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가을을 찍다   

2011. 11. 6. 1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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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토)는 날씨가 마치 초여름처럼 더웠습니다. 반팔티를 입고 다니는 사람이 종종 눈에 띄었을 정도였죠. 11월에 단풍이 지고 낙엽이 길바닥에 가득한데, 기온은 스산하지 않으니 가을 느낌이 잘 나지 않더군요. 그래도 풍경만 보면 이제 만추입니다.

곧 겨울이 오고 2011년도 안녕을 고하겠죠?

공원을 여기저기 다니면서 찍어 본 사진 몇장을 올려 봅니다.
즐거운 가을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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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사 시나리오 플래닝 워크샵 실시   

2011. 11. 4. 0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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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십니까?
인퓨처컨설팅의 유정식입니다.

오는 11월 7일(월) 오후 1시부터 6시까지 5시간 동안 D사 마케팅 담당 인력을 대상으로 '시나리오 플래닝 워크샵'을 실시합니다. 워크샵의 개략적인 일정은 다음과 같습니다.



- 불확실성의 의미
- 시나리오 플래닝의 필요성
- 시나리오 플래닝 사례
- 시나리오 플래닝의 방법론
   - Future Backward
   - Future Forward
- 시나리오 플래닝 실습 : Phase 1 부터 Phase 6까지 진행
   (실제 내부 사례를 가지고 진행)

인퓨처컨설팅은 다양한 방식으로 시나리오 플래닝 특강과 워크샵을 실시합니다. D사와 같이 5시간 프로그램도 있고, 8시간, 1박 2일 프로그램을 운영 중입니다. 보다 자세한 사항은 여기를 클릭하시거나, 아래의 연락처로 문의해 주시면 알려 드리겠습니다.

전화 : 02-733-1568 / 010-8998-8868
이메일 : jsyu@infuture.co.kr

감사합니다.

- 유정식 배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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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수 원장이 비논리적이고 선동적이라고?   

2011. 11. 2. 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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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월요일 저녁에 차를 타고 가다가 무료하여 라디오를 켰습니다. 97.3 MHz에서 그때 방송되는 프로그램은 '열린 토론'이었습니다. 중간부터 들은지라 토론에 참석한 사람들이 누구인지, 그들이 신분이 무엇인지 그때는 몰랐지만, 오고 가는 이야기를 잠깐 들으니 이번 서울 시장 선거에 관하여 각 당의 입장을 정리하여 말하는 자리 같았습니다.



그런데 참석자 중 한 사람이 안철수 원장에 대한 언급을 하더군요. 워낙 이슈의 중심에 있는 사람인지라 그가 안철수 원장에 대해 어떻게 이야기하는지 귀를 쫑긋 세우고 들었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이 말하는 논리를 듣고 실소를 뿜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KBS 홈페이지 들어가니 그날 나눴던 토론 전문이 올라가 있더군요. 그 부분을 복사하여 아래에 옮겨 봅니다.

김진 (중앙일보 논설위원)

안철수 교수가 ‘상식과 비상식의 대결에서 시민들이 상식의 손을 들어 준 것이다. 사실상 상식이 비상식을 이겼다.’라는 표현을 했는데 이것도 과학자답지 못한 대단히 비논리적이며 상당히 국민들을 선거결과를 놓고 갈등과 분열로 놓고 가는 잘못된 선동적 분석이다 이렇게 판단합니다.

만약에 나경원 후보 쪽이 비상식이었다면 나경원 후보고 지지한 46%라든가 또는 50대, 60대에서는 나경원 후보가 더블스코어 이상으로 지지를 받았는데 50대, 60대의 우리 한국사회의 중견이나 원로급들은 전부 다 비상식이라는 것인지, 젊은이들은 상식이고 중견 원로층은 비상식이라고 하면 한국사회가 물구나무 사회라는 것인지 안철수 교수는 대단히 선거결과를 너무 자극적이고 정치적이고 선동적으로 해석한 것 아니냐 이렇게 판단합니다.

(*출처 : http://www.kbs.co.kr/radio/1radio/kbsopen/interview/index.html ) 2011.10.31



여러분은 이 말을 듣고 어떤 생각이 듭니까? 진짜로 안철수 원장의 논리가 대단히 비논리적이고 선동적이라는 생각이 듭니까?

저는 김진 위원의 발언을 듣고 비논리적인 사람은 바로 그 자신이라고 판단했습니다. 김진 위원의 논리를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어떤 사람이 비상적인 후보(즉 비상식적인 정당)를 선택했다면, 그는 비상식적인 시민이다.
어떤 사람이 상식적인 후보(즉 상식적인 정당)를 선택했다면, 그는 상식적인 시민이다.



이런 논리로 안철수 원장의 발언이 선동적이라고 김진 위원은 주장하지요. 그러나 그의 논리는 지극히 단선적이고 양자택일적입니다. 어떤 사람이 비상식적인 후보를 선택했다고 반드시 그 사람이 비상식적일까요? 왜 그렇게 단정 짓는 걸까요?

진짜로 엄밀하게 논리적으로 따져보면, 비상식적인 후보를 선택한 사람들 중에는 상식적인 사람과 비상식적인 사람이 섞여 있다고 봐야 옳습니다. 반대로, 상식적인 후보를 선택한 사람들 중에도 역시 상식적인 사람과 비상식적인 사람이 (비율은 잘 모르겠지만) 섞여 있겠죠. 게다가 인간의 특성을 잘 안다면, 인간은 상식적으로 행동하기도 하지만 때에 따라서 비상식적으로 행동할 때도 있다는 것을 감안해야 합니다. 따라서, 논리적이지 못한 사람은 오히려 논설위원인 김진 위원이라 할 수 있습니다.

또한 김진 위원은 안철수 원장이 50~60대 시민들을 비상식적인 사람들로 인식하케끔 선동적인 해석을 했다고 비판하는데, 사실 시민들을 상식이니 비상식이니 하며 흑백논리적으로 갈라 놓고 생각하는 사람은 김진 위원 자신이 아닐까요? 제 생각에는, 후보자(그리고 정당)는 선거에 임하는 시민들을 기본적으로 '가치 중립적'인 대상으로 인식해야 한다고 봅니다. 시민들을 가치 중립적인 대상으로 인식하지 않을 거라면 후보자들은 굳이 TV 연설을 하거나 선거 유세를 하며 힘을 낭비할 필요가 없을 테니까요.

'상식에 손을 들어줬다'는 안철수 원장의 말은 가치 중립적인 위치에 있는 시민들이 시대의 흐름을 정확하게 읽고 판단했다는 고마움의 말로 해석해야 합니다. 비논리적으로 확대해석하고 상식적이니 비상식적이니 하는 구분자로 시민들을 나누며 선동하는 사람은 안 원장이 아니라 오히려 김 위원 자신입니다.

김진 위원의 비판은 언뜻 들으면 옳은 말 같아서 청취자들, 나아가 시민과 국민들에게 잘못된 인식을 심어줄 공산이 크지 않을까요? TV나 언론매체에서 나오는 소위 논객들의 말 속에도 얼마나 많은 논리적 오류가 숨어있는지를 안다면, 그들의 말을 글자 그대로 수용할 것이 아니라, 비판적 사고라는 체를 통해 거르고 또 걸러서 들어야 하겠습니다. 그게 상식적인 시민의 의무이자 권리일 겁니다.


(* 본 글은 저의 정치적인 입장과 무관합니다. 정치적으로 확대해석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
(* 검색해보니, 김진 위원이 자신의 신문에 올린 논평 기사가 눈에 띄는군요. '안철수의 선동 바이러스'란 글입니다. 읽고 판단해 보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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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다는 것에 관한 철학적 단상   

2011. 11. 1. 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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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언가를 '안다'는 말은 무엇을 뜻할까요? 우리가 무언가에 관한 '지식'을 '알고 있다'고 주장할 때 그 '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오늘은 좀 철학적인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안다는 것'을 철학적으로 고찰하면서 우리가 무엇을 안다고 주장할 때 생길 수 있는 오류를 짚어보겠습니다.

플라톤 시절부터 철학자들은 '세 갈래 이론'이라고 불리는 세 개의 기준을 통해 '안다는 것', 즉 지식을 정의해 왔습니다. 세 가지 기준을 만족하면 '그것을 안다'고 말할 수 있고, '그것을 안다'면 세 가지 기준을 만족한다는 뜻이죠. 그 세 가지 기준은 바로 '믿음', '정당화', '진리'입니다.



첫 번째 기준인 '믿음'에 의하면, 우리가 1+1=2를 안다고 주장하려면 그것에 대한 믿음을 지니고 있어야 합니다. 믿지 않는다면 그것을 안다고 주장할 수 없겠죠. 당연한 말이지만, '믿음'이라는 기준을 적용하면 절대적인 지식은 존재하지 않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이르게 됩니다. 동일한 사실에 대해 누구는 믿고 누구는 믿지 않는다면, 믿는 사람에게는 지식이 되지만 믿지 않는 이에게는 지식이 되지 않기 때문이죠. 지식도 상대성 원리를 갖는 걸까요?

믿음을 '안다는 것'을 정의하는 하나의 기준으로 본다면 위대한 물리학자 아인슈타인은 양자역학을 '모른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는 양자역학에서 말하는 여러 발견이 사실임을 인정했지만 그럼에도 자신을 그걸 믿을 없다고 말했습니다. 양자역학을 태동시킨 위대한 과학자가  그랬을까요?

왜냐하면 '안다' 말은 정당화의 책임을 동반하기 때문이죠. 1 + 1 = 2임을 안다면, 믿어야 하고 증명해야 하는 의무감도 함께 생기는 것입니다. 아인슈타인은 자신이 믿지 못하는 것을 증명해야 한다는 책임을 거부했습니다. 따라서 양자역학에 있어 그의 '' 수준은 양자역학을 들어본 적도 없는 일반 사람과 다르지 않다고 말해도 '안다는 것'을 정의하는 철학적 기준으로 본다면 과언이 아닙니다.

두 번째 기준인 '정당화'는 우리가 무엇을 안다고 말하려면 자신의 믿음에 타당한 이유가 있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수학적 증명이든, 과학적 실험이든 정당화할 수 있는 근거가 제시되어야만 우리는 그것을 지식이라 부를 수 있습니다. '무거운 물체와 가벼운 물체를 같은 높이에서 떨어뜨리면 땅에 동시에 닿는다'라는 갈릴레이의 믿음도 피사의 사탑(여기서 실험했다는 것이 허구라는 지적도 있지만)에서 사람들에게 시현하지 않았더라면 어디까지나 가설에 지나지 않을 테지요.

옥스포드 소사전(Shorter Oxford Dictionary)에서 믿음을 뜻하는 ‘Belief’제안, 진술, 사실을권위나 증거를 기반으로진실로 인정하는 정신적 동의나 수용이라고 정의되어 있습니다. 정의에서 보듯이 믿음을 믿음답게 만드는 것은 믿음에 대한 증거가 얼마나 타당하냐는 것이죠.
 

세 번째 기준인 '진리'는 결과론적인 기준입니다. 자신의 믿음을 정당화할 수 있더라도 지식이 되려면 진짜로 옳아야 한다는 의미이기 때문입니다. 이 또한 당연한 말이죠. 어떤 현상이나 사물을 믿고 그것을 정당화할 수 있더라도 그것이 진리가 아닌 것으로 판명되면 지식이라 부를 수 없습니다. 우리는 역사 속에서 충분히 믿고 충분히 정당화했음에도 불구하고 진리가 아니었던 사례를 무수히 발견할 수 있습니다.

천동설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사람들은 태양이 지구 주위를 돈다는 것을 믿고 천문학자들은 여러 가지 증거와 수학적 계산을 통해 천동설을 정당화했지만 결국 진리가 아닌 것으로 판명되었습니다. 어떤 지식이 진리이냐 아니냐의 여부는 현재 시점에서 파악하기가 곤란한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가 지금 어떤 것을 믿고 정당화하여 진리로 인식한다 해도 미래의 어느 시점에 가서 진리가 아니라는 결론을 얻을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보통 단지 새의 이름만 뿐인데도 모든 안다고 자부하곤 합니다. 누군가 개똥지빠귀 이야기를 하면, 새에 대해 알아라고 참견하듯이 말입니다. 하지만 사물의 이름을 아는 것과 사물의 본질을 아는 것은 차원이 다른 이야기입니다. 새가 어떤 색의 깃털을 가지고 있는지, 어떤 소리로 우는지, 어떻게 새끼를 키우는지 등을 체험과 증명을 통해 아는 것이 중요하죠.

안다는 것은 적극적이고 동적인 과정입니다. 끊임없이 믿고 증명할 있어야 여러분은 비로소 '아는 '입니다. 안다는 것의 세 가지 기준을 들여다 보면서 주위를 둘러싼 지식을 고찰해 보는 것도 의미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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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너스를 받아야 저축을 많이 한다   

2011. 10. 24.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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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여러 회사에서 연봉제를 실시하면서 예전에 운영하던 '보너스(상여금)'을 폐지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두 달마다 한번씩 받는 상여금과 설날이나 추석 때 나오는 명절 보너스를 없애고 그것들을 모두 합해서 12로 나눠서 매월 똑같은 금액을 지급하는 방식을 취하곤 합니다.

어떤 직원들은 균등하게 매월 같은 금액을 받는 것을 선호하기도 하고, 또 어떤 직원들은 예전과 같은 방식으로 상여금을 받기를 원합니다. 제가 살펴본 바에 따르면, 전자를 희망하는 직원들이 더 많은 것 같습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그런데 행동경제학자들은 이와 관련하여 다음과 같이 재미있는 연구를 했습니다. 두 사람이 있습니다. A와 B는 똑같이 연봉이 3만 6000달러입니다. A는 이 연봉을 매월 균등하게 3000달러씩 받습니다. 반면에 B는 매월 2500달러를 월급으로 받고 보너스로 6000달러를 받지요. 이때 둘 중 누가 더 많은 돈을 저축하게 될까요? 이것이 행동경제학자들의 연구 주제였습니다.

언뜬 생각하면 A처럼 균등하게 받아야 수입의 예측가능성이 커서 매월 꼬박꼬박 저축할 가능성이 클 것 같습니다. 2500달러는 생활비로 쓰고 나머지 500달러는 저축하면 될 테니까요. B의 경우, 나중에 한꺼번에 6000달러를 보너스로 받으면 '공돈'으로 생각하여 돈을 흥청망청 쓰지는 않을까 염려스럽기도 합니다.

그러나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B와 같이 보너스로 목돈을 받는 사람들의 '저축 가능성'이 더 크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심적 회계'라는 것 때문입니다. 이 말은 우리의 마음 속에는 나름대로 계정과목이 있어서 돈이 들어오면 그것을 각 계정과목으로 '분개'하는 경향이 있음을 의미합니다. 거의 자동적으로 이루어지는 과정이죠.

매월 동일한 금액이 월급으로 들어오면 사람들은 그것을 '생활비'라는 계정으로 구분하게 됩니다. 소비해도 '괜찮은' 금액으로 여기는 것이죠. 반면에 보너스로 목돈이 들어오면 그것을 생활비가 아니라 일종의 '정기예금'으로 여겨서 쉽게 쓰지 못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B가 A보다 저축할 가능성이 크죠.

똑같은 연봉을 매월 균등하게 나눠 지급하냐(혹은 그렇게 지급 받느냐), 아니면 상여금을 지급하냐(혹은 그렇게 지급 받느냐)는 회사나 직원들의 선호에 따라 결정되겠지만, 직원들이 받은 연봉을 허투로 쓰지 않게 유도하려면 상여금을 적절하게 운용하는 것도 나쁘지 않은 제도일 겁니다. 물론 상여금을 지급하면 저축할 '가능성'이 커진다는 것이지, 반드시 저축을 많이 한다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유의해야겠죠.

사람들의 심적 회계가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알고, 직원들에 대한 보상 방식도 심적 회계를 염두에 두고 설계하면 어떨까요? 단순하게 행정의 편의성을 강조하거나 직원들의 의견조사 결과에 의존하기보다는 말입니다. ^^

즐거운 월요일 되세요.

 (* 참고도서 : '불합리한 지구인', 비즈니스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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