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에 걱정을 많이 하거나 불안과 초조함에 자주 휩싸이는 사람일수록 똑똑한 사람일까요, 그렇지 않을까요? 제가 RSS 리더로 글을 읽다가 2016년 9월 29일자 비즈니스 인사이더 지에 데이비드 윌슨이 기고한, 이런 제목의 글을 접했습니다. 왜 이런 이야기가 나올 수 있었을까요? 예전에 ‘욕을 많이 하는 사람이 똑똑한 사람이다’라는 허무맹랑한 기사와 별반 다를 것 없는 낭설일지 몰라서 글을 내용을 꼼꼼히 읽어내려 갔습니다. 여기에 글을 요약하니, 여러분도 어떤 말이 맞는지 판단해 보기 바랍니다.
알렉산더 페니(Alexander Penney)란 사람의 연구에서 불안 및 초조함과 지능과의 관계가 드러났다고 합니다. 페니는 100명의 대학생들에게 평소 ‘걱정, 염려, 우려 등을 얼마나 많이 하는지’ 측정했는데(예컨대 “나는 항상 무언가를 걱정하고 있다” 등의 설문으로) 불안감이 높은 학생일수록 지능 테스트에서 높은 점수를 받는 경향을 발견했습니다.
2012년에 사치 아인-도르(Tsachi Ein-Dor)의 실험에서도 이러한 관계가 존재함을 뒷받침하고 있습니다. 아인-도르는 80명의 학생들을 따로따로 실험실에 불러서 컴퓨터 앞에 앉히고는 소프트웨어가 제시하는 예술품의 가치를 평가하라는 임무를 맡겼습니다. 하지만 이 과제는 속임수였죠. 예술품을 평가하려던 학생들은 화면에서 이상한 창들이 갑자기 팝업되고 컴퓨터 바이러스에 감염되는 상황에 처하고 말았습니다. 물론 이것은 아인-도르가 소프트웨어적으로 조작해 놓은 가짜 상황이었죠.
놀라는 학생 앞에 연기력이 뛰어난 여자(실험 진행자로 위장한 여배우)가 나타나서 ‘학장님의 비서에게 이 상황을 알려라’ 라고 학생에게 재촉을 했습니다. 빨리 컴퓨터 기술자를 불러와 문제를 해결해야지 학교 자산인 컴퓨터 안의 데이터를 보존할 수 있다고도 덧붙였습니다. 하지만 학생은 학장의 비서를 만나러 가는 길에 아인-도르가 만들어 놓은 4가지의 난처한 상황에 직면하고 맙니다.
누군가가 나타나서 갑자기 간단한 설문지에 응해 달라고 요청하는 상황, 비서에게 갔더니 중요서류를 복사해 줄 것을 부탁 받는 상황, 비서가 ‘내가 아니라 도서관 매니저를 만나라’라는 말을 듣고 도서관 매니저 방에 가니까 ‘부재중’이라는 표시가 붙어 있는 바람에 기다려야 할지 말아야 할지 결정해야 하는 상황, 드디어 컴퓨터 기술자를 만나러 가는 길에 누군가가 종이서류 뭉치를 갑자기 발 밑에 쏟아서 도와줘야 할지 말아야지 할지 난처해지는 상황을 만나도록 한 겁니다.
아인-도르는 학생들이 ‘컴퓨터를 빨리 복구한다’라는 원래의 목적에 얼마나 집중하는지를 알아보기 위해 각 상황에서 학생들이 ‘딜레이’하는 정도를 계량적으로 측정했습니다. 각 상황에서 딜레이를 한다는 것(설문에 응하거나, 복사를 도와주거나, 도서관 매니저를 문 앞에서 기다리거나, 종이서류를 줏어주거나)은 그만큼 문제해결에 집중하지 못한다는 의미로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결과를 분석하니, 걱정이나 불안감 수준이 높다고 측정된 학생일수록 컴퓨터 바이러스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원래의 목적에 더 잘 집중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보다 직접적인 연구가 또 있습니다. 제레미 코플란(Jeremy Coplan)은 불안장애를 겪는 42명의 환자들을 조사했는데, 증상이 심한 환자일수록 증상이 보통인 환자에 비해 대체적으로 IQ가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고 합니다.
그런데, 왜 걱정거리가 많고 불안감이 높은 사람이 상대적으로 똑똑한 것일까요? 그것은 상황을 여러 각도로 살피고 점검하는 ‘인지적 민첩성’이 높기 때문이라고 추측할 수 있습니다. 지적능력이 높은 사람일수록 과거와 미래의 여러 상황들을 좀더 구체적으로 고려하는데, 이런 점이 다른 사람들에게는 심사숙고하고 전전긍긍하는 모습으로 비쳐지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원시사회에서 높은 지능과 높은 불안감은 인간의 생존 확률을 높이는 주요요소였을 겁니다. 그래서 우리는 두 요소가 높았던 선조들의 후손이겠죠. 진화심리학적인 관점에서 본다면, 그렇기 때문에 지능과 불안감 사이에 상관관계가 있는 것이라고 볼 수 있죠.
하지만 반대되는 결과를 도출한 연구도 존재하기 때문에 걱정거리가 많을수록 똑똑하다고 단정지을 수 없습니다. 로버트 엡스타인(Robert Epstein)은 똑똑한 사람일수록 냉철한 사람이라는 결론을 내렸고 걱정거리가 많은 사람은 명철하게 생각하지 못한다고 말합니다. 무엇이 맞을까요? 비즈니스 인사이더의 글에서 데이비드 윌슨은 링컨의 예를 들면서 똑똑한 사람들이 성격적으로 불안감에 많이 시달린 경우가 많았다고 말합니다. 링컨은 얼굴만 봐도 냉철한 사람처럼 느껴지만 사실은 ‘나는 초조해 하고 불안해 하는 기질을 타고났다’라고 스스로 밝힐 정도로 늘 걱정거리가 많았던 사람이었죠. 초조해 하는 모습을 다른 사람들에게 드러내지 않았을 뿐입니다.
사람들은 보통 어려운 상황에 처하면 ‘별 거 아니야’, ‘잊어버리고 자신감을 가져’라고 조언하곤 합니다. 하지만 이런 조언이 과연 올바른 것인지 따져볼 필요가 있습니다. 너무나 불안해 하고 초조해 하면 곤란하겠지만, 어느 정도 걱정하고 근심하는 것이 과도한 자신감을 갖는 것보다 위험을 줄일 수 있진 않을까요? 머리 속에 여러 가지 가능한 시나리오들을 생각해 낼 줄 아는 사람은 상대적으로 똑똑한 사람입니다. 걱정거리가 많고 불안감이 높은 사람으로 다른 사람에게 비쳐지지만, 그렇게 불안감이 높은 사람들이야말로 안전사고를 미리 대비하고 재난 상황을 미리 예방할 수 있는 게 아닐까요?
걱정거리가 많은 사람일수록 똑똑한 사람일까요? 많은 연구들이 그런 상관관계를 밝히고 있지만, 어떤 연구들은 반대 주장을 하기 때문에 이 블로그에서 확실히 결론 내리기는 어렵습니다. 하지만 이것 하나만은 이야기할 수 있죠. 사람들은 보통 불안감과 초조함을 부정적인 감정이나 기질로 여기지만, 여러 시나리오에 대비하고자 하는 긍정적인 감정일지 모릅니다. 여러분의 걱정, 불안, 초조함의 수준은 어떻습니까?
(*이 글의 내용을 좀더 편안하게 들으시려면 팟캐스트 <우리도 한번 논문 읽어보세>의 관련 에피소드를 들어보세요. 아래 링크 클릭!)
http://www.podbbang.com/ch/11930?e=22107464
(*참고문헌)
http://www.businessinsider.com/why-many-psychologists-say-anxiety-is-sign-of-intelligence-2016-9
Penney, A. M., Miedema, V. C., & Mazmanian, D. (2015). Intelligence and emotional disorders: Is the worrying and ruminating mind a more intelligent mind?. Personality and Individual Differences, 74, 90-93.
Ein‐Dor, T., & Tal, O. (2012). Scared saviors: Evidence that people high in attachment anxiety are more effective in alerting others to threat. European Journal of Social Psychology, 42(6), 667-671.
Coplan, J. D., Hodulik, S., Mathew, S. J., Mao, X., Hof, P. R., Gorman, J. M., & Shungu, D. C. (2011). The relationship between intelligence and anxiety: an association with subcortical white matter metabolism. Frontiers in evolutionary neuroscience,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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