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찍은 답을 바꾸는 게 훨씬 유리하다   

2012. 3. 21. 1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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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개 중 하나를 고르는 객관식 문제를 풀 때 두 개의 선택지 중 무엇이 답인지 확실하게 알지 못하던 경우를 여러 번 경험했을 겁니다. 이를테면 직감에 따라 1번을 찍었다가 '이게 아닌 것 같은데... 정답은 2번이 아닐까'하며 두 개의 선택지 중에 무엇이 맞는지 고개를 갸우뚱거렸던 적이 여러분 모두에게 있을 겁니다. 이런 경우 처음에 찍었던 답을 고수해야 할까요, 아니면 다른 답으로 바꿔 써야 할까요?

아마 여러분은 '처음에 찍은 답이 맞을 확률이 높다. 답을 바꾸면 틀리기 쉽다'는 이야기를 어디선가 들어봤을 터이고 또 그런 조언이 옳다고 믿고서 처음의 답을 고수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여러번 실시된 설문조사에 따르면, 거의 75%의 학생들이 답을 바꾸면 점수가 낮아진다고 믿습니다. 심리학자 저스틴 쿠르거(Justin Kruger)가 텍사스 A&M 대학교의 학생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도 답을 바꾸는 게 유리하다고 믿는 학생들은 16%에 불과했습니다. 하지만 진짜 그럴까요? 두 개의 선택지 중 무엇이 정답인지 '아리까리'할 때 처음에 찍은 답을 고수하는게 진짜 유리할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단적으로 말하면, 직감으로 찍은 최초의 답을 고수하는 것은 대개 불리합니다. '아리까리'할 때는 처음의 답을 포기하고 다른 것으로 바꿔야 유리하죠. 70년이 넘는 기간 동안 이를 지지하는 연구 결과가 여러 학자들에 의해 계속해서 제시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의 통념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는 게 신기할 정도입니다. 쿠르거는 '최초 직감의 오류(First Instinct Fallacy)'의 일종인 이러한 '미신'을 다시금 규명하기 위하여 몇 가지 실험을 고안했습니다.

그는 2000년 가을학기에 '심리학 개론' 과목을 신청한 1561명의 일리노이 주립대(얼바나 샴페인 분교)학생들의 중간고사 시험 결과를 분석했습니다. 객관식으로 치러진 이 시험에서 학생들은 처음에 기입한 답을 다른 답으로 바꾸기 위해서는 지우개를 사용하는 것 대신에 '지우기 마크'에 표시를 해야 했습니다. 학생들이 어떤 문항의 답을 교체했는지, 교체한 답의 정답 여부를 쉽게 파악하기 위함이었죠(쿠르거가 논문에서도 밝혔듯이 이런 방식이 완전한 것은 아닙니다).

학생들은 모두 3291개의 답을 교체했는데, 그 중 25%는 처음의 답을 바꾸는 바람(정답에서 오답으로)에 점수가 깎였으나 51%는 답을 교체(오답에서 정답으로)함으로써 정답을 맞혔다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나머지 23%는 처음의 답과 나중에 선택한 답도 모두 오답인 경우였습니다. 문항 단위가 아니라 학생 단위로 분석하니, 54%의 학생(666명)들이 답을 바꿈으로써 이득을 얻었고 19%의 학생들만 답을 변경하여 점수가 깎였습니다. 이로써 처음의 직감을 포기하고 다른 답으로 바꾸는 것이 2배나 유리하다는 사실이 다시 한번 증명되었습니다. 하지만 학생들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학생들 중 51명을 무작위로 뽑아서 최초의 답이 맞을 가능성과 새로운 답이 맞을 가능성을 질문하니 75%의 학생들이 답을 바꾸는 게 불리하다(최초의 답이 정답일 가능성이 높다)고 답했습니다.

쿠르거는 처음의 답을 고수하는 것이 유리하다는 '잘못된 믿음'을 갖는 원인이 무엇인지 파악하기 위해 후속 실험을 진행했습니다. 쿠르거는 학생들에게 1번 문제는 처음의 답을 바꿔서 틀렸고 2번 문제는 처음의 답을 고수해서 틀렸다는 가상의 상황을 제시한 다음, 어떤 경우가 더 후회스럽고 자신이 바보 같다고 느껴지는지 등을 질문했습니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1번 문제가 더욱 후회스럽다고 답했고, 1번 문제를 놓친 상황이 더욱 바보스러운 결정이었다고 말했습니다. 맞힐 수 있었으나 답을 바꾸는 바람에 틀린 상황을 답을 고수하여 틀린 상황보다 더 안타까워한다는 결과였죠.

쿠르거가 추가로 실시한 다른 2가지 실험(SAT와 GRE 실험, '누가 백만장자가 되길 원하나(Who want to be a millionaire?)' 퀴즈 실험)에서도 이런 경향이 뚜렷하게 나타났습니다. 처음의 답을 고수하려 했고, 처음의 답을 바꿔서 틀린 경우를 더욱 애석하게 생각하고 자신의 어리석음을 탓했습니다. 이러한 경향은 정답일지 모르는 최초의 답을 오답일지도 모르는 다른 답으로 바꿀 때 '만약 그렇게 하면....?'이란 생각이 더욱 강하게 개입하기 때문이라고 쿠르거는 말합니다. 이는 손실을 회피하려는 성향과 연결됩니다. 최초에 선택한 답을 '포기할 때 입을 손실'을 '포기함으로써 얻을 이득'보다 더 크게 느낀다는 뜻입니다. 또한 답을 바꿔서 틀렸던 경험이 답을 변경하여 이득을 본 경험보다 뇌리가 더 강하게 박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최초 직감의 오류'는 두 가지 대안 중 하나를 결정하고자 할 때 범할 수 있는 심리적 오류 중 하나입니다. 자신이 내렸든 타인이 내렸든 처음에 선택된 대안에 확신이 없을 경우, 그래서 다른 대안으로 바꿀까 말까를 고민할 경우, 최초의 대안을 고수하고 바꾸지 않으려는 관성을 설명해 줍니다. 새로운 대안의 좋지 않은 면을 바라보려 하고 기존 대안의 단점을 무시함으로써 결국 기존 대안에 안주하는 경향은 '매몰비용 효과'나 나약하게 보이지 않으려는 욕구 등으로 설명되곤 하지만 '최초 직감의 오류'도 상당 부분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듯 합니다. 또한, 처음의 대안을 포기했을 때 우려되는 손실을 일종의 벌칙으로 간주하여 '무행동(inaction)'을 선택하려는 동기와도 연결됩니다. 새로운 대안을 선택했다가(즉 행동(action)했다가) 실패로 끝날 때 입게 될 비난과 스스로가 느낄 후회스러움이 더 크고 거세리라 생각하기 때문이죠.

항상 그런 것은 아니지만, 본능적으로 느낀 답을 다른 것으로 바꿀 때가 더욱 유리합니다. 말콤 글래드웰이 말한 '블링크(blink)' 현상은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그리 믿을 만하지 못합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러니 혹여 객관식 시험을 볼 기회가 있다면, 처음에 찍은 답을 의심하는 것이 유리하다는 사실을 잊지 말기 바랍니다. ^^


(*참고 논문)
Counterfactual Thinking and the First Instinct Fallacy


(*추신)
조금 다른 이야기인데, 어떤 분이 경복궁역에서 삼성역까지 퀵서비스를 신청하는 전화를 옆에서 들었습니다. 집에 있는 마우스를 가져다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퀵서비스 요금이면 근처 가게에서 하나 살 텐데 말이죠. 얼마나 대단한 마우스일까 궁금했습니다. 1시간 정도 지나 도착한 마우스는 그저 평범한 유선 광마우스였습니다. 이를 경제학적으로, 심리학적으로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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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수요를 미리 알아챈 사람들   

2012. 3. 20. 1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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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작년에 번역을 완료한 책 '디맨드(원제 : Demand)'가 편집을 거쳐 오늘 출간됐습니다. 꼼꼼하게 책을 만드느라 시간을 충분히 쏟았다고 합니다. 저자는 경영의 구루로 손꼽히는 에이드리언 슬라이워츠키입니다. 위대한 수요 창조자들이 몸소 실천한 수요 창조의 비밀 코드를 생생한 사례와 함께 제시하시는 흥미로운 책입니다. 책 분량이 좀 있지만 사례가 충실하게 기술되어 있기에 쉽게 읽히리라 생각됩니다.




아래의 글은 제가 쓴 것으로서, '옮긴이의 말'로 책에 실렸습니다. 여러분에게 공유하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맥도날드는 밀크셰이크의 판매를 늘리기 위해 마케팅 전략을 고심한 적이 있다. 그들은 밀크셰이크 시장을 여러 개의 세그먼트로 나눈 다음, 각 세그먼트에 해당하는 고객들을 초청하여 어떤 밀크셰이크를 좋아하는지를 묻는 통상적인 절차로 마케팅 전략을 수립했다. 맥도날드는 고객들이 걸쭉한 것을 좋아하는지, 얼음이 많이 들어가서 차가운 것을 좋아하는지, 당도가 높은 것을 원하는지 등을 알아내는 것이 전략의 핵심 포인트라고 여겼다. 다시 말해 고객들이 밀크셰이크 자체의 어떤 특성을 좋아하는지 올바로 캐내기만 하면 보다 많은 고객들에게 선택되는 밀크셰이크를 출시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밀크셰이크의 판매에는 거의 변화가 없었다.

제럴드 버스텔(Gerald Berstell)이란 마케터가 하루 종일 매장에 죽치고 앉아 어떤 사람들이 밀크셰이크를 구입하는지 관찰하기 전까지는 아무도 돌파구를 발견하지 못했다. 버스텔은 특이하게도 밀크셰이크 판매의 40퍼센트가 사람들이 출근을 서두르는 이른 아침에 발생한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게다가 밀크셰이크를 구입하는 사람들은 드라이브 쓰루(Drive-thru) 서비스를 이용하거나 매장에서 밀크셰이크를 사가지고 가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왜 하필 사람들이 이른 아침에 밀크셰이크를 살까?‘ 그는 밀크셰이크를 구입하고 나가는 사람들에게 그 이유를 물었다.

고객들은 출근을 위해 먼 거리를 자동차로 달리는 동안, 지루함을 달래거나 아침식사를 대신하기 위해 손에 잡고 먹을 수 있는 무언가가 필요했다. 버스텔은 밀크셰이크의 특이한 판매 패턴이 밀크셰이크가 운전에 방해되지 않고 옷이나 운전대를 더럽히지 않으며 점심을 먹기 전까지 허기를 달래줄 만한 음식으로 가장 적당하다는 고객의 말을 듣고 무릎을 쳤다. 그는 밀크셰이크라는 제품 자체의 특성에 집중하는 마케팅 전략이 얼마나 어리석고 얼마나 무의미한지 깨달았다. 고객의 관점에서 봐야 한다는 평범한 원칙을 얼마나 망각했는지 새삼 반성했다.

고객의 관점에서 마케팅 전략을 수정한다면 이른 아침에 출근을 서두르는 자가용 승용차 통근자들이 좋아할 만한 밀크셰이크를 출시하는 것이 전략의 핵심이 되어야 한다. 밀크셰이크에 과일을 첨가한다든지, 밀크셰이크가 쉽게 빨대를 통과하지 않도록 걸쭉하게 만들어서 자동차를 모는 내내 밀크셰이크를 즐기게 한다든지 등을 생각할 수 있다. 또한, 메뉴판에는 똑같이 밀크셰이크라 쓰여 있다 해도 아침에 파는 것과 한낮에 파는 것의 특성을 다르게 해야 좋을 것이다. 한낮에는 다른 직업을 가진 사람들(주부, 학생 등)이 밀크셰이크의 주요 대상이기 때문이다.

버스텔처럼 고객에 다가가 직접 이야기를 듣는 일은 생각하면 아주 간단한데도 왜 곧잘 잊어버리고 마는 것일까? 저자들은 책의 여러 곳에서 ‘배짱’이라는 말을 언급한다. 조직의 리더 대부분은 고객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 번거롭거니와 짜증나는 일이라고 여긴다. 고객들은 아무리 잘 해줘도 불만을 표하기 일쑤이고 지나치게 세부적인 사항에 집중하는 바람에 돈과 시간을 낭비할 뿐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더욱이 고객의 말은 서로 모순일 때도 많아서 단순함과 간결함을 원하면서도 기능의 다양성을 요구하고, 어떨 때는 품질이 중요하다고 말하다가 어떨 때는 품질 대신 가격을 낮출 것을 바라니까 말이다. 그러니 고객의 말에 귀를 기울이려면 배짱이 있어야 한다는 말이 이해가 된다.

옮긴이가 보건대 고객의 말을 들으려는 이런 배짱이야말로 수요 창조자가 갖춰야 할 기본기 중 최우선적인 조건으로 뽑을 만하다. 그런 배짱이 전제되어야 저자들이 이 책에서 ‘위대한 수요 창조자’들이 제품의 수요를 창출하기 위해 준수하는 6단계 프로세스를 실천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고객의 목소리를 경청하는 자들은 제품이 고객을 끌어당기는 힘이 품질이나 가격에 있다고 보지 않는 진정한 배짱이 있다. 수요 창조자들은 미묘하고 형언하기 힘든 매력적인 제품에 온 힘을 기울인다. 자석이 쇳조각을 끌어당기듯 고객을 강하게 끄는 제품을 시장에 내놓을 때까지 만족할 줄 모른다. 매력적인 제품이야말로 고객의 감성을 풍부하게 만들 뿐만 아니라 직원들의 열정에 불을 지필 수 있다는 점을 잘 알기 때문이다. 배짱을 상실하고 적당한 품질과 적당한 가격으로 타협하는 순간, 있으면 좋고 없어도 별로 아쉬울 것 없는 제품으로 인식되고 수요 창조의 꿈은 경쟁사의 것이 되고 만다.

둘째, 수요 창조자들은 고객이 가진 고충에 초점을 맞춘다. 고객이 느끼거나 느끼지 못하는 고충을 한 발 앞서 찾아내고 그 고충을 해결하기 위해 흩어진 가치를 한데 모으고 분산된 프로세스를 정렬시키는 일에 집중한다. 상품, 서비스, 정보, 기타 자원 등을 각각의 점으로 인식하고 그것들을 선으로 연결하면서 현재의 고충 지도를 개선된 고충 지도로 다시 그려낸다. 이러한 과정에도 배짱이 필요한데, 기존의 프로세스, 조직, 인력, 기술 등을 제로베이스에서 검토하고 때에 따라서 뒤집어엎어야 하는 자기 부정과 창조적 파괴의 단계를 요구하기 때문이다. 재앙의 수준이라고 비난 받는 미국의 헬스캐어 시장에서 독보적인 영역을 구축한 캐어모어를 보면 고객의 고충을 해결하려는 리더의 배짱이 국가적으로도 절실하게 필요한 덕목일 수 있음을 깨닫는다.

셋째, 수요 창조자가 되려면 제품의 배경 스토리를 확보하려는 배짱이 있어야 한다. 제품 하나만으로 수요의 물꼬를 트지는 못한다. 배경 스토리가 존재하거나 없으면 만들어내야 하는 것이 배짱 있는 리더가 할 일이 있다. 넷플릭스의 성공이 미국 우편국의 우편 배달 서비스라는 배경 스토리에서 가능했고, 애플의 성공은 아이튠즈를 중심으로 한 생태계로부터 잉태된 것이다. 수요 창조를 위해 제품 이외에 무엇을 관여시킬지, 고객에게 최상의 서비스를 제공하려면 어떤 인프라를 구축할지, 그리고 그 인프라를 어떻게 개선할지 끊임없이 묻고 답해야 할 것이다.

넷째, 배짱이 있는 리더들이 수요를 촉발시킬 방아쇠를 마침내 찾아낼 수 있다. 네스프레소의 수요 폭발은 제품 자체보다는 ‘직접 체험’이라는 고객과의 관계 속에서 나왔다. 이것 역시 고객과 직접 대면하며 방아쇠를 찾아내려는 리더의 두둑한 배짱이 없었으면 가능하지 않았을 것이다. 방아쇠는 쉽게 발견되지 않는다. 네스프레소가 1980년대 중반에 시장에 첫선을 보였지만 ‘직접 체험’이라는 방아쇠를 찾아내기까지 10년이나 걸린 것만 봐도 그렇다. 결코 실망하지 말아야 하며 방아쇠 탐색을 멈추지 않아야 한다.

다섯째, 제품 출시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임을 명심해야 한다. 대부분의 고객들은 제품의 출시 대부분에 무관심하다. 제품의 출시로 제품의 진화가 멈춰서는 안 된다. 시장과 고객으로 둘러싸인 생태계 속에서 제품을 적응시키는 강력한 ‘진화 프로세스’를 작동하려는 노력이 없다면, 한때 업계를 호령했으나 환경 변화에 적응하지 못해 무너져 버린 K마트, 코닥, 폴라로이드 등의 전철을 밟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여섯째, 고객들을 ‘하나의 통’으로 보려는 스스로의 관성을 깨뜨릴 배짱이 있어야 한다. 개별 고객은 모두 각자의 니즈와 고충을 가지고 있다. 공급자의 입장을 견지하는 리더들은 일을 복잡하게 만든다는 이유로 고객들 간의 편차를 싫어하고 ‘평균적 고객’이란 허황된 개념에 기댄다고 저자들은 꼬집는다. 위대한 수요 창조자들은 이를 당연하게 생각하고 그런 편차를 좋아한다. 또한 수요 창출에 기여하는 고객들에 집중하고 그렇지 못한 고객들은 과감하게 무시한다. 모든 고객을 다 상대하려고 이것도 저것도 아닌 제품을 내놓는 배짱 없는 리더들이 귀담아 들어야 할 내용이다.

저자들은 수요 창조에 있어 리더와 조직이 실천해야 할 6가지 덕목에 그치지 않고 시각을 확대하여 사회경제적으로 그들에게 훌륭한 ‘재료’의 공급이 전제되어야 한다고 역설한다. 쇼클리의 트랜지스터가 현대의 정보사회의 근간이 됐듯이 기업과 기업 생태계의 혁신은 과학적 탐구라는 ‘엔진’에 의해 좌우되고, 그 엔진이 국가와 사회의 경제적 미래를 규정하는 데에 근본적으로 중요한 요소임을 지적한다. 이 부분을 번역하면서 씁쓸함과 함께 위기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장기적인 연구와 기초 투자를 외면하고 오직 응용 기술과 단기적 성과라는 달콤한 열매만 따먹으려 하는 요즘의 분위기가 우리나라 기업 생태계의 다양성을 훼손하고 결국 세계 시장에서의 적응력을 상실시키지는 않을까 염려되는 까닭이다. 저자들이 과학적 발견이야말로 수요 창조의 거대한 불꽃이라고 표현하며 책의 마지막 장을 할애한 이유를 기업의 리더와 국가 지도자들은 새겨야 할 것이다.

흔히 수요를 창조하려면 리더에게 예술적 기교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이는 저자들이 이 책에서 제시한 수요 창조의 비밀을 읽고 넘어가는 자들에게는 옳은 말일지 모른다. 하지만 제품 개발 프로세스에 하나씩 적용하면서 배짱과 인내심을 갖고 밀고 나가는 자들에게는 옳지 않은 말이다. 예술적 기교는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몸으로 부딪치며 얻어내는 선물임을 이 책에 소개된 여러 수요 창조자들이 역사(役事)로 증명하고 있으니 말이다. 저자들은 거울을 들여다보라며 이 책의 마지막 문장을 썼다. 하지만 이 책을 먼저 들여다보라고 옮긴이는 권한다. 수요 창조의 여정에서 길을 잃을 때면 언제나. 


* 교보문고로 가서 책 살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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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근을 많이 하면 남을 속이게 된다   

2012. 3. 19.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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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6시가 되면 퇴근하는 사람들보다 저녁을 먹으러 가는 직장인들이 더 많아 보입니다. 저녁 6시는 퇴근시간이라기보다는 저녁식사 시작 시간인 것 같다는 느낌을 자주 받습니다. 어떤 직원은 별로 할일이 없는데도 게으름을 피우며 일을 미루다가 저녁 때가 되어서도 그날의 일을 완료하지 못해 습관적으로 야근하기도 하지만, 진짜로 일이 많고 또 급해서 매일 야근을 밥먹듯 하는 직원들도 많습니다. 치열한 경쟁 환경에서 효율성을 강조하다보니 인력을 예전보다 보수적으로 운용하고, 빠른 업무처리를 약속하는 각종 IT 시스템이 수작업에 의존하던 과거보다 오히려 업무를 더욱 가중시키다보니 직원이 제시간에 퇴근하기가 힘들어지고 어쩌다 제시간에 퇴근하면 눈총을 받기까지 합니다.

늦게 퇴근한다고 해서 다음날 늦게 출근해도 되는 회사는 그리 흔치 않죠. 야근을 할 수밖에 없는 환경을 만들어 놓고서 직원이 아침에 조금 늦게 출근하는 것을 '군기'가 빠졌다며 고깝게 생각하는 관리자들이 많은 것이 사실입니다. 해서 매일 야근으로 지친 직원들은 수면 부족에 시달릴 수밖에 없습니다. 2011년에 모 취업 포탈 사이트에서 직장인 58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평균 수면 시간은 고작 6시간 10분 밖에 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권장 수면시간(8시간)에서 2시간 정도 부족하죠.



이러한 수면 부족이 생산성에 나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은 누구나 인정하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수면 부족이 단순한 생산성 저하 이외에 직원들의 비도덕적인 행동을 유도한다는 것은 잘 알려지지 않은 진실입니다. 크리스토퍼 반스(Christopher M. Barnes) 등의 연구진들은 수면이 개인의 비윤리적인 행동과 관련이 되어 있음을 실험을 통해 규명했습니다. 절대수면시간이 부족하고 수면의 질이 떨어지는 직원일수록 상사와 동료로부터 비윤리적인 행동을 할 가능성이 높다는 평가를 받았고, 동료 직원들이 자신의 일을 대신 처리해 주는 선행에 대해 별로 미안해 하지 않는 경향을 보였습니다.

또한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실험에서는 수면이 부족한 학생일수록 돈이 걸린 게임에 참여할 때 다른 참가자들을 속이는 경우가 많다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수면 부족이 사고력과 자기절제력을 약화시켜 이기적으로 행동하게 만드는 것이죠. 다른 참가자를 속인 학생들은 정직한 학생들에 비하여 전날 밤에 평균 22.39분을 덜 잤을 뿐인데도 비윤리적으로 행동했습니다. 적정 시간보다 2시간이나 덜 자는 우리나라 직장인들에 수면 부족이 단순한 생산성 저하에 그치지 않고 더욱 심각한 악영향을 끼치리라 짐작케 하는 대목입니다. 효율성을 목적으로 적은 인력으로 많은 업무량을 소화하도록 만듦으로써 애써 얻은 노동생산성 증가분이 장기적으로 볼 때 비윤리적인 '나쁜 성과'에 의해 상쇄되고 말 것임을 시사합니다.

마이클 크리스천(Michael Christian)과 알렉산더 엘리스(Aleksander Ellis)가 수행한 또다른 연구에서도 수면 부족이 일탈적이고 비윤리적인 행위를 유발한다는 결과가 도출되었습니다. 그들은 교대근무를 하는 간호사들을 대상으로 조사를 벌였는데, 교대 순번이 바뀌는 바람(예컨대 낮 근무에서 밤 근무로)에 수면 리듬이 깨져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한 간호사들이 금지된 행동을 자주 보이는 모습을 관찰했습니다.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실험에서도 수면 부족한 학생들이 고객들에게 무례하게 대하는 경향을 보였습니다.

하버드 의과대학의 수면의학 교수인 찰스 짜이슬러(Charles Czeisler)는 "24시간 한숨도 자지 않거나 1주일 동안 하루에 4~5시간 밖에 자지 않으면, 혈중 알코올 농도 0.1퍼센트에 해당하는 신체 장애가 나타난다"라고 말합니다. 0.1퍼센트면 법적으로 면허 취소에 해당하는 수치입니다. 과중한 업무로 인해 야근을 밥먹듯 하는 직원이 있다면 그는 일주일 내내 면허 취소에 해당하는 술을 마시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회사 측에서 직원들의 야근을 방조하거나 직간접적으로 권장(?)한다면 직원들에게 '음주 근무'를 방조하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알다시피 음주는 이성적 판단을 저해하고 평소 같으면 못할 행동을 자극합니다. 컨설팅 업체인 KPMG에 따르면 인수합병 건의 83%가 주식 가치를 끌어올리는 데 실패했는데, 역사적으로 악명 높은 인수합병 실패 사례들은 야근과 수면 부족으로 '취한' 상태에서 내린 과감한 결정 때문이라는 주장도 있습니다.

여러 회사에서 도입하는 윤리경영의 실천지침을 들여다 보면 대개 '무엇무엇을 하지 말라', '조심하라'는 문장이 발견됩니다. 직원들에게 윤리적 책임을 다할 것을 기대하는 내용을 볼 때마다 직원들이 윤리적으로 행동하도록 환경이 먼저 조성되어야 하지 않을까란 의문이 생깁니다. 윤리 규정을 만들고 이를 위반할 때는 불이익을 감수해야 한다는 식의 접근은 문제의 핵심을 놓치는 것일지 모릅니다. 직원들이 이기적으로 혹은 비윤리적으로 행동하는 근본적 이유는 예전에 올린 글 '직원들이 회사 물건을 훔치는 이유'에서도 밝혔듯이 직원 개인의 품성이나 가치관의 결함 때문이기보다는 직원을 둘러싼 업무환경과 조직문화의 악성요소 때문이라고 보는 것이 옳습니다. 

가치가 떨어지는 업무, 요식 행위에 해당하는 업무, 아웃소싱이 가능한 업무 등을 과감하게 제거하여 직원들의 업무 부담을 덜어주어야 합니다. 그들이 8시간 동안 높은 가치를 지닌 업무에만 오로지 집중케 하고 저녁 6시에 모두 퇴근할 수 있는 기초를 만드는 것이 겉으로 내세우기 좋은 윤리경영 캐치프레이즈보다 선행되어야 합니다. 오랫동안 일한다고 해서 생산성이 높아지는 것은 아니며, 설령 생산성이 높아졌다고 해도 그 증가분은 비윤리적인 냄새로 오염되고 말 겁니다.

여러분은 오늘도 야근할 계획입니까?


(*참고 논문) 
Lack of sleep and unethical conduct
Examining the Effects of Sleep Deprivation on Workplace Deviance: A Self-Regulatory Perspective

(*참고 기사) 
Lack of Sleep Leads to Unethical BehaviorWhy Your Next Big Deal Will Fai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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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리는 경영진이 더 많이 저지른다   

2012. 3. 16. 1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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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산이 많거나 사회적으로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들은 과연 그렇지 못한 사람들에 비해 규칙을 잘 지키고 윤리적일까요? 소위 상류 계층의 사람들은 거짓말을 덜 하고 부정을 덜 저지를까요? 우리는 그들이 그렇지 않다는 심증을 가지고 있습니다. 심리학자인 폴 피프(Paul K. Piff) 등은 이런 의심을 명확한 물증으로 증명하는 여러 가지 실험을 진행했습니다.

피프는 자동차가 재산의 많음과 높은 사회적 지위를 상징한다고 가정하고 자동차의 메이커와 외양에 코드를 부여하기로 한 다음 차들이 몰리는 4차선 도로에서 어떤 자동차가 자기 순서를 기다리지 않고 교차로 가로질러 부당하게 끼어들기를 많이 하는지 일일이 세어 보기로 했습니다. 그랬더니 그랬더니 최고급 자동차 운전자들은 30% 넘게 끼어들기를 하는 반면, 가장 낮은 등급의 자동차 운전자들은 7~8% 정도 끼어들기를 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실험을 확장하여 자동차들이 교차로로 다가가기 위해 횡단보도를 얼마나 침범하는지를 조사했더니, 가장 낮은 등급의 자동차 운전자들은 한번도 횡단보도의 선을 밟지 않았으나 최고급 자동차 운전자들은 무려 45% 넘게 횡단보도를 침범했습니다. 이 두 실험은 고급차일수록 교통법규를 더 자주 위반한다는 통념을 확인시켜주었습니다.

피프는 실험 방식을 달리 하여 참가자들에게 8가지 가상 시나리오를 읽게 한 후에 그들이 각 시나리오에서 묘사된 행동을 얼마나 따를 가능성이 있는지 적도록 했습니다. 각 시나리오는 가상의 인물이 무언가로부터 부당하게 이득을 취하려는 이야기가 기술돼 있었죠. 이 실험은 스스로를 상류 계층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일수록 다른 이들에 비해 비윤리적인 행동을 취할 가능성이 높다는 결과를 드러냈습니다.



이번엔 협상 과정에서 상류 계층의 사람들이 어떤 행동을 보이는지를 살펴보기로 했습니다. 피프는 입사를 원하는 가상의 지원자가 고용주와 함께 임금 수준을 협상하는 상황을 참가자들에게 말하면서 지원자가 지원한 직무가 불안정해서 곧 없어질 거라는 사실을 일러줬죠. 참가자들은 고용주가 지원자에게 해당 직무의 안정성에 관해 진실을 말할 가능성이 얼마나 될지를 적어야 했습니다. 상류 계층으로 분류된 참가자들은 고용주가 정직하게 고백할 가능성이 낮다고 생각했고, 탐욕에 대해 상대적으로 긍정적인 태도가 있다고 평가된 참가자일수록 고용주가 진실을 말하지 않을 거라 판단했습니다. 추가로 통계 분석을 실시한 결과, 부분적이지만 상류 계층의 개인들은 다른 계층의 사람들보다 탐욕을 긍정적으로 바라보기 때문에 속임수를 '좋아하는' 경향이 있음이 나타났습니다.

상류 계층의 사람들이 속임수를 잘 쓴다는 사실은 컴퓨터 모니터 상에 띄운 가상의 주사위 실험에서 보다 명확하게 드러났습니다. 참가자들은 주사위를 모두 다섯 번 던질 수 있었는데, 나오는 숫자의 합이 클수록 상금을 탈 확률이 높다는 사실을 진행자로부터 들었습니다. 참가자들은 주사위를 던질 때마다 나오는 숫자를 자율적으로 기록해야 했죠. 하지만 주사위 숫자의 합은 항상 12가 되도록 사전에 조작된 실험이었습니다. 예상대로(?) 상류 계층으로 평가된 사람일수록 합계를 속이는 비율이 더 많았습니다. 

피프의 연구는 실험실에서나 현실에서 상류 계층일수록 법규를 어기고 탐욕적으로 행동하며 비윤리적인 결정을 선호하고 속임수를 거리낌없이 사용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분명하게 보여줍니다. 그렇다면 상류 계층의 사람들은 왜 그런 경향을 보이는 걸까요? 그들은 지위나 직업적으로 다른 사람들보다 독립적이고 프라이버시를 보호 받기 때문에 사회적인 제약이 적고 비윤리적인 행동으로 인한 제재를 덜 인식하기 때문이라고 피프는 설명합니다. 또 그들은 자신들이 그럴만한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고 다른 이들의 평가에 신경을 그다지 쓰지 않으며 목표 지향적인 경향이 커서 비윤리적인 행동을 합리화하기도 합니다. 

조심스러운 시도이지만, 피프의 연구 결과를 기업 내에 대입해 보면 어떨까요? 전반적으로 경영자들은 직원들을 신뢰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강제화된 성과지표, 통제 시스템, 규칙, 관료화된 조직 구조 등은 어쩌면 직원들은 기회만 생기면 부정을 저지른다는 가정 하에 만들어진 것이라 볼 수 있으니 말입니다. 성인인 직원들을 어디로 튈지 모르는 어린 아이로 간주한다는 증거입니다. 조직 내에서 상대적으로 지위가 낮은 직원들을 대상으로 통제를 강화하고 체계를 공고히 한다면 그 회사는 윤리경영의 초점을 잘못 맞추고 있는 겁니다. 직원들에 의해 잘잘하게 저질러지는 부정보다도 고위직이 아무 거리낌없이 휘두르는 부정이 더 잦고 더 심각하고 더 뻔뻔할 수 있음을 외면하는 것은 아닐까요?

부정을 저지르는 자는 스스로가 부정을 저지를 자격(?)이 있다고 믿는 사람, 부정의 수준을 실제보다 평가절하하는 사람, 아랫 사람을 많이 두고 권한이 많은 사람들일 확률이 훨씬 높습니다. 권한 없이 묵묵히 일하는 직원들을 대상으로 윤리경영을 강조하기 전에 경영진들을 단속하는 것이 먼저입니다. 불편하더라도 현실을 직시해야 합니다. 비리나 부정은 경영진이 더 많이, 더 심각하게 저지릅니다.

여러분 조직에서 대부분의 부정은 누가 저지른다고 생각하십니까?


(*참고논문)
Higher social class predicts increased unethical behavi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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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칙이 직원들을 '복지부동'하게 만든다   

2012. 3. 15. 1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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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몰아치는 망망대해에 탑승정원을 초과한 배가 위태롭게 떠 있습니다. 이 배가 구조선이 올 때까지 버티려면 적어도 1명의 승객이 바다에 빠져야 희생되어야 하는 상황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승객들 모두가 구조선이 오기도 전에 익사하고 말 겁니다. 한 사람만 희생되느냐, 아니면 모두 죽느냐, 이런 윤리적 딜레마에 빠질 때 사람들은 어떻게 행동할까요? 누군가 1명을 선택해 바다에 빠뜨리려 할까요, 아니면 아무런 행동을 취하지 않을까요?

약간 다른 예이지만 이런 경우도 생각해 보죠. 조직 내에서 파워를 가진 누군가가 고객에게 엄청난 피해를 입히는 제품의 결함을 알면서도 모른 척 한다는 것을 발견한 직원이 내부고발자가가 되어 그 사실을 외부에 알리려 할까요, 눈 감으려 할까요? 내부고발자가 되면 조직 내 다른 구성원들로부터 직간접적인 위해를 겪게 될 터이고 결국 잘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어야 할지도 모릅니다. 또는 어렵게 고발한 사건이 조직의 힘에 눌려 유야무야돼 버린다면 자신의 용감한 행동은 아무런 가치를 얻지 못해 참담함을 느껴야 할지도 모릅니다.



피터 드치올리(Peter DeScioli), 존 크리스트너(John Christner), 로버트 쿠르즈반(Robert Kurzban)은 사람들이 행동을 요구하는 윤리적인 딜레마나 갈등에 빠질 때 '행동하지 않는' 대안을 선택하는 경향이 강하다는 사실을 실험을 통해 밝혔습니다. 모두 그렇지는 않겠지만, 대개는 배가 가라앉는 모습을 바라보거나 조직의 비리에 눈을 감고만다는 것이죠. 연구자들은 실험참가자들을 무작위로 '소유자(owner)'와 '수취자(taker)'로 구분한 다음, 소유자들에게 1달러씩 나눠줬습니다. 

수취자들은 소유자에게서 자기 몫으로 10센트나 90센트를 가져올 수 있었습니다. 헌데 얼마를 가져올지를 수취자가 결정을 바로 내리지 못해서 15초가 경과되면, 수취자는 85센트를 가질 수 있었고 소유자는 한푼도 못 가지게 했습니다. 소유자에게서 90센트를 가져오는 것과 아무 결정을 하지 않고 자기만 85센트를 받는 것(동시에 소유자는 빈털털이가 되는 것)은 모두 이기적인 결정이겠죠. 연구자들은 소유자와 수취자의 심리 게임에 제3의 참가자인 '심판자'를 참여시키는 옵션을 추가했습니다. 심판자들에게는 수취자들의 결정을 지켜보고 수취자가 가져간 돈의 감액을 판단하는 역할이 주어졌습니다. 심판자들은 수취자들이 가져간 돈에서 최대 30센트를 감할 수 있었죠. 연구자들은 이렇게 심판자가 참여하는 게임과 참여하지 않는 게임을 나누어 진행했습니다.

수취자들은 어떻게 행동했을까요? 10센트나 90센트를 가지겠다고 바로 결정을 내렸을까요, 아니면 아무 결정도 하지 않고 시간이 경과하길 기다렸다가 85센트를 받았을까요? 우선 심판자가 참여하지 않는 게임에서 수취자들 중 65퍼센트는 90센트를 가지겠다고 결정했고 28퍼센트는 아무런 결정을 내리지 않고 시간이 지나기를 기다렸다가 85센트를 받았습니다. 이와 달리 심판자가 참여하는 게임에서는 아무런 결정을 내리지 않는 수취자가 51퍼센트로 늘어나는 결과가 나타났습니다. 벌을 주겠다고 하니 '결정을 내리지 않는 결정'을 택하는 경향이 커진 것이죠. 또한 10센트만 가지는 '상대적으로 이타적인' 수취자들은 심판자가 없을 때는 8퍼센트였지만 심판자가 개입하자 3퍼센트로 줄었습니다.

그렇다면 심판자들은 어떻게 행동했을까요? 심판자들은 수취자가 소유자로부터 90센트를 가져가겠다고 결정을 내리면 평균 20.8센트의 돈을 감액했습니다. 하지만 수취자가 시간이 가길 기다렸다가 혼자서 85센트를 가져가면 평균 14.4센트의 돈을 제했습니다. 심판자들의 눈에는 수취자가 90센트를 갖겠다고 내리는 결정이 아무 결정을 내리지 않는 것보다 더 이기적인 행동이라고 비쳤다는 의미입니다. 

심판자가 게임에 참여하면 아무런 행동을 하지 않는(inaction) 경향이 커져서 소유자의 피해가 더욱 커지고, 심판자는 아무런 행동을 하지 않는 사람을 상대적으로 좋게 봄으로써 소유자의 피해를 방관할 가능성이 크다는 이 실험의 결과는 참 아이러니합니다. 제3자의 비난이나 제재가 존재할 때 갈등을 일으키는 윤리적인 결정을 회피하고 '무행동(inaction)'을 택함으로써 그런 비난과 제재를 면제 받으려는 동기가 발생합니다.

무행동의 이유는 무행동 그 자체가 의도를 모호하게 만드는 효과가 있기 때문입니다. 위 실험에서 수취자가 아무 결정을 취하지 않으면, 심판자의 머리 속은 '수취자에게 꿍꿍이가 있는 것일까? 수취자가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기 때문일까?'하는 생각들이 서로 얽히겠죠. 또한 무행동에 비해 행동(action)으로 인한 결과는 머리 속에 강하게 각인되기 때문에 무행동을 택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행동으로 낳은 나쁜 결과는 무행동으로 인해 생긴 나쁜 결과보다 더욱 나쁘게 여겨지고 더 큰 비난을 받는 법이죠.

이 실험은 공공의 안녕과 혜택이 중요하지만 제품의 위해를 외부에 고발하지 않은 채 방관자로 남고자 함을 추측케 합니다. 내부고발자가 되어 자신은 사회에 기여했다는 고차원적인 이득을 얻고 소비자들 또한 나쁜 제품으로부터 보호 받는 혜택을 얻는 상황, 방관자로 남음으로써 자신의 기득권을 유지시키는 반면 소비자들은 아무런 혜택을 얻지 못하는 상황, 이 두 선택지 중에서 많은 이들이 후자를 택하고 마는 심리적인 한계성을 보여줍니다. 이 실험을 확장하여 해석하면(비록 다른 실험으로 밝혀져야 하지만), 벌칙의 존재가 사람들의 이타적이고 바람직한 행동을 유도하기보다는 무행동을 통한 이기적 욕구를 자극할지 모릅니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벌칙이나 제재를 도입할 때는 사람들의 '무행동 욕구'를 오히려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점을 주의해야 합니다. 벌칙이나 제재가 쉽게 생각할 수 있는 간단한 해법이지만, 그 해법이 문제를 고착시키거나 악화시킬지 모릅니다. 지금 여러분 조직에서 실행하는 여러 종류의 벌칙이 직원들의 복지부동을 권장(?)하는 것은 아닐까요?


(*참고 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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