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레니얼 세대 직원들은 진짜 다른가?   

2017. 9. 26. 0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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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9월 26일(화) 유정식의 경영일기


“이런 교육 요청이 들어왔는데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요?”

올 초에 모 기업으로부터 어떤 교육을 의뢰 받은 후에 나는 H군에게 의견을 물었다.

“재미있는 주제인 거 같은데요?”

“그렇긴 한데 이쪽 분야에 대해서 그리 많은 관심을 두지 않았거든요. 제가 강의하는 게 맞나 싶기도 하고.”

“그래도 그 회사에서 적합하다고 생각하니까 대표님에게 강의를 의뢰한 것 아니겠어요? 어렵겠지만 시도해 보세요.”


정말이지 내키지 않아서 할까 말까 무지하게 고민했던 강의 주제는 바로 ‘밀레니얼 세대 직원들의 몰입’이었다. 금년은 뭐든 시도해 보는 게 좋다며 싫어도 수락해야 한다는 H군의 반강제적(?) 조언에 따라 강의를 진행하기로 했지만, 어떻게 말을 풀어가야 할지 몰라서 초반엔 엄청 애를 먹었다. 우리나라에서는 관련자료를 얻기가 쉽지 않았기에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나 아마존을 뒤질 수밖에 없었다. 


놀라운 것은 미국에서는 밀레니얼 세대에 대한 연구 조사 자료가 매우 많다는 사실이었다. 어떤 연구자가 밀레니얼 세대의 특징은 이렇다라고 말하면 다른 연구자가 근거를 들어 논박할 정도로 논의가 활발한 영역이라는 점을 새삼 알게 되었다. 갑론을박 논쟁이 벌어지는 분야라 어떤 주장이 옳은지 판단하기가 어려워서 여러 연구자들이 밀레니얼 세대에 공통적으로 내놓는 의견을 바탕으로 내 경험을 섞어서 강의 내용의 얼개를 잡아나갈 수밖에 없었다. 돌이켜 보니 한달 내내 자료 수집하고 강의자료 만들고 대략의 강의 대본을 만들던 올해는 시작부터 ‘이걸 해? 말아?’라는 번민의 시간이었다. 





어찌어찌하여 4시간 분량의 강의 내용을 완성하여 고객사 앞에서 시험 강의를 한 다음 수정을 거쳤고, 3월에 ‘밀레니얼 세대의 이해와 조직몰입’이란 타이틀로 강의를 진행했다. 네 시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로 나 또한 그 강의에 몰입했고, 강의를 끝내고 나오면서 느꼈던 해방감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컸다. 강의 평가가 어떻게 나오든 일단 끝냈다는 것에 만족했다. 하지만 한편으로 이런 주제로 어떤 기업이 또 강의를 의뢰하겠나 싶은 생각도 들어서 그동안의 시간 투자가 과연 의미가 있을까란 의심이 마음 한켠에 남아서 허탈함 또한 컸던 것으로 기억된다.


헌데 어떻게 알아냈는지 모르지만 몇몇 기업에서 내가 밀레니얼 세대의 이해를 강의했다는 소식을 듣고 연락을 해왔다. 조찬 강의를 해달라는 곳도 있었고 그때의 평이 좋아서 리더들의 집합교육 때 심화 교육을 진행해 달라는 곳도 있었다. 내가 운영하는 ‘중요한학교’에서 공개강의를 열기도 했다. 몇 번 강의를 수행하니 밀레니얼 세대에 대한 전문가로 나를 칭하는 분들도 있는데, 서두에 언급했듯이 이 쪽의 전문가라고 호칭되기에는 너무나 부끄럽다. 그저 난 여러 연구자들의 연구 결과를 정리하여 전달한 사람에 지나지 않으니 말이다. 전문가라는 호칭은 붙이지 말아 주시길 부탁 드린다. 


어쨌든, 강의를 의뢰할 기업들이 많지 않을 거란 예상이 틀렸다고 생각 들 정도로 제법 의뢰가 들어오는 걸 보고 많은 조직들이, 흔히 말하길, ‘요즘 젊은 직원들’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고민이 크다는 점을 느낄 수 있다. 1980년부터 2000년 사이에 태어난(현재 17~37세) 밀레니얼 세대가 예의가 없고, 힘든 일을 싫어하고, 자기 주장이 강하고, 충성심이 낮고, 보상에 관심이 많고, 의존적이라는 생각이 수강생들에게서 공통적으로 드러난다. 특히 ‘힘든 일을 싫어한다’는 것에는 베이비 붐 세대와 X세대에 해당되는 수강생들이 거의 만장일치로 목소리를 높이는 모습이 흥미롭다. 자신들이 초년병일 때는 윗사람이 시키면 아무런 불평없이 수행했는데, 요즘 젊은 직원들은 ‘그걸 왜 해야 하는데요?’라며 반발을 한다는 것이 그들 주장의 맥락이다.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하는 것이 미덕이라고 배웠던 자신들에게는 이의를 제기하는 밀레니얼 세대가 속된 말로 ‘싸가지 없다’고 느껴지는 모양이다. 


하지만 솔직해지자. 예전에 상사의 지시에 무조건 순응했다는 건 진짜 사실일까? 본인만 그렇게 생각했을 뿐 하기 싫어서 이런저런 표정을 드러내거나 동료에게 상사 욕을 쏟아내진 않았을까? 어떤 세대이든 누구나 힘든 일은 싫어한다. 밀레니얼 세대라고 해서 힘든 일을 언제나 받아들이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들은 의미없는 일을 왜 해야 하는지 알고 싶을 뿐이다. 밀레니얼 세대 직원들에게 반복적으로 관행적인 일을 시키면서 그냥 예전부터 해왔으니까 ‘너도 해야 한다’는 식으로 소통하지 않았는지 반성할 일이다. 그들에겐 ‘의미’에 관한 설명이 필요하다. 학교 다닐 때부터 엄청난 경쟁을 몸으로 경험했고 어렵게 입사한 직원들이다. 경쟁을 해야 하는 이유가 다른 어떤 세대보다 뚜렷하게 각인되었기 때문에 자신이 떠안은 업무의 이유가 명확치 않으면 일할 동기를 만들어내지 못한다.


출처: https://2020workforce.com/tag/millennials/



물론 보상에 민감해서 더 많은 보상을 약속하는 조직으로 언제든 옮기고 싶어한다는, 밀레니얼 세대에 대한 평가는 틀리지 않다. 하지만 그게 밀레니얼 세대만 그런가? 누구나 그렇다. 더 나은 기회가 손짓을 하는데 그에 응하고 싶지 않을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그런데 왜 밀레니얼 세대만 억울하게 그런 평을 받는 걸까? 몰입에도 여러 대상이 있는데, 크게 ‘조직몰입’과 ‘경력몰입’으로 나뉜다. 기성세대들은 조직과 자신 사이에 일체감을 느끼는 ‘조직몰입’이 출세 혹은 성공 방정식의 중요 변수라고 느끼지만(물론 요즘은 많이 옅어졌지만), 밀레니얼 세대는 자신의 경력에 훨씬 무게중심을 둔다. 경력개발 관점에서 조직을 바라보지, 조직 관점으로 자신을 바라보지 않는다. 좋은 상사를 둔 직원이라 해도 한 조직에 ‘충성’하며 오래 다니겠다는 생각보다는 더 넓은 세상에서 더 고차원적인 일을 하고 싶다는 의지가 커진다. 그 좋은 상사가 그런 기회를 감지하도록 이끌어줬기 때문이다. 


조직몰입보다는 경력몰입을 우선하기에 밀레니얼 세대 직원들의 조직충성도가 낮다는 평을 받지만, 이제 조직충성도라는 말의 정의를 바꿀 필요가 있다. 상사와 경영자가 어떻게 행동하고 어떤 지시를 내리더라도 묵묵히 따르는 게 조직충성이라고 생각하는 건 시대에 뒤떨어진 군대식 사고방식이다. 밀레니얼 세대가 자신의 경력에 몰입하는 건 뒤바꿔 놓기 불가능한 거대한 방향이니, 그 경력몰입의 흐름을 조직에서 충분히 활용할 수 있는 쪽으로 유도하는 것이 보다 현명할 것이다. 경력몰입의 장을 조직이 열어주고 그 성과를 같이 공유함으로써 조직과 개인이 동반성장하는 방향으로 생각을 전환하는 것이다. 그들이 조직을 떠난다면 더 넓은 세상에서 능력을 발휘하도록 ‘우리가 키워냈다’는 자부심을 오히려 느끼는 ‘쿨함’이 필요하다.


강의를 진행하면 ‘밀레니얼 세대의 특징을 보니까 우리랑 별반 다를 게 없는 것 같은데요.’라는 말이 꼭 나오곤 한다. 맞다. 그들은 그리 다르지 않다. 같은 인간이니 욕망이 다르겠는가? 밀레니얼 세대는 자기주장이 강하고 IT에 친숙하다는, 그 몇 가지 다른 점 때문에 우리가 그들이 특성이 확연히 다르고 ‘다루기가 쉽지 않다’는 생각을 더욱 증폭시키는 건 아닐까? 이것이 내 강의의 가장 키포인트이다. 다른 측면을 바라보기 전에 동일하고 비슷한 모습을 발견하는 것이 직장 내 세대간 갈등의 해결 포인트일 것이다.


“내가 연변 아줌마 때문에 상처 받은 적이 있어요.”

H군은 모 기업에 밀레니얼 세대의 이해를 주제로 강의를 하러 가는 나에게 뜬금없이 이렇게 말했다. 

“어떤 일이 있었는데요?”

“아줌마가 힘들게 일하시길래 내가 이것 좀 드셔보세요, 라고 친절하게 말했는데 단칼에 ’일 없어요’라고 하더군요.”

“그 말은 ‘괜찮아요’란 뜻 아닌가요?”

“그렇지만 처음에 그 말을 들을 때 내 배려가 무시 당하는 것 같아서 진짜 상처 받았거든요.”


밀레니얼 세대들도 이와 같다. 그들의 어법와 사고 스타일, 취향이 조금 다른 것을 보고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고 여기고 어쩔 때는 '상처까지 받는 것'은 아닐까? 그들의 입장에서 그들을 이해하는, 아주 간단하지만 동시에 아주 어려운 ‘입장 바꿔 생각하기’가 해법이다.

“어, 이 사례를 강의 때 인용하려고 하죠?” 

H군이 사무실을 떠나는 나에게 묻는다.

나는 단박에 대답했다.

“일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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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나리오 플래닝 실무자 과정 3기를 모집합니다   

2017. 9. 20. 0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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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과정은 외부환경의 불확실성에 따른 리스크를 최소화하기 위한 방법론인 ‘시나리오 플래닝’을 속성으로 습득하는 시간입니다. 시나리오 플래닝 방법론의 핵심을 소개하고 실습을 통해 바로 조직과 개인의 의사결정에 적용할 수 있도록 과정이 진행됩니다. 미래는 불확실성으로 가득하기에 예측은 언제나 틀립니다. 예측 대신 시나리오를 통해 여러분이 수립하는 전략의 환경 대응력을 키우고, 의사결정의 실패를 최소화하기 바랍니다.




[강의 효과]

- 기업: 딜레마적인 상황에서 최적의 의사결정안을 탐색할 수 있습니다.

- 개인: 개인의 의사결정뿐만 아니라 타인 상담에도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습니다.


[강의 목차]

- 불확실성의 올바른 의미와 시나리오 플래닝의 필요성

- 시나리오 플래닝의 5단계 절차

- 시나리오 플래닝 사례 소개와 연습

- (조별 실습) 현재의 고민을 시나리오 플래닝에 적용하고 발표


[교육 안내]

- 일시 : 2017년 9월 29일(금) 13:30 ~ 18:30 (5시간)

- 장소 : 인퓨처컨설팅 중요한학교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188-71, 301호) 주차 지원 불가

- 모집정원: 15명

- 수강료 : 25만원 (부가세 별도)

- 입금처 : 국민은행 394401-04-027132 (예금주: 유정식(인퓨처컨설팅))

- 입금자명에 강의날짜를 붙여서 기입해 주세요.(예: 홍길동0217)


- 세금계산서를 원하시는 분은 부가세를 포함한 275,000원을 입금하신 후 사업자등록증 사본을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 theimportantschool@gmail.com )

- 9월 26일(화)까지 취소 요청시 환불 가능. 그 후나 no show의 경우 환불이 불가합니다.

- 문의처 : 중요한학교  02-733-1568


[오시는 길]

지하철 2호선 신촌역 4번 출구ㅡ>마을버스 4번 탑승ㅡ>사러가 쇼핑센터 정류장에서 하차ㅡ>사러가 쇼핑센터 옆 베스킨 라빈스를 등지고 건너편 2시 방향에 있는 ‘현대 부동산’과 ‘띵동 부동산’ 사이 골목으로 들어오세요. 

‘연희살롱’ 간판이 보이는 건물의 3층에 인퓨처컨설팅<중요한 학교>가 있습니다. 주차는 지원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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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에게 좋은 차가 누구에겐 안 좋은 차가 된다   

2017. 9. 4. 0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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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9월 4일(월) 유정식의 경영일기


최근에 나는 차를 바꿨다. 장기렌트 방식으로 자동차를 빌려 타고 있었는데, 연희동으로 이사를 오고 나니 그 차가 골목이 많은 동네 특성상 부담스럽게 느껴졌다. 비록 크기는 준중형 자동차(아반테 정도) 정도였지만, 코너를 돌거나 요철 많은 골목길을 갈 때 적잖이 조심스러웠다. 다음에 차를 바꾸게 되면 필히 작은 차로 하겠다는 마음이 절실할 정도였으니까. 다행히 장기렌트카 반납 시점이 도래했고 때마침 모 자동차 동호회에서 괜찮아 보이는 중고차 매물이 나왔기에 곧바로 거래를 했다. 돌이켜보니 대학교 다닐 때 ‘프라이드’를 첫차로 구매한 이래로 첫 번째 중고차다.


나온 지 7년된 중고차(수입차이지만 연식이 오래돼 국산 소형차 가격보다 싸다)이고 크기도 내가 딱 원하던, 전장 4미터 미만의 작은 차다. 골목 모퉁이에서 속도를 많이 줄이지 않아도 스티어링 휠을 돌리기만 하면 쏙쏙 빠져나가고, 양쪽에 불법주차를 해 놓아서 좁아진 길도 여유있게 지나갈 만큼 작은 차다. 일렬주차를 해도 앞뒤가 넉넉하게 남아 그다지 애쓰지 않고 바로 주차를 할 수 있다. 그 동안 주차해 놓으면 전봇대 위에 앉은 새들의 ‘똥 세례’를 많이 받아서 새똥 닦아내느라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는데, 이 차는 앞뒤가 짧은 덕에 새똥을 받아내는(?) 면적이 작아서 그런지 새똥이 피해가는 느낌이다(물론 몇번 맞기는 했다). 그러니 이 차야말로 연희동 환경에 딱 맞는 ‘좋은 차’가 아닌가? 




하지만 이 차는 누군가에겐 ‘안 좋은 차’이기도 하다. 동호회를 통해 차를 구매하기 전에 매물을 알아보러 중고차 전문 매장을 둘러보기도 했는데, 이 차와 같은 차종을 발견하고 딜러에게 이런저런 질문을 하던 중이었다. 나이가 50대 후반으로 보이는 부부가 곁으로 오더니 자기들끼리 그 차에 대해 평을 주고 받기 시작했다. 부인이 그 차의 깜찍하고 귀여운 모습을 마음에 들어하자 남편이 가볍게 핀잔을 주었다. “당신이 차를 몰라서 그래. 승차감이 정말 나쁜 차야. 예쁜 것만 보고 샀다가 실망하지. ‘객관적’으로 정말 꽝이야.” 그는 차를 향해 손가락으로 X자를 그려가며 싫은 표정을 지엇다. 부인에 비해 차를 잘 안다는, 약간의 거만함이 섞인 얼굴이었다. 이 차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바로 나)이 옆에서 딜러와 이야기를 하고 있든 말든 상관없는 건가? 나 들으라고 하는 소리 같았다. ‘이보게, 친구. 자네가 차를 몰라서 그런 모양인데, 이 차 샀다가 후회할 거야.’라고 말이다. 나는 머쓱해지려다가 살짝 기분이 상했다.


궁동산에서 내려다 본 연희동



그 아저씨가 왜 그런 말을 하는지 모르는 바는 아니다. 예전부터 그 차의 ‘악명 높은’ 승차감은 실제의 오너들로부터 들어왔기 때문이다. 서스펜션이 아주 ‘딱딱해서’ 길바닥의 크고 작은 요철에도 통통 튀고 휠베이스(축거, 앞뒤 바퀴 사이의 거리)와 윤거(좌우 바퀴 사이의 거리)가 짧은 탓에 바닥에서 오는 충격이 더 크게 느껴지는 게 사실이다. 차를 인수하고 며칠 타고 다녀보니 ‘엉덩이로 길바닥을 스캔한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대번에 알게 됐다. 게다가 서스펜션이 딱딱해서 타이어가 노면을 ‘타는’ 경우도 많다. 약간 굴곡이 있는 도로면을 지날 때 약간씩 차가 휘청거리는 느낌이 있고 어떨 때는 ‘토크 스티어(핸들이 약간 돌아가는 현상)’도 발생하기도 한다. 이 차의 동호회 회원들은 뭐라 말할지 모르지만(그것마저 이 차의 매력이라고 할 것 같다) 아저씨의 말처럼 승차감이 꽝인 차임은 분명하다. 


하지만 아저씨의 악평에 할말이 없는 것은 아니다. 승차감 저하는 차 자체의 특성도 한몫 하지만 우리나라 도로가 정말로 형편없다는 게 더 큰 이유이니까 말이다. 운전을 하는 사람이라면 모두 알듯이 깨끗한 노면을 만나기가 드물다. 보수한 흔적(소위 ‘땜빵’)이 없는 구간이 없을 정도다. 특히 비가 많이 오고 나면 아스팔트가 떨어져 나가 길이 패이기도 해서 여간 조심스러운 게 아니다. 골목길은 상황이 더 심각하다. 평탄 작업을 제대로 하지 않았는지 육안으로 봐도 ‘주름진’ 길도 있고, 조각보처럼 ‘땜빵’이 더 많은 곳도 있다. 이런 길을 가야 하니 승차감이 좋을 리가 있나? 


외국 이야기를 해서 좀 미안하지만, 매끈하게 깔린 독일과 일본의 도로와 비교하지 않을 수 없다. 간선도로뿐만 아니라 이면도로, 골목길도 철저하다 싶을 정도로 ‘땜빵’ 하나 없이 깔려 있는 도로는 엉덩이에 별로 스트레스를 주지 않는다. 아우토반에서 속도 무제한으로 달릴 수 있는 이유는 노면이 그만큼 매끄럽기 때문이다. 짐작컨대 도로 포장이 우수한 독일과 일본에서는 이 차(내가 소유한 차)가 승차감이 나쁜 차로 그렇게 지탄을 받을 만하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나라 토목기술이 세계적이라고 자화자찬하던데, 길 하나 매끈하게 깔지 못하는 ‘기본기 부족’에도 왜 그런 소리가 나오는지 모르겠다. 이런 도로 환경 때문에 국산차의 서스펜션은 상대적으로 물렁물렁할 수밖에 없고 그런 쿠션감을 ‘승차감 좋다’라고 느끼는 소비자들이 많다. 번외로 말하는 건데, 승차감은 상당히 광범위한 뜻을 담고 있는 말이라서 차가 푹신푹신하다, 서스펜션이 부드럽다 등으로만 정의 내릴 수 없다.


아우토반.



서론이 좀 길었는데 내가 하려는 말은 이렇다. 우리는 무언가를 평가할 때 그것을 둘러싼 환경에 따라 평가가 크게 달라지는 오류에 빠진다. 그것 자체를 객관적으로 평가해야 한다고 말은 하지만, 환경이 그것에 미치는 영향을 간과한다. 똑같은 차가 어느 환경에 있는가에 따라 ‘좋은 차’가 되고 ‘안 좋은 차’가 되듯이 말이다. 차 자체의 특성은 변함이 없지만 우리나라 여느 도로처럼 울퉁불퉁한 도로를 달리면 ‘안 좋은 차’로, 쭉쭉 뻗은 아우토반을 달릴 수 있는 이와 골목길 운전과 주차 편의성을 우선으로 여기는 이에게는 ‘좋은 차’로 뇌리에 박히는 것이다. 각자가 어느 환경과 어느 조건 하에 있는가에 따라 평가는 이처럼 극과 극으로 갈리기 때문에 ‘내 평가는 객관적이야’라고 장담하는 태도는 때로는 위험한 판단으로 이어질 수 있다.


사람을 평가할 때도 마찬가지다. 그가 어떤 일을 맡고 있는지, 그를 둘러싼 상사와 동료들은 어떤 능력을 지녔는지, 예산은 얼마나 주어지는지, 제품이나 서비스의 품질은 어떤지 등 수많은 환경 요소가 한 사람에 대한 평가에 영향을 미친다. 그를 다른 곳에 데려다 놓으면 ‘일 잘하는 직원’이 될 수도 있지만 ‘일 못하는 직원’으로 낙인을 찍을 수 있다. 바로 그런 평가를 내리는 상사와 동료들 자체가 그 직원을 둘러싼 ‘환경’의 일부라는 걸, 자신들이 그 직원의 ‘일 못함’에 크고 작은 영향을 끼치는 요인일지도 모른다는 걸 인식하지 못한 채 말이다. 


무언가에 대한 평가는 반드시 그것을 둘러싼 환경 조건에 영향을 받는다. 어찌보면 당연한 말이다. 추운 날씨에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시는 것과 뜨거운 여름 한 낮에 같은 음료를 마시는 것을 생각해 보면 단박에 알 수 있지 않는가? 이 말을 평가의 객관성을 높이라는 뜻으로 해석하지 않기를 바란다. 물론 환경요소를 최대한 배제하고 그것 자체의 특성과 장단을 평가하려는 마인드를 가져야 하지만, 그럼에도 환경요소의 영향을 100% 없앨 수는 없다. 그렇기 때문에 누군가가 ‘나는 이렇게 평가해’라고 말할 때 그가 어떤 환경요소의 영향을 받았는지를 이해하고 그의 평가를 존중하는 태도가 더 중요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또한 ‘나는 객관적으로 평가해’라고 자신만만해하기보다 본인 주위의 환경이 평가에 많은 영향을 끼치고 있음을 인정하고 겸손한 마음을 가지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까?


각자의 ‘입장(立場)’은 각자가 처한 환경에 따른 평가이다. 상대방의 입장을 이해한다는 것은 상대방의 환경을 이해하고 수용한다는 뜻이다. “이 차는 객관적으로 꽝이야”라고 대번에 평가 내리기 전에 말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을 읽고 내가 소유한 차를 ‘옹호’한다고 느낄지도 모르겠다. 물론이다. 나는 ‘이 차를 소유한’ 환경 조건 하에 있으니까 팔이 안으로 굽을 수 밖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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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라진 초원사진관을 보고 왜 분노하지 않는가?   

2017. 8. 28. 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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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8월 28일(월) 유정식의 경영일기


<8월의 크리스마스>는 잊을 만 하면 한번씩 보곤 하는 영화다. 딱히 세보지 않았지만 지금까지 열 번 이상은 본 듯 하다. 잔잔한 스토리와 절제된 대사, 그리고 영화 전반에 흐르는 음악이 몇 번을 봐도 질리지 않는다. 매번 주인공 ‘정원(한석규 분)’의 심정에 빙의가 되어 나라면 그렇게 죽어가는 상황에서 ‘다림’을 어떻게 바라볼까 상상해 보며 엔딩 타이틀이 올라갈 때까지 가슴 먹먹함을 ‘즐기곤’ 한다.


이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배경이 된 ‘초원사진관’의 모습을 또렷이 기억할 것이다. 정원이 더운 여름날에 창문을 닦던, 다림이 유리창 너머로 ‘나, 들어가도 돼요?’라고 입모양으로 정원에게 묻던, 갑자기 연락이 끊긴 정원에게 화가 나 돌로 유리창을 깨뜨렸던 바로 그 초원 사진관은 그 모습이 정겹거니와 자칫 지루할 법한 스토리를 팽팽하게 유지시키는 영화적 장치이기도 하다. 


어제 우연히 어떤 예능 프로그램에서 군산을 소개하는 내용이 방영되었다. 군산의 명소 중 하나인 초원사진관을 방문한 출연자들은 감탄해 하고 영화 속 정원과 다림의 이루어지지 못한 사랑 이야기를 추억하며 사진관을 둘러 보았다. 한번 가봐야지 하다가 여태 가보지 못한 나는 반가운 마음에 화면을 주시했다가 이내 고개를 갸우뚱할 수밖에 없었다. ‘음, 뭔가 다른데…’ 영화 촬영 후에 철거된 초원 사진관을 군산시가 복원해서 무료로 개방하고 있다는데, 영화 속 사진관과 비슷하긴 하지만 내 눈에는 크게 달라 보였다.


현재 재현된 초원사진관



영화 속의 초원사진관

영화 속 초원사진관



어떤가? 비슷해 보이는가? 아니면 아주 다른가? 일단 ‘초원사진관’이라는 간판부터 영화 속 간판과 폰트가 다르고 모양도 달랐다. 난 여기에서 바로 ‘빈정’이 상했다. ‘복원을 했다더니 이런 수준이구나.’ 영화 촬영지를 시에서 매입하여 복원한 것 자체는 영화 팬들에게 추억을 선사하는 일이라 매우 칭찬 받아 마땅하나, 그 ‘부족한 디테일’은 이번에도 여지 없었다. 간판은 사진관의 이미지를 가장 크게 좌우하는 오브제인데, 그것부터 실제를 충실히 복원하지 않았으니 나머지는 볼것도 없었다. 


게다가 창문에 떡하니 ‘8월의 크리스마스’라는 커다란 글씨는 왜 붙어 있는 걸까? 산수가 좋은 계곡 바위에 마음대로 새겨 넣은 낙서 같아 보였다. 초원사진관이라는 간판 글씨 자체가 바로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를 상징하건만 그렇게 써 넣어야만 할까? 그것으로 부족했는데 간판 옆에도 작게 ‘8월의 크리스마스 촬영지’라고 써 놓았다. 더욱이 왜 그렇게 많이 세워 놓았는지, 사진관 양 옆을 어지럽게 하는 홍보물도 볼썽사나웠다. 그런 홍보물이 영화 속 장면을 떠올리는 데 커다란 방해물이란 생각은 하지 못하는 모양이다.


이러한 디테일의 부족, 아니 디테일에 대한 무신경함은 우리나라 여러 관광 명소에서 ‘항상’ 발견된다. 안동의 하회마을도 마찬가지다. 셔틀버스를 타고 마을 초입에 들어가면 음식점들과 기념품 상점들, 박물관이 사람들은 먼저 맞이한다. 여기저기 메뉴를 써넣은 입간판들이 어지럽게 펼쳐져 있는 광경은 이내 눈살을 찌뿌리게 만든다. 명색이 우리나라 최고의 명소 아닌가? 폰트의 일치는 기대하지도 않지만, 저마다 바탕색도 다르고 크기도 제멋대로라서 한옥마을에 들어왔다는 생각보다는 어디에나 있는 음식점 거리를 걷는 기분이어서 머물고 싶은 마음이 처음부터 싹 사라져 버렸다. 전라도 낙원읍성에서도 이벤트에 사용됐다가 쓸모없어진 물건들을 한옥 뒷편 마당에 쌓아 놓아두는 ‘간편한’ 해결책에 잠시 어이가 없었다. 물레방아도 철근이 그대로 노출되어 조악하기 그지없었다(조선시대 때 그런 철근이 존재했었나?).




스위스 레만 호수가에 있는 작은 도시 몽트뢰는 전 세계에서 관광객들이 찾는 명소다. 바로 그룹 <퀸Queen>의 리더였던 프레디 머큐리의 동상이 그곳에 있기 때문이다. 레만 호수를 향해 다리를 벌린 채 팔을 쭉 뻗고 있는, 그가 공연에서 자주 연출하던 포즈를 실제 크기로 만들어 놓은 동상에서 관광객들은 기쁜 표정으로 기념촬영을 한다. 동상에 대한 설명은 돌 위 동판 위의 글씨가 전부다. 달랑 동상만 서 있음에도 매년 동상을 보러 이곳을 찾는 사람들이 상당하다. 이 동상이 우리나라에 있다면 어땠을까 상상해 본다. 동상 주위에 프레디 머큐리의 동상임을 플랭카드로 써놓고, 동상 좌우로 홍보 입간판들이 도열을 했을 게 뻔하지 않을까? 


김연아 동상 (출처: 한국일보 http://www.hankookilbo.com/v/123c0b8a494a42409e8bb440301da404)



얼마 전 피겨선수 김연아의 동상이 인천공항 입국장에 세워져 있다는 글을 본 적이 있다. 사진을 보니 평창 올림픽 홍보 차원에서 급조하여 만든 티가 역력했다. ‘너무 못생겼기’ 때문이다. 얼굴도 그렇고 포즈도 그렇고 김연아랑 비슷한 구석이 하나도 없었다. 깨진 얼음 모양 위에 세워진 모습도 실소를 유발했다. 누가 기획했는지 안다면 혼을 내고 싶을 정도였다. 헛돈도 이런 헛돈이 없다. 돈을 적게 들여 빨리 만들어 내는 것만 중요했던 모양이다. 몇 년 전에 군포시가 5억원 넘게 들여 김연아 동상을 엉망으로 만들어 놓아 엄청난 빈축을 산 적이 있는데 어김없이 또 이런 것이다. 이렇듯 사람들의 눈을 어지럽히고 미적 감각까지 무감각하게 만들어 버리는 홍보물이나 조형물들이 우리 주위엔 너무나 많다. 거의 공해 수준이다.


‘빨리빨리’ 문화에 ‘보여주기식’ 지자체 홍보 마인드가 결합되어 오늘도 이곳저곳에서 GMO 작물처럼 번져간다. 뭐 하나라도 제대로 만들 생각보다는 빨리 만들어서 빨리 보여주고 빨리 성과를 내야 한다는 GMO적 발상이 지긋지긋하다. GMO로 인해 예술이 죽어간다. 그리고 하나 더! 우리는 왜 그런 못생긴 조형물과 홍보물과 소위 ‘관광 단지’를 참고 견디는가? 인문학적 소양이 중요하다면서 왜 실생활에서 스토리를 보존하고 디테일에 충실하려는 인문학적이고 예술적인 행동은 왜 발현하려 하지 않는가? 그냥 이 정도면 됐지, 뭐. 이 정도면 감지덕지지'란 생각이 졸속 행정과 단기적 시각의 경영을 방임한다. 더군다나 우리의 심미안과 예술적 소양을 해친다. 방임하고 한술 더떠 '감동하는' 순간 우리는 그런 '무 디테일'의 GMO 조형물의 공범이 된다. 그러니 우리는 달라진 초원사진관을 보고, 엉성한 안동 하회마을의 기념품 가게를 보고, 김연아를 사칭하는 동상을 보고 분연히 분노해야 한다.


"음, 경영의 시각으로 뭔가 더 코멘트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이 글을 읽고 나서 H군이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공무원들이 경영 마인드가 없다라든지, 뭔가 문제의 원인을 진단하고 해결책을 제시해야 하지 않을까요? 경영일기라면서요."

나는 살짝 화가 났다.

"왜 내가 항상 그렇게 진단해주고 해결책을 제시해야 하죠? 이 글의 핵심 메시지는 우리가 그런 조악한 조형물과 홍보물의 고객으로서 당연히 분노할 줄 알아야 한다는 거에요. 고객이 왜 문제의 원인과 해결책까지 알려줘야 하죠? 제대로 분노할 줄 알아야 그들이 앞으로 그런 조악한 행위는 하지 않을 거란 말입니다. 그 당연한 권리를 행사하자는 거죠. 그게 핵심입니다."

H군은 "알겠어요."라며 쿨하게 대답했다. 쿨한 게 매력이다. 엄지 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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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원에게 잘해주는 것은 잘해주는 것으로 끝내라   

2017. 8. 23. 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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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8월 23일(수) 유정식의 경영일기 


장면 1.

“내가 네 월급을 어떻게 주는지 알어? 내가 은행 대출 받아서 너한테 월급을 주는 거야. 그런데 네가 나에게 이럴 수가 있어?”


어떤 업체에서 사장과 직원 사이에 회사의 사업과 관련하여 다툼이 있었나보다. 토론이 격해지다 못해 감정 싸움으로 번지자 사장은 직원에게 이런 말을 쏟아냈다. 사업 방향에 대해서 이견이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어쩌다 이야기가 서로를 비난하고 잘못을 추궁하는 쪽으로 빠지다 보니 사장은 울컥하는 심정으로 직원에게 하지 말아야 할 말까지 꺼낸 모양이다. 그 직원은 며칠 후에 퇴사했다.



장면 2.

“그런 거 사줄 바에야 차라리 돈으로 주지. 사장님은 돈이 남아도나 봐.”


작은 개인회사의 대표는 몇 안 되는 직원을 근사하고 맛있는 레스토랑에 데리고 가서 직원들이 맛본 적이 없을 듯한 음식을 함께 먹는 것을 즐겼다. 직원들은 신기해 하면서 그런 이벤트를 즐기는 듯 했지만, 식사가 끝나고 나면 대표를 집으로 보내고 자기네끼리 모여서 삼겹살집으로 향했다. 좋은 레스토랑에서 좋은 음식을 먹었지만 자기네들 입맛에는 삼겹살이 최고라고 말하며, 고급 음식을 사 준 대표를 고마워 하기보다 자기네들 취향을 모르고 헛돈 쓰는 사람으로 평했다. 그런 돈 쓸 바에 삼겹살 사먹으라고 돈으로 주지 그게 뭐냐며 자기네끼리 대표를 비난하는 뒷담화는 밤늦도록 계속됐다.




장면 3.

“지금 거신 번호는 없는 번호입니다. 다시 확인하고 걸어 주십시오.”


역시나 작은 회사의 이야기이다. 업무에 열의를 보이는 ‘똘똘한’ 직원이 있었다. 사장은 그 직원을 마음에 들어했고, 그 직원을 잘 교육시키면 훌륭한 인재로 조직에서 활용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작은 회사나 여유자금이 충분하지 않았지만 사장은 직원에게 돈이 꽤 드는 외부교육을 수강할 수 있도록 지원했다. 교육이 끝나고 그 다음 날, 그 직원은 출근하지 않았다. 아무 연락도 없이 사라졌다. 전화를 걸어도 ‘없는 번호’라는 안내멘트만 나왔다.



장면 4.

“그렇게 잘하시면 사장님이 직접 하시지 그래요?”


어떤 직원이 작업을 느리게 하고 늦게 가져온 결과물도 오류 투성이였다. 사장은 속으로 화가 났다. 아주 기초적인 사칙연산조차 틀린 채로 가져왔고 회사에서 기본적으로 통용되는 포맷에도 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처음에 사장은 포맷을 일러주고 ‘이렇게 저렇게 하면 오류를 범하지 않고 작성할 수 있다’를 직원에게 자세히 설명했다. 직원도 알아듣는 듯 했다. 하지만 그 후에 가져온 직원의 결과물은 별로 나아진 게 없었다. 몇 차례 이렇게 ‘다시 해 와’란 공방이 오고가다보니 양측 모두 신경이 곤두설 대로 곤두선 모양이다. 사장이 “왜 그렇게 내 말을 못 알아 들어?”라고 쏘아붙이자 직원도 물러서지 않고 이렇게 맞섰다고 한다. “그렇게 잘하시면 사장님이 직접 하시지 그래요?” 사장은 후에 나를 만나 하소연했다. “내가 직접 만들 거면 왜 걔를 직원으로 고용해야 하죠?”라고.



장면 5.

“이 회사는 시스템이 없어요. 주먹구구식으로 운영되는 거 같아요.”


오랫동안 같이 일한 직원이 퇴사를 하겠다면서 퇴사 사유를 사장에게 이렇게 말했다. 직원들의 행동을 통제하는 규칙을 만들지 않고 자유롭게 일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게 사장의 경영방침이었는데, 이렇게 시스템이 없다, 주먹구구식이라는 말을 들으니 사장은 좀 어이가 없었다. 목표 설정도 없고 매출이 떨어져도 별로 채근하지 않았다. 자유롭게 자신이 하고 싶은 쪽으로 일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 이런 걸 보고 주먹구구라고 하다니... ‘작은 회사의 강점은 체계적인 규칙 없이도 그때그때 잘 대응하는 능력 아닌가? 시스템이란 게 과연 뭐지?’ 사장은 혼란스러움과 섭섭함으로 한동안 마음이 상했다.




내가 컨설팅을 하면서 그간 보고 들은 바에 따르면 이 다섯 가지 장면은 여느 회사의 여느 사장의 입장에서 벌어질 법한 전형적인 상황이다. 소위 ‘사장은 잘해줬는데 직원은 딴 생각을 하는’ 상황. 직원들의 입장에서는 똑같은 장면이 다르게 해석될 수도 있겠지만, 사장의 입장을 보고 듣노라면 ‘사장 노릇’이 어쩌면 직원들보다 더 힘들어 보이는 게 사실이다. 특히 사장과 직원들이 항상 얼굴을 맞대고 일하는 소기업의 경우가 더 그렇다. 소기업 사장은 경영의 압박과 함께 직원들의 이런 행태도 견뎌내야 하는 자리이다. 


사장이 직원에게 갖는 ‘인간적인 섭섭함’의 근원은 ‘기대감’과 ‘계정의 불일치’ 때문이다. ‘내가 이렇게 해줬는데 네가 그럴 수 있니?’ 내가 이만큼 줬으니 너도 이렇게 해주길 바란다, 라는 건 인지상정이지만, 서로의 마음 속에 기록하는 ‘주고 받은 양과 질’의 계정이 일치하지 않는 경우가 다반사다. 직원 입장에서는 사장이 잘해주는 것이 ‘당연’하기에 그 계정에 (+)로 잡히지 않는다. 복지가 엄청나게 좋다는 여러 기업들의 사례를 보면 좋은 레스토랑에서 좋은 음식을 먹이는 게 하찮은 걸로 여겨진다. 사장의 입장에서는 자신이 잘해준 항목을 (-)로 기록하고 언젠가 직원이 그 (-)를 채울 만한 기여를 해주길 기대한다. 은행 대출로 직원 월급을 지급했으니 자신의 말을 잘 따라주고 열심히 일해주길 바라는 것이다.




사장의 마음 속엔 이런 식의 대차대조표가 있다. 대차대조표의 차변과 대변을 맞추려는 감정의 싸움에서 벗어나는 길은 처음부터 대차대조표를 만들지 않는 것이다. ‘기대를 말라’는 것이다. 사장은 자신이 법정 요건과 사규를 넘어서서 직원에게 추가적으로 지출을 하거나 배려하는 행동을 할 경우에 자신의 마음 속에 저절로 만들어지는 대차대조표를 경계해야 한다. 그냥 해주고 그걸로 무엇을 얻겠다는 기대를 버려라. 좋은 음식을 직원들과 함께 먹으러 갈 경우에는 그런 배려로 무언가를 얻겠다고 여기지 말고 ‘내가 그걸 먹고 싶어서. 하지만 혼자 먹으면 재미없으니까’라고 생각하는 게 서로 속 편하다. 은행 대출을 받아서 월급을 주는 건 특별한 배려는 아니다. 사장의 할일이고 의무라서 아예 대차대조표를 만들어서는 안 될이건만 그걸로 직원 잘못을 공격하는 건 신사적인 행동이 아니다. 


매몰비용이란 회수할 수 없는 비용을 일컫는 말이다. 오해할까 분명히 말하는데, ‘법정요건과 사규를 넘어서서’ 복지 프로그램을 통해서나 사장이 개인적으로 직원들에게 지출하는 물적, 심적 비용은 회수할 수 없는 매몰비용으로 인식하는 게 좋다. 그 비용으로 ‘편익’을 얻을 생각을 하지 말하는 뜻이다. 쉽게 말해, 직원들에게 잘해주는 것은 잘해주는 것으로 끝내라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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