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에서 새로 사귄 친구와 점심을 먹는 자리에서 저자는 삶의 열정과 꿈에 대해 뜻 깊은 이야기를 나누다가 문화적 충격을 받았다. 친구가 “12시가 돼서 일어나야겠어. 점심값은 더치 페이 하자구.”라면서 먼저 자리를 떠났기 때문이다. 저자는 라틴계 미국인이었고 친구는 전형적인유럽계 미국인이었다.
공동체적이고 집단적인 문화에서 자란 저자는 서로 친밀한 대화를 나누다가 약속이 있다면서 갑자기 자리를 뜨는 친구를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차갑고 무례하고 몰인정한 미국인 같으니!” 저자는 속으로 친구에게 욕을 퍼부었다.
이번엔 저자가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었다. 유럽계 미국인 친구의 아파트를 방문하기로 했는데 약속시간보다 1시간 30분이나 늦게 도착했기 때문이다. 단단히 화가 난 친구는 “6시에 만나기로 해놓고 어떻게 7시 30분이 돼서 나타날 수 있지? 도대체 왜?”라고 쏘아 붙였다. 졸지에 “책임감 없고 무질서하고 분별 없는 라틴계 같으니!”라는 비난을 받아야 했다. 라틴 사회에서는 시간 자체보다는 ‘만남’이라는 관계가 더 중요한 까닭이었다.
서로 다른 문화적 기반에서 성장한 사람들이 함께 생활하면서 부딪히는 문화적 갈등이 비단 이것 뿐만은 아니다. 글로벌화가 가속화되면서 단일한 문화의 울타리 안에서 영위하던 사람들이 울타리를 뛰어넘어 하나의 조직 안으로 섞이는 과정에서 문화적 갈등은 필연적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는 현상이다.
특히 기업들이 해외로 진출하고 다국적 기업화되면서 문화적 다양성으로 인한 갈등은 피할 수 없는 문제가 되었고 이 문제를 얼마나 현명하게 대처하고 다양성을 ‘포용’할 수 있는지가 기업의 핵심역량으로 자리잡는 중임을 저자는 주장한다. 다양성을 인정하고 포용할 줄 아는 기업이 인력의 잠재력을 최대한 활용함으로써 뛰어난 성과를 창출할 수 있다고 말한다.
문화적, 인종적 다양성 뿐만 아니라 성별의 다양성도 이 책에서 말하는 포용의 주제이다. 전 세계 고용인구 30억 명 중에서 여성이 40%를 차지하지만, 그 가운데 단 24%만이 경영진의 자리에 올랐다. 일본의 경우, 경영진 중에서 여성이 차지하는 비율은 고작 10%이다. 아마 우리나라도 사정이 비슷하거나 그보다 저조할 것이다. 남성 위주의 위계체계, 인사제도, 조직문화가 은연 중에 혹은 노골적으로 여성을 배척하기 때문이다.
‘리더’라는 말을 들을 때 연상되는 ‘자립적인, 단호한, 분석적인, 적극적인, 위험을 감수하는, 야심 찬’ 등의 형용사는 모두 ‘남성’이라는 말에서 연상되는 단어와 높은 상관성을 갖는다는 점을 저자는 지적한다. 남성처럼 행동하라고 강요받는 조직에서 ‘충성하는, 동정하는, 타인에게 감성적인, 이해심 많은’이란 형용사로 대변되는 여성들이 견디지 못하는 것은 당연하다.
“여성의 재능에 눈을 뜨는 순간 엄청난 기회가 제공된다. 남성 지배적 문화, 남성 지배적 기업은 남성 위주의 접근이 스스로에게 불이익이라는 점을 깨닫게 될 것이다”라고 테드 차일즈는 말한다. 왜냐하면 글로벌화된 시장 환경에서 다국적 기업들에게 요구되는 역량은 의사소통, 감성지능, 협동심, 협상력, 기업가 정신, 코칭, 멘토링 등인데, 모두 여성에게서 보이는 특성들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기업들은 다양성에 대해 얼마나 많은 관심을 가질까?’ 이 책을 읽는 동안 내내 머릿속을 돌아다니던 생각이었다. 이 책의 내용은 인종, 문화, 성별, 세대 특성 등 다양한 배경을 지닌 인력들을 보유한 기업들에서 발생하는 ‘다양성의 부작용’을 ‘관용과 포용’이라는 관점으로 해결해야 함을 주장한다.
그런데 과연 우리나라에 이에 대해 관심을 기울일 만한 기업은 얼마나 될까? 삼성, LG, 현대자동차 등과 같은 우리나라 굴지의 대기업들은 이미 전 세계를 무대로 활동하지만, 그들에게도 인력의 다양성 문제는 성장이라는 지상 목표에 가려 뒷전이다.
그들의 해외 법인들을 살펴보면 주요 보직들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독차지하고 현지인들은 상대적으로 덜 중요한 일을 수행한다. 여러 업체들이 추구하는 글로벌 인재 전략은 아직까지 국적이 한국인 사람들에게만 국한되는 것이 사실이다. 능력이 뛰어난 현지인들을 본사로 불러들여 요직을 맡기거나 전략적으로 중요한 제3의 지역으로 파견하는 등의 전략이어야 하지만, 그 진전은 매우 더디고 폐쇄적이다.
CEO만 놓고 볼 때, 미쯔비시, 닛산 등 폐쇄적인 조직문화로 유명했던 일본기업들은 인력의 순혈주의를 포기하고 외국인에게도 문을 활짝 열었다. 반면 우리나라의 10대 그룹에서 외국인 CEO는 전무한 실정이다.
외국인을 기업의 핵심인력으로 키우는 전략은 차지하고라도 사회적 약자를 포용하기 위해 이미 실시하는 정책들도 문제가 있기는 마찬가지다. ‘균형인사 정책’은 여성, 장애인, 취업보호 대상자 등에게 일정 수준의 채용 T/O를 부여하는 제도로서 ‘균형 있는 인사로 차별 없는 사회를 위한 기반을 조성하자’는 취지로 실행됐다. 이 제도는 사회적 약자에게 기회를 부여한다는 점과, 남성과 비장애인들에게 집중된 인력의 구성을 다양화하고 인력 확보의 소스를 다원화한다는 점에서 환영할 만한 조치이다.
여성에 대한 균형인사 방침은 남성 일변도로 획일화된 조직문화에 여성들의 유연하고 포용력 있는 리더십을 더함으로써 조직의 활력과 성과를 동시에 제고하는 효과도 기대된다. 하지만 균형인사 정책이 오히려 불균형인사를 악화시키는 요인이 되기도 하는데, 그 이유는 강제성을 띤다는 점과 수치 달성에만 급급하다는 것 때문이다.
이러한 인위적인 조치는 몇 가지 심각한 모순을 낳는다. 첫째, 목표치를 달성하고 나면 그 다음엔 균형인사의 취지를 잊는다는 것이다. 그저 일시적인 조치로만 인식한다. 둘째, 사회적 약자에게 그들이 사회적 약자라는 사실을 고정화시키는 문제를 낳는다. 셋째, 다양성 추구의 대상이 아닌 자들에게 역차별을 안겨주고 만다. 이 모든 문제의 근본원인은 ‘포용’이 없기 때문이다.
‘다양성은 혼합이고 포용은 그 혼합이 잘 이루어지도록 만드는 것’임을 저자는 책에서 여러 번 강조한다. 포용이 없으면 다양성이란 무너지기 쉬운 모래성과 같기 때문이다.
문화적 배경이 다른 사람들이 하나의 조직에서 같이 일한다는 것은 어쩌면 서로에게 큰 도전이다. 찰스 슈왑의 부사장인 필리스 잭슨은 조심스러우면서도 단호하게 말한다. “다양성이라는 것은 단지 더 많은 흑인 사원을 고용하는 것은 아니다. 직원들이 자신들의 피부색에 대해 자연스럽게 느낄 때, 비로소 개인적 정체성에 관계없이 고객들과 동료들을 예의 있고 효과적으로 대할 수 있다. 다양성을 진정으로 존중하지 않은 채 사원들의 구성을 조정한다 해도 소용이 없을 것이다.”라고 주장한다. 포용이 다양성보다 더 중요하다는 말이다.
다양성은 자연 생태계가 지금껏 유지되어온 동력이었다. 원래의 종으로부터 새로운 종을 탄생시키는 생태계의 능력은 변이에서 비롯된 것인데, 생태계가 다양성을 수용하지 않았더라면 지구는 수많은 생명으로 넘쳐나는 세상이 되지 못했고 어쩌면 인간도 발생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를 ‘기업의 생태계’에 빗대어 보면, 글로벌화되고 매우 ‘평평해진’ 세계에서 기업이 생존을 유지하기 위한 필요조건 중 하나가 문화의 단일성과 인력의 획일성이라는 낡은 패러다임을 버리고 다양성을 인정하고 포용하는 노력이 아닐까?
혹시 이 책을 읽고 ‘우리 회사와 별 관련 없는 내용’이라고 느낀다면, 생각을 즉시 수정하기 바란다. 우물 너머로 머리를 들어 세상을 바라보면 이미 평평해진 세계에서 우리와 그들은 울타리 안에서 서서히 동질화 되는 중이기 때문이다. 이 책을 통해 가까운 미래에 기업의 핵심역량 중 하나가 될 ‘다양성과 포용’ 역량을 대비하기 바란다.
(* 이 글은 교보문고 북모닝 CEO에 기고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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