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의 이단자가 되자   

2010. 6. 21.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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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개혁가 마틴 루터(Martin Luther)는 어느 날 대중 강연을 하면서 코페르니쿠스를 맹비난했습니다. 아시다시피 코페르니쿠스는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돈다는 지동설을 주장한 천문학자입니다. 루터는 “어떤 초보 천문학자가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하늘과 해와 별이 지구를 도는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는 군요. 아마도 그 바보는 천문학의 모든 성과를 뒤엎고 싶은가 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마틴 루터가 코페르니쿠스를 얼치기 바보라고 비난하는 까닭은 천동설이 지배하던 세상에서 지동설은 아주 낯설고 불경스러운 주장이었기 때문입니다. 새로운 패러다임을 주장하는 사람은 이렇게 바보로 여겨지기 쉽습니다.


비슷한 이유로, 누군가가 아직 다가오지 않는 미래에 대해 의견을 제시하면 “그럴 듯하긴 하지만, 설마 그런 일이 일어나기야 하겠나? 흥미로운 이야기지만 현실적이지 않아.”라는 조롱 섞인 말을 듣는 경우가 간혹 있습니다. 

그렇게 말하는 자가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이라면 그 말은 무소불위의 힘을 행사해서 모든 구성원의 전략적 사고를 마비시키고 맙니다. 그리고 그런 조직에는 미래에 대한 통찰력이 끼어들 자리가 한 뼘도 되지 않을 겁니다. 불확실한 미래에 자신감을 갖는 자세는 나쁘지 않습니다. 어찌 보면 건강한 사고방식이죠. 그러나 불확실한 미래를 알고 있는 듯이 확신하는 태도는 버려야 합니다.

철학자 존 모티머(John Mortimer)는 “민주주의를 시험하는 것은 다수의 의견이 항상 선행돼야 한다는 점이 아니라, 소수가 어디까지 존중되냐는 점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여러분이 스스로 민주적인 사람임을 자인한다면 미래를 이야기하는 ‘이단자’들에게 귀를 기울여야 하며, 여러분 스스로가 그러한 이단자가 되어야 합니다.

아인슈타인은 상대성 이론을 정립해서 기존의 우주관과 세계관을 뒤엎었습니다. 이렇듯 과학의 진보는 이단적 발상을 통해 이루어졌습니다. 기업의 성장동력 역시 새롭고 이단적인 시각을 제시하는 사람과 그것을 수용하는 사람 사이의 조화 속에서 만들어집니다.

이탈리아는 르네상스가 화려하게 꽃피던 나라였습니다. 하지만 곧 세계의 중심에서 변방으로 몰락하고 맙니다. 영국의 시인 존 밀턴(John Milton)은 그 결정적 원인이 갈릴레이를 영원히 침묵하게 만든 것이라고 한탄했습니다.

불확실성을 정복하려 하는 자, 현실의 쳇바퀴에 머물려는 자, 아무 생각 없이 자신이 신념을 강조하는 자들을 여러분은 물리쳐야 합니다. 미래를 이야기하는 '이단자'를 포용해야 합니다. 여러분 스스로도 이단자적 시각으로 미래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것이 지속경영을 가능케 하는 경영의 덕이자 지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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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를 참을수록 행복해집니다   

2010. 6. 18.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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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화를 참으면 병이 된다고 흔히 말합니다. 스스로에게 화가 나든, 타인 때문에 화가 나든 간에 참지 말고 그때 그때 풀어야 한다고 말입니다. 맞는 말입니다. 화는 풀어야 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푼다’라는 말을 잘못 이해하곤 합니다.

화를 낸다고 해서 화가 줄지 않고 오히려 화가 축적된다는 걸 보여주는 과학적인 증거가 나온 바 있습니다. 미국 캘리포니아 대와 컬럼비아 대의 공동연구팀은 평소 화를 잘 내고 적개심이 높은 사람들은 동맥경화가 더 빠른 속도로 진행될 가능성이 크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분노로 인한 정신적, 육체적 후유증은 시간이 꽤 지나도 사라지지 않는다는 의미죠. 분노 때문에 혈압이 크게 상승했던 사람은 일주일이 지나 화가 났던 원인을 다시 떠올리게 만들면 같은 수준으로 혈압이 오르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합니다. 화를 화로 풀면 몸에 나쁜 영향을 끼친다는 의미로 해석됩니다.

(즐겁게 삽시다!)


화가 난다고 해서 그 화를 남에게 전이시키거나 되갚아 주는 것, 즉 자신의 화를 ‘풀어 헤치는’ 방법은 화를 푸는 방법으로는 좋지 않습니다. ‘내가 화났으니 내 심기를 건드리지 말고 똑바로 하지 않으면 가만히 안 둘 테야’ 혹은 ‘네가 날 화나게 만들었으니까 나도 널 화내게 만들겠다’며 화를 있는 그대로 앙갚음하는 것은 화를 푸는 방법이 아니죠.

자신을 화나게 만든 사람을 증오하고 저주하면서 술을 마시거나, 샌드백을 대신 두들겨 패거나, 상관없는 이들에게 소리를 지른다고 해서 화가 줄어들지는 않습니다. 순간적으로는 가슴이 시원해지는 카타르시스를 느낄지 모르지만, 그런 행위들은 오히려 자신의 화를 증폭시키고 스스로를 모난 인간으로 변하게 만들 뿐입니다.

스스로를 보호할 목적으로 제3자에게 화를 내는 행동으로도 화의 근원을 치유할 수 없습니다. 남에게 화를 냄으로써 자신의 화를 풀다 보면 처음 한 두 번은 상대에게 미안한 마음이 있겠지만, 그것이 지속되면 차츰 익숙해지면서 일상이 되고 맙니다. 그리고 어느덧 자신의 성격은 괴목처럼 비뚤어지고 말죠.

화는 화로 풀어서는 안 됩니다. 불 난 집에 불씨를 던져 넣는다고 불이 꺼지지 않지요. 불은 물로 끄는 게 상식이듯, 틱낫한 스님의 말처럼 화는 ‘자각(自覺)’이라는 물로 꺼뜨려야 합니다. 가슴 속에 화가 일렁이면 그것에 일차적으로 반응하려는 감정에 제동을 걸어야 합니다. 그리고 활활 타오르는 화를 마치 내 것이 아닌 듯 바라봐야 합니다.

자각의 방법은 화를 유발시킨 사람으로부터, 혹은 화가 발생한 물리적 장소에서 잠시 벗어나 생각에 잠겨보는 것에서 출발합니다. 깊은 숨을 쉬며 마음을 가다듬어 봅니다. 눈을 감고 명상에 잠겨도 좋습니다. 

화가 어디에서 기인했는지, 내가 힘든 것이 무엇인지, 나를 화 나게 한 사람(자신 또는 타인)의 지금 상태는 어떨지, 시간이 지나고 나면 지금의 화가 어떻게 변할지 등을 제3자가 되어 찬찬히 생각해 볼 시간을 가져봅니다. 그렇게 자각하는 ‘냉각기’를 거치면 그전보다 화가 엷어진 게 느껴지고 용서할 마음이 생겨납니다.

그리고는 자신이 얼마나 행복한지를 느껴봅니다. 행복은 누구에게서 주어지거나 누구로부터 빼앗기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스스로를 얼마나 행복한 사람으로 여기는지에 달렸지요. 자신이 얼마나 행복한지 자각할수록 화 따위는 봄 눈 녹듯 사라집니다.

화가 나면 감정의 노예가 되죠. 노예가 되면 자신의 삶을 노예의 삶 이상으로 결코 만들 수 없습니다. 화가 나면 자신이 화를 다루는 주인임을 자각해서 화가 주인 행세를 하도록 놔두면 안 됩니다. 자각하고 명상하는 것이 화를 올바르게 푸는 방법이고 나를 화 나게 만든 사람(자신 또는 타인)을 진정으로 용서할 수 있는 길입니다.

화를 참으면 병이 되지 않습니다. 화를 참을수록 행복해집니다. 지금 무척 화가 난 상태라면, 그 화의 주인이 되기 바랍니다. 

(* 예전의 글을 보강해서 재발행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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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확실성을 퀴즈로 알아봅시다   

2010. 6. 1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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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은 요즘 들어 불확실성이란 말을 유난히 많이 들어봤을 겁니다. 신문 지상이나 뉴스에 자주 등장하는데요, 제가 볼 때 불확실성의 의미를 제대로 사용하는 사람은 생각보다 그리 많은 것 같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미래를 탐구하고 대비하려면 무엇보다도 불확실성의 의미를 잘 짚고 넘어가야 합니다. 

왜냐하면 미래는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르는 불확실성에 갇혀 있기 때문이죠. 그런 의미에서 불확실성의 올바른 의미를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우선 다음의 퀴즈를 풀어보기 바랍니다.


다음 중 불확실성이 가장 큰 것은 무엇입니까?

1) 그 버스를 타면 대부분 1시간 안에 회사에 도착한다
2) 이번에 출시하는 서비스는 이익률이 50%일 거라 누구나 전망한다
3) 경쟁사들이 향후 3년간 우리보다 시장점유율이 높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
4) 내가 아파트 분양에 당첨될 확률은 50 대 50이다

발생할 수 있는 경우의 확률이 모두 동일할 때 불확실성은 가장 큽니다. 동전 던지기를 예로 들어볼까요? 여러분이 동전을 던질 때마다 어떤 면이 나올지 확신해서 말하기 어려울 겁니다. 왜냐하면 앞면이 나올 확률과 뒷면이 나올 확률이 2분의 1로 똑같기 때문이죠. 

이렇듯 발생할 수 있는 모든 경우의 확률이 똑같을 때가 가장 불확실한 겁니다. 만약 동전의 무게중심이 이상해서 앞면이 나올 확률이 51%만 되도 50%일 때보다 불확실성은 작아지는 거죠. 

위의 문제 중 1번은 거의 모든 사람이 1시간 안에 도착할 것이 확실하다는 뜻입니다. 2번은 50%라는 말이 나오지만 단순하게 이익률을 뜻하므로 불확실성과 전혀 관련이 없습니다. 

3번은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뜻이므로 확률이 0에 가깝습니다. 그러므로 확실성이 큼을 나타내는 문장입니다. 정답은 4번인데요, 당첨될 경우와 그렇지 않을 경우의 확률이 50%로 같으므로 불확실성이 가장 큰 문장입니다.

이번엔 다른 문제를 풀어보겠습니다.

다음의 문장들 중 ‘불확실하다’란 말의 의미를 옳게 사용한 것은 무엇입니까?

1) “무조건 밀어붙이는 게 내 스타일이야. 난 불확실성을 좋아하기 때문이야”
2) “난 실직한 상태라 미래가 상당히 불확실해”
3) “자넨 왜 매사가 그리 흐릿한가? 행동이 너무 불확실하잖은가?”
4) “그게 불확실하다고? 그렇다면 낙심할 필요가 없어. 좋을 수도 있으니까”

1번처럼 위험감수(Risk Taking)를 하겠다는 말은 불확실성과 관련이 없습니다. 리스크를 잘 수용한다고 해서 불확실성을 좋아하는 것은 아닙니다. 위험 감수를 즐기는 도박사들도 불확실성보다는 확실성을 좋아합니다. 도박사들도 확실한 승률을 보장하는 게임, 다시 말해서 불확실성이 작은 게임을 더 선호하는 게 당연하니까요. 

2번은 불안함을 불확실성과 동일한 의미로 썼으므로 부적절합니다. 앞에서 말했듯이 불확실성이 크다는 이야기는 좋을 수도 있고 나쁠 수도 있는 각각의 확률이 같다는 의미니까 항상 나쁘게 되는 것은 아닙니다. 불안한 것 하고는 거리가 멀죠.

3번은 하는 일마다 똑부러지지 못한 모습을 보여주므로 ‘행동이 너무 확실하다’고 말하는 게 옳습니다. 정답은 4번인데요, 불확실성은 좋은 경우와 나쁜 경우의 확률이 같을 때 가장 크기 때문입니다. 불확실성이 항상 나쁜 결과를 몰고 오는 것은 아닙니다.

확실성은 불안한 것도, 위험한 것도, 짜릿한 것도 아닙니다. 단순히 말해서 불확실성은 출근하는 남편이 집에서 지하철 승강장까지 걸어갈 때 오른발을 왼발보다 더 많이 디딜지, 아니면 그 반대일지를 짐작할 때 느끼는 아내의 심정과 같은 겁니다. 어떻게 보면 불확실성은 사람들에게 전해지는 무게감에 비해 좀 싱거운 의미를 가지고 있죠.

그러나 불확실성을 잘 다루지 못하면 그게 곧바로 리스크로 직결됩니다. 여러분이 미래의 불확실성에 잘 대처한다는 것은 산꼭대기에 어떤 바위들이 올라서 무엇인지 아는 것에서 시작합니다. 그리고 그것들이 향후에 어떤 방향으로 굴러 떨어질지를 잘 가늠해서 피하거나 맞서야 하겠죠. 시나리오 플래닝은 바로 그러기 위한 최선의 방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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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평가는 꽤 객관적입니까?   

2010. 6. 16.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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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은 누군가를 평가할 때 객관적이라고 생각합니까? 그 사람의 배경에 좌우되지 않고 오로지 그 사람 자체만을 보고 올바르고 공정하게 평가할 수 있다고 자신합니까? 여러분의 경험(남을 평가해 본 연륜)이 다른 사람에 대한 평가의 정확성을 높여준다고 생각합니까?

만일 이 질문에 '그렇다'라고 한번 이상 대답했다면, 다른 사람을 평가하는 능력에 대한 자신감이 과연 타당한지 스스로를 한번쯤 의심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다음의 그림을 본 적이 있나요? 여기서 A와 B의 색깔(글자색이 아니라 네모칸 안의 색깔)은 서로 다를까요, 아니면 같을까요? 아마 이 그림을 처음 봤다면 "당연히 다르다. A가 B보다 더 어둡다"라고 대답할 겁니다.


그러나 놀랍게도 A와 B의 색깔은 똑같습니다. 저도 처음엔 "말도 안돼!"라고 생각했답니다. 믿기지 않으면 그림 편집 프로그램을 써서 A와 B의 색깔을 스포이드로 찍어보면 칼라코드 값이 같음을 발견할 겁니다. 

색깔이 같은데도, 우리 눈에는 둘이 다른 색깔로 보일까요? 그 이유는 우리의 눈이 실체를 객관적으로 바라보기엔 취약한 감각기관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사물에 대한 우리의 인식은 대상을 둘러싼 배경에 의해 쉽게 좌우되고 맙니다. 대상과 배경을 따로 떼어놓고 평가하는 데에 우리의 눈은 젬병이라는 의미죠.

A와 B는 서로 다른 배경 하에 있습니다. A는 밝은 배경 하에, B는 원기둥 아래라는 어두운 배경에 둘러쌓였습니다. 그래서 A는 실제보다 더 어둡게 보이고, B는 실제보다 더 밝게 보이죠. 각각을 둘러싼 배경을 지워보면 A와 B가 같은 색깔임을 금세 알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을 평가하는 일도 우리의 눈처럼 취약하지는 않을까요? 그 사람의 배경에 의해 쉽게 좌우되지 않을까요? 그 사람의 학력, 외모, 직업, 가족이나 친구와 같은 배경에 휘둘리지 않을 수 있을까요? 배경이 좋으면 실제보다 더 높은 평가를, 배경이 그저 그러면 실제보다 야박하게 평가하지 않는다고 단언할 수 있을까요?

사람을 평가하는 일은 그래서 어렵습니다. 쉽게 자신의 평가를 신뢰할 일도 아닙니다. 다른 사람을 올바르게 평가하려면 평가의 부정확함을 인지하고 수용하는 것이 오히려 중요합니다. 자신이 '들이대는' 평가의 잣대와 선입견이 평가 결과를 왜곡할지 모른다는 불완전성을 수용해야만 단정 짓고 낙인 찍듯이 남을 평가하는 오류를 벗어날 수 있습니다.

오늘 누군가를 평가내려야 한다면, '눈의 착각'과 같은 '평가의 착각'에 대해 생각해보기 바랍니다. 당신도 착각에 빠질 수 있으니까요. (오늘은 달리는 KTX에서 간단하게 포스팅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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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용의 시대가 온다   

2010. 6. 15.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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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 포용의 시대가 온다)

대학에서 새로 사귄 친구와 점심을 먹는 자리에서 저자는 삶의 열정과 꿈에 대해 뜻 깊은 이야기를 나누다가 문화적 충격을 받았다. 친구가 “12시가 돼서 일어나야겠어. 점심값은 더치 페이 하자구.”라면서 먼저 자리를 떠났기 때문이다. 저자는 라틴계 미국인이었고 친구는 전형적인유럽계 미국인이었다.

공동체적이고 집단적인 문화에서 자란 저자는 서로 친밀한 대화를 나누다가 약속이 있다면서 갑자기 자리를 뜨는 친구를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차갑고 무례하고 몰인정한 미국인 같으니!” 저자는 속으로 친구에게 욕을 퍼부었다.

이번엔 저자가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었다. 유럽계 미국인 친구의 아파트를 방문하기로 했는데 약속시간보다 1시간 30분이나 늦게 도착했기 때문이다. 단단히 화가 난 친구는 “6시에 만나기로 해놓고 어떻게 7시 30분이 돼서 나타날 수 있지? 도대체 왜?”라고 쏘아 붙였다. 졸지에 “책임감 없고 무질서하고 분별 없는 라틴계 같으니!”라는 비난을 받아야 했다. 라틴 사회에서는 시간 자체보다는 ‘만남’이라는 관계가 더 중요한 까닭이었다.

포용의 시대가 온다
(안드레 타피아, 청림출판)

서로 다른 문화적 기반에서 성장한 사람들이 함께 생활하면서 부딪히는 문화적 갈등이 비단 이것 뿐만은 아니다. 글로벌화가 가속화되면서 단일한 문화의 울타리 안에서 영위하던 사람들이 울타리를 뛰어넘어 하나의 조직 안으로 섞이는 과정에서 문화적 갈등은 필연적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는 현상이다.

특히 기업들이 해외로 진출하고 다국적 기업화되면서 문화적 다양성으로 인한 갈등은 피할 수 없는 문제가 되었고 이 문제를 얼마나 현명하게 대처하고 다양성을 ‘포용’할 수 있는지가 기업의 핵심역량으로 자리잡는 중임을 저자는 주장한다. 다양성을 인정하고 포용할 줄 아는 기업이 인력의 잠재력을 최대한 활용함으로써 뛰어난 성과를 창출할 수 있다고 말한다.

문화적, 인종적 다양성 뿐만 아니라 성별의 다양성도 이 책에서 말하는 포용의 주제이다. 전 세계 고용인구 30억 명 중에서 여성이 40%를 차지하지만, 그 가운데 단 24%만이 경영진의 자리에 올랐다. 일본의 경우, 경영진 중에서 여성이 차지하는 비율은 고작 10%이다. 아마 우리나라도 사정이 비슷하거나 그보다 저조할 것이다. 남성 위주의 위계체계, 인사제도, 조직문화가 은연 중에 혹은 노골적으로 여성을 배척하기 때문이다. 


‘리더’라는 말을 들을 때 연상되는 ‘자립적인, 단호한, 분석적인, 적극적인, 위험을 감수하는, 야심 찬’ 등의 형용사는 모두 ‘남성’이라는 말에서 연상되는 단어와 높은 상관성을 갖는다는 점을 저자는 지적한다. 남성처럼 행동하라고 강요받는 조직에서 ‘충성하는, 동정하는, 타인에게 감성적인, 이해심 많은’이란 형용사로 대변되는 여성들이 견디지 못하는 것은 당연하다.

“여성의 재능에 눈을 뜨는 순간 엄청난 기회가 제공된다. 남성 지배적 문화, 남성 지배적 기업은 남성 위주의 접근이 스스로에게 불이익이라는 점을 깨닫게 될 것이다”라고 테드 차일즈는 말한다. 왜냐하면 글로벌화된 시장 환경에서 다국적 기업들에게 요구되는 역량은 의사소통, 감성지능, 협동심, 협상력, 기업가 정신, 코칭, 멘토링 등인데, 모두 여성에게서 보이는 특성들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기업들은 다양성에 대해 얼마나 많은 관심을 가질까?’ 이 책을 읽는 동안 내내 머릿속을 돌아다니던 생각이었다. 이 책의 내용은 인종, 문화, 성별, 세대 특성 등 다양한 배경을 지닌 인력들을 보유한 기업들에서 발생하는 ‘다양성의 부작용’을 ‘관용과 포용’이라는 관점으로 해결해야 함을 주장한다. 

그런데 과연 우리나라에 이에 대해 관심을 기울일 만한 기업은 얼마나 될까? 삼성, LG, 현대자동차 등과 같은 우리나라 굴지의 대기업들은 이미 전 세계를 무대로 활동하지만, 그들에게도 인력의 다양성 문제는 성장이라는 지상 목표에 가려 뒷전이다.

그들의 해외 법인들을 살펴보면 주요 보직들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독차지하고 현지인들은 상대적으로 덜 중요한 일을 수행한다. 여러 업체들이 추구하는 글로벌 인재 전략은 아직까지 국적이 한국인 사람들에게만 국한되는 것이 사실이다. 능력이 뛰어난 현지인들을 본사로 불러들여 요직을 맡기거나 전략적으로 중요한 제3의 지역으로 파견하는 등의 전략이어야 하지만, 그 진전은 매우 더디고 폐쇄적이다.

CEO만 놓고 볼 때, 미쯔비시, 닛산 등 폐쇄적인 조직문화로 유명했던 일본기업들은 인력의 순혈주의를 포기하고 외국인에게도 문을 활짝 열었다. 반면 우리나라의 10대 그룹에서 외국인 CEO는 전무한 실정이다.

외국인을 기업의 핵심인력으로 키우는 전략은 차지하고라도 사회적 약자를 포용하기 위해 이미 실시하는 정책들도 문제가 있기는 마찬가지다. ‘균형인사 정책’은 여성, 장애인, 취업보호 대상자 등에게 일정 수준의 채용 T/O를 부여하는 제도로서 ‘균형 있는 인사로 차별 없는 사회를 위한 기반을 조성하자’는 취지로 실행됐다. 이 제도는 사회적 약자에게 기회를 부여한다는 점과, 남성과 비장애인들에게 집중된 인력의 구성을 다양화하고 인력 확보의 소스를 다원화한다는 점에서 환영할 만한 조치이다. 

여성에 대한 균형인사 방침은 남성 일변도로 획일화된 조직문화에 여성들의 유연하고 포용력 있는 리더십을 더함으로써 조직의 활력과 성과를 동시에 제고하는 효과도 기대된다. 하지만 균형인사 정책이 오히려 불균형인사를 악화시키는 요인이 되기도 하는데, 그 이유는 강제성을 띤다는 점과 수치 달성에만 급급하다는 것 때문이다.

이러한 인위적인 조치는 몇 가지 심각한 모순을 낳는다. 첫째, 목표치를 달성하고 나면 그 다음엔 균형인사의 취지를 잊는다는 것이다. 그저 일시적인 조치로만 인식한다. 둘째, 사회적 약자에게 그들이 사회적 약자라는 사실을 고정화시키는 문제를 낳는다. 셋째, 다양성 추구의 대상이 아닌 자들에게 역차별을 안겨주고 만다. 이 모든 문제의 근본원인은 ‘포용’이 없기 때문이다.

‘다양성은 혼합이고 포용은 그 혼합이 잘 이루어지도록 만드는 것’임을 저자는 책에서 여러 번 강조한다. 포용이 없으면 다양성이란 무너지기 쉬운 모래성과 같기 때문이다.

문화적 배경이 다른 사람들이 하나의 조직에서 같이 일한다는 것은 어쩌면 서로에게 큰 도전이다. 찰스 슈왑의 부사장인 필리스 잭슨은 조심스러우면서도 단호하게 말한다. “다양성이라는 것은 단지 더 많은 흑인 사원을 고용하는 것은 아니다. 직원들이 자신들의 피부색에 대해 자연스럽게 느낄 때, 비로소 개인적 정체성에 관계없이 고객들과 동료들을 예의 있고 효과적으로 대할 수 있다. 다양성을 진정으로 존중하지 않은 채 사원들의 구성을 조정한다 해도 소용이 없을 것이다.”라고 주장한다. 포용이 다양성보다 더 중요하다는 말이다.

다양성은 자연 생태계가 지금껏 유지되어온 동력이었다. 원래의 종으로부터 새로운 종을 탄생시키는 생태계의 능력은 변이에서 비롯된 것인데, 생태계가 다양성을 수용하지 않았더라면 지구는 수많은 생명으로 넘쳐나는 세상이 되지 못했고 어쩌면 인간도 발생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를 ‘기업의 생태계’에 빗대어 보면, 글로벌화되고 매우 ‘평평해진’ 세계에서 기업이 생존을 유지하기 위한 필요조건 중 하나가 문화의 단일성과 인력의 획일성이라는 낡은 패러다임을 버리고 다양성을 인정하고 포용하는 노력이 아닐까? 

혹시 이 책을 읽고 ‘우리 회사와 별 관련 없는 내용’이라고 느낀다면, 생각을 즉시 수정하기 바란다. 우물 너머로 머리를 들어 세상을 바라보면 이미 평평해진 세계에서 우리와 그들은 울타리 안에서 서서히 동질화 되는 중이기 때문이다. 이 책을 통해 가까운 미래에 기업의 핵심역량 중 하나가 될 ‘다양성과 포용’ 역량을 대비하기 바란다.

(* 이 글은 교보문고 북모닝 CEO에 기고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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