상자로 바이올린을 옮겼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죠. 반면, 3그룹은 파란색 상자의 원래 위치와 보라색 상자의 새 위치 사이에 전혀 관련이 없었기에 2그룹과 같은 의미를 느낄 수 없었을 겁니다.
참가자들이 적어낸 확률을 평균해 보니, 데니스가 바이올린을 어디로 옮겼는지 듣지 못한 1그룹(일종의 대조군)은 비키가 파란색 상자를 제일 먼저 확인할 확률을 71%, 빨간색 상자를 가장 먼저 확인할 확률을 23%로 보았습니다. 3그룹의 학생들도 이와 비슷한 확률을 제시했습니다(파란색 상자 73%, 빨간색 상자 19%). 하지만 2그룹의 학생들은 다른 그룹과 확연한 차이를 나타냈습니다. 그들은 비키가 파란색 상자를 먼저 확인할 확률을 59%, 빨간색 상자를 먼저 꺼내볼 확률을 34%로 보았습니다.
1그룹과 비교하면 2그룹의 판단이 편향되었음이 금세 드러납니다. 비키는 분명 파란색 상자에 바이올린을 넣고 밖에 나갔기에 그 상자의 색깔을 기억할 겁니다. 물론 기억 못할 수도 있어서 파란색 상자가 원래 있던 위치에 놓여진 빨간색 상자를 제일 먼저 확인할지도 모릅니다. 1그룹은 비키가 이렇게 상자 색깔을 기억 못할 확률을 23%으로 본 반면, 2그룹은 34%으로 판단했습니다. 이는 바이올린이 실제로 들어있는 상자가 빨간색 상자임을 안다는 것이 2그룹 학생들의 판단을 흐리게 만들었다는 의미입니다. 2그룹의 학생들은 상황을 알지 못하는 비키의 입장이 되어 1그룹과 비슷한 확률을 추정해야 했지만, 자신이 알고 있는 사실에 영향을 받아 확률을 부풀려 생각한 것이죠. 그야말로 '지식의 저주'가 단적으로 나타나 버렸습니다.
우리는 조직 내외부적으로 상황이 매우 모호하게 흘러갈 때 상황을 설명해주는 지식이 주어지면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있으리라 기대하곤 하지만, 그 지식으로 인해 실제 수준보다 가능성을 더 크게 혹은 더 작게 판단할 위험이 상존하고 있습니다. 위의 간단한 실험이 이를 일깨워 줍니다. 여기에 본인이 보고싶어 하는 것만 근거로 채택하려는 확증편향까지 더해지면 지식의 저주는 우리의 눈에 안대를 씌우고 판단 실패라는 절벽으로 우리를 안내하는 길잡이가 됩니다.
판단은 항상 어떤 요인에 의해 편향될 수도 있음을 인정하는 것이 의사결정자의 바람직한 태도입니다. '아는 것이 힘'이기 이전에 '아는 것이 독'이 될 수도 있음을 의사결정을 할 때마다 항상 염두에 두어야겠습니다.
(*참고논문)
The Curse of Knowledge in Reasoning About False Belief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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