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금치가 건강에 좋다고? 천만에~!   

2008. 6. 11. 2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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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르터스가 올리브를 못 살게 굴 때마다 뽀빠이는 깡통에 든 시금치를 입에 털어 넣고는 부르터스를 번쩍 들어서 바다 속에 내다 꽂는다. 그런 다음 뽀빠이는 시청자를 향해 이렇게 말한다. "시금치를 먹으면 힘이 세진다는 뽀빠이 아저씨의 말씀~~!"

시금치는 건강에 좋다고 알려져 있다. 아마 여러분도 그렇다고 '알고' 있을 것이다. 일반 야채보다 철분 함량이 10배나 높다고 해서다. 하지만, 시금치는 배추나 브로콜리 같은 야채보다 오히려 철분 함량이 낮다. 물론 시금치를 먹어서 나쁠 것은 없지만, 먹는다고 해서 다른 채소보다 더 좋은 것은 아니다. 시금치를 먹는다고 해서 뽀빠이처럼 힘이 불끈 솟아오른다는 것은 어디까지나 만화의 이야기일 뿐이다. 왜 이런 오해가 생겼을까?

시금치의 영양학적 효능이 실제보다 과대하게 평가된 이유는 어이 없는 실수 때문이라고 한다. 시금치의 영양 성분을 연구하던 과학자의 비서가 논문을 타이핑할 때 소수점을 한 자리 오른쪽에 찍었다. 예를 들어 0.052% 라고 해야 할 것을 0.52% 라고 잘못 기재한 것이다. 시금치가 다른 야채들보다 10배 이상 철분이 많다고 오해를 받고 있는 이유이다.

또 '말린' 시금치를 가지고 영양 성분 분석을 했기 때문에 철분 함량이 높게 나왔다는 설도 있다. 시금치는 약 90%가 수분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말린 시금치로 영양 분석을 하면 실제보다 철분 함량이 10배나 더 많은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시금치 때문에 건강해진 것은 아이들이 아니라, 뽀빠이 덕에 판매가 신장된 시금치 판매상일 것이다. 오히려 아이들과 부모들은 시금치를 먹고 먹이느라 스트레스만 더 쌓였을 거다. 이처럼 우리가 상식으로 '알고 있는 것'들, 당연히 그렇다고 별 의심 없이 받아 들이고 있는 것들 중 상당히 많은 것들이 실제와 다른 경우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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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사실을 '안다'라고 말하려면, 두 가지 조건을 만족해야 한다. 첫번째 조건은 그것을 믿어야 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신념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1 + 1 = 2 라는 사실을 우리가 알고 있으려면, 답이 2임을 믿어야 한다. 어떤 사실이나 사물을 믿지 않고서는 그것을 안다고 말할 수 없다. '모든 사람은 죽는다'라는 명제가 참이라는 사실을 알려면, 모든 사람이 언젠가는 죽을 것을 먼저 믿어야 한다. 시금치가 몸에 좋다는 걸 믿지 않고는 감히 안다고 말할 수 없는 것 아니겠는가?

하지만 무언가를 믿는다고 해서 '아는 것'은 아니다. 앎의 두번째 조건은 그것을 증명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1 + 1 = 2 라는 식을 증명해서 참 또는 거짓의 여부를 판단해야 우리는 그것을 '안다'고 말할 수 있다. '나는 신이 존재함을 안다'라고 말하려면 일단 그것을 믿어야 하고 그 다음에는 증명을 해야 한다.

증명이라고 말하면 수학이나 과학과 같이 이론의 여지가 없는 명확한 판단을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물론 수학적으로나 과학적으로 증명되면 더할 나위 없이 좋다. 먼저 수학과 과학으로 증명 가능한지를 먼저 고민하는 것이 좋다. 수학과 과학으로 증명할 수 있는데, 미신이나 신화를 먼저 끌어들여서는 안된다. 시금치가 철분이 많아서 몸에 좋다고 '그냥 믿기' 전에, 정말 그러한지를 과학적으로 먼저 증명해야 한다는 말이다.

물론 수학과 과학만으로 모든 걸 증명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반드시 그럴 필요도 없다. 다른 사람에게 자신이 믿는 바를 조리에 맞게 설명하고 이해시켜서 나와 공감대를 형성하도록 만들면 그것이 바로 증명이다. 비록 어떤 사실이 진리라 할지라도 '내가 믿으니까 너도 그냥 믿어라' 식으로 협박한다면, 그 사람은 진정으로 '아는 것이 아니다'.

시금치가 건강에 좋다는 걸 안다고? 그걸 믿을 수는 있겠지만, 본인이 직접 증명하지 않았거나 다른 사람에 의해 증명되지 않은 거라면 '안다'라는 말을 거둬야 한다. 무언가를 안다고 말하려면, 내가 그것을 믿고 그것을 증명할 수 있어야 한다.

 앎 = 믿음 + 증명


만일 증명은 했는데 믿기가 어렵다면 우리는 그걸 안다고 말할 수 있을까? 1 + 1 = 2가 참임을 증명했는데도 그게 미덥지 않다면, 역시나 그걸 '안다'고 말하지 못한다. 이런 의미에서 아인슈타인은 양자역학을 '알지 못했다'. 그는 양자역학에서 말하는 여러 발견이 사실임을 인정했지만 그럼에도 자신을 그걸 믿을 수 없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양자역학을 태동시킨 위대한 과학자인 그가 왜 그랬을까?

왜냐하면 '안다'는 말은 책임을 동반하기 때문이다. 1 + 1 = 2임을 안다면, 믿어야 하고 증명해야 하는 의무감도 함께 생기는 것이다. 아인슈타인은 자신이 믿지 못하는 것을 증명해야 한다는 책임을 거부했다. 따라서 양자역학에 있어 그의 '앎'의 수준은 양자역학을 들어본 적도 없는 일반 사람과 다르지 않다.

무언가를 안다는 것은 책을 읽거나 강의를 듣는 것처럼 수동적이며 정적인 행위가 아니다. 앎은 적극적이고 동적인 과정이다. 끊임없이 믿고 증명할 수 있어야 눈으로 읽는 글과 귀로 듣는 말이 전적으로 앎의 세계로 들어와 인식의 지평을 넓힌다. 눈에 보이는 대로 믿고 귀에 들리는 대로 믿고 수용한다면, 우리는 절대 그것을 '알지 못하며' 그때문에 불쌍한 아이들은 오늘도 시금치를 먹지 않기 위해 매 끼니마다 부모와 전쟁을 벌일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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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푸스 군, 모델이 되다   

2008. 6. 6. 2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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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400에 50마만 가지고, 집 앞 공원에서 심심풀이로 찍어 봤습니다. 요즘엔 E-400만 가지고 다니네요. E-330과 E-3가 장롱 속에서 울고 있답니다. 역시 가벼운 게 최고!
모델이 없는 관계로, 불쌍한 올림푸스 렌즈캡군(君)이 자기 의지와는 상관없이 모델이 되어야 했습니다. 올림푸스 광고 같지 않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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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아의 옥탑방   

2008. 6. 5. 1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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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아의 옥탑방


누워 어둔 천정을 본다
비가 오면 그대로 들이치는 창가엔
그가 잊고 떠난 구겨진 담뱃갑
취객의 노래 소리, 혹은 주인집의 때늦은 설거지 소리,
그리고, 심장 소리

그는 이곳에 와서 조금 울고 싶었을까
모퉁이로 사라지며 시든 그의 젊음을 보여주고 싶었을까

나선형 계단을 타고 오르며 빙긋
수줍은 머리를 긁고 빙긋
물 말은 밥 후루룩 먹고 빙긋

잔기침처럼 떠도는 그의 자취에
골 패인 시간만 자꾸 흐르고

아직 멀고 먼 새벽,
비 듣는 창 너머로
발돋움한 그리움은
뵈지 않는 별처럼 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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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회에는 Future Backward 방식의 시나리오 도출 방법을 알아 보았는데, 이번 회부터는 시나리오플래닝의 참모습이라 할 수 있는 Future Forward 방법을 함께 살펴보도록 한다. 전문가들이 각기 다른 시나리오플래닝 프로세스를 사용하고 있지만 이를 종합해 보면 그림 1과 같이 모두 6단계로 정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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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p 1 : 시나리오 방향 설정
시나리오플래닝의 첫 번째 단계는 시나리오의 방향을 설정하는 일이다. 시나리오의 방향은 핵심이슈 파악과 시나리오 틀 설정으로 나눌 수 있다. 핵심이슈 파악이란, 시나리오플래닝에 의해서 어떠한 문제를 해결할 것인가, 무엇을 의사결정 내려야 하는가를 정하는 것을 말한다. 핵심이슈 파악은 시나리오플래닝의 성공 여부를 좌우하는 매우 중요한 과정이라 할 수 있다. 미래는 어떻게 펼쳐질 것인가를 막연하게 그려보는 것은 별 의미가 없다. 해결해야 할 문제를 정해 놓은 다음에 미래가 현재 우리 회사의 문제해결과 의사결정에 어떠한 의미가 있을까를 생각해야 한다.

예를 들어보자. 개인의 입장에서는 내가 과연 모 지역의 집을 사야 하는가, 모 대학의 OO학과에 입학해야 하는가 등이 될 수 있으며, 기업의 입장에서는 장기적으로 우리의 투자 포트폴리오는 어떻게 가져가야 하는가, 사업확장과 다각화를 진행해야 하는가, 신규설비를 구축해야 하는가, 현재보다 인재를 더 많이 보유해야 하는가와 같이 조직에서 가장 중요하게 대두되고 있는 이슈를 찾는다. 이를 ‘핵심이슈’라 부르는데, 시나리오플래닝이란 이 핵심이슈에 대한 답을 모색해 나가는 과정이라고 보면 된다. 핵심이슈에 초점을 맞추지 않은 채 시나리오플래닝을 한다는 것은 모래밭에서 바늘을 찾는 격으로 ‘뜬구름 잡기’식의 오류에 빠질 위험이 있다.

핵심이슈를 규정했다면 ‘시나리오의 틀’을 결정해야 한다.(그림 2 참조) 시간범위, 지리범위, 시나리오 테마가 그것이다. 시간범위란, 5년 후의 미래, 20년 후의 미래 등 몇 년 후의 시나리오를 그려야 하는가에 관한 것이다. 시간범위는 회사가 속한 산업의 특성에 따라 다르게 결정될 수 있다. 변화의 속도가 매우 빠른 정보통신이나 IT 업체에게 20년 후의 미래는 핵심이슈에 대한 의사결정에 별 도움이 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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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그런 업체는 3년이나 5년 정도의 시간범위를 규정하는 것이 적당할 것이다. 만약 우리나라 산업구조의 변화나 국민의 식생활 변화 등에 관련된 시나리오를 도출하려면 적어도 10년 정도는 내다봐야 할 것이다. 시간범위는 또한 조직 내에 이미 수립되어 있는 전략과 연계되어야 한다. 만약 향후 5년까지의 사업투자전략이 이미 수립되어 실행 중에 있다면 굳이 3년 후의 미래를 그려본다고 해봐야 별 의미가 없을 것이다. 이럴 경우에는 5~10년 후의 미래를 시간범위로 채택하는 것이 보다 적절할 것이다.

시간범위 말고도 지리범위를 사전에 명확히 규정하는 것도 필요하다. 내가 집을 사야 하는가라는 이슈가 핵심이슈로 정해졌다면, 시나리오의 초점을 잘 잡기 위해서 집을 사야 하는 지역이 서울인지, 서울 내에서도 어느 지역인지를 규정해야 한다. 김치냉장고의 생산설비를 늘려야 하는가라는 것이 핵심이슈라면, 김치냉장고의 타켓시장이 지리적으로 어디까지인지를 참고로 하여 지리범위를 결정해야 할 것이다.

시간범위와 지리범위를 정한 다음에는 ‘시나리오 테마’를 결정해야 한다. 시나리오 테마를 잘 정하냐 잘못 정하냐에 따라 도출된 시나리오의 Quality가 달라지므로 매우 중요하다고 하겠다. 시나리오 테마를 결정할 때 가장 주의해야 할 점은 지나치게 테마를 좁게 설정하지 말라는 것이다.

만일 핵심이슈가 ‘김치냉장고의 생산설비를 확장해야 하는가’로 정해졌다면, 시나리오 테마를 ‘김치냉장고의 미래’라고 규정짓는다면 별 의미가 없다. 왜냐하면 김치냉장고라는 제품은 사람들의 생활패턴과 의식변화 등에 영향을 많이 받기 때문이다. 따라서 시나리오 테마를 ‘김치냉장고를 사용하는 방식의 미래’이라고 넓게 결정해야 생산설비를 늘려야 하는지 줄여야 하는지에 대한 보다 다양한 시사점을 시나리오를 통해 찾아낼 수 있는 것이다.

Step 2. 의사결정요소 파악
시나리오플래닝의 두 번째 단계는, Step 1에서 결정한 핵심이슈에 대한 의사결정을 내리기 위하여 무엇을 알아내야 하는지를 밝히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핵심이슈인 ‘김치냉장고의 생산설비를 확장해야 하는가’에 대한 의사결정을 내려야 한다면 1차적으로 고려해야 할 요소가 시장의 크기와 성장률, 경쟁사의 제품 또는 대체재, 혹은 정부의 관련 정책 등이 될 수 있는데, 이것들을 ‘의사결정요소’라고 부른다. Y를 생산설비 확장 여부이고 Xn 이 의사결정요소라고 한다면, Y = f(X1, X2, X3, …) 형식의 함수를 생각하면 이해하기 쉬울 것이다.

브레인스토밍을 통해 의사결정요소를 찾다 보면 고려해야 할 요소의 수가 굉장히 많아지는 경향이 있다. 이렇게 의사결정요소의 수가 많으면 오히려 핵심이슈에 대한 의사결정을 내리기가 어려울뿐더러 두루뭉실한 결론만 내리기가 십상이다. 의사결정요소는 핵심이슈에 대한 답을 내리기 위한 가장 1차적인 것이어야 한다. 고객의 라이프스타일 변화는 분명히 김치냉장고 판매에 영향을 미치기는 하지만 김치냉장고의 생산설비를 확장해야 하는가에 대한 1차적인 답은 줄 수가 없는 다분히 간접적인 것이다. 따라서 이 같은 것들은 의사결정요소에서 제외해야 한다. 고객의 라이프스타일 변화와 같은 요소는 따로 ‘환경요인’이라고 부르는데 이는 Step 3에서 다룬다.

또한 의사결정요소는 우리 내부의 것이 아닌 외부와 관련된 것이어야 한다. 즉 우리가 통제할래야 할 수 없는 요소만이 의사결정요소가 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자금 확보 능력, 재무상태, 인력 등은 생산설비 확장을 하느냐 마느냐를 결정하는 중요한 것들이지만, 적어도 내부적으로 어떻게든 통제할 수 있는 요소이므로 의사결정요소에서 제외되어야 한다. 이 같은 내부적 요소는 시나리오가 도출된 다음에 각 시나리오별로 대응전략을 수립할 때 고려할 점들이라 하겠다.

그러면 무엇을 알아야 김치냉장고 생산설비를 확장할지 말아야 할지를 결정할 수 있을까? 크게 2가지를 고려해야 하는데, 김치냉장고 시장은 성장할 것인가(시장성장률)와 김치냉장고 시장의 수익성은 어떻게 될 것인가가 바로 그것이다. 일반적으로 시장의 성장률은 고객수의 증가와 대체재의 출현에 의해 좌우된다. 시장의 수익성은 김치냉장고 시장에 새롭게 뛰어들 잠재경쟁자의 여부, 기존 경쟁사들의 출혈경쟁 여부, 고객들의 가격인하에 대한 압박 등에 따라 결정될 것이다. (그림 3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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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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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만 사주는 상사는 싫어요!   

2008. 6. 4. 1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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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사가 부하직원들을 깊이 신뢰한다면 때때로 불가능한 일을 완수하도록 만들기도 한다. 햇병아리 컨설턴트 시절, 뭣도 모르고 바쁘게만 뛰어다닐 줄만 알았던 나를 이제 명함 정도는 내밀 수 있을 만큼으로 성장시킨 것도 바로 상사가 나에게 보여 준 신뢰의 힘 때문이다.

어느 날 까다로운 의뢰가 들어왔다. 고객의 의뢰란 것이 뭐든 까다로웠지만, 그 의뢰건은 수수료도 기간도 터무니없었음에도 원하는 주제가 거의 1~2년은 좋이 연구해야 할 박사 논문 감이었다. 누구도 해 본 적 없는 난제중의 난제였다. 할 것인가, 말 것인가의 논란 끝에 결국 그간의 고객관계를 고려해 수주하기로 했다. 그러나 그 다음이 문제였다. 과연 누가 그 일을 할 것인가? 대부분의 컨설턴트들은 애당초 불가능한 일이고 고생만 하고 말 것이라는 이유를 들어 뒷걸음질쳤다. 여러 사람의 손사래에 표류하던 그 일은 마침 프로젝트를 끝내고 쉬고 있던 나에게 떨어졌다.

누구는 동정의 눈빛으로 띠면서 ‘대충 하는 척만 하라’며 위로주(酒)를 자청하기까지 했다. 누구는 고소한 듯 묘한 미소를 보였다. 마음 속에서 ‘거부의 악마’와 ‘도전의 천사’가 싸웠다. ‘해? 말아? 난 아직 경험도 실력도 보잘것없어. 섣불리 했다가 욕만 먹는 건 아냐?’ 라고 우울해지다가도 ‘아니지, 이번에 뭔가 보여줘야지. 그래, 비웃어라. 정말 멋진 걸 만들어 보겠어.’ 라는 용기가 불끈 솟아나기도 했다. 그러나 선택의 여지는 없었다. ‘까라면 까야지’, 애송이 컨설턴트로서 거부는 용납되지 않았다.

어떻게든 해봐야지, 하며 마음을 다잡고 있을 때 상사가 나를 불렀다. 그 후 몇 분이 흐르고 상사의 방을 나올 때, 나는 자신감과 열정으로 가득 찬 자신을 발견했다. 그는 부드럽지만 강한 목소리로 “이 일은 아주 중요하고 또한 매우 어려운 일이야. 하지만 자네가 누구보다 잘 해낼 수 있다고 믿고 훌륭히 끝낼 것이라고 확신해. 같이 해 보자.” 라며 신뢰의 굳은 악수를 건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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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용기백배된 나는 결국 해냈다. 포기하고 싶은 순간마다 그의 신뢰를 저버릴 수 없었기에 스스로를 일으켜야 했다. 시나리오플래닝은 바로 신뢰가 빚어낸 조그마한 결정체였다. 맨땅에 숱하게 헤딩하며 2개월 밤낮을 매달린 결과였기에 아직까지 가슴 벅찬 기억으로 남아있다. 인생의 멋진 1막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니라. 나를 믿어 준 상사 덕이다.

만약 그가 초조하고 의심에 찬 얼굴로 “할 말이 없군. 할 수 있을 것 같아? 시간이 별로 없어. 어떻게든 기간 안에 내놔 봐.” 라고 말했더라면? 프로젝트는 엉망이 될 게 뻔했고, 확신컨대 이렇게 컨설팅으로 밥 벌어 먹고 있지 못했을 것이다.

컨설팅 때문에 고객사의 직원들과 인터뷰할 때가 많은데, '술' 이야기가 빠지는 경우는 별로 없다. 관리자들에게 직원들의 '감성 관리'를 위해 어떤 일을 하냐고 물어보면,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술 마시는 기회를 자주 갖는다고 자랑스레 말하거나, 혹은 자기가 너무 바빠서 얘들 술도 못 사준다면서 직원관리의 어려움을 토로한다. 인사불성 될 때까지 술 마시면서 '으쌰으쌰'하면 팀의 화합이 강화된다고 믿는 모양이었다. 과연 그럴까?

삼성전자가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를 보자. ‘어떤 상사와 일하고 싶으냐.’ 란 질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부하를 믿고 맡기는 상사’를 첫째로 꼽았다. 술 잘 사주고 잘 놀아주는(?) 상사는 아예 리스트에 오르지도 못했다. 술 많이 사주고(실은 자기가 마시고 싶으면서) 토닥거려 주면 부하직원들이 충성할 거라 기대한다면, 당장 사표를 쓰는 것이 어떠한가? 일일이 끼고 앉아서 모든 걸 챙겨주는 것이 부하직원을 위하는 일이라 믿고 있다면, 말리지 않을 테니 계속 그렇게 피곤하게 살아라.

부하는 자신을 믿어 주는 주군을 위해 목숨까지 바치는 법이다. 재활의 명장으로 불리는 김인식 감독은 선수가 계속 실수를 해도 참는다. 속이 썩고 또 썩어도 참는다. 그 선수가 제 몫을 해줄 때 비로소 소처럼 웃는다고 한다. 부하를 믿지 못하는 상사들이여, 믿고 맡겨라! 그러면 그들이 반드시 해낼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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