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은 제가 최근에 번역 출간한 <순서 파괴>에 실린 '옮긴이의 말'입니다. 책 선택에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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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평가도 아니고 보상도 아니며 교육도 아니다. 바로 채용이다. 아무나 뽑아서 평가를 냉정하게 해서 교육을 시키는 데 드는 엄청난 비용을 생각하면, 조금 느리더라도 처음부터 천천히 우리 회사에 적합한 인재인지 판단해 가는 과정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전략 하나를 세우는 데 몇 개월을 고심하면서도 조직의 운명을 좌우할지 모를 누군가를 뽑기 위한 채용을 그저 운영 업무를 처리하듯 진행해서는 곤란하지 않겠는가? 시행착오를 통해서라도 채용 프로세스의 질을 높이는 데 CEO를 비롯한 모든 리더들이 자기 시간의 상당부분을 쏟아야 한다. 요즘 잘 나가는 여러 기업들 중 아마존이 오래 전부터 그렇게 했듯이 말이다. 

나는 주로 인사 분야를 컨설팅하는 입장이기에 이 책에서 아마존의 채용 프랙티스(practice)에 깊은 관심을 가졌다. 게다가 아마존에서 제프 베조스를 지근거리에서 보좌했던 전직 고위 임원들이 내부자의 시각으로 쓴 책이니 더욱 눈길이 가지 않을 수 없었다. “채용이 중요한지는 알겠는데 대체 어떻게 하란 말인가?”라고 생각을 평소에 했더라면 이 책에서 제시하는 아마존의 사례가 대단히 유용한 지침이 될 것이다.

지금은 미국뿐만 아니라 세계 경제의 바로미터 같은 존재로 우뚝선 아마존이라고 하지만, 여느 스타트업이 그러하듯 초창기 그들의 채용 행태를 보면 한숨이 나올 지경이다. 오늘날 위대한 경영자 중 한 사람이라 칭송 받는 제프 베조스가 당시 지원자들에게 이렇게 물었다. “당신의 SAT점수는 얼마였나요?” 명문 프린스턴 대학교 출신인 그는 꽤 학력지상주의자였는지 스펙이 뛰어난 사람들을 선호했다. 학력보다는 다른 스킬이 더 중요한 고객 지원이나 물류 부문의 인력을 뽑는 데에도 이런 질문을 던지기 일쑤였는데, 요즘 이런 질문을 던지는 기업이 있다면 엄청난 논란에 시달릴 것이 분명하다. 또한, 현재는 인터뷰 질문지에서 거의 사라진 “왜 맨홀 뚜껑은 원형입니까?”와 같은 소위 ‘브레인 티저(Brain Teaser)’ 식 질문을 던져 그 자리에서 운좋게 참신한 대답을 하는 사람을 채용했다. 참고 삼아 말하자면, 이런 질문에 대답을 잘하는 것과 실제 업무능력 사이에는 상관관계가 없다는 게 연구 결과와 현장의 목소리로 이미 증명됐다.

 


회사 성과가 성장하면서 동시에 직원 수도 증가했다. 얼마나 사람을 빨리 뽑아야 했는지 어제 채용된 사람이 오늘 새로운 사람을 채용해야 한다는 농담이 나올 정도였는데, 당연히 채용이 질이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회사가 ‘이런 사람을 채용하라’는 기준을 제시하지 않았고 구체적인 채용 매커니즘이 정립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본문에 나오듯이 이런 치열한 반성 끝에 '바 레이저'라는 아마존 특유의 채용 프로세스가 정립되었다. ‘최고를 고수한다’는 리더십 원칙이 원칙에서 머물지 않고 실무 프로세스로 녹아내려고 노력했다는 점이 나에겐 꽤나 의미 있는 충격이었다.

이렇듯 아마존이라고 해서 처음부터 세련된 시스템과 프로세스를 갖추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우리가 아마존을 배워야 하는 이유는 문제를 문제라 인식하고 회피하지 않았다는 점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회사의 자원을 집중시켰다는 점, 그리고 해결책을 조직문화의 일부로 정립시키는 데 주력했다는 점이다. 이 책을 번역하는 동안 나는 이것이 지금의 아마존을 일구어낸 핵심동력이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내가 주목한 것이 또 하나 있었는데, 바로 독특한 아마존의 회의 문화였다. 효과적인 회의 운영법을 그간 많이 들어봤을 것이다. 회의 아젠다와 관련된 사람만을 참여시킨다든지, 회의 전에 자료를 배포한다든지, 참석자들은 아젠다와 관련 자료를 필히 숙지하고 회의실에 들어와야 한다든지, 회의의 좌장이 ‘의사결정’ 중심으로 회의가 진행되도록 퍼실리테이션을 잘 해야 한다든지, 회의의 결과를 팔로우업(follow-up)할 사람을 반드시 지정해야 한다든지, 회의가 끝나면 회의록을 즉각 작성하여 참석자들에게 빨리 배포해야 한다든지 등이 회의의 효율을 높이는 방법들로 주로 거론된다.

이 중 나의 고개를 갸웃거리게 만드는 것은 ‘참석자들이 아젠다와 관련 자료를 필히 숙지하고 회의에 참석해야 한다’는 부분이다. 무슨 이유로 이것을 강조하는지는 알겠다. 아무것도 알지 못한 상태에서 회의실에 들어와 그제서야 허겁지겁 자료를 훑어보면 그만큼 소중한 회의 시간을 까먹게 될 뿐만 아니라 아젠다와 관련하여 좋은 아이디어를 제시하기도 불가능에 가깝다는 게 이유일 것이다. 그런데 참석자들이 회의 시간 전에 아젠다와 관련 자료를 숙지하고 읽는 시간은 어디에서 뚝 떨어지는 공짜 시간이 아니다. 그걸 읽느라 자기가 맡은 업무를 옆으로 제쳐 놔야 하고 그 시간은 고스란히 ‘아이들 타임(idle time)’이 된다. 겉으로 보이는 회의 시간 자체는 줄어들더라도 어디에선가 그만큼의 시간이 소요돼야 한다. 그러니 회의 시간이 줄어들었다고 마냥 좋아할 일은 아니다. 세상사가 모두 그렇듯, 얻는 게 있으면 잃는 게 있다.

 

 

이렇게 반론할지 모르겠다. 회의실에 들어와서야 자료를 뒤적거리기 시작하면 아젠다와 관련해 제대로 된 아이디어를 제시하지 못한 채 ‘멍하니’ 앉아 있으면서 시간만 보낼 것이라고 말이다. 물론 그럴 수도 있지만, 만약 진짜로 참석자들이 ‘멍하니’ 앉아 있는다면 애초에 아젠다에 맞지 않는 사람들을 불렀기 때문은 아닐까? ‘Right person'을  참석시켰다면 이미 그는 해당 아젠다에 대해 ‘프로페셔널’이고 자료를 회의실에 들어와서 읽기 시작했다 하더라도 조금만 시간을 주면 충분히 회의 아젠다와 목표를 간파할 수 있지 않을까? Right person을 참석시킨다는 전제만 잘 준수한다면, 업무 시간을 쪼개 자료를 읽게 하기보다 이미 잡혀 있는 회의 시간에 읽도록 하는 게 더 효율적이지 않을까? 

게다가 회의 주최자가 마음대로 참석자를 지정해 놓고서 ‘회의 참석 전에 자료를 숙지하고 들어오라’고 하는 것은 참석자 입장에서 볼 때는 ‘업무와 재량에 대한 침범’ 아니겠는가? 물론, 특정 프로젝트 내에서 벌어지는 회의에서는 ‘회의 전 자료 숙지’를 요구하는 것이 정당하고 또 그래야 한다. 하지만 타 직무, 타 부서, 타 조직이 참석해야 하는 회의에서도 이를 요구하거나 기대할 수 있을까? 회의실에 들어와 “자료를 아직 안 읽어 봤습니다.”라고 하는 사람을 탓할 수 있을까? 내가 그간 회의를 주최해 본 경험을 떠올려 봐도 자료를 다 숙지하고 회의실에 입실한, 정말로 ‘고마운’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래서 그들을 위해 자료를 브리핑하는 것으로 매번 회의를 시작하곤 했다. 어차피 잘 되지 않을 거라면, 즉 회의 전에 자료를 읽고 들어 올 사람이 거의 없을 거라면, 회의실에 들어와 자료를 숙지하도록 해줘야 하지 않을까? 다들 현업에 바쁜 사람들이니 회의에 들어와 자료를 읽어주기만 해도 고맙지 않은가? 

아마존은 이런 현실을 역으로 활용함으로써 보다 효과적인 회의를 진행하고 있다. 본문에서 언급됐듯이 아마존의 회의는 침묵으로 시작된다. 참석자들은 발표자로부터 6페이지로 된 내러티브 문서를 받아 읽는다. ‘문서 읽기 시간’으로 부여된 20분 동안 회의실엔 종이 넘기는 소리만 나는, 약간은 괴이하기까지 한 적막이 이어진다. 참석자들은 꼼꼼히 문서를 읽으며 궁금한 것을 표시하고 메모한다. 20분이 지나가면, 그때부터 열띤 토론이 벌어진다. 참석자들은 발표자(문서 작성자)에게 질문을 던지거나 아이디어를 제시하고 발표자는 쏟아지는 질문에 응수하거나 아이디어를 수용한다. 아마존의 숱한 히트 상품들이 이런 문화적 기반에서 만들어졌다는 점이 이 책이 우리에게 주는 시사점 중 하나다. 이 책을 읽고 파워포인트가 난무하는 회의 문화를 뜯어 고쳐보겠다는 의지를 충전하기 바란다.

그간 아마존에 대한 책이 숱하게 나왔지만, 외부인의 시각에서 아마존에 탐침을 꽂고 알아낸 정보에 기반하여 쓰여진 책들이 대부분이다. 이 책은 다르다. 제프의 그림자로 오랜 기간 활동한 자와, 아마존의 디지털 비즈니스를 이끌었던 자가 아마존의 문화적 기반뿐만 아니라 킨들, 프라임, AWS 등 히트 상품들의 탄생 역사를 속속들이 알려준다. 제프 베조스가 유일하게 인정하는 ‘아마존 이야기’가 바로 이 책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조직 경영의 관점에서나 실무자의 시각에서나 이 책은 신선하고 생기발랄한 통찰을 선사할 것이다. 

번역자로서 고충 중 하나는 딱 들어맞는 우리말 표현을 도무지 찾기 어려울 때다. 고객의 니즈를 최우선하고 그에 따라 내부 프로세스를 조정하고 운영한다는 뜻을 지닌 ‘워킹 백워드’란 문구가 바로 그랬다. 워킹 백워드뿐만 아니라 ‘바 레이저’처럼 아마존 내부에서 굳어진 몇 가지 용어의 경우, 본뜻을 훼손하지 않기 원래 표현을 그대로 사용했다는 점을 양해해 주길 바란다. 부디 아마존을 이해하는 데 내 번역이 조금이나마 기여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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