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기관의 예측력, 믿을 만한가?   

2011. 1. 14. 09:00
반응형



어제 '욕망을 파는 사람들'이란 책을 읽던 중에 이런 문구를 발견했습니다. "경제학자의 평균적인 예측 능력은 단순한 추측 수준이다."라는 문구입니다. 상당히 냉소적이고 노골적인 말이죠? 이 글을 읽는 분 중에 경제학자가 있다면 꽤나 기분 나쁜 소리일 겁니다.

이 말을 풀어서 말하면, 경제학자들이 갖가지 근거를 가지고 경제지표를 예측하더라도 '내년에도 올해와 비슷할 것이다'라는 단순예측보다 나을 것이 없다는 소리입니다. 그들의 노력이 사실상 무용하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문제의 그 책.


 정말 그럴까요? 경제학 박사들이 즐비한 경제연구기관의 예측 능력이 고작 그것 밖에 안 될까요? 기본적으로 그들은 경제에 관해서라면 일반인들보다 많은 지식을 가졌고 오랫동안 경험도 많이 쌓았습니다. 게다가 그들은 데이터베이스화된 자료들을 수십 년간 축적해 놓았습니다. 그런데도 예측 능력이 단순예측보다 나을 것이 없다고 말하다니, 그 책의 저자가 너무 '뻥'이 심한 게 아닐까요?

저자의 주장이 사실인지 아닌지 확인해 보기로 했습니다. 매년 말이 되면 여러 경제연구기관들이 내년도 경제전망을 내놓습니다. 경기, 물가, 수출입 등 여러 가지 지표들을 예측해서 발표하는데, 가장 대표적인 지표는 우리가 보통 '경제성장률'이라고 부르는 '실질 GDP 성장률'입니다. 그래서 각 경제연구기관들이 경제성장률을 얼마나 잘 예측하는지 따져보기로 했습니다.

여러 경제연구기관이 있지만, 그 중에서 3군데만 골랐습니다. 선택된 기관은 한국개발연구원(KDI), 삼성경제연구소(SERI), LG경제연구원입니다. 그런 다음, 각 기관의 홈페이지를 접속하여 1999년부터 2009년까지의 경제성장률 예측치를 일일이 검색했습니다. 예측 시점은 각년도 말로 설정했습니다(예를 들어 2005년의 경제성장률 예측치는 2004년 12월에 발표한 자료를 토대로 했음).

이렇게 얻은 각 기관들의 예측치와, 통계청에서 얻은 실제값을 비교해 봤습니다. 예상했던 대로 차이가 눈에 보이더군요. 그래프로 그려보면 그 차이가 확연합니다.

<기관별 예측치>


위 그래프에서 점선은 실제의 경제성장률이고 나머지는 각 기관의 예측치입니다. 기관들의 적중률이 그다지 높지 않죠? 2004~2007년은 그런대로 비슷하게 맞혔지만, 다른 연도엔 실제값과의 편차가 상당히 큽니다. 특히 1999년엔 무려 8%P 이상의 오차를 보였고, 최근인 2008~2009년에도 2.5~3%P 정도의 오차를 보였습니다. 경제성장률에서 1%P는 상당히 큰 수치이기 때문에 그 이상의 오차가 발생했다는 것은 예측이 실패했음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위 그래프에서 특이한 점을 발견하지 못했나요? 이상하게도 기관들의 예측치가 거의 비슷하다는 점입니다. 기관들 간의 편차는 실제값과의 편차에 비하면 아주 작습니다. 각 기관들이 전망치를 발표하기 전에 서로 의견을 조율한 것처럼 보일 정도입니다. 기관들 사이에도 서로 '벤치마킹'을 하는 걸까요?

이제 '욕망을 파는 사람들'의 저자인 윌리엄 A. 서든의 주장이 정말 맞는지 살펴보기로 하죠. 그는 "내년에도 올해와 비슷할 것이다"란 단순예측보다 경제학자들의 예측이 나을 게 없다고 말했습니다.

저는 단순예측을 이렇게 진행했습니다. 당해년도의 실제 경제성장률 값의 소수점 아래를 버린 것을 차년도 경제성장률로 삼았습니다. 예를 들어, 2004년의 실제 경제성장률이 4.6%이면, 2005년의 경제성장률을 4.0%로 전망하는 방식으로 에측했습니다. 말 그대로 단순한 방법이죠.

그런 다음, '실제값과 예측치와의 편차'를 아래와 같은 그래프로 나타냈습니다. 가로축에 가까울수록 편차가 작다(즉 적중률이 높다)고 보면 됩니다.

<실제값과의 편차>


위 그래프에서 점선은 단순예측치와 실제값과의 편차를 나타냅니다. 나머지 선은 각 기관의 예측치과 실제값과의 편차를 나타내죠(이 그래프에서도 기관들의 예측 패턴이 아주 비슷하다는 게 보이네요. 모종의 소통이 있는 걸까요?).

어떻습니까? 단순예측의 패턴과 각 기관의 예측 패턴이 조금 비슷하게 보이지 않나요?  단정지어 말할 수는 없으나 '기관들도 과거(전년도)의 값을 기초로 예측치를 내놓는 것은 아닌가' 하는 심증이 생기는 대목입니다. 심리학에서 말하는 '닻 효과'의 사례일지도 모르겠네요.

위 그래프를 언뜻 보면 단순예측의 예측 능력이 나쁜 건 아니라는 느낌이 듭니다. 물론 단순예측이 기관의 예측보다 못한 때도 있죠. 1999~2001년, 2003~2004년, 2006년이 그렇습니다. 하지만 기관들보다 예측을 잘한 때도 있습니다. 2002년, 2005년, 2007~2009년이 그러하죠. 이 정도라면 단순예측이 기관들보다 못하다고 할 수 없겠죠?

물론 과거 10 여년의 경제성장률 하나만 가지고 경제연구기관들의 예측 능력이 별로라고 단정지을 수는 없습니다. 그러, 경제성장률이 가장 중요하게 다뤄지는 지표라는 점에서 볼 때 솔직히 실망스러운 수준입니다. 단순예측보다 나을 것이 없다는 윌리엄 A. 서든의 노골적인 주장에 공감할 수밖에 없습니다.

경제연구기관들은 2009년 말에 2010년의 경제성장률을 4.3 ~ 5.0%로 예측했습니다. 이에 반해 단순예측값은 0.0%입니다. 왜냐하면 2009년의 실제 경제성장률이 0.2%였기 때문이죠. 2010년의 실제 경제성장률은 아마 3월 쯤 가서야 나올 텐데요, 과연 기관과 단순예측 중 무엇이 더 근사하게 맞힐까요?

아무튼 미래를 예측하는 일은 매우 어렵습니다. 어려운 게 아니라 불가능합니다. 전문가들도 불가능한 일입니다. 어쩌다 맞혔다 해도 그것은 운일 뿐이지 능력이 아닙니다(전문가들은 자기 능력이라 믿고 싶겠지만). 예측을 본업으로 하는 전문가들을 믿지 못한다면, 여러분은 미래를 대비하게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요?


inFuture 아이폰 앱 다운로드       inFuture 안드로이드 앱 다운로드

반응형

  
,

쏘고 나서 조준하라   

2011. 1. 13. 09:00
반응형



'생각의 속도로 실행하라(원제: Knowing-Doing Gap)'는 이웃 블로거인 inuit님의 추천으로 읽게 된 책입니다. 왜 추천하셨는지 책을 몇 페이지 읽어보니 금세 알겠더군요. 알고보니 이 책은 꽤 오래 전에 나왔습니다. 원서가 2000년에 출간되고 우리나라에는 2002년에 '왜 지식경영이 실패하는가?'란 제목으로 번역 출판됐으니 말입니다.

원래의 번역서 제목처럼 이 책은 지식경영이 실패할 수밖에 없는 이유들에 대해 조목조목 설명합니다. "지식을 안다고 해서 실행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지행격차(知行格差)가 지식경영 실패의 근본원인임을 저자는 아프게 꼬집습니다.



책을 읽는 도중에 저자가 잘못된 지식경영의 관행을 비판하는 대목을 만나면 얼굴이 화끈거리곤 했습니다. 제가 컨설턴트로서 첫발을 내딘 분야가 바로 지식경영이었는데, 저자의 비판이 모두 저에게 해당되기 때문입니다. 당시에 제가 하던 일은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지식이 무엇인지 조사하고, 지식의 카테고리를 맵(map)의 형태로 잘 분류해서 시스템 구축으로 연결시키는 일이었습니다.

그리고는 고객들에게 "여기 시스템을 마련해 놓았으니 이제 열심히 지식을 채워 넣고 서로 공유하라"고 했습니다. 그렇게 하면 지식의 공유와 활용이 활발해져서 회사의 성과가 올라갈 거라며 기대감을 잔뜩 불어넣는 멘트를 잊지 않았죠. '지적자산이 물리적 자산보다 중요하고...어쩌구 저쩌구' 하면서 말입니다.

그러나 '깡통(지식경영시스템을 비하해서 이렇게 부르곤 했지요)'을 만들어 놓는다고 해서, 또 깡통에 숱하게 지식을 올린다고 해서 지식경영의 본래 목적인 지식의 확산과 활용, 전략 실행능력의 향상 등이 제대로 이루어진 고객사는 거의 없음을 고백합니다.

지식경영은 제도나 시스템의 문제가 아니라, 조직문화 그 자체임을 그때는 알지 못했습니다. 고객사에서 수억 원의 돈을 들여 구축한 지식경영시스템(KMS)들은 아마도 일찌감치 사라졌거나, 남아있다 해도 그룹웨어의 게시판 정도로 겨우 체면을 유지하고 있을 겁니다.

이렇게 말하면 이 책이 (이제는 진부하게 느껴지는) 지식경영에 관한 책이라고 단정지을지 모르겠네요.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이 책은 전략을 잘 수립해 놓고도 왜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는지, 똑똑한 사람들이 모여 앉아 영리한 전략을 구상했는데도 상황이 더 악화되는지를 지행격차의 관점으로 명쾌하게 설명합니다. 그리고 지행격차가 왜 발생하며 그것을 어떻게 줄일 수 있는지를 이야기합니다.

결국 이 책은 '왜 실행력이 떨어지는가'란 오래되고 까다로운 질문에 대한 답입니다. 조직의 실행력 부족이 문제라면 이 책이 문제를 해결하게 도와줄 좋은 가이드가 될 겁니다. 물론 이 책을 읽는다고 해서 실행력이 부쩍 향상되리라는 기대는 금물입니다. 저자도 책 말미에 언급했듯이 "아는 것과 하는 것은 다르기 때문"입니다. 이 책을 읽고 꼭 실행에 옮기기 바랍니다.

아래는 이 책을 읽다가 마음에 드는 문구가 나올 때마다 트위터에 올린 트윗을 모은 것입니다. 책을 읽기 전에 참고하기 바랍니다. (정확한 이해를 위해서는 꼭 책을 읽으시길...)


"책을 읽고 세미나에 참석한 뒤 경영자들은 깨달음과 지혜를 얻었다 말하지만, 그들이 이끄는 조직에선 별다른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 것 왜일까? 실행을 못하기 때문이다"

"결정 그 자체로는 아무런 변화를 일으키지 못한다"

"똑똑하게 말하는 것과 똑똑하게 행동하는 것은 관계가 없다. 하지만 많은 조직에서 전자를 더 중요하게 여긴다"

"똑똑하게 말하는 최상의 방법 중 하나는 '남의 아이디어를 비판하는 것'이다"

"경영자들은 말은 자기들이 하고 행동은 부하직원들이 해야 한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

"조직들 대부분은 '복잡성에 대한 사랑'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에 단순한 전략을 말하면 '그렇게 단순한 해결책을 우리가 생각 못했을리 없다'며 거부한다"

"불행하게도 사람을 최우선시하고 잘 돌보는 기업들이 물러터지고 냉철하지 못하다는 취급을 받고 있다"

"두려움에 기반한 경영방식은 단기적 시각에 빠지게 만들고 집단보다는 개인에 집중하게 만든다. 직원들을 다그치는 경영은 거의 모두 실패한다"

"다른 사람들에게 창피를 주는 사람들(특히 관리자들)을 추방하라"

"기업들은 경쟁사에게는 많은 것을 배우려고 하면서도 회사 내 다른 사업부(혹은 팀)으로부터 배우려고 하지 않는다. 그 이유는 '내부경쟁' 때문이다"

"더 멘즈 웨어하우스란 회사는 동료보다 뛰어난 매출을 올린 직원에게 독차지하지 말라는 경고를 준다. 그 직원이 경고를 무시하고 계속 독보적인 매출을 올리면 그를 해고한다"

"잘하려고 애쓰는 것(성공)과 남을 앞서려고 애쓰는 것(경쟁)은 서로 다르다"

"쏘고 나서 조준하라"

제일 마지막 문구인 '쏘고 나서 조준하라'가 제일 마음에 듭니다. 직역하면 실행을 먼저 하고 계획은 나중에 세우라는 '과격한' 말인 것 같지만, 계획하는 데 지나치게 신경 쓰다가 실행의 타이밍을 놓치지 말라는 뜻이겠죠. '계획이 실행을 대체하는 오류'를 범하지 말하는 뜻이기도 합니다.

이 책을 읽고 여러분의 조직을 '쏘고 나서 조준하는' 실행력 있는 조직으로 탈바꿈하기 바랍니다.


inFuture 아이폰 앱 다운로드       inFuture 안드로이드 앱 다운로드

반응형

  
,

절대평가와 상대평가, 뭐가 좋은가?   

2011. 1. 12. 09:00
반응형



직원들을 평가하는 방식을 정할 때 항상 고민스러운 것이 있습니다. 바로 '절대평가가 좋은가, 아니면 상대평가가 좋은가'하는 문제죠. 아마 여러분의 회사에서도 평가 방식을 결정할 때 이런 고민을 분명 했을 겁니다. 왜냐하면 절대평가와 상대평가 모두 장단점에 대한 의견이 극명하게 갈리기 때문이죠.

알다시피 절대평가는 직원 한 사람을 놓고 그가 정해진 목표나 기대하는 역량 수준에 얼마나 도달했는지를 평가하는 방식입니다. 팀원들이 다 목표를 달성했다면 그들에게 모두 높은 평가등급을 매길 수 있죠. 반면에 상대평가는 목표나 기대수준에 얼마나 도달했는가가 아니라 다른 사람보다 잘했는지를 평가하는 방식입니다. 팀원들이 다 목표를 달성해도 반드시 1등과 꼴찌로 서열을 매기죠.



평가를 시행하는 대부분의 기업들은 상대평가 방식을 채용합니다. 아마 이 글을 읽는 여러분의 회사도 그럴 겁니다. 물론 상사가 부하직원을 평가할 때는 절대평가 방식을 쓴다고 말로는 그럴 겁니다. 하지만 나중에 가서 연봉 인상률을 정하거나 성과급 지급액을 결정할 때는 1등부터 꼴찌까지 줄을 세우는 상대평가 방식을 적용합니다. '어쩔 수 없다'는 핑계거리가 꼭 붙습니다.

상대평가는 단점이 매우 많습니다. 우선, 상대평가는 성과를 왜곡합니다. 어떤 팀에 소속된 팀원들이 모두 역량이 뛰어나도 그 중 몇 명에겐 '일못하는 직원'이란 꼬리표가 붙습니다. 반면 역량이 저조한 사람들이 모여있는 팀에서는 객관적으로 봐도 별볼일 없는 직원이 '일잘하는 직원'이라는 부당한 횡재를 누리죠.

또한 상대평가는 직원들의 협력을 깨뜨리는 촉매(?)로 작용합니다. 상대평가는 같은 부서(또는 같은 사업부)에 속한 동료들을 누르고 올라가야 한다는 강력한 시그널을 줍니다. 말이 동료지 그들은 모두 '나의 경쟁자'가 되어 버리죠. 거의 모든 기업의 업무 특성상 직원들 간의 상호작용과 협력이 필요하지만, 동료를 도와주면 자칫 '나의 상대점수'가 하락할 위험이 커집니다. 그래서 가능한 한 '내 할일'만 하는 게 최고라는 인식을 직원들에게 강하게 심어주고 말죠.

다시 말해, 상대평가는 내부경쟁을 부추기는 치명적인 결과를 낳습니다. '직원들의 경쟁을 가속시키는 게 무슨 잘못이지?'라고 의아하게 생각할지 모르겠네요. 만일 여러분이 이렇게 생각했다면 '직원들의 경쟁은 성과 창출의 동기를 극대화시킨다'란 '경쟁주의적 철학' 때문입니다. 이런 생각이 틀린 것은 아닙니다. 달리기를 할 때 혼자 달리는 것보다는 경쟁자와 함께 뛰어야 기록이 잘 나오니 말입니다.

그러나 달리기는 개인이 혼자 모든 것을 관장하고 결정 내릴 수 있는 운동입니다. 옆 줄에서 같이 달리는 사람과 상호작용할 필요가 없고 그래서도 안 됩니다. 경쟁은 상호의존도가 낮을 때만 유용합니다. 하지만 어떻습니까? 여러분의 회사가 크든 작든 다른 직원의 직간접적인 도움 없이 전적으로 혼자서 할 수 있는 업무는 거의 없을 겁니다.

어떤 직원이 100억 원의 매출을 올렸다 해도 그건 그 직원 혼자만의 업적이 아닙니다. 여러분의 회사는 이미 업무와 업무, 직원과 직원이 거미줄처럼 촘촘하게 연결된 상호작용의 네트워크입니다. 현실이 이러한데, 개인들의 성과를 무 자르듯 구분하고 1등과 꼴찌를 가리겠다는 발상은 매우 착오적일 뿐만 아니라 파괴적입니다. 기업 경쟁력의 원천인 직원들 간의 끈끈한 동료의식과 협동심을 깨뜨리기 때문이죠.

결국 상대평가는 조직의 경쟁력을 약화시킵니다. 내부경쟁을 부추겨서 직원들의 협력이 사라지고 이기주의가 판을 칩니다. 일 잘하는 직원은 점차 일할 동기를 잃어버리거나(그래서 무임승차자가 되어 버리거나) 회사를 나가 버립니다. 일 못하는 직원들은 상대평가의 약점을 최대한 이용해서 일 잘하는 직원인 듯 자신을 포장하는, 기회주의적인 무임승차자로 남습니다.

"상대평가를 하지 말라는 소리 같은데, 그러면 직원들의 연봉과 성과급은 어떻게 결정하란 말인가요?"란 질문이 생깁니다. 그에 대한 대답은 "그래도 상대평가를 하지 말아야 한다"입니다. 상대평가를 해서 직원들의 연봉과 성과급을 차등 지급하는 효과와, 그로 인해 발생하는 폐해의 크기를 비교해 보기 바랍니다. 고작 차등 보상을 위한 수단으로 상대평가를 채용하기에는 감당해야 할 위험 부담이 매우 큽니다.

그렇다면 절대평가는 장점만 있고 단점은 없을까요? 물론 절대평가에도 단점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10을 달성하기로 약속했는데 시장환경이 좋지 않아서 5밖에 달성하지 못했다면, 아무리 1년 내내 고생을 했더라도 인정 받지 못합니다. 섭섭하더라도 받아들여야 하죠. 반대로 시장이 좋아 20을 달성했다면, 별다른 노력 없이도 두둑한 성과급을 받아가겠죠. 이렇듯 절대평가에는 직원 자신이 콘트롤할 수 없는 상황에 의해 성과가 좌우되는 단점이 있습니다.

상대평가보다 덜하지만 절대평가도 내부경쟁을 독려하는 터라 직원 간, 부서 간의 협력을 깨뜨립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목표나 기대수준을 달성하려면 옆에서 도움을 청하는 동료를 가능한 한 무시하고 오직 그것만 보고 달려야 하기 때문이죠. 또한, 소위 '잘 나가는' 부서에 배치되면 높은 보상을 받, 매번 죽을 쑤는 부서(또는 일이 힘든 부서)에 배치되면 일 잘하는 직원이라도 적게 보상 받을 수 없는 불합리함도 상대평가와 마찬가지로 불거집니다. 인사부서에 로비를 잘 하느냐, 얼마나 목소리를 크게 내느냐에만 신경 쓸 가능성이 크죠.

이쯤에서 여러분은 "상대평가도 문제, 절대평가도 문제라면 도대체 평가를 하란 소리요, 하지 말란 소리요?"라는 생각을 가질 겁니다. 이에 대한 저의 답은 이렇습니다. 평가는 해야 합니다. 하지만 반드시 절대평가로 해야 하며, 절대평가로 한다 해도 차등 보상은 절대 하지 말아야 합니다.

평가의 목적은 직원들에게 비전/전략 달성의 방향을 가이드함으로써 비전/전략 달성에 직원들을 몰입시키는 데 있습니다. '최고의 품질 달성'이라는 회사의 목표를 개인 단위로 끌어내려 직원들이 이해할 수 있는 지표로 설정하고, 직원들이 얼마나  기여했는지를 측정함으로써 목표에 차츰 다가서기 위함이 평가의 본래 목적입니다. 누가 일 잘하고 일 못하는지는 사실 중요치 않습니다. 얼마나 차등 보상해야 하는지는 더욱 중요하지 않습니다.

개인별이든 사업 단위별이든 모든 '차등 보상'은 상대평가를 반드시 수반할 수밖에 없고 위에서 말한 온갖 폐해를 야기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차등 보상을 폐기하거나 극소화하고, 대신에 회사 전체의 잉여 성과를 직원들이 골고루 나눠 갖는 방식으로 보상해야 합니다. 그래야 내부경쟁이라는 '제로섬 게임'에 빠지지 않고 경쟁사와의 외부경쟁에 직원들을 하나로 모을 수 있습니다. 경쟁은 외부(타사)를 향해야지 결코 내부를 향해서는 안 됩니다.

물론 내부경쟁을 없애고 회사 전체의 성과를 공평하게 공유한다는 생각이 불편하게 느껴질 겁니다. 그이유는 바로 무임승차자 때문일 겁니다. 하지만 조직이 커지면 무임승차자는 '언제 어디서나' 생기기 마련입니다. 위에서 언급했듯이, 평가 결과를 개인별로 차등 보상하는 데 활용하면 오히려 무임승차자가 늘어나기도 합니다. 어찌보면 그들은 필요악이죠.

그들에게 부당하게 지출되는 비용이 아깝다고 해서 내부경쟁을 가속한다면(특히 상대평가를 통해), 더 큰 비용이 발생하거나 회복 불가능한 경쟁력 약화를 야기할지 모릅니다. 하나의 목표를 향해 직원 모두를 동참시키고 협력을 강조하는 분위기를 조성하며 끊임없이 메시지를 전달한다면 무임승차자는 발붙일 곳을 찾기 어려울 겁니다.

남성 의류 유통업체인 '더 멘즈 웨어하우스'란 회사는 판매원 중에 누군가가 독보적으로 높은 매출을 달성하면 그에게 경고를 줍니다. 그가 동료들에게 갈 고객들을 나누지 않고 독차지한다고 해석하기 때문이죠. 그가 경고를 무시하고 계속 혼자만 높은 성과를 올리면 그를 해고한다고 합니다. 일반 회사와 정반대의 조치죠?

이 회사는 이렇듯 협력을 추구하는 문화를 수호하겠다는 의지가 그만큼 확고합니다. 직원들 간의 경쟁보다 협력을 중시하면 조직의 성과가 좋지 않으리라 예상하겠지만, 혼자서 높은 매출을 올린 판매원을 내보내니 오히려 매장 전체의 성과는 더 높아졌다고 합니다.

개인평가든 조직평다든, 평가는 반드시 해야 합니다. 그러나 평가가 내부경쟁을 부추기고 협력과 상호작용을 저해하는 주범이 되지 않도록 세심하게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상대평가보다는 절대평가를, 개인 성과보다는 조직 전체의 성과를, 금전적 보상보다는 성공 경험을, 내부경쟁보다는 외부경쟁을, 단기 성과보다는 장기 성과를 추구하는 데 힘을 모아야합니다.


(*참고도서 : '생각의 속도로 실행하라')

inFuture 아이폰 앱 다운로드       inFuture 안드로이드 앱 다운로드

반응형

  
,

'신성한 암소'를 쫓아내라   

2011. 1. 11. 09:00
반응형



제가 관찰한 어느 회사의 이야기입니다. 그 회사는 부사장 이상만 되면 기사가 딸린 고급 승용차를 지급했습니다. 부사장 이상의 임원들에게 운전기사가 모는 차 한 대를 지급하는 게 별것 아닌 듯 하지만, 문제는 그런 부사장들이 회사의 규모에 비해 지나치게 많았다는 데 있었습니다. 60명이 될까 말까한 회사에 부사장 이상의 임원들이 10명이 넘었으니 말입니다. 운전기사의 수도 10명이 넘어서 그들이 사용하는 방이 따로 있을 정도였습니다.

회사의 성과가 좋다면야 그러한 호사가 용납되겠지만, 객관적으로 볼 때 그 회사의 재무 상태는 그저 그런 수준을 넘어서 악화되기 직전이었다는 데에 문제의 심각성이 있었습니다. 불요불급한 비용 지출이 지나치게 많은 탓에 순이익은 손익계산서에 나타내기 민망한 수준이었죠.



실무자들이 재무 상태를 개선하기 위한 긴급조치를 궁리하던 끝에 운전기사들에게 지급되는 임금과 '의전용' 승용차의 운영 비용이 언급되었습니다. 계산을 해보니 그 금액이 작은 조직에서 감당할 만한 비용의 수준을 넘어섰을 뿐만 아니라, 동종업계와 비교해서 지나치게 호사스러운 예우라는 판단이 내려졌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 비용 항목이 사람들의 입에 오르자마자 어디선가 "그것은 건드릴 수 없다"라는 반론이 단호하게 제기되었습니다. "운전기사와 의전 승용차 관련 비용을 줄여야 합니다"라고 건의했다가 소위 '높으신 분'들에게 엄청난 꾸지람을 들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은 사람들을 머뭇거리게 만들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비용을 삭감해야 합니다"라며 고양이 목에 방울을 걸겠다고 나서는 사람도 없었기에 임원 예우 비용을 삭감하자는 이야기는 쏙 들어갈 수밖에 없었죠.

결국 상대적으로 비중이 작은 비용(예를 들어 소모품비나 여비 등)의 지출을 줄이거나 없애자는 쪽으로 의견이 모아졌습니다. 불요불급한 비용을 없애자는 애초의 의지가 뱀 꼬리처럼 초라해지고 말았던 겁니다.

임원 예우 비용과 같이 감히 건드리기 어려운 대상을 '신성한 암소'라고 부릅니다. 인도에서는 길 한 가운데에 드러누운 소들을 심심치 않게 목격한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있을 겁니다. 아무리 바빠도 자동차나 사람들이 그 소를 건드리지 않고 돌아서가거나 소가 일어나기를 기다린다고 하죠. 그만큼 인도에서 소는 신성시되는 동물입니다. 특히 암소는 더욱 귀하게 대접받죠.

'신성한 암소'는 조직 내에서 감히 건드리지 못하는 불가침의 영역을 가리킵니다. 누구나 문제인 줄 알면서도 고쳐야 한다고 용기 있게 제안하지 못하는 대상이 여러분의 회사 내에 적어도 하나 이상은 존재하리라 짐작됩니다. 위계 때문에, 정리(情理) 때문에, 혹은 '우리는 늘 그렇게 해왔어'라고 말하는 오랜 전통 때문에 입에 올리는 것조차 불경시되는 그 무엇이 분명 있을 겁니다.

예를 들어 직원들의 회의 공간은 부족한데 열 명 이상은 족히 들어갈 널찍한 방을 임원 혼자 차지하는, 공간 활용의 비효율이 뻔히 보여도 그걸 지적할 용기를 갖기 어렵겠죠. 제가 만난 어떤 분의 말처럼, 쓰지도 않는 고리짝 같은 시스템을 유지 보수하느라 죽을 맛이라도 상사가 옛날에 그 시스템을 만들어서 승진했다면 "그 시스템을 폐기하자"고 말하지 못할 겁니다. 상사의 업적을 부정하는 꼴이기 때문이죠.

사설 교환기를 생산하는 '미텔 코퍼레이션'이라는 회사는 재무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R&D 직원들 450명이 모여 3일 동안 강도 높은 워크숍을 열었다고 합니다. 그들은 71페이지에 달하는 '신성한 암소 목록'을 작성하고 그 암소들을 어떻게 '죽여야' 하는지 논의를 진행하며 곧바로 실행계획을 수립했습니다. 그리고 '스테이크 파티'로 성공적인 워크숍을 자축했다고 합니다.

여러분의 회사에서도 경영자와 직원들이 함께 모여 '신성한 암소 몰아내기' 워크숍을 한번 열어보는 것은 어떨까요? 물론 기득권을 내놔야 하는, 꽤 커다란 용기가 필요하겠죠. 기업이라는 조직의 지향은 개인의 기득권 보호가 아니라 미션이라는 점을 모두가 수용한다면 불가능한 일은 아닙니다.

신성한 암소는 인도에서만 존재해야 합니다. 여러분의 회사가 가야할 길에 길게 드러누운 신성한 암소가 있다면 돌아가지 말고 얼른 쫓아버리기 바랍니다.


(*참고도서 : '생각의 속도로 실행하라')

inFuture 아이폰 앱 다운로드       inFuture 안드로이드 앱 다운로드

반응형

  
,

답을 말하고도 답을 모르는 이유   

2011. 1. 10. 09:00
반응형



어제 오전에 잠깐 TV에서 '꽃다발'이라는 오락 프로그램을 보게 됐습니다.  처음 봐서 모르겠지만 여러 출연자가 게임을 하면서 퀴즈를 맞히는 프로그램인 듯 했습니다. 그런데 별 생각 없이 보던 중에 하나의 장면이 눈에 들어오더군요.

사회자(개그맨 정형돈)가 이런 문제를 냈습니다. "우울증 치료에 탁월하고, 폐암 환자의 5년 후 생존확률을 2배나 높여주는 것으로서, 하늘이 내린 선물이라고 불리는 이것은 무엇일까요?" 출연자들이 문제를 듣자마자 서로 자기가 답을 말하겠다고 아우성을 치더군요. 저도 답이 무엇일까, 궁금했답니다. '대체 하늘이 내린 선물이 뭘까?'



사회자는 가수 유채영에게 답을 말할 수 있는 기회를 줬습니다. 유채영은 특유의 목소리로 "음... 하늘이 내린 선물이라면 바로.... 하늘의 햇빛을 듬뿍 받으며 자란...... 파?"라고 대답하더군요. 사회자는 대답을 듣자마자 '땡!'을 외쳤습니다. 그러면서 "아, 바로 답 근처까지 왔는데...."하며 안타까운 표정을 졌습니다. 유채영은 눈을 동그랗게 뜨면서 "내가 뭐라고 말했지?"라며 방금 전에 자기가 한 말이 기억나지 않는다며 답답해 했습니다. 그러다가 "하늘의 햇빛을 받고 자란.....파"라고 말했음을 기억해 내고도 정답을 대답하지 못하더군요.

사회자가 "유채영 씨가 이미 답을 말했다"라고 다른 출연자들에게 힌트를 주니까 "파가 아니라 양파!", "파가 아니니까 마?"라는 대답들이 여기저기서 쏟아졌습니다. 사회자는 "유채영 씨가 답을 수 차례 이야기했다구요!"라고 배를 부여잡으며 웃더군요. 출연자들이 왜 답을 말하지 못하는지 알 수가 없다는 표정이었습니다(이때 저는 답이 무엇인지 알아차렸습니다).

다른 출연자들이 오답의 바다를 표류하는 동안, 유채영은 결정적 발언을 한 자격(?)으로 문제를 맞힐 수 있는 기회를 여러 번 가졌지만 답을 맞히지 못했습니다. 결국 어떤 여자 출연자가 "햇빛!"이라고 정답을 말하고 나서야 유채영은 정답을 말해 놓고도 답을 맞히지 못한 것이 어이가 없었던지 쓰러질듯 웃음을 터뜨리더군요. 사회자들은 그렇게 말해줬는데도 못 맞힐 수 있냐며 유채영을 비롯한 출연자들을 장난스레 꾸짖으면서 다음 문제로 넘어갔습니다.

이런 장면은 '사고의 프레임(Frame)'을 전형적으로 보여줍니다. 유채영이 "하늘의 햇빛을 듬뿍 받고 자란 파"라고 말하는 순간, 하늘이 내린 선물은 바로 음식이라는 '프레임'을 출연자와 TV를 보던 수많은 시청자들에게 빛의 속도로 설치했습니다. 물론 유채영이 의도하지는 않았겠지만 사람들에게 형성된 사고의 프레임은 아주 강력했습니다. 그래서 "파가 아니라 양파", "그렇다면 마?"라는 식으로 밭에서 자란 채소류 이외의 답은 떠올릴 수조차 없었던 겁니다. "햇빛"이라는 단어를 말해놓고도 그게 답인지 모를 수밖에 없었던 거죠.

여러분이 이미 정답을 알고 느긋하게 이런 상황을 지켜보는 입장이라면(혹은 사회자의 입장이라면), 정답을 다 말해놓고도 못 맞히는 상황이 우스꽝스럽고 출연자들이 바보스럽다고 느낄지 모릅니다. 낫을 보고도 기역자를 말하지 못하는 것과 같으니 말입니다. 하지만 프레임에 한번 '갇히게' 되면, 프레임에 갇혔다는 사실조차 인식하지 못할 정도로 사고를 제약하고 맙니다. 프레임 안에서 여러분의 사고는 프레임의 노예가 되는 것이죠.

위와 같은 퀴즈나 게임에서는 사고의 프레임을 깨뜨리기가 비교적 용이합니다. 아주 순식간에 많은 사람의 머리 속에 사고의 '감옥'을 설치하는 놀라운 속도를 보이지만, 그만큼 깨지기도 쉽습니다. 창의적 사고를 주제로 한 워크숍이나 강의에서 사고의 틀을 깨야만 풀 수 있는 퍼즐을 본 적이 있다면(그리고 퍼즐 풀기에 어느 정도 연습이 되었다면) 퍼즐이 형성한 프레임 쯤이야 간단하게 없앨 수 있겠죠.

한번 형성되면 웬만한 공격에도 깨지지 않는 사고의 프레임들은 '느리지만 집요하고 체계적인' 것들입니다. 우리는 그것들을 보통 '이론(理論)'이라고 부릅니다. 그리고 어떤 이론이 시대의 주류가 될 때, 그것을 패러다임이라고 부르죠. 이론들은 서로 경쟁하고 다툼을 벌이기도 합니다. 진화론과 창조론, 신자유주의와 그것과 대척점에 서있는 케인스주의 등이 그렇죠.

이런 이론들은 오랜 학습과 연구와 같이 '느린' 과정을 통해 사람들의 머리를 집요하게 파고들어 철옹성 같은 프레임을 형성하고 마침내 자신의 숙주인 인간의 사고를 지배합니다. 그러고는 이론의 틀로만 현상을 이해하게 하고, 이론과 반대되는 현상들을 예외일 뿐이라 배척케 합니다.

게다가 프레임은 이론과 다른 주장을 펴는 사람들을 맹렬하게 공격하라고 명령을 내립니다. 비록 이론이 현상을 올바로 반영하지 못하고 사람들의 요구를 충족시키지 못한다 해도, 이론을 훼손하려는 그 어떤 시도도 용납하지 않습니다. 이렇게 이론이 현실과는 다른 차원에 존재할 때, 혹은 이론이 다른 차원으로 스스로를 위치시킬 때 우리는 그것을 '이상(理想)'이라고 부릅니다.

지난 2010년의 마지막 날, 트위터의 타임라인을 뜨겁게 달군 사건이 하나 있었습니다. 자기계발 전문가로 이름이 자자한 모 씨의 트윗 때문이었죠. 여기서 그의 트윗을 인용하지는 않겠으나 진보진영이 추진하는 '무상급식'을 맹렬히 비난하는 투의 트윗이었습니다. 그걸 두고 그를 비난하는 사람들과 옹호하는 사람들(비난하는 사람들이 제 타임라인에는 더 많았지만)들의 트윗과 RT가 세밑의 트위터를 달궜습니다.

그는 자신의 트윗이 일파만파로 퍼지자 짐짓 당황했는지 "생각이 다르다고 해서 공격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내용의 트윗을 추가로 올리더군요. 맞습니다. 그에겐 분명히 '무상급식은 나쁘다'고 주장할 권리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런 주장을 한다고 해서 부당한 대우를 받지 않아야 합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자신을 비판하는 다른 사람들의 행동이 옳지 않다고 주장할 권리는 그에게는 없습니다. 자신의 주장이 존중 받으려면 자신의 주장에 대한 타인의 반박도 존중해야 하기 때문이죠.

그가 그토록 비판 받는 이유는 뭘까요? 그것은 그가 신자유주의 경제라는 사고의 프레임 속에 갇혀 있기 때문입니다. 무상급식에 상당한 혐오감을 드러내는 이유는 그것이 신자유주의 경제 논리를 위협하는 '빈자(貧者)'들의 아우성이라는 데 있습니다. 그가 한 달이 멀다 하고 내놓는 책에서 꾸준히 주장하는 생각도 그러하죠. 자신이 신봉하는 이론의 틀로만 세상을 바라보려는 교조주의적이고 편협한 사고 방식이 많은 사람들이 그토록 분노한 이유입니다.

어렵게 배웠고 수십 년간 외쳐온 이론이 잘못됐다고 순순히 인정할 사람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사고의 프레임이 자신의 숙주인 인간이 감지하지 못하게 철저하게 결점을 숨길 뿐만 아니라, 설령 현상을 틀리게 설명하고 반영하는 오류를 나타났다 해도 어떻게든 '삐져나온' 옷자락을 이론의 구멍 안에 쑤셔 넣게 만듭니다. 잘못을 인정하는 순간 그동안 쌓은 탑이 한순간에 무너져 내리리란 공포심도 완고한 고집에 한몫합니다.

그가 사람들에게 '변화'를 촉구하는 진정한 자기계발 전문가라면 바로 자신이 사고의 프레임을 깨고 새로운 시각에 눈떠야 하지 않을까요? 신자유주의와 반대되고 신자유주의를 훼손한다 해서 현실을 외면하거나 예외로 치부하는 일은 변화하지 않으려는 '관성'과 무엇이 다를까요? 이론을 천착하다 못해 그것을 범접치 못할 이상(理想)으로 떠받들며 신성(神性)을 수호하는 행위는 '항상 깨어있으라'라는 자신의 가르침을 스스로 부정하는 꼴이 아닐까요?

이론이 만든 프레임이 나쁜 것만은 아닙니다. 이론이 있어야 현상을 설명할 수 있고 뭔가 일을 진행할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사고의 프레임은 맹목이란 부작용도 함께 선물합니다. "하늘의 햇빛을 듬뿍 받고 자란 파"라고 말해 놓고 "햇빛"을 발견하지 못하는 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 이론을 앞세우고 현실은 멀찌감치 떨어뜨려 놓는 일은 '꽃다발'의 출연자들이 밭에서 자란 채소류에서만 답을 찾으려는 것과 같죠. 곰팡내 나는 이론의 책갈피에 갇힌 그의 모습이 안쓰러운 이유입니다.

사고의 프레임이 아무리 강력하다고 해도 '나를 지배하는 프레임이 무엇인가'라고 자문할 때 철옹성에 금이 가기 시작합니다. 이것이 열린 사고(open-mind)의 시작이고 바로 옆에 있는 답을 찾아내는 동력이겠죠. 그러나 이런 자문조차 부단한 노력과 용기가 필요합니다. 항상 깨어 있으려면 말입니다.

'열린' 월요일 되세요.


inFuture 아이폰 앱 다운로드       inFuture 안드로이드 앱 다운로드

반응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