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한권, 탈고하다   

2008. 11. 21. 1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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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한 권을 탈고했다.
역서까지 포함해 5번째 책이다.
아마 내년 1월에 나올 것 같다.
제목과 내용은 아직 비밀이다. (공공연한 비밀일 수도...)

이외수는 장편을 쓰려고 감방 철문을 제작해 스스로를 가뒀다는데,
그런 게 없어도 내겐 감옥이 따로 없었다.
어젯밤엔 꿈 속에서조차 퇴고를 했다. "이렇게 고쳐야 하나?"
아침에 일어나니 머리가 어질하다.

탈고(脫稿)가 탈고(脫苦)다!
아무튼 이제 털어낸다.
잘 가라, 내 원고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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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곡하다   

2008. 11. 20. 1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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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초 정도 지나야 소리가 납니다.)

지금으로부터 10년 전에 작곡한 곡을 오늘 다시 들어본다. 
내게 남아 있는 유일한 자작곡이다. 지인이 편곡하여 midi 파일로 만들었다.

듣고 있자니, 어린 시절에 썼던 연애편지를 다시 보는 듯 유치하고 얼굴이 화끈거린다.
42KB짜리 midi 파일이라 음질이 좋지 않지만, 내 추억을 담은 쪽지 같아서 버리지 못한다.

어릴 적 꿈은 노래를 작곡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었다.
재능도 없으면서 오선지에 연필로 음표를 그리던 때가 떠오른다.
어느 날, 내가 쓴 16마디의 곡을 발견하고 피아노로 즉석에서 쳐 주시던 박은혜 선생님이 생각난다.
잘했다고 내 머리를 쓰다듬던 그 손의 느낌이 기억난다.

오늘은 옛기억이 솟아나는 그런 날이다.

(첫눈 - 사진 : 유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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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별을 바라보다   

2008. 11. 11. 1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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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지금 찻집에 앉아 있다. 고객과 만날 시간이 되려면 아직 1시간이나 남았다.
그리고 내 옆엔 헤어짐을 이야기하는 듯한 두 연인이 앉아 있다.
그들은 내내 말이 없다. 간혹 남자가 말을 건네지만, 여자는 고개를 끄덕이거나 가로젓는다.
여자는 울음을 간신히 참는 듯한 표정을 한 채 손가락만 꼼지락거린다.
이별이 누구 탓인지 나로서는 알 수 없다.
관찰자로서 나는 그들의 조촐한 이별 의식을 바라볼 뿐이다.

그렇게 10여분이 흘렀을까?
이윽고 여자가 푹 꺼뜨린 상체를 일으켜 남자에게 말한다.
"잘 지내."
그리고 자리를 박차고 문을 나선다.
남자는 잠깐 그 모습을 보다가 손으로 얼굴을 벅벅 문지른다.
그렇게 5분 정도 커피를 홀짝이다가 힘 없이 일어선다.

11월 11일의 찻집에는 연인들의 이별이 있다.
그들의 슬펐던 표정이 찻집 가득 고였다.
그들의 갈라진 인생 행로에 부디 행운이 함께 하길 빌어 본다.

(사진 : 유정식)

(사진 : 유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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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 은행나무길에서   

2008. 11. 9. 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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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추를 느끼게 하는 은행나무길.
그 노란색에 취하다 보면 하루가 금새 저뭅니다.
곧 잎이 다 떨어지고 앙상한 가지만 남겠죠?

(클릭해야 원래 크기로 볼 수 있습니다.)

(사진 : 유정식)

(사진 : 유정식)

(사진 : 유정식)

(사진 : 유정식)

(사진 : 유정식)

(사진 : 유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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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발성으로 금융위기를 타개하자   

2008. 11. 7. 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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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유정식)


프레드 호일은 우주의 시작과 끝은 없으며 항상 똑같은 모습으로 존재한다는 ‘정상우주론’을 제시한 천문학자로 유명하다. 그 이론의 연장선상에서 그는 생명체의 진화를 맹공격했다. 그는 생명이 지구상에 출현할 확률은 고물 야적장을 휩쓸고 지나간 태풍이 운 좋게 보잉 747을 조립해 낼 확률과 다를 것이 없다는 가설을 주장했다.

우연에 의해 일어난 자연선택이 어떻게 복잡한 생명을 발생시킨 동력이 된다는 것인지 그는 납득하지 못했다. 우연에게 진화라는 중차대한 임무를 맡길 수 없다는 고집 때문이었다.

요즘처럼 금융위기의 폭풍으로 불확실성이 증폭되는 상황에 처할 때마다 경영자들은 조직을 가능한 한 자신의 통제 하에 놓으려고 한다. 불확실한 외부환경으로 인해 내부환경조차 불확실한 상태에 휩쓸리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다. 프레드 호일처럼 기업 경영의 우연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하부로 이양된 권한을 다시 상부로 거둬들이고 각 사업부가 개별적으로 진행하던 사업을 통제하려 든다. 신성장동력을 확보하기 위한 전략에 신경 쓰기보다 어떻게 하면 내부 통제를 잘 할 수 있을지에 집중한다. 통제하지 않으면 우연이 곧바로 무질서함으로 나타날 거란 강박관념에 짓눌린다.

물론 난국을 타개하기 위해 기업의 경영 구조를 재편하고 비효율적인 제도를 추스르려는 시도는 자연스러운 조치다. 그러나 조직의 ‘창발성’까지 제거하려 든다면 곤란하다. 창발성은 ‘그룹 지니어스’란 말로도 표현할 수 있는데, 개인 수준에서 보이지 않았던 특성이 집단을 이루면서 놀라운 능력으로 나타나는 현상을 말한다.

창발성은 집단생활을 하는 흰 개미에게서 쉽게 찾을 수 있다. 아프리카에 사는 버섯흰개미는 탑처럼 생긴 둥지를 4미터나 쌓아 올린다. 그리고 애벌레에게 먹이려고 버섯 농사까지 짓는다.

개미 한 마리의 지능은 굳이 지능이라고 부를 것도 없을 만큼 매우 낮음에도 이런 능력을 보이는 이유는 개체들 간의 복잡한 상호작용의 네트워크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기업 내부도 직원들 간, 직원들과 시스템 사이, 시스템과 시장 사이는 무질서한 그물망으로 촘촘히 연결되어 있다.

창발성은 이처럼 무질서한 네트워크로부터 출현하는 것이지, 누구나 예상 가능하도록 ‘네모반듯한’ 바둑판의 모양으로 조직을 재편하고 통제한다고 해서 얻어지는 게 아니다. 조직을 한눈에 조망해보자고,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도록 해보자고 통제 기법을 무분별하게 적용하면 기업이 쌓아온 창발성의 유산을 일시에 날려버릴 수 있다.

식료품 체인인 세이프웨이는 철저한 통제로 위험에 빠진 대표적인 사례다. 이 회사는 가짜 고객을 매장에 풀어 직원들이 규정에서 어긋난 행동을 취하는지를 일일이 평가했다. 고객서비스 매뉴얼은 최대한 상세하게 작성해서 무조건 따르도록 강제했다. 직원들의 행동이 우연에 빠지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평가가 저조한 직원들은 '스마일 학교'라고 불리는 8시간짜리 특수 교육을 받아야 했고 세 번 넘게 교육 대상이 되면 해고돼야 했다.

이러한 통제 정책은 초기에는 남들이 부러워할 성공을 거뒀지만 머지않아 화를 불러일으켰다. 여직원의 미소가 남자 고객들에게 유혹으로 받아들여지고, 웃지 못 할 상황에서도 억지웃음을 짓는 것이 직원들에게 큰 스트레스가 되었다. 결국 세이프웨이는 서비스 정책의 폐지를 요구하는 노조의 장기파업으로 매출과 이익에 큰 타격을 입었으며 2002년과 2003년에는 적자를 기록하고 말았다.

 "한 번도 비행기를 놓쳐보지 않은 사람은 그만큼 많은 시간을 공항 대합실에서 허비한 사람"이라고 경제학자 헤르베르트 기어슈는 비꼰다. 효율을 지나치게 강조하면 오히려 비효율적이 된다는 말이다.

우연은 무질서이고, 무질서는 불확실성이며, 불확실성은 위험이라는 생각은 지극히 단선적인 사고방식이다. 우연과 자유분방함을 권장하여 조직의 창발성이 위기를 스스로 타개하도록 유도하는 것이 전무후무한 세계적 금융위기에 처한 요즘의 경영자에게 필요한 자세가 아닐까? Let It Be!

(본 칼럼은 광주일보 2008년 11월 7일자에 게재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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