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잡하다'는 말의 진짜 의미는?   

2011. 1. 19.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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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흔히 "날이 갈수록 세상이 복잡해지고 불확실해진다"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도 그럴 것이 예전에 없던 신기술이 출현하고 새로운 제품이 혜성처럼 등장했다가 예상치 못한 일로 금세 말로를 걷기도 합니다. 어제 한 예측이 휴지조각이 되고, 오늘 내린 조심스러운 의사결정이 걷잡을 수 없는 파국을 만들기도 합니다. 과거에는 A를 입력하면 B가 발생한다는 식의 인과관계가 뚜렷했는데, 세상이 복잡해지면서 A를 집어넣으면 B가 생기질 않거나 전혀 다른 C가 모습을 드러냅니다.

이렇게 우리는 사람이 붐비거나 자동차가 도로에 꽉 막고 있을 때처럼 눈으로 직접 목격하는 복잡함 뿐만 아니라, 정치, 경제, 사회, 문화 현상에서 복잡다난하게 벌어지는 상황과 때론 폭발하는 모습을 자주 접하면서 '복잡성'이란 말을 현대를 규정 짓는 키워드로 인식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지금 이 시대가 단순하다고 말할 현대인은 거의 없을 겁니다.

그렇다면 '복잡성(complexity)'란 과연 무엇일까요? 단순함의 반대말인 복잡함을 우리는 어떻게 정의 내릴 수 있을까요? 일상생활에서 '복잡하다'란 말은 여러 가지 의미로 쓰입니다. 복잡함이란 우리 눈에 금방 파악이 안 되는 어지러운 상황('뭐가 뭔지, 참 복잡하네')을 일컫는 말일까요? 아니면 정원을 초과하여 승객을 실은 버스처럼 사람들이 옴짝달짝할 수 없는 상황('버스 안이 복잡하다')을 나타내는 말일까요?

이 질문에 답하기 전에 아래에 있는 두 개의 그림을 보기 바랍니다.


이 두 개의 그림 중에 어떤 것이 더 복잡할까요? 

아마 여러분 중 대부분은 왼쪽 그림이 오른쪽 것보다 더 복잡하다고 생각할 겁니다. 여러분은 왜 왼쪽 그림이 오른쪽 그림보더 더 복잡하다고 생각한 걸까요? 왼쪽 그림은 일단 동그라미의 개수가 많습니다. 그리고 인과관계를 나타내는 화살표로 연결되어 네트워크를 형성합니다. 반면, 오른쪽 그림은 동그라미가 4개 뿐이고 서로 인과관계도 없습니다. 4개의 동그라미가 독립적인 섬처럼 존재하죠. 그래서 여러분은 왼쪽 것이 오른쪽 것보다 복잡하다고 결론 내렸을 겁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여러분이 이런 식으로 판단했다면, 복잡성의 정의를 "시스템을 설명하기 위해 문장이 길어지거나 여러 문장을 사용해야 할수록 복잡하다"라고 이해하기 때문입니다. 물리학자인 머리 겔만(Murray Gell-Mann)이 이렇게 정의 내렸죠. 시스템 전체를 완전하게 설명하기 위해 필요한 시간, 자료, 노력 등의 정도가 바로 복잡성이라는 겁니다. 버스에 승객이 5명일 때보다 50명일 때가 더 복잡하다고 여기는 것처럼 말입니다. 

위에서 왼쪽 그림이 더 많은 동그라미를 가지고 있고 화살표(인과관계)도 많기 때문에 누군가에게 그림의 내용을 설명하려면 오른쪽 그림보다 더 긴 시간이 필요합니다. 설명을 끝내고 물 한 모금 마셔야 할 만큼 목이 마르겠죠. 설명을 다 해줘도 듣는 사람이 온전히 이해하지 못해서 재차 설명해줄 것을 요청할 가능성이 큽니다. 반면 오른쪽 그림에 대해서는 "동그라미 4개가 서로 독립적으로 존재한다"란 짧은 설명으로 모든 게 끝나니 단순하기 그지 없습니다.

이러한 복잡성의 정의는 실생활에서 사용하는 '복잡하다'란 말의 의미와 통하기 때문에 쉽게 이해가 될 겁니다. 그러나 시스템에서 발생하는 '문제 해결'에는 그다지 유용하지 않습니다. 그저 시스템의 현상을 기술하는 것에 지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시스템이 어떻게 될지를 예측하거나, 시스템에 뭔가가 이상이 발견되면 '좋은 쪽'으로 변화시키고자 할 겁니다. 그래야 문제가 해결되기 때문이죠. 이를 위해서는 시스템이 얼마나 '자유로운지'를 따져봐야 합니다. 즉 시스템의 '자유도(degree of freedom)'가 얼마인지 알아야 합니다.

물리학, 통계학 등에서 자유도를 조금씩 다른 의미로 쓰는데, 일반화해서 말하면, "시스템의 변화를 일으키는 데 사용되는 독립적인 변수의 개수"를 말합니다. 말이 조금 어렵지만, 알고 보면 쉽습니다. 여러분이 테이블 위에서 장남감 자동차를 이리저리 움직인다고 생각해 보세요.

그 자동차를 어떤 방향으로 움직일 수 있습니까? 좌/우 아니면 위/아래죠? 그렇기 때문에 장난감 자동차의 자유도는 2입니다. 만일 자동차를 테이블 위로 번쩍 들어올리는 행동을 허용한다면 자유도는 3이 되겠죠. 쉽게 말해, 자동차는 3차원 공간에 있기 때문에 자유도가 3입니다.

자유도가 클수록 복잡성이 큽니다. 2차원(자유도 2) 평면에서의 자동차 움직임보다 3차원(자유도 3) 공간에서의 움직임이 더 다양하게 변하기 때문입니다.

복잡성을 자유도와 같은 관점으로 정의 내리면, 오른쪽 그림이 왼쪽 그림보다 더 복잡해지는 반대의 결과가 나옵니다. 왜 그럴까요? 그림을 다시 한번 볼까요?


오른쪽 그림을 하나의 시스템이라고 보면, 시스템을 변화시키려면 4개의 동그라미를 모두 건드려야 합니다. 즉 자유도가 4이죠. 반면에 왼쪽 그림은 겉으로 보기엔 복잡한 것 같지만, 맨 위쪽에 있는 빨간 동그라미만 변화시키면 그 변화의 영향이 나머지 동그라미에 퍼짐을 화살표들이 알려줍니다. 즉 자유도가 1입니다. 따라서 오른쪽 그림이 왼쪽 그림보다 더 복잡합니다. 여러분이 문제 해결을 위해 시스템을 변화시키고자 한다면 아무래도 자유도가 작은 게 용이하겠죠?

복잡성을 자유도의 개념으로 이해하면, 현상을 바라보는 시각의 전환이 필요함을 깨닫게 됩니다. 겉으로 보기에 복잡(왼쪽 그림)하더라도 실상은 하나나 두 개의 요소만이 핵심원인인 단순한 상황일지 모릅니다. 반대로, 단순한 상황(오른쪽 그림)처럼 보여도 실제로는 매우 복잡할 수 있죠.

여러분이 문제를 해결하는 입장에서 복잡성을 올바로 판단하는 일은 매우 중요합니다. '겉보기 복잡성'과 '실(實) 복잡성'을 잘 구분해야 합니다. 복잡하지 않은 것을 복잡하다고 판단해 버리면 복잡한 해법만이 문제를 풀 수 있다고 지레 겁을 먹고 문제 해결을 포기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입니다. 또한, 단순하지 않은 것을 단순하다고 여기면 아무런 해법도 시스템을 변화시키지 못해 미궁에 빠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좀 어려웠나요? 어떤 면에서 복잡함과 단순함은 동시에 존재할 수 있습니다. 복잡성의 개념을 올바르게 이해하고 시스템(혹은 문제)의 복잡성을 올바르게 판단할 수 있는 능력. 이것은 '문제 해결의 연속이라는 삶'을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역량임을 기억하기 바랍니다.

(*참고도서 : '초이스', 위의 그림은 이 책에 실린 그림을 변형해 옮긴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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