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3월, 나는 이런 책을 읽었다   

2008. 4. 2. 2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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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달(2008.3)에는 겨우 4권의 책을 읽었다. 한달에 최소 10권이 목표였는데, 프로젝트가 겹쳐서 생기고, 일주일간 해외 출장을 다녀오는 바람에 경황이 없었다. 저조한 성적인데, 4월에는 만회 좀 해야겠다.

지금까지의 실적
1월 : 10권 (2008년 1월에 읽은 책들)
2월 : 12권 (2008년 2월, 나는 이런 책을 읽었다)
3월 : 4권
(총 = 26권)



즐거움, 진화가 준
최고의 선물

 

동물도 즐거움을 느끼고 좋아한다. 인간 중심의 사고를 주의하라는 메시지를 준다.

비열한 시장과
도마뱀의 뇌

 

서평을 부탁 받은 책. 행동경제학 내용을 쉽게 풀어 쓴 책으로서, 입문서로서 추천할 만하다. (서평 써야 하는데... 언제 쓰나...)

욕망의 발견

 

행복과 욕망과의 함수 관계를 특유의 시각으로 잘 풀어냈다. 강추!

크기의 과학

 

크기가 진화의 원동력이라는 독특한 견해. 기업의 크기와 진화 사이에도 뭔가 관계가 있지 않을까 생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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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동에는 삼성이 없다   

2008. 3. 23. 2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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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에게서 들은 이야기다. 업무차 우리나라에 처음 오게 된 어떤 미국인이 한국측 파트너와의 저녁식사 자리에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삼성이 정말 대단한 회사인가 봐요? 회사 이름을 딴 지역이 있으니 말입니다.” 무슨 말이냐고 상대방이 물으니까, “저는 지금 삼성동에 있는 호텔에 묵고 있거든요. 회사 이름을 지명으로 쓸 정도라면 그곳에 삼성이 투자를 정말 많이 한 모양입니다.” 라며 놀란 표정을 지었단다. 우리나라 물정에 익숙하지 못한 외국인이 삼성(三星)과 삼성(三成)동을 같은 것으로 오해했다는 우스갯소리다.

나도 어린 시절 삼성동에 삼성 본사가 있는 줄 철썩 같이 믿고 지냈다. 비단 나 뿐만은 아닌 듯싶다. 인터넷에서 삼성동을 검색해 보면, ‘삼성의 이건희 회장이 삼성동에 사는 것 아니냐?’는 딴에는 꽤 진지한 질문이 올라와 있을 정도니 말이다. 삼성동이란 지명은 1914년 경기도 구획 확정 때 저자도리(楮子島里), 봉은사(奉恩寺), 무동도(舞童島)의 세 마을을 합하여 삼성리(三成里)라고 한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풀이하면 ‘세[三] 마을로 이루어진[成] 동네’ 라는 뜻이다. 회사 이름인 삼성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나는 강남에 살지 않는다. 어쩌다가 같은 강남권으로 끼어주는 송파구의 끄트머리에 산다. 하지만 일하는 곳은 강남이다. 그리고 그 중 비교적 최근에 빠르게 도시화가 이루어진 삼성동의 가장 높은 빌딩에 세 들어 일한다. 촌놈인지라 강남구를 속속들이 알지 못하지만, 몇 년간 이곳에서 일하다보니 삼성동이 어느덧 사는 집처럼 편안하게 느껴지고 싫은 점보다 좋은 점이 눈에 더 잘 띈다. 정이 든 모양이다.

삼성동에는 삼성사(社)가 있는 줄 알고 지내던 시절, 지금의 내가 이곳 삼성동에서 일하게 될 줄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88년의 가을, 학교에서 단체로 올림픽 경기를 관람하러 갔을 때, 나의 기억으로 삼성동은 도시의 일부라기보다 여느 시골에서 만날 수 있는 풍경처럼 농작물이 군데군데 익어가는 너른 들녘이었다. 그랬던 곳이 이제는 강남에서도 차들이 유난히 붐비고 유동인구가 웬만한 도시 인구를 능가하며 빽빽하게 고층빌딩들이 줄지어 선 신흥 다운타운으로 변모하였으니, 세월이 빠른 것인지 내가 모르는 사이 세상이 재빨리 탈바꿈을 하는 건지 분간이 어렵다.

삼성역을 내려 사무실로 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코엑스몰로 향해야 한다. 삼성역 출구부터 코엑스몰까지 이어진 작은 광장은 첨단의 각축장이다. 바늘 꽂을 공간만 있으면 어김없이 최신의 상품들이 광고된다. 게다가 일주일이 멀다하고 광장은 또 다른 신상품들의 차지가 된다.

그곳만 보고 있으면 기술의 첨단이 어느 곳으로 흘러가는지 알 수 있을 정도다. 금세 벗겨지고 다시 입혀지는 광고물들을 보면 세상이 너무 빨리 돌아가는 것이 아니냐는 푸념이 나올 법도 하지만, 나는 그곳에서 세상의 역동(力動)과 창의를 본다. 단거리 육상선수의 다리 근육과도 같은 힘을 느낀다. 과거가 그립다는 명목으로 나태를 합리화하는 나에게 새 힘으로 충전하고 새로운 것으로 몸과 마음을 채우라는 세상의 뼈아픈 충고를 듣는다.

이 조그만 광장은 늘 사람들로 붐빈다. 내게 있어 길에서 만나는 사람들과 광장에서 모인 사람들은 느껴지는 성질이 다르다. 길에서의 사람들은 그저 스쳐 지나기에 바쁘다. 분명 여러 생각들로 가득 차 있겠지만 그들의 표정은 오직 앞으로만 걸어가겠다는 의지 하나로 대표되어 있다. 몰가치한 표정이다.

그러나 광장에 모인 사람들의 표정에는 개성이 숨을 쉰다. 초조하거나 무료하거나 기쁘거나 화난 표정들로 누군가를 기다리는 사람, 연인이나 친구와 가벼운 농담으로 깔깔대는 사람, 무슨 주제인진 몰라도 토론에 몰입된 사람, 아니면 하릴없는 얼굴로 담배연기를 날리는 사람. 각기 다른 인생들이 광장으로 모여들어 저마다의 이야기를 저마다의 표정과 몸짓으로 내게 들려주고 간다. 나는 그래서 딱히 광장이라 부르기에도 뭣한 작은 이 공간을 어느 순간 좋아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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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장을 지나 코엑스몰로 들어선다. 내게 코엑스몰은 두려운 곳이었다. 바로 코앞에 있는 줄도 모르고 먼 길을 돌아가거나 한 곳에서만 뱅뱅 돌다가 길을 잃기 일쑤였기 때문이다. 그러던 내가 이제는 익숙해져 안방처럼 누비고 다닌다. 이곳에 처음 들어선 사람은 엄청난 넓이로 구축된 지하세계에 놀란다. 미국의 마케팅 전문가인 페이스 팝콘은 자신만의 안전한 공간에 머물면서 욕구를 충족시키는 사람을 ‘코쿤족(Cocoon)'이라 말한다.

눈이 팽팽 돌 정도로 바쁜 현대인들은 많건 적건 코쿤족의 피를 지니고 있다. 코엑스몰은 그들에게 안락한 공간을 제공하는 커다란 고치[cocoon]집이다. 밖이 덥거나 춥거나 항상 일정한 날씨를 유지하며 먹을 것, 입을 것, 놀 것들이 한곳에 모여 사는 온실 같은 곳이다. 궂은 날씨에 힘들여 밖을 돌아다니지 않아도 연인과 사랑하는 만큼의 속삭임에 오로지 집중케 하는 곳이다. 아침에 놀러와 밤늦게까지 짭짤하게 당일치기 여행을 즐길 수 있는 경제적인 곳이다. 이것이 코엑스몰의 미덕이며, 내가 이곳에 일터를 잡은 이유이다.

일본 여행 때 도쿄의 시오도메에 간 적이 있다. 고층빌딩, 상점, 레스토랑, 박물관, 극장, 그리고 오다이바로 가는 무인전철인 유리카모메가 한데 어우러진 복합공간인 그곳은 ‘시오사이트’라고 불리는데, 마치 미래 도시에 온 듯 한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구조물들이 여행자의 눈을 즐겁게 했다. 도쿄에 시오도메가 있다면 서울에는 삼성동이 있다.

머지않아 모노레일이 건설되는 등 더 많은 변화와 발전이 이곳을 기다리고 있다. 이곳은 서울의 미래를 맨 먼저 경험할 수 있는 곳, 한국의 미래를 가장 앞서 제시하는 대표지가 될 것이 틀림없다고 말한다면, 삼성동에 일터를 가진 자의 팔불출 같은 지역사랑이라 놀려댈지도 모르겠다. 삼성동의 어제는 잘 알지 못했지만 삼성동의 내일은 잘 알 것만 같다. 삼성동의 미래를 꿈꿔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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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계산에서 만난 유명인들   

2008. 3. 22. 2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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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지인들과 함께 청계산에 올랐다. 원래 등산은 좋아하지 않는 편이지만, 등산의 참맛을 알면 그 즐거움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리란 말도 있고 해서 정말로 오랫만에 산에 올라 보았다. 아마도 6년만이었을 게다.

산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청계산이 무슨 산이냐, 뒷동산에 불과하다'며 등산의 '등'자로 붙이지 말라며 타박을 하겠지만, 산은 산인지라 오랫만에 산에 오르는 나로서는 무척 힘들었다. 입에서 단내가 났지만 동행한 분들에게 누가 될까 싶어 억지로 힘을 냈다. 체력이 떨어진 건지, 운동 좀 해야지 안 되겠다.

그래도 옥녀봉에 올라서 시원한 산바람을 맞으니 힘들었던 몸이 푸근해지면서 피로가 말끔히 가셨다. 바람 맞으며 1000원 짜리 인스턴트 커피 한 잔을 마시는 느낌도 좋았다. 각설하고...

청계산에서 오늘 유명인들을 한꺼번에 그렇게 많이 본 것은 처음이다. 청계산이 서울 근교에 있는 산이고 비교적 손쉽게 오를 수 있는 산이라서 그런가? "어, 어디서 많이 보던 사람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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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계산 원터골 입구에서는 싱글벙글 쇼를 진행하는 김혜영씨를 봤다. 안경을 낀 수수한 얼굴이었는데, 생각보다 체격이 아담해 보였다. 그리고 뚝딱이 아빠(EBS '모여라 딩동뎅'에 나오는) 김종석씨도 거기 있었다. 연예인끼리 등산 모임이 있었나 보다. 또, 산 중턱의 쉼터에서 한 숨 돌리고 있으니 효녀가수 현숙씨의 모습도 보였다. 그녀는 김혜영씨 일행을 알아보고 반가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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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유명인들 청계산에 집결했나?'라고 생각하며 다시 길을 나서는데, 어디서 많이 본 사람이 운동선수들과 함께 내려오고 있었다. 입안에서 이름이 맴돌 뿐 생각이 나지 않았다. "어, 누구더라? 아, 맞아! 김도훈 선수!" 네이버를 검색해 보니 축구 국가대표였던 김도훈 선수가 은퇴한 이후에 일화 축구단의 코치로 일하고 있단다.  지금 다시 국가대표로 복귀해도 손색이 없을 만큼 단단하고 건장한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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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녀봉 정상 아래의 산바람 쉼터에서 퍽퍽한 다리를 쉬고 있는데, 이번에도 아는 얼굴이 지나갔다. 요즘 뉴스를 달구고 있는 삼성 구조조정본부의 이학수 부회장이었다. '어, 그저께만 해도 14시간의 강도 높은 특검 조사를 받고 나왔다는데, 어떻게 여기에...?' 아직 구속된 몸이 아니기 때문에, 그리고 아직 유죄임이 판명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등산하는 건 그의 자유이지만, 웬지 그 모습이 좀 생경스럽게 느껴졌다. 나라면 그런 상황에서 등산할 여유를 갖지 못할 것 같기 때문이었다.

산에 같이 오른 모 출판사 사장님에게 "영업하시려면 청계산으로 오셔야겠다"라고 농을 쳤다. 날씨 좋은 날, 청계산에 올라보라. 유명인 한 두사람 정도는 볼 수 있지 않을까? 그나저나 빨리 체력을 높여서 서울 근교의 산들을 하나씩 올라봐야 할 텐데, 걱정이다.

(위 사진들은 네이버에서 얻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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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부가 환경을 망치려 든다!   

2008. 3. 21. 2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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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권 2천만 주민의 식수원인 팔당호가 위협 받고 있다. 환경부가 오늘 이명박 대통령에게 보고한 환경 규제 완화 방안 때문이다. 보고의 요지인 즉, 취수장 반경 15Km 이내에 어떠한 산업시설을 지을 수 없다는 규정을, 폐수만 흘려 보내지 않는다면 한계선을 7Km로 완화하여 주겠다고 한다. 이명박 정부가 내세운 기업 관련 규제 완화 정책에 환경부가 적극 호응하고 있는 셈이다.

요즘 정부가 하는 일은 날마나 국민들의 뒤통수를 '퍽치기' 하는 느낌이 든다. 환경을 보존하고 잘 가꾸라고 만들어 놓은 부처가 그 환경 정책의 미지막 마지노선을 철수하면서까지 정부와 코드를 맞추는 꼴이라니!

15Km라는 한계선은 식수원의 안전성을 위해 포기해서는 안 되는 생명선이다. 7Km로 줄였을 때 과연 어떤 일이 벌어질까? 보호반경을 지금의 반 정도로 줄여도 충분히 식수원을 보호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는 모양인데, 수학의 상식을 알고 있는 자라면 절대로 그 같은 봉이 김선달식 정책을 입안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길이가 두 배로 늘어나면, 면적은 네 배로 늘어난다. 반대로 길이가 반으로 줄어들면, 면적은 1/4로 줄어든다. 아래의 그림을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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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수원을 보호할 수 있는 면적이 707제곱킬로미터에서 154제곱킬로미터로 줄어들어서, 기존보다 무려 1/4.6 정도(약 21%) 밖에 안 되는 상황이 벌어진다. 이게 무엇을 의미할까? 기존에 707제곱킬로미터의 상수원 보호 면적으로 막을 수 있었던 환경영향을 1/4도 안 되는 면적으로 방어를 해야 한다는 걸 뜻한다.

공간(3차원) 개념까지 동원하면 더 심각해질 수밖에 없다. 환경의 오염은 땅 위에서 2차원적으로만 일어나지 않는다. 알다시피 오염물질은 '허공과 땅 속'을 통해 3차원적으로 식수원을 '입체적'으로 위협한다. 보호 반경이 15Km일 때의 보호권역은 14130입방킬로미터(=4/3*3.14*15*15*15)가 되지만, 환경부 방침대로 7Km로 줄이면 1436입방킬로미터(=4/3*3.14*7*7*7)가 되어 10분의 1 수준으로 그 부피가 급격히 줄어든다.

보호반경이 15Km일 때 1 단위의 환경오염물질이 식수원에 영향을 미치는 정도(환경영향도)를 1 이라고 하자. 그리고 식수원을 보호하기 위해 최대로 허용 가능한 환경영향도를 5 라고 가정하자.

환경부의 논리는 보호반경이 7Km로 줄어들면 환경영향도가 2 정도가 될 것이니 그 정도면 5를 넘지 않으므로 충분히 식수원을 보호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것 같은데, 과연 그럴까? 내가 위에서 제시했듯이, 보호반경이 7Km로 줄었을 때의 환경영향도는 아마도 10 이상이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안전한 물을 더 이상 보장 받을 수 없으며, 머지 않아 공장시설의 압박 때문에 숨지기 직전의 팔당호를 살리니 마니를 놓고 한바탕 난리를 피우게 될 것이다.

보호반경을 줄여서 기업을 잘 살게 하는 것이 지속가능한 발전의 해법이 아니다. 환경정책의 주무부서로서 환경부는 본래의 존재 목적에 충실하길 강력히 요구한다. 보존할 것은 무슨 일이 있어도 보존하는 것이 환경부의 미션이 아니던가? 왜 환경부가 앞다투어 기업 발전을 걱정하는가? 그런 건 경제 부처가 알아서 할 일이니, 제발 제 할 일이나 잘 하시라. 그렇게 기업 발전이 걱정이면 국토해양부 소속의 국(局)으로 스스로 강등을 요청하라.

이명박 정부는 기업을 편하게 해주는 걸 지속가능경영이라고 알고 있는 모양인데, 그 같은 근시안적이고 인기영합적인 '기업 프랜들리 정책'으로 지속가능성의 가치를 오용하지 말기 바란다. 환경을 한번 훼손하면 복구하는 데에는 오염시킨 기간의 수십, 수백배의 시간이 필요하다. 정권은 겨우 5년 뿐이지만, 더럽혀진 환경은 수백년 동안 우리를 괴롭힌다.

식수원 보호반경 축소 방침을 즉각 철회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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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은퇴하는 내가 되자   

2008. 3. 21. 1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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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인가 TV를 켜니 한 노부부가 넓고 넓은 푸른 잔디 위에서 나란히 골프를 치는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남편이 말했다. “이게 바로 대통령 골프야. 자, 봐. 이 넓은 골프장에 우리 밖에 없잖아.” 부인은 이렇게 말하는 남편을 바라보면서 수긍한 듯 옅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하늘은 말 그대로 새파란 물감을 뿌린 듯했고 이따금 흘러가는 흰 구름이 한가로운 풍경 속에서, 곱게 늙어가는 노부부의 웃음은 청정한 공기만큼이나 맑게 들렸다.

노부부는 은퇴 후의 생활을 고민하던 끝에 필리핀의 ‘바기오’라는 고지대에 위치한 소도시에 정착했다. 남자는 한국에서 중령으로 예편한 뒤 직장을 다니다가 IMF 위기 때 불어 닥친 감원태풍에 휩쓸려 직장을 잃고 말았다. 그 때 그의 나이 50대 초반. 새로운 직장을 찾으려고 백방으로 노력했으나 여의치 않던 그는 어느 순간 생각을 바꿨다. ‘무엇하러 내가 아등바등하며 살아야 하는가, 새 직장에 들어간들 몇 년이나 다닐까, 이럴 바에 나에게 남은 30년 정도의 여생을 즐기며 살 방법을 찾자.’ 그래서 그가 3년 정도의 사전 답사를 통해 찾아 낸 곳이 먼 이국의 땅이다.

1년 내내 덥지도 춥지도 않은 깨끗한 날씨와 늘 푸른 자연과 벗하며 살아가는 TV 속 노부부의 생활을 본다면, 십중팔구 ‘나도 저들처럼 살고 싶다’는 생각이 절실하리라. 각박해지고 치열해지는 우리 주변의 많은 것들. 스트레스로 찌든 위장 속으로 쓴 술을 넘겨야만 겨우 살 것 같은 심정. 퇴근길에 무심히 창 밖을 내다보다가 모르는 사이 차거나 기운 달을 보게 되면 훌훌 털고 멀리 떠나고픈 욕구. 그러나 차마 털어내지 못하는 안타까움과 달관한 듯 스스로에게 웃어 보이는 가난한 마음. 사회생활을 하면서 1년에 한두 번쯤은 이런 감정에 휩싸이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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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보다


나는 특정한 직장에 매어있는 피고용자 신분이 아니라서 직장인들보다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시간이 있는 편이다. 컨설팅 프로젝트가 아니라면 나 자신을 위해 쓸 수 있는 시간을 제법 가질 수 있다. 읽고 싶었던 책을 실컷 읽을 수 있고, 당일로 가능한 여행도 가고, 아니면 그저 멍하니 공상을 즐길 수도 있다.

나의 직업을 부러워하는 직장인 친구들이 있지만, 고백하건데 나는 자유시간 동안조차 자유롭지 못하다. 혼자 있는 시간에도 지금 진행되고 있는 컨설팅 프로젝트가 머릿속을 떠나지 않고, 앞으로의 사업계획에 골몰하게 돼버리며, 제안서를 제출한 프로젝트를 따낼 수 있을까로 초조하게 돼버리기 때문이다. 퇴근을 해서도 노트북을 켜고 앉지 않으면 불안한 마음을 어쩔 수 없다. 내일 할 일을 미리 생각해 놓지 않으면 잠을 뒤척인다.

누구는 이런 나를 ‘일중독자(Workaholic)’라고 폄훼하듯 말하곤 한다. 전적으로 맞는 말이다. 직업상 어쩔 수 없지 않느냐고 나 스스로에게 변명해봤자 소용없는 일임을 안다. 사는 것은 나인데 어떨 때는 일이 살고 있는 것 같다. 나는 어디로 갔는지 모르겠고 숱한 일들이 정신과 육체를 점거한 듯하다. 자신에 대한 철저함이 지나쳐 정서와 감성이 말라버린 우물처럼 텅 빈 듯하다.

어느 날 문득, ‘느린 삶’을 살아가는 TV 속 노부부를 보며 퍼뜩 정신을 차린 후, 이런 마음을 먹었다. “매일 은퇴하는 내가 되자”라고. 하루의 일과가 끝나면, 하얀 포말이 생겨났다 부서지는 바닷가에 서있기도 하고, 푸른 잔디에 누워 느린 바람 따라 흐르는 구름을 보기도 하고, 안개에 묻힌 섬을 한가로이 노니는 내가 되어 보기로 한다. 일 따위는 이제 하지 않아도 돼. 내일이 오기 전까지 생의 가장 금쪽같은 서너 시간동안 난 은퇴했으니까 말이지. 내일 일은 걱정하지 않아. 오늘의 쉼이 소중할 뿐이야.

누군가가 말한 ‘익숙한 것들과의 결별’의 의미란, 알게 모르게 우리를 지배하고 있는 일상을 벗어 던지고 진정한 나를 찾자는 말이 아닐까? 그러니, 매일 은퇴하는 ‘내’가 되자. 나는 나의 삶을 지배하게 될 것이고, 삶은 나에게 꿀맛 같은 휴식을 줄 것이다. 그래서 온전히 싱싱한 ‘나’로 다시 태어나자. 그것이 각박하고 치열한 우리들 일상의 유일한 탈출구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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