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가 예측은 동전 던지기와 같다   

2010. 1. 18. 2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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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가 여러분에게 다가와서 이렇게 은밀하게 제안한다고 생각해 보세요.

동전을 던져 앞면이 나오면 1만원을 따고, 뒷면이 나오면 1만원을 잃는 게임을 해보지 않겠소?

여러분이 1만원을 가지고 이 사람이 제안한 게임에 참여한다면, 한 차례의 게임에서 여러분이 기대할 수 있는 돈은 0 입니다.  왜냐하면  기대값이 (1만원) * (1/2) + (-1만원) * (1/2) = 0 ... 이기 때문이죠.

만약 동전 던지기 게임을 1000 번 시행한다면 여러분 수중에 얼마의 돈이 남게 될까요? 게임을 한번 할 때의 기대값이 0 이니까, 1000 번 시행한 후의 기대값도 0 일까요? 매번 동전을 던지는 게임은 서로 '독립적이고 배타적'이므로('베르누이 시행'이라고 부름), 1000 번 던지고 난 뒤의 기대값 역시 0 이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또한 동전을 1000 번쯤 던지면 앞면이 나온 횟수와 뒷면이 나온 횟수가 대략 500 : 500 이 될 것이기 때문에 1000회가 다 끝나면 주머니가 텅 빌 거라 생각할지도 모르겠네요. 그러나 실제로 실험을 해보면, 생각과는 다른 결과를 얻습니다.

실험을 위해 Excel의 Randbetween() 함수를 통해 동전 던지기 게임을 시뮬레이션해 봤습니다. 그랬더니, 많은 돈을 따는 경우, 잃다가 따는 경우, 계속해서 잃는 바람에 파산에 이르는 경우 등 다양한 패턴이 나왔습니다. 아래의 Excel 파일을 다운로드 받으면, 아래의 그림들과 똑같지는 않지만 비슷한 모습의 그래프를 얻을 수 있습니다.(빈 셀에 가서 Del 키를 누르면, 그래프가 리프레쉬됩니다.)



첫번째 그림은 대략 300 ~ 400회까지 50~60만원까지 재산이 불어나다가 그 이후에는 계속 잃기 시작해서 700회가 넘어가면 빈털털이가 되는 패턴입니다. 여러분이 700회까지 온 상황이라면 '60만원일 때 게임을 그만 둘 걸'이라고 후회하겠지요.


두번째 그림은 아주 운이 좋은 사람의 그래프입니다. 등락이 있긴 하지만, 전체적으로 재산이 증가해서 60만원 선까지 이르는 경우입니다. 모든 사람이 꿈꾸는 그래프죠.


세번째 그림은 대단히 운이 없는 사람의 그래프입니다. 초기의 몇 번을 제외하고는 마이너스입니다. 아마 이 사람은 게임을 계속 진행하기 위해 다른 사람에게서 빚을 끌어다 썼을 겁니다. 이런 계좌를 주식에서는 깡통계좌라 부르나요?


이 그림은 800회까지는 0 주변을 왔다 갔다하는 수익을 보이다가 900회가 되면 40만원 선까지 재산이 증가하는 '대기만성'형 그래프입니다. 1000 회까지 기다린 보람이 있군요.


마지막 그림은 오르막과 내리막을 걷다가 1000 회에 이르면 30만원 선까지 재산이 느는 모양이군요. -20만원까지 떨어졌을 때 게임을 중단하지 않고 이어 간 보람이 있습니다.


1000 번의 게임을 한 후에 주머니에 남는 돈이 '0' 이 되는 경우가 흔하지 않는 이유는 동전의 앞면과 뒷면이 골고루 나오지 않고 앞면이나 뒷면이 연속해서 나오는 현상 때문입니다. 계속해서 돈을 따거나, 반대로 계속 돈을 잃는 상황이 생각보다 많이 나온다는 것이죠. 이와 같은 클러스터링 효과는 지난 번 글('미네르바의 예측력을 믿어야 할까')에서 밝힌 바 있습니다.

그런데 어디서 이런 모양의 그래프들을 본 적이 없나요? 매일매일 시시각각 변하는 주가의 등락 그래프와 닮았습니다. 위의 그래프들을 각각 개별 회사의 주가 변동이라고 이야기해도 믿을 정도로 비슷합니다. 그렇다면 주가의 움직임은 동전 던지기처럼 무작위(random)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이 질문에 Yes라고 대답하는 사람들이 바로 '랜덤 워크(Random Walk) 가설'을 주장하는 자들입니다. 그들은 주가의 등락은 무작위하게 변하고 특별한 원인을 잡아내기가 불가능하다고 말합니다. 랜텀 워크 가설은 '효율적 시장 가설'의 일종인데, 이것과 이론적인 대척점에 있는 '펀더멘탈 투자 이론'에서는 시장 정보나 기업의 실적이 주가를 결정한다고 가정합니다. 또 다른 대척점에 놓인 '기술적 분석 이론'은 주가 등락에 보이지 않는 패턴을 잡아내려고 하지요. 

하지만, 랜덤 워크 주장자들은 주가는 동전 던지기와 같은 무작위성에 기반을 둔다고 주장합니다. 어제의 주가와 오늘의 주가는 전혀 관련이 없는 '독립적이고 배타적'이라고 가정합니다. 주가가 도박과 다를 바 없다는 것이죠.

무엇이 실제의 주가 변동을 옳게 설명하는 가설인지 의견이 분분하지만(아마 인류가 멸망하는 날까지 논쟁은 계속되겠지만), 100%는 아니더라도 주가의 랜덤 워크 경향이 어느 정도 존재한다는 말은 틀리지 않아 보입니다. 역사적으로 주식 시장의 폭락을 가져온 대표적 사건들(1987년 블랙 먼데이, 2000년의 닷컴 붕괴, 2007년의 서브 프라임 사태 등)을 떠올려 보십시오. 

지나고 나면 특별한 원인과 패턴이 존재하는 것 같지만(그래서 사후에 경제분석가들이 열심히 분석기사를 쏟아내지만), 사전에 그 사건들을 예측하지 못했다는 것은 랜덤 워크 효과를 보여주는 단적인 증거가 아닐까요?

저는 주식 투자를 한번도 해본 적이 없습니다. 그래서 이런 글을 쓸 자격이 없을지는 모르지만, 시장의 불확실성을 어떻게든 이겨내고 예측하려는 노력은 부질 없다는 생각을 평소에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차라리 동전을 던져서 주식 투자를 하는 것이 낫다고 믿습니다. 물론 저와 생각이 다른 분들도 있겠죠.

주식의 움직임에 대해 '이렇다'라고 분명히 말하는 자가 있다면 그는 사람이 아니라 신입니다. 우리는 결코 신이 아니니 불확실성을 이겨내려는 오만을 벗고 겸손해져야 합니다. 그것이 동전 던지기 게임이 전하는 단 하나의 메시지가 아닐까요?

(*참고도서 : '지하철과 코코넛', '머니 해킹', '춤추는 술고래의 수학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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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일이 같을 확률은 의외로 크다   

2010. 1. 17. 2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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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트위터에 글 하나를 올렸는데, 몇몇 분이 그 이유를 궁금해 하셔서 블로그를 통해 상세하게 설명하고자 합니다. 트위터 특성상 긴 글로 설명하는 데 한계가 있기 때문이죠. 



트윗에 올린 문제의(?) 글은 이것이었습니다. 실제 트윗의 내용을 보완했습니다.

"무작위로 뽑은 60명의 사람들 중에서 생일이 같은 사람들이 최소한 1쌍이라도 있을 확률은 얼마일까? 답은 거의 100% 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 문제의 답을 25% 정도 되리라 답합니다. 답이 100%에 가깝다고 이야기하면 놀라거나 말이 안 되는 소리라고 일축하지요. 1년은 365일이고, 60 이란 숫자는 고작 365의 '6분의 1'도 안되니까, 확률이 100%가 나올 리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아마 아는 분들도 있겠지만, 확률이 거의 100%인 이유를 증명해 보겠습니다. 위의 문제는 "무작위로 뽑은 60명의 생일이 모두 다를 확률은 얼마일까?"란 질문으로 바꿀 수 있습니다. 이 질문의 답을 1에서 빼면 원래 문제의 답을 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생일이 모두 다른 사람이 선택되도록 하려면, 이렇게 하면 됩니다. A라는 사람이 한 명 있습니다. A와 생일이 다른 B라는 사람이 선택될 확률은 364/365 입니다. 그리고 A와 B 모두와 생일이 다른 C라는 사람이 선택될 확률은 363/365 입니다. 이렇게 모두 60명의 사람을 모으면 되겠죠. 

확률의 곱셉법칙(사건들이 동시에 일어날 확률은 개별 사건의 확률을 곱하면 된다)에 의하면, 60명 모두 생일이 다를 확률은 아래와 같은 식으로 나타납니다. (1년이 366일인 윤년은 고려하지 않기로 합니다.)

1  *  364/365  *  363/365  *  362/365 *  ......... * 306/365

계산해 보면 나오겠지만, 이 식의 답은 0.0059 입니다. 따라서 원래 문제(60명 중 생일이 같은 사람이 최소한 1쌍 이상 존재)의 확률은 1에서 0.0059를 뺀 0.9941 입니다. 거의 100%에 가까운 값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직감으로 내놓은 25%와는 큰 차이가 납니다.

이 확률 문제에서 우리가 깨달을 시사점은 3가지 입니다. 첫째, 인간의 직감은 확률에 대해 그리 능숙하지 못합니다. 둘째, 그렇기 때문에 확률 문제를 직감으로 접근하면 안 되겠죠. 셋째, 확률에 대한 우리의 약점을 역이용하여 직감 대신에 명철하게 판단한다면 남들과 구별되는, 소위 '엣지(Edge)'를 가질 수 있습니다.

우리를 골탕 먹이긴 하지만, 알면 알수록 확률은 참 재미있고 오묘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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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가에 이의 있습니다!"   

2010. 1. 15. 1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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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적인 인사평가 결과가 나오고 연봉 조정, 승진 및 이동 발령 등의 후속조치가 일어나기 전에 반드시 거쳐야 할 과정이 이의제기 프로세스입니다. 이의제기제도(Appeal Process)란 피평가자 본인이 최종적으로 부여 받은 평가등급이 본인이 생각하는 바와 다르게 나오거나, 충분한 단계를 밟아 평가 프로세스가 진행되지 못했다고 판단될 경우, 공식적으로 이의를 제기함으로써 등급의 조정을 신청하여 구제 받을 수 있는 제도를 말합니다.


직원들이 평가에 대하여 불만이 많거나 평가결과를 납득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면, 평가제도 자체보다는 평가 운영에 문제가 있는지 먼저 살펴야 합니다. 보통 평가결과에 대한 피드백이 없다든지, 이의제기제도가 있긴 하지만 그것이 유명무실하다면 구성원들이 갖는 평가에 대한 불만은 오히려 심화됩니다.

이의제기제도를 ‘유명무실하지 않게’, 그리고 실질적으로 운영하려면 다음의 몇 가지 주의사항을 유념하기 바랍니다.

첫째, 이의신청이 결재라인을 타고 올라오게 하지 말아야 합니다. 몇몇 회사들은 이의신청양식에 직속상사나 해당 사업부의 임원 결재란을 포함시키고 있습니다. 아마도 이의신청의 쇄도를 염려하거나, 해당 부서 및 사업부의 잘못이 바깥으로 알려지는 것을 꺼려하기 때문에 만들어진 조치라고 생각됩니다. 그러나 결재란 때문에 자유롭고 소신 있는 이의신청이 실질적으로 어려워집니다. 이의신청을 하고 싶어도 상사 눈치를 봐야 하고 야단 맞을 각오를 해야 하기 때문이죠.

이의신청은 곧장 인사부서로 올라오게 만들어야 합니다. 이렇게 해도 무차별적인 이의신청은 실제로 발생하지 않으니 굳이 걱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이의신청 한다는 것 자체가 피평가자의 용기를 필요로 하는 것이고, 그런 용기는 만용이 아닌 다음에야 정당한 근거를 바탕으로 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직원들은 결코 어린 아이가 아님을 기억하기 바랍니다.

둘째, 명확한 근거를 첨부하도록 요구해야 합니다. 이의제기제도는 불만을 들어주기 위한 '소원수리'가 아닙니다. 이의신청서에는 반드시 ‘이의 내용’을 증빙할 수 있는 근거자료가 있어야 합니다. 특별한 양식이 아니라도 좋습니다. 피평가자가 1년 동안 역량개발과 MBO 목표 달성을 위해 노력한 사실이 기록되어 있으면 충분합니다.

만약 피평가자가 구체적이면서도 객관적인 증빙자료를 제출하지 못하고, 게다가 면담할 때 구두로도 이의의 근거를 확실히 보여주지 못한다면, 인사부서의 직권으로 이의신청을 반려할 수 있습니다. 명확한 이의 근거를 마련하고 이의심사시 마찰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라도, 평소에 피평가자와 평가자가 각각 일정한 포맷의 ‘성과일지’를 쓰도록 권장해야겠죠.

셋째, 이의를 수용할 경우 타직원들에게 피해가 가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이의신청을 받아들여 신청자의 평가점수나 평가등급을 조정해 주었다면, 평가서열 상의 변화가 생길 가능성이 있습니다. 상대평가를 통한 평가등급별 인원 배분율을 적용하는 회사라면, 이의가 수용되어 A등급에서 S등급으로 올라갈 경우 누군가가 S등급에서 A등급으로 내려와야 하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지요.

이럴 경우, 평가등급별 인원 배분율을 어기더라도 둘 다 S등급을 주는 것이 좋겠죠. S등급인 줄 알았다가 이의신청자 때문에 A등급으로 내려앉았다면 평가의 납득성에 큰 불만을 가지게 됩니다. 또한 직원들의 화합도 깨지기 쉽겠죠. 물론 처음부터 이 같은 상황이 벌어지지 않도록 평가와 이의심사를 최대한 철저하고 공정하게 실시하는 것이 기본입니다.

아래의 그림은 일반적인 이의제기 프로세스이니 참고하기 바랍니다.


이의제기제도는 마련돼야 하지만 가능한 한 운영되지 않는 것이 좋겠죠. 그렇다고 아예 이의를 제기하지 못하도록 '눈치를 주면' 안되겠죠. ^^ 평가 시즌은 평가자나 피평가자 모두에게 힘든 시기입니다. 아무쪼록 원만하게 합의하여 조직의 화합이 깨지는 일이 없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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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더 바람직한 '인력계획'을 위해   

2010. 1. 14. 1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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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어도 1년에 한 번 정도는 인력계획을 수립하려고 인사팀(혹은 경영기획팀)이 분주해지곤 합니다. 이때 우리는 보통 그림 1과 같은 절차와 방법에 따라 인력계획을 수립하곤 합니다. 즉, 요구되는 적정인력규모(=수요)를 파악하고 확보가능한 인력(=공급)을 규명합니다. 그리고 이 둘의 차이(=인력의 과부족)를 산출해 내어 인력수급을 위한 기초자료로 활용합니다.

 

이러한 전통적인 인력계획모델은 아직까지 자주 쓰이지만 ‘현재시점’과 ‘미래시점’ 사이에 인력상 아무런 변화가 없을 경우에만 완벽히 들어맞는다는 단점이 있습니다. 현재시점의 인력공급과 미래시점의 인력수요를 비교하는 것은 의미가 없지요. 왜냐하면, 채용, 승진 및 이동, 자진퇴직 또는 강제퇴출 등 인력에 영향을 미치는 사건들이 ‘현재시점’과 ‘미래시점’ 사이에서 꾸준히, 그리고 예상치 못하게 발생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정확하게 인력의 과부족으로 파악하려면 서로 동일한 시점에서 인력의 공급과 수요를 비교해야 합니다. 그림 2는 바람직한 인력계획모델을 보여주고 있다. 여기서의 관건은 미래시점의 인력공급을 구하는 것입니다. 먼저 인력에 관련된 여러 이벤트 중에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것이 무엇인지 파악해야 합니다. 통제 불가능한 이벤트로 대표적인 것은 다음과 같습니다.

자발적인 퇴사
정상적인 정년퇴직
연공서열 기반의 승진
이미 실행이 시작된 채용계획

통제 불가능한 이벤트 각각에 대해 과거기록 분석과 논리적인 근거를 통해 가정을 세웁니다. 이런 가정을 통해 미래시점의 인력공급을 구하고, 이를 미래시점의 인력수요와 비교하여 인력의 과부족을 구하는 것이 바람직하죠.
 


그런 다음, 미래시점에 발생하게 될 인력의 과부족 현상을 해결하기 위한 조치를 취해야 하는데, 이때는 인력에 관한 이벤트 중에 '통제 가능한' 이벤트를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통제 가능한 이벤트란, 인력의 과부족 현상을 줄이기 위해 쓰이는 조치로서, 주로 다음과 같은 사항을 말합니다.

채용
승진
이동 및 재배치
인력의 퇴출(정리해고, 조기퇴직 등)

인력계획을 수립할 때에는 항상 동일한 시점을 비교하여 인력의 과부족을 구해야 합니다. 그리고, 보통 인력의 규모(숫자)에만 관심을 두는 경향이 있는데, 미래의 인력에게 필요한 역량과 스킬을 동시에 고려해야 신빙성 있는 인력계획이 만들어짐을 기억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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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려워 말고 문제에 맞서라   

2010. 1. 13. 0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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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급한 상황에서는 문제가 무엇인지 정의 내리기가 쉽지 않습니다. 사정이 너무 급박해서 문제로 인해 예상되는 피해를 수습하는 데에 온 정신을 집중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상황이 아주 위급하고 위험한 상태라고 해도 잠시 마음을 가다듬고 문제가 무엇인지 잘 정의할 줄 안다면 훌륭하고 독창적인 해법을 만들 수 있는 기회가 생깁니다.

전쟁의 역사를 살펴보면, 문제를 새롭게 정의하는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한 좋은 사례들이 많습니다. 그 중 하나가 중국 한(漢)나라 때의 명장 이광(李廣)의 사례입니다. 한 경제(景帝)가 즉위하자마자 북쪽의 흉노족이 쳐들어왔는데, 이광이 선봉장에 서게 됐습니다. 전장에 도착한 그는 기병 100여 명만을 데리고 주변을 순찰하다가 그만 코 앞에서 수천 명이나 되는 흉노족 기병들에게 위치가 발각되고 말았습니다.

깜짝 놀란 부하들은 이광에게 속히 도망치자고 건의했지만 잠시 생각에 잠기던 이광은 고개를 가로저으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아니다. 적들을 향해 말을 달려라!” 부하들은 이젠 죽었구나, 하며 벌벌 떨었지만 지엄한 명령인지라 따를 수밖에 없었죠. 이광의 부대는 적진 바로 앞까지 돌진해 갔습니다. 

그 다음에 내린 이광의 명령은 부하들을 더욱 공포스럽게 만들었습니다. “모두 말에서 내려라. 그리고 안장을 해체해서 바닥에 내려놓아라.” 부하들이 웅성거리며 주저하자, “안심해라. 적들은 우리가 이렇게 행동하면 필시 무슨 계략이 있으리라 생각하고 섣불리 달려들지 못할 게다. 우리가 자기들을 유인하는 줄 알 테니까 말이다.” 라고 다독였습니다.

이광의 예상은 적중했습니다. 흉노족 병사들은 엉거주춤하며 이쪽을 주시하다가 말 머리를 돌려서 물러갔습니다. 당연히 이광의 부대는 안전하게 본진으로 돌아왔고 나중에 흉노족을 말끔히 소탕합니다. 안장까지 땅에 내려놓으며 도망가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여주자 흉노족 장군은 이광의 기병들이 자기들을 매복 부대가 있는 곳까지 유인해서 기습을 감행하리라 짐작했던 게 분명합니다.

이광의 지혜는 문제를 독창적으로 정의할 줄 아는 데에서 발견됩니다. 적과 마주쳤을 때 부하들은 아래와 같이 문제를 정의하는 바람에 무조건 도망치는 게 최고의 해법이라고 생각하고 말았습니다.


부하들이 정의한 문제 = 적으로부터 안전하게 달아난 상태 
                                   – 적의 코 앞에서 위치가 발각된 상태


그러나, 적의 코 앞에서 발각된 터라 도망을 쳐봤자 빠르기로 유명한 흉노족의 공격에서 목숨을 부지할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정의된 문제에 갇히면 사고가 경직되어 도망 밖에는 해법이 없다고 믿기 일쑤입니다. 


이광이 정의한 문제 = 적이 우리의 의도를 오해하는 상태
                                - 적의 우리의 의도를 아는 상태


이광은 부하들과는 다르게 문제를 정의하여 해법의 한계를 극복하고 위험으로부터 스스로를 구하는 지혜를 발휘했지요. 이렇게 정의하면 적에게서 달아나지 않고 가까이 다가가 여유를 부리는 척하면 우리의 의도가 무엇인지 헛갈리게 되겠지요. 필시 매복병이 숨어있으리라 잘못 판단할 수밖에 없습니다.

손무(孫武)는 그가 쓴 손자병법(孫子兵法)의 ‘형(形)’ 편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승리하는 군대는 먼저 승리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해놓고 나서 적과 싸움을 추구하고, 패배하는 군대는 먼저 싸움을 걸어놓고 승리를 추구한다.” 문제해결의 관점에서 손무의 말은 “유능한 문제해결사는 해결이 쉽도록 문제를 잘 정의한 후에 문제를 풀며, 무능한 문제해결사는 문제를 정의조차 하지 않은 채 문제해결에 덤벼든다” 로 해석됩니다.

문제를 두려워 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이 직면한 문제가 무엇이든지 종이 위에 기대하는 상태와 현재의 상태를 기술하는 ‘문제 정의’ 단계가 문제해결의 첫걸음이죠. 여기에 여러 시각으로 문제를 바라보면서 새롭게 정의할 가능성을 탐색하는 능력을 덧붙인다면, 여러분은 문제해결사가 지녀야 할 거의 모든 기초체력을 갖췄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오늘도 이 말을 가슴에 새기며 문제해결 하기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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