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가 고플 때와 부를 때 내리는 의사결정의 결과가 매우 다르다는 점을 지난 번에 올린 글('밥 먹고 합시다'라고 말해야 하는 이유)에서 언급한 바 있습니다. 가석방 여부를 결정하는 심사관들이 새참을 먹기 바로 직전에는 가석방 승인율이 9~27% 밖에 안 됐지만, 새참을 먹은 후에는 승인율이 52~61%로 크게 상승한다는 연구 결과를 소개하며 객관적 의사결정이 불가능한 신체적인 한계를 이야기했었죠.
오늘 글에서는 밥을 먹기 전과 먹은 후에 리스크에 대한 수용도가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이야기해볼까 합니다. 배가 고플수록 리스크가 큰 선택을 할까요, 아니면 리스크를 꺼려 할까요? 반대로 배가 부를 땐 어떤 결정을 할까요? 동물 실험에서는 통상적으로 배가 고프면 안전을 추구하는 경향이 있고 배가 부를 땐 리스크가 높은 행위를 더 많이 한다고 하는데, 인간의 경우는 어떨까요?
므카엘 사이몬즈(Mkael Symmonds)와 동료들은 19명의 남학생들을 대상으로 3주에 걸쳐 포만감과 리스크 수용도의 관계를 실험했습니다. 학생들은 네 개씩 한 묶음으로 된 두 개의 복권 세트 중에서 마음에 드는 세트를 선택하는 작업을 해야 했죠. 5가지 상금을 가진 복권(0파운드, 20파운드, 40파운드, 60파운드, 80파운드)을 (60, 60, 40, 40)으로 구성하면 상대적으로 리스크가 적은 세트이고, (80, 20, 80, 20)으로 이뤄진 세트는 상대적으로 리스크가 크지만 수익성이 좋은 선택이겠죠. 학생들은 3주 동안 1주일에 한번씩 연구실에 찾아와 모두 3차례씩(식사 전에, 식사 직후에, 식사하고 1시간 후에) 이 게임을 수행해야 했습니다. 학생들이 느끼는 배고픔과 배부름은 공복감을 자극하는 그렐린(Ghrelin)과 포만감을 나타내는 렙틴(Leptin)이라는 호르몬의 양으로 측정되었습니다.
연구자들은 포만감을 느끼는 정도와 리스크 수용도 사이에 흥미로운 결과를 발견하였습니다. 포만감을 늦게 느끼는 사람(즉 렙틴의 기준치가 높은 사람, 보통 뚱뚱한 사람)의 경우, 식사 전에는 리스크 수용도가 낮았으나 식사 직후에는 리스크 수용도가 높아졌습니다. 반면, 포만감을 빨리 느끼는 사람(보통 마른 사람)은 식사 전에는 리스크 수용도가 높았으나 식사를 하고나서는 리스크 수용도가 낮아졌죠. 식사하고 나서 1시간이 흐른 후에는 어떻게 변할까요? 1시간이 지난 후에 배가 덜 고프다고 느끼는 학생들은 상대적으로 리스크를 회피하려는 경향(리스크가 적은 복권 세트를 선택하는 경향)이 컸습니다.
이 실험의 결과를 다시 정리하면 이렇습니니다. 비만인 사람은 식사하기 전보다 식사 직후에 좀더 리스크가 큰 의사결정을 내리고, 반대로 다이어트를 하거나 원래 많이 먹지 않는 사람들은 식사 전보다 밥을 먹고난 후에 좀더 리스크를 회피하는 경향이 있음을 시사합니다. 풀어 말하면, 비만인 사람은 식사 후에 관대해지고 마른 사람은 밥을 먹은 후에는 깐깐해진다는 뜻입니다. 신진대사의 균형을 추구하려는 신체의 본능적인 반응이 의사결정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는 것이죠.
여러분이 중요하지만 리스크 부담이 큰 결재를 받아야 할 때 상사가 뚱뚱하다면 식사 후에 결재를 받고, 평소에 별로 많이 먹지 않는 상사라면 식사 전에 결재를 받는 게 유리합니다.(100% 보장은 못하지만...). 또한 주식을 파고 사는 의사결정을 할 때도 여러분 자신의 몸 상태와 공복감을 유의해야겠죠. 어쨌든 이 실험의 결과는 지난 번에 올린 글과 함께 객관적 의사결정에 대한 우리의 믿음이 환상일지 모른다는 또 하나의 증거입니다.
(*참고논문)
Metabolic State Alters Economic Decision Making under Risk in Huma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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