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분 토론을 해도 왜 해결되는 게 없을까?   

2018. 10. 29.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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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다시피 사람들은 자신의 의견을 방어하고 변호하며 타인에게 본인의 생각을 이해시키고자 하는 의지를 가지고 있습니다. 엄밀한 조건 하에 실시된 과학 연구처럼 반박하기 어려운 결과에도 자신의 기존 의견과 반하는 경우 '아, 내가 잘못 생각했구나'라고 의견을 수정하기보다는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라며 연구 결과를 무시하는 사람들이 꽤 많이 존재합니다. (이 글에서 곧 소개할 연구 결과에도 이렇게 반응할 사람들이 분명 있을 것 같군요.)


그렇다면 "이 삼단논법 전개가 논리적으로 옳은가 그른가?"와 같이 명백하게 참/거짓을 가리기가 쉬운 문제를 풀어야 할 경우, 만일 삼단논법의 전개 내용이 자신이 원래 가지고 있던 신념이나 의견과 다르다면, 정답을 맞힐 가능성은 얼마나 될까요? 본인의 의견이 무엇이든 상관없이 삼단논법의 전개가 유효한지를 잘 판단할 수 있을 것 같지만, 이상하게도, 정말로 '기이하게도' 그렇지 않습니다.




폴란드 슬로바크 과학 아카데미(Slovak Academy of Sciences)의 블라디미라 카포요바(Vladimíra Čavojová)와 동료 연구자들은 387명의 실험참가자들을을 모은 다음, '낙태'에 대한 각자의 의견을 물어 '낙태 찬성(Pro-choice)파'와 '낙태 반대(Pro-life)파'로 구분했습니다. 그리고 36개의 삼단논법 예시를 참가자들에게 제시하고서 삼단논법이 유효하게 전개됐는지를 물었죠. 아래는 그 중 두 개의 예시입니다


('낙태 반대'를 지지하는 '유효한' 삼단논법).

모든 태아는 보호받아야 한다.

몇몇 태아는 인간이다.

고로, 몇몇 인간은 보호받아야 한다.


('낙태 반대'를 지지하지만 '유효하지 않은' 삼단논법).

모든 태아는 인간이다.

몇몇 인간은 보호받아야 한다.

고로, 보호받아야 할 대상 중 몇몇은 태아이다.


알다시피 삼단논법은 대전제와 소전제를 통해 결론을 이끌어내는 것인데, 연구자들은 참가자들에게 대전제와 소전제가 '참'이라고 '무조건 가정'하고서 결론의 '참/거짓' 여부를 판단하도록 했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순수하게 논리적 추론을 테스트하는 것이니 자신의 의견과 상관없이 삼단논법의 유효함을 가려 달라"고 당부했죠. 이렇게까지 주의를 주었으니 참가자들 거의 대부분이 문제를 쉽게 풀 것 같았지만, 결과는 기대와 달랐습니다.


통계적으로 의미있는 수준으로, 자신의 신념과 반대되는 내용을 지닌 삼단논법의 유효성을 잘 맞히지 못하는 경향이 나타났습니다. 이런 경향은 '낙태 반대파'에서 좀더 크게 나타났지요. 이러한 경향을 '우리편 편향My-side bias'라고 부릅니다. 내가 어떤 의견을 가지고 있느냐, 내가 어느 쪽 편인가에 따라 판단하는 바람에 비합리적인 오류를 범하는 것이 바로 '우리편 편향'입니다.


그런데 더욱 흥미로운 사실은 과거에 논리학을 배웠거나 연습했던 참가자들에게서 이런 '우리편 편향'이 훨씬 뚜렷하게 나타났다는 것입니다. 이상한 일이죠. 논리를 배운 친구들이라면 자신의 신념과 상관없이 삼단논법의 유효성을 쉽게 맞힐 것 같은데, 오히려 다른 참가자들에 비해 더 틀렸으니까요. 왜 그럴까요? 아마도 본인이 논리학을 배웠고 남들보다 잘 안다는 점이 자신의 현재 의견을 지지하는 삼단논법을 더욱 자신있게 받아들이는 것 같다고 연구자들은 설명합니다.




이 연구를 통해 우리는 2가지 시사점을 얻을 수 있습니다. 첫째는 객관적 판단이라는 게 굉장히 어렵다는 것입니다. 논리 판단처럼 어찌 보면 기계적인 판단 문제조차 자신의 기존 신념에 의해 잘 맞히지 못하니까 말입니다. 둘째, '많이 알수록' 남들보다 객관적 판단을 잘 하는 게 아니라는 점입니다. 오히려 잘 알고 많이 안다는 것이 객관적 판단을 흐리게 만들 뿐만 아니라 자신의 신념을 지켜내려는 완고함을 더 강조하고 말죠.


연구자들이 지적했듯이, 이런 '우리편 편향'이 있기 때문에 사실 TV에서 첨예한 주제에 관해 찬성측과 반대측이 나와 벌이는 토론은 무익하고 소모적인 논쟁에 그치고 맙니다. 서로 의견 차이를 좁히고 새로운 해결책을 생각해보자는 취지는 온데간데 없고 각자의 원래 의견을 더욱 강화하면서(또한 더욱 적대적이 되어) 토론이 끝나 버리죠. 상대방 논리가 옳다면 인정할 줄 알아야 한다는 토론의 미덕은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우리편 편향'은 기업에서도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 논리적 맹점입니다. 상하간 부서간 의견 대립이 발생할 때 그 의견 차이를 좁히기는커녕 감정의 골이 더 커지는 이유 중 하나가 '우리편 편향'에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경험과 노하우가 많은(혹은 많다고 착각하는) 리더들의 신념이 강력할 때(자수성가한 리더들에게 자주 보이는 특성)는 직원들의 조언이 귀에 들어오지 않을 뿐만 아니라, 직원들을 '내 말을 안 듣는 적'으로까지 여길 수 있습니다. 내가 혹시 우리편 편향에 빠져 있지 않는지, 제3자의 입장에서 저쪽 편 논리 중에 옳은 것은 없는지를 끊임없이 묻고 성찰하는 것만이 '우리편 편향'을 줄이고 객관적 판단에 좀더 다가서는 유일한 길입니다.



*참고논문

Čavojová, V., Šrol, J., & Adamus, M. (2018). My point is valid, yours is not: myside bias in reasoning about abortion. Journal of Cognitive Psychology, 30(7), 656-6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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