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위가 높을수록 칭찬에 인색하다   

2024. 8. 23.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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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에 사용하면 좀 촌스런 표현이라고 느끼겠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유효하고 진리인 말이 있습니다. 바로 베스트셀러 제목이기도 한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란 말입니다. 칭찬이 리더에게 아주 필요한 스킬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하는 사람은 아마도 없을 텐데요, 직장인들을 대상으로 한 여러 연구에서도 칭찬의 중요성을 찾아 볼 수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직원들에게 동료의 칭찬할 거리를 생각하게 하면 나중에 동료의 아이디어를 보다 신중하게 고려함으로써 팀의 창의성을 향상시킨다는 연구가 있습니다. 또한, 어떤 직원이 칭찬 받는 것을 목격한 사람들은 그 직원을 좀더 친절하게 대하고 협조적인 태도를 갖게 된다는 연구도 있죠.

이처럼 칭찬의 긍정적 효과를 많은 이들이 상식적으로 알고 있는데요, 왜 여전히 많은 직원들이 칭찬을 ‘고파 하고’ 있을까요? 분명 칭찬 받아 마땅한 성과를 거뒀는데도 리더가 별 감흥을 보이지 않는다든가, 그냥 아무말도 하지 않으면 좋으련만 “월급 받으니까 그 정도는 해야 하는 거 아니야?”라며 성취감에 찬물을 확 끼얹는 리더들이 제법 많거든요. 어떤 리더는 칭찬을 하기는 하는데 영혼 없이 하는 바람에 오히려 직원의 마음을 상하게 만들기도 하죠.

그런데 한 가지 특이한 경향이 존재합니다. 높은 자리에 있을수록 칭찬하는 법이 별로 없다는 점입니다. 조직 내에서 권력의 핵심(이너서클)에 가까운 사람일수록 칭찬에 인색하다는 것인데요, 이는 연구로 증명된 경향입니다.

 



연구자는 학술 논문 말미에 통상적으로 담기는 ‘감사의 말(Acknowledgements)’이란 섹션을 분석했는데요, 지위가 높은 저자(즉 정교수)가 지위가 낮은 저자(조교수급)에 비해 감사 표현을 덜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12,681명의 위키피디아(Wikipedia) 에디터들이 교환한 136,215개의 코멘트를 분석해도 동일한 결과가 나왔습니다. 위키피디아 생태계 내에서 상대적으로 레벨이 높은 편집자들이 페이지 편집 권한이 적은 편집자들에 비해 감사 표현을 덜 했으니까요.

실제 실험에서는 어땠을까요? 실험 조작을 통해 자신을 권력이 센 상사라고 여기는 참가자들은 그렇지 못한 참가자들에 비해 감사의 말을 덜 했다고 해요(3.98회 대 7.55회). 게다가 '권력자'들은 감사하는 마음을 상대적으로 덜 가지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뭔가 남들보다 우월하다고 느끼는 사람일수록 감사 표현을 덜 하고 감사하는 마음도 덜 가지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나는 응당 그래도 되는 사람이야”라는 생각이 권력자들의 머리에 박혀 있기 때문입니다. 누군가가 도움을 주겠다 제안한다면 고맙기는 하지만 마음 한켠에는 “나는 도움 받거나 혜택을 받아도 되는 위치에 있어.”라는 ‘당연함’이 자리하고 있기에 남들이 열 번 할 칭찬을 대여섯 번 정도에서 그치는 것이죠. 

또한 권력자들은 이미 타인들과의 관계가 탄탄히 조성돼 있기에 관계 강화를 위해 추가적인 노력을 기울일 이유가 적습니다. 아쉬운 게 없다는 소리죠. 반면 권력이 적고 지위가 낮은 사람은 힘 있는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맺고자 하는 동기가 작용하기에 대여섯 번 칭찬해도 충분할 일에 열 번, 스무 번씩 머리를 조아리며 감사 인사를 하죠. 감사할 일이 아닌데도, 또 미안해 할 일이 아닌데도 그리 합니다.

칭찬 문화가 조직에 뿌리를 내리려면 고위 리더가 행동으로서 직접 본을 보여야 합니다. “나는 그래도 돼”라는 마음을 버리고 “저 직원의 입장이 된다면 나는 어떤 칭찬의 말을 듣고 싶을까?”라는 역지사지의 관점을 가지는 것이 큰 도움이 됩니다. 

세상에 ‘당연한 것’은 없습니다. 직원들이 노동력을 제공하고 그 대가로 연봉을 받아 간다고 해서 그들의 노고와 고투, 분전 끝에 이뤄낸 성과를 ‘직원으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이라고 퉁치지 않기를 바랍니다. 칭찬 잘하는 리더, 그로 인해 직원들의 성과를 높이고 싶은 리더라면, '난 그래도 돼'라는 계급장부터 떼기 바랍니다. 


*참고논문
Anicich, E. M., Lee, A. J., & Liu, S. (2021). Thanks, but No Thanks: Unpacking the Relationship Between Relative Power and Gratitude. 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 Bulletin, 01461672211025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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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이프가 사지 말래요'라는 핑계   

2024. 8. 22.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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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미로 워크맨 같은 작은 오디오 기기를 수리하면서 소위 '당근질'도 많이 하게 됐습니다. 당근마켓에 저렴하게 나온 '정크 워크맨'을 구입하거나, 수리를 마친 워크맨을 며칠 사용하다가 '충분히 가지고 놀았으니 이걸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팔자' 싶어서 매물로 내놓는 일이 많아졌죠. 하루에 열두 번은 당근마켓에 들어가는 것 같습니다.

이렇게 당근 매니아가 된 지 8개월 쯤 됐는데, 저에게 워크맨을 사고 싶다고 문의하는 사람들 중에 제가 보기에는 아주 특이한 유형이 있더군요. 바로 '와이프에게 물어보고 구입할게요' 혹은 '와이프가 사지 말래요' 유형입니다. 이들은 저에게 DM을 보내 이런 식으로 이야기합니다.

구매자: OOO가 판매됐나요?
나: (속으로 '판매 안 됐으니 계속 리스트에 있지!'라고 내뱉으며) 네, 아직 팔리지 않았습니다. 구매 가능합니다.
구매자: (한참 뜸을 들이다) OOOO원만 깎아 주시면 안 될까요?
나: (속으로 '이미 싸게 내놓은 건데 또 깎아 달라니!'라는 짜증이 나지만 짐짓 아닌 척 하며) 죄송하지만, 깎아 드릴 수 없습니다.
구매자: (한참 묵묵부답하다가) 알겠습니다. 원래 가격에 구매하겠습니다.
나: 감사합니다. 입금하시고 주소, 성함, 핸드폰 번호를 알려 주세요.
구매자: (말없이 한두 시간 후에) 와이프에게 물어봤더니 사지 말라고 하네요. 죄송합니다. 
나: (황당하지만, 뭐 어쩔 수 없다는 듯) 알겠습니다. ^^

이런 식의 대화가 한두 번이면 모르겠는데, 제가 헤아려 본 것만 벌써 예닐곱 번은 되니 '와이프를 운운하는' 유형의 구매자들이 상당한 퍼센테이지로 존재하는 게 틀림없다는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와이프한테 물어보니까 사지 말라고 합니다'라는 말이 그저 핑계가 아니라 참말일까요? 참말이라고 가정하자면 저는 왠지모르게 슬퍼지더군요. 워크맨 하나 구입하는 데 O만원도 마음대로 지출하지 못하다니요! 어디 가서 친구들이랑 술 한 잔 한다 해도 그보다 더 많은 돈을 써야 할 텐데, 혹은 가족끼리 가볍게 외식을 하더라도 O만원 쯤은 우습게 넘는 게 요즘 물가인데, 어쩌다 큰 맘 먹고 워크맨을 구입하려는 욕구를 저지 당하나 싶어서 그렇습니다.

물론 구매자들의 와이프들께서 '워크맨 같은 것에 O만원을 지출하는 건 아깝다. 유튜브로 음악 들으면 되잖아! 그 돈이면 씨...'라고 일갈하고픈 마음을 이해 못하는 건 아닙니다. 애같은 남편이 유치한 취미 생활에 정신 못차리는 것 같아 혼구녕을 내고 싶고, 한번 물꼬를 터주면 한없이 깊은 '개미지옥'에 빠져 버릴 것 같아 처음부터 철저히 단속하고 싶은 것이겠죠. 

각자의 이유가 있을 테지만, 그래도 '와이프가 사지 말래요'라는 구매자의 글을 보노라면 심연의 바다에 돌멩이 하나 가라앉는 듯한 슬픔이 아려옵니다. 무슨 마약에 손을 대는 것도 아닌데 애초에 발을 담그지 말라니요! 남자들을 두둔한다고 욕하지는 마세요. 와이프들로부터 '남편이 사지 말래요'라는 듣는다 해도 저는 똑같은 슬픔에 사로잡혔을 테니까요.

하지만 '와이프가 사지 말래요'라는 말은 거짓말일 때가 더 많다는 게 제 짐작입니다. 사고 싶은 마음이 급해서 '제가 사겠습니다'라고 말했다가 화장실에 가서 속을 비우고 나와서는 '그걸 산다고 내가 음악을 얼마나 더 듣겠나' 싶어서 구매 욕구가 싹 사라지는 경우가 더 많을 겁니다. 다른 곳에서 더 좋은 물건을 발견하고는 그리로 구매욕이 싹 옮겨가는 경우가 더 많을 겁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저는 궁금합니다. '와이프가 사지 말래요'라는 말이 왜 좋은 핑계가 된 걸까요? '죄송하지만 구매 의사를 철회하겠습니다.'라고 솔직히 이야기하지 못하는 걸까요? 왜 애먼 와이프를 운운하며 빠져 나가려 하는 걸까요? 와이프는 '사라 마라' 아무말도 하지 않았는데 말이에요. 와이프 핑계를 대면 상대방이 '네네, 그렇군요. 당연히 그렇게 하셔야죠'라고 바로 납득할 것 같은가 보죠?

제 물건을 안 산다고 해서 화를 내는 말이 절대 아닙니다. 그 사람이 안 산다고 해도 다른 누군가가 살 테고 안 팔린다 해도 경제적으로 제가 타격을 입는 것은 아니니까요. 저에게만 그런지 모르겠으나 그저 '와이프가 사지 말래요'란 핑계가 잦다는 게 흥미로울 뿐입니다. 유년시절에 '엄마가 하지 말랬어'라는 누구도 토달 수 없는 변명이 어른이 되어 '와이프가 사지 말래요'라는 훌륭한 핑계로 옮겨 간 것인지 모르겠어요. 

이유야 어떻든, '와이프가 사지 말래요'라는 말로 둘러대는 것은 어른스럽지 못한 태도입니다. 남에게 '나는 악덕 와이프와 산다'라고 폭로하는 거나 마찬가지임을 아셔야죠. 설령 진짜로 와이프가 못 사게 했더라도 말입니다. 한번도 만난 적 없는 저에게 실상을 고해 봤자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최근에 이런 메시지를 받았습니다. "와이프한테 다시 말했더니 사라고 합니다. 계좌번호 알려 주세요." 그 분이 와이프를 설득하느라 얼마나 애썼을까 짐작해 보니 콧날이 시큰해지고 눈이 아파 오더군요. '와이프가 사라고 했어요'라고 말하며 신이 났을 모습을 상상하니 얼마라도 깎아 드려야 하나 싶었답니다. 하지만 저는 구매할까 말까의 상황에서 '와이프 운운'하는 분들께는 얄쨜없답니다. '와이프 핑계'라는 밈(meme)을 멸하기 위해서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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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권력자의 버르장머리   

2024. 8. 21.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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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력한 권력자들은 자신의 의사결정에 자신만만해 하는데요, 그러다 무리한 결정을 내리는 바람에 조직 전체를 그르치는 경우가 아주 많습니다. 어느 심리 실험에서 권력자로 스스로를 인식한 참가자가 주사위 게임에 임했는데, 본인이 주사위를 던질 수도 있었고 타인이 대신 던져줄 수도 있었습니다. 

참석자들은 어떤 선택을 했을까요? 타인에게 주사위를 던지라고 하는 것은 자신의 권한을 넘겨주는 행위라 여겼기 때문인지 대부분은 본인이 주사위를 던지겠다는 선택을 했습니다. 반면 지배를 받는 쪽으로 인식된 참가자들은 타인에게 주사위 던질 권리를 더 많이 넘겨 주었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이상하지 않나요? 주사위는 자신이 던지든 남이 던지든 차이가 없습니다. 무작위적이니까요. 내가 던져 나쁜 숫자가 나올 수도, 남이 던져 좋은 숫자가 나올 수도 있죠. 내가 던진다고 해서 무작위성을 통제할 수는 없습니다. 그런데도 권력자들은 자신이 불확실한 미래를 통제할 수 있다고 믿는다니, 이 얼마나 큰 만용일까요! 그저 자신의 마음이 끌리는 대로 의사결정을 내리고 그 후에 결정을 합리화하려는 걸까요?

권력욕이라고 해서 다 나쁜 것은 아닙니다. 어떤 권력자가 기본적으로 훌륭한 성품과 긍정적인 권력욕을 가지고 있는지 판단하려면, 그가 어떤 과정으로 최종적인 의사결정에 도달하는지를 보면 됩니다. 

 



좋은 권력욕을 지닌 리더는 주변 사람들에게 귀를 기울이고 다양한 관점을 받아들이려 노력합니다. 그리고 결정이 잘못됐을 때는 자신에게서 문제를 찾고 반성하는 모습을 보이죠. 자기 결정에 책임을 집니다. 이런 권력자들은 조직, 사회, 공동체, 인류의 거시적 가치를 중요시하고 전체적으로 이익이 되는 변화를 우선하는데, 상당히 희소한 존재들이기에 만약 이들이 눈에 띄면 어떻게든 조직에 붙들어 두도록 애를 써야 합니다. 그들과 친하게 지내야 하고요.

반면 나쁜 권력자는 본인의 영달을 추구하는 쪽으로 강하게 편향되어 있기에 이 세상을 ‘내가 이기면 상대방은 지는’ 제로섬 게임으로 인식합니다. 이게 그들의 사고방식이자 고질적인 버르장머리입니다. 여러분의 팀, 사업부, 회사 전체를 이끄는 리더는 과연 어느 쪽인지 곰곰이 따져 보세요. 그에게 긍정적인 평가를 내릴 수 있겠습니까?

조직이 나쁜 권력자를 ‘모시고’ 있으면 각종 사고에 시달릴 가능성이 큰데요, ‘밑의 사람들’의 역량이 특별히 부족해서가 아니라 그들이 ‘입을 닫는’ 선택을 하기 때문인 경우가 대다수입니다. 1986년 소련의 체르노빌 원자로가 폭발한 사건은 어떻게 볼 때 그 원인이 아주 사소했습니다. 원자로의 상황을 윗사람에게 사실대로 보고했다면 사고를 방지할 수 있었지만, 실무자는 야단 맞을 것을 두려워한 나머지 입을 닫아 버리고 윗사람의 심기만을 살폈죠. 고작 그 심기를 불편하게 만들지 않겠다는 의도가 되돌릴 수 없는 비극을 낳고 말았습니다.

힘을 가진 자는 이런 ‘침묵’이 무엇에서 기인했는지 깊이 성찰해야 합니다. 바로 자기 자신이 침묵의 원인이기 때문이죠. 밑의 사람들을 그리 만든 건 바로 본인입니다. 왜 사고를 미연에 방지하지 못했는지, 사고의 뒷수습을 왜 제대로 하지 않았는지 구성원들을 강하게 질타하거나 처벌할 것이 아니라 본인의 강압적이고 이기적인 권력욕이 낳은 비극임을 먼저 반성하고 고개를 숙여야 하죠. 그리 하는 것이 최소한의 인간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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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열정적인 사람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2024. 8. 20.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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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정이 넘치는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면 어떤 느낌이 듭니까? 그 사람의 열정에 전염돼 여러분도 덩달아 힘이 나고 기분이 좋아집니까? 아니면 그 반대입니까? 저는 어떠냐고요? 열정적인 분들께는 죄송스러운 말씀이지만 저는 조금은 고개를 갸웃하게 됩니다. 그리고 열정 뒤에 가려진 그들이 진정한 모습은 무엇일까 살짝 의심하게 되죠. 

왜 이리 부정적이냐고요? 이 무슨 비뚤어진 의심병이냐고요? 왜냐하면 열정에는 부정적인 측면이 상당히 존재한다는 증거가 많기 때문입니다. 중국 엔지니어링 회사에서 일하는 800여명의 직원들에게 매일 열정과 성과를 평가해 달라고 한 연구가 있는데요, 데이터를 분석해 보니 자신의 열정 수준이 높다고 평가할 때 실제 성과보다 '과장'하는 패턴이 발견되었습니다. 열정이 과신과 자만을 낳았던 겁니다.

또 이런 실험도 있었습니다. 실험 참가자들 중 절반에게는 '나는 시간을 잘 지키는 사람이다'라고 인식하게 하고, 나머지 절반에게는 '나는 매우 열정적인 사람'이라고 상상케 했습니다. 연구자는 두 그룹 모두 성과 수준은 '보통' 수준이라고 알려줬습니다. 그랬더니 열정적인 사람으로 스스로를 인식한 참가자들이 자기가 더 오래 일하고, 더 열심히 일하고, 더 인내하고, 더 높은 성과를 얻을 거라고 기대하더랍니다. 열정 때문에 스스로를 과대평가한다는 것이죠. 실제 성과 수준은 보통이라고 사전에 주지를 시켰는데도 말입니다.

 



그렇다면 열정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사람에게는 어떤 평가를 내릴까요? 짐작하겠지만, 열정이 충만하고 끓어오르기까지 하는 사람에게는 실제 성과보다 더 높은 기대감을 갖고 더 높게 평가한다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조용한 팀보다는 '으싸으쌰'하는 팀의 성과가 더 높을 거라고 추측했으니까요.

이렇게 열정이 객관적 판단을 막는 요소 중 하나이기에 저는 열정적인 사람을 볼 때마다 '이 사람의 열정에 속지 말자'라고 속으로 주문을 외듯 하는 겁니다.

하지만 열정을 보는 저의 관점에 해당되지 않는 분야가 있습니다. 열정이 높아야 일을 잘해낼 수 있는 분야가 그렇죠. 몸을 부딪혀 영업을 하거나 새로운 판로를 개척해야 하는 사람에게는 열정이 긍정적인 작용합니다. 군인도 그렇고요. 이런 일을 해내려면 자신감이 높아야 하는데 바로 열정이 훌륭한 원료가 되죠.

문제는 열정이 그런 분야에서는 긍정적인 '감정 고양 상태'라고 해서 모든 분야에 열정을 기대하는 것입니다. 고도의 지식이나 스킬, 의사결정, 의견 제시 등이 요구되는 분야에는 열정 때문에 생긴 자신감이 과신으로 이어져 실패를 낳을 수 있음을 조심해야 해요. 의사, 연구원, 기획자, 관리자 등 '으쌰으쌰' 하는 모습을 시전한다고 해서 일을 더 잘해낼 거라고 기대할 수 없는 분야에서는 말입니다.

일본 드라마를 보면 열정의 과잉 장면이 불편하거나 우스꽝스러울 때가 종종 있습니다. 열정에 무슨 환상 같은 걸 가진 모양입니다. 어려움에 닥치면 결연히 입술을 깨물면서 주먹을 불끈 쥐는 모습, 친구나 가족이 문제 해결에 골머리를 앓으면 옆에서 '간바레!'를 외치며 힘을 불어넣는 모습이 그렇습니다. 그런다고 안 풀리던 문제가 저절로 풀리기라도 할까요? 코미디라면 모를까, 정극에서도 그러니 어떨 때는 실소가 터지기도 합니다.

저는 열정적이기만 한 사람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과거에 몇 번 당해서 그런지, 실제 성과가 높은 사람을 좋아하지요. 여러분은 어떤가요?


*참고논문
Bailey, E. R., Krautter, K., Wu, W., Galinsky, A. D., & Jachimowicz, J. M. (2024). A Potential Pitfall of Passion: Passion Is Associated With Performance Overconfidence. Social Psychological and Personality Science, 194855062412524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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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정하기가 어려워 책을 못쓰겠다는 분에게   

2024. 8. 16.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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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에 어떤 분이 저에게 "책을 쓰고 싶은데 목차를 어떻게 구성할지 고민입니다. 그걸 못 정해서 아직 시작 못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라고 조언을 구하더군요. 오늘은 그 분께 해드린 저의 조언을 여기에 옮겨써 봅니다.

가장 큰 고민이 책의 구성, 책의 목차라고 말하는 까닭은 아마도 책 전체의 논리 구조를 수립하고 그 아래에 글을 짜임새 있게 배치하는 것을 대다수의 '책쓰기' 관련 책에서 무엇보다 강조하기 때문인 듯 합니다. 하지만 과연 목차를 정하는 게 가장 중요할까요?

저도 처음 책을 쓸 때는 전체 주제를 맨 꼭대기에 두고 그 밑에 파트를 배치하고, 파트 밑에는 챕터로 세분하고 챕터 밑에는 소주제를 나열하는 방식, 소위 ‘피라미드 구조’로  책의 전체 목차를 구성하는 작업부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쉽지 않았습니다. 아무리 목차를 만들고 수정해도 엉성해 보였고 구멍이 숭숭 뚫린 듯한 느낌이 들었죠.

왜 그랬을까요? 저는 한참 후에야 이유를 깨달았습니다. '자료 수집 단계'를 거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말이죠. 책 한 권을 쓰려면 자신이 수년 간의 경험과 노하우를 가지고 있다 해도 각종 자료(논문, 기사, 사례 등)를 반드시 수집해야 합니다. 본인의 지식, 경험, 노하우만으로는 책의 주제를 커버하지 못하니까요. 

세상에는 이미 여러분보다 똑똑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여러분에 앞서서 무언가를 해놓았고 그걸 기록으로 남겼을 겁니다. 그걸 하나씩 찾아내면 "이건 내가 미처 고려하지 않은 측면이군." 혹은 "이 자료는 내 주장에 좋은 근거가 되겠어."라는 걸 깨닫게 되죠. 그리고 목차를 어떻게 구성할지 서서히 윤곽이 드러납니다.

 



요컨대, Top-down 방식이 아니라 충분한 자료 수집을 기초로 목차를 만들어 가는 Bottom-up 방식을 따라야 합니다. 그래야 쉽기도 하고요.

그렇다면 자료 수집은 대체 어떻게 해야 할까요?특별한 지름길이 있을 것 같지만, 사실 자료 수집처럼 묵묵하고 우직하게 진행해야 하는 일도 없습니다. 저의 자료 수집 방법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책을 쓰겠다고 마음 먹으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 중 하나가 인터넷 서점에 들어가서 관련 책을 검색하는 것입니다.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는 말이 있듯이, 문학 분야가 아니라면 분명 동일하거나 비슷한 주제를 다루는 책들이 적어도 몇 권은 존재할 겁니다. 

비슷한 주제를 다루는 책이라 해도 어떤 책은 여러분의 생각과 일치하는 방향으로 쓰여졌고 또 어떤 책은 여러분의 논리와 완전히 반대쪽을 지향하기도 하겠죠. 무엇이든 개의치 말고 그 책들을 장바구니에 넣으세요. 언어 장벽이 없다면 아마존에 들어가 외국 저자의 책을 구매하는 것을 추천합니다. 보다 넓고 보다 깊은 내용을 습득할 테니까요.

저는 관련된 책들을 적어도 10~20권 정도는 먼저 읽어 볼 것을 강력하게 권합니다. 여러분이 지향하는 논리를 강화하고 보강하는 데 이보다 손쉽고 시간이 적게 드는 방법이 있을까요? 그 책의 저자들은 여러분보다 책쓰기에 있어 ‘선배’입니다. 그들이 어떤 구조로 책을 구성했는지, 어디에서 사례를 구했는지 등을 파악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문장과 문단 배치를 어떻게 했는지를 참조하는 데 훌륭한 교재가 될 겁니다.

또한, 책을 읽어 가다가 ‘어, 이건 좀 아닌데…’하며 논리상의 오류나 비약을 발견하고 ‘나라면 어떻게 이 논리적 오류를 극복할까?’라며 반면교사적인 공부를 할 수도 있죠. 독서광이 돼라는 소리는 아니다. ‘자기 분야’ 선배들의 책을 제대로 정독한 적도 없으면서 책을 쓰겠다고 덤비는 것은 스파링 훈련을 한번도 해보지 않은 채 링에 오르는 얼치기 복싱선수와 마찬가지일 겁니다.

이렇게 장바구니에 담아놓은 책들을 온라인으로 바로 주문하는 것도 좋지만, 사정이 된다면 오프라인 대형서점에 가서 그 책들을 직접 눈으로 확인하는 것이 좋습니다. 웹페이지에 나온 소개글은 대단하게 되어 있지만 정작 몇 페이지 들춰보니 ‘하나마나 한’ 이야기만 나열된 책들이 좀 많습니까? 그런 책들은 ‘아, 이렇게 책을 쓰면 안 되겠구나’라는 점을 파악하는 용도로만 사용하세요.

저는 개인적으로 선호하는 책은 책 말미에 참고문헌 목록이 충실하게 적혀 있는 책입니다. 참고문헌이 생략돼 있거나 대충 적힌 책들은 신뢰가 가지 않죠. 저자 본인만의 생각과 지식, 사례만으로 글을 쓰지는 않았을 터인데 참고문헌이 생략돼 있거나 대충 적혀 있으면 독자에게 무언가를 기만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참고문헌 목록을 잘 갖춘 책을 내가 좋아하는 또 하나의 이유는 출처를 내가 직접 찾아내 읽는 재미가 있기 때문입니다. 출처가 논문이라면 구글에서 그 논문을 초록(abstract)를 읽어보고 “이거 괜찮네” 싶으면 논문 전체를 다운로드해서 읽곤 하죠. 참고문헌이 충실하게 적힌 책들은 이렇게 자료 수집의 범위를 확대시키는 고마운 존재입니다. 책의 본문만 읽지 말고 참고문헌을 하나씩 검색해서 읽는 습관을 가지세요. 이 또한 자료 수집의 과정이니까요.

"조언 감사합니다."라는 그 분의 인사에 저는 이렇게 마무리해 드렸습니다.

"자료 수집은 '게걸스럽다' 싶을 정도로 해야 합니다. 시시때때로 해야 하고, 축적된 양이 풍성해야 하죠. 책이든, 인터넷 기사든, 아니면 누군가의 언급이든, 모두를 메모하고 스크랩해 둬야 합니다. 나중에 다 쓸일이 있으니까요. 아 참! 에버노트 같은 앱은 쓰지 마세요. 모아두기만 하고 안 볼 걸요? 메모장이면 충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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