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사람 앞에서 직원을 혼내지 마라   

2012. 9. 6. 09:01
반응형


뉴욕대의 심리학자인 리차드 펠슨(Richard B. Felson)은 일반인들 뿐만 아니라 과거에 정신병을 앓았던 자, 폭력 전과가 있는 자들을 대상으로 다른 사람들과 다투거나 주먹다짐을 벌였던 경험에 관해 설문조사를 벌였습니다.1)  펠슨은 그 상황에서 응답자들이 어떤 조건에 놓였었는지 질문을 던졌습니다. 정량적인 분석을 위해 응답자들이 경험한 사건의 상황은 다툼의 심각성 수준에 따라 4가지로 구분했습니다. 첫째 '화가 났지만 아무런 일이 벌어지지 않았던 때', 둘째 '말싸움을 벌였던 때', 셋째 '주먹이 오고갔지만 무기는 쓰지 않았던 때, 넷째 '무기를 사용했던 때'로 나뉘었죠.


펠슨은 응답자들에게 던진 여러 가지 질문을 통해 중요한 시사점을 얻었는데 그 중 주목할 만한 것 중 하나는 동성끼리 다툼을 벌일 경우 단 둘이 있을 때보다 여러 사람들이 지켜볼 때 주먹다짐으로 번질 확률이 2배나 높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언뜻 생각하면 이것은 우리의 상식과 반하는 결과입니다. 우리는 보통 여러 사람들 앞에 있을 때는 다툼이 생기더라도 사람들 눈을 의식해서 어쩔 수 없이 참게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여러 사람들 앞에서 상대방으로부터 수치스럽고 모욕적인 말을 들으면 훼손된 자신의 평판이 대중에게 그대로 노출된다는 위협을 감지하게 됩니다. 항상 다른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를 신경 쓰고 염려하는 인간은 평판을 먹고 사는 동물이라고 불릴 만큼 명예를 소중히 여깁니다.  그래서 대중들이 버젓이 보는 앞에서 감행하는 폭력은 상대방으로부터 손상된 평판을 회복시키기 위한, 거의 본능에 가까운 행동입니다. 똑같이 모욕스러운 말도 단 둘이 있을 때는 말타툼으로 끝나겠지만 여러 사람들 앞에서는 주먹다짐으로 이어지거나 설령 폭력이 벌어지지 않더라도 분노의 강도는 훨씬 높을 수밖에 없죠. 실제로 미국에서는 폭력적 싸움의 3분의 2 가량이 공공장소에서 벌어지고 젊은이들의 경우에는 그 비율이 4분의 3으로 증가한다고 합니다. 우리나라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겁니다.


펠슨의 연구는 부하직원의 잘못을 혼내고자 하는 상사에게 한 가지 귀중한 주의사항을 전해 줍니다. 바로 '절대로 다른 직원들 앞에서 혼내지 마라.'입니다. 물론 잘못을 저지른 직원이 여러 사람들 앞에서 모욕감을 느낀다고 해서 혼내는 상사에게 주먹을 날리는 하극상의 상황을 연출하기는 어렵겠죠. 그렇게 하면 상사로부터 깎인 평판이 '상사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놈'이라고 동료직원들에게 각인되어 더 깎일 테니 말입니다. 이보다는, 혼내는 목적이 잘못을 바로잡기 위함이든 아니면 욱하는 감정을 해소하기 위함이든 여러 사람들 앞에서 혼내는 행위는 부하직원으로 하여금 잘못을 뉘우치게 만들기는커녕 반항심과 분노를 극도로 상승시킨다는 게 문제입니다. 비록 잘못을 인정하고 싶더라도 사람들 앞에서 모욕감을 느꼈다는 것 때문에 자기합리화와 자기방어의 프로세스가 더욱 강화되어 급기야 자신의 잘못을 변호하거나 부정해 버리기도 합니다. 


우리는 자신의 자존감을 타인으로부터 찾는 사회적 동물입니다. 심리학자 마크 리어리(Mark Leary)는 인간이 자신의 사회적 가치, 선행과 악행을 관찰하여 자존감을 형성하고 평판을 높이려고 시도한다고 말합니다.2)  타인이 긍정적인 관심을 보이면 자존감이 높아지고 반대로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거나 거부 의견을 밝히면 자존감이 낮아진다는 사실을 여러 연구를 통해 규명한 바 있죠. 여러 사람 앞에서 혼내는 행위는 짧은 시간에 자존감을 한꺼번에 깎아내리기 때문에 위험합니다. 물론 기대하는 행동의 변화는 결코 일어나지 않죠.


부하직원을 혼낼 일이 있으면 조용한 장소에서 단 둘이 만나야 합니다(동료 간의 다툼도 마찬가지). 여러 사람들이 다 보고 듣는 곳에서 야단을 쳐야 부하직원이 더 분발할 거라고 믿는 자(또 그렇게 행동하는 자)는 인간의 보편적 심리를 모르기에 유능한 관리자라 말할 수 없습니다. 자신이 여러 사람 앞에서 야단을 맞는 부하직원의 입장이라면 어떨지, 역지사지하면 바로 느낄 수 있을 텐데 말입니다. 혹여 과거에 사람들 앞에서 부하직원을 망심 주듯이 혼낸 적이 있다면 그를 조용히 불러 사과해야 하지 않을까요? 자신으로 인해 깎여내려간 그의 자존감을 다시 채워주는 일은 관리자의 책무이기 이전에 인간에 대한 예의이기 때문입니다. 



(*참고문헌)

1) Richard B. Felson(1982), Impression Management and the Escalation of Aggression and Violence, Social Psychology Quarterly, Vol. 45(4)

2) 존 휘트필드, <무엇이 우리의 관계를 조종하는가>, 김수안 역, 생각연구소, 2012

반응형

  
,

많이 알면 알수록 나쁜 결정을 한다   

2012. 9. 4. 09:25
반응형


2002년에 브래드 바버(Brad M. Barber)와 테런스 오딘(Terrance Odean)은 증권 중개인들과 전화를 통해 주식을 사고 팔다가 온라인 주식 거래 방식으로 전환한 1,607명의 투자자를 대상으로 그들의 투자 수익률과 투자 습관 등을 조사했습니다.1)  다소 복잡한 데이터 분석 방법을 썼기에 여기에 일일이 설명하기는 어려우니 그 결과만 간단히 소개하면 이렇습니다.


연구 샘플에 포함된 투자자들은 전화로 거래하던 방식에서 시장 수익률보다 2%포인트 이상 높은 수익률을 기록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헌데 온라인 거래 방식으로 전환하고 나니 그들의 평균 수익률은 시장 수익률보다 연간 3%포인트 이상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또한 그들은 전화를 통해 투자할 때보다 더 많이 더 적극적으로 거래했고 투기적인 모습을 보였다고 합니다. 주식 턴오버(turnover)율이 73.7%에서 95.5%로 증가했고, 투기성 턴오버율이 16.4%에서 30.2%로 상승한 것이 바로 증거였습니다. 더 적극적으로 더 많은 리스크를 감수했음에도 불구하고 예전 수익률에도 미치지 못한 것입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진 걸까요? 바버와 오딘은 '지식의 환상(Illusion of Knowledge)'으로 이 결과를 설명합니다. 지식의 환상이란 무언가에 관한 데이터와 정보를 많이 알면 알수록 그것을 '잘 알고 있다'고 확신하는 경향을 일컫는 말입니다. 투자자들은 온라인 거래 시스템을 통해 투자와 관련된 각종 수치와 그래프, 리서치 자료 등을 전화로 거래할 때보다 훨씬 많이 접하게 됩니다. 그 넘쳐나는 정보들은 투자자들로 하여금 시장 상황을 잘 파악하고 있다는 과신을 주기에 충분하죠. 지식의 환상에 사로잡혀 자신이 내리는 투자 의사결정이 논리적이고 합리적이라고 여기며 투기성 투자의 실제 리스크를 낮게 평가합니다. 


우리는 좀더 많은 데이터를 확보하고 좀더 많은 정보를 찾아내면 미래를 충분히 예측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허나 이 또한 지식의 환상은 아닌지 의심할 필요가 있습니다. 정밀하게 보이는 수치들과 정량적 모델이 특정한 미래를 확신하도록 만들지 않는지 경계해야 합니다. 데이비드 코드 머레이가 쓴 <승자의 편견>에서 언급된 AT&T가 단적인 사례입니다.2)  1980년에 AT&T는 세계적인 컨설팅사인 맥킨지앤컴퍼니(Mckinsey & Co.)에게 2000년이 되면 전세계 휴대전화 사용자수가 얼마나 될지를 예측해 달라고 의뢰했습니다. 알다시피 맥킨지는 미국의 Top 5 MBA 출신이 아니면 들어가기 어려운, 소위 '두뇌 집단'이죠. 


맥킨지는 막대한 비용을 들여 광범위하고 복잡한 조사와 정밀한 정량 모델을 써서 2000년의 휴대전화 사용자는 전세계 통틀어 100만 명 밖에 안 될 거라 예측했습니다. 이를 근거로 AT&T는 휴대전화 사업 진출에 필요한 인프라 투자를 포기했습니다. 그러나 2000년 당시 휴대전화 사용자는 7억 5천만 명에 달했습니다. 예측치보다 무려 750배나 컸죠. AT&T는 휴대전화 시장을 선점할 기회를 잘못된 맥킨지의 예측 때문에 잃어버렸고 그 근본원인은 지식의 환상에 있었습니다.


많이 알수록 미래를 더 잘 예측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다고 적게 알아야 미래를 예측할 수 있는 것도 아니지만, 많이 알면 알수록 미래의 다양한 가능성을 대비하지 못한다는 것이 진짜 문제입니다. 수치와 각종 정보는 이미 지나온 과거에 대해서만 정확한 결과를 알려줄 뿐입니다. 그것들이 정확한 미래를 약속한다는 생각은 착각입니다. 오늘 내리는 의사결정이 지식의 환상으로 비롯된 '과도한 믿음'은 아닌지 숙고하기 바랍니다.



(*참고문헌)

1) Brad M. Barber, Terrance Odean(2002), Online Investors: Do the Slow Die First?, The Review of Financial Studies, Vol. 15(2)


2) 데이비드 코드 머레이, <승자의 편견>, 박여진 역, 생각연구소, 2012


반응형

  
,

비 오는 날, 면접 보지 마라   

2012. 8. 31. 10:19
반응형


'빨간 펜'이라는 단어를 들을 때 여러분은 어떤 느낌이 듭니까? 아마도 대부분은 학교 다닐 때 선생님이 빨간 동그라미(혹은 오른쪽 위에서 왼쪽 아래로 그려진 사선)로 채점한 시험지의 이미지가 떠오를 겁니다. 우리에게 빨간 색은 무언가를 수정하거나 바로잡고 측정하거나 처벌을 가하는 느낌이 강합니다. 반면 파란색이나 녹색은 시험 채점이나 측정이라는 이미지와 바로 연결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만약 누군가가 여러분이 작성한 글이나 보고서를 평가하고자 할 때 그가 빨간 펜을 쥐고 있다면 여러분은 바짝 긴장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가 다른 색깔의 펜을 사용할 때보다 더 가혹하게 평가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입니다. 에이브러험 러트치크(Abraham M. Rutchick)와 동료들은 간단한 몇몇 실험을 통해 빨간 펜에 노출되면 오류를 더 많이 찾아내고 평가가 박해진다는 증거를 제시했습니다.1)


러트치크는 참가자들에게 철자 몇 개를 지우고서 원래의 단어가 무엇인지 유추하라는 과제를 주었습니다. 예를 들어 'FAI__' 라는 단어를 주고 빈칸에 어떤 철자가 들어갈지를 맞히라고 한 것이죠. 참가자들은 FAIR라고 쓸 수도 있었지만 부정적인 느낌의 단어인 FAIL이라고 답할 수 있었겠죠. 또 '__RRO__'라는 문제에 대해서는 ARROW 혹은 ERROR고 답할 수 있었습니다. 러트치크는 참가자들을 반으로 나눠 빨간 펜과 검은 펜을 각각 나눠준 후에 이런 문제를 풀게 함으로써 부정적인 느낌이 드는 단어를 얼마나 많이 답으로 적어냈는지를 살펴봤습니다. 예상대로 빨간 펜을 쥐고 과제를 수행한 참가자들은 검은 색을 사용한 참가자들에게 비해 '오류'나 '저조함'과 관련된 단어를 더 많이 써냈습니다.




두 번째 실험에서 러트치크는 참가자들에게 영어를 배우는 학생이 쓴 두 문단 짜리 글을 읽게 하고는 시제, 스펠링, 문법, 단어 선택 상의 오류를 찾아내라는 과제를 부여했습니다. 첫 번째 실험과 마찬가지로 빨간 펜과 검은 펜을 각각 사용하게 했더니 빨간 펜을 사용한 참가자들이 평균 24.3개의 오류를 찾아낸 반면, 검은 펜을 쓴 참가자들은 19.1개의 실수를 잡아냈습니다. 빨간 펜이라는 장치가 참가자들로 하여금 오류를 잡아내겠다는 집중력을 더 키운다는 점을 시사하는 결과였죠. 빨간 펜을 쓰면 문법적 오류가 없어도 평가가 박해진다는 것이 세 번째 실험에서 규명되었습니다. 문법적으로 오류가 없는, 8학년 학생이 작성한 에세이를 읽고서 0점부터 100점까지 점수를 매기도록 하니 빨간 펜을 쓴 참가자들은 파란 펜을 사용한 참가자들에 비해 낮은 점수를 주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그저 색깔만 다를 뿐인데 그 결과가 유의미한 차이를 일으킨다는 사실은 '사람이 다른 누군가를 평가하는 일이 과연 객관적일까'란 의문이 들게 만듭니다. 색깔 뿐만 아니라 날씨도 큰 영향을 미칩니다. 캐나다의 모 의과대학을 대상으로 6년 간 입학 면접시험 결과를 분석한 연구에서 비가 내리는 날에 면접을 본 학생들은 날씨가 맑은 날에 면접을 치른 학생들에 비해 1퍼센트 정도 낮은 면접 점수를 받았다고 합니다. 1퍼센트의 차이가 별것 아닌 것 같지만 의과대학 입학시험의 총점으로 환산하니 10퍼센트의 차이에 해당했다고 합니다.2)


혹시나 이 글을 학교 선생님들이 보신다면 객관식 문제야 상관 없겠지만 학생들의 작문을 빨간 색연필을 들고 평가하는 일은 좀 자제해야 하지 않을까요? 또 면접 보러 가는 지원자들은 일기예보에 좀더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습니다. 인간의 평가나 판단은 아주 사소한 것에도 쉽사리 영향을 받기 때문입니다. 평가의 객관성은 신기루입니다.


태풍 덴빈이 지나간 후, 오늘은 하늘이 푸르고 빛이 가득합니다. 오늘 면접을 보러 가는 지원자들은 어제 면접 본 지원자들에 비해 자신감을 가져도 될 날씨입니다. ^^



(*참고논문)

1) Rutchick, A., Slepian, M., & Ferris, B. (2010). The pen is mightier than the word: Object priming of evaluative standards, European Journal of Social Psychology, Vol. 40(5)


2) Redelmeier, D., & Baxter, S. (2009). Rainy weather and medical school admission interviews, Canadian Medical Association Journal, Vol. 181(12)


반응형

  
,

불확실하면 사탕을 많이 먹는다   

2012. 8. 28. 11:13
반응형


뉴욕 타임즈의 기사에 따르면 서브 프라임 모기지 부실로 시작된 2008~2009년의 금융 위기 때 다른 소비재들은 판매가 급락했음에도 불구하고 유독 사탕은 판매가 급증했다고 합니다.1) 사탕과 초콜릿 제조업체인 캐드버리(Cadbury)는 2008년에 이익이 30퍼센트나 증가했고, 여러모로 힘들었던 허쉬(Hershey)도 8.5퍼센트 정도 이익이 증가했으니 말입니다. 고급 제품을 생산하는 린트 & 스프륑글리(Lindt & Sprungli)도 불황 때문에 몇몇 럭셔리 매장을 철수시켜야 했지만 월마트와 같은 할인점에서의 초콜릿 판매는 꾸준히 늘었습니다.


워튼 스쿨의 캐서린 밀크만(Kathering L. Milkman)은 앞으로 경제가 어떻게 될지 모르는 불확실한 상황이 스트레스와 자아 고갈(Ego Depletion) 상태를 유발하기 때문에 몸에 좋은 음식보다는 손쉽게 당분을 섭취할 수 있는 사탕에 탐닉하게 된다고 추측했습니다.2) 밀크만은 이런 추측을 확장하여 사람들이 불확실한 상황에 노출되면 여러 옵션 중에서 '해야 하는 것'보다는 '원하는 것'을 더 많이 선택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다시 말해, 몸에 좋은 것보다는 맛이 좋은 것, 장기적인 것보다는 즉각적인 것, 노력이 요구되는 것보다는 편안한 것을 택하게 된다고 가설을 세웠습니다.





밀크만은 실험 참가자들에게 1달러 짜리 복권을 한 장씩 나눠준 다음에 64개의 세자리수 더하기 문제를 풀도록 했습니다. 참가자 중 절반은 문제를 풀기 전에 복권을 긁어서 당첨 여부를 확인할 수 있었지만, 나머지 절반의 참가자들은 20분이 지나기 전에는 복권의 당첨 여부를 확인할 수 없었습니다. 밀크만은 참가자들에게 원한다면 언제든지 문제 풀이를 도중에 그만 둘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복권의 당첨 여부를 확인하지 못한 참가자들은 이미 복권의 결과를 아는 참가자들보다 더 빨리 문제 풀이를 중단했습니다(361초 대 412초). 복권의 당첨 여부를 모른다는 불확실성이 문제 풀이를 지속하려는 의지를 고갈시켰던 겁니다.


후속실험에서 밀크만은 참가자들에게 각자의 룸메이트가 저녁거리로 피자를 사가지고 오는 상황을 떠올리게 했습니다. 참가자 중 절반은 룸메이트가 '까르네 아사다 피자'를 사올지 아니면 '페스토 치킨 피자'를 사올지 알 수 없다는 말('50 대 50이다!')을 들은 반면, 나머지 절반의 참가자들은 룸메이트가 두 피자 중에서 어느 하나를 확실하게 사가지고 온다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밀크만은 모든 참가자들에게 과일 샐러드와 브라우니 중에서 피자와 함께 먹을 디저트를 고르라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룸메이트가 어떤 피자를 사올지 확신하지 못하는 참가자들이 과일 샐러드보다 브라우니를 더 많이 선택했습니다(과일 샐러드 18%, 브라우니 82%). 반면 피자 종류를 확실히 아는 참가자들 중 브라우니를 선택한 사람은 58~59퍼센트였습니다. 불확실한 조건의 참가자들은 몸에 좋기 때문에 '먹어야 하는(should)' 과일 샐러드보다는 달콤하기 때문에 당장 입에 '당기는(want)' 브라우니에 끌렸던 겁니다.


후속실험에서 참가자들에게 불확실했던 과거 일을 떠올리게 했더니 뉴욕 타임즈의 추천도서보다는 네셔널 인콰이어러(The National Enquirer)와 같은 주간지를 읽을거리로 더 많이 골랐고, 교육 다큐멘터리보다는 액션 영화를 더 많이 선택했습니다. 역시 불확실한 상황에 노출되면 '해야 하는 것(the should)'보다는 '원하는 것(the want)'에 탐닉한다는 가설을 증명하는 결과였습니다.


밀크만이 수행한 일련의 실험을 통해 알 수 있는 분명한 사실은 불확실성이 사람들에게 의지력의 고갈 상태를 유발한다는 점입니다. 룸메이트가 어떤 피자를 사가지고 올지 모르는, 아주 사소한 불확실성조차 의지력을 감소시켜 장기적이고 긍정적인 대안보다는 즉각적이고 이로움이 덜한 대안으로 빠져들게 만든다는 것이죠. 이는 불확실성이 시시각각 변하는 환경 속에서 조직이 장기적으로 바람직하지 못한 대안을 선택할 가능성이 크다는 뜻입니다. 여러분이 불확실한 상황 하에서 내린 의사결정이 '과일 샐러드'가 아니라 '사탕'일지 모릅니다. 여기에 집단사고가 개입되면 바람직하지 못한 대안이 이의를 절대 허용하지 않는 최고의 대안으로 스스로 강화될 위험이 있습니다. 기업은 외부환경의 불확실성을 없애거나 줄일 수 없는 경우가 거의 대부분이기 때문에 '해야 하는 것'보다 '당장 원하는 것'에 빠져들지 않는지 매순간 경계의 끈을 놓쳐서는 안됩니다. '해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던 대안이 사실은 '사탕'일 수 있음을 유념해야겠죠.


그러나 조직 내부의 불확실성은 어느 정도 통제가 가능하고 또 그래야 합니다. 상사는 직원들이 언제 어느 프로젝트에 투입될지, 언제 어떤 회의를 시작할지, 앞으로 누구와 일하게 될지 등 별것 아닌 것 같지만 결코 사소하지 않은 불확실성을 해소해 주어야 합니다. 직원들이 쉽고 편안한 업무가 아니라 노력이 필요하지만 장기적으로 도움이 되는 행동에 집중하도록 유도하려면 말입니다. 직원들이 위에서 떨어지는 일만 수동적으로 수행하려 하고 장기적인 아이디어에 대해 아예 무감하거나 냉소적인 이유는 무엇일까요? 직원들 자체의 역량 문제라기보다는 조직 내부의 불확실성을 방치한 채 전혀 해소시켜주지 않는 관리자의 책임이 더 크지 않을까요? 



(*참고문헌)

1) When economy sours, tootsie rolls soothe souls, The New York Times Online, March 23, 2009


2) Katherine L. Milkman(2012), Unsure What the Future Will Bring? You May Overindulge:Uncertainty Increases the Appeal of Wants over Shoulds, Organizational Behavior and Human Decision Processes, Vol. 119(2)


반응형

  
,

사실과 소문이 다르면, 부하직원 평가는?   

2012. 8. 27. 10:51
반응형


우리는 누군가와 함께 일하기로 결정하기 전에 그 사람이 과연 신뢰할 만한 사람인지 적어도 거짓말을 하지 않을 사람인지 알고자 합니다. 이때 우리가 주로 사용하는 정보는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그 사람이 과거에 보였던 실제 행적이고, 또 하나는 그 사람에 대한 타인의 평가입니다. 전자는 그를 직접 관찰하면서 얻는 정보인데 반해, 후자는 다른 사람의 관찰과 해석을 통해 간접적으로 습득하는 정보입니다.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이 두 가지 종류의 정보가 동일한 방향을 가리키고 있다면, 그 사람에 대한 나의 평가는 강화될 겁니다. 


그런데 내가 관찰한 그 사람의 실제 행적과 타인이 그 사람을 놓고 '뒷담화'하는 내용이 상반된다면, 그 사람에 대한 나의 평가는 어떻게 바뀔까요? 예를 들어, 나는 과거의 행적을 통해 그를 좋게 보는데 다른 사람들은 그를 부정적으로 평가한다면 그에 대한 나의 긍정적 평가는 약화될까요? 반대로 사람들이 그에 대해 뭐라고 수근거리든 간에 직접 관찰해서 얻은 정보로 그를 평가하려 할까요? 정리하면, 사람들은 직접 관찰한 사실과 소문이 서로 일치하지 않을 때 무엇을 믿으려 할까요?





이런 궁금증을 풀기 위해 랄프 조머펠트(Ralf Sommerfeld)과 그의 동료들은 컴퓨터 상에서 자신의 짝에게 돈을 주고 받는, 일종의 신뢰 게임을 고안했습니다. 조머펠트는 참가자 126명에게 10유로씩 나눠주고 매번 짝을 바꿔 가며 게임을 수행하도록 했습니다. 참가자들이 매 게임마다 자신의 짝에게 1.25유로를 내어 주기로 결정하면 짝은 여기에 0.75유로를 더해 2유로를 받을 수 있었죠. 참가자들은 1.25유로를 내주기보다는 짝으로부터 돈을 받기만 하는 것이 유리합니다. 하지만 짝에게 돈을 내주지 않는다는 정보가 다른 참가자들에게 퍼지면 자신이 돈을 벌 기회가 적어진다는 점을 잘 알기에 무작정 이기적으로 행동할 수는 없겠죠.


조머펠트는 몇 라운드를 진행한 후에 참가자들에게 짝이 과거의 게임에서 보였던 행태를 보여주고 게임에 임하도록 했습니다. 그랬더니 이전 게임에서 이기적인 결정을 했던 짝에게는 돈을 내주기를 꺼려 했습니다. 그 다음 라운드에서는 과거의 행태를 보여주는 것 대신에 여러 참가자들이 짝에 대하여 짤막하게(50자 이내) 평가한 글을 보여주고 게임을 진행하게 했습니다. 직접 관찰한 정보가 아니라 다른 사람을 통한 간접적인 정보를 제시한 셈이죠. 예상대로 참가자들은 다른 이들로부터 이기적이라는 평가를 받은 짝에게는 돈을 내주지 않으려 했고, 반대로 너그럽다는 평가를 받은 짝에게는 쉽게 자신의 돈(1.25유로)을 주었습니다.


직접적인 정보(과거 행태)와 간접적인 정보(타인의 평가)를 모두 보여주되 그 내용이 동일하거나 상반될 경우 참가자들은 어떻게 행동했을까요? 조머펠트는 짝의 과거 행적과 함께 무작위로 '너그럽다', '구두쇠다', '멋진 친구다', '매우 비협조적이다'란 소문을 제시하고서 게임을 진행하도록 했습니다. 참가자들은 '뒷담화'가 어떻든 간에 흔들리지 않고 짝의 과거 행적(이타적 혹은 이기적)에 근거해 게임을 진행했을까요? 


조머펠트는 직접적인 정보가 있을 경우 소문은 아무런 영향을 발휘하지 못한다고 생각했지만 그 가설은 빗나갔습니다. 과거 행적만을 제시 받을 경우 참가자들이 이타적으로 결정(1.25유로를 내주기)할 확률은 60% 가량이었습니다. 여기에 긍정적인 소문이 더해지면 그 확률이 75%로 상승했습니다. 하지만 부정적인 소문이 더해지니 확률은 50%로 뚝 떨어졌습니다. 또한 참가자의 44%가 소문에 의해 자신의 결정을 바꾸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참가자들은 실제 행적에 대해 알더라도 소문에 따라 크게 영향을 받았던 겁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참석자에게 제시된 상대방의 과거 기록이 지나간 라운드에서 얼마나 짝에게 돈을 내어주었는지를 나타내는 '정량적인' 데이터였다는 점입니다. 참석자들은 사실이 수치로 정확하게 제시됐음에도 불구하고 소문에 휩쓸렸던 것입니다. 이는 사실보다는 소문(다른 이의 평가)에 따라 사람들의 의사결정이 편향된다는 것을 단적으로 드러내는 결과였죠.


이 실험은 조직 내에서 시행되는 평가에 의미 있는 시사점을 던져줍니다. 상사가 부하직원의 역량과 성과 달성 과정을 직접적인 관찰을 통해 최대한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더라도 그 부하직원에 관해 주변인들(동료, 타부서 직원, 고객 등)이 수근거리는 '뒷담화'에 의해 평가가 크게 영향 받을 수 있다는 점이죠. 누군가가 악의를 가지고 그 부하직원을 음해한다면 상사는 그런 악의에 쉽게 동조할지 모릅니다. 집단의 의견에 따름으로써 집단의 일원으로 인정 받으려는 인간의 습성 탓에 부지불식간에 자신의 평가를 절하하려고('그럴 이유가 있으니 그렇게 말하는 것이겠지?') 합니다.


이런 심리적 한계 역시 타인에 대한 평가를 어렵게 만드는 원인 중 하나입니다. 다면평가와 같은 장치를 통해 보통 여러 의견을 들으면 피평가자를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고 말하곤 하지만, 그런 믿음은 지근거리에서 직접 관찰한 상사의 평가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에서 위험하기도 합니다. 상사의 평가와 주변인들의 평가가 일치할 경우에는 크게 문제될 것이 없겠지만, 그 둘이 일치하지 않을 때는 과연 누구의 평가가 옳은지, 누구의 평가를 더 우선해야 하는지에 관한 문제가 대두됩니다. 더군다나 주변인들의 평가가 별다른 근거 없는 '자기만의 느낌'이거나 일부러 왜곡시키려는 의도에서 나온 것이라면 문제가 더 심각하겠죠. 


요컨대 다면평가도 평가의 객관성을 확보하기 위한 장치로 한계가 있다는 것입니다(예전에 다면평가를 추천하는 글을 올린 적 있는데, 반성합니다). 해결책은 무엇일까요? 옹색하지만, 평가자(상사)들은 평가가 소문에 의해 좌우되는 오류에 빠질 수 있다는 점을 분명히 인식하는 것만이 최선이 아닐까요? 소문을 참조하되 그것이 자신의 평가와 상반된다면, 그 소문의 진위 여부를 따져 물어야 합니다. 자신의 평가를 온전히 신뢰해도, 타인의 소문에 귀가 팔락거려도 곤란합니다. 여기에서도 중용의 미덕이 발휘되어야 함은 두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참고논문)

Ralf D. Sommerfeld, Hans-Jürgen Krambeck, Dirk Semmann, Manfred Milinski(2007), Gossip as an alternative for direct observation in games of indirect reciprocity, PNAS, Vol. 104(44)


반응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