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직과 국가가 망하는 2가지 절대적 이유   

2022. 12. 19.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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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년 전 이 책 <지금, 경계선에서>를 서점에서 발견하고 몇 페이지를 읽어보던 중에 뒷통수를 한 대 얻어 맞는 듯한 충격이 무엇인지 새삼 실감했다. 책 두께가 두꺼운 편이지만 2~3일만에 독파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문명의 몰락을 나타내는 몇 가지 징후를 설명하면서 인간의 진화가 문명의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는 데에서 원인을 찾는 저자의 시각이 나에게는 매우 신선했다. 컨설턴트로 일하는 나에게 기업이란 조직의 흥망을 새롭고 근본적인 관점으로 바라볼 수 있도록 이끌었다는 점에서 이 책은 내 삶에 들어온 몇 안 되는 책으로 손꼽을 만하다. 이 책을 읽기 전과 후로 나의 컨설턴트 경력을 나눌 수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전에는 표면적인 현상과 증상 위주로 기업을 진단하고 조언했다면, 이 책을 읽은 후에는 경영진과 구성원의 잠재된 사고방식을 들여다 보는 쪽으로 접근했던 것이다.

찬란한 꽃을 피웠던 마야 문명은 왜 갑자기 멸망했을까? 거대한 제국을 형성하며 위세를 떨치던 로마는 왜 분열되었을까? 거대 석상 ‘모아이'를 만들 만큼 높은 문화 수준을 자랑한 이스터 섬의 사람들은 왜 서로 잡아먹을 지경까지 이르렀고 끝내 붕괴되고 말았을까? 이들 문명이 몰락한 원인들에 대해 많은 고고학자와 인류학자들은 오랫동안 계속된 가뭄이 원인이다, 이방인들의 침입을 막지 못해서다, 자원을 무분별하게 고갈시켰기 때문이다 등 여러 가설을 내놓으며 논쟁을 벌인다. 그들의 의견은 각기 일리가 있지만, 애석하게도 문명의 몰락을 아우르는 공통적인 근본원인을 잡아내지 못한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레베카 코스타


이 책의 저자인 레베카 코스타가 제시한 근본원인 2가지는 문명 몰락의 공통점을 정확히 지적할 뿐만 아니라 내가 컨설팅을 하며 목격했던 ‘망하는 조직’의 실체를 놀랍도록 선명하게 드러내 주었다. 코스타는 ‘정체 상태’와 ‘믿음이 사실을 대신하는 상태’가 바로 문명 몰락의 2가지 징후라고 말한다.

문명은 필연적으로 거대하고 복잡한 문제를 직면하게 되고 이를 해결하느라 숱한 곤경을 겪는다. 정체 상태란 바로 복잡하고 거대한 문제를 해결하는 쪽으로 한발짝도 나아가지 못하는 상황을 일컫는다. 마야인들은 수천 년간 고질적인 물 부족 문제에 시달렸다. 이 말은 그들에게 문제를 해결할 시간이 수천 년이나 있었음을 뜻했지만, 마야인들은 저수지를 조성하거나 수로를 정비하는 것과 같은 오래전의 방법을 해결책으로 고집했다. 저수지와 수로를 만들어 봤자 비가 오지 않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것을 모를 리 없었을까? 그들은 주민을 물이 풍부한 곳으로 이주시킨다든지, 새로운 수원(水源)을 찾는다든지 하는 획기적 해결책을 시도할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다.

문명이 정체 상태에 빠져 오랜 기간 문제 해결에 실패하면 ‘믿음이 사실을 대신하는 현상’이 심각해진다. 코스타는 이것을 문명 몰락의 두 번째 징후라고 진단한다. 마야 유적지에서 신체가 절단된 여성과 어린이의 유해가 대거 발굴되었는데, 이는 마야인들이 문명 말기에 이르러 신에게 제물을 바치는 주술 행위에 집착했음을 의미한다. 문제를 해결할 실질적이고 논리적이며 과학적인 해법을 멀리하고 격노한 신을 위로하는 것을 유일한 해법으로 인식했던 탓이다.

그렇다면 문명 몰락의 2가지 징후는 왜 발생하는 걸까? 코스타는 인간의 생물학적 한계를 언급하면서 진화학적으로 그 이유를 설명한다. 바로 인간의 진화 속도가 문명의 발전 속도를 따라잡기에는 매우 더디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인간이 문명을 이루며 살게 된 것은 고작 1만 년 전부터인데, 1만 년이란 시간은 두뇌가 진화하기에는 턱없이 짧은 시간이다. 문명이 발달할수록 발생하는 문제의 복잡성 역시 심화되고 결국 인간의 두뇌로 풀 수 있는 지점을 넘어서는 '인식의 한계점'에 도달하게 된다는 게 코스타의 주장이다. 인식의 한계점에 이르면 기존에 계속해 왔던 미봉책을 적용하다가 다음 세대에 책임을 전가해 버리는 지경에 이른다. 이것이 문명이 붕괴하는 진정한 원인이라고 코스타는 경고한다.

앞서 언급했듯이 ‘정체 상태’와 ‘믿음이 사실을 대신하는 상태’는 크고 작은 기업의 흥망을 가늠하는 데 더없이 좋은 열쇠다. 조직의 규모가 커지면서 한때는 별로 심각하지 않았던 문제들이 여기저기서 불거지고 복잡성을 더해간다. 매출이 점점 떨어진다든지, 시장에서 지배력을 상실해 간다든지, 직원들의 애사심이 희미해져 간다든지 등의 문제 등은 기업의 생존을 위태롭게 만들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려고 가격을 인하하거나, 틈새상품을 출시하거나, 직원들의 성과평가를 강화하거나, 연봉을 인상해 보거나 하는 방법을 동원한다.


그러나 이런 방법은 완화책이거나 미봉책에 불과하다. 기존 사업을 과감하게 정리하거나, 컨셉트가 완전히 다른 제품을 개발하는 전면적이고 혁신적인 해결책이 필요하지만, 한곳에 모여사는 걸 당연시했던 마야인들이 인구를 분산시키는 해결책을 생각하지 않았듯이 웬만해선 그런 해결책을 고안하지 못한다. 설령 누군가가 혁신책을 내놨다 해도 격렬한 반대에 부딪히는 게 다반사다. 그저 ‘해보지 않았다’란 이유를 대며 반대를 위한 반대를 행한다. 그러고는 과거에도 여러 번 해왔던, 하지만 아무 효과가 없었던 ‘열심히 하자’식의 방안을 해결책이랍시고 제시할 뿐이다.

나는 과거의 찬란했던 영광만을 추억하거나, 환경이 변했음에도 과거에 ‘먹혔던’ 해결책을 고집하거나, 늘 동일한 문제가 테이블에 올라오지만 매번 동일한 해결책을 반복하는 기업을 만나면, 지금은 아무리 잘나간다 하더라도 머지않아 위험해질 거라고 경고하곤 했다. 대부분은 내게 불쾌하다는 반응을 보이거나 ‘뭘 모르는 소리’라며 가볍게 무시했다. 그 중 몇몇 기업은 타기업에 인수되거나 알짜 사업까지 매각해야 하는 생존 위기를 직면했다.

모 기업은 소비자 트렌드의 변화로 오랜 기간 판매 부진에 시달렸는데, 그들이 위기 돌파를 위해 제시한 전략을 과연 전략이라고 칭할 수 있는 것인지 의심스러웠다. 트렌드를 선도할 제품 컨셉트 도입, 사업 포트폴리오 혁신 등의 해결책을 충분히 논의할 수 있었으나 “전 직원은 앞으로 1시간 일찍 출근하고 1시간 늦게 퇴근한다!”는 해마다 반복되는 전략을 이길 도리는 없었다. 미봉책도 이런 미봉책이 없었다. 이것이 바로 ‘정체 상태’에 빠졌다는 징후! 왜 이를 전략으로 수립했는가를 물어보는 내게 그들은 이렇게 답했다. “직원들에게 위기감과 결기를 심어주면 돌파하지 못할 리스크는 없다.” 4차 산업 혁명을 운운하는 시대에 ‘하면 된다’식의 헝그리 정신을 끌어오는 촌스러움은 ‘믿음이 사실을 대신한다’는 적확한 징후! 이 회사는 현재 수년 째 적자를 면치 못하고 있다.

모 회사는 2005년에 외국기업을 주인으로 맞이하며 기업을 회생시킬 목적으로 ‘공격경영 전략’을 기치로 내세웠다. 하지만 내막을 살펴보면 새로운 성장동력 없이 영업망의 확충으로만 성장을 추구하겠다는 방안이 주를 이뤘다. 매일 되풀이되었던 영업강화 전략과 별반 다르지 않았던 것이다. 아인슈타인이 “미친 짓이란 매번 똑같은 행동을 반복하면서 다른 결과를 기대하는 것”이라고 말하지 않았던가! 시장과 고객에게 새로운 가치를 제시한다는 전략을 무시하고 단순히 영업을 강화해 많이 파는 것을 공격경영이라 이름 붙이다니, 나로서는 이해하기 어려웠다. 그 회사의 공격경영은 그저 ‘더 많은 인력과 비용을 들여서 더 열심히 팔아보자’라는 의미로 해석될 뿐이었다. 결국 이 회사는 몇 년 지나지 않아 또 다른 외국기업에게 매각되고 말았다.


어찌 기업만 그럴까? 나를 찾아와 “저도 책을 쓰고 싶습니다.”며 조언을 구하는 경우가 가끔 있다. 그때마다 나는 “하루에 1페이지씩이라도 써보세요.”라고 권하는데, 도깨비 방망이 같은 비결을 기대했는지 몇몇은 고개를 갸웃하며 “일이 바빠서 그건 좀 쉽지 않네요.”라는 반응을 보인다. 글과 책 쓰는 법에 관한 책을 여러 권 읽었고 글쓰기 강좌도 여러 번 수강했다며 자랑하더니 이게 웬말인가? 나 말고도 많은 이에게 조언을 구하는 모양이었는데, 그렇게 열심히 읽고 강의 듣고 찾아 다니며 조언 듣는다고 책이 절로 써질까? 편리한 해결책을 반복하고 ‘공부하면 써지겠지’라는 믿음을 가진 그들과의 만남은 빨리 파하는 게 상책이었다.

코스타는 문명이 정체 상태를 깨고 믿음이 사실을 대신하는 상태에서 벗어나려면 기존의 규칙을 완전히 허무는 아이디어를 수용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실제 이야기를 소재로 한 영화 <캐치 미 이프 유 캔(Catch Me If You Can)>에서 주인공 에버그네일은 의사, 항공기 조종사, 대학교수, 검사 등을 사칭하고 다니며 국제적으로 사기 행각을 벌이다가 결국 체포되어 징역 12년형을 받았다. 하지만 그는 4년만 복역하고 풀려났다. 왜 그랬을까? 숱한 사기 범죄를 해결하지 못해 골머리를 앓던 FBI에게 “범죄자로 범죄자를 잡으면 어떨까?”란 통찰이 생겨났던 것이다. 에버그네일은 이후 35년 동안 자신의 뛰어난 사기 수법을 대입해 FBI가 사기범보다 한발 앞서 갈 수 있도록 도왔고 FBI 아카데미에서 요원을 가르치기까지 했다. 다수의 사기 범죄자를 체포하고 사기 행위를 미리 발각할 수 있었던 데에는 골칫거리를 ‘자산’으로 탈바꿈시킨 FBI의 ‘틀을 깬’ 통찰이 있었다.

톨스토이는 소설 <안나 카레니나>에서 “행복한 가정은 모두 비슷하지만, 불행한 가정은 제각각 나름의 이유로 불행하다.”라고 말했다. 나는 문명과 조직의 흥망에 있어서는 이 말이 이렇게 바꿔야 한다고 생각한다. “흥하는 문명(조직)은 모두 비슷한 이유로 흥하고, 망하는 문명(조직) 역시 모두 비슷한 이유로 망한다.” 당신의 조직 혹은 당신 자신이 ‘정체 상태’와 ‘믿음이 사실을 대신하는 상태’에 빠져 있다면 이 책 <지금, 경계선에서>을 통해 위기 탈출의 실마리를 잡기 바란다. 이 책을 읽기 전과 읽은 후의 경계선에 당신이 지금 서 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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