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의 이건희 회장이 경영의 방향을 화두로 던지면 업계에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곤 하기 때문에 언론은 늘 그의 입을 주시한다. 이 책을 쓰고 있는 요즘에는 그가 던진 소위 ‘샌드위치론’이 인구에 회자되고 있다. 그만큼 그의 영향력은 지대하다.
1994년 공무원 대상 특강에서 “21세기는 1명의 천재가 1만 명을 먹여 살린다”라는 소위 ‘천재론’을 이야기한 그는 2002년 6월 사장단 회의에서 삼성의 ‘핵심인재경영 가속화’를 대대적으로 선언했다. 리더는 인재에 대해 욕심이 있어야 하며 핵심인재 확보를 위해서는 사장단이 직접 뛰어야 한다는 것이 그 요지였다.
그가 던진 화두가 촉매가 되어 많은 기업에서 핵심인재 관리제도를 운영하고 있거나 도입을 준비 중이다. 마지막 방점을 찍듯이 핵심인재 관리로 성과주의가 완성된다고 믿는 모양이다. 하지만 모든 제도가 그러하듯 이 제도 역시 여러 가지 문제점을 양산하고 있는데, 수학의 논리를 적용해 보면 과연 핵심인재 관리제도가 꼭 필요한 것인지 회의가 든다.
우리 회사의 핵심인재는 얼마나 될까? 10%다, 15%다 의견이 분분하겠지만, 나는 알짜 핵심인재는 전체 구성원의 1% 정도에 불과하며, 아무리 높게 잡아도 5%를 넘지 않는다고 본다. 보수적(?)으로 생각해서 핵심인재의 비율을 5%라고 해보자.
조직 어딘가에 숨어있는 핵심인재를 발굴하려면 인사고과든, 업적평가든 여러 가지 방식의 평가 과정을 거쳐야 한다. 그 평가의 신뢰성을 95%라고 해보자. 즉, 평가를 통해 핵심인재임을 옳게 판별할 확률이 95%라는 말이다. 평가제도가 완벽하게 짜여 있더라고 운영 상의 문제가 항상 발생하기 때문에 사실 95%의 신뢰성도 꽤 높게 잡은 것이다.
반면, 핵심인재가 아닌데도 핵심인재로 잘못 판별할 확률을 5%라고 해보자. 이 확률 역시 평가가 완벽하게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에 발생하는 오류인데, 5%밖에 오류를 발생시키지 않는다는 말은 평가가 상당히 우수하다는 의미이다.
여기서 질문을 던지자. "어떤 사람이 핵심인재로 선발됐다면, 그가 진짜 핵심인재일 확률은 얼마일까?" 직관적으로는 95%에서 5%를 빼면 90%니까 그 정도 되지 않겠냐고 생각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정답은 90%보다 훨씬 작다.
전체직원수가 1000명이라고 하자. 그러면 그 중 진짜 핵심인재는 5%인 50명일 것이다. 하지만 평가를 거치지 않았기 때문에 아직 누가 핵심인재인지 모른다. 평가의 신뢰성이 95%이니까 50명 중 48명만 핵심인재로 발굴되고 2명은 소외를 당하고 만다. 또한 나머지 950명 중에서 5%인 48명이 핵심인재로 오인된다.
이제 질문에 답해 보자. 핵심인재로 선발된 어떤 사람이 '진짜' 핵심인재일 확률은 48 / (48+48) = 50% 밖에 안 된다. 홍길동이라는 친구가 핵심인재 그룹으로 선발됐다 하더라도 그가 '진짜' 핵심인재일 확률은 반반에 불과하다는 뜻이다. 평가가 상당히 우수하게(신뢰성 95%, 오류 확률 5%) 이루어진다 하더라도, 이 정도 밖에 안 된다. 만일 평가가 엉망으로 이루어진다면, 홍길동이 핵심인재일 확률은 급격히 떨어진다. 아래의 표를 참조하기 바란다.
핵심인재 비율 |
평가 신뢰성 |
오류 확률 |
홍길동이 핵심인재일 확률 |
5% |
95% |
5% |
50% |
5% |
90% |
10% |
32% |
5% |
85% |
15% |
23% |
5% |
80% |
20% |
17% |
선발된 핵심인재가 진짜 핵심인재일 확률을 높이려면, 평가의 신뢰성을 100%로 끌어 올리고 동시에, 핵심인재가 아닌데도 핵심인재로 잘못 판별할 확률을 0%로 만들면 된다. 이론적으로는 그렇지만, 모두가 알다시피 현실적으로 그렇게 되긴 매우 요원하다. 어쩔 수 없이 평가는 주관적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위에서 봤듯이, 핵심인재 관리제도는 논리적으로 매우 허점이 많은 제도이기 때문에 회사를 살리고 회사를 번영시킬 도깨비 방망이로 떠받드는 건 옳지 않다. 그리고 핵심인재 그룹에게 많은 혜택을 주는 것도 불합리하다. 그가 핵심인재일 확률은 아무리 좋게 생각해도 50%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 대신, 그들에게는 도전과 시련의 기회를 주어야 마땅하다. 왜냐하면 그가 진짜 핵심인재가 아닐지 모를 확률이 더 크기 때문이다. 만일 '보상' 중심의 핵심인재 관리제도라면, 당장 집어 던져야 함이 마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