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장일치는 조직 건강의 위험 신호   

2012. 3. 23. 0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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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로몬 애쉬의 '순응' 실험은 이제 너무나 유명해서 따로 설명할 필요가 없을 정도입니다. 애쉬의 실험은 자기 혼자 실험대상자인 줄도 모르고 공모자들이 단합해 거짓을 말할 때 자신도 집단의 압력에 굴복하여 거짓을 말하는 불편한 현상을 명료하게 보여줍니다(애쉬의 실험 내용을 보려면 여기를 클릭).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서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가 의사결정에 중요한 판단요소입니다. 다른 결정을 내렸다가 혼자만 피해를 보면 어쩌나 하는 우려가 집단의 대세를 따르려는 강력한 동기를 생성하죠. 원시사회에서 집단의 결정과 행보를 따르지 않고 독자적으로 행동했던 이들이 맹수나 독이 든 식물, 잔인한 적들에 의해 희생되고 말았을 터이니 현대를 사는 우리들은 집단에 순응해서 살아남은 조상의 후손들입니다.

헌데 길이가 같은 선을 선택하라고 했던 애쉬의 실험은 그 결정의 중대성이 낮기 때문에 집단에 동조한 것은 아닌가 의심이 듭니다. 순응 현상이 일어난 까닭은 분명 길이가 다른 두 선을 보면서 길이가 같다고 우기는 다른 구성원들의 대답에 동조해줘도 무방한, 중대하지 않은 결정이기 때문일지도 모르죠. 만일 집단 전체나 구성원 개개인에게 매우 중대한 사안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질 수도 있으니까요. 결정해야 할 사안이 중대하면 순응이 약화될까요, 아니면 강화될까요?



아이오아 주립대의 심리학자 로버트 배런(Robert Baron), 조셉 반델로(Joseph Vandello), 베서니 브런즈먼(Bethany Brunsman)은 사안의 중대성이 순응과 집단 동조에 어떤 관련이 있는지를 실험을 통해 알아보기로 했습니다. 그들은 참가자들에게 범죄 현장을 목격한 사람의 증언이 얼마나 정확한지 평가하는 것이 실험의 목적이라고 알려줬습니다. 95명의 참가자들은 3명씩 조를 이루어 테스트를 받았는데, 슬라이드를 잠깐 본 후에 '어떤 남자의 키가 더 컸습니까?', '왼쪽의 남자가 안경을 꼈던가요?'와 같은 질문에 답을 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3명의 참가자 중 진짜 실험대상자는 1명이었고 나머지 2명은 일부러 틀린 답을 이야기하는 공모자들이었습니다.

연구자들은 실험대상자들에게 2가지 실험 조건을 적용했습니다. 하나는 질문의 난이도였는데, 한 그룹의 실험대상자들에게 슬라이드를 반복적으로 보여주거나 5초 혹은 10초 동안 길게 보여줬고, 다른 그룹에게는 슬라이드를 매우 짧게(0.5초나 1초) 보여줘서 질문에 쉽게 답할 수 없게 했습니다.

또 하나의 실험 조건은 질문의 중대성이었습니다. 연구자들은 한 그룹의 실험대상자들에게 실험의 의도가 사람들이 얼마나 사물을 잘 인지하는지 파악해서 증언의 정확성을 테스트하는 프로그램을 만드는 데 적용하기 위함이라고 설명함으로써 질문의 중대성이 낮다고 인식케 했습니다. 다른 그룹의 실험대상자들은 질문의 중대성을 크게 느끼도록 만드는 설명을 들었습니다. 연구자들은 이 실험 결과가 경찰청과 법원에서 목격자 증언에 사용될 것이고, 목격자 식별 검사를 위한 기준을 마련하는 데 쓰일 것이기 때문에 최선을 다해 달라고 실험대상자들에게 말했습니다. 질문에 정확하게 답한 참가자에게 20달러를 주겠다는 말과 함께 말입니다.

어떤 결과가 나왔을까요? 질문의 난이도가 낮고 실험의 중대성을 작게 여기는 조건에서 참가자들 중 33%가 공모자들의 의견에 순응했습니다. 질문의 난이도가 낮고 질문의 중대성이 큰 경우에는 집단에 동조하는 경향이 낮아져서 16%의 참가자가 집단의 의견에 따랐습니다. 질문의 난이도가 낮을 때는 사안의 중대성이 순응의 정도를 약화시킨다는 걸 보여주는 결과죠. 애쉬의 실험을 비판할 수 있는 증거로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질문의 난이도가 높을 때(즉, 슬라이드를 아주 짧은 시간 동안 보고서 답해야 했을 때)는 반대의 결과가 나왔습니다. 이 상황에서 질문의 중대성을 낮게 인식한 참가자들은 35%가 집단의 의견을 따랐지만, 실험의 중대성을 높게 인식한 참가자들은 51%나 동조했습니다. 질문이 어렵고 사안의 중대성이 높을 때 집단 동조(순응) 현상이 더욱 뚜렷하게 나타난다는 증거였습니다.

이 실험의 결과를 조직에서 시시때때로 벌어지는 의사결정 과정에 비춰 보면 어떨까요? 이 실험의 조건 중 질문의 난이도가 낮은 조건은 내외부 환경 변화의 흐름을 파악할 충분한 시간적 여유가 있고 자료도 충분한 상황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이럴 때 의사결정 사안의 중대성이 낮으면, 즉 의사결정 이후에 예상되는 결과가 조직의 성패에 매우 작은 영향을 미치면, 집단이 몰고가는 방향에 순응하기 쉬움을 보여줍니다. 내외부 환경을 잘 인지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사안도 그리 중요하지 않으니 집단의 결정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더라도 별 위험이 없다고 간주하리라 추측됩니다. 반대로 의사결정의 중대성이 커지면 이미 확보했거나 충분히 용이하게 입수가 가능한 근거를 바탕으로 집단의 의견에 저항하여 독자적인 목소리를 낼 수 있겠죠.

헌데 이런 상황(질문의 난이도가 낮은 상황)은 조직 내에서 자주 있는 경우가 아닙니다. 있다 하더라도 질문의 범위나 수준이 조직의 일부나 개개인 수준에 그칩니다. 매출과 이익, 사업 포트폴리오 조정, 인력 운용의 방향, 제휴나 인수합병 등 조직에서 제기되는 대부분의 전략적 질문은 난이도가 매우 높을 뿐만 아니라 결정에 따른 파급효과 중대성도 큽니다. 관련된 근거를 찾기가 어렵고 상황 탐색을 위한 시간도 충분히 주어지지 않은 채 신속하게 결정을 내려야 합니다. 이럴 때 자기 목소리를 숨기고 집단의 의견에 따르려는 동기가 매우 크다는 것을 위 실험이 추측케 합니다. 특히 목소리가 크고 영향력이 큰 사람이 확신을 가지고 한쪽으로 의견을 몰고갈 때 더욱 그러합니다(이것은 위 연구자들의 후속실험에서 밝혀진 바임). 이런 이유 때문인지 위급하고 중대한 전략적 의사결정이 제3자가 보기에 우스꽝스럽거나 실패로 막을 내리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의사결정의 난이도와 중대성이 동시에 높은 상황에서 집단의 의견에 순응하기 쉽다는 사실은 조직 내에서 의사결정의 책임을 지고 이끄는 리더가 항상 염두에 둬야 할 교훈입니다. 만장일치가 의사결정의 질을 보장하는 것은 아닙니다. 만장일치의 문화는 조직의 건강이 위험하다는 뚜렷한 신호 중 하나힙니다. 의사결정의 책임을 집단에게 떠넘김으로써 자신의 책임을 희석시키려는 동기에서 만장일치가 나오는 법이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제각기 자기 목소리를 충분히 내며 갑론을박하는 상황이 건강한 의사결정 과정입니다. 개인이 집단에 동조하도록 유도하는 교묘한 장치나 문화를 걷어내는 일이 의사결정의 건강함을 보장 받을 수 있는 방법 중 하나일 겁니다.

오늘 사장님이 주재한 전략회의에서 여러분은 자신의 의견을 숨김 없이 피력했습니까? 


(*참고 논문)
 The Forgotten Variable in Conformity Research:Impact of Task Importance on Social Influe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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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사의 '사람 보는 눈', 그때그때 달라요   

2012. 3. 22.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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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앞에 놓인 두 개의 접시에는 먹음직스럽게 잘 구워진 소고기가 담겨 있습니다. 한창 허기가 진 터라 빨리 그 고기를 맛보고 싶은 생각이 간절합니다. 그런데 각 접시에는 라벨이 붙어 있는데 하나는 '75% 살코기', 다른 접시에는 '25% 지방'이라는 말이 적혀져 있습니다. 여러분은 두 개의 접시 중에 어떤 것을 선택하겠습니까? 75%가 살코기라는 말과 25%가 지방이라는 말은 사실 똑같은 의미입니다. 하지만 머리로는 똑같은 고기라고 판단할지라도 25% 지방인 고기보다는 75% 살코기를 선택하고자 할 겁니다. 왠지 그게 더 맛있고 건강에 더 좋으리라 생각되기 때문이겠죠.

사실 이 실험은 심리학자 어윈 레빈(Irwin P. Levin)가 실시한 것인데, 그는 피실험자들은 고기를 시식하지 않은 상태에서 고기의 맛, 품질, 육즙의 양, 지방의 함유량 등을 평가하도록 했습니다. 피실험자들은 75% 살코기라고 쓰인 고기가 지방이 더 적고 맛있으며 품질이 좋고 육즙도 풍부하다는 평가를 내렸습니다. 똑같은 고기인데도 75% 살코기인 고기와 25% 지방인 고기의 차이는 확연했습니다.이렇게 동일한 현상이나 사물이 '어떻게 포장되느냐'가 사람들의 선택과 의사결정에 영향을 미치는 것을 심리학에서는 '프레임 효과(Framing Effect)'라고 부릅니다. 



그렇다면 '75% 살코기'인 고기와 '25% 지방'인 고기를 시식하고 나서의 평가는 과연 어떨까요? 다시 말해 동일한 대상이 긍정적으로 프레이밍되거나 부정적으로 프레이밍될 때, 그것을 경험하고 나서도 여전히 프레임의 영향을 받을까요? 라벨에 쓰인 내용에만 의존하지 않고 직접 맛을 보기 때문에 75% 살코기인 고기와 25% 지방인 고기의 차이를 느끼지 못하리라 생각하겠지만, 레빈의 실험에서 피실험자들은 이번에도 라벨에 프레이밍되고 말았습니다. 시식하지 않을 때보다 그 차이가 조금 줄어들긴 했지만, 피실험자들은 75% 살코기의 맛, 품질, 지방과 육즙 함유를 더 긍정적으로 평가했습니다. 피실험자들의 '혀'도 라벨이 만들어낸 프레이밍 효과를 없애지 못한 겁니다.

레빈은 실험 방식을 변형하여 라벨을 보여주지 않은 상태에서 피실험자들에게 고기를 시식하도록 했습니다. 피실험자들이 시식을 마치고 나면 각자에게 75% 살코기인 고기를 먹었는지 25% 지방인 고기를 먹었는지를 알려주고 동일한 요소를 평가하도록 했습니다. 피실험자들은 75% 살코기인 고기를 25% 지방인 고기보다 좋게 평가하긴 했지만 그 차이가 이전 실험 때보다 적었고, 특히 맛에 대한 평가에서는 25% 지방인 고기를 반대로 더 좋게 평가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프레이밍 효과는 여전히 피실험자의 판단에 영향을 미친다는 결과가 통계 분석으로 나타났습니다.

프레이밍 효과는 레빈의 실험 이외에 여러 연구에서 발견됩니다. 아모스 트버스키(Amos Tverski)와 바바라 맥닐(Barbara McNeil)은 피실험자들에게 폐암에 걸려 방사선 치료와 수술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상황을 던져 주었습니다. 그런 다음, 한 집단에게는 수술 후 생존율이 68퍼센트라고 했고 다른 집단에게는 사망률이 32%라는 말을 전달했습니다. 결국 동일한 정보인데도 한쪽에는 생존에, 다른 쪽에게는 사망에 프레이밍되도록 한 것입니다. 그랬더니 생존율이 68퍼센트라고 들은 피실험자들 중 44%가 방사선 치료 대신 수술을 택했습니다. 사망률로 프레이밍된 피실험자들은 고작 18%만 수술을 택했죠. 

요즘 몇몇 회사에서 면접을 진행할 때 지원자의 이력서를 보지 않는 방식을 취합니다. 이력서에 적힌 학력이나 경력 사항으로 프레이밍되는 위험을 줄일 목적입니다. 물론 지원자의 외모, 어투, 옷차림 등이 면접관에게 어떻게 비치느냐에 따라 면접 결과가 영향을 받고 또 언젠가는 지원자의 이력서를 보게 될 터이고 그때 최초의 평가 결과를 수정할 가능성이 얼마든지 있긴 하지만('어, 이 친구 학벌이 빵빵하잖아! 그런데 왜 면접에선 왜 그랬을까?'), 프레이밍 효과를 그나마 줄일 수 있는 현실적인 방법으로서 권장할 만합니다.

그러나 기존 직원들을 평가할 때는 웬만해서 프레이밍 효과의 영향력에서 벗어나기 어렵습니다. 상사가 부하직원의 역량(혹은 업적)을 평가할 때 어떤 측면으로 프레이밍되느냐에 따라 객관적으로 볼 때 비슷한 역량을 발휘하고 비슷한 성과를 달성하는 두 직원을 아주 다르게 평가할지도 모른다는 것이 프레이밍 효과가 조직 운영에 시시하는 바입니다. 우연히 A직원이 열심히(그리고 늦게까지 사무실에 남아) 일하는 모습을 본 경우, 반대로 B직원은 업무가 많고 바쁜 상황에서 애인 만나러 칼퇴근하겠다는 말을 들은 경우, 상사의 마음 속에서 동일한 역량을 가진 두 직원은 서로 다르게 프레이밍됩니다.

연말에 두 명의 평가 양식을 앞에 둔 상사는 누구를 더 좋게 평가할까요? 장점에 프레이밍하여 평가할 경우와 단점을 틀로 잡고 평가할 때 그 결과는 일관적인 평가성향으로 수렴되지 못할 겁니다. 아마도 상사는 자신이 그런 것 따위에 프레이밍될 리 없다고 장담하겠죠. 하지만 그는 자신이 영향을 받았다는 사실조차 느끼지 못할 겁니다. 소위 '사람 보는 눈'의 시력은 그때그때 다르고 상사의 개인 성향에 따라 다름을 상사와 부하직원이 서로 인정해야 합니다. 

평가는 이래서 어렵고 그 결과를 신뢰하기가 또한 어렵습니다. 그래도 평가를 해야 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 블로그를 자주 방문하신 분들은 제가 어떤 말을 할지 알 겁니다. 그러니, 이 질문의 답은 이제 여러분이 제시해 보면 어떨까요? ^^


(*참고 논문)
How Consumers Are Affected by the Framingof Attribute Information Before and AfterConsuming the Product  
On the Elicitation of Preferences for Alternative Therap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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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찍은 답을 바꾸는 게 훨씬 유리하다   

2012. 3. 21. 1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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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개 중 하나를 고르는 객관식 문제를 풀 때 두 개의 선택지 중 무엇이 답인지 확실하게 알지 못하던 경우를 여러 번 경험했을 겁니다. 이를테면 직감에 따라 1번을 찍었다가 '이게 아닌 것 같은데... 정답은 2번이 아닐까'하며 두 개의 선택지 중에 무엇이 맞는지 고개를 갸우뚱거렸던 적이 여러분 모두에게 있을 겁니다. 이런 경우 처음에 찍었던 답을 고수해야 할까요, 아니면 다른 답으로 바꿔 써야 할까요?

아마 여러분은 '처음에 찍은 답이 맞을 확률이 높다. 답을 바꾸면 틀리기 쉽다'는 이야기를 어디선가 들어봤을 터이고 또 그런 조언이 옳다고 믿고서 처음의 답을 고수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여러번 실시된 설문조사에 따르면, 거의 75%의 학생들이 답을 바꾸면 점수가 낮아진다고 믿습니다. 심리학자 저스틴 쿠르거(Justin Kruger)가 텍사스 A&M 대학교의 학생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도 답을 바꾸는 게 유리하다고 믿는 학생들은 16%에 불과했습니다. 하지만 진짜 그럴까요? 두 개의 선택지 중 무엇이 정답인지 '아리까리'할 때 처음에 찍은 답을 고수하는게 진짜 유리할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단적으로 말하면, 직감으로 찍은 최초의 답을 고수하는 것은 대개 불리합니다. '아리까리'할 때는 처음의 답을 포기하고 다른 것으로 바꿔야 유리하죠. 70년이 넘는 기간 동안 이를 지지하는 연구 결과가 여러 학자들에 의해 계속해서 제시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의 통념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는 게 신기할 정도입니다. 쿠르거는 '최초 직감의 오류(First Instinct Fallacy)'의 일종인 이러한 '미신'을 다시금 규명하기 위하여 몇 가지 실험을 고안했습니다.

그는 2000년 가을학기에 '심리학 개론' 과목을 신청한 1561명의 일리노이 주립대(얼바나 샴페인 분교)학생들의 중간고사 시험 결과를 분석했습니다. 객관식으로 치러진 이 시험에서 학생들은 처음에 기입한 답을 다른 답으로 바꾸기 위해서는 지우개를 사용하는 것 대신에 '지우기 마크'에 표시를 해야 했습니다. 학생들이 어떤 문항의 답을 교체했는지, 교체한 답의 정답 여부를 쉽게 파악하기 위함이었죠(쿠르거가 논문에서도 밝혔듯이 이런 방식이 완전한 것은 아닙니다).

학생들은 모두 3291개의 답을 교체했는데, 그 중 25%는 처음의 답을 바꾸는 바람(정답에서 오답으로)에 점수가 깎였으나 51%는 답을 교체(오답에서 정답으로)함으로써 정답을 맞혔다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나머지 23%는 처음의 답과 나중에 선택한 답도 모두 오답인 경우였습니다. 문항 단위가 아니라 학생 단위로 분석하니, 54%의 학생(666명)들이 답을 바꿈으로써 이득을 얻었고 19%의 학생들만 답을 변경하여 점수가 깎였습니다. 이로써 처음의 직감을 포기하고 다른 답으로 바꾸는 것이 2배나 유리하다는 사실이 다시 한번 증명되었습니다. 하지만 학생들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학생들 중 51명을 무작위로 뽑아서 최초의 답이 맞을 가능성과 새로운 답이 맞을 가능성을 질문하니 75%의 학생들이 답을 바꾸는 게 불리하다(최초의 답이 정답일 가능성이 높다)고 답했습니다.

쿠르거는 처음의 답을 고수하는 것이 유리하다는 '잘못된 믿음'을 갖는 원인이 무엇인지 파악하기 위해 후속 실험을 진행했습니다. 쿠르거는 학생들에게 1번 문제는 처음의 답을 바꿔서 틀렸고 2번 문제는 처음의 답을 고수해서 틀렸다는 가상의 상황을 제시한 다음, 어떤 경우가 더 후회스럽고 자신이 바보 같다고 느껴지는지 등을 질문했습니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1번 문제가 더욱 후회스럽다고 답했고, 1번 문제를 놓친 상황이 더욱 바보스러운 결정이었다고 말했습니다. 맞힐 수 있었으나 답을 바꾸는 바람에 틀린 상황을 답을 고수하여 틀린 상황보다 더 안타까워한다는 결과였죠.

쿠르거가 추가로 실시한 다른 2가지 실험(SAT와 GRE 실험, '누가 백만장자가 되길 원하나(Who want to be a millionaire?)' 퀴즈 실험)에서도 이런 경향이 뚜렷하게 나타났습니다. 처음의 답을 고수하려 했고, 처음의 답을 바꿔서 틀린 경우를 더욱 애석하게 생각하고 자신의 어리석음을 탓했습니다. 이러한 경향은 정답일지 모르는 최초의 답을 오답일지도 모르는 다른 답으로 바꿀 때 '만약 그렇게 하면....?'이란 생각이 더욱 강하게 개입하기 때문이라고 쿠르거는 말합니다. 이는 손실을 회피하려는 성향과 연결됩니다. 최초에 선택한 답을 '포기할 때 입을 손실'을 '포기함으로써 얻을 이득'보다 더 크게 느낀다는 뜻입니다. 또한 답을 바꿔서 틀렸던 경험이 답을 변경하여 이득을 본 경험보다 뇌리가 더 강하게 박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최초 직감의 오류'는 두 가지 대안 중 하나를 결정하고자 할 때 범할 수 있는 심리적 오류 중 하나입니다. 자신이 내렸든 타인이 내렸든 처음에 선택된 대안에 확신이 없을 경우, 그래서 다른 대안으로 바꿀까 말까를 고민할 경우, 최초의 대안을 고수하고 바꾸지 않으려는 관성을 설명해 줍니다. 새로운 대안의 좋지 않은 면을 바라보려 하고 기존 대안의 단점을 무시함으로써 결국 기존 대안에 안주하는 경향은 '매몰비용 효과'나 나약하게 보이지 않으려는 욕구 등으로 설명되곤 하지만 '최초 직감의 오류'도 상당 부분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듯 합니다. 또한, 처음의 대안을 포기했을 때 우려되는 손실을 일종의 벌칙으로 간주하여 '무행동(inaction)'을 선택하려는 동기와도 연결됩니다. 새로운 대안을 선택했다가(즉 행동(action)했다가) 실패로 끝날 때 입게 될 비난과 스스로가 느낄 후회스러움이 더 크고 거세리라 생각하기 때문이죠.

항상 그런 것은 아니지만, 본능적으로 느낀 답을 다른 것으로 바꿀 때가 더욱 유리합니다. 말콤 글래드웰이 말한 '블링크(blink)' 현상은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그리 믿을 만하지 못합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러니 혹여 객관식 시험을 볼 기회가 있다면, 처음에 찍은 답을 의심하는 것이 유리하다는 사실을 잊지 말기 바랍니다. ^^


(*참고 논문)
Counterfactual Thinking and the First Instinct Fallacy


(*추신)
조금 다른 이야기인데, 어떤 분이 경복궁역에서 삼성역까지 퀵서비스를 신청하는 전화를 옆에서 들었습니다. 집에 있는 마우스를 가져다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퀵서비스 요금이면 근처 가게에서 하나 살 텐데 말이죠. 얼마나 대단한 마우스일까 궁금했습니다. 1시간 정도 지나 도착한 마우스는 그저 평범한 유선 광마우스였습니다. 이를 경제학적으로, 심리학적으로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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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수요를 미리 알아챈 사람들   

2012. 3. 20. 1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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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작년에 번역을 완료한 책 '디맨드(원제 : Demand)'가 편집을 거쳐 오늘 출간됐습니다. 꼼꼼하게 책을 만드느라 시간을 충분히 쏟았다고 합니다. 저자는 경영의 구루로 손꼽히는 에이드리언 슬라이워츠키입니다. 위대한 수요 창조자들이 몸소 실천한 수요 창조의 비밀 코드를 생생한 사례와 함께 제시하시는 흥미로운 책입니다. 책 분량이 좀 있지만 사례가 충실하게 기술되어 있기에 쉽게 읽히리라 생각됩니다.




아래의 글은 제가 쓴 것으로서, '옮긴이의 말'로 책에 실렸습니다. 여러분에게 공유하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맥도날드는 밀크셰이크의 판매를 늘리기 위해 마케팅 전략을 고심한 적이 있다. 그들은 밀크셰이크 시장을 여러 개의 세그먼트로 나눈 다음, 각 세그먼트에 해당하는 고객들을 초청하여 어떤 밀크셰이크를 좋아하는지를 묻는 통상적인 절차로 마케팅 전략을 수립했다. 맥도날드는 고객들이 걸쭉한 것을 좋아하는지, 얼음이 많이 들어가서 차가운 것을 좋아하는지, 당도가 높은 것을 원하는지 등을 알아내는 것이 전략의 핵심 포인트라고 여겼다. 다시 말해 고객들이 밀크셰이크 자체의 어떤 특성을 좋아하는지 올바로 캐내기만 하면 보다 많은 고객들에게 선택되는 밀크셰이크를 출시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밀크셰이크의 판매에는 거의 변화가 없었다.

제럴드 버스텔(Gerald Berstell)이란 마케터가 하루 종일 매장에 죽치고 앉아 어떤 사람들이 밀크셰이크를 구입하는지 관찰하기 전까지는 아무도 돌파구를 발견하지 못했다. 버스텔은 특이하게도 밀크셰이크 판매의 40퍼센트가 사람들이 출근을 서두르는 이른 아침에 발생한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게다가 밀크셰이크를 구입하는 사람들은 드라이브 쓰루(Drive-thru) 서비스를 이용하거나 매장에서 밀크셰이크를 사가지고 가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왜 하필 사람들이 이른 아침에 밀크셰이크를 살까?‘ 그는 밀크셰이크를 구입하고 나가는 사람들에게 그 이유를 물었다.

고객들은 출근을 위해 먼 거리를 자동차로 달리는 동안, 지루함을 달래거나 아침식사를 대신하기 위해 손에 잡고 먹을 수 있는 무언가가 필요했다. 버스텔은 밀크셰이크의 특이한 판매 패턴이 밀크셰이크가 운전에 방해되지 않고 옷이나 운전대를 더럽히지 않으며 점심을 먹기 전까지 허기를 달래줄 만한 음식으로 가장 적당하다는 고객의 말을 듣고 무릎을 쳤다. 그는 밀크셰이크라는 제품 자체의 특성에 집중하는 마케팅 전략이 얼마나 어리석고 얼마나 무의미한지 깨달았다. 고객의 관점에서 봐야 한다는 평범한 원칙을 얼마나 망각했는지 새삼 반성했다.

고객의 관점에서 마케팅 전략을 수정한다면 이른 아침에 출근을 서두르는 자가용 승용차 통근자들이 좋아할 만한 밀크셰이크를 출시하는 것이 전략의 핵심이 되어야 한다. 밀크셰이크에 과일을 첨가한다든지, 밀크셰이크가 쉽게 빨대를 통과하지 않도록 걸쭉하게 만들어서 자동차를 모는 내내 밀크셰이크를 즐기게 한다든지 등을 생각할 수 있다. 또한, 메뉴판에는 똑같이 밀크셰이크라 쓰여 있다 해도 아침에 파는 것과 한낮에 파는 것의 특성을 다르게 해야 좋을 것이다. 한낮에는 다른 직업을 가진 사람들(주부, 학생 등)이 밀크셰이크의 주요 대상이기 때문이다.

버스텔처럼 고객에 다가가 직접 이야기를 듣는 일은 생각하면 아주 간단한데도 왜 곧잘 잊어버리고 마는 것일까? 저자들은 책의 여러 곳에서 ‘배짱’이라는 말을 언급한다. 조직의 리더 대부분은 고객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 번거롭거니와 짜증나는 일이라고 여긴다. 고객들은 아무리 잘 해줘도 불만을 표하기 일쑤이고 지나치게 세부적인 사항에 집중하는 바람에 돈과 시간을 낭비할 뿐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더욱이 고객의 말은 서로 모순일 때도 많아서 단순함과 간결함을 원하면서도 기능의 다양성을 요구하고, 어떨 때는 품질이 중요하다고 말하다가 어떨 때는 품질 대신 가격을 낮출 것을 바라니까 말이다. 그러니 고객의 말에 귀를 기울이려면 배짱이 있어야 한다는 말이 이해가 된다.

옮긴이가 보건대 고객의 말을 들으려는 이런 배짱이야말로 수요 창조자가 갖춰야 할 기본기 중 최우선적인 조건으로 뽑을 만하다. 그런 배짱이 전제되어야 저자들이 이 책에서 ‘위대한 수요 창조자’들이 제품의 수요를 창출하기 위해 준수하는 6단계 프로세스를 실천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고객의 목소리를 경청하는 자들은 제품이 고객을 끌어당기는 힘이 품질이나 가격에 있다고 보지 않는 진정한 배짱이 있다. 수요 창조자들은 미묘하고 형언하기 힘든 매력적인 제품에 온 힘을 기울인다. 자석이 쇳조각을 끌어당기듯 고객을 강하게 끄는 제품을 시장에 내놓을 때까지 만족할 줄 모른다. 매력적인 제품이야말로 고객의 감성을 풍부하게 만들 뿐만 아니라 직원들의 열정에 불을 지필 수 있다는 점을 잘 알기 때문이다. 배짱을 상실하고 적당한 품질과 적당한 가격으로 타협하는 순간, 있으면 좋고 없어도 별로 아쉬울 것 없는 제품으로 인식되고 수요 창조의 꿈은 경쟁사의 것이 되고 만다.

둘째, 수요 창조자들은 고객이 가진 고충에 초점을 맞춘다. 고객이 느끼거나 느끼지 못하는 고충을 한 발 앞서 찾아내고 그 고충을 해결하기 위해 흩어진 가치를 한데 모으고 분산된 프로세스를 정렬시키는 일에 집중한다. 상품, 서비스, 정보, 기타 자원 등을 각각의 점으로 인식하고 그것들을 선으로 연결하면서 현재의 고충 지도를 개선된 고충 지도로 다시 그려낸다. 이러한 과정에도 배짱이 필요한데, 기존의 프로세스, 조직, 인력, 기술 등을 제로베이스에서 검토하고 때에 따라서 뒤집어엎어야 하는 자기 부정과 창조적 파괴의 단계를 요구하기 때문이다. 재앙의 수준이라고 비난 받는 미국의 헬스캐어 시장에서 독보적인 영역을 구축한 캐어모어를 보면 고객의 고충을 해결하려는 리더의 배짱이 국가적으로도 절실하게 필요한 덕목일 수 있음을 깨닫는다.

셋째, 수요 창조자가 되려면 제품의 배경 스토리를 확보하려는 배짱이 있어야 한다. 제품 하나만으로 수요의 물꼬를 트지는 못한다. 배경 스토리가 존재하거나 없으면 만들어내야 하는 것이 배짱 있는 리더가 할 일이 있다. 넷플릭스의 성공이 미국 우편국의 우편 배달 서비스라는 배경 스토리에서 가능했고, 애플의 성공은 아이튠즈를 중심으로 한 생태계로부터 잉태된 것이다. 수요 창조를 위해 제품 이외에 무엇을 관여시킬지, 고객에게 최상의 서비스를 제공하려면 어떤 인프라를 구축할지, 그리고 그 인프라를 어떻게 개선할지 끊임없이 묻고 답해야 할 것이다.

넷째, 배짱이 있는 리더들이 수요를 촉발시킬 방아쇠를 마침내 찾아낼 수 있다. 네스프레소의 수요 폭발은 제품 자체보다는 ‘직접 체험’이라는 고객과의 관계 속에서 나왔다. 이것 역시 고객과 직접 대면하며 방아쇠를 찾아내려는 리더의 두둑한 배짱이 없었으면 가능하지 않았을 것이다. 방아쇠는 쉽게 발견되지 않는다. 네스프레소가 1980년대 중반에 시장에 첫선을 보였지만 ‘직접 체험’이라는 방아쇠를 찾아내기까지 10년이나 걸린 것만 봐도 그렇다. 결코 실망하지 말아야 하며 방아쇠 탐색을 멈추지 않아야 한다.

다섯째, 제품 출시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임을 명심해야 한다. 대부분의 고객들은 제품의 출시 대부분에 무관심하다. 제품의 출시로 제품의 진화가 멈춰서는 안 된다. 시장과 고객으로 둘러싸인 생태계 속에서 제품을 적응시키는 강력한 ‘진화 프로세스’를 작동하려는 노력이 없다면, 한때 업계를 호령했으나 환경 변화에 적응하지 못해 무너져 버린 K마트, 코닥, 폴라로이드 등의 전철을 밟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여섯째, 고객들을 ‘하나의 통’으로 보려는 스스로의 관성을 깨뜨릴 배짱이 있어야 한다. 개별 고객은 모두 각자의 니즈와 고충을 가지고 있다. 공급자의 입장을 견지하는 리더들은 일을 복잡하게 만든다는 이유로 고객들 간의 편차를 싫어하고 ‘평균적 고객’이란 허황된 개념에 기댄다고 저자들은 꼬집는다. 위대한 수요 창조자들은 이를 당연하게 생각하고 그런 편차를 좋아한다. 또한 수요 창출에 기여하는 고객들에 집중하고 그렇지 못한 고객들은 과감하게 무시한다. 모든 고객을 다 상대하려고 이것도 저것도 아닌 제품을 내놓는 배짱 없는 리더들이 귀담아 들어야 할 내용이다.

저자들은 수요 창조에 있어 리더와 조직이 실천해야 할 6가지 덕목에 그치지 않고 시각을 확대하여 사회경제적으로 그들에게 훌륭한 ‘재료’의 공급이 전제되어야 한다고 역설한다. 쇼클리의 트랜지스터가 현대의 정보사회의 근간이 됐듯이 기업과 기업 생태계의 혁신은 과학적 탐구라는 ‘엔진’에 의해 좌우되고, 그 엔진이 국가와 사회의 경제적 미래를 규정하는 데에 근본적으로 중요한 요소임을 지적한다. 이 부분을 번역하면서 씁쓸함과 함께 위기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장기적인 연구와 기초 투자를 외면하고 오직 응용 기술과 단기적 성과라는 달콤한 열매만 따먹으려 하는 요즘의 분위기가 우리나라 기업 생태계의 다양성을 훼손하고 결국 세계 시장에서의 적응력을 상실시키지는 않을까 염려되는 까닭이다. 저자들이 과학적 발견이야말로 수요 창조의 거대한 불꽃이라고 표현하며 책의 마지막 장을 할애한 이유를 기업의 리더와 국가 지도자들은 새겨야 할 것이다.

흔히 수요를 창조하려면 리더에게 예술적 기교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이는 저자들이 이 책에서 제시한 수요 창조의 비밀을 읽고 넘어가는 자들에게는 옳은 말일지 모른다. 하지만 제품 개발 프로세스에 하나씩 적용하면서 배짱과 인내심을 갖고 밀고 나가는 자들에게는 옳지 않은 말이다. 예술적 기교는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몸으로 부딪치며 얻어내는 선물임을 이 책에 소개된 여러 수요 창조자들이 역사(役事)로 증명하고 있으니 말이다. 저자들은 거울을 들여다보라며 이 책의 마지막 문장을 썼다. 하지만 이 책을 먼저 들여다보라고 옮긴이는 권한다. 수요 창조의 여정에서 길을 잃을 때면 언제나. 


* 교보문고로 가서 책 살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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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근을 많이 하면 남을 속이게 된다   

2012. 3. 19.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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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6시가 되면 퇴근하는 사람들보다 저녁을 먹으러 가는 직장인들이 더 많아 보입니다. 저녁 6시는 퇴근시간이라기보다는 저녁식사 시작 시간인 것 같다는 느낌을 자주 받습니다. 어떤 직원은 별로 할일이 없는데도 게으름을 피우며 일을 미루다가 저녁 때가 되어서도 그날의 일을 완료하지 못해 습관적으로 야근하기도 하지만, 진짜로 일이 많고 또 급해서 매일 야근을 밥먹듯 하는 직원들도 많습니다. 치열한 경쟁 환경에서 효율성을 강조하다보니 인력을 예전보다 보수적으로 운용하고, 빠른 업무처리를 약속하는 각종 IT 시스템이 수작업에 의존하던 과거보다 오히려 업무를 더욱 가중시키다보니 직원이 제시간에 퇴근하기가 힘들어지고 어쩌다 제시간에 퇴근하면 눈총을 받기까지 합니다.

늦게 퇴근한다고 해서 다음날 늦게 출근해도 되는 회사는 그리 흔치 않죠. 야근을 할 수밖에 없는 환경을 만들어 놓고서 직원이 아침에 조금 늦게 출근하는 것을 '군기'가 빠졌다며 고깝게 생각하는 관리자들이 많은 것이 사실입니다. 해서 매일 야근으로 지친 직원들은 수면 부족에 시달릴 수밖에 없습니다. 2011년에 모 취업 포탈 사이트에서 직장인 58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평균 수면 시간은 고작 6시간 10분 밖에 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권장 수면시간(8시간)에서 2시간 정도 부족하죠.



이러한 수면 부족이 생산성에 나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은 누구나 인정하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수면 부족이 단순한 생산성 저하 이외에 직원들의 비도덕적인 행동을 유도한다는 것은 잘 알려지지 않은 진실입니다. 크리스토퍼 반스(Christopher M. Barnes) 등의 연구진들은 수면이 개인의 비윤리적인 행동과 관련이 되어 있음을 실험을 통해 규명했습니다. 절대수면시간이 부족하고 수면의 질이 떨어지는 직원일수록 상사와 동료로부터 비윤리적인 행동을 할 가능성이 높다는 평가를 받았고, 동료 직원들이 자신의 일을 대신 처리해 주는 선행에 대해 별로 미안해 하지 않는 경향을 보였습니다.

또한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실험에서는 수면이 부족한 학생일수록 돈이 걸린 게임에 참여할 때 다른 참가자들을 속이는 경우가 많다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수면 부족이 사고력과 자기절제력을 약화시켜 이기적으로 행동하게 만드는 것이죠. 다른 참가자를 속인 학생들은 정직한 학생들에 비하여 전날 밤에 평균 22.39분을 덜 잤을 뿐인데도 비윤리적으로 행동했습니다. 적정 시간보다 2시간이나 덜 자는 우리나라 직장인들에 수면 부족이 단순한 생산성 저하에 그치지 않고 더욱 심각한 악영향을 끼치리라 짐작케 하는 대목입니다. 효율성을 목적으로 적은 인력으로 많은 업무량을 소화하도록 만듦으로써 애써 얻은 노동생산성 증가분이 장기적으로 볼 때 비윤리적인 '나쁜 성과'에 의해 상쇄되고 말 것임을 시사합니다.

마이클 크리스천(Michael Christian)과 알렉산더 엘리스(Aleksander Ellis)가 수행한 또다른 연구에서도 수면 부족이 일탈적이고 비윤리적인 행위를 유발한다는 결과가 도출되었습니다. 그들은 교대근무를 하는 간호사들을 대상으로 조사를 벌였는데, 교대 순번이 바뀌는 바람(예컨대 낮 근무에서 밤 근무로)에 수면 리듬이 깨져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한 간호사들이 금지된 행동을 자주 보이는 모습을 관찰했습니다.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실험에서도 수면 부족한 학생들이 고객들에게 무례하게 대하는 경향을 보였습니다.

하버드 의과대학의 수면의학 교수인 찰스 짜이슬러(Charles Czeisler)는 "24시간 한숨도 자지 않거나 1주일 동안 하루에 4~5시간 밖에 자지 않으면, 혈중 알코올 농도 0.1퍼센트에 해당하는 신체 장애가 나타난다"라고 말합니다. 0.1퍼센트면 법적으로 면허 취소에 해당하는 수치입니다. 과중한 업무로 인해 야근을 밥먹듯 하는 직원이 있다면 그는 일주일 내내 면허 취소에 해당하는 술을 마시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회사 측에서 직원들의 야근을 방조하거나 직간접적으로 권장(?)한다면 직원들에게 '음주 근무'를 방조하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알다시피 음주는 이성적 판단을 저해하고 평소 같으면 못할 행동을 자극합니다. 컨설팅 업체인 KPMG에 따르면 인수합병 건의 83%가 주식 가치를 끌어올리는 데 실패했는데, 역사적으로 악명 높은 인수합병 실패 사례들은 야근과 수면 부족으로 '취한' 상태에서 내린 과감한 결정 때문이라는 주장도 있습니다.

여러 회사에서 도입하는 윤리경영의 실천지침을 들여다 보면 대개 '무엇무엇을 하지 말라', '조심하라'는 문장이 발견됩니다. 직원들에게 윤리적 책임을 다할 것을 기대하는 내용을 볼 때마다 직원들이 윤리적으로 행동하도록 환경이 먼저 조성되어야 하지 않을까란 의문이 생깁니다. 윤리 규정을 만들고 이를 위반할 때는 불이익을 감수해야 한다는 식의 접근은 문제의 핵심을 놓치는 것일지 모릅니다. 직원들이 이기적으로 혹은 비윤리적으로 행동하는 근본적 이유는 예전에 올린 글 '직원들이 회사 물건을 훔치는 이유'에서도 밝혔듯이 직원 개인의 품성이나 가치관의 결함 때문이기보다는 직원을 둘러싼 업무환경과 조직문화의 악성요소 때문이라고 보는 것이 옳습니다. 

가치가 떨어지는 업무, 요식 행위에 해당하는 업무, 아웃소싱이 가능한 업무 등을 과감하게 제거하여 직원들의 업무 부담을 덜어주어야 합니다. 그들이 8시간 동안 높은 가치를 지닌 업무에만 오로지 집중케 하고 저녁 6시에 모두 퇴근할 수 있는 기초를 만드는 것이 겉으로 내세우기 좋은 윤리경영 캐치프레이즈보다 선행되어야 합니다. 오랫동안 일한다고 해서 생산성이 높아지는 것은 아니며, 설령 생산성이 높아졌다고 해도 그 증가분은 비윤리적인 냄새로 오염되고 말 겁니다.

여러분은 오늘도 야근할 계획입니까?


(*참고 논문) 
Lack of sleep and unethical conduct
Examining the Effects of Sleep Deprivation on Workplace Deviance: A Self-Regulatory Perspective

(*참고 기사) 
Lack of Sleep Leads to Unethical BehaviorWhy Your Next Big Deal Will Fai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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