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끼리를 통째로 먹지 마라   

2011. 11. 28. 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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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에 이름을 밝히지 않는 미국의 어느 여성 과학자는 분자생물학 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나서 여성 의료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녀는 의료계에서 여성이 당하는 성차별 관행에 대해 깊은 유감을 가지고 있었죠.

가장 단적인 예는 심장 발작 증세의 성적 차이를 제대로 인정 받지 못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여성들은 심장 발작을 일으킬 때 구역질과 구토, 소화불량을 호소하곤 합니다. 하지만 의사들은 흉통, 턱과 팔의 통증, 호흡 곤란, 현기증이 심장 발작 증세라고 판단했기 때문에 여성들이 고통을 호소해도 그것이 심장 발작 증세인지 몰라서 즉각적인 검사와 처치를 하지 못했죠. 그래서 여성 환자들이 사망에 이르는 일이 많았습니다.



그녀는 이러한 구조적인 문제를 개선하기로 마음 먹었습니다. 의료계에서 여성의 심장병 증상에 대해 올바로 인식하지 못하고 연구도 되지 않는 사실을 고치기로 한 것이죠. 현실의 벽은 너무나 높고 두꺼웠습니다. 대부분의 연구는 남성을 대상으로 할 뿐 여성에게 특별히 관심을 둔 연구는 적어도 심장병 분야에서는 거의 없었습니다. 심지어 심장병 실험에 쓰이는 쥐 중에는 암컷이 없을 정도였습니다.

그녀는 1985년에 국립 보건 연구원(NIH)로 자리를 옮기면서 이러한 관행을 본격적으로 개선하기로 합니다. NIH는 정부 의료 정책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곳이었기 때문이죠. 그녀의 친구는 "코끼리를 통째로 먹으려 하지 말라"는 충고를 합니다. 연방 정부의 일처리 방식상 상황을 한꺼번에 개혁하려고 하면 큰 저항에 직면하게 되어 흐지부지되거나 실패하기 십상이라는 조언이었죠. 

그녀는 그 충고를 받아들여 목표를 멀리 보고 작은 것부터 차근차근 진행하기로 했습니다. 그녀는 NIH에서조차 수천 명의 소속 의사 중에서 부인과 전문의는 겨우 세 명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그녀는 하원 의회를 설득하여 NIH의 부인과 전문의 수를 대폭 늘리기로 합니다. 전체 중에 부인과 전문의가 1%도 안 된다는 사실을 부각하면 이러한 제안은 완고한 정치인들도 쉽게 받아들일 만 했기 때문이죠.

그녀의 제안 덕에 3명이었던 부인과 의사들이 15~20명 수준으로 늘어나게 됐습니다. 수천 억 달러의 예산으로 움직이던 미국의 보건 예산에서 보면 이 정도의 인원 보강으로 인해 늘어나는 인건비와 제반 비용은 아무것도 아니었기에 정치인들이 쉽게 허용을 했던 것이죠. 더군다나 정치인들은 인구의 절반을 차지하는 여성의 표를 의식할 수밖에 없었으니까요.

일단 변화의 물꼬를 튼 그녀는 시간이 조금 흐른 뒤에 NIH를 압박하여 여성을 의료 연구 대상에 포함시키는 정책을 채택하도록 했습니다. 이를 통해 여성 의학 연구, 여성의 의료 접근성 향상, 여성 질병 예방 서비스 등 20개의 법령이 하원을 통과하게 됐죠. 또한 NIH 내에 여성 보건 연구소가 설립됨으로써 여성을 대상으로 의학 실험이 이루어졌습니다. 그녀는 여기에서 멈추지 않고 의료계의 성평등을 추구하는 여성 보건 연구회의 창립을 도움으로써 질병의 남녀 차이를 밝혀내기 위한 연구가 진행되도록 했습니다. 이렇게 하여 여성 환자에 대한 진단과 치료 수준이 향상되었습니다.

그녀의 현명함은 앞서 언급했듯이 '코끼리를 통째로 먹지 않고' 서서히 문제를 해결해 나갔다는 데에 있습니다. 보건 분야의 터줏대감들이 장악하고 있는 의료계가 보수적이고 변화를 싫어한다는 점을 간파하고 영리하게도 '코끼리를 잘게 잘라 먹기로' 다짐한 데에 있죠. 그녀는 정치인들이 위험부담을 적게 느낄 만한 아이디어(부인과 전문의 수를 늘리는 일)로 시작해서 점차 문제의 핵심에 다가가는 '위장 전략'을 씀으로써 자신의 최종적인 목표인 '여성 의료 수준의 향상'을 도모했던 겁니다.

우리는 혁신을 추진할 때 근본적이면서도 급진적이고 단칼에 완성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초기에 저항이 있더라도 '한번에 크게' 변화를 추구해야 결과적으로 '상처'가 적다고 여깁니다. 물론 조직의 구성원 모두가 변화에 합의가 잘 된 상태라면 시간을 질질 끌지 말고 한번에 변화를 이루어내는 것이 좋습니다. 그러나 조직 내에서 권력을 가진 자가 그 변화의 가장 큰 보틀넥이 될 경우라면 급진적이고 개혁적인 변화는 실패로 막을 내릴 가능성이 큽니다. 특히 그 변화가 기득권을 가진 보수적 계층에게 위험 부담을 주는 것이라면 더더욱 그렇습니다.

변화는 위험 부담이 낮은 '작은 목표'를 수시로 던져줘야 결과적으로 빠르게 일어납니다. 아기가 태어나자마자 바로 걸어 다니기를 바라는 부모는 없듯, 기업의 변화도 경우에 따라서 조바심을 억누르고 장기적으로 보는 인내가 필요합니다. 거대한 목표를 잘게 나누어 위험 부담이 적은(혹은 위험이 있을 거라고 예상하지도 못하는) 작은 목표를 순차적으로 던져 줌으로써 변화의 활성화 에너지를 확보하는 과정이 현명한 변화관리 전략입니다.

급변하는 환경 속에서 살아 남기 위하여 조직의 변화도 그 속도에 맞춰 빨리 이루어져야 한다는 조바심에 빠질 때, '코끼리를 통째로 먹으려는' 오류에 빠지지 않았는지 스스로를 되돌아보는 것이 변화 과정에서 빛을 발할 중용의 미덕일 것입니다.

현 정부가 정책 추진 과정에서 자주 국민의 정서를 거스르는 여러 가지 이유 중 하나는 코끼리를 통째로 먹으려는 시도 때문은 아닐까요?

(*참고도서 : '생각의 빅뱅', 갈매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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