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교과서에 내 이름이 나왔다고?   

2013. 4. 3.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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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사회 문화' 교과서에 제 책 <경영, 과학에게 길을 묻다>의 내용이 인용되어 실려 있다는 것을 이제야 발견했습니다. 책이 2011년 8월에 검정을 받았으니, 좀 늦게 알게 된 것이죠. 암튼 가문의 영광(?)이 아닐 수 없네요. ^^



고등학교 <사회 문화>, 금성출판사



인용되어 실린 부분(페이지 87)



특정 회사의 이름이 나오지 않게 원문의 내용을 고쳐서 올린 듯 합니다. 그런데 아래 글은 제 책을 인용한 것이 맞지만, 윗 글("메모지로 유명한..."이라고 시작되는 글)은 제 책에 나오지 않은 부분입니다. 어느 책에서 인용했는지 저로서는 알 수 없네요. ^^


제 책의 원문은 다음과 같습니다.


미국의 포천(Fortune)지는 매년 근무여건이 가장 좋은 100대 기업을 선정하는데, 2006년에는 구글(Google)과 지넨텍(Genentech)이 각각 1, 2위에 랭크되었다. 이들 기업의 공통점은 각각 인터넷과 생명과학 분야에서 비교적 빠른 시간 안에 신흥 강자로 부상했다는 것인데, 그들이 이처럼 업계의 리더가 될 수 있었던 원동력은 직장의 개념을 일하는 장소에서 즐거운 놀이터로 변모시킨 데에 있다. 즉 우연을 통제하지 않는 조직문화가 밑바탕을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구글의 영국 지사를 방문하고 그들의 자유분방한 근무환경을 취재한 통신원의 글을 인용해 본다.


구글은 직원이 밖에서 3시간 정도 점심시간을 보내도 크게 문제삼지 않는다고 한다. 또한 대개 한 달에 두 번 정도는 팀 미팅을 주변의 근사한 레스토랑에서 갖는다. 하여튼 먹는 복지만큼은 세계에서 구글보다 나은 회사는 없지 않을까 생각된다. 건물 중간에는 휴식 장소로 스카이라인이 뚜렷한 아트리움 공간이 마련되어 있었다. 여러 종류의 편안한 소파가 자유롭게 배치되어 있어 쉬기에는 그만이다. 아무 때나 와서 잠을 자도 되고, 노트북을 들고 와서 그곳에서 일을 해도 된다. 한 쪽 벽면은 화이트보드로 되어 있어 메모판이나 게시판으로 활용할 수도 있다. 일부 팀은 아예 휴게실에서 회의를 열기도 한다…(후략)


구글과 지넨텍의 자유분방한 근무환경을 채택한 이유는 꽉 짜인 통제로는 창의력이라는 세렌디피티의 선물을 기대할 수 없다는 판단 때문이다. 노드스트롬과 마찬가지로, 일정한 틀을 벗어나지만 않으면 자유롭게 생각하고 자유롭게 행동할 수 있도록 우연적 상황을 장려해야 새로운 아이디어가 창발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어쨌든 고등학교 교과서에 제 이름이 나와서 반갑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했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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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스런 과거로부터 배우기 힘든 이유   

2013. 4. 2. 0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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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면 마취 없이 대장 내시경 검사를 받은 적이 있다면 그게 얼마나 고통스러운 검사인지 말하지 않아도 압니다. 만일 검사를 실시하는 의사가 미숙하여 짧게 끝날 검사를 오래 지속한다면 아마 그 고통을 견뎌내기가 매우 힘들겠죠. 오랫동안 지속된 고통의 기억은 시간이 지나도 잊혀지지 않아서 대장 내시경 검사를 다시는 받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들 겁니다.


하지만 도널드 레델마이어와 대니얼 카너먼은 '고통스러운 검사가 지속된 시간'은 '환자가 기억하는 고통'과 그다지 상관없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오히려 '환자가 기억(회상)하는 고통'은 검사를 받는 동안의 '최고 고통(Peak Pain)'과 '마지막 순간의 고통(End Pain)'과 상관이 있었다는 것이죠. 



출처: http://office.microsoft.com/ko-kr/images/



그들은 캐나다 토론토에 있는 모 병원에서 대장 내시경 검사를 받으러 온 154명의 환자와 담석 파쇄 시술을 받게 된 133명을 대상으로 한 실험에서 이런 결론을 얻었습니다.


레델마이어와 카너먼은 특별한 장치를 사용해 환자들에게 시술을 받는 동안 60초마다 한 번씩 고통의 정도를 측정하도록 요청했습니다. 그리고 환자들이 시술을 마치고 회복실에 누워 있을 때 '얼마나 시술이 고통스러웠는지'를 회고하여 평가하게 했죠. 레델마이어와 카너먼은 시술을 진행한 의사들에게도 환자가 경험했을 고통의 정도를 짐작해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통계 분석 결과, 시술 받은 시간은 환자들이 경험한 고통 수준과 통계적으로 상관이 없었습니다. 시술을 짧게 받든 길게 받든 간에 환자들은 자신들이 스스로 측정한 '최고 고통'이 높을수록 시술이 힘들었다고 답했습니다. 또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은 시술 마지막 순간에 측정한 고통(End Pain)이 강할수록 환자들은 시술 받는 게 매우 괴로웠다고 기억했죠. 


다시 말해, 시술 받는 동안 가장 아팠던 순간과 시술 마지막에 느끼는 고통이 시술에 대한 기억을 결정하는 변수였습니다. 시술 받은 시간, 즉 '총 고통(Total Pain)'이 환자들의 기억에 영향을 미치는 변수가 아니었죠. 시술이 빨리 끝났어도 '최고 고통'이 높았으면 '시술 받는 게 너무 괴로웠다'고 기억하고, '마지막 순간의 고통'이 컸다면 역시 그렇게 기억했던 겁니다. 대장 내시경 검사를 받고 나서 기억이 가물가물해질 때(한 달 후) 다시 한번 더 물었지만 대답은 마찬가지였습니다. 


이 실험의 결과가 무엇을 시사하는 걸까요? 우리는 미래에 대한 결정을 내릴 때 과거의 기억을 많이 참조합니다. 과거의 경험에 근거하여 전략의 세부 사항을 조정하기도 하죠. 하지만 여기에서 의문이 드는 것은 '우리가 기억하는 과거가 과연 과거 모습 그대로인가'입니다. 과거에 느꼈던 감정 상태가 과거에 대한 기억을 왜곡시키는 것은 아닐까요? 자금 부족이나 경쟁사의 압박 등과 같은 과거의 고통스러운 기억이 그 고통이 지속된 시간(즉, 총 고통)이 아니라 고통의 피크(최고 고통)에 의해 좌우된다면, 과거를 거울 삼아 결정되는 전략이 어떻게 되겠습니까? 


조직이 경험했던 과거의 고통이 총량으로는 매우 컸지만 특별히 매우 힘들었던 순간은 없었을 때 여러분은 과거를 '견딜만 했다'고 '미화'할 가능성이 큽니다. 반대로 특별히 충격적인 일로 조직이 매우 큰 고통을 겪었다면 그 고통스러운 기간이 짧았더라도 여러분은 필요 이상으로 두려움이 앞서서 의사결정의 폭을 제한 받을지도 모릅니다. 과거로부터 배운다지만 그렇지 못할 가능성도 매우 크죠.


여러분의 조직에는 과거에 어떤 위기가 있었습니까? 그 위기에 대한 기억은 어떻습니까? 여러분이 기억하는 고통은 견딜만 했습니까, 아니면 떠올리기조차 싫습니까?



(*참고논문)

Redelmeier, D. A., & Kahneman, D. (1996). Patients' memories of painful medical treatments: real-time and retrospective evaluations of two minimally invasive procedures. Pain, 66(1), 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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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에 10권의 책을 읽는 비결?   

2013. 4. 1.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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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3월 21일부터 3월 31일까지 페이스북과 트위터에 남긴, 나의 짧은 생각들 그리고 좋은 말씀들



[선택에 대하여]


- '선택하지 않아도 된다'는 선택지가 포함되지 않은 선택은 선택이 아니다.


- " '사람은 자기가 한 선택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말은 힘있는 자들에게는 이득이 되지만 힘없는 자들은 대개 상처를 입는다."...from <마음대로 고르세요>


- "인생은 자신의 선택을 모두 합쳐놓은 집합체다"...by 알베르 카뮈


- "당신의 연봉은 당신의 가치가 결정하는 게 아니라, 타인이 당신 대신 얼마를 받고 일하려 하는가에 의해 결정된다"...from <마음대로 고르세요>


- 무엇에 집중하냐보다 무엇에 집중하지 말까가 더 중요한 질문이다. 



[책 읽기에 대하여]


- 한 달에 10권의 책을 읽는 방법 : 하루에 TV를 2시간 본다고 가정하고 그 시간에 책을 읽는다면, 대략 3일 정도면 한 권을 읽을 수가 있습니다(2시간에 100페이지 읽는 속도). 한 달이면 대략 10권 내외. 어려운 책을 읽더라도 최소 5권을 읽을 수 있죠. 시간이 없어 책을 못 읽는 게 아니라, 책읽기가 TV보다 후순위이기때문에 책을 읽지 않은 것이죠. 비결은 없습니다. ^^ 


- 첫 직장에서 어느 선배가 월급의 10퍼센트는 책 사는 데 쓰라고 조언했었다. 나는 무식하게 그 조언을 따랐다. 나의 지적 자산은 아직 볼품없는 수준이지만 대부분은 사서 읽은 책에서 나왔다.


- 이북으로 책을 읽으면 왠지 내것 같지가 않다. 책 내용도 내것이 되지 않는 듯하다.



[잡설]


- 우연히 부동산 시세 사이트에 가서 이곳저곳 시세를 보게 됐다. 내가 사는 곳의 가치는 내가 결정하는 걸까, 사람들이 결정하는 걸까, 란 생각을 잠시 해본다.


- OOO대학에 들어가려면 자격증을 몇 개나 따야 하는지 누가 묻는다. 웬 자격증?


- 여행을 가야 일몰이 아름답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 초보자가 공 세 개로 저글링하면 공 세 개를 다 놓친다. 하나만 던져 하나만 받아라. 하나라도 제대로 하는 것이 중요하다.


- 자칭 소셜 미디어 전문가라는 사람이 블로그가 없거나 볼품 없고 SNS 팔로워도 얼마되지 않는다면 의심해 볼 일이다.


- 모 회사는 바닥에 입사지원서들을 쫙 깔아놓고 발을 사용해 양쪽으로 갈라놓는다고 한다. OOO와 OOO가 아닌 것으로.


- 삶이 유한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살날이 무한히 남아있는 것처럼 행동하지는 않는가?


- 어떤 사람이 회사를 그만 둘 확률 = 1 / ('회사 때려치겠다'는 말을 한 회수)


- 실패를 안 하는 사람은 일을 시키기만 하는 사람.


- 축구공은 '둥굴기 때문'에 결과가 어떻게 될지 모른다란 말이 있습니다. 말이 안 되는 소리죠. 공이 네모나면 결과를 예측하기 더 어렵습니다.


- 경제 성장과 경제적인 성장은 완전히 다르다. 전자는 물리적인 경제 규모가 커지는 것을, 후자는 경제활동이 비용보다 편익을 더 빨리 증가시키는 것을 말한다. 경제 성장만 추구하는 정책은 오히려 우리를 가난하게 만들 수 있다


- 자칭 진보라 자처하는 사람 중 보수보다 더 보수적인 사람들이 제법 있다. 타인을 위한다지만 결국 자기 이득이 제일 먼저인 사람들


- 성공에는 지름길이 없다. 비결도 없다. 아니, 성공 자체는 존재치 아니한다.


- 예쁘고 매력적인 이성을 보면 욕망이 솟아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본능이니까. 허나 그 욕망을 표출하는 것은 상대방을 존엄한 인간으로 대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리고 자기자신의 존엄성도 내다버렸다는 뜻이다.


- "보이지 않는 손이 보이지 않는 이유는 애초에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by 조셉 스티클리츠


- 흔히 달걀을 한 바구니에 담지 말라고 말한다. 하지만 달걀도 하나, 바구니도 하나 밖에 없는 걸 어떡해? (있는 사람들의 배부른 소리)



[그렇지 않은가?]


- "나만 믿어"란 말은 "네 의견은 듣고 싶지 않아"란 말의 다른 표현이다. 그렇지 않은가?


- 한번 해보겠다는 말(노력해 보겠다는 말)은 실패하거나 포기할 생각이 있다는 말과 같다. 그렇지 않은가?


- 시간이 없어서 못했다는 말은 그 일이 우선적인 일이 아니라서 안 했다는 의미다. 그렇지 않은가?



[전략에 대하여]


- 경쟁은 맞서 싸우는 것이 아니라 다른 물에서 노는 것


- 제품의 원가를 개선하면 가격을 내리고 싶은(그래서 시장점유율을 높이려는) 유혹에 빠진다. 망하는 길이다. 가격을 내리지 말고 그 돈으로 차별화를 기해야 한다.


- 제품(혹은 서비스) 차별화의 가장 큰 '적'은 최고의사결정자들이다. 제품 개발해본 사람은 어떤 뜻인지 알 것이다.


- 마케팅과 영업의 공통점. 둘 다 '팔기 위한 활동'. 마케팅과 영업의 차이점. 마케팅은 고객이 찾아오도록 만드는 활동. 영업은 고객을 찾아다니는 활동.


- 대부분 회사의 전략을 잘 들어보면 하나같이 '열심히 하겠다'는 말로 귀결된다.


- 회사 실적이 안 좋으면 비용 절감과 구조조정을 실시한다. 망할 때까지 걸리는 시간을 조금 늦출 뿐이다. 실적이 안 좋으면 실적이 좋게 만들어야지, 덜 쓴다고 실적이 나아지지 않는다. 당연한 건데 많이 망각한다.



[평가에 대하여]


- 직원들의 역량을 향상시키고 싶다면(비록 매우 힘든 일이긴 하지만) 점수표를 들고 점수를 매기지 말라. 그 대신, 맛있는 커피를 마시며 대화하라.


- '점수로 매기는 평가'는 성과 향상을 위해 직원들과 진정한 대화를 나눌 수 없게 만든다. 과학적이지도 객관적이지 않은 '평가 수치화'는 버려야 할 '신성한 암소'다.


- 일선 생산현장에서 일하는 직원에게 '혁신적 사고'를 평가하는 기업이 있다. 혁신은 현재를 부정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생산현장에서 일하는 직원이 현재를 부정하길 진정 바라는 건가? 이렇게 엉뚱하고 그럴싸한 역량모델이 판친다.


- 정리해고를 실행했던 적이 있거나 계획 중인 기업이 직원들의 로열티를 기대하는 것은 물에 젖은 땔감에 불을 붙이려는 것과 같다.


- 상대방의 생각과 행동을 바꾸기란 큰산을 옮기는 것보다 어렵다. 그냥 그대로 상대방을 인정하거나, 상대방이 조언을 원할 때만 조언하는 게 낫다.





[협력에 대하여]


- 협력은 기본적으로 자기희생을 전제로 한다. 하나도 손해 보지 않으려는 태도는 협력의 적이다.


- 협력은 평등을 전제로 한다. 평등이 없는 한 협력은 없다. 평등이 전제되지 않는 협력은 탄압과 굴종의 관계일 뿐이다.


- 용서를 비는 사람이 진심이 없다고 느끼면 용서가 안 된다고 죄책감을 가질 필요는 없다. 용서를 구하면 용서해야 할 의무는 없다. 용서도 자유다.



[기업 경영에 대하여]


- 경영자들은 직원들에게 자기 방은 항상 열려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진짜로 열려 있는가? 누군가가 게이트 키핑을 하고 있는 건 아닌가? 물리적으로든 심리적으로든.


- 직원들에게 회사를 발전시킬 아이디어를 요청하면, 사실 CEO는 직원들의 아이디어를 마음에 들어하지 않는다. 지엽적이고 자기본위적인 것 같다. 그러나 그래도 그 아이디어를 채택해야 한다. 더 중대한 아이디어 창출의 동력이기 때문이다.


- 경영자는 직원들에게 생산성 향상을 지시한다. 생산성이 높아지면 잉여인력이 생기기 마련이라 '노는 인력'이 눈엣가시로 보인다. 결국 인력 조정을 결심한다. 직원들에게 생산성을 높이라는 말, 과연 무엇을 위한 것인지, 어떤 결과를 낳을지 고민하는가?


- 자신이 혁신의 가장 큰 장애물임을 깨닫는 경영자는 별로 없다.


- "기업의 회장들이 고객을 생각하는 시간은 투자자를 생각하는 시간보다 더 적을 것이다. 그리고 자신의 회사에서 일하는 낮은 직급의 사원들을 떠올리는 시간은 그보다 더 적을 것이다."...from <사장의회사vs사원의회사>


- 경영진이 회사의 중요 의사결정 사항을 직원들에게 숨겼다가 터뜨린다면 그것은 직원을 파트너로 여기지 않는다는 뜻이다. 말로는 직원들을 파트너라고 이야기한다 해도.


- "많은 기업이 실제 소유권을 제공하지 않으면서 사원들의 주인의식을 앙양하기 위해 애쓴다. 이는 기만에 가깝다"...from <사장의회사vs사원의회사>


- "주주가치는 세상에서 가장 어리석은 개념이다. 주주가치란 결과일 뿐, 결코 전략이 될 수 없다. 당신의 가장 중요한 기반은 당신의 사원과 고객, 그리고 제품이다"...by 잭 웰치 (2009년 3월 파이낸셜타임즈와의 인터뷰에서)


- "소유권이 경영자에게 있는 한 '권한 이양(또는 권한 위임)'은 뜬구름 잡는 이야기다. 언제든 거둬들일 수 있기 때문이다"...from <사장의회사vs사원의회사>


- 직원은 자원이 아니다. 파트너다.



[일에 대하여]


- "근면은 노예의 덕목이다."...by 강신주


- "노예는 밥은 먹되 일은 안 하고자 한다. '어떻게 하면 일을 안 할까?' 이것이 노예의 모토다"...by 강신주


- "우리는 일하려고 사는 게 아니다. 삶을 향유하기 위해 사는 것이다"...by 강신주


- "타인이 원하는 일을 하는 사람이 노예이고, 자신이 원하는 일을 하는 사람이 주인이다. 노예란 별게 아니다"...by 강신주


- "사랑하는 사람과 시간을 많이 보내지 못할 거면 왜 일해야 하는가? 변명하지 말라."...by 강신주


- "누군가를 만났을 때 더치페이하자고 말하는 것은 사랑할 자격이 없다는 것이다. '나는 당신에게 투자할 생각이 없다'는 뜻이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그 사람을 (자신의 등에) 업는 것이다."...by 강신주


- "근면의 가치를 헷갈리지 마라. 근면한다고 그 일을 좋아지는 게 아니다. 그 일이 좋으면 저절로 근면해진다.(근면은 추구할 가치가 아니라 결과일 뿐이라는 뜻)"...by 강신주


- "내세에서 젖과 꿀이 흐르길 기대하지 말고, 지금 여기에 젖과 꿀이 흐르게 하라"...by 강신주


- 일은 돈 되는 일과 돈 안 되는 일로 일을 구분되지 않는다. 내가 원하는 일과 내가 원하지 않는 일로 나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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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소리 큰 자가 여러 번 말할 때 조심하라   

2013. 3. 29. 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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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이 속한 부서의 어느 직원이 "직원들에게 더 많은 교육 기회가 주어져야 합니다."란 의견을 제시한다면 '아, 이 의견이 부서 직원들 대부분의 의견인가보다'라고 추측하겠습니까? 아마 그렇지 않을 겁니다. 그 직원 혼자만의 의견일 가능성이 더 높다고 간주하겠죠. 헌데, 그 직원이 그 후로 두 번을 더 찾아와 앞에서 말했던 이슈를 반복해서 제기한다면 어떨 것 같습니까? 같은 직원이 동일한 의견을 세 번 반복했다고 해서 그 의견이 부서 전체를 대변하기는 어렵다고 역시 간주할 겁니다.


그러나 놀랍게도 이렇게 '같은 사람이 같은 의견을 세 번 반복'하면 '세 명의 서로 다른 사람이 동일한 의견을 제기할 때'만큼의 효과가 발생한다고 합니다. 즉, 그 의견이 집단 구성원들 대부분의 생각이라고 오해한다는 것이죠. 이는 킴벌리 웨버(Kimberlee Weaver)가 실행한 일련의 실험으로 증명되었습니다.



출처: http://office.microsoft.com/ko-kr/images/



웨버는 177명의 대학생들을 세 그룹으로 나눠 첫 번째 그룹에게 뉴저지 주의 녹지 확대에 대하여 찬성을 표하는 3명의 주민 의견을 각각 보여줬습니다. 두 번째 그룹에게는 1명의 주민이 혼자서 세 개의 찬성 의견을 제시한 글을 보여줬고, 세 번째 그룹에게는 1명의 주민이 하나의 찬성 의견만을 이야기한 글을 읽도록 했습니다.


참가자들에게 '뉴저지 주민들은 몇 퍼센트나 녹지 확대에 대해 찬성할 것 같은가?'란 질문을 던지니, 당연히 첫 번째 그룹이 세 번째 그룹보다 찬성률을 높게 추측했습니다(72퍼센트 대 57퍼센트). 흥미로운 것은 두 번째 그룹이 세 번째 그룹보다 찬성률이 66퍼센트 대 57퍼센트로 더 높았다는 점입니다. 한 사람이 녹지 확대에 찬성한다는 말을 세 가지 버전의 문장으로 이야기했을 뿐인데도 참가자들은 한 사람이 한 가지 버전의 문장으로 찬성 의견을 밝힐 때보다 그것이 집단 전체의 의견에 가깝다고 여긴 것입니다.


똑같은 결과가 후속실험에서도 나왔습니다. 웨버는 305명의 참가자들에게 '자크 안데르시'라고 불리는 가상의 정당인이 '재생산 권리(reproductive right)'에 관해 중도적인 의견을 밝힌 문장을 접하도록 했습니다. 그 문장은 페이지 하단에 적혀 있었는데, 첫 번째 그룹은 서로 폰트와 글씨 크기는 다르지만 내용은 동일한 안데르시의 코멘트를 페이지마다 한 번씩(총 3번) 보았고, 두 번째 그룹은 안데르시의 코멘트를 한 번만 읽었습니다.


'이 정당 사람들 중 몇 퍼센트가 재생산 권리에 대해 중도적인 입장을 취할 것 같은가?'란 질문을 던지자, 첫 번째 그룹(총 3번 읽은 참가자들)이 두 번째 그룹보다 그 퍼센테이지를 높게 보았습니다(44퍼센트 대 38퍼센트). 웨버는 '기억 혼선' 때문에 이런 결과가 나왔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지만, 첫 번째 그룹의 참가자들 대부분은 페이지에 1번씩 적혀진 안데르시의 코멘트가 모두 같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이것은 같은 의견을 단순히 여러 번 반복하기만 해도(그 의견들이 모두 동일하다는 것을 안다고 해도) 그 의견이 집단 전체를 대변한다고 믿게 만들 수 있음을 뜻합니다.


같은 의견을 세 번 반복해서 들은 사람은 한 번 들은 사람에게 비해 그 의견과 관련된 단어를 들을 때 더 빨리 반응한다는 것이 웨버의 후속실험으로 밝혀졌습니다. 웨버는 위의 '뉴저지 녹지 확대' 실험과 동일한 실험 조건을 형성한 다음, 컴퓨터 모니터 위에 '녹지'와 관련된 단어가 아주 짧은 시간 동안(50밀리초)나타나면 가능한 한 빨리 키보드를 누르라고 참가자들에게 지시했습니다. 그랬더니, 같은 의견을 세 가지 버전으로 접한 참가자들이 한 가지 버전으로만 읽은 참가자들에 비해 더 빨리 키보드를 눌렀습니다.


이상한 일이죠. 어느 직원이 "부서 직원들에게 더 많은 교육 기회가 주어져야 합니다"란 말을 한 번 찾아와 이야기할 때보다 세 번 찾아와 이야기할 때 그 의견이 부서 전체의 의견인 양 생각하게 되니 말입니다. 동일한 의견을 같은 직원에게서 세 번 듣게 되면 어디서 '교육'과 관련된 말을 들을 때마다 자신도 모르게 빨리 반응한다는 것도 재미있는 현상입니다.


한 사람이 한 번 찾아와 자기 의견을 말할 때보다 세 직원이 찾아와 모두 동일한 의견을 제시할 때 '집단 전체의 의견이구나'라고 생각하는 것은 합리적입니다. 그러나 한 사람이 세 번 찾아와 똑같은 의견을 제시할 때도 그 의견이 집단을 대변한다고 여기는 것은 합리적이지 않죠. 허나 웨버의 실험에서도 보듯이 우리는 합리적이지 않다는 것을 알면서도 비합리적으로 판단하고 맙니다. 


물론 한 사람이 여러 번 찾아와 이야기한다는 것이 부서 전체의 의견이 그만큼 강하기 때문이라고(부서 직원이 그만큼 열망하기 때문이라고) 간주할 수도 있겠지만, 매우 신중하게 판단해야 합니다. 특히 '목소리 큰' 직원이 그런 모습(여러 번 찾아와 똑같은 의견을 말하는 모습)을 접할 때 더욱 조심해야 합니다. 이는 리더와 직원 사이 뿐만 아니라, 인간 관계나 비즈니스 관계에서도 명심해야 할 부분입니다.



(*참고논문)

Weaver, K., Garcia, S. M., Schwarz, N., & Miller, D. T. (2007). Inferring the popularity of an opinion from its familiarity: A repetitive voice can sound like a chorus. Journal of 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 92(5), 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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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득하려면 선택권을 상대방에게 넘겨라   

2013. 3. 28.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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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간에 발 들여 놓기(Foot-in-the-door)'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습니까? 이 말은 작은 요청을 승낙하도록 하면 더 큰 요청도 쉽게 받아들인다는 뜻으로서 여러 가지 설득 기법 중 하나입니다. 문간에 발 들여 놓기 기법은 1966년에 조나단 프리드만(Jonathan L. Freedman)이 실시한 고전적인 실험에서 이미 입증된 것입니다. 


프리드만은 주부들에게 소비와 관련한 8개의 설문 문항에 답하도록 한 다음, 5~6명의 실사팀이 2시간 동안 집에 머물면서 청소와 요리에 어떤 물건들을 사용하는지 조사해도 되겠느냐고 요청했습니다. 그랬더니 43퍼센트의 주부들이 흔쾌히 승낙했죠. 반면, 설문에 답해 달라고 먼저 요청하지 않은 상태에서 집안 조사를 요구하니 겨우 22퍼센트의 주부들만 프리드만의 요청을 받아들였다고 합니다. 프리드만의 실험 이후에도 많은 연구자들이 '문간에 발 들여 놓기' 기법이 상대방을 설득하는 데 매우 효과적임을 실험으로 여러 차례 규명했죠.


출처: http://www.iwillteachyoutoberich.com/blog/bj-fogg-interview-persuasion-psychology/



그런데 프랑스 브르타뉴 대학의 니콜라스 게겡(Nicholas Guéguen)은 '문간에 발 들여 놓기' 기법을 사용할 때 "하지만 당신에게는 선택의 자유가 있습니다."라는 말을 함께 사용하면 설득 효과가 더 배가된다는 사실을 밝혔습니다. 언뜻 생각하면 '선택의 자유'를 제공하는 것이 설득 효과를 떨어뜨릴 것 같지만 그 반대였던 것이죠.


게겡은 프랑스 반(Vannes) 지역에 사는 주민들을 일대일로 찾아가 쓰레기 분리 배출에 관한 연구에 참여할 것을 부탁하며 "앞으로 한 달 동안 유리, 플라스틱, 종이 등을 분리 배출할 때마다 무게와 개수를 기록해 주십시오."라고 요청했습니다. 대조군에 해당되는 주민들은 이 말만을 들었지만, 어떤 주민들은 이 요청과 함께 "하지만 수용하시든지 거절하시든지 그건 선생님의 자유입니다."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랬더니, 대조군 주민들은 40퍼센트만 수락했지만, '선택은 당신의 자유'란 말을 들은 주민들은 56퍼센트가 수용했습니다.


게겡이 다른 주민들을 대상으로 "쓰레기 분리 배출 습관에 관한 4개의 문항에 답해 주시겠습니까?"라는 '문간에 발 들여 놓기' 기법을 사용한 후에 먼저와 같이 한 달 동안 쓰레기 배출량을 측정해 달라고 요청하니 이때는 60퍼센트의 주민이 동참하겠다고 답변했습니다. '선택은 당신의 자유' 기법을 쓸 때와 비교하면 그다지 높은 찬성률은 아니었죠. 그러나 두 기법을 동시에 사용하니, 다시 말해 먼저 '문간에 발 들여 놓기' 기법을 쓴 다음에 "수용하시든지 거절하시든지 그건 자유입니다"라는 말을 덧붙이니 무려 78퍼센트의 주민들이 동참하겠다고 답했습니다. 


그렇다면 한 달 동안 쓰레기 배출량을 기록하겠다고 말한 주민들이 실제로 그 약속을 준수한 비율은 각 조건별로 어땠을까요? 대조군에 속한 주민들은 고작 8.2퍼센트만 약속을 준수했습니다. 그리고 '선택은 당신의 자유' 기법만 적용된 주민들은 26.5퍼센트, '문간에 발 들여 놓기' 기법만 적용된 주민들은 24.5퍼센트의 약속 준수율을 보였습니다. 하지만 두 기법 모두 적용 받은 주민들은 무려 44.7퍼센트나 약속을 준수했죠.


이 실험은 상대방에게 선택권을 넘기면 의외로 까다롭거나 힘든 요청을 수락한다는 점을 보여줍니다. '선택은 당신의 자유'라고 말해도 웬만해서는 상대방이 "그럼, 난 안 할래."라고 대답하지 않는다는 것이죠. 그리고 선택권을 행사하여 결정하도록 해야 비교적 시간이 많이 흐른 후에도 약속을 준수하게 한다는 점도 이 실험의 중요한 시사점입니다. 약속 준수는 결국 자발성이 담보되어야 합니다. 


여러분이 누군가에게 업무를 지시하는 입장이라면, '시키면 하라'는 압박감을 주기보다는 상대방이 '내가 스스로 결정했다'는 느낌이 들도록 '선택은 네가 할 수 있어'라고 제안하는 것이 효과적입니다. '하기 싫다고 말하면 어떡하지?'라는 걱정이 앞서겠지만, 문간에 발을 확실히 들여 놓은 다음에 '선택은 당신의 자유' 기법을 사용한다면 그리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겁니다. 물론 요리조리 잘 빠져나가는 '밉상'이 있겠지만, 어차피 그런 사람들은 면전에서는 '알겠습니다'라고 해도 약속(혹은 지시)을 끝내 준수하지 않겠죠. 그런 밉상 친구를 제외하고 대부분의 직원들(혹은 동료들)에게 이 두 가지 설득 기법은 'Yes'와 '약속 준수(compliance)'을 보장할 겁니다. 


'선택권'을 상대방에게 넘기는 일, 작은 업무지시부터 한번 시도해 보기 바랍니다.



(*참고논문)

Freedman, J. L., & Fraser, S. C. (1966). Compliance without pressure: The foot-in-the-door technique. Journal ol 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 4(2), 195-202.


Guéguen, N., Meineri, S., Martin, A., & Grandjean, I. (2010). The combined effect of the foot-in-the-door technique and the “but you are free” technique: An evaluation on the selective sorting of household wastes. Ecopsychology, 2(4), 231-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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