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슬렁거리며 찍다   

2008. 5. 24. 1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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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앞 공원에서 산책을 겸해 찍어 본 사진들.
E-400에 50mm Macro 렌즈만 물리고 어슬렁거렸다.
좀 더웠다. 이제 여름인가보다.

(Enlarge 버튼을 눌러야 큰 사진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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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은 케네디를 절대 꿈꾸지 마라   

2008. 5. 24. 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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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2년 라이스 대학교에서 했던 유명한 연설에서 존 F. 케네디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달에 가기로 결정한 것은 그것이 쉽기 때문이 아니라 어렵기 때문이었습니다. 왜 그런 목표를 세웠느냐구요? 그 질문은 무엇 때문에 높은 산에 오르냐는 질문과 같습니다. 그 목표를 달성함으로써 우리가 가지고 있는 최고의 에너지와 기술을 조직화하고 측정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러시아가 스푸트니크 위성을 쏘아 올린 사건은 미국인들에게 충격이었다. 냉전 하에서 러시아에게 우주를 빼앗기는 것은 생존에 대한 절망이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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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네디의 결정이 위대한 이유는, 우주선을 달에 쏘아 보냄으로써 미국이라는 나라의 위대함을 만방에 입증해 보였고 충격에 휩싸인 미국인들에게 희망의 비전을 제시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자원이 남아 돌아서 인류를 위해 달 탐사를 한다!"라는 과시! 그건 값비싼 결정이었지만 그만큼 가치 있는 결과를 낳았다. 국가적 이기심 때문이기도 했지만 인류의 과학은 우주 개발이라는 목표로 한걸음 나아갔다.

경부운하, 호남운하, 충북운하... 우리나라를 운하 천국으로 만들고자 하는 이명박 대통령의 비전은 케네디의 그것에 비해 어떠한가? 그의 말대로 임기 내에 경부운하가 완공된다고 해보자. 세계 만방에 "우리는 능력이 뛰어나서 5년 내에 거대한 운하를 팠다. 우리는 위대한 민족이다!"라고 과시할 수 있을까? 그래서 세계의 모든 나라로부터 부러움과 존경을 받게 될까?

대운하의 완공으로는 언감생심이다. 물류 분담률도 기대할 수 없고 관광용으로 하기엔 기대되는 수익도 보잘 것 없는 대운하를 굳이 강행하는 이유는 도대체 무엇인가? 국가의 정력은 그런데다 쓰는 게 아니다. 미래를 열고 미래를 밝히는 분야에 한푼이라도 보태야 할 이 때에 토건의 삽을 들이대며 '반짝 경기'를 기대하는 지도자를 보면서 통치자로서의 그의 자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대한민국은 정말 두려운 나라야."라며 뭇 나라들의 경외감을 불러 일으킬 수 있도록 케네디처럼 야심차고 원대한 비전을 제시하길 기대해 본다. 정말 대운하 밖에는 아이디어가 없는가? 왜 그렇게 통치철학이 박약한 건가? 왜 개인적 고집으로 나라를 경영하려 하는가? 게다가 대운하에서 4대강 정비계획으로 교묘하게 피해가려는 이명박 대통령, 당신의 얄팍한 술수로 국민들을 기만하려 하는가?

후보자 시절 이명박 대통령은 존경하는 지도자로 UAE(아랍에미레이트)의 셰이크 무하마드 총리라고 답했다.(중앙일보 2007년 8월 6일) '개발지상론자'로서 서로 통한 모양인데, 4년 9개월의 남은 집권기간 동안 국가를 어떻게 끌고 갈지 눈에 훤하다.

끝으로, 쉽지 않은 양심고백을 한 김이태 연구원의 용기에 대해 깊은 경의를 표한다.

(예전에 발행했던 글을 조금 바꿔 다시 발행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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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이 가르치면 똑바로 알아 들어야지!   

2008. 5. 23. 1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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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를 제대한 후 복학하기 전까지 시간이 조금 남아서 나는 자동차 운전 면허나 따볼까 해서 강남 삼성동에 있던 어느 운전면허학원에 등록을 했다. 그때만 해도 삼성동은 개발이 덜 이루어져서 운전학원은 지금의 포스코 사거리 근처에 있었다. 그래도 강남이라서 그런지 다른 곳보다 학원비가 좀 비쌌던 걸로 기억되는데 친구와 같이 수강하느라 비싼 수강료를 감수할 수밖에 없었다.

나를 지도해 주던 사람은 짤막한 키에 머리가 조금 벗겨지고 배가 나온 남자였다. 기껏해야 30대 초반처럼 보였다. 난생 처음 운전대를 잡아 본 나는 기어를 어떻게 넣어야 하는지 브레이크와 엑셀레이터를 각각 어떤 강도로 밟아야 하는지 몰라서 처음부터 그 사람의 간담을 서늘케 했다. 언덕 위로 올라가서 잠시 정차 후 다시 출발할 때는 클러치를 너무 빨리 해제하는 바람에 시동이 꺼지고 뒤따라오던 다른 차와 부딪힐 뻔만 적도 몇번 있었다. 또 후진할 때 엑셀레이터를 깊게 밟아서 차가 휙 돌아가는 사태도 발생했었다. 왕초보로서 사고칠 껀 다 해 본 셈이다.

내가 그렇게 버벅거릴 수밖에 없었던 것은 덤벙거리는 나의 성격 탓이기도 했지만, 날 가르쳐주는 사람 때문이기도 했다. 그는 차에 올라타자 마자 '왜 그것도 못하냐, 제대로 못할 거라면 그만 두라'며 윽박지르기 일쑤였다. 가뜩이나 온 몸이 긴장 상태에 있는 내게 소리까지 벅벅 질러대니 잘 될 리가 만무했다. 반항심이 생겨서 옆에서 떠들거나 말거나 일부러 그사람이 가르친 것과 거꾸로 하는 오기도 부렸다.

처음에는 그사람의 독특한 지도법이려니 하고 꾹 참고 넘어 갔다. 내 돈 내고 그런 수모를 당하는 게 억울하지만 며칠만 참자고 수없이 다짐했다. 하지만 나는 결국 폭발하고 말았다. 그의 말이 발단이었다. 어디서 낮술을 한잔 걸쳤는지 그의 입에서는 시큼한 술냄새와 김치 냄새가 났다. 그는 나를 보더니 다짜고짜 "나이도 어리면서 어른이 이야기하면 잘 들어야지, 왜 못 알아 듣냐? 당신, 대학생인거 맞아?" 라며 연신 콧방귀를 뀌더니 빨리 차나 몰라며 턱짓을 했다.

'이젠 대놓고 반말을 하면서 인신공격까지?' 참아보려고 했지만 화가 머리 끝까지 난 나는 도저히 그와 같이 있을 수가 없었다. 생각 같아서는 그 얼굴을 향해 그동안의 한을 담아서 한 대 갈기고 싶었다. 내가 할 수 있었던 최상의 보복은 여러 차들이 꼬리를 물고 돌아다니는 트랙 한 가운데에 차를 그냥 세워두고 키를 뽑아서 멀리 던져버리는 것이었다. 지금 생각해도 그것은 참 멋진 보복이었다. 힐끗 뒤를 돌아보니 그사람은 차 지붕을 손으로 쾅쾅 내리치며 얼굴이 붉으락푸르락이었다. 나는 속으로 이제 당신 같은 사람이 볼 일 없다며 학원을 박차고 나왔다.

그리고 며칠 후, 필기시험은 무난하게 합격했지만 실기시험은 보기 좋게 떨어지고 말았다. 역시나 언덕이 문제였다. 당황한 탓에 클러치도 떼지 않은 채 엑셀레이터만 연신 밟아댔다. '유정식 씨, 불합격입니다. 사이드 채우고 내리세요!" 목소리가 매우 단호했다. 쿠션과 면장갑을 단단히 챙기며 대기하던 아줌마들은 수고했다며 위로의 말을 건넸다. 나는 그 후로 꽤 오랫동안 내 불합격의 모든 책임을 학원강사에게 돌리며 분한 마음을 달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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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사회적이든 개인적이든 매일 누군가를 가르치고 배우는 행위를 한다. 꼭 교사나 강사라야 가르칠 수 있는 건 아니다. 하다못해 거리에서 길을 묻는 사람에게 길을 가르쳐주는 일도 '지도'라 말할 수 있다. 만일 "100미터 가다가 우회전한 다음에 샛길로 50미터를 더 가세요."라고 말하면 듣는 사람은 아리송해 한다. "가다가 OO병원이 있는 사거리에서 우회전한 다음 XX마트가 나오는데, 그 맞은 편에 있어요"라고 말해야 금방 이해가 된다는 것쯤 다 알고 있다. 그러나 생각처럼 쉽지 않은 것이 다른 사람을 지도하고 가르치는 일이다.

이제 지나간 옛일이지만, 나는 가끔 그 일이 떠오를 때마다 다른 사람을 어떻게 가르치고 지도해야 하는지 생각한다. 그 학원강사처럼 극단적이지는 않더라도 내가 알고 있는 지식이나 노하우를 누군가에게 가르칠 때 상대방을 하대하고 비웃고 무시하지 않았는지 돌아보게 된다. 또는, 나만의 지적 유희에 취해서 상대방이 알아 듣건 말건 난해하고 현학적인 태도를 보이진 않았는지 반성하게 된다.

누군가를 가르치고 지도하는 일은 나를 낮추는 '겸손'에서 시작하며, 자신을 낮추어 상대방의 눈높이에 맞출 때 제대된 지도가 이루어진다. 지식과 스킬을 지니고 있다고 해서 지도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가르침의 9할은 겸손이다. 겸손해지기 위해 가장 먼저 해야 할 것은 자료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청자(聽者)가 누구인지 파악하는 일이다. 그래야 어떤 수준으로 자신을 낮춰야 하는지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가르침 = (1*지식) + (9*겸손)

부모가 아이를 가르칠 때 '이것도 모르냐'며 매를 든다면 우리는 아이를 탓하기보다 아이의 눈높이를 무시한 부모를 탓한다. 그렇듯이 지도를 받는 사람이 배운 바를 이해하지 못했거나 제대로 실행에 옮기지 못한다면 그 책임은 1차적으로 지도를 한 사람이 져야 한다.

아무리 뛰어난 아이디어나 지식도 상대방을 이해시킬 수 없다면 그저 책 속에나 존재하는 이론에 불구하다. 지적으로 뛰어난 사람들이 학문적 도취에 빠져 뭇사람의 이해능력을 비웃으며 더욱 난해한 이론의 벽을 쌓아가곤 하는데, 아인슈타인은 달랐다. 그가 발견한 '상대성 원리'는 우리가 우주를 바라보는 직관과 배치되는 주장을 하고 있다. 관찰자의 시각에 따라 측정 결과가 달라지고 시공간이 휘어졌다는 아인슈타인의 통찰을 오늘날의 사람들도 잘 이해하지 못한다.

그는 일반인들이 상대성 원리를 쉽게 배울 수 있도록 책을 썼는데 '상대성 : 특수이론과 일반이론'이란 책은 지금까지 상대성 원리의 입문서로 많이 읽히고 있다. 그는 자신의 의붓딸인 마르코트에게 이론을 가르쳐주면서 그녀가 정말 이해하는지 일일이 확인하는 방식으로 책을 썼다고 한다. 아인슈타인의 위대성이 더욱 빛나는 이유이다.

나는 가끔 운전학원의 그를 떠올리며 가르치는 자로서 내가 겸손하지 않았는지 돌아본다. 공자가 "세 사람이 길을 가면 반드시 나의 스승이 있으니, 그 중에 선한 자를 가려서 따르고, 그 선하지 못한 자를 가려서 자신의 잘못을 고쳐야 한다 (子曰, 三人行必有我師, 焉擇其善者而從之, 其不善者而改之)" 라고 했던가? 이제는 그를 '겸손이 가르침'의 시작임을 일깨워 준 악한 스승으로 여겨볼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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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희 회장의 천재론, 이제 폐기해야   

2008. 5. 22.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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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의 이건희 회장이 경영의 방향을 화두로 던지면 업계에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곤 하기 때문에 언론은 늘 그의 입을 주시한다. 이 책을 쓰고 있는 요즘에는 그가 던진 소위 ‘샌드위치론’이 인구에 회자되고 있다. 그만큼 그의 영향력은 지대하다.

1994년 공무원 대상 특강에서 “21세기는 1명의 천재가 1만 명을 먹여 살린다”라는 소위 ‘천재론’을 이야기한 그는 2002년 6월 사장단 회의에서 삼성의 ‘핵심인재경영 가속화’를 대대적으로 선언했다. 리더는 인재에 대해 욕심이 있어야 하며 핵심인재 확보를 위해서는 사장단이 직접 뛰어야 한다는 것이 그 요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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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던진 화두가 촉매가 되어 많은 기업에서 핵심인재 관리제도를 운영하고 있거나 도입을 준비 중이다. 마지막 방점을 찍듯이 핵심인재 관리로 성과주의가 완성된다고 믿는 모양이다. 하지만 모든 제도가 그러하듯 이 제도 역시 여러 가지 문제점을 양산하고 있는데, 수학의 논리를 적용해 보면 과연 핵심인재 관리제도가 꼭 필요한 것인지 회의가 든다.

우리 회사의 핵심인재는 얼마나 될까? 10%다, 15%다 의견이 분분하겠지만, 나는 알짜 핵심인재는 전체 구성원의 1% 정도에 불과하며, 아무리 높게 잡아도 5%를 넘지 않는다고 본다. 보수적(?)으로 생각해서 핵심인재의 비율을 5%라고 해보자.

조직 어딘가에 숨어있는 핵심인재를 발굴하려면 인사고과든, 업적평가든 여러 가지 방식의 평가 과정을 거쳐야 한다. 그 평가의 신뢰성을 95%라고 해보자. 즉, 평가를 통해 핵심인재임을 옳게 판별할 확률이 95%라는 말이다. 평가제도가 완벽하게 짜여 있더라고 운영 상의 문제가 항상 발생하기 때문에 사실 95%의 신뢰성도 꽤 높게 잡은 것이다.

반면, 핵심인재가 아닌데도 핵심인재로 잘못 판별할 확률을 5%라고 해보자. 이 확률 역시 평가가 완벽하게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에 발생하는 오류인데, 5%밖에 오류를 발생시키지 않는다는 말은 평가가 상당히 우수하다는 의미이다.

여기서 질문을 던지자. "어떤 사람이 핵심인재로 선발됐다면, 그가 진짜 핵심인재일 확률은 얼마일까?" 직관적으로는 95%에서 5%를 빼면 90%니까 그 정도 되지 않겠냐고 생각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정답은 90%보다 훨씬 작다.

전체직원수가 1000명이라고 하자. 그러면 그 중 진짜 핵심인재는 5%인 50명일 것이다. 하지만 평가를 거치지 않았기 때문에 아직 누가 핵심인재인지 모른다. 평가의 신뢰성이 95%이니까 50명 중 48명만 핵심인재로 발굴되고 2명은 소외를 당하고 만다. 또한  나머지 950명 중에서 5%인 48명이 핵심인재로 오인된다.

이제 질문에 답해 보자. 핵심인재로 선발된 어떤 사람이 '진짜' 핵심인재일 확률은  48 / (48+48) = 50% 밖에 안 된다. 홍길동이라는 친구가 핵심인재 그룹으로 선발됐다 하더라도 그가 '진짜' 핵심인재일 확률은 반반에 불과하다는 뜻이다. 평가가 상당히 우수하게(신뢰성 95%, 오류 확률 5%) 이루어진다 하더라도, 이 정도 밖에 안 된다. 만일 평가가 엉망으로 이루어진다면, 홍길동이 핵심인재일 확률은 급격히 떨어진다. 아래의 표를 참조하기 바란다.

핵심인재 비율 평가 신뢰성 오류 확률 홍길동이
핵심인재일 확률
5% 95% 5% 50%
5% 90% 10% 32%
5% 85% 15% 23%
5% 80% 20% 17%

선발된 핵심인재가 진짜 핵심인재일 확률을 높이려면, 평가의 신뢰성을 100%로 끌어 올리고 동시에, 핵심인재가 아닌데도 핵심인재로 잘못 판별할 확률을 0%로 만들면 된다. 이론적으로는 그렇지만, 모두가 알다시피 현실적으로 그렇게 되긴 매우 요원하다. 어쩔 수 없이 평가는 주관적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위에서 봤듯이, 핵심인재 관리제도는 논리적으로 매우 허점이 많은 제도이기 때문에 회사를 살리고 회사를 번영시킬 도깨비 방망이로 떠받드는 건 옳지 않다. 그리고 핵심인재 그룹에게 많은 혜택을 주는 것도 불합리하다. 그가 핵심인재일 확률은 아무리 좋게 생각해도 50%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 대신, 그들에게는 도전과 시련의 기회를 주어야 마땅하다. 왜냐하면 그가 진짜 핵심인재가 아닐지 모를 확률이 더 크기 때문이다. 만일 '보상' 중심의 핵심인재 관리제도라면, 당장 집어 던져야 함이 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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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식, 그가 그립다   

2008. 5. 21.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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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김현식을 듣고 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그의 앨범은 88년에 나온 4집이다. 그 앨범에 있는 노래들 중에 '언제나 그대 내 곁에', '여름밤의 꿈', '사랑할 수 없어', '그대 내 품에', '우리 처음 만난 날' 이란 노래를 제일 좋아한다.

비가 촉촉히 내리는 날에 그의 '비처럼 음악처럼'을 들으며 진한 커피를 마시면 어느 새 내 마음은 20대의 가난했던 시절로 돌아가곤 한다. 눈이 소복히 쌓인 풍경을 보며 그의 '한국사람'이란 하모니카 연주곡을 들으면 눈보라가 치는 황량한 벌판에 서 있는 듯이 가슴 속으로 냉랭한 바람 한줄기가 지나간다.

그는 내가 군대에 있을 때 죽었다. 그가 죽자 '내 사랑 내 곁에'란 노래가 대히트를 했다. 부끄럽지만 나는 군대에서 노래 잘 하는 축에 속하는 병졸이었다. 휴식 시간에 고참들은 심심풀이 삼아 나를 앞에 세우고 '노래 일발 장전'을 명령했다. 그때마다 꼭 김현식의 그 노래를 시키곤 했다. 병영 내에서 그 노래는 꽤나 유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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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목소리는 김현식과 결코 비슷하지 않다. 김현식의 거친 음성의 테너라면 나는 음이 높은 노래가 부담스러운 바리톤의 미성을 지녔다. 하지만 고참들은 왠지 미성으로 부르는 내 노래를 듣기 좋다고 말하곤 했다. 나는 달콤한 휴식시간을 반납하고 다른 병사들의 망중한을 위해 노래를 부르는 게 싫었다. 김현식이란 가수를 좋아하긴 했지만, 그때는 그가 밉기도 했다.

세월이 지나 다시 그의 노래를 편안한 마음으로 들어 본다. 사람이 떠나고 노래가 남았다. 노래가 남고 나의 옛날이 저 멀리 사라졌다. '내 사랑 내 곁에'를 따라 불러 보며 나는 별이 한가득 쏟아지던 포천의 하늘을 떠올린다. 언제쯤 지긋지긋한 이곳을 나가게 될까, 별을 헤아리는 마음으로 하루를 세고 또 하루를 세던 그때 그날들이 왜 그리워지는지 모르겠다.

그때보다 비록 세련되고 고급스러워진 일상이지만 그럴수록 굳은 살이 배기는 생활 속에서 때때로 허허로움을 느낄 수밖에 없는 이유는 내가 조금은 산다는 걸 알게 됐기 때문일까? 내가 뒤늦게 철이 들어가기 때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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