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원의 능력은 조직의 책임   

2011. 3. 16.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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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트리얼 맥길 대학의 제프리 모길과 일리노이 대학의 연구자들은 특이하고 재미있는 실험을 10년 동안 계속해오고 있습니다. 바로 '생쥐 꼬리를 뜨거운 물에 담그는 실험'입니다. 모길의 실험이 생쥐 입장에서 보면 불쾌하고 잔인한 실험일지 모르지만, 실험의 목적은 49도 정도되는 뜨거운 물에 생쥐의 꼬리를 담그면 생쥐들이 고통에 어떤 반응을 보이느냐를 관찰하기 위함이었습니다. 49도는 생쥐가 느끼기에도 뜨겁기 때문에 꼬리를 담그자마자 생쥐들은 얼른 꼬리를 빼내겠죠?

헌데 뜨거움에 반응하는 속도는 생쥐마다 달랐습니다. 즉시 꼬리를 빼는 생쥐가 있는 반면, 어떤 쥐들은 1~2초 늦게 꼬리를 빼고, 심지어 3~4초나 늦게 꼬리를 빼는 생쥐도 있었습니다. 실험실의 환경과 조건은 모든 생쥐에게 동일했기 때문에 고통에 민감하냐 둔감하냐의 정도는 오로지 생쥐들에게서 기인한다고 봐도 됩니다.



그렇다면 생쥐의 어떤 면이 고통에 대한 민감성을 결정할까요? 아마 여러분은 생쥐들 각각의 유전적 차이에 의해서 민감성이 결정되는 것은 아닐까 생각할지 모르겠네요. 맞습니다. 모길이 10년 동안 계속해서 실험을 하면서 어떤 유전형을 가진 쥐들은 다른 쥐들보다 평균적으로 빨리 꼬리를 뜨거운 물에서 빼냈습니다. 이로써 유전자가 행동을 결정한다는 소위 '유전자 결정론'이 증명된 듯했습니다.

하지만 이야기는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모길이 실험 데이터를 좀더 면밀하게 따져본 결과 유전자가 아닌 다른 요인이 꼬리를 빼내는 반응에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그게 무엇일까요? 8천 마리 이상의 생쥐를 괴롭혀서 모길이 깨달은 제2의 요인은 바로 '환경'이었습니다.

생쥐들은 같은 유전형을 가지더라도 서로 생육된 환경이 제각각이었습니다. 생육된 환경을 추적해보니 바글바글거리는 비좁은 곳에서 자란 생쥐가 있는 반면, 넓은 곳에서 자란 생쥐가 있었습니다. 생육 환경 뿐만 아니었습니다.단순히 실험을 위해서 생쥐를 방에서 처음 꺼냈느냐 아니면 두 번째나 세 번째로 꺼냈느냐도 꼬리 빼기 반응시간에 영향을 미쳤으니까요. 게다가 실험을 점심 때 했느냐 저녁 때 했느냐도 영향을 끼쳤습니다.

모길이 이렇게 개별 생쥐에게 주어진 환경적인 차이를 가능한 한 모두 기록해서 데이터를 분석했더니, 생쥐의 유전형보다 실험을 누가 수행했느냐가 더 중요한 변수라는 것이 발견됐습니다. 우습게도 누가 생쥐를 우리에서 꺼내와서 생쥐의 꼬리를 뜨거운 물에 담갔느냐가 유전자보다 더 중요한 요인이었습니다. 종합적으로 상관관계를 분석해 보니, 꼬리를 빼는 반응시간에 유전적인 요인은 27%, 환경적인 영향은 42%, 유전자와 환경의 상호작용이 19%의 기여를 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꼬리를 뜨거운 물에서 빼내는 행동은 단순한 무조건반사입니다. 그래서 오직 유전자만이 관여할 거라고 여겨지는 행동이죠. 그런데도 환경이 유전자보다 더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만약 꼬리 빼내기보다 더 복잡한 행동(예컨대 미로 속에서 먹이를 찾아내는 행동)이라면 환경이 미치는 영향이 더 클 것이라고 모길은 추측했습니다.

이 실험이 시사하는 바는 유전자 뿐만 아니라 환경이 인간의 행동에 막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입니다. 인간을 오직 유전자의 숙주 혹은 '유전자 기계'로 보는 것은 잘못됐다는 것이죠. 유전자는 기본적인 밑그림일 뿐, 그 위에 어떤 색깔로 채색을 하냐는 환경의 몫이라는 시사점도 줍니다. 결국 인간의 행동은 유전자와 환경의 합동 작품이지 어느 한 쪽의 단독 콘서트가 아닙니다.

경영에서 모길의 실험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요? 직원들이 보이는 능력과 성과는 보통 직원 각자가 가진 오직 두뇌에 의해 결정된다는 사고방식은 지양되어어야 함을 시사합니다. 지능이나 선천적인 능력이 중요치 않은 것은 아니지만, 그 직원이 조직 내에서 어떻게 다루어지느냐가 더 큰 요인이라는 점이죠. 머리 좋고 학력 좋은 직원이 조직에 들어와 그저그런 범재(凡才)가 되는 일이 잦다면 조직이 그런 직원들의 능력을 키우는 좋은 토양이 못된다는 뜻일 겁니다.

'인사가 만사'라는 말이 있듯이, 좋은 조직의 제1조건은 범재로 들어온 직원을 준재(俊才)로 키워내는 제도적이고 문화적인 인프라입니다. 그리고 조직의 성공과 실패 여부를 직원들 개인에게 떠넘기는 식의 '개인 중심의 성과관리'는 그러한 좋은 조직 풍토를 망가뜨리는 나쁜 제도가 될 수 있습니다. 100명의 직원을 뽑아 그들 대부분을 좋은 인재로 키울 기회를 마다하고 그들 중 뛰어난 유전적 능력을 갖춘 사람을 선택하겠다는 식으로 성과관리가 과도한 경쟁을 유도하지 않는지 되돌아 볼 일입니다.

직원들의 성과가 성에 차지 않고 능력이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한다면 그것은 직원들 자신만의 책임은 아닙니다. 조직의 그들의 능력을 십분 발휘하도록 이끌어내지 못한 조직의 책임이 큽니다. 비전이 없고 전략이 부실할뿐더러 사업이 경쟁력이 없는데 직원들이 어떻게 자기 능력을 회사에서 발휘할 수 있을까요? 직원들의 성과가 오로지 유전적 차이에서 기인한다고 하더라도 역시 애초에 능력이 떨어지는 사람을 채용한 조직의 책임이죠. 따라서 회사 성과의 책임을 개인들에게 묻는 성과관리는 잘못한 사람은 따로 있는데 엉뚱한 사람을 벌주는 것과 같습니다.

일 못하는 직원들을 싹 내보내고 일 잘하는 스타 직원들로만 조직을 채우면 회사가 잘 나갈까요? 이런 생각은 너무나 순진합니다. 머지 않아 예전과 똑같아진 모습을 목격할 테니까요. 직원의 능력은 조직의 책임입니다.

(*참고논문 : http://www.ncbi.nlm.nih.gov/pubmed/12667496 )
(*참고도서 : '호모 루두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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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정적인 사람이 똑똑한 사람?   

2011. 3. 15.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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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명의 관리자가 있습니다. 한 관리자는 부하 직원들을 최대한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회의 때는 다른 사람이 낸 아이디어를 수용하려고 노력하는 사람입니다. 반면, 다른 관리자는 부하 직원들을 비판적으로 평가하고 회의에 참석해서는 다른 사람이 내놓은 의견의 문제점을 짚어냄으로써 설익은 아이디어가 실행되지 못하도록 하는 사람입니다. 여러분이 두 관리자의 상사라면, 둘 중에 누가 더 똑똑하게 보일까요? 둘 중에 누구에게 높은 평가를 내리겠습니까?

아마 여러분은 위의 요약된 내용만을 보고서 후자보다는 전자의 관리자가 더 훌륭한 사람이다, 그 사람을 승진시켜야 한다, 라고 판단할지 모릅니다. 보통 우리는 사물의 긍정적인 면을 바라보고 다른 사람의 의견을 수용하는 열린 자세를 가지라고 배웁니다. 비판이나 비난보다는 조언과 충고가 타인의 발전을 이끄는 진정한 힘이고 그로인해 자신도 한층 높은 나은 삶의 목표에 다가설 수 있다고 믿습니다. 그래서 전자의 관리자가 더 똑똑한 사람이고, 후자보다 당연히 높게 평가해야 한다고 생각하겠죠. 그러나 실제로 그럴까요?



실제로 그러한지 실험을 수행한 사람은 하버드 경영대학원의 테레사 애머바일 교수였습니다. 피실험자들은 대학생들이었습니다(교수들은 피실험자로 대학생들을 아주 좋아합니다. 어쨌든...). 남자 28명, 여자 27명이었죠. 애머바일은 뉴욕 타임스 일요판에 실린, 2개의 짧은 서평을 준비했습니다. 하나는 대상이 된 소설책에 대해 아주 긍정적인 서평이었고, 다른 하나는 아주 부정적인 서평이었죠.

사실 이 두 서평은 한 사람이 쓴 것입니다. 실험 결과가 서평의 스타일과 필력에 영향을 받지 않게 하려는 조치였죠. 두 서평의 길이를 똑같게 조정하고, 서평자들이 출판사의 편집자들임을 알린 다음에 피실험자인 대학생들에게 읽도록 했습니다. 그런 다음, 두 서평자에 대해서 평가를 내리도록 지시했습니다. 피실험자들이 평가해야 할 항목은 다음과 같이 8개였습니다.

- 문학적인 전문성
- 지적 능력
- 편집자로서의 역량
- 친절함
- 경력상의 성공 여부
- 자신감
- 공정성
- 호감

평가 결과, 부정적인 서평자가 긍정적인 서평자보다 더 똑똑한 사람이라고 인식된다는 사실이 나타났습니다. 물론 '호감'이나 '친절함' 같은 항목에서 부정적인 서평자가 낮은 평가를 받았지만, '문학적인 전문성', '지적능력', '편집자로서의 역량' 등에서는 긍정적인 서평자보다 높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애머바일은 이 실험 결과에 '명석하지만 잔혹한'이라는 이름을 붙이면서, "비관론만이 심오하게 들린다. 낙관론은 피상적으로 들린다"라고 해석했습니다. 다른 사람의 의견이나 아이디어에 비판적이고 부정적인 평가를 내리는 사람을 더 똑똑한 사람이라고 여긴다는 사실을 실험으로 밝힌 겁니다.

'되는 이유'는 한 가지이지만, '안 되는 이유'는 마음만 먹으면 수십 가지를 갖다 댈 수 있습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의 의견을 반대하고 공격하는 일이 그 의견을 지지하는 것보다 더 쉽습니다. 그런데도 반대를 '일삼고' 남에게 상처를 주면서까지 공격하는 사람을 더 똑똑하다고 평가한다는 게 참으로 아이러니입니다. 진짜로 똑똑한 사람은 어떤 아이디어의 '되는 이유'를 발굴하거나 지지하는 사람일 가능성이 큰데도 말입니다.

또한 '똑똑하게 말하는 것'과 '똑똑한 것'은 엄밀히 따지면 관계가 없습니다. 그리고 '말이 많은 것'과 '똑똑한 것' 사이에도 상관성이 미약합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똑똑하게 말하는 사람과 말이 많은 사람, 그리고 공격적인 사람을 높게 평가하고 그들을 리더로 끌어올리는 우를 자주 범합니다. 그리고 그들의 말에 따라 의사결정을 내리고 행동합니다. 똑똑하다고 평가 받은 사람이니 똑똑한 길로 조직을 안내할 거라는 믿음으로...

긍정적인 사람과 부정적인 사람, 어떤 성향을 가진 사람이 조직의 발전을 위해 기여할 수 있는 사람일까요? 전자라고 생각하겠지만, 실제로 후자가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선택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에 주의할 필요가 있습니다. 여러분의 조직을 돌아보면 전자와 후자  중에 누가 더 많은 실권을 쥐고 있습니까?

'명석하지만 잔혹한' 사람들이 조직의 리더 자리를 하나둘 꿰찰 때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제프리 페퍼는 '그들은 위험한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그들은 어떤 일이 일어나는 것을 막을 만큼은 똑똑하지만 문제를 극복할 방안을 모색할 만큼 똑똑하지는 못합니다. 결국 그들은 조직의 정체를 심화시키는 '내부의 적'으로 행동하기 때문에 조직은 '실행력 제로'라는 위험에 처하겠죠.

조직관리를 통해 긍정적 사고와 부정적 사고의 균형을 맞추려는 중용의 사고가 필요합니다. 바로바로 평가할 수 있는 '말'보다는 일을 달성하는 능력, 리더십, 관리 능력처럼 시간을 가지고 오래 지켜봐야 평가가 가능한 부분에 초점을 맞춰야 합니다. '어떻게 들리느냐'가 아니라 '무엇을 하느냐'에 기초하여 평가해야 합니다. 경영의 중용을 바로 세우고 싶다면 말입니다.

'닥터 둠(Doctor Doom)'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누리엘 루비니 교수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별명이 타나내듯 비관론의 대명사인 그가 경제위기가 닥칠 때나 일본의 대지진 이후에 던지는 말 한 마디에 사람들은 귀를 기울입니다. 매번 비관적인 전망을 내놓으니 마음에는 안 드는 사람이지만 똑똑하고 명석한 사람이라고 사람들은 생각하는 모양입니다. 루비니 교수가 진짜 똑똑한 사람이고 미래를 내다보는 현자일지 모르지만 '잔혹한' 사람임은 틀림 없어 보입니다. 우리는 낙관론을 가질 권리도 있으니까요.


(*참고 논문 : 'http://www.eric.ed.gov/PDFS/ED211573.pdf )
(*참고 도서 : '생각의 속도로 실행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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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진은 왜 예측이 불가능할까?   

2011. 3. 14.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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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다시피 일본은 여러 지각판이 충돌하는 위치에 자리잡고 있는 탓에 크고 작은 지진이 늘 발생하는 나라입니다. 몸으로 느껴지지 않는 작은 지진들은 거의 매일 일어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대지진의 기록을 살펴보면 도카이 지역에서 각각 1707년과 1854년에 일어난 소위 '도카이 대지진'이 가장 유명합니다. 또한 1923년에 일어난 관동대지진 뿐만 아니라 1927년, 1943년, 1948년에도 여러 지역에서 대지진이 발생했죠.

1995년 1월 17일 오전 5시 45분에는 지질학적으로 수백 년 간 안정된 곳이었던 고베에서 대지진이 일어났습니다. 이 지진으로 지각은 15킬로미터나 갈라졌고 핵폭탄의 100배가 넘은 위력으로 땅을 흔들어댔습니다. '고배 대지진'은 단 몇 초만에 5천명이 사망하고 3만명이 부상 당하는 참사로 이어졌죠. 그때 TV로 전해진 고베 시는 전쟁터를 방불케 했습니다.



그리고 바로 지난 금요일에 지진해일(쯔나미)을 동반한 대형 지진이 일본 열도를 흔들어놓았습니다. 최대 10미터 높이의 해일이 바닷가 마을을 덮치면서 모든 것을 쓸어버리는 방송 화면을 보고 경악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밀려오는 검은 물을 피해 도망치던 자동차, 그 자동차에 타고 있던 사람이 느꼈을 공포심을 생각하면 몸서리가 쳐집니다. 지진에 철저히 대비한 일본이었지만 지진이 발생한지 몇 분 만에 시속 6~700킬로미터가 넘는 속도로 들이닥친 쯔나미에는 속수무책이었습니다.

지구 여기저기에서 계속되는 지진 참사를 볼 때마다 왜 지진 발생을 예측하지 못하는지 의문이 듭니다. 비록 완벽하지는 않지만 일기예보는 90% 이상의 확률로 내일의 날씨를 예측하여 하루에도 수십 번 발표하는데, 왜 지진은 그렇지 못하는지 의아해집니다. 애석하게도 지질학자들은 지진 발생 시점을 동전 던지기 이상의 확률로 예측하는 일은 불가능에 가깝다고 이야기합니다.

앞에서 말한 도카이 대지진은 1707년과 1854년에 각각 발생했습니다. 두 지진의 시간 간격은 대략 150년이라서 2000년대 초반에 도카이 지역에 대지진이 다시 발생할 거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도카이 대지진은 아직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방송에서는 이번에 발생한 '동북지방 태평양 지진'을 보도하면서 일본인들이 곧 도카이 대지진이 도래할 거라 우려한다는 소식을 전하더군요. 물론 앞으로 도카이 대지진이 일어날 가능성이 없는 건 아니지만, 앞서 일어난 두 개 지진의 시간 간격으로 앞으로 일어날 지진의 시점을 예측한다는 것은 지나치게 단순한 추측입니다.

그렇다면 왜 지진의 발생은 예보가 불가능할까요? 여기서 말하는 예보란 '향후 1년 내에 OO지방에 지진이 발생한다'와 같은 해도 그만 안해도 그만인 예측이 아니라, 적어도 동전던지기 이상의 확률, 1일 정도의 정확도, 반경 50킬로미터 이내의 적중도를 지닌 예측을 말합니다. 그래야 사람들이 미리 알고 대피할 수 있겠죠.

1915년 지구물리학자인 알프레도 베게너(Alfredo Wegener)가 대륙이동설이란 가설을 제안함에 따라 발전된 ‘판(板)구조론’에 의하면, 지구의 지각은 여러 개의 판으로 나뉘어 있고 각 판은 지구 내부의 맨틀이라고 불리는 반(半)고체 상태의 물질 위를 떠다닙니다. 대류 작용으로 인해 뜨거운 맨틀을 떠다니는 판들은 서로 밀고 밀리다가 어떨 때는 정면으로 충돌하여 맞물리기도 하죠. 이 때 서로 맞물리게 된 두 개의 판은 마찰력 때문에 서로 움직이지 못하고 있다가 어느 순간에 이르게 되면 미끄러지기 시작하면서 움직이지 못했던 동안 축적됐던 에너지를 한꺼번에 발산합니다. 이것이 지진이 발생하는 메커니즘입니다.

어찌 보면 단순한 메커니즘임에도 불구하고 지진 예보가 불가능한 이유는 판 구조의 복잡성 때문입니다. 각 판은 수백 수천 종의 바위로 구성되어 있는데, 어떤 바위는 무르고 어떤 바위는 단단해서 마찰력의 크기가 제각각입니다. 똑같은 스트레스를 가해도 쉽게 미끄러지는 바위가 있는가 하면 꿈쩍거리지 않고 그 힘을 내부에 축적하는 바위가 있죠. 이런 각양각색의 바위들이 지각의 여러 단층에 복잡한 패턴으로 퍼져 있기 때문에 쉽게 지진의 발생을 예측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퍼 백(Per Bak)과 차오 탕(Chao Tang)은 두 개의 나무판과 용수철로 연결된 나무토막을 가지고 지진의 발생 원리를 컴퓨터로 시뮬레이션했습니다. 그들은 이 시뮬레이션을 통해 판에 있는 수많은 바위 중에서 어느 것이 최초로 미끄러지기 시작했는지에 따라 대지진과 작은 지진의 여부가 결정되고, 대지진이라고 해서 특별한 원인이 존재하는 것은 아니라는 가설을 내놓았습니다.

그래서 지진은 예측 불가능하고 사전에 아무런 경고 신호를 보내지 않는다는 것이 그들이 내린 결론이었죠. 지진의 크기는 최초에 어떤 바위가 어느 만큼 미끄러졌는지, 또 그 미끄러진 바위가 다른 바위에 얼마만큼 영향을 미쳤는지 등 미세한 차이에 따라 결정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백과 탕은 단층의 바위들은 복잡한 상호작용의 그물망, 즉 네트워크 위에 놓여져 있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하나의 바위가 미끄러지면 인접한 여러 개의 바위에 영향을 미치고 바위들의 성질에 따라 그 움직임이 판 전체로 확산되거나 혹은 흡수됩니다. 바위들 간의 상호작용이 강할수록 미세한 차이에 의해 전혀 예측할 수 없는 방향으로 나아가게 됩니다. 이렇게 과도하게 민감한 상태를 임계상태(Critical State)라고 하죠.

이러한 임계상태가 원래 자연의 특징인지, 아니면 인간이 조장한 결과인지에 대해서 말들이 나옵니다 소위 '가이아 이론'을 들먹이면서 대지진 발생을 두고 인간이 지구를 혹사시켰기에 지구가 그에 반응하는 것이라는 주장도 들려오더군요. 지진 발생 회수가 근래 들어 급증했다는 근거를 대면서 말입니다. 하지만 지진 발생 회수의 증가는 늘어난 지진 감지 장치의 수에서 기인하는 것입니다. 또 최근에 머릿속에 각인될 만한 대지진이 연달아 발생한다고 해서 앞으로도 그럴 거라고 주장하는 것은 '최근성의 오류'일 뿐입니다. 인간이 지진 발생을 부추긴다는 증거는 아직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습니다(물론 온실가스 증가에 인간이 기여(?)하는 건 사실이죠).

어쨌든 지진 예보는 불가능하다는 우울한 결론으로 이 글을 끝내야겠군요. 예측보다는 대비가 더 중요하다는 말을 하고 싶지만, 이번에 일어난 지진처럼 도망칠 여유도 없이 들이닥친 경우를 보니 철저한 대비도 완벽할 수는 없음을 느낍니다. 예측도 실패하고 대비도 실패한다면, 우리는 무엇에 기대야 할까요? 자연 현상에 겸허해질 수밖에 없는 걸까요?

이번 지진의 희생자들에게 심심한 애도의 뜻을 전합니다.


(*참고도서 : '세상은 생각보다 단순하다', 마크 뷰캐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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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량은 인사의 기초   

2011. 3. 11.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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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이 제대로 된 평가를 받는 회사에 근무한다면 업적평가와 함께 역량평가를 받을 겁니다. 역량평가를 실시하려면 먼저 '역량모델'이 설계가 되어야 합니다. 역량모델은 조직에서 하나의 역할을 효과적으로 수행하기 위해 필요한 지식, 기술, 특성의 조합을 의미하는 것으로서, 선발, 교육, 평가, 승계계획(Succession Plan) 등을 위한 관리도구로 활용됩니다.

역량모델을 구축하는 방법, 즉 역량모델링은 많은 기업들이 이미 실행 중이라 자세한 내용은 잘 알고 있으리라(여러분이 인사 담당자라면) 판단됩니다. 헌데 제법 많은 사람들이 역량모델에 대해 몇 가지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그 중 가장 자주 제기되는 오해 3가지는 다음과 같습니다.

1) ‘역량모델 자체가 필요하지 않다. 즉, 무엇이 역량인지 이미 다 알고 있다’ 라는 오해
2) ‘환경이 계속해서 변하는데 어차피 바뀔 역량모델에 왜 힘을 쓰는가’ 라는 오해
3) ‘역할과 직무가 다양한데 하나의 모델로 표현할 수 있는가’ 라는 오해



첫 번째 '역량모델 자체가 필요하지 않다'란 오해는 일반적으로 회사에 오래 근무한 관리자들이 자주 제기하는 것인데, 직원들이 우수한 성과를 올리기 위해 필요한 역량을 이미 다 안다는 직감에서 나오는 오해입니다. 그들은 정리되지는 않을 뿐이지 다 아는 것을 돈을 들이고 직원들의 시간을 뺏어가면서까지 ‘멋있게’ 정리하고 증명할 필요가 있냐는 반대 의사를 보입니다.

이러한 오해는 어떻게 해서 발생하는 것일까요? 여러 회사의 인사 담당자와 인터뷰를 해보면, 몇몇 인사 담당자는 역량모델의 중요성을 인식하지 못하는 듯 합니다. 그들은 직무기술서를 뭔가 있어 보이게 만들는 것에 불과하다고 여기기도 합니다.

그런 생각의 근본원인은 두 가지로 볼 수 있는데, 첫째는 몇몇 소수(일반적으로 경영자나 인사부서)의 직감으로 역량모델을 ‘대충’ 만들어 낸 탓에 담당자 스스로 신뢰를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둘째는 역량모델을 구축해 놓고도 그것을 선발, 평가, 교육 등 인사제도에 적절하게 반영하거나 활용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전시용으로 만들어 낸 역량모델이니 인사 운영에 활용될 리 만무할 겁니다. 바로 이런 관행 때문에 역량모델을 구축해야 한다고 조언하면, ‘우리 조직의 역량모델이 무엇인지 잘 안다. 다만 활용하지 않을 뿐이다’ 라는 말을 자주 듣게 되는 것이죠.

이러한 오해와 저항에 대하여 인사부서가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요? 역량모델링은 무엇이 우리 조직의 성과 향상을 위해 필요한 역량인지 밝히는 과정입니다. 다시 말해 수 차례의 인터뷰와 서베이와 관찰을 통해 직원들이 공통적으로 공유하는 생각을 명확히 도출하는 과정입니다. 이렇게 도출된 역량모델을 선발, 교육, 평가 등에 적용하여 성과의 지속적인 향상이 가능하게 됐다면 역량모델에 투자할 만한 가치는 충분합니다.
 
오래 근무한 구성원일수록 과거의 사고방식, 기업환경 등에 기초하여 역량을 판단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예를 들어, '상명하복’과 같은 구닥다리 신념에 근거한 역량을 주장하기도 합니다. 이런 과거의 신념들을 깨뜨리고 새로운 조직문화 구축을 가속하기 위해서라도 역량모델은 반드시 필요합니다.

두 번째  ‘환경이 계속해서 변하는데 어차피 바뀔 역량모델에 왜 힘을 쓰는가'란 오해는 수시로 변화하는 기업 환경 때문에 어차피 다시 뜯어 고쳐야 할 것이라면 뭐하러 비용과 시간을 소요해 역량모델을 설계해야 하는가, 라는 생각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기업이 시장의 요구에 신속하고 정확하게 대처하여 경쟁에서 이기기 위한 체질을 갖추는 일은 단시간에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역량모델은 특정한 상황에 일회적으로 대응하기 위한 처방이 아니라, 보다 근본적이고 장기적인 관점에서 기업이 갖추어야 할 ‘역량’이 무엇인지 밝혀내어 구체화한 것입니다. 예를 들어, 많은 기업이 고객관계관리시스템(CRM)을 구축했거나 구축 중인데 앞으로 몇 년 후에 다른 종류의 시스템이 도입되거나 변경될 수는 있겠지만, 역량모델은 ‘고객관리’를 일관된 기준을 가지고 실행하도록 기업 고유의 ‘철학’을 제시합니다. 따라서, 역량모델이 환경에 따라 쉽게 변한다면 이것은 기업의 경영철학이 매번 환경에 따라 손바닥 뒤집듯 바뀐다는 것과 다를 바 없겠죠.

세 번째 ‘역할과 직무가 다양한데 하나의 모델로 표현할 수 있는가’ 란 오해는, 조직 내에 운영관리자, 영업관리자, 생산관리자, 연구원 등 서로 다른 지식과 기술을 필요로 하는 역할과 직무가 다양한데 이를 역량모델이라는 하나의 공통모델로 묶으려는 시도는 잘못된 것이라는 주장에서 비롯됐습니다. 이는 역량모델의 구성을 잘못 이해하기 때문입니다.

역량모델은 일단 전사 공통적으로 요구되는 역량을 먼저 고려하여 설계됩니다. 즉, 인사팀장이든 영업사원이든 우리 회사 사람이라면 공통적으로 갖추어야 할 행동의 특성을 명확하게 해 주는 것이 역량모델입니다. GE의 경우 ‘1등 아니면 2등’ 철학은 일부의 역할 및 직무에 한정된 것이 아니라 모든 구성원에게 요구되는 사고와 행동의 특성을 규정하는 '지시봉'입니다.

앞서나가는 기업이라면 경영자에서 말단 사원을 꿰뚫는 서너개의 역량이 무엇인지를 파악해야 하며 역할 또는 직무별로 그런 역량을 갖추기 위한 방법을 구체적으로 알아야 합니다. 세번째 오해에서 말하는 역할 및 직무별 다양성은 ‘역량의 개별적 구성’이 아니라 ‘역량개발방안의 차별성’으로 이해되어야 합니다. 또한 역량모델은 전사적으로 공통적으로 갖추어야 할 역량(이를 공통역량이라 함) 뿐만 아니라, 각 역할과 직무에 따라 특수하게 요구되는 개별역량(이를 직무역량이라 함)도 함께 고려하기 때문에 세 번째 오해는 잘못된 것입니다.

물론 역량모델을 갖춘다고 조직의 성과가 향상되는 것은 아닙니다. 역량모델을 성과를 창출하기 위한 여러 필요조건 중 하나이지 충분조건은 아니기 때문이죠. 그러나 역량모델은 인사제도의 기초공사에 해당합니다. 기초공사 없이 그 위에 인사제도를 쌓아올릴 수는 없는 일입니다. 회사의 비전에 직원들의 행동과 사고를 정렬시키는 도구인 역량모델을 다시 점검해 보기 바랍니다. 회사는 이 산으로 가려고 하는데 직원들은 저 산으로 가고 있을지 모르는 일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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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세의 머리에 뿔이 난 이유   

2011. 3. 10.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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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도 알다시피 유태인들은 오래 전부터 유럽인들의 질투와 미움의 대상이었습니다. 질긴 생활력과 경제력, 독특한 종교와 신념 등이 유럽인들의 눈에는 고까워 보였나 봅니다. 아돌프 히틀러가 나타가 유태인과 집시를 절멸시켜야 하는 열등한 종족이라고 말하면서 잔인한 유태인 말살 정책을 펴기 이전부터 사람들의 마음 속에 유태인은 자신들과 다른 이상하고 불쾌한 존재로 인식되었습니다.

유태인을 처음 본 사람들은 유태인들에게 뿔이 어디에 달렸냐고 물어 볼 정도였습니다. 일종의 고정관념이었죠. 이런 고정관념은 미술 작품에도 그대로 나타나 있습니다. 미켈란젤로가 만든 모세의 조각상을 보면 머리에 뿔 두 개 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미켈란젤로 뿐만 아니라 도나텔로 등 유명한 예술가들의 작품에도 머리에 뿔이 난 모세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미켈란젤로의 '모세상'
(머리 위에 두 개의 뿔이 보입니다)

모세는 바로 유태인들을 대표하는 인물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것을 보고 모든 유태인들의 머리에는 뿔이 달렸다고 믿게 된 겁니다. 그렇다면 왜 이런 고정관념이 형성된 걸까요? 모세의 머리엔 진짜 뿔 두 개 있었던 걸까요?

이런 고정관념은 작은 실수에서 비롯됐습니다. 성경의 출애굽기 34장 29절부터 35절 사이에는 신과 소통한 이후 산에서 내려오는 모세의 머리와 얼굴에서 '광채가 발한다'는 식의 내용이 들어 있습니다. 정확히 35절에는 다음과 같이 기술돼 있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모세의 얼굴의 광채를 보므로 모세가 여호와께 말하러 들어가기까지 다시 수건으로 자기 얼굴을 가렸더라 (출애굽기 34장 35절)


중세 때 이 부분을 히브리어에서 라틴어로 번역하는 과정에서 오류가 발생했습니다. 광채나 광선을 뜻하는 히브리어 karan은 '뿔'이라는 뜻도 가지고 있는데, 번역자는 광채 대신에 뿔을 택하는 실수를 저지르고 말았던 겁니다. 수건으로 얼굴을 가렸다는 대목을 읽고는 뭔가 봐서는 안 되는 것이 모세의 머리에 있다고 생각해서 karan을 뿔로 보는 실수를 범한 듯 합니다. 

아니, 실수가 아니었을지도 모릅니다. 당시 번역자의 고정관념 속에는 사탄의 머리에 달린 뿔과 모세에 머리에서 빛나는 광채를 동일시했던 것일지 모르죠. 오역 하나 때문에 유태인들은 머리에 뿔 달린 존재, 사탄과 같은 존재로 오해를 받고 갖은 핍박을 받았으니 그들로서는 상당히 억울할 만한 일입니다.

많은 고정관념의 실체를 파고 들면 이처럼 아무것도 아닌 작은 실수 때문이라는 것을 종종 발견합니다. 그리고 설령 고정관념이 틀렸다는 사실이 발견되어도 쉽사리 고정관념을 버리려고 하지 않습니다. 수많은 유태인들의 머리에 뿔이 없다는 것을 눈으로 보아 왔으면서도 수천 년간 그런 고정관념이 없어지지 않은 것처럼 말입니다. 고정관념은 한번 형성되면 그것이 틀렸다는 증거가 나와도 약화는 될지언정 깨끗하게 사라지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가진 고정관념은 어떤 것들이 있습니까? 그 고정관념의 실체를 들여다보면 단어 하나를 잘못 번역한 것처럼 작은 실수 때문은 아닐까요? 잘못된 고정관념을 찾아 그것을 격파해 낸다면 보다 넓은 시야가 만들어지지 않을까요?


*덧붙이는 말
8년 전에 나온 어느 경영서를 보니 손익분기점(Break Even Point)라는 말이 '도산하는 시점'이라고 잘못 번역돼 있더군요. 이런 식의 작은 번역 실수(실수가 아니라 무지일지도...)가 독자에게 잘못된 정보를 줄 뿐만 아니라 엉뚱한 고정관념을 형성시킬까 우려됩니다.

(*참고도서 : '명료한 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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