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오는 날, 면접 보지 마라   

2012. 8. 31. 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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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 펜'이라는 단어를 들을 때 여러분은 어떤 느낌이 듭니까? 아마도 대부분은 학교 다닐 때 선생님이 빨간 동그라미(혹은 오른쪽 위에서 왼쪽 아래로 그려진 사선)로 채점한 시험지의 이미지가 떠오를 겁니다. 우리에게 빨간 색은 무언가를 수정하거나 바로잡고 측정하거나 처벌을 가하는 느낌이 강합니다. 반면 파란색이나 녹색은 시험 채점이나 측정이라는 이미지와 바로 연결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만약 누군가가 여러분이 작성한 글이나 보고서를 평가하고자 할 때 그가 빨간 펜을 쥐고 있다면 여러분은 바짝 긴장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가 다른 색깔의 펜을 사용할 때보다 더 가혹하게 평가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입니다. 에이브러험 러트치크(Abraham M. Rutchick)와 동료들은 간단한 몇몇 실험을 통해 빨간 펜에 노출되면 오류를 더 많이 찾아내고 평가가 박해진다는 증거를 제시했습니다.1)


러트치크는 참가자들에게 철자 몇 개를 지우고서 원래의 단어가 무엇인지 유추하라는 과제를 주었습니다. 예를 들어 'FAI__' 라는 단어를 주고 빈칸에 어떤 철자가 들어갈지를 맞히라고 한 것이죠. 참가자들은 FAIR라고 쓸 수도 있었지만 부정적인 느낌의 단어인 FAIL이라고 답할 수 있었겠죠. 또 '__RRO__'라는 문제에 대해서는 ARROW 혹은 ERROR고 답할 수 있었습니다. 러트치크는 참가자들을 반으로 나눠 빨간 펜과 검은 펜을 각각 나눠준 후에 이런 문제를 풀게 함으로써 부정적인 느낌이 드는 단어를 얼마나 많이 답으로 적어냈는지를 살펴봤습니다. 예상대로 빨간 펜을 쥐고 과제를 수행한 참가자들은 검은 색을 사용한 참가자들에게 비해 '오류'나 '저조함'과 관련된 단어를 더 많이 써냈습니다.




두 번째 실험에서 러트치크는 참가자들에게 영어를 배우는 학생이 쓴 두 문단 짜리 글을 읽게 하고는 시제, 스펠링, 문법, 단어 선택 상의 오류를 찾아내라는 과제를 부여했습니다. 첫 번째 실험과 마찬가지로 빨간 펜과 검은 펜을 각각 사용하게 했더니 빨간 펜을 사용한 참가자들이 평균 24.3개의 오류를 찾아낸 반면, 검은 펜을 쓴 참가자들은 19.1개의 실수를 잡아냈습니다. 빨간 펜이라는 장치가 참가자들로 하여금 오류를 잡아내겠다는 집중력을 더 키운다는 점을 시사하는 결과였죠. 빨간 펜을 쓰면 문법적 오류가 없어도 평가가 박해진다는 것이 세 번째 실험에서 규명되었습니다. 문법적으로 오류가 없는, 8학년 학생이 작성한 에세이를 읽고서 0점부터 100점까지 점수를 매기도록 하니 빨간 펜을 쓴 참가자들은 파란 펜을 사용한 참가자들에 비해 낮은 점수를 주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그저 색깔만 다를 뿐인데 그 결과가 유의미한 차이를 일으킨다는 사실은 '사람이 다른 누군가를 평가하는 일이 과연 객관적일까'란 의문이 들게 만듭니다. 색깔 뿐만 아니라 날씨도 큰 영향을 미칩니다. 캐나다의 모 의과대학을 대상으로 6년 간 입학 면접시험 결과를 분석한 연구에서 비가 내리는 날에 면접을 본 학생들은 날씨가 맑은 날에 면접을 치른 학생들에 비해 1퍼센트 정도 낮은 면접 점수를 받았다고 합니다. 1퍼센트의 차이가 별것 아닌 것 같지만 의과대학 입학시험의 총점으로 환산하니 10퍼센트의 차이에 해당했다고 합니다.2)


혹시나 이 글을 학교 선생님들이 보신다면 객관식 문제야 상관 없겠지만 학생들의 작문을 빨간 색연필을 들고 평가하는 일은 좀 자제해야 하지 않을까요? 또 면접 보러 가는 지원자들은 일기예보에 좀더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습니다. 인간의 평가나 판단은 아주 사소한 것에도 쉽사리 영향을 받기 때문입니다. 평가의 객관성은 신기루입니다.


태풍 덴빈이 지나간 후, 오늘은 하늘이 푸르고 빛이 가득합니다. 오늘 면접을 보러 가는 지원자들은 어제 면접 본 지원자들에 비해 자신감을 가져도 될 날씨입니다. ^^



(*참고논문)

1) Rutchick, A., Slepian, M., & Ferris, B. (2010). The pen is mightier than the word: Object priming of evaluative standards, European Journal of Social Psychology, Vol. 40(5)


2) Redelmeier, D., & Baxter, S. (2009). Rainy weather and medical school admission interviews, Canadian Medical Association Journal, Vol. 18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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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확실하면 사탕을 많이 먹는다   

2012. 8. 28. 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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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타임즈의 기사에 따르면 서브 프라임 모기지 부실로 시작된 2008~2009년의 금융 위기 때 다른 소비재들은 판매가 급락했음에도 불구하고 유독 사탕은 판매가 급증했다고 합니다.1) 사탕과 초콜릿 제조업체인 캐드버리(Cadbury)는 2008년에 이익이 30퍼센트나 증가했고, 여러모로 힘들었던 허쉬(Hershey)도 8.5퍼센트 정도 이익이 증가했으니 말입니다. 고급 제품을 생산하는 린트 & 스프륑글리(Lindt & Sprungli)도 불황 때문에 몇몇 럭셔리 매장을 철수시켜야 했지만 월마트와 같은 할인점에서의 초콜릿 판매는 꾸준히 늘었습니다.


워튼 스쿨의 캐서린 밀크만(Kathering L. Milkman)은 앞으로 경제가 어떻게 될지 모르는 불확실한 상황이 스트레스와 자아 고갈(Ego Depletion) 상태를 유발하기 때문에 몸에 좋은 음식보다는 손쉽게 당분을 섭취할 수 있는 사탕에 탐닉하게 된다고 추측했습니다.2) 밀크만은 이런 추측을 확장하여 사람들이 불확실한 상황에 노출되면 여러 옵션 중에서 '해야 하는 것'보다는 '원하는 것'을 더 많이 선택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다시 말해, 몸에 좋은 것보다는 맛이 좋은 것, 장기적인 것보다는 즉각적인 것, 노력이 요구되는 것보다는 편안한 것을 택하게 된다고 가설을 세웠습니다.





밀크만은 실험 참가자들에게 1달러 짜리 복권을 한 장씩 나눠준 다음에 64개의 세자리수 더하기 문제를 풀도록 했습니다. 참가자 중 절반은 문제를 풀기 전에 복권을 긁어서 당첨 여부를 확인할 수 있었지만, 나머지 절반의 참가자들은 20분이 지나기 전에는 복권의 당첨 여부를 확인할 수 없었습니다. 밀크만은 참가자들에게 원한다면 언제든지 문제 풀이를 도중에 그만 둘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복권의 당첨 여부를 확인하지 못한 참가자들은 이미 복권의 결과를 아는 참가자들보다 더 빨리 문제 풀이를 중단했습니다(361초 대 412초). 복권의 당첨 여부를 모른다는 불확실성이 문제 풀이를 지속하려는 의지를 고갈시켰던 겁니다.


후속실험에서 밀크만은 참가자들에게 각자의 룸메이트가 저녁거리로 피자를 사가지고 오는 상황을 떠올리게 했습니다. 참가자 중 절반은 룸메이트가 '까르네 아사다 피자'를 사올지 아니면 '페스토 치킨 피자'를 사올지 알 수 없다는 말('50 대 50이다!')을 들은 반면, 나머지 절반의 참가자들은 룸메이트가 두 피자 중에서 어느 하나를 확실하게 사가지고 온다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밀크만은 모든 참가자들에게 과일 샐러드와 브라우니 중에서 피자와 함께 먹을 디저트를 고르라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룸메이트가 어떤 피자를 사올지 확신하지 못하는 참가자들이 과일 샐러드보다 브라우니를 더 많이 선택했습니다(과일 샐러드 18%, 브라우니 82%). 반면 피자 종류를 확실히 아는 참가자들 중 브라우니를 선택한 사람은 58~59퍼센트였습니다. 불확실한 조건의 참가자들은 몸에 좋기 때문에 '먹어야 하는(should)' 과일 샐러드보다는 달콤하기 때문에 당장 입에 '당기는(want)' 브라우니에 끌렸던 겁니다.


후속실험에서 참가자들에게 불확실했던 과거 일을 떠올리게 했더니 뉴욕 타임즈의 추천도서보다는 네셔널 인콰이어러(The National Enquirer)와 같은 주간지를 읽을거리로 더 많이 골랐고, 교육 다큐멘터리보다는 액션 영화를 더 많이 선택했습니다. 역시 불확실한 상황에 노출되면 '해야 하는 것(the should)'보다는 '원하는 것(the want)'에 탐닉한다는 가설을 증명하는 결과였습니다.


밀크만이 수행한 일련의 실험을 통해 알 수 있는 분명한 사실은 불확실성이 사람들에게 의지력의 고갈 상태를 유발한다는 점입니다. 룸메이트가 어떤 피자를 사가지고 올지 모르는, 아주 사소한 불확실성조차 의지력을 감소시켜 장기적이고 긍정적인 대안보다는 즉각적이고 이로움이 덜한 대안으로 빠져들게 만든다는 것이죠. 이는 불확실성이 시시각각 변하는 환경 속에서 조직이 장기적으로 바람직하지 못한 대안을 선택할 가능성이 크다는 뜻입니다. 여러분이 불확실한 상황 하에서 내린 의사결정이 '과일 샐러드'가 아니라 '사탕'일지 모릅니다. 여기에 집단사고가 개입되면 바람직하지 못한 대안이 이의를 절대 허용하지 않는 최고의 대안으로 스스로 강화될 위험이 있습니다. 기업은 외부환경의 불확실성을 없애거나 줄일 수 없는 경우가 거의 대부분이기 때문에 '해야 하는 것'보다 '당장 원하는 것'에 빠져들지 않는지 매순간 경계의 끈을 놓쳐서는 안됩니다. '해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던 대안이 사실은 '사탕'일 수 있음을 유념해야겠죠.


그러나 조직 내부의 불확실성은 어느 정도 통제가 가능하고 또 그래야 합니다. 상사는 직원들이 언제 어느 프로젝트에 투입될지, 언제 어떤 회의를 시작할지, 앞으로 누구와 일하게 될지 등 별것 아닌 것 같지만 결코 사소하지 않은 불확실성을 해소해 주어야 합니다. 직원들이 쉽고 편안한 업무가 아니라 노력이 필요하지만 장기적으로 도움이 되는 행동에 집중하도록 유도하려면 말입니다. 직원들이 위에서 떨어지는 일만 수동적으로 수행하려 하고 장기적인 아이디어에 대해 아예 무감하거나 냉소적인 이유는 무엇일까요? 직원들 자체의 역량 문제라기보다는 조직 내부의 불확실성을 방치한 채 전혀 해소시켜주지 않는 관리자의 책임이 더 크지 않을까요? 



(*참고문헌)

1) When economy sours, tootsie rolls soothe souls, The New York Times Online, March 23, 2009


2) Katherine L. Milkman(2012), Unsure What the Future Will Bring? You May Overindulge:Uncertainty Increases the Appeal of Wants over Shoulds, Organizational Behavior and Human Decision Processes, Vol. 11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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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과 소문이 다르면, 부하직원 평가는?   

2012. 8. 27. 1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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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누군가와 함께 일하기로 결정하기 전에 그 사람이 과연 신뢰할 만한 사람인지 적어도 거짓말을 하지 않을 사람인지 알고자 합니다. 이때 우리가 주로 사용하는 정보는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그 사람이 과거에 보였던 실제 행적이고, 또 하나는 그 사람에 대한 타인의 평가입니다. 전자는 그를 직접 관찰하면서 얻는 정보인데 반해, 후자는 다른 사람의 관찰과 해석을 통해 간접적으로 습득하는 정보입니다.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이 두 가지 종류의 정보가 동일한 방향을 가리키고 있다면, 그 사람에 대한 나의 평가는 강화될 겁니다. 


그런데 내가 관찰한 그 사람의 실제 행적과 타인이 그 사람을 놓고 '뒷담화'하는 내용이 상반된다면, 그 사람에 대한 나의 평가는 어떻게 바뀔까요? 예를 들어, 나는 과거의 행적을 통해 그를 좋게 보는데 다른 사람들은 그를 부정적으로 평가한다면 그에 대한 나의 긍정적 평가는 약화될까요? 반대로 사람들이 그에 대해 뭐라고 수근거리든 간에 직접 관찰해서 얻은 정보로 그를 평가하려 할까요? 정리하면, 사람들은 직접 관찰한 사실과 소문이 서로 일치하지 않을 때 무엇을 믿으려 할까요?





이런 궁금증을 풀기 위해 랄프 조머펠트(Ralf Sommerfeld)과 그의 동료들은 컴퓨터 상에서 자신의 짝에게 돈을 주고 받는, 일종의 신뢰 게임을 고안했습니다. 조머펠트는 참가자 126명에게 10유로씩 나눠주고 매번 짝을 바꿔 가며 게임을 수행하도록 했습니다. 참가자들이 매 게임마다 자신의 짝에게 1.25유로를 내어 주기로 결정하면 짝은 여기에 0.75유로를 더해 2유로를 받을 수 있었죠. 참가자들은 1.25유로를 내주기보다는 짝으로부터 돈을 받기만 하는 것이 유리합니다. 하지만 짝에게 돈을 내주지 않는다는 정보가 다른 참가자들에게 퍼지면 자신이 돈을 벌 기회가 적어진다는 점을 잘 알기에 무작정 이기적으로 행동할 수는 없겠죠.


조머펠트는 몇 라운드를 진행한 후에 참가자들에게 짝이 과거의 게임에서 보였던 행태를 보여주고 게임에 임하도록 했습니다. 그랬더니 이전 게임에서 이기적인 결정을 했던 짝에게는 돈을 내주기를 꺼려 했습니다. 그 다음 라운드에서는 과거의 행태를 보여주는 것 대신에 여러 참가자들이 짝에 대하여 짤막하게(50자 이내) 평가한 글을 보여주고 게임을 진행하게 했습니다. 직접 관찰한 정보가 아니라 다른 사람을 통한 간접적인 정보를 제시한 셈이죠. 예상대로 참가자들은 다른 이들로부터 이기적이라는 평가를 받은 짝에게는 돈을 내주지 않으려 했고, 반대로 너그럽다는 평가를 받은 짝에게는 쉽게 자신의 돈(1.25유로)을 주었습니다.


직접적인 정보(과거 행태)와 간접적인 정보(타인의 평가)를 모두 보여주되 그 내용이 동일하거나 상반될 경우 참가자들은 어떻게 행동했을까요? 조머펠트는 짝의 과거 행적과 함께 무작위로 '너그럽다', '구두쇠다', '멋진 친구다', '매우 비협조적이다'란 소문을 제시하고서 게임을 진행하도록 했습니다. 참가자들은 '뒷담화'가 어떻든 간에 흔들리지 않고 짝의 과거 행적(이타적 혹은 이기적)에 근거해 게임을 진행했을까요? 


조머펠트는 직접적인 정보가 있을 경우 소문은 아무런 영향을 발휘하지 못한다고 생각했지만 그 가설은 빗나갔습니다. 과거 행적만을 제시 받을 경우 참가자들이 이타적으로 결정(1.25유로를 내주기)할 확률은 60% 가량이었습니다. 여기에 긍정적인 소문이 더해지면 그 확률이 75%로 상승했습니다. 하지만 부정적인 소문이 더해지니 확률은 50%로 뚝 떨어졌습니다. 또한 참가자의 44%가 소문에 의해 자신의 결정을 바꾸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참가자들은 실제 행적에 대해 알더라도 소문에 따라 크게 영향을 받았던 겁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참석자에게 제시된 상대방의 과거 기록이 지나간 라운드에서 얼마나 짝에게 돈을 내어주었는지를 나타내는 '정량적인' 데이터였다는 점입니다. 참석자들은 사실이 수치로 정확하게 제시됐음에도 불구하고 소문에 휩쓸렸던 것입니다. 이는 사실보다는 소문(다른 이의 평가)에 따라 사람들의 의사결정이 편향된다는 것을 단적으로 드러내는 결과였죠.


이 실험은 조직 내에서 시행되는 평가에 의미 있는 시사점을 던져줍니다. 상사가 부하직원의 역량과 성과 달성 과정을 직접적인 관찰을 통해 최대한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더라도 그 부하직원에 관해 주변인들(동료, 타부서 직원, 고객 등)이 수근거리는 '뒷담화'에 의해 평가가 크게 영향 받을 수 있다는 점이죠. 누군가가 악의를 가지고 그 부하직원을 음해한다면 상사는 그런 악의에 쉽게 동조할지 모릅니다. 집단의 의견에 따름으로써 집단의 일원으로 인정 받으려는 인간의 습성 탓에 부지불식간에 자신의 평가를 절하하려고('그럴 이유가 있으니 그렇게 말하는 것이겠지?') 합니다.


이런 심리적 한계 역시 타인에 대한 평가를 어렵게 만드는 원인 중 하나입니다. 다면평가와 같은 장치를 통해 보통 여러 의견을 들으면 피평가자를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고 말하곤 하지만, 그런 믿음은 지근거리에서 직접 관찰한 상사의 평가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에서 위험하기도 합니다. 상사의 평가와 주변인들의 평가가 일치할 경우에는 크게 문제될 것이 없겠지만, 그 둘이 일치하지 않을 때는 과연 누구의 평가가 옳은지, 누구의 평가를 더 우선해야 하는지에 관한 문제가 대두됩니다. 더군다나 주변인들의 평가가 별다른 근거 없는 '자기만의 느낌'이거나 일부러 왜곡시키려는 의도에서 나온 것이라면 문제가 더 심각하겠죠. 


요컨대 다면평가도 평가의 객관성을 확보하기 위한 장치로 한계가 있다는 것입니다(예전에 다면평가를 추천하는 글을 올린 적 있는데, 반성합니다). 해결책은 무엇일까요? 옹색하지만, 평가자(상사)들은 평가가 소문에 의해 좌우되는 오류에 빠질 수 있다는 점을 분명히 인식하는 것만이 최선이 아닐까요? 소문을 참조하되 그것이 자신의 평가와 상반된다면, 그 소문의 진위 여부를 따져 물어야 합니다. 자신의 평가를 온전히 신뢰해도, 타인의 소문에 귀가 팔락거려도 곤란합니다. 여기에서도 중용의 미덕이 발휘되어야 함은 두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참고논문)

Ralf D. Sommerfeld, Hans-Jürgen Krambeck, Dirk Semmann, Manfred Milinski(2007), Gossip as an alternative for direct observation in games of indirect reciprocity, PNAS, Vol. 10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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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원들을 믿지 않아서 생기는 댓가는?   

2012. 8. 23. 0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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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번 포스팅('벌금이 나쁜 행위를 오히려 조장한다?')에서 탁아소에서 아이를 늦게 찾아가는 부모들에게 벌금을 물렸더니 오히려 늦게 찾아가는 경우가 더 늘었다는 연구 사례를 언급한 적이 있습니다. 벌금이라는 금전적 장치가 아이를 늦게 찾아가는 미안함을 늦게 찾아가도 되는 권리로 치환시켜서 기대와 반대되는 현상이 나타난 사례였죠. 오늘은 이와 비슷한 사례를 간단하게 소개합니다.


2001년 12월 1일에 보스턴 소방본부는 소방관들에게 일수 제한 없이 유급으로 제공하던 병가를 최대 15일로 제한한다는 방침을 정했습니다. 만약 병가가 15일을 넘으면 그만큼 급여에서 공제하겠다는 것도 포함되었죠. 아마도 소방관들이 무제한 유급 병가라는 제도를 악용하여 아프지 않은데도 핑계를 대며 일을 게을리할까 우려했던 모양입니다. 게다가 이렇게 제한을 가하면 실제로 소방관들이 사용하는 병가 일수도 줄어드리라 기대했겠죠.



하지만 결과는 전혀 다르게 나타났습니다. 새로운 제도를 실시하고 나니 크리스마스와 신년 첫날에 병가를 신청하는 경우가 전년과 비교하여 10배나 증가했던 겁니다. 소방본부장은 소방관들이 꾀를 부린다고 생각했는지 명절 보너스를 폐지해 버렸습니다. 그랬더니 소방관들은 총 13,431일 분의 병가를 신청했는데, 이는 전년도의 6,432일에 비하면 2배나 증가한 양이었습니다. 병가를 악용할까 염려되어 실시한 제도가 오히려 병가 사용을 늘리는 역효과를 일으킨 것입니다. 


왜 이런 결과가 나온 걸까요? 기본적으로 소방관들은 아프거나 다쳐도 공공의 안전을 위해 헌신한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헌데 새로운 제도가 사회규범 하에 위치하던 소방관들의 마인드를 자신의 서비스를 돈을 받고 제공하는 시장규범으로 이동시켜 버렸습니다. 새 제도는 예전에는 몸이 아파도 출근하던 소방관들에게 조금만 아파도 15일까지는 병가를 써도 괜찮고 그게 시장규범 하에서는 당연하다는 엉뚱한 신호를 준 꼴입니다. 탁아소에서 아이를 늦게 찾아가면 안 된다는 부모들에게 벌금을 내면 아이를 늦게 찾아가도 미안할 것 없다는, 일종의 면죄부를 발부한 사례와 맥을 같이 합니다. 


통제는 눈에 보이지 않는 앙갚음을 유도합니다. 직원들을 믿지 않아서 생기는 댓가는 통제를 가함으로써 얻는 이득을 훨씬 뛰어 넘습니다. 뭔가 제한을 가하거나 벌칙을 부여하면 직원들이 '이제부터 조심해야겠다'라고 기대하는 것은 직원들이 어린 아이와 같다는, 계몽적 관점으로 바라보는 것입니다. 어찌보면 그런 통제 조치들은 성인으로서 직원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강력한 시그널입니다. 극소수의 직원들이 보이는 일탈을 막겠다고 새로운 규정을 설계할 때 무엇보다 주의를 기울여야 할 점은 사회규범에 따라 움직이던 직원들을 돈의 왕래라는 시장규범에 움직이도록 만들지 않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직원들을 믿지 않으면 직원들도 회사를 믿지 않고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시키려 할 뿐입니다.


여러분의 회사에서도 그냥 놔둬도 별 문제 없었을 것을 제한을 둔다든지 통제를 가한다든지 해서 긁어 부스럼을 만들었던 사례가 하나쯤은 있을 겁니다. 공유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참고논문)

Samuel Bowles, Sandra Polanía-Reyes(2009), Economic incentives and social preferences: substitutes or complements?, Journal of Economic Literature, Vol. 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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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표에 집중하면 목표 달성이 더 어렵다   

2012. 8. 22. 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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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목표 달성에 힘겨워하는 누군가를 격려하기 위해 "목표에 집중하라"는 조언을 간혹 합니다. 목표 달성을 방해하고 자신의 의지를 약화시키는 여러 요소에 신경 쓰지 말고 오로지 목표를 향해 달려 가라고 충고합니다. 힘겨운 과정을 끝내고 마침내 도달할 그 날의 모습을 상상하면서 모든 방해요소와 유혹을 떨쳐내는 것이 목표를 이루어내는 왕도라고 믿습니다. 여러 자기계발서에서 이런 논지의 글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죠.


그러나 목표 자체에 집중하는 것이 오히려 목표 달성을 어렵게 만들 수 있다는, 직관에 반하는 연구 결과가 있습니다. 시카고 대학교의 에일렛 피시바흐(Ayelet Fishbach)와 고려 대학교의 최진희(Jinhee Choi)는 어떤 일의 목표가 처음에는 사람들로 하여금 그 일을 시도하도록 동기를 부여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앞으로 성취하게 될 목표에 집중하면서 과정을 수행하려는 마인드가 목표 달성을 방해한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피시바흐와 최진희는 대학 내 체육관에 다니는 103명의 학생들을 두 그룹으로 나눠 그 중 한 그룹의 학생들에게 운동을 통해 이루어낼 목표를 제출(예 : 나는 살을 빼기 위해 운동한다)하도록 하고 운동하는 동안에도 그 목표에 집중하도록 요청했습니다. 반면 다른 그룹의 학생들에게는 그들이 행하는 운동의 과정을 묘사(예 : 나는 스트레칭을 먼저 하고 그 다음에 러닝머신을 뛴다)하도록 했죠. 역시 운동하는 동안 자신의 운동 과정에 몰두하라고 요청했습니다. 이런 조치 후에 피시바흐와 최진희는 각 그룹의 학생들을 두 개씩 소그룹으로 나눠서 첫 번째 소그룹에게는 운동하기 시작하기 전에 얼마나 오랫동안 운동할 생각인지 물었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 소그룹에 대해서는 그들이 실제로 운동하는 시간을 측정해 보았습니다. 정리하면, 목표에 집중하거나 과정에 집중할 때 각각의 경우 운동을 얼마나 오래 할 생각인지 그리고 실제로 얼마나 운동할지를 살펴보고자 한 것입니다.


결과는 흥미로웠습니다. '목표 집중 조건'의 학생들은 '과정 집중 조건'의 학생들보다 8분 정도 더 오래 운동할 생각이라고 답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운동한 시간을 살펴보니 '목표 집중 조건'의 학생들은 '과정 집중 조건'의 학생들보다 대략 10분 정도 적게 운동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목표에 집중하면 목표를 달성하고자 하는 의욕이 커지지만 목표에 의해 자극 받은 의욕은 오래가지 못하여 결국 목표 달성을 더디게 만든다는 점을 시사하는 결과였습니다. 과정(경험)에 집중하는 것이 그 일을 착수하도록 유도하는 힘은 약하지만 일단 일을 시작한 후에는 목표 달성 과정을 지속하도록 동력을 제공한다는 의미죠.


하지만 이 실험은 오해의 소지가 있습니다. 실제로 운동한 시간이 목표 달성에 들인 노력의 양으로 볼 수 있느냐가 문제죠. '목표 집중 조건'의 학생들이 비록 적은 시간 운동했더라도 목표 달성의 투지가 솟아올라 힘을 더 많이 들여 운동한 나머지 쉽게 지쳐서 운동을 중단했는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과정 집중 조건'의 학생들이 목표 달성의 의지가 약해 러닝머신의 난이도를 쉽게 조정하여 더 오래 운동할 수 있었는지도 모르죠.


피시바흐와 최진희는 이런 오해를 없애기 위해 후속실험에서는 '종이접기'와 같이 신체적인 노력이 별로 요구되지 않는 과제를 선택했습니다. '목표 집중 조건'의 학생들은 색종이로 개구리를 접는 활동이 교육적인 효과가 있을 뿐만 아니라 물리치료 목적으로 효과가 있다는 설명을 들은 후 종이접기를 하는 동안에 그 목표를 상기하라고 요청 받았습니다. 반면 '과정 집중 조건'의 학생들은 종이접기 그 자체는 취미 활동일 뿐 별다른 효과는 없다는 말을 들었고 개구리를 만들어 가는 경험에 집중하도록 요청 받았죠.


종이접기를 하지 않은 상태에서 참가자들은 종이접기의 목표에 집중할 때 종이접기에 더 많은 흥미를 보였습니다. 그러나 종이접기를 직접 해본 참가자들은 목표에 집중할 때보다 과정(경험)에 집중할 때 종이접기가 더 재미있다고 응답했습니다. 앞의 실험과 마찬가지로 목표를 떠올리는 것이 최초의 흥미를 유발할 수는 있지만 그 흥미를 지속시키지는 못했던 겁니다. 종이접기 활동 자체에 집중하는 것이 흥미와 재미를 지속시키고 그로 인해 목표 달성에 한걸음 더 다가가게 만든다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피시바흐와 최진희는 '치실 사용하기', '요가하기'와 같은 과제를 가지고도 후속실험을 진행했지만 목표에 집중하는 것이 목표 달성에 해가 된다는, 동일한 결과를 얻었습니다.


누군가가 목표 달성 과정에서 힘겨워 하거나 애를 먹을 때 상투적으로 던지곤 하는 '목표에 집중하라', '목표를 생생하게 그려라', '그 날에 얻게 될 열매를 상상하라'는 조언은 불필요할 뿐만 아니라 목표 달성을 더욱 어렵게 만든다는 것이 이 실험의 시사점입니다. 왜 그럴까요? 피시바흐와 최진희는 어떤 일의 목표가 사람들에게 돈과 같은 외적 보상(External Incentive)처럼 인식된다고 말합니다. 외적 보상이 내적 동기(Intrinsic Motivation)을 저하시키는 것처럼 목표도 그렇다는 것이죠. 살 빼기라는 목표는 운동을 하는 과정의 일부가 아니라 운동을 완료한 후에 얻어지는 보상으로 인식되는 까닭입니다. 


어떤 이유이든 간에, 이 실험으로 내적 동기를 지속시키고 강화하는 것은 목표가 아니라 과정과 경험에 있다는 점은 분명해 보입니다. 처음에 '이 일을 한번 해보라'고 할 때는 그 일을 달성한 후에 얻게 될 목표로 자극해야 하지만, 그런 자극을 일을 진행하는 과정 내내 강조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 날을 위해 참고 견뎌라'라고 말하기보다는 일의 경험과 경험을 통해 얻는 소소한 재미를 강조하는 것이 내적 동기라는 목표 달성의 엔진을 유지시킵니다. 100킬로미터를 걸어야 하는 사람에게 가장 도움이 되는 조언은 사실 '완주했을 때의 너의 모습을 그려봐'가 아니라 '네가 걷는 한 걸음, 한 걸음에만 집중하라'인 것처럼 말입니다. 



(*참고논문)

Ayelet Fishbach, Jinhee Choi(2012), When thinking about goals undermines goal pursuit, Organizational Behavior and Human Decision Processes, Vol. 11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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