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처럼 예쁘신 나의 선생님   

2009. 5. 15. 1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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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서늘도 하여 뜰 앞에 나섰더니
서산 머리에 하늘은 구름을 벗어나고

산뜻한 초사흘 달이 별 함께 나오더라
달은 넘어가고 별만 서로 반짝인다

저 별은 뉘 별이며 내 별 또 어느게요
잠자코 홀로서서 별을 헤어 보노라


갑자기 이병기님의 '별'이라는 시가 생각난다. 까까머리 중학교 2학년 때 나는 합창단 단원이었다. 도내 합창단 대회에 나가기 위해서 방과 후와 휴일에 모여 연습을 했던 기억이 난다. 그 때 우리가 정한 곡목이 바로 이 노래, '별'이었다.

남자로만 구성된 합창단은 우리 팀이 유일했다. 무대에 올랐을 때 여학생들이 "남자들이 무슨 노래를...야, 쟤네들은 상대가 안 되겠네" 하면서 약간 비아냥거렸던 것 같다. 그게 좀 고까와서 더 열심히 불렀는지도 모른다. 실력 때문인지, 오기(?) 때문인지 다행히 결과가 좋아서 우리 팀이 1등을 했다. 우리를 비웃던 여학생들에게 좀 뻐기고 싶었다.

그 때 우리를 가르쳐 주셨던 음악선생님과 피아노 반주를 맡아 주셨던 도덕선생님은 지금쯤 어디에 계실까? 그때 그 분들이 20대 중반 정도였으니까, 지금쯤은 아마 연세가 50세가 넘으셨을 게다. 음악선생님은 같은 학교에 근무하시던 체육선생님과 결혼을 했더랬다. 꽤나 애석해 했던 친구 녀석들이 좀 있었다.

그 시절의 학동들이 다 그랬겠지만, 나 역시 피아노 잘 치시고 손가락이 예쁜 도덕 선생님을 좋아했었다. 박은혜 선생님, 그 분은 읍내에 자취를 하고 계셨는데, 친구들과 같이 선생님을 위해 연탄을 나르던 기억이 난다.

친구 녀석 중에 조심성 모르는 한 놈이 노크도 없이 "선생님, 저희 왔어요" 하며 방문을 열었을 때, 선생님은 옷을 갈아 입으려고 치맛단을 막 내리려는 참이었다. 일순간 선생님과 우리는 얼어 붙었다. 어색함을 깨려는 듯 선생님은 "너희들 왔구나?"라며 반갑게 맞이했지만, 우리는 그 조심성 없는 놈에게 알밤을 먹이고 있었다.

도와 드린다고 했지만, 그 당시 귀했던 연탄을 여러 장 깨먹어 버리는 센스(?)를 발휘한 우리에게 선생님은 짜장면을 사주시며 소녀처럼 고마워 하셨다. 안경 뒤로 반짝거리는 눈이 별처럼 예쁜 분이셨다. 그 모습이 아주 그립다.

요즘 좀 바쁘다. 바쁘니까 시간이 빨리 간다. 동시에 옛날로부터 빨리 멀어지는 느낌이다. 이런 이야기를 언젠가 자서전으로 남기고 싶다. 내 삶이 아주 지루하지 않다면 말이다.


* 작년에 올린 글을 재발행 합니다. 양해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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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많던 포로들은 어디로 갔을까?   

2009. 5. 14. 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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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왕 거제도에 갔으니, 거제도 포로 수용소를 봐야겠다 싶어서 올라오는 길에 들렀다.
아우슈비츠와 같은 분위기를 기대했다면 실망스럽다.
조경이 잘 된, '근린공원'의 분위기가 강하다.
거제도 수용소는 학살과 인종 청소를 목적으로 세워진 곳이 아니라 그럴까?

그 당시의 구조물 몇개는 남았으리라 기대했는데, 애석하게도,
아니 예상대로(?) 하나도 보지 못했다.
밀랍으로 만들어진 인형과 발포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진 구조물 모습에서
급히 만든 기획의 냄새가 물씬 났다.
나름 애쓴 듯 하지만 관람객의 눈과 귀를 확 잡아끄는 아이템이 없었다.

더욱 기가 막힌 일은 수용소 위를 가로지르며 건설 중인 고가도로였다.
역사적인 장소를 의미있게 보존하지는 못할 망정 적극적으로 훼손하는 모습이 안타까웠다.
앞으로 쌩쌩거리며 달릴(나도 그 위를 달릴지 모르지만) 광경과 굉음을 생각하면...

스피커에서 내내 울리던 군가 소리, "힘차게 전진하는 우리 대한민국이다...."
아, 내가 어느 부대로 면회 온 듯한 느낌...

우리나라 명승지 관리, 왠지 2%가 부족한 디테일,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호텔 지배인이 거제도에서 가볼 곳을 일러 주면서, "사실 일본 사람들, 자기네 나라에 더 좋은 게 있는데 거제도에 뭐하러 오겠어요?" 란다.

일본사람들이 거제도에 오면 1018번 지방도로에서 석양을 바라보더라, 는 말 끝에 나온 진심이었다.
씁쓸하지만, 동감 가는 말이었다.

"여기 또 오게 될까?"

매번 이런 의문을 뒤로 한다.

포로수용소 입구

탱크전시관엔 탱크가 없다.

포로수용소의 생활상

북한군을 저지하는 군인들

폭파된 한강다리를 건너는 사람들

송환에 쓰인 기차는 아닌듯...

군대에 다시 온 듯한 착각

무심한 탱크



[거제도 여행 - 다른 글 읽기]
아름답지만 어지러운 섬, 소매물도
외롭지 않은 섬, 외도에 다녀오다
거제도 이모저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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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과 함께 한 투철한 실험정신?   

2009. 5. 13. 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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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집에서 혼자 점심을 먹을 일이 생겼다. 혼자 먹는 밥이 적적하여 뉴스나 볼 요량으로 평소엔 잘 안 보는 TV를 틀었다. 틀고 보니 채널이 EBS였다. 아들이 가끔 EBS에서 방송하는 어린이 프로그램을 좋아하기 때문이리라.

역시 EBS답게 여러 명이 어린이들이 나와서 놀이 비슷한 활동을 하고 있었다. 그저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오락 프로그램이겠거니 짐작을 하고 YTN으로 채널을 옮기려고 하는 찰나, 화면에 뜨는 단어가 심상치 않아 보였다.

도덕성

화면 하단에 뜬 프로그램 타이틀을 보니, '다큐 프라임-아이의 사생활-제2부 도덕성'이었다. 도덕성의 근간을 이루는 요소들이 무엇인지 다양한 심리학적 실험으로 알아보는 프로그램이었다.

볼수록 빠져 드는 프로그램이었다. 도덕성이 높은 어린이와 평균인 어린이들을 구분하여 각각 어떤 행동 특성을 보이는지 비교하는 모습이 흥미로웠다. 프로그램은 도덕성과 관련하여 다음과 같은 주장을 내놓는다.(프로그램 중간부터 봐서 그 앞의 내용은 모르겠다.)

첫째, "도덕성은 타인의 입장을 인지하면서 발달한다"
둘째, "도덕성이 높은 아이는 자제력이 높다"
셋째, "도덕성은 권위, 강압, 경쟁 압박 등에 의해 손상되기 쉽다"

첫번째 주장을 위해, 프로그램은 4살 짜리 아이와 7살 짜리 아이를 각각 등장시켜서 비교실험을 행했다. 다음과 같이 뿡뿡이 인형이 보이게 아이를 앉히고 뿡뿡이의 등 뒤에 곰 인형을 앉힌다.

아이-->    <---뿡뿡이       <-- 곰

선생님이 묻는다.         "지금 뿡뿡이의 무엇이 보이니?"
아이가 답한다.            "뿡뿡이 눈이요."
선생님이 또 묻는다.     "그러면, 곰 인형은 뿡뿡이의 어디를 보고 있을까?"
아이가 답한다.            "뿡뿡이 눈이요."

4살 짜리 아이는 곰 인형도 자신과 똑같은 모습을 바라본다고 생각한다. 타인의 입장을 알아차리기엔 아직 어리기 때문이다. 반면 7살 짜리 아이는 "뿡뿡이 등이요" 혹은 "뿡뿡이 꼬리요"라며 곰 인형의 관점을 말할 줄 안다. 타인의 관점과 입장을 이해하는 능력이 도덕성의 출발이라고, 그 능력은 자라면서 획득된다고 프로그램의 화자는 말한다.

"흥미로운 실험인 걸?"  나는 저녁 때 유치원에서 돌아온 아들에게 프로그램에서 했던 실험을 재현해 보았다. 자신이 실험 대상이 된 줄 모르고 아들은 아빠가 재미난 게임을 하자고 생각했는지 연신 싱글벙글이다. 프로그램처럼 두 개의 인형을 위치시킨 다음에 동일한 질문을 던지니, 아들은 타인의 관점에서 대답을 했다. 나이가 우리나라 나이로 7살이니 당연한 답변이었지만 "야, 우리 아들 다 컸네"라며 볼을 살짝 꼬집어 주었다.

테스트를 더 해보고 싶었다. 그래서 오른쪽, 왼쪽을 맞히는 게임을 해보면 어떨까? 아들과 나는 서로 마주 앉았다. 그런 다음 이렇게 게임을 진행했다.

나      :   "너의 오른손을 들어봐"
아들   :  (오른손을 번쩍 든다)
나      :   "너의 왼손을 들어봐"
아들   :  (역시 왼손을 번쩍 든다)
나      :   "아빠의 오른손이 무엇이게?"
아들   :  (0.5초 정도 주저하다가 내 오른손을 정확히 짚는다)
나      :   "딩동뎅~~"

이번엔 좀 어렵게 해봤다. 내 두 손으로 "X"자를 만든 다음에 무작위적으로 "아빠의 오른손(왼손)이 무엇이게?"라 질문했다. 아들은 상당히 재미있어 하면서 척척 맞혔다. 팔을 꽈배기처럼 꼬는 나의 고난도(?) 자세에도 손이 어느 쪽 팔에서 시작됐는지 죽 살펴보면서 잘도 맞혔다. (팔을 꼬는 자세, 생각보다 무지 어렵다. -_-; )

내 기억으로는 불과 1~2년 전만 해도 타인의 오른쪽/왼쪽을 구분하지 못했는데 "이제 너의 도덕성도 쑥쑥 자라는 중이구나!" 팔불출 아빠처럼 나는 소박하게 기뻤다.

프로그램 말미에 어른들의 행동을 무의식적으로 따라한다는 실험 결과를 보았다. 어른은 아이들의 거울이란 말을 실감했다. 내가 도덕적으로 행동해야 내 아들의 도덕성도 건강해지리라 생각하니 꽤나 반성이 된다. 조심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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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을 믿어야 할까, 말아야 할까?   

2009. 5. 12. 1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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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새 경제의 불확실성 때문에 시나리오 플래닝이나 시나리오 경영에 관심이 높습니다. 위기경영의 일환으로 시나리오 플래닝을 도입하겠다는 기업도 많아졌지요. 헌데 시나리오 플래닝을 긴축경영이나 컨틴전시 플래닝으로 잘못 이해하는 경우가 너무 많습니다.

시나리오 플래닝의 개념을 올바르게 전달하기 위해 간략한 예시로 설명 드리고자 합니다.

프랑스 수학자 중에 파스칼이란 사람이 있습니다. 이 사람은 뛰어난 수학적 업적을 남긴 사람인데요, 그는 의사결정을 위해 시나리오 플래닝을 시도한 최초의 유명인입니다. 

수학과 과학에 천부적인 능력을 보였지만, 사생활은 문란하고 방탕했다고 합니다. 천재적인 능력이 방탕한 생활 때문에 제대로 발현되지 못한다고 생각한 친구들이 파스칼에게 교회를 다니라고 여러 차례 충고했다고 합니다. 교회를 다니면 파스칼이 성실하게 생활할 거라 기대했기 때문이죠.

친구들의 조언을 듣고 파스칼은 고민을 했습니다. ‘신을 믿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그는 수학의 천재답게 논리적인 방법으로 이 고민을 해결했습니다. 그가 사용한 방법이 바로 시나리오 플래닝이었습니다.

파스칼이 택할 수 있는 ‘전략’은 2가지입니다. ‘신을 믿는’ 전략과 ‘신을 믿지 않는’ 전략이죠. 그가 둘 중 무엇을 택할 것인가의 문제는 그를 둘러싼 불확실성을 논하지 않고서는 해결되지 않습니다. 그 불확실성이란 바로 ‘신이 존재하는가’ 아니면 ‘신은 존재하지 않는가’ 이었습니다. 

다시 말해, 신의 존재 여부가 그가 믿음을 선택하느냐 마느냐에 딸린 불확실성이었죠. 파스칼은 이러한 불확실성에 따라 2개의 시나리오를 수립했습니다. 첫 번째는 '신이 존재'하는 시나리오고, 두 번째는 '신이 존재하지 않는' 시나리오입니다.

파스칼은 이러한 시나리오 하에서 어떤 전략을 선택해야 하는지 따져보기로 했습니다. 그는 다음과 같은 표를 그려서 시나리오와 전략 간의 적합도를 평가하고자 했습니다.

 
 시나리오 1
 "신이 존재한다"
 시나리오 2
 "신은 없다"
 신을 믿는다    
 신을 믿지 않는다    

파스칼은 이렇게 생각하면서 평가를 내렸습니다. "먼저, 신이 존재하는 시나리오에서 신을 믿는다면 나에게 주어지는 가치는 얼마일까? 그 가치는 천국에서 느끼는 기쁨과 행복이니까 무한대(∞)이겠지? 반대로, 신을 믿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까? 신을 부정한 죄로 지옥에서 모진 형벌을 끊임없이 받아야 하니까 그 가치는 마이너스 무한대(-∞)일거야”

그는 두 번째 시나리오인 ‘신은 없다’에 대해서도 생각했습니다. “이 시나리오에서 내가 신을 믿는다면 난 무슨 가치를 얻게 될까? 존재하지도 않는 신을 믿느라 교회를 다녀야 하는 '생고생'을 했으므로 그 가치는 마이너스일까? 아니면 교회를 다니면서 마음의 안식과 평온을 얻었으니 플러스일까? 친구들이 교회 다니는 게 도움이 된다고 하나같이 말하니 믿어보지, 뭐. 100 정도의 가치라고 가정해 보자. 반대로, 신을 믿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 난 아무것도 얻거나 잃을 게 없겠지. 그러니까 그때의 가치는 0이야.” 

그는 평가를 끝내고 다음과 같이 표를 완성했습니다.

 
 시나리오 1
 "신이 존재한다"
 시나리오 2
 "신은 없다"
   신을 믿는다                 100
   신을 믿지 않는다          -          0

파스칼은 이 표를 보면서 어떤 전략을 택할지 살펴봤는데요, 여러분도 아시겠지만, ‘신을 믿는’ 전략이 최적이자 최고의 전략입니다. 파스칼은 이렇게 판단해서 '신이 존재하든 그렇지 않든 나는 신을 믿겠다'라고 친구들에게 선언한다. 이 유명한 일화를 '파스칼의 추론'이라고 합니다.

파스칼의 일화는 여러분이 지금까지 학습한 시나리오 플래닝의 과정을 압축적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불확실한 상황에서 최적의 전략을 선택해야 할 때 유용한 방법이 시나리오 플래닝이란 것을 시사하고 있습니다.

* 추신 : 이 글은 시나리오 플래닝의 이해를 목적으로 쓰였습니다. 무신론이나 기독교(신,구교 모두)와는 관련이 없음을 양지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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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회만 보고 프로야구 승리팀을 예측하면?   

2009. 5. 11.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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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야구 경기를 보는 동안(보기 전이 아님) 어느 팀이 승리할 지 알아맞히려면 어떤 정보들이 필요할까? 팀의 승률, 팀 방어율, 팀 타율 등 팀 성적은 물론이고 선발투수의 방어률, 피안타율, 타자의 출루율, 혹은 그날의 날씨, 홈경기 여부 등 수많은 정보들을 따져봐야 승리팀을 알 수 있을까?

물론 충분한 크기의 다양한(그리고 좀 복잡한) 데이터가 주어지고 분석만 잘 한다면 (완벽하지는 않지만) 근사한 예측 적중률을 보이는 모델을 만들 수 있다. 그러나 그렇게 하려면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려서 경기가 이미 끝나버리고 만다.

해서, 나는 이런 가설을 세웠다.

4회까지의 점수만 보면, 그 경기의 승리팀을 70% 적중률로 예측할 수 있다.

이 가설의 아이디어는 게르츠 기거렌처의 '생각이 직관에 묻다'에서 얻었다. 그 책은 농구 경기에서 팀별 승률과 전반전 스코어만 보면 승리팀을 78%의 적중률로 맞힐 수 있다는 결과를 소개한다.

여러분이 A팀과 B팀 간의 야구 경기를 4회까지만 관전하고 그 경기의 승리팀이 어디인지 알아맞힌다면, 그 적중율은 얼마나 될까? 50%, 아니면 60%? 시간이 없어서 4회까지만 경기를 봐야 한다면, 이 가설의 증명 여부가 도움이 될지 모른다.

가설을 증명하기 위해 직접 실험을 해보기로 했다. 실험의 순서는 다음과 같다.

1. 2009년 4월 4일부터 5월 10일까지 치러진 124개의 경기 결과를 확보했다.

2. 각 경기의 4회까지 점수 결과를 일일이 수집했다 (좀 힘들었다. -_-).

3. 4회까지의 점수가 앞서는 팀이 승리팀이 되리라 예측했다.

4. 만일 4회까지의 점수가 동점이면, 2008년의 승률이 높은 팀이 승리팀이 되리라 예측했다.

[실험 결과]
엑셀 파일에 이와 같은 로직을 담아 시뮬레이션해 보니, 71.8%라는 적중률이 도출됐다(비긴 경기를 감안하면 77% 정도가 된다). 가설보다 높은 수치다. 이 결과를 바꿔 생각하면, 5회 이후에 역전이 짐작만큼 많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의미로 해석된다(아래의 엑셀 파일 참조). '우리팀이 역전하기를' 고대하지만, 실망스럽게도 역전할 확률은 기껏해야 30%정도 밖에 되지 않는다.


이 실험은 시즌 초반에 해당하는 경기에만 적용했는데, 시즌 마지막 경기까지 적용한다면 적중률이 다소 변하리라 예상된다.


불확실성이 큰 상황에서 의사결정 내릴 때마다 정보가 부족하기 일쑤다. 좀더 많은 정보, 지식, 방법론을 적용하면 예측의 정확성이 커질 텐데, 그러지 못해서 안타까워 하는 경우가 많다. "아, 다양한 데이터를 충분히 확보한다면 좋겠는데..."라며 탄식한다. 많은 정보가 예측의 적중률 향상시킨다고 믿는다.

그러나, 적은 정보만 가지고도 꽤 근사한 적중률로 예측이 가능한 경우가 의외로 많다. 많은 데이터와 정보를 가진다고 해서 예측의 적중률을 높이지는 못한다. 추가되는 데이터의 '한계(Marginal)예측적중률'은 '한계효용'처럼 급격히 체감된다. 100%에 가까운 적중율을 얻으려면 거의 무한대의 정보가 필요할지도 모른다.

불확실하고 복잡한 시대, 간단한 판단법으로 쉽게 살아도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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