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스크 관리의 리스크   

2011. 3. 29.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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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 증권회사, 보험회사와 같은 금융기관들은 금리, 환율, 유가 등에 시시각각 영향을 받기 때문에 필수적으로 리스크 관리 시스템(RMS)를 갖추고 있습니다(물론 없는 곳도 찾아보면 있겠지만). 요즘에는 금융기관뿐만 아니라 제조업이나 일반 서비스업에서도 환경을 둘러싼 여러 가지 리스크에 대비하기 위해 리스크 관리 기법을 채용하는 회사들이 제법 많아졌습니다.

회사마다 세부적인 내용은 조금씩 다르겠지만, 리스크 관리 체계의 기본적인 얼개는 다음과 같습니다.

먼저 조직 내외부에 존재하는 리스크를 파악합니다. 재무적인 리스크도 있고, 운영적인 리스크도 있습니다. 천재지변과 같은 자연 리스크가 있고, 사람들의 행동과 의사결정에 따른 리스크도 있지요. 이렇게 가능한 한 빠짐없이 기업의 성과에 영향을 미칠 만한 리스크를 인식하는 것으로부터 리스크 관리가 시작됩니다.



그 다음엔 각 리스크의 발생 가능성, 즉 발생확률을 추정합니다. 동시에 리스크가 현실로 나타났을 때 그 영향의 크기가 어떨지를 예측해 봅니다. 그러고는 발생확률과 영향의 크기를 곱해서 위험의 크기를 계산합니다. 예를 들어 공장에 화재가 발생한다는 '재해 리스크'의 확률을 1%이고 공장이 전소됐을 때의 예상 손실액이 100억 원이라고 하면, 이 리스크의 위험은 1억 원이 됩니다.

모든 리스크에 대해 이런 식으로 계산하면, 어떤 리스크가 가장 큰 위협이 되는지가 파악이 되겠죠? 이제 해야 할 일은 리스크를 헷지(hedge)하기 위한 계획을 수립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환 리스크를 헷지하려면, 결제 통화의 비율을 조정한다든지 다른 회사에 환 리스크를 전가한다든지 등 여러 방법이 있습니다. 제한적이긴 하지만 운영리스크(직원의 비리, 운영상의 실수 등)에 대해서도 헷지 계획을 수립할 수 있습니다.

이젠 수립된 헷지 계획을 실행합니다. 그러면서 제대로 실행에 옮겨지는지 점검하고, 문제점이 발견되면 기존의 헷지 계획을 수정 보완합니다. 만일 새로운 리스크가 발견된다든지, 발생확률과 영향의 크기가 달라져서 '가장 큰 위협이 되는 리스크'가 바뀐다면 그에 대한 헷지 계획도 수립해야 하겠죠. 리스크 관리는 이와 같이 전형적인 Plan-Do-See의 절차로 이루어집니다. 만일 여러분의 회사가 이와 같은 리스크 관리 체계를 갖추고 있다면, 어떤 리스크가 현실로 나타나도 튼튼하게 대비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들 겁니다.

하지만, 리스크 관리 체계에 대한 지나친 믿음은 오히려 매우 위험합니다. RMS 내에 리스크가 존재하기 때문이죠. 그 리스크는 바로 '블랙 스완(Black swan)'을 사전에 파악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위에서 리스크 관리의 첫 단계가 조직을 둘러싼 내외부의 리스크를 파악하는 일이라고 했는데, 이 단계에서 '발생확률은 아주 낮지만, 한번 발생하면 그 영향이 상상을 초월하는' 블랙 스완을 찾아내기가 그리 쉽지 않습니다. 아니, 어떤 면에서는 거의 불가능합니다. 설령 인지를 했더라도 '설마 그런 일이 발생하겠냐'며 쉽게 무시 당하기 때문이죠. 또한 광범위하게 리스크를 규명하면 할수록 '자신감 착각'이 강화되기 때문에 블랙 스완을 놓치는 역설에 빠집니다.

이번 일본 원전 사고가 블랙 스완의 전형적인 예입니다. 지진에 철저히 대비해왔던 일본조차 높이 10m 이상의 쯔나미가 몰려올지, 리히터 규모 9.0의 지진이 원전을 위태롭게 만들지를 예측하지 못했죠. 리스크 관리가 다른 산업에 비해 체계적으로 잘 구축된 미국 금융기관들이 서브 프라임 모기지를 대비하지 못해(혹은 알고도 무시해서) 전 세계적인 금융 위기를 몰고 온 것도 역시 블랙 스완의 대표적인 사례죠. 2001년에 발생한 9.11 테러, 최근에 중동을 휩쓰는 '쟈스민 혁명' 등도 역시 블랙 스완입니다.

이상하게도 사고는 예상했던 리스크가 아니라, 전혀 예상하지 않은 리스크게서 발생하고, 그 영향도 매우 큽니다. 아이러니하게도 리스크 관리 시스템은 관리가 가능한 리스크만 대응할 수 있기 때문에 어느 정도 안정되고 질서정연한 산업에서 유용합니다. 관리할 수 없는 리스크(블랙 스완)이 뛰쳐나오는 복잡한 환경에서는 가치가 적죠.

리스크 관리 체계의 두 번째 약점은 발생확률과 영향의 크기를 사전적으로 결정하기가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발생확률이 1%인지, 80%인지는 매우 자의적입니다. 게다가 미래의 일이라서 아무리 객관적인 정보를 수집한다 해도 발생확률의 정확성을 기하는 데에 한계가 있습니다. 특정 정보 하나가 발생확률을 1%에서 90%로 갑자기 끌어올리기도 하고, 그 반대의 경우도 왕왕 발생하니 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가장 위협이 되는 리스크'가 무엇인지를 잘못 결정할 수밖에 없고, 그에 따라 수립된 리스크 헷지 계획도 무용지물이 되는 일이 허다합니다.

리스크 관리 체계의 세 번째 약점은 리스크 헷지 계획이 '자신감 착각'을 불러일으킨다는 것입니다. 이 착각은 리스크를 파악할 때도 발생하지만, 가장 위협이 되는 리스크를 헷지하기 위해 정교한 기법과 절차를 수립함과 동시에 출현합니다. "자, 이렇게 만반의 대책을 세웠으니 문제 없겠지?" 라며 긴장의 끈을 놓는 것입니다. 또한, 계획을 수립하는 것을 계획을 실행에 옮기는 것으로 혼동하는 '실행 착각'도 발생합니다. 근사한 비전 문구를 액자로 만들어 벽에 걸어두면 그게 저절로 이뤄질 것처럼 믿는 것처럼 말입니다.

블랙 스완이 갑자기 출몰하는 복잡한 상황 하에서는 리스크를 관리할 수 있다는 생각을 버리는 것이 좋습니다. 리스크를 철저하게 관리하겠다는 목표는 매번 좌절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무엇을 해야 할까요? 리스크 관리 체계라도 있는 것이 없는 것보다는 낫지 않느냐, 고 생각합니까?

환경이 복잡해지고 매번 급변한다면 철저한 리스크 관리보다는 '적응'이 생존의 키워드입니다. 미래의 변화를 미리 그려보고 그에 따라 조직의 적응력을 길러가도록 체질을 개선해야 합니다. 일본이 대지진이라는 재앙을 미리 예측하고 대비했느냐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들이 이번 사태를 어떻게 빠르게 회복하고 변화된 환경에 적응하느냐가 그들의 저력을 말해줄 잣대입니다.

사전 대비와 사후 적응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중용적 시각이 필요합니다. 철저히 대비하는 조직도 좋지만, 빠르게 회복 가능한 적응력을 갖춘 조직으로 만들어 가길 바랍니다.


(*참고도서 : '블랙 스완', '이기는 결정의 제1원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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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관이 좋을까, 분석이 좋을까?   

2011. 3. 28.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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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자 티모시 윌슨(Timothy D. Wilson)과 조나단 스쿨러(Jonathan W. Schooler)가 1991년에 발표한 논문은 '직관'에 관한 흥미로운 실험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윌슨과 스쿨러는 학점에 유리한 점수를 부여하겠다고 하고서 '잼 시식 테스트'에 참가할 49명의 대학생들을 피실험자로 모았습니다. 그리고는 학생들에게 실험에 참가하기 3시간 전부터는 아무것도 먹지 말라고 요청했죠.



학생들이 시식해야 할 잼은 '컨슈머 리포트'라는 잡지에 소개된 45개의 잼 중 5개였습니다. 1985년에 발행된 컨슈머 리포트에는 잼 전문가 7명이 45개의 잼을 맛보고 나서 달콤함, 씁쓸함, 향 등 16가지의 항목 평가를 통해 매긴 순위가 실려 있었는데, 윌슨과 스쿨러는 그 중에서 5개의 잼을 구입했습니다. 무작위로 고른 것이 아니라, 전문가들이 각각 1등, 11등, 24등, 32등, 44등이라고 점수를 매긴 잼들을 구입했죠. 순위의 격차가 커야 학생들이 맛 평가를 내릴 때 혼동하지 않을 테니 말입니다.

윌슨과 스쿨러는 학생들이 과연 전문가들과 비슷하게나마 '맛 감별력'을 나타낼지 살펴보고자 했습니다. 단, 한 가지 조건을 달리해서 말입니다. 그 한 가지 조건은 '맛에 대한 심사숙고'를 하느냐 마느냐였습니다. 그들은 학생들을 두 그룹으로 나눈 다음, 첫 번째 그룹의 학생들에게는 잼의 맛을 본 다음 곧바로 1~9점의 척도로 평가하라고 지시했습니다. 두 번째 그룹의 학생들에게는 각각의 잼을 시식하고서 왜 그 잼을 좋아하거나 싫어하는지 이유를 종이에 적은 다음에 1~9점으로 평가하라고 했죠. 다시 말해 두 번째 그룹의 학생들은 자신의 '맛 평가'를 분석해야 했던 겁니다.

어느 그룹의 학생들이 전문가들의 맛 평가와 유사했을까요? 아마 자신의 맛을 분석하고 심사숙고한 학생들이 전문가들의 평가와 유사할 거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결과는 그 반대였습니다. 맛에 대해 생각할 시간 없이 바로 평가해야 했던 학생들이 전문가들과 상대적으로 비슷하게 평가 내렸으니 말입니다.

왜 맛에 대한 분석과 심사숙고가 평가의 질을 떨어뜨린 걸까요? 왜 미각에 따라 곧바로 평가 내린 학생들이 전문가들의 평가와 유사했던 걸까요? 맛 감별에 있어 문외한이라고 할 만한 학생들이 고민하고 분석한다고 해서 맛에 관한 정보가 더 이상 생성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맛을 분석하려고 하다가 자신도 모르는 사이 이상한 정보가 끼어 들어가 맛을 '오판'하기가 쉽죠.

게다가 미각은 감각이라서 논리적인 분석(심사숙고)의 대상이 아닙니다. 감정적인 반응이니 논리로 설명하려고 하면 왜곡이 나타나는 겁니다. 물론 컨슈머 리포트의 잼 전문가들이 16가지의 항목으로 미각을 분석해서 평가했다지만, 그것은 그들이 오랜 기간 시행착오를 통해 충분하게 훈련했기 때문입니다.

이 실험에서 얻을 수 있는 시사점은 고민해야 할 때와 그럴 필요가 없는 때를 잘 구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고민한다고 해서 더 이상의 정보가 생기지 않는 경우에는 심사숙고에 의해서 의사결정이 왜곡될 수 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합니다. 숙련된 잼 전문가들처럼 맛의 여러 가지 특성을 구분함으로써 정보를 얻을 수 있다면 심사숙고가 좋은 의사결정(혹은 선택)에 도움이 되지만, 아무리 애써도 직면한 상황 이외의 정보가 없다면 고민스러운 분석은 무용할 뿐만 아니라 때에 따라서는 해롭기까지 합니다.

윌슨은 '잼 시식 테스트' 뿐만 아니라 '그림 고르기 실험'을 수행한 바 있습니다. 윌슨은 실험 참가자들에게 모네와 고흐가 그린 그림과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은 동물 그림 3점, 이렇게 5점의 그림을 보여주고 자기 집에 걸어놓을 그림을 고르라고 했습니다. 그들은 모두 미술에는 문외한에 가까운 사람들이었습니다. 바로 떠오르는 인상에 따라 선택하라고 하자 대부분의 참가자들은 모네와 고흐가 그린 작품을 선호했습니다. 하지만 자신이 왜 그 그림을 좋아하는지를 묘사(분석)하라고 하자 많은 사람들이 동물 그림을 선호하기 시작했습니다. 아무래도 인상주의 화가의 작품을 좋아하는 이유보다는 동물 그림을 좋아하는 이유를 대기가 더 쉬웠기 때문인 듯 합니다.

하지만 몇 달 동안 동물 그림을 자신의 집에 걸어놓은 참가자 중 75% 정도는 후회하기 시작했습니다.  반면에 바로 떠오르는 직관에 따라 모네와 고흐 그림을 선택했던 참가자들은 아무도 후회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역시 그림에 대해 아무런 지식이 없는 상태에서는 분석을 해봤자 더 좋은 선택을 하지 못할뿐더러 오히려 나쁜 선택을 하게 됨을 알 수 있는 실험입니다.

이 실험들은 분석보다는 직관이 더 우수하다는 인상을 우리에게 주지만, 액면 그대로 받아들여서는 안 됩니다. 이 실험의 숨겨진 교훈은 우리가 의사결정에서 직관을 적용할 때와 그렇지 않을 때를 명확하게 판단하는 것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분석을 하면 상황에 대한 여러 가지 정보를 다각도로 얻을 수 있는 상태인데도 빠르게 의사결정을 한답시고 직관을 적용하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됩니다. 잼 전문가들의 직관이 뛰어나서 바로 평가를 내리는 것 같지만, 실은 10년 이상의 경험이 축적되어 잼에 맛에 관한 한 여러 가지 정보를 혀를 통해 분석할 수 있는 능력을 갖췄기 때문이니까요.

의사결정에 있어 직관이 유리하냐 분석이 유리하냐는 질문은 단순하게 대답할 문제가 아닙니다. 자신의 직관을 믿고 따라야 할 때와 분석을 통해 좀더 많은 정보에 접근해야 할 때를 분명히 판단할 줄 알아야 옳은 의사결정의 기회를 잡을 수 있습니다. 물론 '중용'의 문제라 쉽지만은 않죠.

(*참고 논문 :
http://www.som.yale.edu/faculty/keith.chen/negot.%20papers/WilsonSchooler_Think2Much91.pdf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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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 태권도 승품 심사를 받다   

2011. 3. 26. 2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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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아들의 승품 심사가 국기원에서 있었습니다. 며칠 전부터 기대감과 긴장 사이를 왔다갔다 하던 아들이 드디어 1품이 되기 위한 심사를 받게 된 거죠. 학교 공부하랴 학원 다니랴, 게다가 승품 심사를 위해 일주일 동안 밤 8시에 특별훈련까지 받으랴 수고가 참 많았지요.

국기원 승품 심사장에서 찍은 사진 몇 장을 올립니다.



↑ 국기원 정문의 모습. '국기원이 이렇게 생긴 곳이구나!'



↑ 국기원 내부의 모습. 생각보다 크기가 작은 경기장이었습니다.



↑ 태극 8장 품세를 연기하는 아들. 대견하게도 발차기 하나, 지르기 하나에도 힘이 느껴집니다.



↑ 아들이 가장 걱정했던 겨루기. 심사위원들에게 인사하는 모습에서 긴장이 느껴집니다. 상대편 아이가 아들보다 커서 염려가 되더군요. 



↑ 드디어 겨루기 시작! 처음엔 약간 탐색전을 벌이다가....



↑ 서로 발차기를 교환하기 시작합니다. 


 
↑ 회심의 돌려차기! 아쉽게도 상대편 아이의 엉덩이를 살짝 빗나갔습니다. 아이들 경기라 그런지 1분도 안 되어 겨루기가 종료되더군요. 몸이 풀릴 새도 없이 끝나고 맙니다.



↑ 이번엔 격파 순서. 플라스틱으로 만든, 그래서 잘 쪼개지는 기왓장 1장을 격파해야 하죠. 아들이 표효(?)하며 손날을 날립니다.


 
↑ '딱!' 하는 소리와 함께 경쾌하게 쪼개지는 기왓장.  


제가 어렸을 때도 태권도를 했었는데, 빨간 띠까지만 하고 그만 두어야 했습니다. 집안 형편상 승품 심사비가 부담스러웠던 모양입니다. 그때 빨간색과 검은색이 예쁘게 들어간 품띠를 따지 못해 어린 마음에 속상했던 기억이 납니다. 품띠를 매고 지나가는 친구들이 한없이 부러웠었죠.

별 실수없이 심사를 치렀으니 2주 뒤엔 아들이 꿈에 그리던 품띠를 딸 수 있겠지요? 물론 1품 승품이야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거의 모두가 합격한다고 하지만, 그래도 이름 석자가 '오바로크'된 품띠를 매고 싶었던 제 어릴 적 소망을 아들이 대신 이루어주겠군요. ^^

수고했다, 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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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의사가 더 믿음직스럽습니까?   

2011. 3. 25.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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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에 나열하는 A와 B, 두 가지 유형 중 여러분은 어떤 의사를 더 신뢰하는지, 어떤 의사를 전문가라고 생각하는지 골라보기 바랍니다.


A : 인사도 안 받아주는 차가운 의사
B : 누구에게나 친절하고 항상 웃는 의사

A : 하얀 가운에 넥타이를 매고 양복바지를 입은 의사
B : 하얀 가운에 티셔츠를 입고 청바지를 입은 의사

(환자가 복통이 있다고 말하면)
A : "날카로운 통증입니까, 둔중한 통증입니까?" 라고 묻는 의사
B : "어떻게, 얼마나 아프십니까?" 라고 묻는 의사

A : 병의 원인을 바로 진단 내리는 의사
B : 의학 책을 꺼내 살펴보고 난 후에 진단을 내리는 의사

A : 바로 치료 방법을 이야기하는 의사
B : 몇몇 검사를 해보고 치료 방법을 생각해 보자는 의사

A : 진단 결과를 고수하는 의사
B : 진단 결과를 번복하는 의사

A : 자신의 진단 결과를 소상하게 말하는 의사
B : 환자에게 많이 묻고 듣는 의사

A : '정우성'처럼 아주 잘생긴 의사
B : '옥동자'처럼 아주 못생긴 의사

A : 남자 의사
B : 여자 의사

(남자 의사인 경우)
A : 목소리가 굵고 큰 의사
B : 목소리가 가늘고 작은 의사

A : 뚱뚱한 의사
B : 마른 의사

A : 인테리어가 훌륭한 병원에 근무하는 의사
B : 인테리어가 평범한 병원에 근무하는 의사

A : 전문용어를 자주 섞어 말하는 의사
B : 알아듣기 쉽게 풀어서 말하는 의사



많은 사람들이 B보다는 A유형의 의사가 실력이 뛰어나다는 인상을 가진다고 합니다. 무엇인가 자신감을 보이는 의사, 겉모습이 '의사 답고' 권위를 풍기는 의사, 자신의 의견을 굳게 주장하고 타인의 의견에 쉽게 영향 받지 않는 의사, 환자에게 말을 시키는 의사보다는 자신의 진단 결과를 소상히 말하는 의사를 더 신뢰할 겁니다. 물론 예외는 있지만, 대개 그런 경향을 보입니다. 여러분들은 위의 문장만을 보고 "에이, 전 A보다는 B를 더 신뢰합니다" 라고 말할지 모르지만 실제로 여러분이 환자가 되어 의사를 대면하면 알게 모르게 A유형의 의사에게 끌리게 됩니다. 질병이나 외상 때문에 약해진 마음이 그런 경향을 더욱 강화시키기 때문입니다.

사실 A유형이든 B유형이든 의사의 진짜 실력과는 무관합니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의사가 자신감을 강하게 보일수록, 의사를 둘러싼 배경이 눈에 보기 좋을수록, '의사다움'이란 이미지에 어울릴수록 의사의 실력이 높을 것이라고 거의 '자동적으로' 인식합니다. 비단 의사뿐만이 아닙니다. 위의 문장에서 의사를 다른 직업으로(예컨대 컨설턴트)로 바꿔도 많은 사람들은 B보다는 A유형을 더 선호하는 경향을 보이죠.

이처럼 사람들의 '사람 보는 눈'은 꽤나 취약합니다. "하나만 봐도 열을 안다"는 말은 많은 경우 허구이고 호언에 불과합니다. 평소에 "나는 사람보는 눈이 좀 있어" 라고 자신하는 사람은 어떤가요? 처음에 누가 좋은 사람인지 아닌지를 가려내는 능력이 뛰어나다기보다는, 누군가가 문제를 일으켰을 때 "내가 그럴 줄 알았어" 라고 말하면서 "거봐, 난 사람 보는 눈이 있다니까"라고 재빨리 말할 줄 아는 순발력(?)이 좋은 것은 아닐까요?

하지만 더 큰 문제는 우리가 그렇게 호언하고 확언하는 사람들에게 끌린다는 점입니다. 부정적으로 말해 '휘둘리고' 말죠. 또한 결론을 얼버무리는 사람의 능력을 과소 평가해서 일을 그르치는 문제도 큽니다. "솔직히 말해, 잘 모르겠습니다" 라고 말하는 의사(혹은 전문가)의 실력이 "그것이 원인인 게 확실합니다" 라고 말하는 의사(혹은 전문가)의 실력보다 나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하지 못하죠.

"내가 보기에 그 사람은 실력이 뛰어난 것 같아" 라고 생각했다가 나중에 틀린 적은 없었나요? 아마도 곰곰히 떠올려보면 그런 경우가 꽤 많을 겁니다. 하지만 자신의 예감이 틀렸을 때보다는 맞았을 때를 더 '인상 깊게' 느끼기 때문에 자신의 사람 보는 눈을 과신하는 경향이 계속 유지됩니다. 무의식적으로 자신의 판단 오류를 기억에서 지워버리는 겁니다.

오늘은 자신의 '사람 보는 눈'에 대해 생각해보면 좋겠네요.

(*참고도서 : '닥터스 씽킹', '보이지 않는 고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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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똑한 사람은 왜 리더가 못 될까?   

2011. 3. 24.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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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C 버클리의 카메론 앤더슨(Cameron Anderson)과 개빈 킬더프(Gavin J. Kilduff)는 68명의 학생들을 대상으로 수학 문제를 풀어보라는 과제를 냈습니다. 학생들은 서로 한번도 만난 적이 없었기에 모두 초면이었죠. 앤더슨과 킬더프는 학생들을 4명씩 묶어서 45분 안에 경영대학원 입학시험(GMAT)에 나오는 수학문제를 함께 풀도록 했습니다.

수학 문제 풀기는 집단의 객관적인 성과(적어도 수학에 관한 한)을 판단할 수 있고, 각 학생이 대학 입학시험(SAT)에서 얻은 점수(즉 학생들의 진짜 수학 실력)와 비교해볼 수 있기 때문에 좋은 실험 방법이었습니다. 앤더슨과 킬더프는 학생들이 문제를 풀어가는 과정을 모두 비디오로 녹화했습니다.



그들이 이런 실험을 한 목적은 4명씩 묶인 각 집단이 문제를 얼마나 잘 푸는지를 조사하려는 것보다는 4명 중에 어떤 학생이 '리더'로 부상하느냐였습니다. 4명의 학생들은 수학 문제를 풀기 위해서 서로 토론하고 정답을 결정하는 상호작용을 벌이게 되는데, 이런 과정에서 집단을 이끌어가는 리더가 자연스레 '옹립'되기 마련입니다.

여러분은 누가 리더가 될 거라고 생각합니까? 가장 수학 실력이 뛰어난 학생이 리더가 될까요? 아니면 다른 특성이 뛰어난 학생이 리더가 될까요? 만약 후자라면 그 '다른 특성'이란 무엇일까요?

실험 결과, 각 집단의 리더가 된 학생들은 수학 실력이 뛰어난 자가 아니었습니다. 앤더슨과 킬더프는 실험을 시작하기 전에 학생들에게 '지배력' 성향을 측정하기 위한 설문에 응답하도록 했습니다. 그리고 수학 문제 풀기 실험이 끝난 후에는 4명 구성원들이 각각 다른 사람의 리더십을 평가하도록 설문을 진행했습니다. 그리고 비디오를 외부인들에게 보여주고 누가 리더십이 높은지도 평가하도록 했습니다. 그랬더니 리더십을 높게 평가 받은 학생(즉 리더)은 바로 지배력 성향이 높은 학생이라는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수학 실력과는 별 상관이 없었습니다.

비디오를 꼼꼼히 판독한 앤더슨과 킬더프는 집단에서 누군가가 최초로 단호하게 내놓은 답이 집단의 최종 답안으로 선택될 확률이 94%라는 점을 알아냈습니다. 그리고 최초로 답을 제시하는 학생들은 거의 지배적인 성격을 지닌 학생들이라는 점도 밝혀냈죠.

남을 지배하는 성향이 강할수록 집단에 더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것뿐만 아니라, 지배적인 성향이 '실력에 대한 인식'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 이 실험의 가장 큰 시사점입니다. 즉 실제 능력이 좀 떨어져도 지배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실력이 있는 사람'으로 인정 받는다는 것입니다. 바꿔 말해, 실력이 있어도 지배적인 성향이 부족하면 능력을 과소평가 받는다는 소리입니다. 그래서 집단에서 누가 지배적인 성향을 가지냐에 따라서 집단의 성과가 결정되고 말죠.

이 실험의 시사점을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지배적 성향이 높으면 → 리더가 될 가능성이 매우 크다
지배적 성향이 높으면 → 능력이 있는 사람으로 인식된다
지배적 성향이 낮으면 → 실력을 과소평가 받는다

하지만,
지배적 성향이 높다 ≠ 실제 능력 수준

그래서 결국,
리더의 실력 → 집단의 성과에 영향을 미친다

결국 집단은 리더는 실력이 있는 사람이 되기보다는 남을 지배하는 성향이 강한 사람, 즉 자신감이 충만한 사람이 된다는 것입니다. 실력도 있고 자신감도 있으면 리더로서 가장 좋은 케이스이겠죠. 하지만, 실력과 자신감을 함께 갖춘 리더는 그리 흔하지 않습니다. 똑똑한 사람이 리더가 되지 못하는 이유는 실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자신감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지배적 성향을 지닌 리더가 집단의 성과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점은 경영자가 눈여겨 봐야 할 대목입니다. 자신감이 충만한 직원의 실력을 과대평가하고 그렇지 못한 직원의 능력은 과소평가할 위험이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 보는 눈'이 자신감과 지배적 성향에 휘둘리지 않도록 경계의 끈을 놓치지 않아야겠죠. 조직의 리더를 키울 때 실력과 자신감을 동시에 보려는 중용의 시각이 필요합니다. 이렇게 보면 중용은 단순하게 중간을 택하는 '이것도 저것도 아닌' 결정이 아니라, 바람직하지 않는 쪽에서 끌어 당기는 유혹을 이기기 위한 지속적인 '투쟁'입니다.

여러분의 주위를 둘러보세요. 누가 리더입니까? 그리고 그 사람의 지배적 성향은 어떻습니까?

(*참고논문 : Why Do Dominant Personalities Attain Influence in Face-to-Face Groups? )
(*참고도서 : '보이지 않는 고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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