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정하기가 어려워 책을 못쓰겠다는 분에게   

2024. 8. 16.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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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에 어떤 분이 저에게 "책을 쓰고 싶은데 목차를 어떻게 구성할지 고민입니다. 그걸 못 정해서 아직 시작 못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라고 조언을 구하더군요. 오늘은 그 분께 해드린 저의 조언을 여기에 옮겨써 봅니다.

가장 큰 고민이 책의 구성, 책의 목차라고 말하는 까닭은 아마도 책 전체의 논리 구조를 수립하고 그 아래에 글을 짜임새 있게 배치하는 것을 대다수의 '책쓰기' 관련 책에서 무엇보다 강조하기 때문인 듯 합니다. 하지만 과연 목차를 정하는 게 가장 중요할까요?

저도 처음 책을 쓸 때는 전체 주제를 맨 꼭대기에 두고 그 밑에 파트를 배치하고, 파트 밑에는 챕터로 세분하고 챕터 밑에는 소주제를 나열하는 방식, 소위 ‘피라미드 구조’로  책의 전체 목차를 구성하는 작업부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쉽지 않았습니다. 아무리 목차를 만들고 수정해도 엉성해 보였고 구멍이 숭숭 뚫린 듯한 느낌이 들었죠.

왜 그랬을까요? 저는 한참 후에야 이유를 깨달았습니다. '자료 수집 단계'를 거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말이죠. 책 한 권을 쓰려면 자신이 수년 간의 경험과 노하우를 가지고 있다 해도 각종 자료(논문, 기사, 사례 등)를 반드시 수집해야 합니다. 본인의 지식, 경험, 노하우만으로는 책의 주제를 커버하지 못하니까요. 

세상에는 이미 여러분보다 똑똑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여러분에 앞서서 무언가를 해놓았고 그걸 기록으로 남겼을 겁니다. 그걸 하나씩 찾아내면 "이건 내가 미처 고려하지 않은 측면이군." 혹은 "이 자료는 내 주장에 좋은 근거가 되겠어."라는 걸 깨닫게 되죠. 그리고 목차를 어떻게 구성할지 서서히 윤곽이 드러납니다.

 



요컨대, Top-down 방식이 아니라 충분한 자료 수집을 기초로 목차를 만들어 가는 Bottom-up 방식을 따라야 합니다. 그래야 쉽기도 하고요.

그렇다면 자료 수집은 대체 어떻게 해야 할까요?특별한 지름길이 있을 것 같지만, 사실 자료 수집처럼 묵묵하고 우직하게 진행해야 하는 일도 없습니다. 저의 자료 수집 방법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책을 쓰겠다고 마음 먹으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 중 하나가 인터넷 서점에 들어가서 관련 책을 검색하는 것입니다.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는 말이 있듯이, 문학 분야가 아니라면 분명 동일하거나 비슷한 주제를 다루는 책들이 적어도 몇 권은 존재할 겁니다. 

비슷한 주제를 다루는 책이라 해도 어떤 책은 여러분의 생각과 일치하는 방향으로 쓰여졌고 또 어떤 책은 여러분의 논리와 완전히 반대쪽을 지향하기도 하겠죠. 무엇이든 개의치 말고 그 책들을 장바구니에 넣으세요. 언어 장벽이 없다면 아마존에 들어가 외국 저자의 책을 구매하는 것을 추천합니다. 보다 넓고 보다 깊은 내용을 습득할 테니까요.

저는 관련된 책들을 적어도 10~20권 정도는 먼저 읽어 볼 것을 강력하게 권합니다. 여러분이 지향하는 논리를 강화하고 보강하는 데 이보다 손쉽고 시간이 적게 드는 방법이 있을까요? 그 책의 저자들은 여러분보다 책쓰기에 있어 ‘선배’입니다. 그들이 어떤 구조로 책을 구성했는지, 어디에서 사례를 구했는지 등을 파악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문장과 문단 배치를 어떻게 했는지를 참조하는 데 훌륭한 교재가 될 겁니다.

또한, 책을 읽어 가다가 ‘어, 이건 좀 아닌데…’하며 논리상의 오류나 비약을 발견하고 ‘나라면 어떻게 이 논리적 오류를 극복할까?’라며 반면교사적인 공부를 할 수도 있죠. 독서광이 돼라는 소리는 아니다. ‘자기 분야’ 선배들의 책을 제대로 정독한 적도 없으면서 책을 쓰겠다고 덤비는 것은 스파링 훈련을 한번도 해보지 않은 채 링에 오르는 얼치기 복싱선수와 마찬가지일 겁니다.

이렇게 장바구니에 담아놓은 책들을 온라인으로 바로 주문하는 것도 좋지만, 사정이 된다면 오프라인 대형서점에 가서 그 책들을 직접 눈으로 확인하는 것이 좋습니다. 웹페이지에 나온 소개글은 대단하게 되어 있지만 정작 몇 페이지 들춰보니 ‘하나마나 한’ 이야기만 나열된 책들이 좀 많습니까? 그런 책들은 ‘아, 이렇게 책을 쓰면 안 되겠구나’라는 점을 파악하는 용도로만 사용하세요.

저는 개인적으로 선호하는 책은 책 말미에 참고문헌 목록이 충실하게 적혀 있는 책입니다. 참고문헌이 생략돼 있거나 대충 적힌 책들은 신뢰가 가지 않죠. 저자 본인만의 생각과 지식, 사례만으로 글을 쓰지는 않았을 터인데 참고문헌이 생략돼 있거나 대충 적혀 있으면 독자에게 무언가를 기만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참고문헌 목록을 잘 갖춘 책을 내가 좋아하는 또 하나의 이유는 출처를 내가 직접 찾아내 읽는 재미가 있기 때문입니다. 출처가 논문이라면 구글에서 그 논문을 초록(abstract)를 읽어보고 “이거 괜찮네” 싶으면 논문 전체를 다운로드해서 읽곤 하죠. 참고문헌이 충실하게 적힌 책들은 이렇게 자료 수집의 범위를 확대시키는 고마운 존재입니다. 책의 본문만 읽지 말고 참고문헌을 하나씩 검색해서 읽는 습관을 가지세요. 이 또한 자료 수집의 과정이니까요.

"조언 감사합니다."라는 그 분의 인사에 저는 이렇게 마무리해 드렸습니다.

"자료 수집은 '게걸스럽다' 싶을 정도로 해야 합니다. 시시때때로 해야 하고, 축적된 양이 풍성해야 하죠. 책이든, 인터넷 기사든, 아니면 누군가의 언급이든, 모두를 메모하고 스크랩해 둬야 합니다. 나중에 다 쓸일이 있으니까요. 아 참! 에버노트 같은 앱은 쓰지 마세요. 모아두기만 하고 안 볼 걸요? 메모장이면 충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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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겐 자기객관화가 좀 필요합니다   

2024. 8. 14.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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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보낸 글에서 '자기성찰'의 정의를 '자신에게 좋은 질문을 던지고 좋은 답을 얻는 과정'이라고 언급했습니다. 그렇다면 스스로에게 좋은 질문을 던지는 데 전제조건은 무엇일까요? 누가 이렇게 물으면 저는 "자기객관화가 가장 중요한 전제조건입니다."라고 바로 대답합니다.

자기객관화란 무엇일까요? 언뜻 어려운 말 같지만 '남의 입장에서 자신을 바라보는 것'이라고 쉽게 정의할 수 있습니다. 자기가 상황을 바라보는 '각도'와 타인이 그걸 먼 거리에서 보는 관점이 다른 경우가 많은데요, 그 차이는 바로 이기심 때문에 발생합니다. 이기심이 자기객관화를 저해하고 좋은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지 못하게 만듭니다.

쉬운 예를 들어볼까요? 어떤 주식이 급등하면 적절한 시기에 '익절'을 하는 게 타인의 입장에서 옳은 객관적 결정일 겁니다. 하지만 자신에게 좋은 질문을 던지기는커녕 '아냐, 더 오를 거야. 더 벌어야 해.'란 이기심이 작동합니다. 남의 입장에서 자신의 상황을 바라보는 것, 즉 자기객관화에 실패하고 말죠. 계속 쥐고 있다가 주가 급락 사태를 맞는 경우가 좀 많습니까? 손절 매각을 해야 할 때 '아냐, 언젠가 반등할 거야. 이대로 손해 볼 수는 없어'란 이기심 때문에 '그거라도 건질' 기회를 날리는 경우도 허다하죠.

그렇다면 누가 자기객관화를 잘 하는지 알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저는 '소유물과 자기 자신을 얼마나 동일시하는가'의 여부로 자기객관화 여부를 판단합니다(여기서 소유물이란 물건뿐만 아니라 출신 학교, 지역, 직업, 취미 등을 모두 일컫는 말입니다). 저에게는 일종의 리트머스 시험지인 셈인데요, 누군가가 "A라는 물건은 이런저런 면에서 볼 때 문제가 많다"라고 (근거를 가지고) 비판했다고 칩시다. 이때 A를 가지고 있는 자가 '어라? 감히 A를 욕해?'라고 욱하면서 비판자와 언쟁을 벌인다면 저는 그가 이기심에 눈멀어 자기객관화를 잘하지 못하는 자로 판단합니다.

 



소유물에 대한 비판과 자신을 향한 공격은 엄연히 구분해야 합니다. 까놓고 말해, A를 만든 회사 사람도 아니거니와 그 회사로부터 이익을 취하는 것도 아닌데 왜 A를 지적하는 것에 발끈하는 걸까요? 누군가가 A의 문제를 지적하고 비판하면 "내가 가진 A가 이렇게 문제가 있단 말이야? 그렇다면 그 회사에게 해명이나 배상을 요구하겠어."라고 해야 옳지 않겠습니까? 그래야 그 회사에게서 뭔가라도 얻어내지 않겠습니까?

물론 자기 소유물을 비판 당하면 기분이 좋을 리는 없습니다. A를 구매하기로 했던 당시의 결정이 부정 당하고 폄훼된다고 보기 때문이죠. 저도 그렇습니다만,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입니다. A를 만든 회사를 함께 욕하는 게 먼저지, A를 비판한 사람을 욕하다니요? 게다가 엉뚱하게도 그 회사를 적극 옹호까지 하면서 말입니다. 평생 A만 사용하시려고요? 에이, 다른 걸로 곧 갈아타실 거면서.

여러분이 가장 아끼는 물건을 누군가가 비판하는 상황을 상상해 보세요. 그가 기분 내키는 대로 뇌까린다면 "그래, 네 말이 맞다."라고 맞장구치고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면 됩니다. 바보들과 싸우지 않는 것이 행복의 길이니까요. 그가 나름의 근거를 가지고 비판한다면요? 자기객관화를 잘하고 자기성찰을 잘하는 이는 절대 열불 내지 않습니다. "듣고 보니 네 말이 맞네."라고 동의하고서 그걸 판매한 회사에게 따질지, 팔아치우거나 버릴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소유할지 결정하죠. 

말은 쉬운데, 자기객관화를 잘하는 사람들의 비율은 크지 않은 것 같습니다. 과거 폭스바겐의 디젤 게이트가 발발하며 디젤 자동차의 '거짓 환경친화성'이 엄청난 사회 이슈가 되었습니다. 이때 제법 많은 디젤 자동차 소유주들은 여러 매체나 커뮤니티를 통해 '디젤 자동차를 욕하지 말라'는 식으로 반응하더군요. 누가 본인들을 욕한 것처럼 격분해서 말이죠. 

민감한 사안이라 자세히 언급하지 않겠으나, 최근 전기차 화재로 지하 주차장이 쑥대밭이 된 사건으로 전기차의 위험성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강해지자 이와 비슷한 현상이 종종 눈에 띱니다. 전기차의 위험성이 문제지, 전기차를 소유한 게 문제가 아님을 왜 모를까요? 전기차 메이커들과 싸워야 하지, 왜 전기차 위험성을 지적한 자들과 싸웁니까? 우리에겐 자기객관화가 좀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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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질문이 이렇게 무섭습니다   

2024. 8. 13.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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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자주 방문하는 오디오 관련 카페에 어떤 회원이 이런 질문을 올렸습니다.

"OOO가 작동이 안 되네요. 왜 그럴까요?"

흔히 나오는 질문이지만 문제는 그가 본문에 이렇게만 썼다는 겁니다. 사진 하나 달랑 올려서 말이죠. 저는 이 글을 보자마자 짜증이 났습니다. 무엇이든 물어보면 여러 회원들이 친절하게 답을 해주는 게시판이긴 하지만 밑도 끝도 없이 이렇게만 물어보고 끝을 낸 그의 태도가 괘씸했달까요? 

작동이 안 되는 원인은 여러 가지입니다. 그 기계 자체의 문제일 수도 있고, 그것과 다른 기계 사이를 연결하는 케이블이 옳지 않아서일 수도 있고, 다른 기계의 고장 때문일 수도 있으니까요. 아니면 그저 어딘가가 끊어졌기 때문이기도 하죠. 구체적으로 어떤 원인인지 알아야 "이렇게 조치해 봐라"는 조언이 가능하지 않겠습니까? 아니, 그 전에 적어도 글쓴이가 "이렇게 저렇게 오디오 기기들을 연결했는데 이런저런 현상이 나타난다"라는 식으로 상세하게 설명을 해야 다른 사람들이 원인을 추정할 수 있지 않을까요?

이렇게 단문으로 질문하는 사람들이 눈에 띨 때마다 저는 아예 대꾸를 하지 않았습니다. 속으로 '알아서 하세요. 잘 됐으면 좋겠네요.'라고 무시해 버리곤 했죠. 하지만 이번에는 왠일인지 묻고 싶어졌습니다. 경영일기의 소재가 되겠다 싶기도 했죠. 아래는 저와 그 사람 간의 댓글을 대화식으로 편집한 것입니다. (누구인지 밝혀질수 있기에 실제 내용을 각색하고 축약했습니다)

나 : 상세하게 증상을 말씀해 주셔야 정확한 조언이 가능해요.
그 : (질문했던 걸 반복하며) OOO가 작동 안 합니다.
나 : 그러니까 작동 안 하는 원인을 알려면 자세히 설명하셔야 알 수 있어요. 구체적으로 오디오 시스템을 어떻게 연결했는지 알려주세요.
그 : BBB를 연결했습니다. CCC도 해 봤고요 DDD는 이상 없습니다.
나 : (짜증이 나서) 그거 말고, 소스기기, 앰프, 스피커를 어떤 방식으로 연결했는지 알려 달라고요.
그 : 정상적으로 연결했습니다.
나 : 그렇군요.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다른 회원분들께 토스합니다.

 



여기까지 댓글을 주고 받다가 저는 모니터를 향해 "그럼, 알아서 하셔."라고 던지듯 말하고 그 후 아무런 대꾸를 하지 않았습니다. 제가 분명 현재의 연결 상태와 증상을 설명해 달라고 했음에도 그는 마이동풍 같았거든요. 옆에 앉아 함께 오디오 시스템을 들여다 봐도 쉽지 않을 원인 파악을 사진 한 장 달랑 보여주고 질문 하나 달랑 던져 놓고 기대하는 것은 도대체 어떤 심보일까 싶었습니다.

무언가를 누군가에게 질문하고자 한다면 먼저 자기 상황을 자세히 설명하는 게 기본적인 '질문의 예의'가 아닐까요? 상대방이 신이 아닌데 짧은 질문 툭 던져 놓고 답을 알려달라니요? 이 무슨 '순진무구한 똥꼬 배짱'일까 싶은 사람들을 여러분도 분명 경험했을 겁니다. 질문할 줄 전혀 모르는 사람들 말이죠.

'쓰레기가 들어가면 쓰레기가 나온다(Garbage In, Gargage Out)'이란 말은 질문의 태도에도 똑같이 적용됩니다. 매번 이런 식으로 냇물에 돌 하나 던지듯 질문을 '배설'하면 영양가가 전혀 없고 성의조차 없는 답만 돌아올 뿐입니다. 욕 먹기 일쑤일 테고 같이 일하기 싫은 사람으로 찍히겠죠. 쫓겨나거나 얻어맞지 않으면 다행입니다. 그러니 살면서 뭘 배우겠습니까? 어떻게 성장하겠습니까?

저는 자기성찰이란 말을 '자신에게 좋은 질문을 던지고 좋은 답을 얻는 과정'이라고 정의합니다. 남에게 질문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자가 자신에게는 좋은 질문을 던질 수 있을까요? 그저 '난 왜 이러지?', '왜 세상은 나에게 이렇게 비협조적이야?'라는 하나마나한 질문만 하염없이 배설할 뿐이겠죠. 자기성찰은 언감생심, 명쾌하고 효과 있는 답을 구할 턱이 없습니다. 그러니 살면서 뭘 깨닫겠습니까? 어떻게 의미있는 삶을 찾아 가겠습니까?

나쁜 질문이 이렇게 무섭습니다. 남들보다 덜 배우고 덜 성장하며 덜 깨우치고 덜 의미있는 삶을 살 테니까요. 남들보다 늦게 배우고 늦게 성장하며 늦게 깨우치고 늦게 삶의 의미를 찾을 테니까요.

그러니 누군가에게 질문 거리가 생기면 질문의 경중과 상관없이 그 즉시 질문을 마구 던지지 마세요. 어떻게 말해야 상대방이 여러분의 문제를 '내 문제'처럼 인식할지 고민하세요. 천천히, 상세히, 조리 있게 던지는 좋은 질문들이 쌓여 여러분의 삶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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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을 믿으라   

2024. 8. 12.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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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차를 운전하며 평소 애청하는 <세상의 모든 음악, 전기현입니다>란 라디오 방송을 들었다. 방송 중에 MC는 “사람을 믿지 말고 돈을 믿으라”는 말의 의미를 소개했다. 언뜻 들으면 황금만능주의와 배금주의를 숭상하거나 미화하는 문장으로 들리지만, 그 의미는 상당히 심오했다. 

이 문장의 본뜻은 “그 사람이 어디에 돈을 쓰는가를 보라.”는 것이다. 풀어 말하면 ‘누군가의 말이나 행동보다는 어디에 돈을 얼마나 쓰는가가 그 사람에 대해서 더 많은 것을 알려 준다’를 역설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마음이 가는 곳에 돈도 함께 따라가는 것이 당연한 이치이기에 돈의 지출처를 통해 우리는 타인이 지금 무엇에 관심을 두고 있는지, 무엇을 위해 애를 쓰고 있는지 등을 알 수 있지 않을까? 방송에서 MC는 말했다. “무엇을 먹었는지 알려주면 내가 그 사람에 대해 알려 주겠다는 말이 있듯이, 영수증을 가져오면 내가 그 사람에 대해 알려주겠다는 말도 가능하겠죠.”라고.

“사람을 믿지 말고 돈을 믿으라.”는 말은 상대방의 말과 돈의 용처가 일치하지 않을 수 있음을 뜻하기도 한다. “내 자신의 계발을 위해 많은 돈을 씁니다.”라고 말한다 해도 그의 한 달간 지출 내역에 도서 구입 건이 전무하다면, 그가 거짓말을 하고 있거나 그가 중요시하는 자기 계발의 수단이 나와는 다를 수 있다고 간주해 볼 일이다. 혹은 자기 계발의 욕망은 있으나 그보다 더 큰 욕망에 의해 억압 받거나 유보되고 있을지도 모른다. 

“저는 음악 듣기를 좋아합니다.”
“그런데 요즘 헤드폰을 여러 개 구입하시던데요?”
“좋은 음악을 좀더 잘 듣기 위해서죠.”
“보니까 음악을 별로 안 들으시던데?”
“아, 그건…”
“음악보다 장비에 꽂히셨군요?”

이렇게 누군가의 지출 내역을 확보할 수만 있다면 그가 어떤 사람인지,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싫어하며 무엇을 추구하는 사람인지, 나와 어울릴 가능성이 충분한 사람인지 등을 꽤나 정확하게 유추할 수 있을 것이다. 지출 내역은 ‘프로파일링’의 최고 원천이다.
어디에 돈 쓰는 것이 아깝나요?

물론 지출 내역은 개인 정보라서 취득하기 어렵거니와 의도적으로 취득하려는 행위는 범죄에 가깝기에 추천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상대방과 이야기를 나누거나 그 사람의 행동이나 반응을 보면 어느 쪽에 돈을 많이 쓰고 적게 쓰는지 대략 판단할 수 있는데, 그보다는 ‘어디에 돈을 쓰는 것을 아까워 하고, 또 아까워 하지 않는지’를 깨달을 수 있다는 점이 더 가치 있는 정보다. 



살면서 주변의 지인들을 관찰해 보니 ‘아까워 하는 지출처’와 ‘아무리 써도 아까워 하지 않는 지출처’가 각자 다르다는 점을 자연스레 깨달았다. 그런 차이는 인간 유형을 구분하는 기준이라 해도 무방할 정도였다.

예를 들어, 지인 A는 의류 구입에는 한번에 수십만원의 지출을 당연시하면서도 내 책을 쓱 한번 보더니 “2만원이나 하다니! 너무 비싼 거 아냐? 잘 팔리겠어?”라고 진심으로 걱정해 준 적이 있다(내가 아는 한, A는 결국 내 책을 사지 않았다). 지인 B는 1인분에 1만원이 넘어가는 식당에는 고개를 절레절레하면서도 술값 몇 십만원 지출에는 “좋은 술은 원래 비싼 법이지. 싸고 좋은 건 없어.”라며 합리화한다. 

지인 C는 1년에 수차례 해외여행을 즐기면서도(물론 코로나 19 이전에) 자동차는 무조건 중고로만 구입한다. 차는 굴러가기만 하면 된다는 게 그의 신조다. 지인 D는 자동차 튜닝에는 수백만 원의 지출을 당연시하지만 1시간에 3천원 하는 주차비가 아깝다고 주택가 골목에 아무렇게나 세웠다가 위반딱지를 떼이곤 한다.

지출을 아까워 하지 않는 ‘종목’이라 해도 ‘세부 종목’에 따라서는 돈을 낼 때 손을 벌벌 떠는 지인 E도 있다. 그는 수십만원을 호가하는 오디오 기기는 굶는 한이 있더라도 구입하지만 음악 스트리밍 사이트의 월 구독료 5% 인상(500원 상당)에는 분노를 금치 못하며 몇백 원이라도 싼곳을 찾으려 눈에 불을 켠다. 지출 취향에 있어 옳고 그름은 없다. DNA가 다르듯, 아까운 돈과 아깝지 않은 돈 역시 사람마다 다를 뿐이다(그래도 나는 A가 좀 얄밉긴 하다).

‘돈 쓰기 아까워 하는 종목’과 ‘돈이 전혀 아깝지 않은 종목’이 사람들마다 다르기에 이는 갈등과 다툼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부부 중 아내는 여행을 가면 좋은 잠자리를 중요시하여 고급 호텔 예약을 주장하지만 남편은 “어차피 낮에는 관광을 다닐 거고 밤에는 쓰러져 잘 텐데 아무데서나 자면 어때?”라고 맞받아쳤다가 여행이고 뭐고 3박 4일 간의 부부싸움으로 비화되는 경우가 흔하지 않은가? 그냥 얌전히 받아 마실 것이지 한 병에 수십만 원인 본인 소장의 와인을 한 잔 따라주는 친구에게 “너는 왜 마시면 없어지는 와인에 그렇게 돈을 쓰니? 그 돈 모아서 전세집이라도 마련해야지!”라고 꼰대짓을 했다가 우정에 금이 가는 사건이(그리고 이와 유사한 사건이) 제법 많다. 

상대방이 내 돈을 가져다 쓰는 것도 아니고 내가 돈 쓸 기회를 제한하는 것도 아니며 공중도덕에 어긋나는 행위에 돈을 쓰는 것도 아닌데, 남이 어디에다 돈을 쓰든 무슨 상관인가? (물론 부부 같은 경제공동체는 충분히 상관해야 한다.) 우리는 그저 “아, 이 사람은 여기에 돈 쓰는 걸 아까워 하는구나.” 혹은 “여기엔 팍팍 돈을 쓰네?"라고 판단하고 적절하게 자신의 행동과 말을 조절하거나, 필요에 따라 적당한 거리를 두거나, 아니면 아주 자연스레 손절하면 그만이다. 

식도락을 중시하는 커플이 그렇지 않은 커플과 함께 해외여행을 갔는데 상대 커플이 한식을 고집하는 바람에 현지음식은 입에 대본 적이 거의 없다면, 다음부터는 여행을 같이 가자는 제안을 하지 않으면 된다. 

“돈을 믿으라.”는 말은 타인이 어떤 사람인지를 객관적으로 일러주는 지출 내역을 살펴보고 인간관계를 주도적으로 관리하라는, 그리고 인간관계로 스트레스를 받지 말라는 뜻이다. A를 안 보고 사니 이처럼 행복할 수가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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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에 '뿅가는' 방법   

2024. 7. 31.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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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소와 산소를 섞어 놓는다고 물이 만들어지지 않는 이유는 활성화 에너지가 공급되지 않아서입니다. 글을 쓰겠다고 책상에 앉아 키보드에 손을 얹어 놓는다고 글이 그냥 써지지는 않죠. 그냥 쓰기가 싫어집니다. 이미 아무것도 하지 않지만 더욱 격렬하게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습니다.

무엇으로 글을 써야 할지 아이디어가 있어도 그렇습니다. ‘어떤 말을 먼저 써야 할까? 기승전결 구조가 나와야 하는데 구조가 안 잡히네. 결론은 또 어떻게 맺어야지?’ 첫 문장의 첫 단어를 쓰기까지 이렇게 숱한 번민에 시달릴 겁니다. 저 역시 글의 첫 문장을 쓰기까지 무척 긴 시간을 허비하죠.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어떻게 해야 글을 쓰기로 마음 먹은 시점과 첫 문장을 타이핑하는 시점 사이의 간격을 최소화할 수 있을까요? 글을 써야지 하자마자 바로 글을 쓰기 시작할 수 있는 사람은 극히 드물지만(누가 있을까?), 적어도 그 시간 간격을 10분 이내로 줄일 수는 있지 않을까요?

 



글쓰기 싫은 마음을 극복하는 방법은 ‘일단 쓰는 것’입니다. 너무 간단한가요? ‘이런 조언 같지도 않은 조언 같으니!’란 짜증스러움이 밀려들더라도 제 말을 끝까지 듣기를 바랍니다. 저는 글을 쓰기 싫어 미쳐버릴 것 같을 때 스스로에게 이렇게 말하며 마음을 진정시킵니다. “이봐, 너무 미치지 말고. 일단 5분만 글을 쓰자. 그리고 5분이 지나면 냉정하게 글쓰기를 중단하는 거야. 어때? 5분만 쓰면 돼. 노래 한 곡 들을 시간 밖에 안 돼. 그 정도는 쓸 수 있잖아?” 그리고 빈 화면에 아무 문장이나 일단 쓰기 시작합니다. 누가 볼 것도 아니니 첫 문장부터 근사하게 쓸 필요는 없죠.

어떤 주제든 쓰고 싶은 문장들이 있지 않습니까? 문장 구조나 글을 전체 구조는 염두에 두지 말고 쓰고 싶은 내용을 떠오르는 대로 써보세요. 이렇게 첫 문장을 쓰면 이어지는 문장이 자연스레 떠오를 겁니다. 혹시나 부드럽게 이어지지 않는다고 걱정하지 마세요. 다시 머리 속에 떠오르는 다른 문장을 쓰면 되니까요. 

이렇게 5분을 지속해 보세요. 그러면 놀랄 만한 일이 생깁니다. 타이머가 5분이 지났다는 알람을 울려도 글을 그만쓰고 싶지 않을 테니까요. 어느덧 30분이 지나고 1시간이 지나 2시간 정도가 지나면 글 한 편이 ‘짠!’하고 완성되는 기쁨을 만끽할 테니까요. 

왜 그럴까요? 오래 달리기를 해본 사람은 알겠지만 심장이 터질 것 같은 사점(死點, dead point)이 지나가면 팔다리 움직임, 심장 박동, 호흡이 안정화되면서 그때부터는 편안하게 달릴 수 있습니다. 이를 ‘러너스 하이(runner’s high)’라고 합니다. 한마디로 글쓰기에 '뿅'가는 겁니다.

제 경험상 글쓰기에서는 5분이 사점 도달 시간인 것 같습니다. 5분간 글쓰기에 몰두하면 5분이 지나가더라도 계속 글을 쓰고 싶은 의욕이 글쓰기가 싫어 미쳤었던 저를 ‘하드 캐리’하듯 끌고 가죠. 떠오르는대로 문장을 쓰며 첫 5분을 잘 견디면 그 다음부터는 머리 속에 자기도 모르게 정리되고 글의 선후 관계와 인과관계, 기승전결의 구조가 저절로 완성되는 희열을 경험하곤 합니다. 저는 이것을 ‘5분 법칙’이라고 부릅니다.

2000자 가량의 글을 쓰는 데 짧으면 1시간, 길면 3시간 가량이 들곤 합니다. 글 쓰기가 싫은 까닭은 지레 겁먹기 때문일지 모릅니다. 시작하지도 않았는데도 엉덩이가 아파올 테니까요. 5분만 쓰고 과감하게 손을 놓는다는 결심으로 모니터 앞에 앉아 보세요. 가족 누군가가 '밥 먹어라' 소리쳐도 전혀 들리지 않는 '라이터스 하이(writer's high)'를 경험해 보세요. 글쓰기에 '뿅' 가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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