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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욕망을 파는 사람들'이란 책을 읽던 중에 이런 문구를 발견했습니다. "경제학자의 평균적인 예측 능력은 단순한 추측 수준이다."라는 문구입니다. 상당히 냉소적이고 노골적인 말이죠? 이 글을 읽는 분 중에 경제학자가 있다면 꽤나 기분 나쁜 소리일 겁니다.
이 말을 풀어서 말하면, 경제학자들이 갖가지 근거를 가지고 경제지표를 예측하더라도 '내년에도 올해와 비슷할 것이다'라는 단순예측보다 나을 것이 없다는 소리입니다. 그들의 노력이 사실상 무용하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문제의 그 책.
정말 그럴까요? 경제학 박사들이 즐비한 경제연구기관의 예측 능력이 고작 그것 밖에 안 될까요? 기본적으로 그들은 경제에 관해서라면 일반인들보다 많은 지식을 가졌고 오랫동안 경험도 많이 쌓았습니다. 게다가 그들은 데이터베이스화된 자료들을 수십 년간 축적해 놓았습니다. 그런데도 예측 능력이 단순예측보다 나을 것이 없다고 말하다니, 그 책의 저자가 너무 '뻥'이 심한 게 아닐까요?
저자의 주장이 사실인지 아닌지 확인해 보기로 했습니다. 매년 말이 되면 여러 경제연구기관들이 내년도 경제전망을 내놓습니다. 경기, 물가, 수출입 등 여러 가지 지표들을 예측해서 발표하는데, 가장 대표적인 지표는 우리가 보통 '경제성장률'이라고 부르는 '실질 GDP 성장률'입니다. 그래서 각 경제연구기관들이 경제성장률을 얼마나 잘 예측하는지 따져보기로 했습니다.
여러 경제연구기관이 있지만, 그 중에서 3군데만 골랐습니다. 선택된 기관은 한국개발연구원(KDI), 삼성경제연구소(SERI), LG경제연구원입니다. 그런 다음, 각 기관의 홈페이지를 접속하여 1999년부터 2009년까지의 경제성장률 예측치를 일일이 검색했습니다. 예측 시점은 각년도 말로 설정했습니다(예를 들어 2005년의 경제성장률 예측치는 2004년 12월에 발표한 자료를 토대로 했음).
이렇게 얻은 각 기관들의 예측치와, 통계청에서 얻은 실제값을 비교해 봤습니다. 예상했던 대로 차이가 눈에 보이더군요. 그래프로 그려보면 그 차이가 확연합니다.
<기관별 예측치>
위 그래프에서 점선은 실제의 경제성장률이고 나머지는 각 기관의 예측치입니다. 기관들의 적중률이 그다지 높지 않죠? 2004~2007년은 그런대로 비슷하게 맞혔지만, 다른 연도엔 실제값과의 편차가 상당히 큽니다. 특히 1999년엔 무려 8%P 이상의 오차를 보였고, 최근인 2008~2009년에도 2.5~3%P 정도의 오차를 보였습니다. 경제성장률에서 1%P는 상당히 큰 수치이기 때문에 그 이상의 오차가 발생했다는 것은 예측이 실패했음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위 그래프에서 특이한 점을 발견하지 못했나요? 이상하게도 기관들의 예측치가 거의 비슷하다는 점입니다. 기관들 간의 편차는 실제값과의 편차에 비하면 아주 작습니다. 각 기관들이 전망치를 발표하기 전에 서로 의견을 조율한 것처럼 보일 정도입니다. 기관들 사이에도 서로 '벤치마킹'을 하는 걸까요?
이제 '욕망을 파는 사람들'의 저자인 윌리엄 A. 서든의 주장이 정말 맞는지 살펴보기로 하죠. 그는 "내년에도 올해와 비슷할 것이다"란 단순예측보다 경제학자들의 예측이 나을 게 없다고 말했습니다.
저는 단순예측을 이렇게 진행했습니다. 당해년도의 실제 경제성장률 값의 소수점 아래를 버린 것을 차년도 경제성장률로 삼았습니다. 예를 들어, 2004년의 실제 경제성장률이 4.6%이면, 2005년의 경제성장률을 4.0%로 전망하는 방식으로 에측했습니다. 말 그대로 단순한 방법이죠.
그런 다음, '실제값과 예측치와의 편차'를 아래와 같은 그래프로 나타냈습니다. 가로축에 가까울수록 편차가 작다(즉 적중률이 높다)고 보면 됩니다.
<실제값과의 편차>
위 그래프에서 점선은 단순예측치와 실제값과의 편차를 나타냅니다. 나머지 선은 각 기관의 예측치과 실제값과의 편차를 나타내죠(이 그래프에서도 기관들의 예측 패턴이 아주 비슷하다는 게 보이네요. 모종의 소통이 있는 걸까요?).
어떻습니까? 단순예측의 패턴과 각 기관의 예측 패턴이 조금 비슷하게 보이지 않나요? 단정지어 말할 수는 없으나 '기관들도 과거(전년도)의 값을 기초로 예측치를 내놓는 것은 아닌가' 하는 심증이 생기는 대목입니다. 심리학에서 말하는 '닻 효과'의 사례일지도 모르겠네요.
위 그래프를 언뜻 보면 단순예측의 예측 능력이 나쁜 건 아니라는 느낌이 듭니다. 물론 단순예측이 기관의 예측보다 못한 때도 있죠. 1999~2001년, 2003~2004년, 2006년이 그렇습니다. 하지만 기관들보다 예측을 잘한 때도 있습니다. 2002년, 2005년, 2007~2009년이 그러하죠. 이 정도라면 단순예측이 기관들보다 못하다고 할 수 없겠죠?
물론 과거 10 여년의 경제성장률 하나만 가지고 경제연구기관들의 예측 능력이 별로라고 단정지을 수는 없습니다. 그러, 경제성장률이 가장 중요하게 다뤄지는 지표라는 점에서 볼 때 솔직히 실망스러운 수준입니다. 단순예측보다 나을 것이 없다는 윌리엄 A. 서든의 노골적인 주장에 공감할 수밖에 없습니다.
경제연구기관들은 2009년 말에 2010년의 경제성장률을 4.3 ~ 5.0%로 예측했습니다. 이에 반해 단순예측값은 0.0%입니다. 왜냐하면 2009년의 실제 경제성장률이 0.2%였기 때문이죠. 2010년의 실제 경제성장률은 아마 3월 쯤 가서야 나올 텐데요, 과연 기관과 단순예측 중 무엇이 더 근사하게 맞힐까요?
아무튼 미래를 예측하는 일은 매우 어렵습니다. 어려운 게 아니라 불가능합니다. 전문가들도 불가능한 일입니다. 어쩌다 맞혔다 해도 그것은 운일 뿐이지 능력이 아닙니다(전문가들은 자기 능력이라 믿고 싶겠지만). 예측을 본업으로 하는 전문가들을 믿지 못한다면, 여러분은 미래를 대비하게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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