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평가를 금해야 하는 확실한 이유   

2012. 4. 6. 10:45
반응형


예전에 올린 포스팅 중에 '능력 없는 직원들이 더 많이 착각한다'란 글이 있습니다. 그 글에서 자신의 능력이 다른 사람에 미치지 못하는 데도 자신이 평균 이상의 실력을 지녔다고 인식한다는 실험 증거를 들며 '자기평가(Self-Assessment)'의 무용함을 지적했습니다. 오늘은 그 글을 확장하여 자기평가의 결과가 행동경제학에서 말하는 '닻 효과(Anchoring Effect)'을 일으킴으로써 평가자들로 하여금 피평가자의 진정한 역량을 올바로 판단하지 못하도록 유도한다는 점을 이야기하며 자기평가의 무용함을 강조하고자 합니다.

'닻 효과'란 사전에 노출된 정보에 의해 의사결정의 결과가 영향을 받는 현상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행동경제학의 선구자인 대니얼 카네만과 아모츠 트버스키가 수행한 실험을 통해 유명해진 개념이죠. 피실험자들에게 아프리카 국가 중 유엔(UN) 가입국은 몇 퍼센트일지를 맞혀보라고 질문을 던지기 전에 룰렛에 나온 수를 보여주면, 피실험자들이 어림짐작으로 내놓은 답은 룰렛 수에 근접해집니다. 피실험자들은 룰렛에 나온 숫자가 10이면 25%로, 룰렛 수가 65이면 45%로 답했습니다. 아프리카 국가의 유엔 가입률과 아무 상관 없는 숫자가 피실험자들의 판단이 멀리 가지 못하도록 닻이 됐던 겁니다.



뉴질랜드 캔터베리 대학교의 제 첸(Zhe Chen)과 사이먼 켐프(Simon Kemp)는 승진심사를 할 때 지원자들의 자기평가 결과가 평가자들의 판단을 잡아두는 닻이 됨을 실험을 통해 규명했습니다. 그들은 학부생 80명을 모집하여 무작위로 네 그룹으로 나눴습니다. 학생들에게는 승진을 원하는 가상의 대학 강사가 제출한 2~3페이지짜리 지원서를 읽고 그 사람의 승진 여부를 결정하는 학과장의 역할이 주어졌습니다. 지원서는 크게 지원자 신상정보, 강의 경력 및 연구 성과, 자기평가로 구분되었는데, 자기평가 부분에는 지원자가 스스로 자신의 강의 능력, 연구 성과, 기여도를 10단계로 평가한 표가 들어 있었습니다.

첸과 켐프는 지원자의 '강의 경력 및 연구 성과'를 '좋다', '별로다'의 2가지 경우로 조작하고, 자기평가 결과를 '높다', '낮다'의 2가지 경우로 꾸밈으로써 모두 4가지 종류의 지원서를 만들어 각 그룹의 학생들에게 하나씩 배포했습니다. 그런 다음, 지원자의 자기평가 표와 동일한 포맷의 표에 평가 점수를 기입하도록 했습니다. 그 결과, '좋다-높다'라고 조작된 지원서를 읽은 학생들은 평균 8.8점(10점 만점)이라고 평가한 반면, '별로다-낮다'란 지원서를 본 학생들의 답은 6.8점으로 나타났습니다. 지원자가 자기평가를 어떻게 했든 지원자의 강의 경력과 연구성과를 보고 평가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2점이라는 차이는 평가자의 평가가 지원자의 자기평가에 크게 영향을 받았다는 걸 뚜렷하게 보여줍니다. 

첸과 켐프는 이와 같은 닻 효과가 평가 초보자인 학생들 때문에 나타난 것은 아닌지 확인하기 위해 전문성을 갖춘 교수들을 차출하여 평가자의 역할을 맡겼습니다. 교수들을 두 그룹으로 나눠 자기평가 결과가 '높다'인 지원서와 '낮다'인 지원서를 검토한 후 평가하도록 하니, 이번에도 닻 효과가 뚜렷하게 나타났습니다. 지원자의 자기평가 점수가 높은 지원서를 본 교수들은 평균 6.4점으로, 자기평가 점수가 낮은 지원서를 검토한 교수들은 평균 4.7점으로 평가했던 겁니다. 전문성이 닻 효과를 줄이지 못한다는 걸 증명한 셈입니다. 흥미로운 것은 교수들이 초보자인 학생들에 비해 지원자에게 박한 점수를 주었다는 것입니다. 전문성이 높을수록 상대방에게 높은 기준을 요구하기 때문이겠죠. 하지만 그런 냉정한 판단 기준은 지원자의 자기평가가 유도하는 닻 효과 앞에서 무력해졌습니다. 교수들도 지원자의 강의 및 연구 성과보다는 자기평가 점수에 끌어당겨지고 말았습니다.

지원자가 1명이 아니라 2명이면 닻 효과는 어떻게 나타날까요? 첸과 켐프는 지원자별로 4가지 종류의 지원서(강의/연구성과와 자기평가가 각각 '좋다-높다', '좋다-낮다', '별로다-높다', '별로다-낮다')를 만든 다음, 두 지원자의 지원서를 짝을 지어 네 그룹의 평가자들에게 평가하도록 했습니다. 이때에도 역시 닻효과가 뚜렷하게 나타났습니다. 평가자들이 전체적으로 강의 및 연구 성과가 좋은 지원자에게 높은 점수를 주었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볼 수 있었지만, 그래도 여전히 지원자의 자기평가가 평가 결과를 좌우했습니다. '별로다-높다'인 지원자(7.3점)가 '좋다-낮다'인 지원자 만큼(7.5점)의 점수를 받았으니 말입니다.

일련의 실험으로 증명된 변하지 않는 사실은 지원자가 스스로 자신의 실력을 측정한 자기평가 점수가 평가자의 평가에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는 것입니다. 이 실험의 결과는 기업에서 이루어지는 평가 관행에 직접적인 시사점을 줍니다. 평가제도를 설계할 때 평가자가 피평가자의 자기평가 결과를 참조해야 하는지의 여부, 2차평가자가 1차평가자의 평가를 열람해야 하는지의 여부, 점수로 자기평가를 내려야 하는지의 여부 등을 놓고 논쟁이 벌어지곤 합니다. 첸과 켐프의 실험은 확실한 결론을 내리도록 해 줍니다. 점수로 쓰인 자기평가 결과는 무용하거니와 평가자에 의해 참조될 경우 평가 결과를 왜곡시키고 맙니다. 평가자가 전문성을 갖춘 사람이라 해도, 비교가 가능한 다른 피평가자가 있다 하더라도 닻 효과는 떨어질 줄 모릅니다. 자기평가 점수를 평가 점수에 반영하지 않는다고 해도 자기평가 결과를 참조(혹은 열람)하도록 하면 결국 자기평가 점수는 최종 평가 점수에 반영되는 꼴입니다.

자기평가를 수행하는 조직에서는 지금부터라도 닻 효과의 개입을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여러 평가(승진, 인사, 채용 등) 프로세스를 개선할 필요가 있습니다. 평가 지표를 만드는 지난한 과정보다 쉽고 빠르고 효과적인 방법이니까요.



(*참고논문)
Self-Assessments Produce Anchoring Effects in Promotion Decisions
Anchoring effects on performance judgments



반응형

  
,

백지장도 맞들면 나은 진짜 이유   

2012. 4. 5. 10:25
반응형


여러분 앞에 커다란 물건이 하나 놓여져 있습니다. 누군가가 그걸 들어달라고 부탁할 때 여러분의 머리 속에서는 자동적으로 무게가 어느 정도나 나갈지 추측하기 시작합니다. 실제로 무게가 가벼운데 무거울 거라 생각하고 과도하게 근육을 사용하면 몸짓이 우스꽝스러울 테니 말입니다. 반대로 무게가 무거운 물체를 가벼우리라 예상하고 들어올릴 때도 미처 대비하지 못한 팔근육에 무리가 갈 수 있습니다. 미처 의식하지 못하더라도 우리는 어떤 대상을 대할 때 그것의 무게, 촉감, 맛, 냄새 등을 미리 짐작하고 그 짐작에 따라 행동을 결정하곤 합니다. 오랜 옛날, 거친 사바나에서 생존하기 위해 이러한 능력은 인간에게 필수적이었겠죠.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떤 대상 자체를 보면서 그것의 무게, 촉감, 맛, 냄새 등을 짐작할까요? 아니면 그 대상을 둘러싼 환경을 함께 고려하여 행동(먹고, 만지고, 들고...)의 방향을 결정할까요? 깨끗한 접시 위에 담겨진 빵이 모던한 찻집에 있을 때와 화장실 변기 위에 놓여져 있을 때, 여러분은 전자의 빵을 선택하고자 할 겁니다. 빵의 신선도를 빵 자체 뿐만 아니라 주변 환경에 의해 평가하기 때문이죠. 어떤 사람이 밝은 곳에서 어딘가를 응시하며 앉아 있는 경우와, 컴컴한 밤에 동일한 장소에서 동일한 자세로 앉아 있는 경우는 매우 다릅니다. 대상의 성질을 판단할 때 우리는 항상 주변 환경을 함께 인식합니다.



다시 물건을 들어보라는 이야기로 돌아가 보죠. 여러분 혼자 그것을 들어보라고 할 때와, 동료가 그것을 함께 들 거라는 말을 들었을 때, 그 물건의 무게에 대한 여러분의 추측 결과는 같을까요, 아니면 다를까요? 물건을 들기 전이니 같이 들어 줄 동료가 있든 없든 물건의 무게를 동일하게 추측하리라 생각할지 모르지만, 놀랍게도 동료가 옆에 있다는 것 자체가 물건의 무게를 실제보다 적게 느끼도록 만듭니다.

에덤 도어펠트(Adam Doerrfeld) 등은 대학생 60명을 대상으로 한 실험에서 이를 증명했습니다. 연구자들은 골프공 177개가 담긴 총중량 20파운드의 바구니를 학생들에게 보여준 후에 바구니를 들기 전에 무게를 추측하도록 했습니다. 학생들은 무작위로 혼자서 들어야 하는 경우와 둘이 함께 드는 경우로 나뉘었죠. 둘이서 바구니를 함께 들어야 하는 학생들은 방의 한쪽 구석에 앉도록 하고 그를 도와줄 동료(실은 연구자 중 한 명)는 다른 쪽 구석에 앉게 했습니다. 도어펠트는 바구니의 무게가 15 파운드에서 25파운드 사이라고 일러줌으로써 과도한 추측을 방지했습니다.

실험 결과, 혼자서 바구니를 들어야 하는 학생들은 바구니의 무게를 약 21파운드 정도라고 추측함으로써 실제 무게인 20파운드에 근접한 정확도를 보였습니다. 반면, 동료와 함께 한 학생들은 바구니의 무게를 약 17.5 파운드라고 예측했습니다. 혼자 들어야 하는 학생들보다 약 3.5파운드를 적게 추측했던 겁니다. 바구니를 직접 들어보고 나서 무게를 추측하라고 하니, 혼자서 바구니를 들든 동료와 함께 들든 무게를 추측한 결과는 거의 비슷했습니다. 실험 방식을 약간 변형한 후속실험(골프공 개수도 추측해 보라는 요청이 추가)에서도 비슷한 결과가 도출되었습니다.

함께 바구니를 들어줄 동료가 옆에 있다는 것으로도 자신에게 부과된 부담을 적게 느낀다는 이 실험의 결과는 조직 내에서 구성원들 간의 서로 돕고 서로 배려하는 문화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시사합니다. 인간이 어떤 대상의 무게, 촉감, 맛, 냄새 등을 판단할 때 주변환경을 유리시키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로, 구성원들은 자신과 한 조직에 몸을 담고 있는 동료(상사나 부하직원)와의 관계 속에서 자신에게 부과된 목표나 일상업무의 부담을 인식합니다. 이런 측면에 볼 때, 직원들의 업무영역을 자로 잰듯 반듯하게 구분하고 개인성과목표를 정량적으로 측정하려고 하는 성과주의 문화는 구성원들 간에 협력하려는 동기 자체를 줄이도록 유도하고 그로 인해 동일한 난이도의 업무를 더욱 힘들게 여기게 만들 거라고 추측할 수 있습니다. 협력이 권장되고 협력이 문화로 정착된 조직은 그렇지 않은 조직보다 동일한 난이도의 업무를 착수하기 위해 필요한 '활성화 에너지'의 문턱값이 낮기에 목표 완료의 속도가 빠르고 목표 달성의 질도 뛰어날 것이기 때문이죠.

여러 기업에서 구현된 성과주의 제도의 방향은 개인의 업무(혹은 목표)를 주변의 조건과 얼마나 깔끔하게(?) 분리시킬 것인가를 지상과제로 여기는 듯합니다. 개인의 성과를 몇 개의 '객관적이고 정량적인' 지표(KPI)로 깔끔하게 평가하기 위해 골머리를 앓습니다. 구성원 간의 업무흐름이 엄연히 존재하는 조직에서 그런 시도는 애초에 불가능할 뿐더러 바람직하지도 않음을 도어펠트의 실험이 시사합니다. 개인의 업무(혹은 목표)를 주변 환경의 조건 하에서 인식하는 것이 우리 인간의 본능이기 때문입니다.

헌데 동료의 존재만으로도 정말 부담이 덜 느껴질까요? 도움이 안 되는 동료라는 생각이 든다면 어떻게 될까요? 도어펠트는 후속실험을 통해 그 동료가 도와줄 만한 능력이 없다고 판단될 경우에는 동료의 존재로 인한 경감 효과가 사라진다는 것을 규명했습니다. 목 보호대를 차고 잘 쓰는 한쪽 팔에 깁스를 한 동료(실은 연구자 중 한 명)와 함께 짝을 이루게 한 경우와, 건강한 동료와 짝지은 경우를 비교해 보니, 동료가 부상을 당해 힘을 제대로 쓰지 못할 거라 간주한 학생들은 건강한 동료와 함께 한 학생들에 비해 바구니의 무게를 더 무겁게 추측했습니다. 그 학생들은 오히려 혼자서 바구니를 들어보라고 요청 받은 학생들보다도 무겁게 짐작했습니다. 협력적인 문화도 중요하지만 그만큼 구성원들의 역량도 어느 정도 수준 이상은 되어야 함을 시사하는 결과입니다.

직원들에게 성과 목표를 강하게 부과하기보다는 협력적인 조직문화를 구축하는 일, 그리고 직원들 스스로 자신의 역량을 키움으로써 동료들에게 도움을 주고 받으려는 자발적인 조직문화를 일구는 일이 진짜 성과주의 문화입니다. 그다지 유용하지 않은(아니, 오히려 해가 되는) KPI 도출에 열을 올리고, 직원들에게 목표 달성을 채찍질하는 문화는 봉건적인 기업문화의 전형입니다.

여러분의 조직은 협력적입니까? 여러분의 회사는 직원들 간의 협력을 진정으로 원하고 바랍니까?


(*참고논문)
Expecting to lift a box together makes the load look lighter


반응형

  
,

나르시스트는 부정을 저지르고 잘못을 모른다   

2012. 4. 4. 11:27
반응형


지금까지 이 블로그를 통해 나르시스트적인 리더는 조직의 정보 흐름을 막고 독창적이지 않은 자신의 아이디어를 구성원들에게 수용토록 함으로써 조직 성과에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친다는 점을 언급했습니다. 이번엔 나르시스트들의 도덕성에 관하여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학자들이 정의하기를, 나르시스트는 권력을 추구하고 기회가 생길 때마다 자신을 과시하려 들고 자신을 특별한 존재로 여기는 사람을 말합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나르시스트의 특징들은 부정(dishonesty)을 저지르려는 동기와 어떤 관계가 있을 것이라고 짐작할 수 있습니다. 나르시스트적인 성향이 강할수록 자신의 목적 달성을 위해 부정한 방법을 동원할 가능성이 높을지 모른다는 가설을 세울 수 있습니다.

오클라호마 대학의 라이언 브라운(Ryan P. Brown) 등은 비록 학생들을 대상으로 실험을 수행하긴 했지만, 이런 가설이 옳음을 밝혔습니다. 브라운은 심리학 강의를 수강하는 93명의 학생들에게 연구의 목적이 수학 방정식으로 인지능력을 테스트하기 위한 것이라고 둘러댔습니다. 학생들은 컴퓨터 프로그램을 통해 10개씩 두 세트로 이뤄진 문제를 풀어야 했는데 정답을 말할 때까지 문제 풀기를 반복해야 했죠. 브라운은 경쟁심을 유발하기 위해  가장 높은 점수를 획득한 학생들에게 30달러의 상금을 주겠노라고 알렸습니다.



헌데 이 프로그램에는 연구자들에 의해 의도된 '버그'가 있었습니다. 바로 모니터 상에 정답이 드러날 수 있다는 것이었죠. 브라운은 이런 버그가 다른 연구에서 쓰던 프로그램을 가져다 쓰는 바람에 어쩔 수 없다고 학생들에게 거짓으로 설명했습니다. 그리고 문제가 제시된 후에 10초 안에 스페이스바를 누르면 답을 쓸 수 있는 칸이 바로 나타나기 때문에 정답이 화면에 나오지 못하게 만들 수 있다고 자세히 일러줬습니다. 브라운은 학생들이 스페이스바를 누를 수 있는 10초라는 긴 시간 동안 정답을 보고자 하는 욕구를 억누르고 정직하게 문제를 푸는지를 보려한 것이었죠.

10개의 문제를 다 풀고 나서 브라운은 학생들에게 또다른 10개의 문제를 제시하면서 이번엔 스페이스바를 1초 안에 눌러야 정답이 화면에 나타나지 않는다고 설명했습니다. 문제가 나오자마자 순발력 있게 스페이스바를 눌러야 했던 거죠. '10초 조건'과 '1초 조건' 중 어떤 조건 하에서 학생들은 스페이스바를 누르지 않는 부정행위를 더 많이 저지를까요? 당연하게도 1초 조건에서 스페이스바를 누르는 경우가 적었습니다. 이는 부정행위를 하려고 했다기보다는 스페이스바를 누를 시간이 충분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10초 조건에서 스페이스바를 누르지 않은 것은 고의적인 부정행위라고 간주할 수 있겠죠.

학생들은 이 실험에 참여하기 3주 전에 나르시스트적 성향이 얼마나 되는지 이미 측정 받았습니다. 나르시스트적 성향 중 대표적인 것은 '떠벌리기'와 '명예욕(entitlement)'인데, 이 중 학생들의 명예욕과 고의적인 부정행위 사이에 유의미한 관련이 있음이 나타났습니다. 나르시스트들은 높은 위치에 오르기 위해 의도적으로 부정행위를 저지를 가능성이 높음을 시사하는 대목입니다.

그렇다면 나르시스트들은 이런 부정행위를 계획하거나 고의적으로 저지를 때 죄책감을 느끼긴 할까요? 만일 나르시스트가 죄책감을 느끼지 못해서 그렇게 부정행위를 감행하는 것이라면 과연 남들이 저지르는 부정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할까요? 이런 의문에 답을 하기 위해 이번엔 에이미 브루넬(Amy B. Brunell) 등이 연구에 나섰습니다. 브루넬은 학생들에게 자신이 시험을 보면서 부정행위를 저지를 때 어느 정도의 죄책감을 느낄 것 같은지를 물었습니다. 어려운 시험을 치를 때, 친구가 강의노트를 빌려주기를 거부할 때, 친구가 '컨닝을 하자고' 부추길 때 등 다양한 상황을 상정하며 답하도록 했죠. 또한 학생들은 최근에 자신이 몇 번이나 부정행위를 저질렀으며, 앞으로 30일 동안  한 번 이상의 부정행위를 저지를 것 같은지도 응답해야 했습니다. 

분석 결과, 나르시시즘은 부정행위와 연관이 있었습니다. 좀더 자세히 들여다 보니 나르시스트의 성향 중 과시욕과 권력욕이 부정행위와 관련이 있었고, 특히 과시욕이 클수록 자기 자신의 부정행위에 대해 죄책감을 덜 느끼는, 자신을 관대하게 평가하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또한 과시욕이 큰 나르시스트일수록 부정행위를 더 많이 저지른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과시욕이 큰 사람은 높은 위치에 오르기 위해 부정행위를 고의적으로 저지르고 또한 자신을 합리화함으로써 죄책감을 덜 느낀다는 시사점을 얻을 수 있습니다.

브루넬은 자신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부정행위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알아보기 위해 동일한 질문들을 학생들에게 던졌습니다. 하지만 이 경우, 과시욕의 정도는 부정행위의 빈도와 관련이 없었고 죄책감과도 상관이 없었습니다. 다시 말해, 나르시스트들은 나르시스트가 아닌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다른 사람에게는 동일한 도덕적 잣대를 들이댄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로써 나르시스트들이 고의적으로 부정행위를 저지르는 이유는 모든 사람들에게 적용되어야 할 도덕적 기준을 모르기 때문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부도덕적인 행위에 대한 죄책감을 덜 느끼기 때문이라는 결론을 내릴 수 있습니다.

나르시스트들은 부정을 저지르고도 자신이 잘못한 줄 잘 알지 못합니다. 나르시스트가 리더이든 아니면 팔로워(부하직원)이든, 권력욕과 과시욕을 충족시키기 위해 죄책감을 덜 느끼면서 부정행위를 더 많이 저지른다는 것, 그 부정이 크건 작건 조직의 성과와 건강한 문화에 나쁜 영향을 미칠 거라는 것을 위의 두 연구를 통해 헤아릴 수 있습니다. 비록 합법적이라 해도 다른 사람을 배려하지 않고 그들을 누르고 올라서려 하는 과정 속에서 벌어지는 비도덕적인 행위는 나르시스트를 둘러싼 사람들의 사기를 꺾기에 충분합니다. 또한 권력을 가진 자들에게 자신을 과장해 내보이는 나르시스트 특유의 능력으로 인해 내막을 잘 알지 못하는 의사결정자에 의해 나르시스트가 리더로 발탁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렇다면 나르시스트가 장악한 조직의 의사결정 성향은 어떨까요? 나르시스트가 조직의 중요한 위치에 올랐을 때, 그가 내리는 결정은 과연 얼마나 합리적일까요? 이 주제는 다음 포스팅에서 다루겠습니다.


(*참고논문)
On the Meaning andMeasure of Narcissism
Narcissism and academic dishonesty: The exhibitionism dimension and the lack of guilt


반응형

  
,

나르시스트적인 리더는 과연 창의적일까?   

2012. 4. 3. 10:15
반응형


지난 번에 올린 글('스티브 잡스는 좋은 리더가 아니다')에서 나르시스트적인 관리자가 자신의 정보와 지식을 크게 강조함으로써 조직 내의 정보 공유를 억제하고 결국 조직의 성과에 나쁜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이야기했습니다. 비록 성공한 리더 중에 나르시스트들이 존재하긴 하지만, 그들의 성공은 나르시스트이기 때문이 아니라 그 사람의 다른 특성이나 그 사람을 둘러싼 환경의 조건들이 잘 맞아 떨어졌기 때문이라고 보는 게 맞습니다. 다시 말해, 나르시시즘은 개인의 성공이나 조직의 발전과는 인과관계는 갖지 못합니다.

헌데, 정보 공유의 측면에서 나르시스트적 관리자가 치명적인 단점을 지니고 있다 하더라도 그들의 아이디어나 해법은 남들보다 참신하고 독창적이진 않을까요? 스스로 자신을 신이라고 생각했던 피카소처럼, 나르시스트적인 관리자들은 나르시시즘에 젖을 만큼 똑똑하고 창의적인 것은 아닐까요? 왜냐하면 나르시스트들은 남들보다 돋보이기 위해 참신하고 획기적인 것을 창조하려 하는 동기가 강하다는 연구 결과가 나온 바 있기 때문입니다. 남들보다 충만한 그런 동기는 그들이 만들어낸 아이디어와 창조물의 독창성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리라 추론할 수 있습니다. 정말 그럴까요? 여러분 주위에 나르시스트가 있다면, 그리고 그 사람의 창의력과 참신성을 떠올려 본다면, 이 질문에 '예'라고 답하겠습니까?



잭 곤칼로(Jack A. Goncalo) 등의 심리학자들은 이러한 추론이 옳은지를 검증하고자 일련의 실험을 수행했습니다. 곤칼로 등은 244명의 학부생에게 'NPI 16'이라는 평가지를 돌려 나르시시즘의 정도를 측정했습니다. 그리고 2주 후에 학생들을 다시 불러서 2가지 과제를 수행하게 했는데, 첫 번째 것은 한 장의 벽돌을 얼마나 다양한 용도로 사용할 수 있는지 생각하여 10분 내에 모두 써내는 과제였습니다.  두 번째 과제는 다른 은하계의 행성을 방문했다고 가정하고 그곳에 사는 거주민의 모습을 7분 이내에 그려보라는 것이었죠. 

두 가지 과제를 모두 수행한 학생들은 자신이 작성한 것이 얼마나 창의적인지를 스스로 평가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또한 연구자들은 학생들의 창의성을 객관적으로 평가할 두 명의 심사자를 고용하여 학생들이 벽돌의 용도에 대해 얼마나 많은 아이디어를 쏟아냈는지(양적 측면), 그리고 아이디어들이 얼마나 유연한지(질적 측면)를 측정하도록 했습니다. 심사자들은 학생들이 그린 외계인 그림에서 남들과 다른 비전형적인 모습이 얼마나 발견되는지도 심사했습니다.


나르시스트적인 학생일수록 자신의 아이디어와 그림이 창의적이라고 스스로 자부했지만, 심사자의 심사 결과를 통해 회귀분석을 해보니 나르시시즘의 정도는 아이디어의 질적 양적 측면 모두와 관련이 없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벽돌 과제'와 '외계인 그림 과제' 모두 동일했습니다. 다시 말해, 자기 스스로를 가리켜 '잘났다. 창의적이다. 참신하다'라 자부하는 사람이라 해도 그를 남들보다 뛰어나다고 생각할 이유가 없다는 의미입니다.

이렇듯 나르시스트의 창의성이 그저 그렇다면, 나르시스트 주변의 사람들은 그의 창의성을 어떻게 평가할까요? 위 실험에서 증명된 바와 마찬가지로 나르시스트적인 사람의 아이디어는 그리 뛰어나지 않다고 느끼고 있을까요? 애석하게도 그렇지 못할 뿐더러 오히려 주변 사람들은 나르시스트의 창의력을 좋게 평가하는 경향이 있음이 곤칼로의 후속 실험에서 밝혀졌습니다. 곤칼로는 76명의 학생들을 두 명씩 짝을 이루게 하고 한 명에게는 '제안자'의 역할을, 다른 한 명에게는 '평가자'의 역할을 무작위로 부여했습니다. '제안자'에게는 영화 제작 아이디어를 구상한 다음 10분 동안의 설명으로 '평가자'를 설득시키는 과제가 주어졌습니다. 그리고 '평가자'는 '제안자'의 아이디어를 묵묵히 듣고서 영화 제작 아이디어의 참신함과 '제안자'로부터 받은 인상을 각각 평가해야 했죠.

실험이 끝나고 분석을 해보니, '제안자'의 나르시시즘의 정도와 '평가자'들의 창의성 평가 사이에 뚜렷한 상관관계가 발견되었습니다. 즉 제안자가 나르시스트일수록 평가자들은 제안자의 영화 제작 아이디어가 참신하고 독창적이라 평가한 겁니다. 이 결과는 사람들이 창의적인 인간상을 머리에 떠올릴 때 그 모습을 나르시스트의 특징과 등치시킨다는 것을 시사합니다. 창의적인 사람들이 모두 나르시스트가 아닌데도, 나르시스트이면 창의적일 것이라는 인상을 갖는다는 것이죠. 이 실험에서도 두 명의 심사자를 따로 고용해 학생들 모르게 평가한 결과, 나르시스트가 내놓은 영화 제작 아이디어는 그다지 창의적이지 않았습니다. 나르시스트가 창의적이지 않은데도 스스로를 창의적이라고 자부하고 또 남들도 그를 창의적으로 여긴다는 것이 이 실험의 결론입니다.

나르시스트가 조직의 리더가 되면 지난 글에서 언급했듯이 정보의 흐름을 막아 조직의 성과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칩니다. 이와 더불어, 자신의 창의력을 과대평가하여 직원들에게 강하게 푸시하고 또한 직원들도 그런 아이디어를 참신한 것인양 수용하는 바람에 역시 조직 성과를 저해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나르시스트적인 사람들이 조직에서 관리자의 위치로 승진할 가능성이 더 높음을 생각한다면, 리더의 나르시시즘은 그저 개인의 성격적 결함으로 치부할 수는 없습니다. 리더를 선발할 때 나르시스트의 과시 효과(showoff effect)에 영향 받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이는 것도 진정한 리더를 통해 조직의 성과 향상을 꾀하는 조직관리의 지혜입니다.

워싱턴 대학교의 에리카 칼슨(Erika N. Carlson)이 수행한 연구에서 나르시스트들은 본인이 나르시스트라는 점, 자신에게 부정적인 면이 있다는 점, 그래서 남들에게 첫인상을 좋게 남길 수 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인상이 나빠진다는 점을 모두 안다는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그렇다면 자신의 해법이나 전략이 뛰어난 아이디어라고 자신만만하기 전에, 자신이 가진 정보와 지식이 남들보다 우수하다고 자동적으로 생각하기 전에, 겸손의 미덕을 발휘하기 위해 '부드러운 브레이크'를 걸 필요가 있습니다. 카리스마는 내면의 치열한 자기성찰을 근본으로 한다는 점을 상기한다면 말입니다.


(*참고논문)
Are Two Narcissists Better Than One? The Link Between Narcissism, Perceived Creativity, and Creative Performance 
You probably think this paper's about you: narcissists' perceptions of their personality and reputation


반응형

  
,

아무 생각 없으면 보수적이 된다   

2012. 4. 2. 10:08
반응형


이런 상황을 가정해 보죠. 고객의 취향이 빠르게 변화하는 데다가 우리가 가진 제품으로는 그 취향을 만족시킬 수 없는 상황이 되어 갑니다. 게다가 기존 경쟁사는 미리 그런 변화를 감지했는지 적절한 시기에 신제품을 출시해서 앞서 나가기 시작합니다. 시간이 없습니다. 빨리 의사결정을 내리지 않으면 지금까지 누리던 경쟁력이 한순간에 사라질 위험에 처했습니다.

회사는 긴급회의를 열어 대책을 강구하기 시작합니다. 헌데 임원들이 오랜 시간 머리를 싸매고 만들어낸 전략은 왠지 어디서 많이 본 듯 느껴집니다. 매년 의례적으로 수립하는 사업계획서의 내용에 긴급함과 위기감을 강조하는 형용사와 부사가 여기저기 경고를 나타내는 빨간 딱지처럼 덧붙여진 것은 아닐까 의심이 듭니다. 위기를 돌파하기 위한 획기적이고 혁신적인 전략은 찾아보기 힘들고 기존의 사업을 기존의 방식대로 '더욱 열심히' 하겠다는 말 밖에는 없습니다. 다들 CEO의 입만 쳐다 보며 말입니다. 사실 이 상황은 가상의 사례가 아니라 모 회사에서 직접 목격한 것입니다.

많은 기업들은 이렇게 갑작스러운 변화를 아주 짧은 시간 동안 이루도록 요구 받으면 여러 가지 대책을 강구하지만 결국 기존의 것에서 한 발자국도 앞으로 나가지 못합니다. 기존의 제품, 기존의 방식, 그리고 기존의 구조 속에서 용인되던 기득권을 밑바닥에서부터 파괴하고 혁신하는 변화가 필요한 시점임에도 긴급 대책 전략은 현상(status quo)을 '열심히 유지'할 것임을 강하게 드러낼 뿐입니다. '더 열심히 영업 활동을 하겠다', '아침에 한 시간 일찍 출근하겠다', '시장 조사를 지금보다 더 자주 하겠다', 'KPI 타겟을 더 높이겠다' 등 열심히 하겠다는 말처럼 보수적인 것도 없습니다.



왜 그럴까요? 왜 위급하고 시간이 별로 없을 때 이렇게 보수적인 전략에 머물고 마는 걸까요? 그 근본적인 이유는 스콧 아이델만(Scott Eidelman) 등이 수행한 실험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연구자들은 컴퓨터 모니터 상에 사회적인 이슈와 관련된 50개의 용어를 떠오르게 하고 실험 참가자들에게 그것을 지지하는지의 여부를 판단하도록 했습니다. 이때 참가자들 중 절반에게 시간적인 압박을 가했습니다. 아주 짧은 시간 동안(550밀리초) 용어를 보여주고 빠른 시간 내(1550밀리초)에 답하도록 한 것이죠. 반면 다른 절반의 참가자들에게는 용어를 스크린 상에 오래 보여 주고 충분히 생각한 후에 답하게 했습니다. 이 과제를 수행한 후 연구자들은 보수주의를 뜻하는 단어 25개와 자유주의를 나타내는 25개 단어를 참가자들에게 제시하고 지지 여부를 7점 척도로 응답하도록 요청했습니다.

분석 결과, 시간의 압박을 받은 참가자들의 '보수주의적 성향'이 시간을 충분히 활용한 참가자들에 비해 높게 나타났습니다. 즉 시간에 쫓기면서 버튼을 눌러야 했던 참가자들이 보수주의적인 단어를 더욱 지지했습니다. 반면 '자유주의적 성향'은 시간의 압박 여부에 별로 영향을 받지 않았습니다. 시간적인 여유 없이 중요한 전략을 수립해야 하는 기업들이 혁신적으로 사고하기가 심리적으로 매우 어려움을 단적으로 시사하는 결과입니다.

아이델만 등은 시간적인 압박 조건 뿐만 아니라 '인지적인 부담'이 가중되는 조건 하에서도 사람들이 보수적인 성향이 높아짐을 또 다른 실험으로 증명했습니다. 실험 참가자들은 15분 동안 사회적 인식에 관한 자료를 완성해야 했는데, 참가자 중 절반은 자료를 완성하는 동안 테이프에서 재생되는 소리의 톤(tone) 변화가 몇 번 있었는지를 동시에 세어야 했습니다. 이렇게 인지적인 압박을 받아야 했던 참가자들은 그렇지 않은 참가자들에 비해 보수주의적인 성향이 높아지고 자유주의적인 성향은 낮아지는 결과가 나타났습니다. 여기 저기에서 대처해야 할 과제들이 한꺼번에 다가오는 상황에서 조직의 전략이 혁신적인 것과 거리가 멀어지고 그저 열심히 하겠다는 쪽으로 경도된다는 경험적인 사실이 실험으로 드러난 것입니다.

아이델만의 실험을 요약하면 시간적 압박과 인지적 부담은 사람들로 하여금 생각을 덜 하도록 만들고 생각을 덜 하게 되면  보수주의적 성향이 높아진다는 것입니다. 생각이 없으면 보수주의자가 된다는 말로 간단히 정리가 됩니다. 하지만 아이델만은 이 실험의 결과가 정치적으로 해석되면 곤란하다고 말합니다. 즉 '보수주의자들은 생각을 별로 하지 않는다'라고 여기면 안 된다는 것이죠. 아이델만은 이 실험이 노력을 기울이지 않은 짧은 생각이 사람들을 현상에 머무르도록 만든다는 것으로 실험의 의미를 제한합니다. 자유주의자들도 자신들의 이데올로기가 시간적 압박과 인지적 부담에 의해 쉽게 손상된다는 의미로 이 실험을 해석하면 곤란하겠죠. 아이델만의 말처럼 정치적 이데올로기는 경험, 역사, 가치 등을 통해 이루워진 다차원적인 이상이기 때문입니다.

시간에 쫓기고 여러 문제가 한꺼번에 터질 때 조직의 브레인들은 생각을 깊게 하지 못하고, 그런 조급함은 보수적인 성향을 자극하여 그저 더 많이 더 열심히 하겠다는 전략에 머물게 만듭니다. 혁신에 힘을 쏟을 생각은 전혀 하지 못하고 그저 발등에 떨어진 불만 끄려 합니다. 하지만 끄려고 할 때마다 발등의 불은 몸 전체로 번지고 맙니다. 위급하고 대처해야 할 과제가 많을 때 오히려 시간적인 여유를 가지려고 혁신의 기회를 탐색해야 합니다. 시장의 구조가 변하고 고객의 취향이 예전과 판이하게 다른 마당에, 경쟁자와 고객이 모두 떠난 빈 터에서 더 많이 더 열심히 하겠다는 의지는 아무 소용 없습니다. 

보수주의자들이 아무 생각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조직의 경영자와 직원들이 아무 생각 없으면 보수주의자가 되어 스스로 현상에 머무르려는 보수주의적 경영의 피해자가 됩니다. 여러분의 회사가 내놓는 전략이 풀빵 찍어내듯 매번 비슷하다면 아무 생각없는 사람들에 의해 아무 생각없이 조직이 흘러간다는 의미일지 모릅니다. 여러분의 회사는 지금 어떻습니까? 



(*참고논문)
Low-Effort Thought Promotes Political Conservatism 


반응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