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회사 직원들은 왜 창의적이지 못할까?   

2008. 5. 3. 1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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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이나 기업들 모두 창의적인 사고의 가치를 높이 인정하는 분위기다. 창의력을 키우기 위한 갖가지 방법들이 창안되고 있으며 회사는 직원들에게 그 기법을 습득시키려 많은 돈을 지출하고 있다. 인터넷으로 창의력이란 단어를 검색해보면 숱하게 많은 창의력 교육프로그램들의 목록이 어지럽다. 저마다의 방법론과 도구로 무장한 열띤 광고문구가 교육을 수강하기만 하면 에디슨이나 레오나르도 다빈치도 울고 갈 만큼의 창의력 소유자가 될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다.

하지만, 창의력 교육프로그램이 그렇게 많고 기업들은 기회가 생길 때마다 직원들을 교육에 내모는 데도 불구하고 왜 우리는 충분히 창의적이지 못할까? 깜짝 놀랄만한 제품이나 서비스는 왜 아주 가끔 더디 생겨나는 것일까? 수학올림피아드에서 1등을 종종 거머쥐는 우리지만 가까운 일본이 노벨 과학상을 9번이나 수상하는 동안 왜 우리는 노벨평화상 수상 하나로 스스로를 위안해야 할까? 그래서 어떻게든 노벨상을 받고 싶어서 나라 전체가 황우석 신화에 소위 ‘올인’한 것일까?

많은 지식인들이 우리나라 사람들의 잘못된 결과지상주의, 입시 위주의 교육 등으로 인해 창의적인 사고가 원천적으로 차단된다고 말하고 있는 듯하다. 모두 맞는 얘기다. 그러나 나는 창의적 사고의 경직과 창의적 사고에 대한 이유 없는 배척의 가장 큰 원인을 우리 모두의 ‘게으름을 동반한 두려움’에서 찾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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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으른 사람들은 강의에서나 책에서 뭔가 새로운 걸 알게 되면 흥미를 느끼다가도 ‘이론은 이론일 뿐이야. 현실은 엄연히 다르다구.’ 하며 짐짓 깨달았다는 표정을 짓곤 한다. 책에 나오는 이론이 실천되기 힘든 이유는 이론이 잘못돼서 그런 것이 결코 아니다. 바로 그 자신이 게으르기 때문이다. 이론을 실천하기 위해서는 노력이 필수불가결하다. 당연한 말이지만 노력 없이 그냥 책을 읽거나 강의를 묵묵히 듣는다고 해서 달라지는 것은 그동안 시간이 흘렀다는 사실 이외에 아무 것도 없다. 또한 당신은 두려운 것이다. 이론을 따르는 데 있어 부닥치게 될 개인의 혹은 집단의 곤란과 반대가 지레 두렵기 때문이다.

창의력을 북돋우기 위한 여러 가지 기법들은 바로 이와 같은 직원들의 ‘게으름을 동반한 두려움’을 깨뜨린 다음에 도입되어야 그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정장 대신 캐주얼을 입게 한다고 해서 창의적인 조직이 될 거라 기대한다면 지나치게 순수한 생각이다. 사무실 벽면을 알록달록하게 만들고 다소 기이한 가구와 기구를 곳곳에 배치한다고 해서 안 나오던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갑자기 샘솟지는 않는다. 해병대 캠프에 우르르 입소하여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땀범벅 눈물범벅 구른다고 해서 경직된 사고가 깨지지는 않는다. 오히려 튀는 것을 용납 못하는 집단주의를 강하게 결속시킬 뿐이다.

여담이지만, 나는 적어도 창의력에 있어 군대는 독이라는 생각이다. 다소 버릇없었지만 창의력으로 반짝이던 친구가 군대 3년 후 말 잘 듣는 평범한 청년으로 변한 것을 보고 꽤나 애석했던 적이 있었다. ‘쇼생크 탈출’이란 영화에서 모건 프리먼이 가석방된 다음에 수퍼마켓 점원으로 일하면서도 오줌 누러가는 것까지 점장 허락을 받아야 비로소 안심하고 다녀오던 장면을 기억하는가? 나는 어쩐지 군대가 우리의 젊은이들을 짧은 시간에 효율적(?)으로 ‘젊은 모건 프리먼’으로 만들어 버리는 건 아닌지 심히 염려스럽다. 남북 분단 상황만 아니라면 징병제는 국가 전체의 창의력 수준 향상과 국가발전을 위해서라도 폐지되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뭔가를 도입하여 추진하고자 할 때 기성세대들의 대부분은 ‘하면 된다’라는 기치에 지나치게 몰두하여, 조직의 창의성을 높이는 데에도 강압적이면서도 중앙집권적인 방법을 선호하는 경향을 보이는 듯하다. 창의력에도 ‘빨리빨리’ 문화를 접목하려는 것이다. 강압적인 상황에서 나온 아이디어는 창의가 아니라 ‘순응’에 지나지 않는다. 새로운 것을 말할 때 ‘찍어 누르지’ 않고 격려하는 의사소통, 실패를 오히려 환영하는 분위기, 새로운 것을 말할 때 두려워하지 않는 직원들, 새로운 것을 항상 찾아 CEO부터 말단직원에 이르기까지 실천하려는 노력이 있어야 창의가 벌떡 일어나 춤추는 조직이 된다.

창의가 죽어있는 조직을 창의가 벌떡이는 조직으로 바꾸고자 한다면 직원들 마음에 웅크리고 있는 게으름과 두려움에게 싸움을 걸어라. 싸움을 걸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너, 화장실 뒤로 나와!’ 라고 버럭 소리라도 쳐야 하지 않겠는가? 그리고 뼈 속까지 사무치는 강한 펀치를 날려라. 경험치 못한 새로운 것에 대한 불편함과 까닭 모를 두려움의 존재를 느끼게 하고 인정하게 하라. 그것도 아주 뼈아프게 느끼게 하라. 뾰족한 방법은 없으니 뭐든 시도해 보라. 그러니 고민하라. 해병대 입소 같은 것만 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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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론 반쯤 감긴 눈으로   

2008. 5. 1. 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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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론 반쯤 감긴 눈으로 모든 것을 바라보고 싶다. 산자락을 낮게 휘감는 희고 풍성한 구름을, 그 밑으로 추억처럼 긴 꼬리를 끌며 지나는 기차를, 몇 가닥의 서늘한 바람이 벌판을 가로질러 흐르는 고요한 풍경을 반쯤 감은 게으른 눈으로 바라보고 싶다.

사는 게 재미없고 삶이 무엇인지 도무지 알 수 없을 때 반복되는 일상을 뿌리치고 사람들의 그림자가 어지럽지 않은 곳으로 숨어 들고 싶다. 그곳에서 나른한 몇 날을 보내고 싶다. 맑은 물가에 앉거나 늘푸른 고목 아래에 누워서 끝내 읽지 못했던 1980년대의 연애소설을 읽는다면 어떨까? 한 페이지 한 페이지 넘기며 ‘깊고 푸른 밤’처럼 10%쯤 쓸쓸해지고 싶다.

아픈 대목이 나오면 책을 덮고 물소리 바람소리를 듣다가 잠들면 그만. 그렇게 읽다가 잠들다가, 한껏 빈둥빈둥 거렸으면 좋겠다. 시간이 멈춘 듯 구름은 산모롱이에 걸리고 기차는 느릿느릿 간이역으로 들어온다. 나는 작은 정물이 되어 그 풍경 속으로 흐릿해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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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별이 뜨고 지평선 너머로 하루가 잠길 때, 푸른 잔디에 누운 평화로운 양떼처럼 꿈을 꾸고 싶다. 그 옛날 함께 할 수 없는 사람과 함께 하는 꿈을. 슬프던 지난 서로의 모습을 까맣게 잊어내는 꿈을. 그리하여 그 옛날 차마 하지 못했던 용서의 말을 수줍게 전하는 꿈을 꾸고 싶다.

때론 반쯤 닫은 마음으로 모든 것을 추억하고 싶다. 내가 너에게서 받았던 상처보다 내가 너에게 주었던 상처를 위하여, 상처가 상처로 감각되지 않고 그저 증류된 기억의 한 페이지로 갈무리될 수 있도록 마음의 한 켠일랑 닫아둬야지.

상처를 상처로 기억할수록 스스로를 용서 못한 채로 살아가야 함을 나는 이제야 알기 때문이다. 한껏 외쳐버린 고백의 말보다, 반쯤은 숨기고 반쯤은 내보이는 가난함이 길고긴 삶을 견뎌내게 한다는 것을 나는 이제야 알기 때문이다.

내 몸의 한 쪽 끝에서 또 다른 한쪽으로 투명한 물줄기를 흘려보내고, 그 물 위에 희고 고운 그리움의 징검다리를 놓는다. 누군가 한 뜀 두 뜀 징검다리를 밟고서 내 안으로 들어오겠지. 그의 마른 이마에 내 볼을 맞대고 끝없이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작은 그의 손을 잡고서 함께 저무는 풍경 속으로 흐릿해지련다. 열려진, 그러나 반쯤은 닫아둔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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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채꽃, 흐드러지다   

2008. 4. 30. 1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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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원에 가니, 지난 주말보다 더 많은 유채꽃이 흐드러지게 피었다. 간단하게 산책을 나온 길이라 '똑딱이'로만 찍었다. 꽃이 지고 꽃이 피는 모습을 보면서 계절의 흐름을 느낀다. 언덕 아래로 부는 바람에도 진한 봄 냄새가 났다. 따뜻한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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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4월, 나는 이런 책을 읽었다   

2008. 4. 30. 1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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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달(2008.4)에는 지난 달의 부진을 만회하여 총 9권의 책을 읽었다. 사실 이 중 1권은 읽다가 집어 던졌다. 원문이 어려운 것인지, 번역의 실패인지 도무지 읽히지가 않았다. 그래도 꾸역꾸역 3분의 2를 읽었기 때문에 리스트에 포함을 시켰다. 그 책이 과연 어떤 책인지는 아래에 나온다.

벽 한면 전체를 책장으로 짰는데, 이미 적재량을 초과한지 오래라서 책을 이리저리 포개 놓고 있다. 또 다른 벽을 책장으로 짜야하나... 대학 때부터 지금껏 지출한 책값도 따져보니 만만찮다. 그 돈 차곡차곡 모았면 중형차 한 대 쯤은 너끈히 뽑았을 것 같다.

지금까지의 독서 실적

1월 : 10권
2월 : 12권
3월 : 4권
4월 : 9권

(총 : 35권)

 

아름다움의 과학  : 내적 미(美)가 외적 미보다 중요하다는, 오래된 거짓말에 대한 책

 

텔레비전을 버려라 : 텔레비전의 폐해에 대한 책. 원래 TV를 잘 안 보는데, 이 책 때문에 더 안 보고 싶어졌다. TV의 임상적 폐해 부분이 약한데 그게 좀 아쉽다.

창의성의 즐거움 : 창의성은 개인에게서만 나오는 게 아니라, 영역-환경-개인의 조화 속에서 피어난다.

허수  : 제곱하면 -1이 되는 수에 관한 책. 수학에 관한 내용은 좋은데, 중간중간마다 들어가 있는 '문학적 상상력'과의 연결이 매우 어색하다. 뜬금 없다. 그 부분을 빼고 허수에 관한 내용을 좀더 깊게 다뤘으면 좋았을 것을...

 

화(anger) : 이 책을 보고 '천천히 오래 씹어 먹는' 다이어트를 하게 됐다. 화를 발산하면 화가 더 생성된다는 구절이 마음에 와 닿았다.

바이러스 도시 : 제목이 좀 이상하다. 콜레라에 관한 책인데, 콜레라균(비브리오)는 바이러스가 아니라 박테리아다. 도시 생활의 위험을 고발한 책인지, 도시 생활의 편익을 강조한 책인지 어정쩡하다.

홀로 사는 즐거움 : 법정 스님의 글은 참 맑다. 읽다 보면 마음이 착해진다. 70이 넘으셨다는데, 건강하셨으면 한다.

인간에 대한 오해 : 스티븐 제이 굴드. 나는 만연체 문장이 싫은데 그의 글만은 용서가 된다. 600 페이지가 넘는 책을 단숨에 읽었다. 진화론계의 투사였던 그가 이 세상에 없는 게 안타깝다.

우리와 그들, 무리짓기에 대한 착각 : 이 책이 바로 읽다가 집어 던진 책이다. 뭘 말하려는지 도통 모르겠다. 좀 쉽게 써도 될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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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친일파였다?   

2008. 4. 29. 1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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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전 무심코 올블로그에서 내 이름을 친 다음 검색을 해 보니, 이상한 글들이 목록에 떴다. "어? 이게 뭐지?" 오늘 친일인명사전이 공개됐는데 4776명에 나와 동명이인인 사람이 포함된 모양이었다. 궁금증이 발동하여 4776명의 명단에서 내 이름이 어디에 숨어 있는지 찾아 보기로 했다.

CTRL+F를 쳐서 검색하면 쉽게 찾을 수 있을 테지만, 무수히 많은 이름을 하나씩 보면서 내 이름을 찾아보기로 했다. 애국가를 작곡한 안익태도 친일파, 태극기를 만들었다던 박영효도 친일파였다. 우리의 국가와 국기가 이제 친일파로 공인된 자의 손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라니! 참 씁쓸했다. 그렇게 내 이름을 찾다가 보니, 참 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분야에서 친일을 자행했다는 사실을 새삼 느끼게 됐다.

의원, 관료, 경찰, 군, 사법부, 종교단체, 예술분야, 경제분야, 해외지역 등등 곳곳에서 친일파들이 활개를 치고 다녔다는 걸 한눈에 볼 수 있었다. 4776명의 인물들은 친일 행적이 명확히 파악되는 핵심인물들이 선정된 자들이니, 동족을 억압했던 무명의 친일파들은 아마 그보다 열 배, 스무 배는 더 많았을 것이다. Big Brother의 눈과 귀와 몽둥이가 되어 자신의 이웃을 못살게 굴었을 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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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은 '경찰' 그룹에 속해 있었다. 경찰이라면 지근거리에서 동포들에게 폭압을 행사했던 자들 아닌가? 인두로 허벅지를 지지고 채찍질에 물고문에 온갓 못된짓을 제 손으로 저지른 자들. 한자(漢字)까지 동명인지는 확인할 수 없으나 어쨋든 나와 이름이 같은 사람이 친일파 목록에 속해 있는 걸 보고 있으려니 좀 부아가 났다.

또 한편으로는 묘한 기분이 들기도 했다. 내가 만약 구한말에 태어나 일제강점기를 겪었더라면 나는 명단 속의 '그'처럼 친일을 자행했을까? 아니, 살기 위해서 친일을 할 수밖에 없었을까? 솔직히 나도 잘 모르겠다. 지금의 마음으로는 자발적으로 친일을 자처하지 않을 것 같지만, 목에 칼이 들어 온 상황에서 목숨을 부지하고 식구들을 먹여 살려야 한다면, 어쩔 수 없이 친일을 했을 수도 있겠다 싶다.

물론 친일의 동기가 자발적이었냐 강압에 의한 것이었으냐에 따라 죄질의 경중이 달라지지는 않는다.  4776명의 명단 안에 포함된 '나' 혹은 '그'. 그는 어떤 몹쓸 친일 행적을 보였는지 궁금하다. 그리고 그 배경은 무엇이었는지, 무슨 이유 때문에 친일파에 동참하게 됐는지 알고 싶다.

명단만 우선 공개된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차후에 자세한 친일 행적도 함께 열람했으면 한다(자료집이 나왔다는 데 어디서 구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 해방된 지 60년이 넘었는데, 이제 와서 친일인명사전에 나온 게 꽤 늦은 감이 있다. 늦은 만큼 속속들이 공개됐으면 한다. 친일인명사전 편찬위원회의 노고에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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