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력개발을 시스템으로!   

2010. 7. 8.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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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기업들이나 공공기관들이 앞다투어 경력개발제도(CDP)를 도입합니다. 경력개발제도의 궁극적인 목적은 회사의 목표와 자아실현의 목표를 일치시킴으로써 성과를 최대한 이끌어 내려는 것입니다. 이 같은 움직임은 인사정책의 방향이 회사 입장에서 직원 입장으로, 중앙통제 중심에서 개인 자율로 변화하는 흐름을 반영합니다.

경력개발제도가 성공적으로 운영되기 위한 성공요소는 여러 가지가 있겠죠. 무엇보다 훌륭하게 만들어진 제도가 서류상의 제도로 남지 않고 원활하게 실행에 옮겨지려면 IT시스템의 도움이 필수적입니다. 경력개발을 위해 직원, 관리자, 인사부서가 해야 할 일들이 당연히 늘어나게 되는데, 모든 것이 수작업으로 이루어진다면 가뜩이나 할 일이 넘쳐나는 개인들의 반발에 부딪쳐 결국 경력개발제도는 유야무야해질 게 뻔합니다.


요즘에는 e-HR이라 하여, 인사관리의 모든 기능을 하나의 시스템으로 통합 운영하려는 회사가 많은데, e-HR 내 경력개발 모듈에서 갖춰야 할 기본 기능은 아래와 같이 모두 5가지입니다.

- 경력정보 제공
- 경력개발 활동 관리
- 자기개발계획 기능
- 직무적합도 평가 기능
- 교육 기능

경력개발 IT시스템은 회사 내에 어떤 직무가 존재하고 직무별 요건은 무엇인지, 각 직무는 어떠한 표준경력경로를 갖게 되는지를 분명하게 정의해 놓은 ‘경력정보’를 제공해야 합니다. 다시 말해, 누구나 쉽게 자신이 목표로 하는 직무의 내용을 인지하도록 해야 합니다.

보통 직무기술서의 형태로 경력정보를 제공하는데, 가장 간단한 것인데도 많은 기업들이 직무의 기본정보를 제공하는 데에 신경을 쓰지 못하는 것이 현실입니다.

직무가 요구하는 여러 조건(역량, 지식/스킬, 사전 경력 등)에 자신이 얼마나 적합한지, 또는 얼마나 부족한지를 스스로 평가해 볼 수 있도록 ‘직무적합도 평가’ 기능을 포함해야 합니다. 단순한 평가보다는 ‘어떤 것이 부족하니까 이렇게 해 보라’라고 교육과정을 권한다든지 등의 조언을 해주는 시스템이 되어야 합니다. 간단한 로직인 것 같지만, 의외로 품이 많이 들어가는 일이죠.

또한 경력개발 IT시스템에 교육 관련 정보들이 집약되어야 합니다. 경력개발 지원에 가장 직접적이면서도 구성원의 만족도를 가장 크게 높이는 방법이 바로 교육이기 때문입니다. 경력개발시스템은 회사 내외에서 실시하는 모든 교육 정보를 제공하는 ‘교육 포탈’이 되어야 합니다.

경력개발을 지원하기 위해 인사부서에서 여러 활동을 하게 되는데, 사내채용(Job Posting), 경력상담, 멘토링(Mentoring), 지식동아리(CoP) 운영 등이 바로 그것들입니다. 구성원들이 이러한 활동에 스스로 참여하여 자율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기능을 마련해야 합니다. 또한 인사부서가 경력개발 활동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수시로 분석하고 통제하도록 통계기능과 보고자료 작성 기능도 갖추면 좋겠죠.

많은 이들이 경력개발제도에 대해 가지고 있는 대표적인 오해는 ‘내가 가만히 있어도 제도가 나의 경력을 개발해 줄 것이다.’ 라는 식의 생각입니다. 경력개발 활동들은 기본적으로 회사가 주도하는 것이 아니라, 개인의 자율에 의한 것입니다. 회사는 어디까지나 지원자일 뿐이죠. 스스로 무엇을 개발해야 하는지 계획을 세우고 교육 이력 등을 관리해 나가는 공간을 경력개발 IT시스템이 제공해야 합니다.

그밖에, 퇴사 후 제2의 인생을 설계하는 데 도움이 되는 취업정보, 창업정보 등을 지속적으로 제공하고, 퇴사자와 재직자가 서로 교류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는 것도 경력개발 IT시스템의 활성화를 위해 도움이 되는 기능입니다.

오늘도 즐겁게 '경력개발' 하시기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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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중간한 성과주의, 할 생각 마라   

2010. 7. 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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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 성과주의 인사관리가 도입된 때가 90년대 초입니다. 그리고 IMF 환란의 직격탄을 맞고 휘청거리기 시작하면서 회생을 위한 한 가지 방편으로 성과주의 인사관리를 도입하는 기업이 급증했죠. 연공의 파괴, 능력에 따른 승진과 보상으로 대표되는 성과주의는 어느새 필수불가결한 철학으로 자리잡았습니다.

성과주의 인사제도를 도입하면 개인은 남들보다 성과를 많이 창출하기 위해 노력하고 그것은 기업의 경쟁력 강화로 이어진다는 단순하면서도 매력적인 논리는 경영자와 HR관리자들을 매료시키기에 충분했습니. 게다가 연공에 의해 돈만 많이 받아가면서 성과는 보잘 것 없는 직원들을 정리할 명분도 챙길 수 있으니 IMF 위기로 돌파구를 찾던 많은 기업들이 너도나도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죠.


'후지쯔 성과주의 리포트'라는 이 책을 처음 집어 들었을 때 후지쯔가 성과주의 인사제도를 일찍이 도입해서 놀랄만한 성공을 거뒀다는, 무용담류의 책인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첫페이지를 넘기면서부터 성공담을 기대하던 마음은 점점 심각하게 변해갔죠.

후지쯔 성과주의 리포터

과거 후지쯔의 인사부에 근무하던 저자는 이 책에서 후지쯔의 형편없는 성과주의 실태에 대해 통렬하게 비판합니다. 후지쯔는 1990년대 초 일본식 종신고용제와 연공서열제를 최초로 폐지하고 성과주의를 도입하여 일본 내 큰 충격을 가져다 준 회사로 유명합니다. 성과주의로 미국의 IBM도 금방 따라잡을 수 있다는 기대감이 충만하던 후지쯔가 어찌하여 비판의 도마에 오르게 되었을까요?

저자는 성과주의 때문에 후지쯔가 망하기 일보직전까지 갔고 아직도 불황의 늪에서 헤어나오지 못한다고 거침없이 일갈합니다. 여러 가지 사례를 통해 저자가 주장하는 성과주의 실패의 원인은, 인사담당자들이 직원들에게 일방적으로 제도를 전파하여 억지로 따르게 하려는 기계적 사고방식에 젖었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저자는 또한, 성과주의 인사제도를 제대로 정착시키기 위해서는 기존의 연공우대 정책, 파벌주의 등과 적당히 타협하여 '어중간한 성과주의'를 채택할 생각은 말라고 강력하게 주장합니다. 그리고 연공서열 관행에 젖은 관리자들의 생각을 혁신하지 못한 채 성과주의 인사제도를 도입하면 오히려 일신의 안위를 위한 수단으로 악용될지 모른다는 점을 꼬집습니다. 무엇보다 인간적인 면을 도외시한 성과주의는 반드시 실패할 수밖에 없음을 경고하죠.

이 책에서 제시되고 있는 후지쯔의 성과주의 병폐는 컨설팅 현장에서 고객들로부터 자주 듣는 이야기입니다. 평가를 관대하게 주는 문제, 힘 있는 부서 직원들에게 높은 점수가 은연 중 부여되는 문제, 성과주의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관리자 문제, 비밀리 진행되는 평가 조정의 문제, 직원들 간의 반목과 갈등 문제 등이 그것입니다. 

누구나 다 아는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특히 인사담당자들이 이 책을 꼭 읽어야 하는 이유는, 이제 성과주의에 대한 무조건적인 추종과 찬사에 스스로 눈이 어두워져 직원들을 잘못된 성과주의의 틀에 가두려는지 자아비판을 해 볼 때가 됐기 때문입니다. '하면 된다'와 '까라면 까라'식으로 제도를 강요하면서도 기득권은 포지하지 않으려는 이중적 태도를 보이지는 않았는지, 제도만 던져주고 나 몰라라 뒷짐 지지 않았는지, 윗사람에게 되도록 피해 안주려고 밑의 사람들을 성과주의의 희생양으로 삼지 않았는지를 반성해야 합니다.

컨설팅으로 밥 먹고 사는 저에게도 반성의 기회가 되었습니다. 고객에게 제출하는 보고서 몇 줄이 고객의 존망을 결정질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경영학을 하는 사람이나 컨설턴트들은 회사를 하나의 기계로 보는 경향이 있습니다. 인사담당자들이 잘못된 성과주의 신화(?)에 전염된 것은 컨설턴트들 탓이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성과주의는 폐기해야 할 경영이념일까요? 아니, 그렇지 않습니다. 성과주의는 이미 거스를 수 없는 대세가 되었습니다. 문제는 성과주의의 무조건적인 수용에 있는 것이지, 성과주의 자체에 있지 않습니다. 외국의 패밀리 레스토랑이 한국인의 입맛에 맞춘 조리법으로 성공했듯이, 우리 정서와 문화에 대한 이해가 바탕이 되면 성과주의는 그때야 비로소 제 구실을 할 수 있습니다.

회사(會社)는 말 그대로 사람들의 모임입니다. 사람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애정이 결여되었다면 제 아무리 좋은 제도도 약(藥)이 되기는커녕 오히려 독(毒)이 됨을 이 책을 통해 새삼 되새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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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는 갈등으로부터 나온다   

2010. 7. 6.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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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6월에 발생한 롯데호텔의 노사분규를 기억하십니까? 이 호텔의 노사분규는 무려 74일간 이어지다가 정부가 개입하면서 가까스로 해결됐는데, 기록을 살펴보면 2000년 한 해에 발생한 노사분규는 모두 250건에 달했는데 그 중 유독 이 호텔의 노사분규가 치열하게 벌어졌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그 안에는 우리가 미처 깨닫지 못한 갈등의 원리가 숨겨져 있는 것은 아닐까요? 노사 갈등이 발생하는 이유는 산불이 발생하는 것과 비슷하기 때문은 아닐까요? 그 이유를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브루스 멜러머드라는 과학자는 컴퓨터를 가지고 가상의 실험을 실행했습니다. 바둑판 모양의 격자에 가상의 나무를 무작위하게 심도록 컴퓨터에게 명령을 내렸습니다. 그런 다음에, 나무가 100그루 정도 심겨지면 가상의 성냥을 바둑판에 떨어뜨리도록 했다고 합니다. 


만약에 성냥이 나무 위에 떨어지면 그 나무가 타 버리고 주변의 나무에 불이 번져서 산불이 발생합니다. 하지만 성냥이 공터에 떨어지면 산불로 번지지 않고 금방 꺼지겠죠.

멜러머드는 실험을 조금 바꿔 봤습니다. 성냥을 1백 그루마다 한번씩 떨어뜨렸던 것을 2천 그루마다 한번씩 떨어뜨렸습니다. 그랬더니 가상의 숲에 대참사가 일어나는 횟수가 급격히 많아졌다고 합니다. 성냥을 떨어뜨리기 전까지 아무런 제약을 받지 않고 나무들이 빽빽하게 자랄 수 있었는데, 성냥이 떨어지자 숲 전체로 불이 번지는 상황이 발생한 것입니다.

멜러머드는 나무들이 빽빽하게 자란 숲은 그만큼 상호작용이 크기 때문에 숲 전체에 걷잡을 수 없는 대형산불이 일어날 수 있게 된다고 설명합니다. 그의 말을 다시 해석해 보면, 산불이 드물게 발생할수록 오히려 대형 산불이 일어날 확률이 높다는 뜻입니다. 

그의 실험 결과는 1988년에 미국 옐로스톤(Yellowstone) 국립공원에서 발생한 역사상 최악의 산불이 증명합니다. 세 달 가까이 계속된 이 산불에는 소방수 1만 명, 비행기 117대, 소방차 100대 이상이 동원됐는데, 결국 150만 에이커라는 어마어마한 산림이 잿더미가 되고 진화 작업에 투여된 비용만 해도 모두 1억 2천만 달러가 넘었다고 합니다. 

무엇 때문에 산불이 이토록 커졌을까요?  이 초대형 산불의 원인은 옐로스톤의 숲이 ‘임계상태’에 도달했기 때문입니다. 임계상태란, 조그만 변화가 대형산불로 커질 수 있는 매우 민감한 상태를 말합니다. 자연을 보호해야 한다는 사명감에 불타서 미국의 산림 당국은 단 한 건의 산불도 용납하지 않겠다는 목표로 숲을 관리해 왔습니다. 그래서 자연적으로 발생하는 조그만 산불까지도 필사적으로 막아내려고 했습니다.

그때문에 숲에는 불쏘시개가 될 만한 죽은 나무와 마른 나뭇잎들이 쌓이기 시작했고, 나무들을 솎아내는 효과가 있던 작은 산불이 일어나지 못하니까 나무들이 점점 조밀해졌습니다. 그래서 숲이 임계상태로 치닫게 돼서 결국 초대형 산불이라는 참사가 벌어진 겁니다.

이제 산림당국은 자연적으로 발생한 작은 산불은 구태여 끄지 않는다고 합니다. 게다가 나무들 사이의 불쏘시개를 없애기 위해 일부러 작은 불을 내기도 합니다. 그렇게 해야 숲이 임계상태가 되는 걸 막을 수 있고 대형 참사가 발생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기업이라는 조직 내에서 발생하는 크고 작은 갈등이 폭발되어 확산되는 것도 산불이 발생하는 것과 흡사한 이유 때문입니다. 기업은 사람과 사람이 서로 어깨를 맞대고 때론 협동하고 때론 갈등하는 '임계상태의 네트워크'라고 볼 수 있습니다. 따라서, 노사분규와 같은 극한 갈등을 예방하려면 일부러 작은 산불을 내듯이 갈등을 조장해야 하지 않을까요?

갈등중재 전문가이자 심리학자인 다니엘 다나는 올바르게 갈등을 관리하려면, 첫째 '거리를 두지 말고', 둘째 '강압하지 말라고' 조언합니다. 다시 말해, 갈등이 되는 원인과 대상으로부터 피하려 하지 말고, 그렇다고 강압적으로 상대와 맞대결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진보는 갈등으로부터 나온다."는 쥬세페 마치니의 말처럼 갈등은 변화를 이끌고 조직의 활력을 유지하기 위한 필수적인 요소입니다. 올바른 갈등관리는 갈등을 억제하고 회피하는 것이 아닙니다. 만일 억제하려고 한다면 옐로스톤 화재처럼 더 큰 갈등으로 분출될 뿐이죠. 유익한 갈등을 조장하고 그것을 조직의 역동적인 변화의 기회로 삼는 것이 올바른 갈등관리의 시작입니다. 

(* 한경 HiCEO '경영 속의 과학' 강의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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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는 것과 실행은 다르다   

2010. 7. 5.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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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유개발회사인 로열더치셸을 아십니까? 이 회사는 시나리오 플래닝을 기업의 의사결정에 적용하여 최초로 성공을 거둔 기업입니다. 이 회사의 시나리오 플래닝 책임자인 피에르 왁(Pierre Wack)은 OPEC의 등장으로 1970년대 초반에 석유 파동이 올 거라는 시나리오를 수립했습니다.

이를 기반으로 기존에 수립된 여러 전략들을 수정하고 새로운 전략을 준비해 놓았습니다. 그 결과 다른 메이저 정유회사들을 제치고 업계 중위권에서 단숨에 2위권으로 도약하는 대성공을 거뒀습니다. 석유개발업계는 '승자독식'의 구조였기 때문에 중위원에서 2위로 오른다는 것은 대단한 성장이었죠.


만약 여러분이 로열더치셸의 경영자라고 생각해 보십시오. 그렇다면 이러한 대성공을 경험한 후에 어떤 마음이 들겠습니까? 여러분은 현명한 분들이기 때문에 시나리오 플래닝을 전담으로 하는 조직을 만들어서 회사의 모든 의사결정을 시나리오에 기반해 내리도록 '조직문화의 혁신'을 시도할 겁니다. 그만큼 시나리오 플래닝이 가져다 준 효과가 크기 때문이겠죠.

하지만 로열더치셸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시나리오 플래닝의 효과를 경험하고서도 그것을 프로세스로 정착시키는 일이 과연 옳은가를 긴가민가했습니다. 셸의 경영자가 시나리오 플래닝을 모든 의사결정의 핵심 기법으로 인정하고 조직에 전담조직을 설치하기까지는 그 후로 5~6년이나 되는 시간이 더 흘러야 했습니다. 

이 사례는 한 가지 사실을 깨닫게 합니다. '아는 것과 실행하는 것은 다르다'란 경영의 오래된 금언이 떠오릅니다. 시나리오 플래닝을 정착시키는 데에는 상당히 높은 벽이 존재합니다. 셸의 사례는 구성원들을 '시나리오 주의자'로 변화시키려면 단순히 시나리오 플래닝의 효과를 눈으로 확인만 시켜서는 안 된다는 교훈을 말해 줍니다.

왜냐하면 시나리오 플래닝은 단순한 전략수립 기법 이상이기 때문입니다. 시나리오 플래닝은 우리로 하여금 미래를 예측하겠다는 허황된 욕구를 버리라고 요구합니다. 확실한 근거가 아니라 불확실성에 근거하여 전략을 수립하라고 말합니다. 또한 미래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며 전략은 항상 불완전하다는 전제를 가지고 출발합니다. 

이러한 시나리오 플래닝의 특성을 전통적인 전략 수립 기법에 사로잡힌 경영자와 관리자에게 이해시키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습니다. 그들은 이렇게 말하곤 합니다. "미래가 어떻게 될지 확실하게 말해 주시오. 그래야 전략을 수립할 수 있지 않겠소?" 

하지만 시나리오는 확실한 수치로 미래를 예측하지 않고 다양한 미래의 이야기를 전달하는 그릇이기 때문에 그들의 전통적인 욕구를 충족시키지 못합니다. 따라서 시나리오 플래닝을 도입하려는 과정에서 항상 문화적인 충돌이 여기저기서 불거지기 마련입니다. 

그렇다고 "로열더치셸과 같은 선진기업에서 성공을 거둔 기법이니까 무조건 도입해야 한다"식으로 밀어붙이면 역효과가 발생하는 법이죠. 구성원들이 시나리오 플래닝을 조직의 일부로, 프로세스의 일부로 자연스럽게 인정할 수 있도록 의사소통의 토대를 만드는 데 주력해야 합니다. 

무엇보다 어떤 사람을 하나의 팀으로 구성하느냐가 프로젝트 성공의 핵심요소 중 하나입니다. 프로젝트 팀의 구성은 비단 시나리오 플래닝 뿐만 아니라 모든 혁신과 전략의 성공을 가늠하는 요소입니다. 많은 기업들이 역량을 별로 고려하지 않은 채 행정편의적으로 인력을 선발하는 오류를 범하곤 합니다. 

이런 오류를 범하지 않으려면 적합한 인력을 직접 뽑아야 합니다. 역할별로 일정한 기준을 마련하고 그에 부합되는 인력을 조직 내에서 선발해야 합니다. 그리고 프로젝트 니즈에 따라 다르겠지만, 가능한 한 여러 직무를 프로젝트 팀에 골고루 참여시켜야 합니다. 일반적으로 효과적으로 통솔 가능한 프로젝트 팀의 규모는 팀장을 포함해서 5명 내외가 적당합니다. 

경영자가 시나리오 플래닝 효과를 의심한다면, 그것은 경영자에게 시나리오 플래닝의 의미를 올바르게 전달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경영자의 지지를 얻지 못하면 프로젝트가 실패할 뿐만 아니라 변화관리도 실패하고 맙니다. 시나리오 플래닝 결과가 조직 전체로 전파되어 일사불란하게 행동하려면 CEO와 고위 임원들의 전폭적인 후원이 무엇보다 필수적입니다.

가장 좋은 방법은 핵심이 되는 임원 1~2명을 팀에 합류시키고 경영자들의 의사소통 채널을 항상 열어 두는 것입니다. 경영자들의 도움이 필요할 때마다 언제든지 회의나 인터뷰를 실행하고, 그들의 불만이나 요구사항을 경청해야 합니다. 의사소통의 문을 꼭꼭 닫아두고 비밀스럽게 작업해서는 절대로 안 됩니다. 

프로젝트가 종료되고 팀원들이 흩어지면 습득한 지식과 노하우가 사라질 위험이 있습니다. 이러한 '비(非)효율'를 막으려면, 프로젝트 이후에 시나리오 전담 조직을 반드시 상설로 운영해야 합니다.

시나리오 전담 조직을 설립하는 목적은 첫째, 향후의 모든 전략적 의사결정을 시나리오를 기반으로 하겠다는 의지를 천명하기 위해서입니다. 둘째, 미래를 바라보는 관점을 '시나리오 주의자'의 관점으로 전환시키기 위해서입니다. 셋째, 불확실한 미래를 경쟁사보다 앞서 대응하는 상시적 위기경영을 실천하기 위해서입니다. 

다시 강조하지만, '아는 것보다 실행하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시나리오 플래닝의 효과와 방법을 이해하는 일에서 그치지 않고, 시나리오 플래닝이 조직문화에 자연스럽게 녹아 흐르도록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깊이 있는 고민이 선행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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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설은 그냥 가설일 뿐입니다   

2010. 7. 2.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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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올로 루피니(Paolo Ruffini)라는 이탈리아의 수학자가 있었습니다. 그는 5차방정식을 풀 수 있는 공식은 존재하지 않음을 증명한 사람입니다. 여러분이 고등학교 때 달달 외웠던 2차방정식의 '근의 공식'과 같은 공식이 5차방정식(x의 차수가 5인)에서는 없음을 증명했던 거죠. 하지만 그의 증명은 오류가 있음이 그가 죽은 후에야 밝혀지게 됐습니다. 

루피니는 2권 분량이나 되는 자신의 증명을 책으로 출판하여 사람들에게 알리고자 했습니다. 당시의 위대한 수학자 중 한 사람이었던 라그랑주에게도 세 차례에 걸쳐 자신의 책을 보내어 '검증하거나 인정해주기를' 바랐지만 라그랑주는 아무런 답장도 보내지 않았죠. 웬일인지 사람들은 그의 증명에 큰 관심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첫 번째 이유는 그의 증명이 너무나 복잡하고 길었기 때문입니다. 책으로 2권이나 되는 그의 증명을 하나하나 짚어가면서 따져보기에는 너무나 방대하고 어려웠습니다. 5차방정식 문제가 수학자들의 주요 테마 중 하나이긴 했지만,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와 같이 수세기 동안 수학자들을 괴롭혔던 문제가 아니고서는 관심을 쏟을 이유가 상대적으로 적었습니다.

두 번째 이유는 부정적인 결과('5차방정식엔 근의 공식이 없다')에 시간과 노력을 들이고 싶지 않은 사람들의 심리 때문입니다. 수학자들은 오랜 세월에 걸쳐 3차방정식과 4차방정식에서 근의 공식을 규명해냈기 때문에 5차방정식에서도 근의 공식이 존재하리라고 추정했습니다. 그 공식이 복잡하고 난해하더라도 언젠가는 밝혀지리라는 믿음을 가졌지요. 

우리는 두 번째 이유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믿음에 반하는 증명을 누군가가 제시했을 때 자동적으로 그것을 반대하려는 심리가 있습니다. 자신의 가설을 '반증'하는 근거를 수용하기 어려워 합니다.

그러니 루피니가 나타나서 오랜 시간 동안 잠정적으로 믿어왔고 '입증'하려고 애써온 가설이 틀렸다는 증명을 자신들에게 던져주니 살펴볼 마음이 생기지 않았던 겁니다. 2권이나 되는 방대한 분량 때문에 더더욱 그랬죠. 그래서인지 루피니의 증명에 존재하는 오류는 그가 살아있을 땐 규명되지 못했습니다(나중에 노르웨이의 수학자 닐스 아벨이 5차방정식에는 근의 공식이 없음을 '옳게' 증명해 냅니다).

가설은 한번 설정되면 힘을 발휘하기 시작해서 마치 그 가설이 옳은 것처럼 느껴지게 됩니다. 그래서 가설을 입증할 근거만 눈에 보이고 반증할 근거는 자신도 모르게 외면하고 맙니다. 누군가가 가설의 틀림을 이야기하면 그가 제시한 근거에 먼저 눈을 돌리기보다는 가설의 보호자를 자처해 그 사람을 공격하기도 합니다.

루피니는 죽기 1년 전인 1821년에야 위대한 수학자인 코시(Cauchy)로부터 5차방정식 연구에 대해 찬사를 받았지만 코시도 루피니의 증명을 검증해본 것 같지는 않습니다. 루피니는 수학자가 아니라 발진티푸스를 연구하고 치료하는 의사로 살다가 1822년에 삶을 마감합니다.

자신이 만들었거나 자신이 지지하는 가설에 대해 객관적인 입장을 가지기가 어려움을 루피니의 '불행한 삶'이 우리에게 알려줍니다. 가설은 그냥 가설일 뿐입니다.

(*참고도서 : '아름다움은 왜 진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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