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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플 익스프레스'라는 항공사를 아십니까? 이 항공사는 1981년에 사업을 시작한 회사인데, 사우스웨스트 항공과 비슷하게 '저가 항공'이라는 비즈니스 모델을 가지고 있었죠. 헌데 피플 익스프레스는 엄청난 성장가도를 달리다가 1987년에 허망하게 무너져 텍사스 항공에 합병되고 말았습니다. 반면 사우스웨스트 항공은 거의 모든 경영서에서 성공기업으로 일컬을 만큼 우량한 항공사로 아직까지 건재하죠. 피플 익스프레스는 사우스웨스트 항공과 마찬가지로 허브 공항이 아니라 지방에 거점을 두면서 항공기를 최대한으로 활용하는 전략, 즉 항공기가 땅에 머무는 시간을 최소화하는 전략을 취했습니다. 기내식도 돈을 내야만 제공했죠.
사우스웨스트 항공의 허브 캘러허를 모방한 것인지는 몰라도 이 회사의 CEO였던 도널드 버(Donald Burr)는 인간 중심의 경영 철학을 기회가 있을 때마다 이야기하곤 했습니다. 그래서 회사 이름에도 '피플'이란 말을 넣었죠. 고위 임원들이라고 해서 특전을 누리지 못하게 했고, 직원들에게 고용의 안정성과 개인 생활, 그리고 타사보다 높은 보상을 약속했습니다. 이렇게 피플 익스프레스는 사업 초기에는 철저하게 사우스웨스트 항공을 모방(좋게 말해서 벤치마킹)했는데, 그래서인지 한때는 사우스웨스트 항공을 능가하는 성과를 보이기도 했습니다.
사우스웨스트 항공과 거의 같은 경영철학을 취했기 때문에 두 회사의 성과 역시 비슷했으리라 생각하겠지만, 한가지 중요한 차이가 두 회사 사이에 존재했습니다. 그것은 바로 '신중함'의 차이였습니다. 사우스웨스트 항공은 신규 노선에 취항할 것인지를 결정할 때 매우 신중하게 의사결정을 내렸습니다. 신중함이 지나쳐 매우 보수적으로 보였죠.
신규 노선이 돈이 된다는 판단이 들어도 신규 노선의 추가 운항이 기존 노선 운항의 '질'에 미칠 영향을 꼼꼼하게 따졌습니다. 또한 신규 노선을 위해 비행기를 추가로 구입해야 하고 그만큼 인력을 충원해야 하는데, 나중에 항공 수요가 하락한다면 '놀게 될 인력'이 부담으로 다가오리라고 생각했죠. 사우스웨스트 항공은 정리해고에 매우 신중한 기업이었기에 투자에 있어서 보수적인 경향이 뚜렷했습니다.
반면에 피플 익스프레스는 잘 나가기 시작하면서 공격적인 모습을 보였습니다. 피플 익스프레스는 설립된 지 3년 만에 10억 달러의 매출을 올렸는데, 이는 굉장한 성장이었습니다. 성장에 고무된 경영진은 항공기의 종류를 다양화하기로 했습니다. 원래 피플 익스프레스는 정비의 효율성을 극대화하기 위해 사우스웨스트 항공을 본따 보잉 737 기종만 운영했지만, 고객의 여러 니즈를 만족시킨다는 미명 하에 보잉 747(대형)과 보잉 727(소형)을 도입했습니다. 또한 지방 공항에만 취항한다는 초기의 원칙을 깨고 주류 항공사가 취항하는 주요 도시로 노선을 확대했죠. 잘 나가다 보니 대형 항공사와 맞짱을 뜨고 싶었던 모양입니다.
돈이 많이 들어오면 의례 그렇듯이 피플 익스프레스의 경영진은 사세를 확장하고픈 유혹에 굴복하고 말았습니다. 지역에 기반하고 있던 소형 항공사들을 마구 인수하기 시작했으니까요. 서로 문화가 다르고 시스템이 다른 항공사를 인수했으니 통합이 잘 이루어질 리가 없습니다. 인력도 모자라서 되는 대로 사람들을 뽑았습니다. 그러니 여기저기서 서비스에 구멍이 뚫릴 수밖에 없었죠. 수화물 분실률도 높고 정시 출발률은 최악이었습니다. 낮은 항공요금 밖에는 고객을 유인할 요소가 없었지만, 자금사정이 악화되어 항공요금을 인상하고 나서는 고객으로부터 철저히 외면 당하고 말았습니다. 결국 회사가 설립된지 근 7년 만에 다른 항공사로 흡수되어 사라졌죠.
피플 익스프레스의 사례로부터 우리는 3가지 교훈을 얻습니다. 첫 번째는 성공한 회사로부터 시스템이나 제도를 벤치마킹할 수는 있지만 그 회사의 문화까지 닮는 것은 아주 어렵다는 사실입니다. 도널드 버는 사우스웨스트 항공의 모든 시스템을 카피했지만 그 항공사 저변에 깔린 인간 존중의 문화, 평등한 의사소통의 문화, 신중한 의사결정의 문화 등은 배우지 못했습니다.
독선적이고 권위주의적인 인물이라고 평가 받는 그는 입으로만 직원 우선주의를 외쳤을 뿐 실제로는 직원들이 과중안 업무를 수행하는 것이당연하고 그로 인해 문제가 생기는 것 또한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했으니 말입니다. "왜 똑같이 했는데도 그 회사는 잘 되고 우리 회사는 이 모양일까?" 당연한 일입니다. 전략은 카피할 수 있지만 전략을 실행하는 문화는 카피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 교훈은 신중하고 보수적인 의사결정이 공격적이고 과감한 의사결정 만큼이나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무언가를 결정할 때 다시 생각하고 또 생각하면서 뜸을 들이는 경영자나 기업을 우리는 용기가 없는 기업이라고 조롱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기업이 성장가도를 달릴 때 신중한 의사결정의 가치는 빛을 발합니다. 들떠있을 때 실수하기 딱 좋은 법입니다.
이때 신중한 의사결정의 문화는 실수하지 않으려면 진중하게 다시 생각하라며 사람들을 자리에 앉히죠. 우리가 조롱해야 할 기업은 입으로는 의사결정을 재고하자고 말해놓고서 그 사안을 안 보이는 곳에 밀쳐두고 생각을 아예 하지 않는 기업입니다. 진짜로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는 회사는 보수적이고 겁쟁이라고 욕을 먹을 이유가 없습니다. 또한 경영진들은 그런 소리를 듣는다고 조급할 필요도 없습니다.
세 번째 교훈은 이미 언급했습니다. 갑작스러운 성공은 곧이어 다가올 추락을 경고한다는 것입니다. 잘 나갈 때 마구 사들이고 채용한 물적, 인적 자원들은 나중에 엄청난 부담으로 다가옵니다. 이른바 '성장의 저주'입니다. 지난 번에 올린 포스팅('성공은 독약이고 실패는 도약이다')에서 말했듯이, 유명 잡지에 표지에 오른 회사들이 몇 년 안에 하락의 길을 걷는다는 통계만 봐도 잘 나갈 때 신중하고 조심해야 함을 알게 됩니다.
피플 익스프레스는 정말로 '익스프레스'하게 떴다가 '익스프레스'하게 사라졌습니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는 말이 있는데, 성공 역시 공짜는 없습니다. 갑작스러운 성공은 갑작스러운 몰락으로 갚게 되는 모양입니다. 그렇게 되지 않으려면 신중하고 중심을 지키려는 경영의 마인드를 굳게 견지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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