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생각보다 정규적이지 않다   

2011. 1. 31.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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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처럼 딱딱하게 냉동된 감자를 벽에 던지면 당연히 여러 가지 크기로 깨지겠죠. 어떤 것은 포도알만 하고 또 어떤 것은 쌀알만 할 겁니다. 냉동 감자 수천 개를 벽에 던진 후에 깨진 감자 조각들을 크기가 큰 것부터 작은 것 순으로 나열해보고 그래프를 그려본다면 어떤 규칙이 발견될까요? 아마 여러분은 중간 정도 크기의 조각이 가장 많고 양쪽으로 갈수록 개수가 줄어드는 종(bell) 모양의 정규분포 곡선을 머리 속에 그릴지 모릅니다.



하지만 깨진 감자들은 정규분포를 그리지 않음을 덴마크의 과학자들이 발견했습니다. 그들은 실제로 냉동감자를 깨뜨리는 실험을 한 결과, 조각의 무게가 반으로 줄 때마다 개수가 6배씩 늘어나는 패턴을 발견했습니다. 이를 그래프로 그려보면 오른쪽으로 갈수록 아래로 뚝 떨어지는 '둥근 L자' 모양이 됩니다. 무게가 큰 덩어리는 얼마 안 되는데 반해, 무게가 그보다 작은 덩어리들은 '긴 꼬리'를 형성하는 패턴이죠. 이렇게 그래프의 오른쪽으로 갈수록 뚝 떨어지듯이 급감하는 모양을 갖는 분포를 ‘멱함수(power law) 분포’라고 부릅니다.
 
면적을 기준으로 미국에서 가장 큰 도시부터 순서대로 2,400곳을 나열해보면 어떤 분포가 나올까요? 1997년에 실시한 연구에 따르면 이것 역시 정규분포가 아니었습니다. 특정 크기를 지닌 도시의 수는 면적의 제곱에 반비례하는 멱함수 분포였기 때문입니다. 풀어서 말하면, 어떤 도시보다 면적이 절반인 도시는 4곳이 있고, 그보다 2배인 도시의 수는 4분의 1이라는 의미입니다.

정규분포를 따를 것 같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는 아주 많습니다. 지진의 경우에도 에너지 방출이 두 배로 되면 빈도가 네 배로 줄어드는 멱함수 패턴을 따릅니다. 산불의 경우에는 피해 면적이 두 배가 되면 그런 산불은 2.48배로 드물어진다고 합니다. 상위고객 20%가 매출의 80%를 기여하고, 20%의 제품이 이익의 80%를 올리는 등 우리가 보통 80대 20법칙으로 알고 있는 것도 사실은 멱함수의 일종입니다.

정규분포는 가운데에 솟아오른 종 모양이 특정 사건을 예측하는 데 도움을 줍니다. 예를 들어 평균이 10이고 표준편차가 1이면, 특정 사건이 8에서 12에 해당할 확률이 95%라는 식으로 예측할 수 있죠. 그러나 멱함수 분포는 정규분포와는 달리 ‘전형적’인 값이 없습니다. 물론 멱함수 분포의 평균과 표준편차를 계산할수는 있지만 그 값은 무의미합니다. 그래서 멱함수 분포를 가지고는 어떤 일이 일어날지 예측이 매우 어려워집니다. 만약 어떤 현상이 멱함수 분포를 보인다면 예측하려는 시도를 포기하는 것이 좋습니다.

정규분포는 표본을 이루는 개별 사건들이 독립적이고 서로 동일해야만 성립됩니다. 특정 학교 학생들의 신장(키) 분포가 정규분포를 따르는 이유는 신장에 관한 한 학생들이 상호작용을 하지 않고 학생 한 명이 표분에 추가될 때의 영향력은 다른 학생들과 동일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개별 사건들이 상호작용을 벌이는 네트워크의 일부이고 특정 사건의 영향력이 다른 것보다 월등한 '승자 독식'의 패턴이 나타난다면 정규분포는 실제를 올바르게 반영하지 못합니다.

어떤 현상을 접할 때 그것이 정규분포를 따르리라 자동적으로 간주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분포 그래프를 그려보면 금세 알 텐데 말입니다. 혹시 정규분포를 가정하고 수립한 계획이나 모델이 있다면, 지금 당장 확인해 보는 것은 어떨까요? 그동안 계속된 의사결정의 실패는 정규분포가 아닌 것을 정규분포라고 가정했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세상은 생각보다 '정규적(normal)'이지 않으니까요.


(*참고도서 : '세상은 생각보다 단순하다', '거의 모든 것의 미래', '경영, 과학에게 길을 묻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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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좋은 직원이 조직을 망친다?   

2011. 1. 28.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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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은 지능에 대해 어떻게 생각합니까? 지능은 변하지 않는 고정적인 것인가요, 아니면 노력을 통해 충분히 향상시킬 수 있는 것일까요? 지능이 선천적인지 아니면 후천적인지 여러분의 의견이 갈릴 것  같은데요, 콜롬비아 대학교의 심리학자인 캐롤 드웩은 지능에 대해 상반된 2개의 의견이 사람들의 행동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알아보기 위해 한 가지 실험을 진행했습니다.

드웩은 홍콩에 있는 모 대학의 사회과학부 학생들을 실험 대상으로 삼았습니다. 그녀는 학생들이 지능에 대한 2가지 의견 중 무엇을 지지하는지 먼저 조사했습니다. 그런 다음, 학생들에게 영어시험을 치르게 하고 각자에게 점수를 일러주면서 해당 학생의 영어 실력에 대해 피드백했습니다. 이 대학에서 좋은 영어 점수는 졸업을 위해 필수적이었기 때문에 학생들의 관심은 지대했겠죠.


드웩은 영어 점수를 알려주는 자리에서 학생들에게 영어 실력을 향상시키는 데 도움이 되는 보충강의를 제안했습니다. 그렇다면 보충강의를 신청하는 학생들은 대개 누구일까요? 아마 여러분은 영어 점수가 낮은 학생들이 주로 보충강의를 신청했으리라 예상하겠지만, 결과는 다르게 나왔습니다.

후천적인 노력을 통해 지능을 향상시킬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진 학생들만이 보충강의에 관심을 보였습니다. 반면 지능이 불변이라고 믿은 학생들은 보충강의를 신청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왜 이런 결과가 나왔을까요? 드웩은 지능이 고정적이라고 믿은 학생들은 똑똑하게 보이고 싶은 마음 때문에 성공에 필요한 기회를 포기하는 어리석은 결정을 내린다고 결론 내렸습니다.

드웩은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유사한 실험을 진행했습니다. 어려운 시험을 치르게 한 다음에, 실제로 받은 점수와 상관없이 무작위로 한 무리의 아이들에게는 열심히 노력했다는 칭찬을 해줬고, 다른 집단의 아이들에게는 머리가 좋다는 칭찬을 해줬습니다. 그런 다음, 어려운 시험을 다시 치르게 했습니다. 그랬더니 머리가 좋다는 칭찬을 들은 학생들의 성적은 첫번째 시험보다 낮아졌다고 합니다.

지능이 높다, 머리가 좋다란 칭찬은 2가지 이유 때문에 잘못된 방향으로 사람들을 이끕니다. 첫 번째는 자아도취와 자기기만에 빠뜨린다는 것입니다. 머리가 좋다고 칭찬하니 점수가 저하된 초등학생들처럼 말입니다. 드웩이 실시한 후속실험에서도 이런 위험이 그대로 드러났습니다. 다른 학교 학생들에게 자신의 시험 결과에 대해 설명하는 글을 쓰게 했더니 머리가 좋다고 칭찬 받은 학생 중 40%가 자신의 점수를 실제보다 높여서 썼던 겁니다.

두 번째는 열등하게 보일까봐 보충강의를 신청하지 않았던 학생들처럼 위험을 회피하는 성향을 강화시킨다는 겁니다. 머리가 좋다는 칭찬을 계속 받기 위해서 조금만 하면 달성할 수 있는 쉬운 과제에만 집중하게 됩니다. 자기계발에 도전하지 않는 관성이 누적되면 어느 순간 칭찬이 줄겠죠. 결국 '머리는 좋은데 노력을 안 해서'라는 말로 스스로를 기만하는 상황에 이르게 될지 모릅니다.

드웩의 연구 결과를 기업에 투영시키면 어떤 시사점을 얻을 수 있을까요? 성과에 대해 피드백할 때 결과의 높고 낮음보다는 그 직원이 목표 달성을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지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교훈을 줍니다.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다 해도 충분한 열정을 보였다면 그에 대한 보상이 있어야 합니다. 반대로, 노력이 아니라 운에 의해 목표를 달성했다면 경우에 따라 칭찬보다는 따끔한 질책이 필요하겠죠.

또 하나의 시사점은 많은 기업에서 운영하는 핵심인재관리의 문제점에 관한 것입니다. 저는 이 제도가 직원들을 지능에 따라 분류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고 생각합니다. 핵심인재를 핵심인재로 인정한다는 것은 '지능이 높다'라고 칭찬하는 것과 동일한 부작용을 낳는다고 봅니다. 이 제도가 자기도취와 위험회피 성향을 강화시킴으로써 개인이 가진 경쟁력을 후퇴시키진 않을까요? 예전에 쓴 글에서 핵심인재관리의 허구를 꼬집은 적이 있는데, 핵심인재라고 뽑은 자가 진짜 핵심인재라고 확신할 수 있을까요?

핵심인재관리는 조직의 경쟁력이 개개인에서 나온다는 관점을 가진 제도 중 하나입니다. 하지만 조직의 경쟁력은 시스템에서 나옵니다. 시스템 없이 개인의 능력으로만 오래 유지되는 회사는 거의 없습니다. 개인 중심의 미국식 성과주의가 물밀 듯 밀려오면서 시스템을 버리고 '머리 좋고 학력 좋은' 개인들에게 기업의 운명을 맡기는 오류를 범하는 모습을 자주 봅니다. 안타까운 일이죠.

머리 좋은 직원이 조직을 망칠지 모릅니다. 열심히 노력하는 직원이 조직을 살립니다.


(*여기서 '머리 좋은 직원'이란 머리 좋고 일 잘하는 사람이 아니라, '머리 좋고 특별한 직원'이라 인정하는 제도들을 상징하는 말입니다. 오해 마세요. ^^ )

(*참고 논문 : 캐롤 드웩의 논문 http://scan.oxfordjournals.org/content/1/2/75.abstract 
http://www.ncbi.nlm.nih.gov/pubmed/9686450 )
(*참고 도서 : '그 개는 무엇을 보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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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나리오 플래닝, 오해 마세요   

2011. 1. 2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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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나리오 플래닝'이란 책을 낸지 이제 2년이 넘었습니다. 적어도 시나리오 플래닝이란 용어는 들어본 적이 있다는 분들을 예전보다 많이 만나는 걸 보면, 제 책이 시나리오 플래닝에 대한 관심을 일으키는 데 조금이나마 기여를 했다는 느낌이 듭니다.

그런데 그 분들을 만날 때마다 시나리오 플래닝을 각자 다르게 이해하는 것 같아 그 뜻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곤 합니다. 나중에 '시나리오 플래닝' 개정판이 나오면 이에 대한 설명을 추가해도 되겠지만, 블로그 공간을 빌려 시나리오 플래닝에 대한 대표적인 오해 3가지를 바로잡아 볼까 합니다.



시나리오 플래닝은 미래학이 아니다
여러분이 시나리오 플래닝을 다른 사람에게 소개할 대 다음과 같은 질문을 받으면 무척 당혹스러울 겁니다. "앞으로 우리 회사나 산업이 어떻게 될 것 같습니까?", "내가 OO에 집을 사려는데, 괜찮을 거 같나요? 시나리오 플래닝하면 답이 나오지 않을까?"

아주 당황스러운 질문입니다. 사람들이 이런 질문을 던지는 이유는 미래를 예견하기 위한 또 하나의 도구로 시나리오 플래닝을 인식하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서, 시나리오 플래닝을 미래학(未來學)과 동일시하기 때문이죠. 하지만 시나리오 플래닝은 결코 미래학(Futurology)이 아닙니다. 엘빈 토플러나 존 나이스비트와 같은 미래학자들이 왕성한 활동을 하면서 일반인들은 미래학을 친근하게 받아들였지요. 토플러의 '제3의 물결'이나 '권력 이동'과 같은 책이 나왔을 때 많은 사람들이 미래학에 열광했습니다.

미래학의 정의는 이렇습니다. “미래학은 과거 또는 현재의 상황을 바탕으로 미래사회의 모습을 예측하고, 그 모델을 제공하는 학문이다”  이 정의에서 알 수 있듯이 미래학은 과거와 현재의 상황을 통해서 미래를 예측하는 학문이죠. 우리가 막연하게 불안하게 생각하는 미래를 확실한 모습으로 보여줌으로써 사람들의 행동이나 판단에 기여하기 위한 학문이 바로 미래학입니다.

미래학이 이런 가치를 창출하기 위해서는 과거와 현재 사이의 환경에서 불확실성이 작은 요인에 집중합니다. 즉 '트렌드'를 발굴하는 과정을 거치는 거죠. 문헌 연구, 전문가 인터뷰, 데이터 분석 등의 스킬을 동원해서 미래의 거대한 흐름을 형성하는, 변하지 않는 몇 가지 키워드를 찾아냅니다. 미래엔 지식노동자들이 대접 받을 거라든지, 여성의 사회적 역할이 강화될 거라든지 등이 미래학의 아웃풋들입니다.

이와는 달리, 시나리오 플래닝은 불확실성이 큰 요소가 무엇인가에 관심을 둡니다. 왜냐하면 시나리오 플래닝은 미래를 예측하기 위한 도구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물론 시나리오 플래닝 과정을 하면서 불확실성이 매우 작은 요인인 트렌드가 발견되기도 하지만, 이렇게 될 수도 저렇게 될 수도 있는 불확실성이 큰 요인이 시나리오 플래닝의 주재료입니다.

애당초 시나리오 플래닝은 확실한 모습을 전달하기 위한 기법이 아닙니다. 대신에 시나리오 플래닝은 우리의 미래가 여러 개의 시나리오로 펼쳐질 수 있음을 제시하죠. 미래학자들은 가능성이 가장 큰 미래만 제시하지만, 시나리오 플래닝은 여러 개의 시나리오가 동일한 가능성을 지닌다고 말합니다. 미래학자들은 확실하게 ‘이렇게 미래가 펼쳐지리라’ 이야기하지만, 시나리오 플래닝은 확언하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미래의 여러 시나리오들에 대비하는 것이 시나리오 플래닝의 목적이고 가치입니다.

정리하면, 미래학은 트렌드에 집중하고, 반면에 시나리오 플래닝은 불확실성에 집중합니다. 시나리오 플래닝은 미래를 다룬다는 점에서 미래학과 통하는 면이 있지만 결코 동일하지 않습니다. 이런 이유로 시나리오 플래닝의 대가로 소개되는 피터 슈워츠가 미래학자로 불리는 것은 잘못된 일이죠. 그의 예견이 딱 들어맞은 게 아니라, 그가 만든 여러 시나리오들 중에 하나가 적중한 것인데 사람들은 그를 미래 예측의 대가로 여기니까 말입니다. 시나리오 플래닝과 미래학의 차이를 정확히 이해하기 바랍니다.


시나리오 플래닝은 단기적 위기경영이 아니다
어느 날 신문을 보니 '시나리오 플래닝을 통해 경영의 방향을 수시로 점검하겠다' 라든지, '시나리오 경영으로 위기를 타개하자'라는 글이 있었습니다. '기업들이 이제 예측 관행을 버리고 드디어 미래의 불확실성을 제대로 인식하기 시작했구나'라는 생각이 들어 아주 반가운 마음이 들더군요.

그런데 과연 어떻게 시나리오 플래닝으로 전략을 수립했는지 알아보려고 지인들에게 연락을 취하면, 하나같이 이런 대답이 들려왔습니다. “금시초문인데?” 혹은 “그냥 선언적인 이야기일 뿐이야'라는 소리들입니다. CEO 혼자만의 아이디어이거나, 조직에 위기감을 불어 넣으려고 시나리오라는 단어의 어감을 활용하는 것에 불과하다는 소리로 들립니다. 반갑다가도 그런 말을 들으면 힘이 빠집니다.

그 중 더욱 애석한 대답은 시나리오 플래닝을 긴축경영과 동의어로 받아들인다는 것입니다. 시나리오에 따라 전략을 별도로 마련하여 대응하는 게 시나리오 플래닝의 의미임을 알지 못합니다. 비용을 감축하고 인력을 줄이고, 계획했던 투자안을 일단 보류부터 하고 난 다음에, 시장 상황을 예의 주시하자는 뜻으로 시나리오 플래닝이나 시나리오 경영을 언급합니다. 위기 극복보다 그저 찬바람을 피하려고 몸을 움츠리려는 것으로만 보입니다.

어떤 사람은 컨틴전시 플래닝을 시나리오 플래닝으로 이해하기도 합니다. 컨틴전시 플래닝은 매우 중대하고 위급한 상황이 발생할 경우에 어떻게 대처할지를 논하는 과정입니다. 반면에 시나리오 플래닝은 불확실성이 큰 환경변수들이 미래에 어떤 양상으로 펼쳐질지를 '그리는' 과정입니다. 모두 리스크를 줄이기 위한 기법이라서 언뜻 보면 비슷한 듯 하지만, 사고의 전개는 아주 다르죠.

컨틴전시 플래닝은 위급한 상황이 발생하고 난 후의 처리/대처방안에 무게중심을 두는 과정인데 반해, 시나리오 플래닝은 현재에서 미래로 시간이 흐름에 따라 펼쳐질 여러 가지 시나리오를 그려보는 데에 초점을 맞춥니다. 예컨대 공장에 화재가 발생하면 어떻게 후속조치를 취해야 하는지를 논하는 과정이 컨틴전시 플래닝이죠. 반면 시나리오 플래닝 관점에서는 공장의 화재는 불확실성을 내포한 하나의 변수로 간주될 뿐입니다.

시나리오 플래닝에 대한 또 다른 오해는 단기적인 롤링(Rolling) 플랜으로 여긴다는 것입니다. 모 회사가 3개월 혹은 6개월 단위로 경영전략을 수정하는 '시나리오 경영'을 강화하겠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는데, 그들이 말하는 시나리오 경영은 시나리오 플래닝과 별로 관련이 없습니다. 그저 '단기 롤링 플랜'일 뿐이죠. 거창하게 시나리오 플래닝이란 이름을 붙일 이유가 없습니다. 시나리오 플래닝은 5년 정도의 장기적 관점을 견지하면서 조직의 중대한 의사결정을 다룹니다. 짧게 잡아도 2~3년 후의 미래를 상정하지요. 3~6개월의 단기적인 이슈는 시나리오 플래닝 관점에서는 매순간 변하는 주가 그래프에 불과합니다.

시나리오 플래닝을 긴축경영, 컨틴전시 플랜, 단기 롤링 플랜과 같이 위기경영의 도구로 잘못 이해하면 곤란합니다. 여러분의 회사가 만일 그렇게 생각한다면 발등에 떨어진 불만 열심히 끄는 단기적 경영 관행이 고질병이 되고 맙니다. 불을 끄느라 발을 휘젓다가 다른 곳에 불이 옮겨 붙을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보통 '위기가 곧 기회'라고 말하곤 합니다. 이 문장 속에 숨은 의미를 제대로 알아야 합니다. 남들이 허겁지겁 발등에 떨어진 불을 끄려고 할 때, 차분하게 미래를 생각하고 미래를 대비하는 사람에게만 위기는 기회가 된다는 뜻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단기적인 위험을 요리조리 잘 빠져나가는 것이 근본적인 생존전략은 아닙니다.


시나리오 플래닝은 '집단지성'이 아니다
모 증권회사에서 이런 기사를 읽은 적이 있습니다. "참가자들이 단말기를 통해 주어진 주제에 대해 답을 하면 즉석에서 투표결과가 나오는데, 이렇게 집단지성을 통해 미래예측을 하는 것이 시나리오 플래닝이다"라고 말입니다. 시나리오 플래닝을 다루는 논문이나 도서에서 찾아볼 수 없는 이상한 정의였습니다. 투표해서 많이 나오는 쪽으로 예측을 하는 게 과연 시나리오 플래닝일까요? 참가자들 대부분이 경제 회복 시기를 향후 2년으로 내다 본다고 해서 진짜 그렇게 될까요?

시나리오 플래닝은 집단지성과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원래 집단 지성이란 말은 특정 문제에 대해 개인에게서 나타나지 않는 해결능력이 집단에서 창발한다는 개념입니다. 전문가들이 투표를 진행하는 것이 집단지성일까요? 그저 집단예측에 불과합니다.

사람들을 여러 명 모아서 투표하는 일 따위로 미래를 예측하는 방법은 전혀 신뢰성이 없습니다. 인간은 심리적으로 매우 취약하기 때문이죠. 불황일 때는 실제보다 부정적으로, 호황일 때는 실제보다 낙관적으로 보는 경향이 강합니다. 전문가들이라고 해도 다르지 않습니다. 전문가 투표 등의 방법으로 미래를 예측하는 기법으로 잘못 인식할까 염려됩니다.



요컨대 시나리오 플래닝은 확실한 미래만을 전달하는 미래학이 아닙니다. 또한 긴축경영, 컨틴전시 플랜, 단기 롤링 플랜과 같이 위기경영의 도구도 아닙니다. 단기적인 위험을 집단지성으로 포장된 손쉬운 방법을 써서 요리조리 잘 빠져나가는 것이 시나리오 플래닝이 추구하는 생존전략은 아닙니다.

시나리오 플래닝이 미래를 훤히 예측해 주리라, 현재의 위기를 돌파하기 위한 묘책을 만들어 주리라는 기대를 갖지 말아야 합니다. 그렇게 해주면 시나리오 플래닝을 업으로 하는 컨설턴트인 저야 좋겠지만, 시나리오 플래닝이 단 하나의 해법, 단 하나의 예측 결과를 제시하는 도깨비 방망이라고 소개할 마음은 조금도 없습니다.

시나리오 플래닝의 목적과 목표는 소박합니다. 불확실한 미래를 불확실함 그 자체로 인정하고 대비하는 데 초점을 맞추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미래의 적응력을 높여주는 실질적이고 현실적인 방법이라는 점에서 시나리오 플래닝은 예측이 제공하지 못하는 효용 가치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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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격을 모독하는 나쁜 명제   

2011. 1. 26.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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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가 클수록 저항이 크다"

여러분은 이런 식의 말을 (아마도 자주) 들어본 적이 있거나 누군가에게 말해본 적이 있을 겁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변화에 저항하기 마련이다"라는 생각을 당연하게 받아들이지도 모르겠네요. 예컨대 새로운 제도를 도입하려고 해도 직원들이 변화에 저항하기 때문에 실패할 수밖에 없다는 식으로 이 문장이 사용되곤 합니다.

물리학자이자 제약이론(TOC) 전문가인 엘리 골드랫이 이 문장을 듣는다면 아마도 강한 반대 의사를 표명할 겁니다. 그는 사람들이 변화에 저항한다는 말이 고정관념일 뿐만 아니라, 실패에 대한 추궁을 모면하기 위해 내뱉는 '인격 모독적인' 발언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리고 인격 모독적인 고정관념은 문제의 해결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순환논리'를 가져 온다고 말합니다. 그는 왜 이렇게 주장할까요?



그는 '초이스(Choice)'란 책을 통해 논리적으로 이렇게 반박합니다. "변화가 클수록 저항이 크다"란 말을 분리하면 다음과 같이 2개의 문장이 나옵니다.

원인 : 변화가 크다
결과 : 저항이 크다

여기서 '변화가 크다'란 원인은 추상적인 생각입니다. "1과 1을 더하면"과 같은 구체적인 진술이 아니죠. 어떤 생각이 추상적이라면 그것이 옳다고 곧바로 인정하지 말라고 골드랫은 조언합니다. "변화가 크다"란 말이 원인으로서 타당함을 갖추려면, "저항이 크다"란 현상이 항상 발생하거나 대체적으로 일어나야 합니다.

즉, 변화가 커도 저항이 크지 않은 경우가 충분히 존재한다면 "변화가 클수록 저항이 크다"란 말은 성립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다시 말해서 반례(反例)가 없거나 적을 때만 이 문장을 수용할 수 있겠죠. 골드랫의 이같은 생각은 반증(反證)에 의해서 과학이 발전한다는 칼 포퍼의 주장에서 비롯됩니다.

그렇다면 반증을 한번 해볼까요? 변화가 커도 저항이 크지 않은 경우를 찾으면 됩니다. 여러분이 조금만 주위를 살펴보면 반증의 근거를 얼마든지 찾을 수 있습니다. 결혼, 이직, 이민 등과 같은 개인적인 일 뿐만 아니라, 조직 개편, 비전 재설정 등과 같은 기업의 새로운 시도들은 상당히 큰 폭의 변화를 요구하지만 실행에 옮겨지는 경우가 상당히 많습니다. 물론 실패하는 경우도 있지만 성공하는 경우를 압도할 만큼은 아닙니다. 성공하기도 하고 실패하기도 하죠. 따라서 "변화가 클수록 저항이 크다"란 말은 충분한 반증 근거가 있기 때문에 옳지 않습니다.

골드랫이 "변화가 클수록 저항이 크다"란 문장이 인격을 모독하는 말이라고 비판한 이유는 조금만 살펴보면 틀리다는 증거를 찾을 수가 있는데도 사람들이 대개 그렇게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의 개성을 무시한 채 "인간은 원래 변화에 저항하는 동물이야"라고 자동적으로 믿어 버리는 것처럼 인격 모독적인 발언은 없습니다. 이렇게 모든 문제의 원인을 변화에 대한 저항으로 치부하면 당장은 편해도(그리고 뭔가 '있어' 보여도) 문제 해결에 전혀 도움이 되지 못합니다.

이렇게 핑계 대기 좋지만 문제 해결에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하는 논리들을 '순환논리'라고 부릅니다. "변화가 클수록 저항이 크다"란 걸 어떻게 아느냐고 물을 때, "직원들이 항의한다", "파업을 한다", "회사를 나가 버린다" 등등 "저항이 크다"란 구체적인 사실을 언급한다면 여러분은 순환논리에 빠진 겁니다. X가 왜 Y의 원인이냐는 질문에 Y가 존재하기 때문이라고 답하는 것과 같기 때문입니다.

순환논리에 빠지면 "문제를 발생시킨 건 모두 네탓이야"란 비난으로 발전되기 마련입니다. 순환논리를 적용해도 문제가 해결될 리 없으니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잘못을 남에게 전가해 버리는 것이죠. 이렇게 되면 문제는 더욱 미궁에 빠지고 맙니다. 문제를 떠넘기는 것은 문제를 해결하는 가장 나쁜 방법입니다.

사람들이 어떤 문제를 접할 때 직관적으로 머리에 떠오르는 생각들이 있습니다. 그 직관들이 옳을 때도 있지만, 대개의 경우 "변화가 클수록 저항이 크다"라는 말 같은 고정관념일 가능성이 큽니다. 여러 가지 경로를 통해 우리의 머리 속에 형성된 고정관념들이 직관으로 보기 좋게 포장되어 나올 우려가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의 직관을 믿기 전에 그 직관이 옳은지 먼저 입증하는 태도가 중요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변화에 대한 저항이 커서 새로운 제도가 실패하고 말았다"라는 식의 영양가 없는 보고에 고개를 끄덕이는 오류에 빠지고 말 테니까요. 우리가 저항할 대상은 인격을 모독하는 나쁜 명제들임을 기억하기 바랍니다.

(*참고도서 : '초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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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짜커피 쿠폰을 빨리 찍으려면   

2011. 1. 25.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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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다시피 몇몇 커피 전문점에서는 판촉을 위해 커피를 구매할 때마다 스탬프를 찍어줍니다. 10잔이나 12잔 정도를 마시면 한잔을 공짜로 마실 수 있는 쿠폰을 주는 것이죠. 이 쿠폰이 사람들의 구매 행동에 영향을 줄 것이라고 짐작한 컬럼비아 경영대학원의 란 키베츠(Ran Kivets) 교수는 흥미로운 실험을 수행했습니다.

키베츠는 스탬프를 10개 찍어야 공짜 커피를 주는 쿠폰과, 12개를 찍어야 하는 쿠폰, 이렇게 2가지 쿠폰을 준비했습니다. 그리고는 12개를 찍어야 하는 쿠폰에는 이미 2개의 스탬프를 찍어 뒀습니다. 이 쿠폰을 자기네 학생들에게 무작위로 나눠주고 그들이 공짜 커피를 얻기 까지 걸린 시간을 측정해 보기로 했습니다. 무작위로 나눠줬기 때문에 학생들의 취향은 골고루 섞였다고 가정했지요.



사실 쿠폰은 2가지이지만, 똑같이 10개의 스탬프를 찍어야 공짜 커피를 마실 수 있기 때문에 공짜 커피를 받기 까지의 시간은 차이가 나지 않으리라 생각할지 모릅니다. 하지만, 12개 짜리 쿠폰(이미 2개의 도장이 찍혀 있는)을 받은 학생들이 10개 짜리 쿠폰을 받은 학생들보다 20%나 빨리 공짜 커피를 얻었다고 합니다. 전자는 12.7일이 걸린 반면, 후자는 15.6일이 걸렸으니 말입니다.

왜 이런 결과가 나왔을까요? 사람들은 성공이 가까이에 있다고 생각할 때 더 큰 동기를 부여 받음을 이 실험은 시사합니다. 12개의 빈칸에 2개의 스탬프를 찍어주면 사람들로 하여금 "앞으로 10개만 찍으면 공짜 커피가 생긴다"라고 생각하도록 만듭니다. 공짜로 찍어준 2개의 스탬프가 공짜 커피라는 '성공'이 멀지 않도록 느끼게 하죠. 반면, 도장이 하나도 안 찍힌 10개 짜리 쿠폰을 보면 "이 빈칸을 언제 다 채우나"란 생각을 들기 때문에 중간에 도장 받기를 포기하거나(저도 그런 적이 많습니다) 공짜 커피를 받기 까지 오래 걸립니다.

키베츠의 실험은 마케팅에 활용할 가치가 있는 연구 결과이지만, 팀이나 사업부에서 목표를 설정할 때도 좋은 시사점을 던져줍니다. 10만큼의 목표를 달성하자고 말하는 것보다, 12만큼의 목표를 설정하고 이미 2만큼은 달성했으니 10을 더 달성하자라고 말하는 것이 목표 달성에 효과적이지 않을까요? 결과적으로 10만큼의 성과를 달성하기 때문에 '달성량' 차원에서는 차이가 없지만, 후자의 방식으로 커뮤니케이션하는 것이 직원들에게 목표 달성에 큰 동기를 불어 넣지 않을까요?

물론 실험을 해보지 않아 단언할 수는 없지만, 키베츠의 실험은 '성공이 멀지 않았다' 혹은 '충분히 성공할 수 있다'라고 관리자와 직원들이 공감대를 형성하고 목표의식을 갖는 것이 제도, 계획, 절차와 같이 공식적이고 명시적인 요소보다 중요할지(혹은 더 효과적일지) 모른다는 점을 시사합니다.

키베츠의 실험과 비슷하지만 초점이 다른 또 하나의 실험을 소개하겠습니다.  에이즈에 걸린 아프리카 고아들을 돕는 모 자선 단체는 1만 달러를 모금하기 위해 기부를 요청하는 '편지 보내기 이벤트'를 벌인 적이 있습니다. 에얼렛 피쉬바흐란 행동심리학자는 편지에서 무엇을 강조하냐에 따라 기부를 약속하는 사람들의 규모가 달라지리란 가설을 세웠습니다. 그래서 피쉬바흐는 '현재까지의' 모금액을 강조하는 편지와, 1만 달러가 되기 까지 '앞으로 남은' 금액을 강조하는 편지, 이렇게 2개의 편지를 만들어서 사람들에게 무작위로 발송했죠.

그랬더니 흥미로운 결과가 나왔습니다. 예전부터 기부를 해오던 사람들은 '현재까지의' 모금액이 강조된 편지보다는 '앞으로 남은' 금액을 강조하는 편지에 더 많은 기부를 약속했습니다( 1.6% 대 12.5%). 반면 한번도 기부한 적이 없는 사람들은 '앞으로 남은' 모금액을 강조하는 편지보다 '현재까지의' 모금액을 강조한 편지를 받은 편지에 더 큰 자극을 받았습니다(24.2% 대 8.3%).

피쉬바흐는 이 실험 결과를 놓고 이렇게 해석합니다. 기부를 쭉 해오던 사람처럼 확고한 의지를 지닌 사람에게는 목표가 달성되지 못한 부분을 강조하는 것이 효과적이고, 기부에 한번도 해본 적 없는 사람처럼 상대적으로 의지가 약한 사람에게는 달성된 부분을 돋보이는 것이 효과적이라고 말입니다. 어떤 부분을 강조하냐에 따라 동기부여의 수준이 달라지는 셈입니다.

아마 여러분의 기업에서는 보통 연초에 목표를 설정하고 난 후에 6월이나 7월 정도가 되면 '중간평가'라는 과정을 거칠 겁니다. 중간평가는 실제로 평가를 실행하는 절차라기보다는(물론 어떤 회사는 점수에 '반영'하기도 하지만), 상반기의 목표 달성의 과정과 결과를 점검하고 피드백하기 위한 자리입니다.

컵에 같은 양의 물이 담겼어도 '물이 반이나 남아있다'라고 말하는 사람과 '물이 반밖에 남아있지 않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듯이, 직원들 중에는 분명 목표 달성의 의지(열성)가 강한 직원과 그렇지 않은 직원들이 있을 겁니다. 어쨋든 관리자 입장에서는 중간평가할 때 의지(열성)가 강한 직원들과 그렇지 않은 직원들 모두 목표 달성에 매진하도록 동기를 부여하고 싶을 겁니다.

이때 피쉬바흐의 실험 결과를 고려해서 직원들에게 피드백을 하면 어떨까요? 즉 의지가 강한 직원들에게는 앞으로 목표 달성치까지 얼마나 남았는지를 강조함으로써 "더 열심히 하면 달성할 수 있어"라고 독려해 주는 겁니다. 마치 "공짜 커피를 마시려면 앞으로 10개만 더 찍으면 돼"라고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반면 의지가 상대적으로 약한 직원들에게는 현재까지 얼마나 달성했는지를 강조함으로써 "지금까지 잘 했다"라고 칭찬해야 좋겠죠. 이는 "12개 짜리 쿠폰인데 이미 2개나 찍혀있다"라고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달리 말해, 성공했다는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겁니다. 이렇게 직원들의 성향에 따라 피드백이 강조점을 달리 한다면, 결과적으로 팀과 사업부 성과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겁니다(의지가 중간 정도의 직원에게는 앞으로 남은 부분과 지금까지 달성한 부분을 비슷하게 강조하면 되겠죠).

만약 반대로 피드백하면 어떨까요? 의지(열성)가 약한 직원에게 앞으로 남은 목표를 강조하면 "이것을 무슨 수로 달성해?"란 부정적인 압박감 때문에 "그냥 관두자"라고 포기할지 모릅니다. 의지가 강한 직원에게 지금까지 달성한 목표 부분을 강조하여 피드백하면 관리자의 말을 칭찬으로 받아들여 "이 정도만 해도 충분하겠지"라는 생각을 유도할지 모릅니다.

이 또한 실험을 하지 않았기에 어떤 결과가 나올지 알 수 없지만, 적어도 직원들의 개별적 성향을 반영하여 피드백해야 한다는 점은 새겨둘 만합니다. 동기를 불러일으키기 위한, 하나의 정답은 없다는 말이죠. "이렇게 하면 동기가 샘솟는다"라는 도깨비 방망이식 해법은 없습니다. 직원들 개인이 어떤 가치에 더 많은 비중을 두는지, 낙천적인지 혹은 비관적인지, 내성적인지 혹은 외향적인지 등에 따라 '동기가 활활 타오르는 발화 포인트'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이 포인트를 찾는 일은 경영자의 최우선 의무이고, 한쪽으로 치우침 없는 중용이 아닐까요?

(*참고 사이트 :http://bit.ly/6ogvOq )
(*참고도서 : '당근과 채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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