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다'는 혁신이었나, 아니었나?   

2020. 8. 10. 0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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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페이스북에서 이런 내용의 글을 봤다. 어느 분의 글인지 몰라 찾을 수 없는데, 대략 기억나는 대로 써보면 이렇다. “혁신이냐 아니냐는 그게 없어진 후에 깨달을 수 있다.” 얼마 전 서비스를 접은 공유 모빌리티 ‘타다(TADA)’를 가리키며 한 말이다. 보자마자 가슴에 바로 꽂히는 말이었다. 코로나 19 사태로 외출이 줄어들 수밖에 없는 요즘이라지만 내가 더더욱 시내를 나가지 않는 이유 중 하나가 타다의 부재이다. 내 모빌리티의 ‘대중 교통 축’을 담당했던 타다가 불법이라는 낙인이 찍혀 사라지니 그 분의 말처럼 그만한 혁신이 또 어디에 있을까? 어쩌다 나갈 일이 있으면 불편해도 자차나 버스를 이용하지 절대 택시를 이용하지 않는다. 왜 그런지는 이미 많은 이들이 그간 지적해 왔고 타다가 없어진 후에도 또 열심히 지적하고 있으니 무엇인지 대략 짐작할 수 있으리라. 택시는 참 문제 많은 ‘대중고통(大重苦痛)’이다.

 



타다가 한창 성업 중이던 때, 페이스북 타임라인에서 ‘혁신이다, 혁신이 아니다’란 공방을 심심치 않게 만날 수 있었다. 평소 타다를 애용하던 나는 그런 논쟁 여부를 떠나 타다를 옹호하는 쪽이었지만, 반대측 논리도 나름 일리가 있었다. 법망을 요리조리 피해 만든 서비스라서 애초에 불법의 소지가 있다, 불법이 될 것임을 뻔히 알고도 서비스를 개시한 건 공유경제라는 탈을 쓴 사기와 같다, 일반택시보다 비싼 요금을 받으면서 서비스 수준은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즉 일반택시와 차별점이 별로 없다) 등의 혁신이 아니라 주장하는 측의 주된 논리였다. 타다가 없어지니 논쟁도 싹 사라졌다. 하지만 ‘타다 현상’은 나로 하여금 혁신의 정의를 다시 생각하게 만든 계기가 되었다.

혁신이란 무엇일까? 한자로 혁신(革新)은 말 그대로 기존의 가죽을 벗겨내고 새로운 가죽을 입힌다는 뜻이다. 가죽을 교체하는 과정이 상당히 고통스럽고 자칫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급격한 변화이기 때문에 혁신은 아무데나 갖다 붙일 만한 단어는 아니다. 혁신이란 의미의 영어 단어 innovation은 ‘안으로’을 뜻하는 ‘in’과 ‘새로움’을 뜻하는 ‘nova’가 합쳐진 단어로서, 기존의 것을 버리고 겉면 뿐만 아니라 내부까지 새로운 것으로 채운다는 뜻을 지녔다. 한자어든 영어 단어든 여기에서 주목해야 할 키워드는 ‘새로움’이다. 가죽을 벗겨내는 고통이든, 밖에서 안으로 무언가를 채워 넣든, 혁신의 방향과 컨텐츠는 언제나 새로워야 한다. 새롭지 않으면 절대 혁신이 아니라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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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략)

 

이 글은 '주간 유정식' 6호 (2020년 5월 26일자)에 실렸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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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 유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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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젊은이들은 왜 MBTI에 열광할까?   

2020. 7. 23.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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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주간 유정식 11호 (6월30일 발행)에 게재되었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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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몇 개월 젊은이들(밀레니얼 세대 & Z세대) 사이에서 MBTI가 열풍을 일으키고 있다. 주로 기업 조직 내에서 회자되던 MBTI가 젊은이들의 즐거운 ‘놀이문화’로 번지는 현상은 이채로우면서도 흥미롭다. 유튜브에서 MBTI를 검색하면 유명 유튜버들 뿐만 아니라 연예인들이 각자의 MBTI 유형을 공개하며 재미난 주제로 이야기를 풀어가는 동영상을 많이 접할 수 있다. 16가지 MBTI 유형을 각각 자세히 소개한 동영상은 기본이고, 유형별 여행 스타일도 있고, 팀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 유형별 스타일도 있으며, ‘연애 상대로 나와 맞는 유형’도 있다. 지상파 방송 MBC의 인기 예능 프로그램 <놀면 뭐하니?>에서 ‘싹쓰리’라는 그룹을 결성한 유재석, 이효리, 정지훈(비)이 멤버의 성향을 알기 위해 MBTI 검사를 하는 방송도 찾아볼 수 있을 만큼 MBTI는 요즘 대세가 되었다.

이런 흐름을 가장 재빠르게 받아들여 활용하는 영역은 기업의 상품개발과 마케팅 부문이다. 카카오는 MBTI 유형명이 크게 쓰여진 티셔츠 16종을 판매 중이고, 휠라 코리아는 자사 캐릭터를 MBTI와 결합하여 컨텐츠를 알리고 있다. 각자의 유형에 맞는 아이템을 추천하는 건 기본이고, 어떤 기업은 고객에게 부모님의 성향을 테스트하게 함으로써 선물 구매를 유도하기도 한다. 이러한 ‘MBTI 마케팅’은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이런 MBTI 열풍 현상을 바라보는 전문가들의 관점은 MBTI의 학문적 기반이 미흡하다는 쪽으로 쏠려 있다. 자기보고(self-report) 방식을 사용하기 때문에 정확하지 않다는 점, 성격 유형을 두 가지 방향으로 양분(예를 들어, 외향성 아니면 내향성)하여 성격의 다양한 스펙트럼을 반영하지 못한다는 점, 성격 유형을 판단하기 위한 통계적인 신빙성이 부족하다는 점, 현대심리학과 뿌리가 다른 칼 융의 심리 유형론을 바탕으로 했다는 점, 그래서 지금까지 MBTI가 학계에서 절대 공인되지 않았다는 점 등을 문제로 거론한다. 

 



MBTI에 대한 이런 비판은 분명 올바른 지적이지만, 칼 융(Karl Jung)의 심리학을 기초로 MBTI를 개발한 마이어스(Myers)와 브릭스(Briggs)가 정식으로 심리학을 교육 받은 적이 없다는 점을 들며 MBTI의 부적합성과 결함을 지적하는 전문가들의 태도는 대단히 교조적이고 엘리트주의적이며 계급주의적이라는 점에서 비판 받아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이런 식의 비판은 정규 교육을 받지 않았다고 에디슨의 위대함을 평가절하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또한, 소위 ‘정통’ 심리학자들이 작금의 MBTI 열풍을 보면서 “젊은 애들이 MBTI가 뭔지도 모르고 저렇게 신봉하는 게 개탄스럽다”라고 혀를 차는 모습 역시 비판 받을 대상이다. 나는 MBTI가 학문적으로 문제가 많은 도구임을 젊은이들이 알지 못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마치 어렸을 때 누구나 해봤지만 결코 맹신하지 않는 ‘혈액형별 성격’처럼 그저 가지고 노는 새로운 장난감일 뿐, MBTI를 진지하게 받아들여 개인의 모든 의사결정 기준으로 삼으려는 것은 아니다고 나는 본다(유튜브에 MBTI의 문제를 지적하는 동영상 역시 많다는 점이 이를 뒷받침한다). ‘뭘 모르고 하는 짓’이라는 시선은 ‘상대가 원하지도 않는데 계몽하려는’ 꼰대적 마인드가 아닐까? 심리학자라면 학문적 관점의 비판으로 젊은이들을 계몽할 것이 아니라 그들이 왜 하필 이 시기에 MBTI라는 다소 고루해 보이는 성격 유형 테스트에 열광하는지 그 심리와 사회적 배경을 궁금해 하는 것이 옳지 않은가?

나는 MBTI에 대해서도 심리학에 대해서도 결코 정통이 아니지만, ‘MBTI 열풍의 이유’가 코로나19의 창궐과 깊이 연결된다고 생각한다. MBTI의 키워드 검색량이 올해 초에 급증했다는 것이 이런 추론을 가능하게 한다. 코로나19는 누구나 나에게 바이러스를 옮기는 잠재적 전파자가 될 수 있다는 사회적 불안과 불확실성을 심화시켰다. 이런 상황 하에서 젊은이들은 나와 상대방을 파악하고 구분하는 ‘확실한’ 표식을 필요로 했으리라 나는 추측한다. ‘저 사람은 나와 맞을까? 나와 맞지 않는다면 그 이유는 뭘까?’, ‘저 사람은 이런이런 유형이니까 이런 점을 조심해야겠어.’ MBTI는 이러한 잠재적 불안을 해소시키려는 요구에 무척이나 잘 들어맞는 도구가 된 셈이다.

MBTI 유형은 16가지나 되기 때문에 복잡하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4가지 카테고리가 있고 각 카테고리는 두 개의 성향으로 나뉘니, 오히려 간단명료하게 인식되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MBTI와 비슷한 성격 유형 테스트로 기업조직에서 많이 사용하는 디스크(DISC)는 MBTI보다 훨씬 간단한데, 왜 젊은이들의 인기를 끌지 못한 걸까? 짐작컨대, 코로나19가 일으키는 복잡하고 불확실한 사회 변화에 비한다면 고작 4가지 유형을 지닌 DISC는 지나치게 부족하고 너무나 뭉뚱그린 느낌이 든다. 4가지 혈액형과 다를 게 무엇인가? (오해하지 않길 바란다. 젊은이들에게 그렇게 비춰질 거라는 추측이다.) 

반면 MBTI 유형은 16가지나 되니 사회적 복잡성과 불확실성, 인간 유형의 다양성을 충분히 반영하고도 남을 것 같은 신뢰감이 생긴다. 그럼에도 마치 4개의 스위치를 위로 올리거나 아래로 내리는 듯한 이미지로 그려질 정도로 MBTI는 쉽게 이해되지 않는가? MBTI의 성공(?) 요인은 적당히 복잡하고 적당히 단순한 데 있다.

 



MBTI의 인기가 급등한 두 번째 이유는 ‘어떤 성격은 좋고 어떤 성격은 좋지 않다’는 식의 사회적 통념을 깨뜨렸다는 데 있다. MBTI의 각 유형에 대한 설명을 보면 특별히 좋거나 특별히 바람직하지 않은 유형은 없다. 각각 장점이 있고 나름의 약점이 존재한다. 외향성과 내향성을 예로 들어보자. 어렸을 적에 내가 주변사람들로부터 가장 많이 들었던 충고(?)는 ‘내성적인 성격으론 출세 못한다’, ‘학교 우등생이 사회 우등생이 되지 못한다’였다. 우스운 것은 본인도 매우 내성적인 성격을 지녔으면서 나에게 그런 충고를 서슴없이 했다는 점이다. 지금 생각하니, 그도 주위에서 얼마나 그런 이야기를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을까 싶다. 그도 나도 사회적 통념이라는, 눈에 보이지 않는 폭력의 피해자였던 셈이다.

이처럼 사람들은 보통 외향성이 내향성보다 사회적 성공에 유리한 성격이라는 고정관념을 갖고 있는데, MBTI는 이를 여지없이 깨뜨린다. 외향적(E)이라 해도 약점이 없는 것은 아니며 내향적(I)라 해도 강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게다가 내향적이지만 큰 업적과 성공을 이룬 자들도 많다는 점(스티브 잡스-ISTP, 마크 저커버그-INTJ, 팀 버튼-INFP)에서 결코 내향성이 외향성에 비해 열등한 성격이 아니다. 나머지 3개의 카테고리에 대해서도 무엇이 무엇보다 낫다는 평가는 찾아볼 수 없다. 각 유형엔 장단점이 아니라 고유의 특징이 있을 뿐이다.

어떤 성격도 우월하지 않으며 열등하지 않다. 성격 측면에서 누구도 다른 이보다 지배적이지 않다. 젊은이들은 이런 ‘평등함’과 ‘민주성’에 매료되지 않았을까? 선천적이고 바뀌기 힘든 성격으로 누구는 이익을 향유하고 누구는 불이익을 감수할 수밖에 없다는 통념에 빅 펀치를 날리는 것을 MBTI의 매력으로 느낀 게 아닐까? 

이런 매력은 ‘공정성’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밀레니얼 세대의 특징과도 절묘하게 맞아 떨어진다. 그러니 자랑스럽게 ‘나는 ISFJ야. 너는 뭐야?’라며 당당하게 자신의 유형을 마치 해시태그를 붙이듯 ‘인증’하며 즐겁게 ‘노는’ 것이다. 여기에 스마트폰과 유튜브, SNS 등은 이런 놀이에 지속적으로 연료를 공급하는 파이프라인으로 작용한다. 코로나19로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진 것도 한몫 했다.

앞에서 언급했듯, 젊은이들 역시 MBTI가 불완전하다는 점을 잘 인식하고 있다. 그러니 천둥벌거숭이 보듯 개탄스러워 할 필요는 없다. 조직에서 MBTI를 가지고 인사(보직, 승진, 이동 등) 와 관련한 의사결정을 내리겠다고 하면 가장 먼저 반대할 사람들이 그들이라고 본다. 인간이 복잡다양한 존재라는 건 그들 역시 잘 안다. 그러니 MBTI가 맞냐 틀리냐를 논하는 상투적인 비판에 가담하기보다 MBTI 열풍 이면에 존재하는 배경을 이해하는 것, 이를 통해 젊은 세대가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에 민감한지 살피는 것이 ‘현명한 꼰대’의 자세가 아닐까 싶어 이 글을 써보았다. 나는 INTJ니까.   (끝)

 


 

* 이 글은 주간 유정식 11호 (6월30일 발행)에 게재되었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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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아웃'이라는 팟캐스트에서 제 책 <나의 첫 경영어 수업>을 추천해 주었습니다.

책이 어떤 취지로 쓰였고, 어떤 내용으로 채워져 있는지 재미있게 참고하실 수 있습니다.

 

35분 25초 시점부터 제 책 소개가 나옵니다.

 

많이 들어 주시고, 그렇다고 듣기만 하시지 마시고, 책을 사주셔야 합니다. 그것도 아주 많이....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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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기가 만들어지는 소설, 자기계발서가 주는 상쾌한 기분, 끝없이 스프링을 펴는 작업. 유원 http://www.yes24.com/Product/Goods/90628036 나의 첫 경영어 수업 http://www.yes24.com/Product/Goods/90864938 시선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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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의 신간이자 10번째 책인 <나의 첫 경영어 수업>이 2년 여의 집필 기간을 거쳐 6월 30일자로 출간되었습니다. 초고를 출판사에 넘긴 지 거의 1년이 되어 가는 시점에 책이 나왔습니다. 당초 올 초에 나올 예정이었는데, 코로나19로 인해 출간 시기를 저울질하다가 상반기 끄트머리인 6월 30일이 되어서 마침내 탄생한 <나의 첫 경영어 수업>! 오래 기다린 만큼 출간의 기쁨도 큽니다.

 

<나의 첫 경영어 수업>의 집필 계기, 취지, 방향을 참고하시라고 책의 머리말을 여기에 옮겨 봅니다. 제가 오랫동안 준비한 신작 '나의 첫 경영어 수업'에 대한 여러분의 많은 성원을 부탁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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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의 한계가 당신 인생의 한계다

 

“자동차란 무엇입니까?”
대학교 3학년 2학기 때였다. 어느 자동차 회사에서 산학 장학생을 선발하기 위해 학교에 찾아와 나를 포함한 몇몇 지원자들과 일대일로 면접을 진행했다. 면접관은 나에게 산학 장학생을 왜 지원하게 됐냐는 상투적인 질문 대신 이 질문으로 처음부터 나를 당황케 했다. 요식적인 과정에 가깝다고 해서 가벼운 마음으로 임한 면접이었는데 이렇게 근본적이면서도 어쩌면 철학적이기까지 한 질문이 나올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나는 꽤나 얼버무렸다. 한참 생각한 끝에 이렇게 답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엔진을 통해 동력을 얻어 스스로 움직이는 이동수단이 자동차라고 생각합니다.”
“스스로 움직이는 이동수단이라구요? 아, ‘자동차(自動車)’라는 한자어 뜻을 풀이한 것이군요. 그런데 진짜로 자동차가 스스로 움직이나요? 스스로 움직이면 운전자는 왜 필요하죠?” 면접관은 즉각 되물었다.
“운전자가 제어하지 않으면 엉뚱한 곳으로 가거나 사고를 일으키기 때문이죠.”
“자동차를 스스로 움직이는 이동수단이라고 정의하려면 운전자가 없어도 ‘가고자 하는 곳으로 안전하게 움직인다’라는 조건이 전제돼야 할 텐데요, 운전자가 없으면 가고자 하는 곳을 알 수 없고 안전하게 움직일 수도 없습니다. 그러면 자동차를 스스로 움직이는 이동수단이라고 정의할 수 없죠. 안 그렇나요?”

‘이런 게 말로만 듣던 압박면접인가?’ 순발력을 발휘해서 면접관의 공격을 막아야 했건만 머리 속이 하얗게 된 나는 대답을 떠올리지 못한 채 바보처럼 “그렇군요.”라고 면접관의 말에 동조하고 말았다. 면접관의 표정은 자동차 회사의 장학생이 되려면 적어도 자동차의 정의가 무엇인지 알아야 하는 게 아닌가, 라며 실망하는 듯 보였다. 하지만 진짜로 요식적인 과정이었는지 다행히 나는 산학 장학생에 뽑혀서 학비 걱정 없이 대학을 끝마칠 수 있었다.

“자동차가 뭐라고 생각해?”
졸업 후 산학 장학생으로 선발해 준 회사에 입사해 팀에 배속된 첫 날 첫 회식 때, 팀장은 내게 술을 따라주며 툭 던지듯 물었다. 농으로 던진 질문이 아니라는 듯 그 눈빛은 아주 진지했다. ‘아, 또 물어보네. 이 회사는 이런 질문을 하는 게 문화인가 봐.’ 술에 취해 어떻게 대답했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지만 꽤나 횡설수설했던 것만은 분명했다. 팀장은 “자동차 회사에 다니는 사람이 자동차란 말도 정의하지 못하면 곤란하지.”라고 핀잔하며 내게 연거푸 벌주를 따랐다.

두 번의 창피 덕에 나는 자동차란 ‘원동기(엔진)의 동력을 사용해 바퀴를 돌려 도로를 달림으로써 사람이나 화물을 운반하는 이동수단’이라는 일반적 정의를 확실하게 암기할 수 있었고, 선배사원들이 신입사원을 골려 주려고 자동차의 정의를 물을 때마다 그 자리에서 바로 맞받아칠 수 있었다. 

이때부터 나는 무언가를 새로 접하거나 배우면 용어의 정의부터 찾아보았고 ‘정의를 알지 못하면 아무리 배우고 경험해도 알지 못하는 것과 같다’는 신조를 생각날 때마다 다짐하곤 했다. 나중에 경영 컨설팅사에 입사를 할 때 ‘경영’과 ‘컨설팅’의 정의와 그 이유를 미리 준비했던 것이 인터뷰 합격에 큰 도움이 되기도 했다.

많은 이들이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용어임에도 불구하고 그 정의를 잘 알지 못한다. 그 용어가 자신이 몸담은 비즈니스와 자기업무의 핵심인데도 ‘그걸 꼭 정의해야 하나?’라며 필요성조차 느끼지 못하는 경우도 꽤 많다. 멀리 찾을 것 없다. 인사팀이라면 ‘인사’, 기획팀이라면 ‘기획’, 고객만족팀이라면 ‘고객만족’이라는 단어의 정의를 지금 말해 보라. 장담컨대 바로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은 열에 둘셋이나 될까? 아마 이런 질문을 처음 받아본 사람도 많을 것이다.

아니, 이보다 더 근본적인 질문을 받아보거나 스스로 던져 본 적 있는가? ‘경영(management)’, 이를 한 문장으로 정의하라고 하면 어떻게 답하겠는가? “조직을 관리하고 운영하는 것”이라고 답한다면 그것은 경영이란 단어를 조금 풀어 쓴 것이지 절대 정의는 아니다. 무엇을 위해 경영을 하는지, 어떤 행위가 경영의 활동인지를 명확하게 설명하지 않기 때문이다. 경영이란 ‘목적을 설정하고 그것을 달성하기 위해 행하는 모든 활동의 총합’을 일컫는다. 목적이 없다면 경영이 아니고, 목적만 있고 별다른 행위를 하지 않으면 그 또한 경영이 아니다(여기에서 목적objective은 목표goal을 포괄한 개념이다).

경영이 이런 정의를 지니기 때문에 경영은 영리기업이나 비영리단체에만 쓸 수 있는 단어는 아니다. 자신의 성장 목적과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 자기계발에 열중하고 경력경로를 탐색하는 것을 ‘자기경영’이라 말할 수 있고, 가족의 행복과 건강이라는 목적을 위해 가족 구성원 모두가 헌신하고 희생하는 활동을 ‘가정경영’이라 부를 수 있다. 국가경영, 지역경영, 팀경영 등 목적의 주체가 나름의 목적을 설정하고 나름의 목적 달성 활동을 실천하면 그 무엇이든 ‘경영’이다. 단, 목적과 목적 달성 활동이 윤리적이냐, 효율 혹은 효과적이냐의 문제는 경영 자체와는 다른 차원의 질문이다. 윤리적이지 않아도 비효율 혹은 비효과적이라 해도 경영은 경영이다.

내가 용어의 정의를 중요하게 여기는 까닭은 단순히 그 용어와 관련된 분야에서 먹고살기에 그 정도는 알아야 한다는 의무감 때문이 아니라, “언어의 한계가 내가 사는 세상의 한계를 규정한다”라는 철학자 루드비히 비트겐슈타인(Ludwig Wittgenstein)의 말처럼, 정의가 사고와 행동의 방향을 지배하는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이다. 영화를 보고 프랑스어 ‘빠삐용(papillon)’의 뜻을 ‘나비’로 알고 있는 한국인들은 ‘나방’을 뜻하는 프랑스어가 따로 있을 거라 믿는다(빠삐용은 나비와 나방을 모두 일컫는다). 또한, 성공을 금전적 잣대로 정의하는 사람과 대중에게 미치는 영향력으로 정의하는 사람의 행동은 확연하게 다르기 마련이다. 

몇 년 전, 모 자동차 회사 임원들을 대상으로 한 특강에서 나는 신입사원 때의 경험을 들려주고 나서 그들에게 자동차의 정의를 물었다. 자동차 업계에서 잔뼈가 굵은 임원들 역시 내 질문에 당황해 하긴 마찬가지였다. 그들의 대답은 여러 가지로 달랐다. ‘엔진으로 바퀴를 움직이는 운송수단’이라는 전통적 정의를 말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사람과 화물을 안전하게 이동시키는 수단’이라면서 안전에 초점을 맞추는 임원도 있었다. 어떤 이는 독특하게도 ‘이동하는 동안에도 집에 있을 때와 동일한 즐거움과 안락함을 느끼는 공간’이라고 말하면서 생활공간의 연장으로서 자동차의 가치를 인식했다. 

자세히 살펴보니, 전사적 관점이 아니라 각자의 소속부서가 자신들의 입장에 기초하여 설정한 개념을 자동차의 정의로 생각하는 경향이 짙었다. 이런 모습을 보며 나는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자기 입장에서 정의하고 자기 정의대로 행동하기 쉽다는 점을 새삼 깨달았다. 그리고 ‘부분 최적화’라는 고질적인 병폐는 바로 전사적으로 통일되지 않은 용어 정의에서 비롯되지 않을까란 통찰과, 통일된 정의를 구성원들에게 확실히 인식시킬 수 있다면 미션과 비전을 향해 구성원들을 올바르게 정렬시킬 수 있지 않을까란 아이디어를 또한 얻을 수 있었다. 이것이 이 책을 쓰게 된 결정적 계기였다.

이 책 <나의 첫 경영어 수업>에서 나는 전략, 혁신, 팀, 팀워크, 미션, 조직문화, 고객가치, 인사, 평가 등 조직에서 매우 자주 사용함에도 불구하고 많은 이들이 그 뜻을 제대로 잘 알지 못할 법한 용어의 정의를 제시하고 그 이유를 설명한다. 차례를 살펴보면, 자신도 모르게 하루에도 여러 번 언급하는 상투적인 용어들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요즘 인구에 회자되는 4차 산업혁명, AI(인공지능), 빅데이터,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Digital Transformation) 등과 같은 ‘섹시한’ 주제가 아니라서 어쩌면 고리타분하게 느껴질지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시쳇말로 ‘있어빌리티’가 있는 분야에 열을 올리며 어려운 용어를 남발하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미션이란 무엇인가’, ‘전략이란 무엇인가’ 등과 같은 근본적 질문을 고민한 적이 얼마나 되는지 의심이 든다. 그런 트렌디한 주제들은 과거에 한창 유행했다가 이제는 거의 잊혀진 BSC(Balanced Scorecard, 균형성과지표), 지식경영(Knowledge Management), 6시그마 등의 전철을 밟을지 누가 알겠는가? 현재 팀을 이끌고 있는 팀장, 크고 작은 조직의 리더를 꿈꾸는 자, 핵심인재로 성장하고 싶은 직원 모두에게 이 책은 유행에 휩쓸리지 않는 경영의 근본적 개념을 일깨우고 늘 상기시키는 도구가 될 것이다. 경영의 본질을 재정립하고 조직을 추스리려는 CEO에게도 좋은 길잡이가 될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용어사전만 펼치면 바로 나올 법한 학술적이고 현학적인 정의를 나열하지는 않았다. 20년 넘는 컨설팅 경험을 바탕으로 무엇이 용어의 핵심 의미가 되어야 하는지와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를 풀어가는 방식을 취했다. <나의 첫 경영어 수업>이라는 책 제목에 걸맞게 이 책 곳곳에는 나와 수강생 간의 토론을 대화체로 표현한 장면이 자주 등장한다. 독자 여러분도 토론에 동참하여 자신의 의견을 생각하면서 읽어가면 좋을 것이다.

이 책에 나오는 경영어의 정의는 대부분 한 문장 이내이다. 그 이유는 긴 정의를 축약해 최종적으로 남는 것이 필수적으로 알아야 하는 의미이고 반드시 해야 할 행동 방향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또한, 짧아야 암기할 수 있고 ‘암기하지 못하면 모르는 것이나 마찬가지다’란 또다른 나의 신조에 따른 것이기도 했다.

이 때문에 혹자는 이 책에서 제시하는 정의가 자신의 생각과 다르다고 말할지 모른다. 아니면, 전통적이고 교과서적인 개념과 다르다며 문제를 제기할 수도 있다. 나는 이런 이견을 환영한다. 용어의 정의는 고정적이지 않다. 각자 처한 환경에 따라 다를 수 있고 또 그래야 한다. 전사적으로 통일만 되어 있다면(즉, 부서별로 용어를 제각기 다르게 인식하지 않는다면), 하나의 용어에 대한 각기 다른 정의는 각 기업이 추구하는 가치와 목표를 대내외에 차별적으로 표현하고 구현한다는 점에서 오히려 권장할 만한 일이다. 

또한, 용어의 정의는 시대의 변화가 반영되어야 한다. ‘스스로 움직이는 차’라는 자동차의 정의는 과거에는 상당히 과장된 의미였지만, 이제는 그렇게 정의하는 것이 무리가 없을 만큼 무인운행과 자율주행이 일상화되었다. 기업은 ‘이익을 추구하는 조직’이라는 오랜 정의는 고객의 중요성이 떠오르자 ‘고객 혹은 팬(fan)을 창조하는 조직’으로,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는 시대 흐름 속에서 ‘미션을 추구하는 조직’으로 대체되지 않았는가? 한번 정해진 정의를 고수하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시대의 변화에 맞게 정의를 갱신하고 이를 구성원 모두가 동일하게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을 기억하기 바란다.

제2차 세계대전 등을 소재로 한 전쟁영화를 보면 부대원들이 작전에 임하기 직전, 긴장이 한껏 고조된 상태에서 각자의 시계를 하나로 맞추는 장면이 자주 등장한다. 서로가 약속된 공격을 약속된 시간에 수행하지 않으면 아무리 뛰어난 화기를 보유하고 훌륭한 작전을 수립했더라도 승리를 장담할 수 없다. 시계 맞추기가 전투 직전에 해야 할 기본 중의 기본이듯, <나의 첫 경영어 수업>을 통해 서로가 다르게 알고 있는 용어의 정의를 맞추는 것이 경쟁이라는 소리없는 전쟁에 나서기 전 해야 할 기본 중의 기본이 아닐까?

 

이제 그 교실의 문을 열어보자. 

 

2020년 초여름

유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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