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쟁은 비용이 많이 드는 경영방식   

2012. 2. 14. 1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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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아주 고전적인 연구 결과를 소개할까 합니다. 피터 블로우(Peter M. Blau)가 1940년대 말에 수행한 이 연구의 주제는 경쟁적인 조직과 협력적인 조직 중 어느 조직의 생산성이 더 높은가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블로우는 어느 공공 취업 센터(Public Employment Agency)에 근무하는 12명의 인터뷰어들을 대상으로 연구를 진행했는데, 그 센터는 두 개의 섹션으로 나뉘어 운영되고 있었습니다. 섹션 A에는 7명이, 섹션 B에는 5명의 인터뷰어들이 근무 중이었죠. 

인터뷰어들의 업무는 단순했습니다. 그들은 구직자들의 신청을 접수 받아 그들을 인터뷰한 다음 구인 기업과 연결시켜주는 업무를 수행했습니다. 인터뷰어들의 성과는 구직자들과 얼마나 많이 인터뷰를 했는지, 얼마나 많은 취업 성공 건수를 달성했는지로 평가되었고, 그 결과는 모든 인터뷰어에게 공개되었습니다. 그래서인지 기업으로부터 구인 요청이 적을 때는 인터뷰어들끼리 경쟁적으로 업무를 할 수밖에 없었고 다른 인터뷰어와 구인 정보를 공유하기보다는 혼자 독점하려는 양상이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블로우가 정보의 공유 정도를 가지고 섹션 A와 섹션 B의 경쟁도를 측정했더니 섹션 A가 섹션 B보다 더경쟁적인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섹션 B를 살펴보니 흥미로운 구인 요청이 들어오면 다른 이들과 공유하려 하고 누군가가 정보를 독점하려 들면 그를 정보 공유로부터 배제하려는 분위기였습니다. 섹션 B에서 취업 성공률이 독보적으로 높은 인터뷰어는 동료로부터 그리 환영 받지 못했죠. 반면, 섹션 A의 인터뷰어들은 취업을 성사시키려는 욕망이 커서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중요시하지 않았습니다.

개인별로 생산성을 측정한 결과, 경쟁도가 높은 섹션 A의 취업 성사 건수가 훨씬 많았습니다. 섹션 A는 1인당 84건, 섹션 B는 1인당 58건 정도의 취업 성사 건수를 나타냈죠. 이 데이터만 보면 경쟁을 권장하는 것이 성과를 높이는 방법이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취업 성사 건수를 구인 요청 건수로 나누어 생산성을 계산해 봤을 때 섹션 A가 섹션 B보다 못했습니다. 섹션 A는 구인 요청 건의 59%를 성사시킨 반면, 섹션 B는 67%를 성사시켰으니 말입니다. 8% 포인트의 차이는 통계적으로 유의했습니다.

블로우의 연구는 경쟁으로 인해 산출된 성과가 꽤 큰 비용을 치른 것임을 시사합니다. 경쟁으로 인해 직원들 간의 정보 공유가 단절되면 특정 개인의 성과가 높아질지는 몰라도 조직 전체로 보면 보이지 않는 비용이 상당하다는 의미입니다. 또한 새로 입사한 직원들이 각자의 역량을 발휘하는 데까지 걸리는 시간도 길어지는 등 조직 내의 지적자산이 활용되기는커녕 제대로 축적되지도 못합니다.

협력적인 조직은 개인이 오로지 자신만의 성과 달성에 몰두하려는 이기심을 완화시키고 협력을 권장하기 때문에 개인과 개인 사이로 더 많은 정보가 흐르고 공유된 정보가 조직의 성과를 높이는 결과를 가져옵니다. 이 사실은 블로우의 연구 이외에도 상당히 많은 연구 결과들이 지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조직은 경쟁을 권장하면서 성과 창출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까? 그렇다면, 그 성과를 창출하는 데 들어가는, 눈에 보이지 않는 비용은 생각해 봤습니까? 경쟁은 성과를 창출해내는 도깨비방망이가 아닙니다. 경쟁은 협력보다 고(高)비용의 경영 방식임을 경계하고, 소모적인 내부 경쟁을 야기하는 제도와 문화를 걷어내는 일에 우선순위를 두기 바랍니다.

- 유정식 씀

(*참고논문 : Co-operation and Competition in a bureaucrac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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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가가 떨어지면 정권이 교체된다?   

2012. 2. 13. 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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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들이 정치의 흐름이 주식시장에 큰 영향을 끼친다고 생각합니다. 총선에서 어느 당이 승리하느냐, 또 어느 당에서 대통령을 배출하느냐에 따라 경제 정책이 결정되고 정책의 실행 결과가 주식시장의 상승과 하락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고 이야기합니다. 대통령 후보들도 자신이 대통령이 되어야 경제가 발전할 수 있다는 주장을 하며 유권자들에게 한 표를 호소합니다. 이러한 현상은 간단히 말해 정권이 주가로 대표되는 경제 흐름을 결정한다는 논리가 깔려 있습니다.

헌데 존 캐스티(John L. Casti)가 쓴 '대중의 직관(원제: Mood matters)'이라는 책을 읽으니 이런 통념과는 반대되는 이야기가 나오더군요. 그는 정권을 잡은 특정 정당이나 정치적 동향이 주식시장을 좌우한다는 인과관계나 둘 사이에 상관관계가 있다는 증거는 없다고 말합니다. 그는 오히려 사회적 분위기의 측정지표라고 말할 수 있는 주식시장의 흐름이 정권의 향방을 결정한다는, 보통 사람들의 직관에 반하는 주장을 내놓습니다. 즉, 경제 흐름이 정권을 좌우한다는 뜻입니다.

캐스티의 주장은 애널리스트 로버트 프렉터(Robert Prechter)가 공개한 분석 결과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프렉터는 미국의 경우 "주식시장의 동향이 현직 대통령이나 여당이 승리하거나 패배할 가능성에 극적으로 영향을 미친다"고 말합니다. 역사적으로 주식시장의 상승세일 경우에 현직 대통령이 압도적 승리(landslide)를 거두어 연임을 했지만, 주식시장이 하락세로 곤두박질치는 상황에서는 현직 대통령이 연임에 성공하지 못했다는 것이죠. 가까운 예로, 조지 부시가 앨 고어를 꺾으며(물론 가까스로 이겼지만) 재선에 성공할 때 다우존스 지수는 상승세에 있었습니다. 하지만 버락 오바마가 당선되면서 공화당에서 민주당으로 정권이 바뀔 때는 주식시장이 침체된 상황이었죠.

아래의 그래프가 프렉터가 제시한 근거입니다.



주식시장의 흐름은 사람들이 미래를 낙관적으로 보느냐 비관적으로 보느냐, 사회를 긍정적으로 보느냐 부정적으로 보느냐를 나타내는 대표적인 지표라고 본다면, 긍정적이고 낙관적인 사회 분위기 형성에 기여했다고 여겨지는 지도자를 계속 두고 싶어한다는 것이 프렉터의 설명입니다. 반대로 주가가 연일 하락한다면 정책의 실패로 그런 상황에 일조했다고 생각되는 지도자를 다른 사람으로 바꾸고 싶어한다고 말합니다. 사람들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특정 정책의 실행이 아니라 변화에 대한 욕구이기 때문이라고 그는 정리합니다.

프렉터의 주장이 과연 우리나라에도 유효할까요? 그가 제시한 사례는 두 번까지 대통령의 연임이 허용되는 미국의 사례이지만, 5년 단임제인 우리나라에도 적용되는지 궁금했습니다. 그래서 1980년부터 2012년 1월까지 매월말의 코스피(KOSPI) 데이터를 구해보고, 역대 대통령의 재임 기간을 매핑했습니다. 아래의 그래프가 바로 그것입니다.



1980년부터 현재까지 정권의 교체는 두 번 있었습니다. 김영삼 정부에서 김대중 정부로 이양될 때 한번, 노무현 정부에서 이명박 정권으로 이양될 때 또 한 번 있었죠. 먼저 김영삼 정부에서 김대중 정부로 정권 교체가 될 때의 주식시장의 흐름은 프렉터의 주장을 대변합니다. 1994년에 정점을 찍은 주가가 1998년까지 하락하는 흐름이 여실히 나타났고 그에 따라 정권이 바뀌는 모습이 나타납니다.

하지만 김대중 정부에서 노무현 정부로 넘어갈 때는 프렉터의 주장과는 다릅니다. 김대중 정부 초기에는 주가가 크게 상승했지만 정권 후반부에는 크게 떨어졌죠. 그런데도 정권의 교체가 발생하지 않고 노무현 정부가 김대중 정부를 승계했습니다. 미국으로 치자면 연임에 성공한 셈이죠.

그렇다면 노무현 정부에서 이명박 정부로 이양될 때는 어떤가요? 노무현 정부 초기에는 주가가 574를 기록했지만 임기말에는 1711을 찍음으로써 크게 상승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프렉터의 주장과는 달리) 정권이 교체되고 말았죠.

이로써 프렉터의 주장, 즉 사회 분위기의 대표 지표라 할 수 있는 주식시장이 흐름이 정권의 향방을 결정한다는 논리는 적어도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옳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그 이유는 프렉터의 분석 결과가 미국의 특수한 상황에서 나온 것이라 다른 나라에 일반화하여 적용할 수 없기 때문이겠죠. 우리나라의 주식시장이 미국과 비교해 규모가 작고 역사가 짧아 인위적인 여러 가지 조치나 외생변수에 의해 크게 좌우됨으로써 사회 분위기를 대표하지 못하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주식시장의 흐름보다는 국내총생산(GDP)이 사회의 분위기를 알려주는 지표로 더 낫지 않을까란 생각을 해봤습니다. 아래의 그래프와 같이 1980년부터 2010년까지의 GDP 데이터를 대통령 재임기간과 비교해 봤습니다.


(*GDP는 환율에 크게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점, 그리고 위 그래프의 데이터는 인플레이션 효과를 제거하지 않은 것들이라는 점을 감안하여 그래프를 보기 바랍니다. 하지만 사회 분위기를 들여다 본다는 의미에서는 환율과 인플레이션 효과를 무시해도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이 그래프를 보면 김영삼 정부에서 김대중 정부로 정권이 교체된 이유는 김영삼 대통령의 임기말에 터진 IMF 환란 사태 때문이라기보다는 그 전부터 GDP가 큰 폭의 하락세에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사회 분위기가 정권의 교체를 제법 오래 전부터 원했다는 것이죠. 김대중 정부에서 노무현 정부로 이양될 때 GDP는 상승세에 있었다는 점, 그래서 정권이 교체되지 않았다는 점은 흥미로운 부분입니다. 또한 노무현 정부 말기의 GDP 하락세는 정권의 교체를 예고했던 신호탄으로 보입니다. 

이명박 정부가 기록한 GDP는 2010년까지는 수치상으로 양호하나 2011년에 GDP 성장률이 둔화됐다는 점(2010년 6.2%에서 2011년 3.6%로)과 2012년 한 해의 경제 전망이 그리 좋지 않다는 것이 불안 요소입니다. 두고 봐야 알겠지만, 2012년 한 해의 주식시장의 흐름과 경제 지표가 2013년의 정권 교체 여부를 선행적으로 제시할지 모른다는 조심스러운 예상을 해 봅니다. 프렉터의 주장에 근거하여 제시할 수 있는 가설은 "주식시장을 비롯한 경제 지표의 흐름이 정권 교체를 결정한다"입니다. 물론 현재까지 터진 정권 실세들의 비리와 앞으로 터질 또다른 비리들이 큰 영향을 끼칠지도 모르죠. 아직은 어디까지나 '가설'입니다.

프렉터의 주장이 미국의 사례에 근거한 것이고 또 주가지수를 바탕으로 했다는 한계가 있기에 우리나라에 꼭 들어맞는다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프렉터의 주장은 실제로 정권이 바뀌느냐 유지되느냐의 문제로 수용하기보다는 사회가 낙관적인 분위기를 탈 때는 현재의 정권에 점수를 주고, 반대로 비관적인 분위기가 사회를 점령할 때는 정권 교체의 욕구가 크게 상승한다는 정도로 이해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사건이 사회적 분위기를 형성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분위기가 사건을 만들어낸다는 프렉터와 래스티의 주장은 참신하고 흥미롭습니다. 그들의 자세한 주장을 들어보려면 앞에서 언급한 '대중의 직관'이란 책을 읽어보기 바랍니다. 사회 현상을 거꾸로 뒤집어 보는 방법으로 혜안을 얻을지도 모르니까요.

(*참고도서 : '대중의 직관')
(*참고기사 : Ask not what your candidate can do for the stock marke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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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원들에게 당근을 흔들어대지 말라   

2012. 2. 10.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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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과에 따른 차등 보상이 조직의 성과 향상에 미치는 영향은 얼마나 될까요? 많은 조직에서 차등 보상이 성과 창출을 위한 동기를 불어넣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조직 전체의 성과가 제고되는 효과가 있으리라 기대합니다. 그래서 성과가 지체되어 있거나 조직의 분위기가 침체될 때 차등 보상을 도입하거나 차등의 정도를 확대하겠다는 계획을 실행에 옮기려 합니다. 과연 차등 보상이 원하는 효과를 언제나 가져다 주는, 도깨비 방망이 같은 비법일까요?

캘리포니아 주립대 어바인 캠퍼스의 존 피어스(Jone L. Pearce) 등의 학자들은 미국의 사회보장국(Social Security Administration)을 대상으로 성과에 따른 차등 보상이 조직의 성과에 얼마나 좋은 영향을 미쳤는지에 관한 연구를 1980년대 초에 수행한 바 있습니다. 사회보장국은 1978년에 제정된 행정서비스 개혁법에 따라 성과를 기반으로 한 보상 시스템을 도입했습니다. 피어스 등은 차등 보상제도가 도입되기 전과 도입된 후에 조직의 성과가 어떻게 변했는지 살펴보고, 차등 보상이 끼친 영향을 통계적으로 분석하기 위하여 사회보장국 산하의 지역사무소들로부터 1977년부터 1982년까지의 성과 데이터를 수집했습니다. 



취합된 성과 지표는 모두 4가지 종류였습니다. 이 지표들은 지역사무소의 성과를 가장 잘 나타내는 것들이었고 관리자 자신들의 차등 보상액을 결정하는 데에 40%나 반영되었기 때문에 관리자들 사이에서 매우 중요하게 인식되었습니다. 높은 급여를 받기 위해 신경을 쓰지 않을 수가 없었죠.

1977년부터 1982년까지의 4가지 성과지표의 값을 살펴보니 모두 향상되는 패턴이 발견되었습니다. 이 패턴만 보면 성과에 따른 차등 보상제도가 조직의 성과 향상에 기여했다고 판단하기 쉽지만, 통계적으로 분석한 결과는 그러한 직관적 판단에 제동을 걸었습니다. 피어스 등은 조직의 성과가 차등 보상을 도입하기 이전부터 향상되고 있었다는 점을 지적했습니다.

다시 말해, 차등 보상이 성과 향상에 영향을 미쳤다고 볼 만한 통계적인 근거가 없다는 것이었죠. 차등 보상을 도입했다고 해서 향상되고 있던 조직의 성과가 더욱 높아졌다고 보기 어려웠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4개 중 2개의 성과지표는 향상되는 모습을 보이다가 1981년 이후에 나빠지는 패턴을 나타내기도 했습니다.

피어스 등은 이 하나의 연구만으로 관리자들을 대상으로 한 차등 보상의 효과를 증명할 수는 없다는 점을 인정했습니다. 그들은 차등 보상이 조직 성과에 기여할 거라는 막연한 기대감을 갖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 이 연구의 시사점이라고 말합니다. 차등 보상이 정말로 성과 향상에 좋은 영향을 미치는지를 다른 요인과 떼어 놓고 분석해야 한다는 점을 지적합니다. 사실 차등 보상 때문에 조직의 성과가 높아진 게 아니라, 조직의 성과가 높아지고 있기에 차등 보상을 실시할 금전적 여력이 있다고 보는 게 맞을지 모릅니다. 인과관계의 화살표 방향을 혼동해서는 안 된다는 점이 이 연구에서 배워야 할 교훈이기도 합니다.

피어스의 연구 이외에 차등 보상이 조직과 개인의 성과 향상과 관련이 없다(그리고 오히려 성과를 저하시킨다)는 연구 결과는 많습니다. 직원들에게 차등 보상이라는 '당근'을 흔들어 대면 성과 향상을 위한 동기가 불끈 솟아오르리라 기대하는 것은 인간을 인간으로 존중하지 않고 한낮 동물로 여기는 비인간적 경영방식일지 모릅니다.

사람들은 자기 자신을 평할 때는 '결코 돈에 의해 좌우되지 않는다', '일을 할 때 돈보다도 다른 것을 더 중요하게 여긴다'라고 말하면서도, 다른 사람들을 바라볼 때는 '돈을 차등해야 열심히 일하려고 할 거야', '돈만 많이 받으면 좋아한다'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간단히 말해, 자신은 고고하지만 타인은 돈 밝히는 속물일 거라 여기는 모양입니다.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죠.

성과 향상을 위해 차등 보상을 도입하는 일은 성과가 지지부진한 진짜 이유를 덮어버리고 맙니다. 진짜 문제는 돈을 적게(또는 돈을 똑같이) 주기 때문이 아니라 업무의 본질 속에 숨어 있다는 점을 깨닫는 것이 경영자가 가져야 할 현명한 관점입니다.

직원들에게 당근을 흔들어대지 마십시오. 당근은 채찍과 다를 게 없습니다.

(*참고논문 : Managerial Compensation Based on Organizational Performa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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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회사에 무임승차자는 몇 명일까?   

2012. 2. 8. 0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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펜실베니아 주립대의 심리학자 로버트 쿠르즈반(Robert Kurzban)과 다니엘 하우저(Daniel Houser)는 84명의 학부생들을 대상으로 '공공재 게임'이라 불리는 실험을 수행한 바 있습니다. 그들은 학생들을 4명씩 그룹을 이루게 한 후 각자에게 50개씩 토큰을 나눠 줬습니다. 학생들은 받은 토큰을 자신의 개인 계좌에 둘 수도 있고 그 중 일부를 떼어 그룹의 공동 계좌에 기부할 수 있었죠. 실험자는 공동 계좌에 기부된 돈을 2배로 증액해 주었습니다. 공동 계좌에 적립된 돈은 나중에 4명이 똑같이 분배하는 것이 규칙이었습니다. 

학생들이 기부할 수 있는 기회는 여러 번 주어졌는데(회수는 4번에서 34번까지 무작위로 실시), 매번 기부를 결정하기 전에 공동 계좌에 얼마나 적립됐는지 알려주었습니다. 그 정보를 들으면 그룹 내 학생들이 이기적으로 결정을 내렸는지 아니면 그룹을 위해 협력했는지의 여부를 알 수 있었겠죠.



자신의 이익을 최대화한다는 관점에서 볼 때 학생들은 어떻게 행동하는 것이 좋을까요? 자신은 기부를 한푼도 하지 않고(즉 50개의 토큰을 확보해 두고) 나머지 3명이 공동 계좌에 기부한 돈을 나눠 가지면 될 겁니다. 하지만 4명이 학생이 모두 그런 생각을 하면 공동 계좌에 한푼도 적립되지 않을 테고 공동 계좌에 적립된 돈을 2배로 불려준다는 혜택을 얻지 못하겠죠.

그래서 공동의 이득을 위해 협조적으로 행동하는 학생이라면 공동 계좌에 기부하는 것이 자신이 받아갈 절대금액을 높일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할 겁니다. 또 어떤 학생은 매번 기부 기회가 주어질 때마다 공동 계좌에 얼마나 기부됐는지의 정보를 듣고서 기부 여부를 결정하기로 하겠죠. 만일 다른 학생들이 직전에 기부를 별로 하지 않았다면 '이번에는 기부하지 않겠다', 반대로 공동 계좌에 쌓인 금액이 이전보다 많아졌다면(직전에 기부가 많이 이뤄졌다면) '이번에는 기부해야겠군'이라는 전략을 취할 겁니다. 하지만 그룹 내에는 남들이 협조적으로 행동할 때(매번 기부를 하거나, 상호호혜의 원칙에 따라 기부를 결정하거나) 자신은 이기적으로 행동함으로써 공동의 이익에 '무임승차'하려는 학생도 있을 겁니다.

쿠르즈반과 하우저가 여러 학생들을 대상으로 실험을 반복한 결과, 예상한대로 학생들의 성향이 협력자(cooperator), 보답자(reciprocator), 무임승차자(free rider)로 뚜렷하게 나뉘었습니다. 협력자는 매번 기부하려는 사람인 반면, 보답자는 조건에 따라 협조 여부를 결정하는 자로서 남들이 많이 기부할 때만 자신도 기부하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무임승차자는 자신이 가진 50개의 토큰을 내어주지 않고 다른 사람의 기부로부터 이득을 취하려는 사람이죠. 중간값(median)을 따져보니 무임승차자는 1개, 보답자는 25개, 협력자는 50개의 토큰을 기부했다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성향의 분포였습니다. 협력자는 13%, 보답자는 63%, 무임승차자는 20%로 나타났습니다. 합쳐서 100%가 안 되는 이유는 유형을 정하기가 애매한 3명의 학생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아마 3명의 학생들은 전략 없이 무작위로 행동한 탓일지도 모름). 이러한 분포로 인해 공공재 게임을 충분히 반복해 보면 세 유형의 사람들이 비슷한 이익을 얻는 상태로 수렴되는 결과를 보였습니다. 무임승차한다고 해서 특별히 많은 금액을 독차지하는 것도 아니었고, 매번 기부를 행하는 협력자라고 해서 손해를 보는 것도 아니었죠. 이론적으로 보면 25에서 125의 범위로 가져가는 이익의 차이가 발생할 수 있었지만 학생들은 대략 70에서 77.5 정도의 이익을 나눠 가졌습니다.

쿠르즈반과 하우저는 이 실험을 통해 협력자, 보답자, 무임승차자로 이루어진 인구 분포가 안정적인 균형 상태를 이루고 있다는 시사점을 얻었습니다. 그룹의 크기가 충분히 크다면, 대략 13 : 63 : 20의 분포로 협력자, 보답자, 무임승차자가 존재하리란 점도 알려주죠. 물론 이 실험으로는 개인이 어떤 종류의 게임(혹은 의사결정)이든 항상 자신의 협력 유형을 고수하는지, 아니면 종류가 다른 사안에 대해서는 협력자-보답자-무임승차자 전략을 넘나드는지의 여부는 정확히 알 수 없습니다. 추후에 다른 실험으로 증명해야 할 가설이지만, 개인의 협력 유형은 다른 종류의 게임(혹은 의사결정)이라고 해서 크게 바뀌지 않을 거라 짐작됩니다.

여러분의 조직을 둘러보면, 새로운 제도나 전략에 앞장서서 참여하려는 사람, 다른 직원들의 태도를 보고 결정하려는 사람, 뒷짐 지고 있다가 다른 직원들이 이뤄낸 성과에 얹혀 가려는 사람이 눈에 띌 겁니다. 쿠르즈반과 하우저의 실험을 일반화해 본다면, 충분히 큰 조직에서 10명 중 8명 정도는 협조적이고 나머지 2명은 상황에 묻어가려는 무임승차자가 존재하리라 짐작됩니다.

그렇다면 조직의 공동 이익을 위해 무임승차자를 최소화하는 조치가 필요할 겁니다. 쿠르즈반과 하우저의 분석에 따르면, 3명의 보답자가 1명의 협력자와 그룹을 이룰 때와 1명의 무임승차자와 그룹을 이룰 때, 전자가 후자보다 약 40% 많은 이익을 달성하리라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하지만 과연 무임승차자를 없앨 수 있을까요? 예전의 글(무임승차자, 그들을 어떻게 할까요?)에서 언급했듯이, 무임승차자의 존재는 어쩔 수 없는 현상이며 그들을 모두 발본색원하겠다는 조치는 힘만 많이 들 뿐 별로 효과가 없습니다. 무임승차자 제거 때문에 '부칙'을 잔뜩 달릴수록 제도가 누더기가 되고 제도의 본래 목적을 상실할 수도 있습니다. 무임승차자가 지나치게 커지지 않도록 제도를 운영하는 것이 최선입니다.

여러분의 조직에 무임승차자는 과연 몇 명입니까? 소수의 무임승차자를 그대로 두면서 협력을 권장하는 조직관리가 필요합니다. 무임승차자를 '발라내겠다'는 극단과, 무임승차자를 '방치하는' 극단 사이에서 적절하게 무게중심을 잡아야 합니다. 

(*참고논문 : Experiments investigating cooperative types in human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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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본디 이타적이다   

2012. 2. 6. 1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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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본디 이기적일까요, 아니면 이타적일까요? 이 질문은 사실 꽤 민감해서 성선설이니 성악설이니 하면서 오래 전부터 여러 철학자들과 사상가들이 나름의 논리를 가지고 논쟁을 벌이는 양상과 비슷한 논란을 야기합니다. 하지만 이 질문에 답하는 일은 아주 중요합니다. 인간을 이기적인 존재로 보느냐 이타적인 존재로 보느냐에 따라 인간을 대하고 다루는 방법이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생존을 위해 자기에게 유리한 것을 극대화하고자 하는 이기적인 존재로 인간을 규정한다면, 그러한 이기심이 조직과 사회의 안녕을 해치지 않도록 하고 나아가 시너지를 구축하도록 하기 위해 통제와 명령으로 인간을 다스리고 이끌어야 한다는 것이 당위성을 갖습니다. 반대로, 생래적으로 타인을 돕고 자신을 기꺼이 희생함으로써 사회의 일원으로서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 받고 보호 받으려는 존재로 인간을 바라본다면, 자유로운 생각과 행동을 존중하고 타인과 사회에 기여하려는 내적 동기를 극대화시켜야 한다는 논리가 힘을 얻습니다.



인간이 본디 이기적인지 이타적인지에 관한 논쟁은 이 블로그에서 다루기에는 상당히 버거운 주제입니다. 하지만,   유아와 침팬지를 대상으로 실험한  펠릭스 바르네켄(Felix Warneken)과 마이클 토마셀로(Michael Tomasello)의 연구 결과를 들여다 본다면, 인간이 본디 이타적인 동물이라는 느낌을 갖게 됩니다.

연구자들은 17.5~18.5 개월 정도인 24명의 유아를 대상으로 여러 가지 간단한 과업을 진행했습니다. 실험자가 일부러 펜이나 빨개집게를 떨어 뜨리고 손에 안 닿는 척 하거나, 손에 물건을 가득 들고 있어서 캐비넷 문을 열지 못하는 척 하거나, 또는 책을 쌓다가 실수로 책을 미끄러뜨렸을 때 유아들이 어떤 행동을 보일지 관찰했습니다. 모두 10가지의 과업을 각각 몇 차례씩 수행한 결과, 유아들은 10회 시도할 때마다 5.3회 정도 실험자를 도와주는 행동을 보였습니다. 대조 조건(control condition)일 때의 1.5회에 비하면 확실하게 차이가 나는 결과였죠. 

유아 각각을 대상으로 분석해 보니 24명 중 22명의 유아들이 적어도 한 번 이상 실험자를 도왔습니다. 개인별로 차이가 있긴 했지만, 어떤 유아가 항상 남을 돕는지 또 어떤 유아가 절대로 남을 돕지 않는지 구분하기가 어려웠습니다.

바르네켄과 토마셀로는 비슷한 실험을 세 마리의 침팬지를 대상으로 실시했습니다. 침팬지는 인간과 동일한 조상에서 갈라져 나온 영장류이기에 이타성의 본류를 확인하는 데에 좋은 실험 대상이죠. 침팬지들에게도 모두 10가지 종류의 과업을 실시했는데, 예를 들어 실험자가 테이블을 스폰지로 닦다가 일부러 떨어뜨리고는 집어올릴 수 없는 척 하거나, 손에 물건을 잔뜩 들고 있어서 바닥에 있는 물건을 치우지 못해 바닥에 앉지 못하는 척 하거나 했죠. 그 결과, 유아를 대상으로 했을 때와 마찬가지의 결과가 나왔습니다. 비록 유아들보다는 도와주는 회수가 적었지만(물건을 가지고 놀려는 습성을 보여서), 침팬지들은 대조 조건에 속할 때보다 실험 조건에 속할 때 도움이 필요한 실험자를 더 많이 돕는 행동을 보였습니다.

다음의 링크를 누르면, 실험의 결과를 동영상으로 간단하게 들여다 볼 수 있습니다. 1번부터 4번은 유아들 대상의 실험이고, 나머지는 침팬지 대상의 실험입니다.

Movie S1
Clothespin Task

Movie S2
Cabinet Task

Movie S3
Book Task

Movie S4
Flap Task

Movie S5
Lid Task (Alexandra)

Movie S6
Mould Task (Alexandra)

Movie S7
Sponge Task (Alexandra)

Movie S8
Lid Task (Annet)


바르네켄과 토마셀로의 실험은 인간이 남을 도우려는 이타심을 타고났을 거라고 짐작케 합니다. 이타심이 발현되는 이유가 사회로부터 배척 당하지 않고 생존 가능성을 높이기 위한 이기심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말한다 해도, 또는 '이기적 유전자' 관점에서 유전자가 자신의 복제 가능성을 높이려고 숙주인 인간을 이타적으로 행동하도록 조종하는 것이라 말한다 해도, 그 이유가 뭐든 인간은 선천적으로 댓가 없이 타인을 도우려는 심성을 가지고 있음을 이 실험이 (비록 단편적이지만) 보여줍니다.

심리학자이자 경영학자인 더글러스 맥그리거(Douglas McGregor)는 조직의 구성원들을 어떤 가정을 가지고 대하느냐에 따라 'X이론'과 'Y이론'을 주창했습니다. X이론은 직원들을 전적으로 신뢰할 수 없기 때문에 지속적으로 체크해야 하고, 동기가 사라지면 열심히 일하려 하지 않기 때문에 바른 길로 가도록 끊임없이 동기를 불어넣어야 한다고 보는 관점입니다. 그래서 통제와 규율, 당근과 채찍을 통한 경쟁을 강조하죠. 반면, Y이론은 직원들이 성취감과 자기실현을 적극적으로 추구하고 솔선하며 자율적인 책임 하에 목표에 헌신한다는 관점입니다. 따라서 Y이론 하에서는 자유와 창의, 협력과 상호존중을 기치로 삼습니다.

바르네켄과 토마셀로의 실험은 Y이론을 지지합니다. 인간은 본디 이타적이고 선한 존재이므로 자율을 부여하고 존중하는 마음으로 대할 경우 최고의 성과를 이끌어낼 수 있음을, 또한 그렇게 하는 것이 인간의 본성을 거스르지 않는 길임을 시사합니다. 

여러분의 조직은 여러분을 이타적인 존재로 대합니까, 아니면 이기적인 대상으로 바라봅니까? 이는 매우 근본적이고 중요한 질문입니다. 인간은 본디 이타적이고 적어도 이기적이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참고논문 : Altruistic Helping in Human Infants and Young Chimpanzee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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