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하는 상사의 성격을 닮는다   

2011. 5. 17. 0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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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말에 근묵자흑(近墨者黑)이란 말이 있습니다. 먹을 가까이하면 검어진다란 말이죠. 즉, 나쁜 사람과 가까이 지내면 그사람을 닮게 되니 조심하라는 뜻이 담긴 말입니다. 이 말은 기업이라는 조직에서도 통합니다. 성질이 못되고 다혈질적인(게다가 비열하기까지 한) 상사를 만나면 부하직원들은 대개 그를 싫어하고 멀리하려고 합니다. 그리고 '내가 상사의 위치에 오르면 저렇게 하지 않을 거야' 라고 마음먹습니다. 하지만 근묵자흑이란 말로부터 자유로워지기란 쉽지 않습니다.



심리학자인 노스웨스턴 대학의 리 톰슨(Leigh Thomson)과 뉴욕대 경영대학원의 카메론 앤더슨(Cameron Anderson)이 조직에서의 '근묵자흑 원리'를 실험으로 밝혀냈습니다. 그들은 경영대학원을 다니는 학생들을 3명씩 팀을 이루게 했습니다. 그런 다음 그들에게 경영자원의 배분을 결정하는 '관리자 회의'를 진행하게 했습니다. 학생들에게는 시뮬레이션을 통해 기업에서 어떻게 경영자원의 배분을 의사결정하는지 배우기 위한 목적이라고 이야기했지만, 실제의 목적은 다른 데에 있었습니다.

톰슨과 앤더슨은 3명 중 한 명에게 '큰 회사의 최고 경영자' 역할을 맡겼고, 다른 두 명의 학생들에게는 각각 중간 레벨의 관리자와 낮은 레벨의 관리자 역할을 부여했습니다. 우리 식으로 쉽게 말하면, 학생들에게 각각 사장, 부장, 과장의 역할을 맡겼다고 보면 되겠네요. 이렇게 역할을 부여하고 학생들에게 경영자원 배분을 위한 회의를 진행하라고 했더니, 예상대로 사장 역할을 맡은 학생이 회의를 빠르게 장악했습니다.

흥미로운 현상은 No. 2인 '부장'에게서 발견되었죠. 부장(역할을 맡은 학생)이 사장의 행동과 말투를 닮아가는 모습이 나타났으니 말입니다. 특히 회의를 주관하는 사장이 에너지가 넘치고 공격적이면서 비열하기까지 한 '골목대장'일 경우에 시간이 지날수록 부장은 사장의 언행을 따라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부장 역할을 한 학생의 성격이 원래 약자를 괴롭히는 걸 좋아해서일까요?

그렇지는 않았습니다. 실험을 실행하기 전에 톰슨과 앤더슨은 참가자들을 대상으로 성격 테스트를 진행했는데,  본래 감정을 잘 억제하고 남을 배려하는 성격을 지닌 학생들이 실험에서 부장 역할을 맡으면 사장의 못된 언행을 거의 그대로 따라하는 모습이 발견됐기 때문이죠. 게다가 그들(부장 역할의 학생들)은 경영자원을 배분할 때 금액의 크기에 많이 집착하고 과장 역할을 하는 학생들의 말을 자르기도 했습니다. 근묵자흑이 극명하게 드러나는 실험이죠.

반대로 사장 역할을 한 학생이 온화하고 남을 배려할 줄 아는 사람이라면 어떻게 될까요? 생선을 싼 종이에서는 비린내가 나지만 꽃을 싼 종이에서는 향기가 난다는 말이 있듯이, 부장은 그런 사장의 성격에 동화된다는 것을 톰슨과 앤더슨은 또한 발견했습니다. 부장 역할을 한 학생의 본래 성격이 공격적이고 다혈질이라고 해도 사장의 온화함이 그런 성격을 중화시켰던 겁니다. 그렇다면 No. 3인 과장은 어떤 영향을 받을까요? 그들은 (이 실험에서는) '쫄병'이기 때문에 수동적이겠죠. 따라서 그들은 사장과 부장의 언행 스타일이 만들어내는 조직의 분위기에 따라 행동할 겁니다. 만일 그들(과장 역할의 학생)에게 부하직원이 주어졌다면, 짐작컨대 그들 역시 사장과 부장의 언행을 닮아가는 모습을 보였을 테죠.

이처럼 조직의 실권을 쥐고 있는 사람, 회의를 주도하는 사람이 드러내는 언행 스타일이 조직 전체에 빠르게 전염됩니다. 이를 '정서적 전염'이라고 부릅니다. 상사가 폭군 스타일이고 다혈질이면 부하직원도 화를 잘내고, 상사가 온화한 덕장이라면 부하직원들 역시 그러합니다. 이런 정서적 전염의 강도는 매우 강해서 실권을 지니지 못한 직원 1명이 조직의 분위기를 좋은 쪽으로(혹은 나쁜 쪽으로) 바꾸기란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조직 분위기에 금세 동화되고 적응하죠.

기업의 최고경영자들이면 누구나 조직문화를 바람직한 방향으로 이끌어가길 원합니다. 하지만 조직문화를 활성화하기 위한 여러 조치 중에 가장 강력하면서도 필수적인 것은 리더 스스로 변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공격적이고 상명하달 식의 일방적 소통을 좋아하는 리더가 직원들 간의 의사소통이 원활하게 이루어지길 바라는 것은 불가능을 꿈꾸는 일과 같습니다. 자신을 변화시키겠다는 다짐과 실천은 쏙 뺀 채 '부하직원들이 원하는 방향대로 움직여주지 않아서 조직문화가 이 모양'이라고 생각하는 리더가 있다면 자신의 무지를 공개하는 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

정서적 전염을 잘 활용하면 조직문화를 바람직하게 변화시킬 목적으로 돈이 많이 드는 제도나 시스템을 구축할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리더 스스로 원하는 방향대로 변하고 실천하면 꽃 향기가 바람을 타고 퍼지듯이 조직 전체에 긍정적인 변화를 일으킬 테니 말입니다.

직원들을 검게 물들이지 않으려면 리더 스스로 검은 때를 벗어야 합니다. 그게 조직문화를 바람직한 방향으로 이끌기 위해 필요한 리더의 덕목이자 중용입니다. 근본적인 것을 변화시키지 않은 채 껍데기만 바꾸려는 태도는 중용에서 벗어나도 한참 벗어난 외도입니다.

(*참고문헌 : Fear in the workplace : The bullying Boss)
(*참고도서 : '또라이 제로 조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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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이 깡패다   

2011. 5. 16.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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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자 데보라 그륀펠트, 대처 켈트너, 카메론 앤더슨은 학생들을 3명씩 한 팀으로 편성한 다음 낙태, 공해와 같은 사회적인 현안에 대해 짧은 글을 완성하게 했습니다. 그리고는 무작위로 3명의 학생 중 2명에게는 글을 쓰도록 했고, 나머지 1명에게는 다른 학생이 써 온 글을 평가하고 그 글이 얼마의 돈을 받을 수 있을지 결정하는 권한을 부여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3명 밖에 안 되는 팀 내에 상하관계를 구축했죠.

실험을 시작하고 30분 정도 지나자 연구자들은 글을 쓰면서 먹으라고 팀마다 5개씩 쿠키를 가져다 주었습니다. 사실 사회 현안에 대해 글을 쓰라는 지시보다는 이것이 진짜 실험의 의도였습니다. 팀원은 3명인데 쿠키가 5개가 주어졌으니, 1개씩 먹고 나면 2개가 남습니다. 이때 보통의 사람들은 4번째 쿠키로 선뜻 손을 뻗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자신이 4번째 쿠키를 집어먹으면 나머지 두 명에게는 하나의 쿠키만 남는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죠. 



헌데 이 실험에서 보스(boss) 역할을 맡은 학생은 다른 두 명의 학생들보다 자연스럽게 4번째 쿠키를 집어드는 모습이 관찰됐습니다. 자신이 4번째 쿠키를 먹을 자격이 충분하다는 듯한 표정은 물론이고, '난 이렇게 4번째 쿠키를 먹고 있다고!' 라고 과시하는 듯 입을 벌리고 쿠키를 씹어댔습니다. 입 주변과 테이블에 쿠키 부스러기를 잔뜩 흘리면서 말입니다.

이 간단한 실험이 의미하는 바는 2가지입니다. 첫째는 작은 권력을 가지게 되면 남들보다 더 많이 가지려 하고 그것을 당연시한다는 것입니다. 실험을 위해 남이 써온 글을 평가하는 역할을 잠시 맡겼을 뿐인데도 상대적으로 탐욕스러운 모습을 보여주었으니 말입니다. 가진 자는 더 많은 것을 가지려 한다는 말, 그리고 부자들이 더 무섭다는 속설을 이 실험은 부분적이나마 시사합니다.

둘째는 그렇게 탐욕스럽게 행동한다는 사실을 본인은 느끼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어쩌면 이것이 더욱 중요한 시사점일지 모릅니다. 자신이 4번째 쿠키를 먹으면 나머지 두 명의 팀원들에게 하나의 쿠키만 남게 된다는 것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는 것이죠. 우리는 흔히 권한을 가진 자가 중앙에 앉아 있으면 그가 조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관찰하고 판단하면서 리더십을 발휘하리라 믿습니다.

하지만 이 실험은 이런 믿음이 환상일지 모른다고 꼬집습니다. 오히려 권한과 권력이 눈을 가리는 탓에 조직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팀원들이 애처롭게 하나의 쿠키를 바라봐야 한다는 것)를 알아차리지 못하죠. 이를 '중심 역할의 오류(the fallacy of centrality)'라고 부릅니다. 이것이 권력이 가진 속성 중의 하나입니다. 다른 학생이 쓴 글을 평가하라는 권한만을 주었는데 쿠키를 혼자 2개나 먹을 권한까지 부여 받았다는 듯이 행동하는 것은 명백한 월권이죠.

이런 월권 현상이 비일비재해서인지 '권력이 깡패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이 '중심 역할의 오류'라는 어려운 말보다는 와닿는 말이네요. 조직에서 권력을 가진 사람들은 '권력이 깡패 오류'에 빠지지 않도록 의식적으로 노력해야 합니다. '지금 내가 보이는 이런 언행이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는 어떻게 느껴질까?라고 생각하면서 권한 이외의 월권 행위로부터 스스로를 제어할 줄 알아야 합니다. 부하 직원들과의 권력 차이를 증폭시키지 않고 반대로 줄이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고 권력을 뽐내기만 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회사 성과가 나빠지는 바람에 비용을 대폭 줄여야 해서 '이면지 사용'과 같은 대표적인(?) 비용 감축 지시가 내려진 상황임에도 경영자는 여전히 운전기사가 딸린 번쩍거리는 검은 승용차를 타고서 출퇴근을 한다면 직원들은 허탈감을 느끼기 마련입니다. 직원들은 비용 절감에 동참하기보다는 뭔가 회사에서 빼내갈 것은 없는가 궁리하기 시작합니다. 보상심리가 작용하기 때문이죠. 아마 경영자는 그런 반응을 예상치 못할 겁니다. 예상하더라도 자신은 검은 승용차를 탈 자격이 충분하다고 믿겠죠. "난 사장이야!" 라면서.

여러분의 회사엔 남이야 쿠키를 먹든 말든 권력을 깡패처럼 휘두르는 그런 사람은 없습니까? 부디 여러분은 그런 사람이 아니길 바랍니다.

(*참고논문)
Dacher Keltner, Deborah H. Gruenfeld, Cameron Anderson(2003), Power, approach, and inhibition, Psychological Review, Vol. 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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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계대전'을 보러 가다   

2011. 5. 15.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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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오후에 성남-수원 간의 K리그 축구경기를 보러 탄천종합운동장에 갔습니다. 원래 축구에 그리 관심이 높지 않아서 이렇게 K리그 경기를 보러 간 것은 처음이었습니다. 사실 지인에게서 표를 얻었기에 바람이나 쐴 목적으로 찾아간 경기장이었습니다. 아들도 처음엔 시큰둥하더니 경기 시작 시간인 2시 10분이 다가오자 갑자기 가자고 해서 부랴부랴 짐을 챙겼죠.


도착하니 벌써 경기가 10분 정도 진행된 상태입니다. 앉을 자리가 마땅하지 않아서 성남 서포터들이 앉는 구역(노란 구역)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뷰가 그리 좋지 않았지만 그늘이 져서 관전하기에 쾌적했지요. 이웃 블로거인 inuit님도 이 경기를 보러 오신다 했으니 어디엔가 자리를 잡았을 테죠? ^^

inuit님은 이 경기가 '마계대전(馬鷄大戰)'이라고 하시던데, 처음엔 그 말이 무슨 뜻인지 몰랐습니다. 웬 마계(魔界)? 알고보니 성남의 상징인 '천마'와 수원의 상징인 '블루윙스'를 조합한 말이란 걸 나중에 알았습니다. ^^

 


부랴부랴 나온 탓에 점심을 걸렀지만, 우리에겐 비상식량인 건빵이 있습니다. 한봉지를 다 먹으니 배가 부릅니다. ^^

 


전반전에 성남이 아주 좋은 위치에서 프리킥을 얻었습니다. 하지만 무위로 끝났죠.



아들은 먹는 것에만 관심을 둡니다. 그도 그럴 것이 아직 축구의 맛을 느끼기엔 어릴 뿐더러 성남팀이나 수원팀에 대한 배경지식이 전무한 탓입니다. 아들이 아는 유일한 축구선수는 박지성과 메시입니다. ^^

 


전반전이 끝나고 휴식시간에 치어리더들이 한바탕 춤을 추고 퇴장합니다. 아직 스코어는 0 대 0 입니다.

 


누군가 설명을 해주면 경기를 재미있게 볼 수 있을 것 같아서 DMB를 켜니 이 경기가 생방송되더군요. DMB는 한 5~6초 정도 타임랙이 있어서 그런지 중계방송을 듣기엔 적당치 않더군요. 조금 보다가 말았습니다.

 


성남이 패널티킥으로 1:0으로 앞서 갑니다. 성남 서포터들이 기세가 올랐습니다. 하지만 후반전이 끝나갈 무렵에 삼성의 만회골을 허용해서 1:1로 비긴 채 경기가 끝났습니다.
 


수원이라는 대어를 막판에 놓쳐서 그런지 선수들이 아쉬운 표정으로 트랙을 돌면서 팬들에게 인사를 합니다.

 


서포터들에게 인사하는 선수들.

 


집으로 가기 위해 탄천을 건넜습니다. 야탑역에서 지하철을 타야 하니까요. 징검다리 아래로 흐르는 물살이 제법 세찹니다.

 


철봉을 보더니 놀고 가야 한다고 하더군요. 아들이 매달리기 특기(?)를 보여 줍니다. ^^

 


간식거리가 들어있던 빈 가방을 메고 야탑역으로 갑니다. 이렇게 일요일 오후가 지나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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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략은 과학이다. 전략을 실험하라   

2011. 5. 13. 0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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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1년 통신판매업체 몽고메리워드(Montgomery Ward)의 영업담당 부사장이었던 로버트 우드(Robert E. Wood)는  100만 달러의 영업손실이 무엇 때문인지 고심하던 중이었습니다. 어느 날 그는 한 가지 중요한 변화를 감지했습니다. 바로 자동차 등록대수가 급격히 증가한다는 패턴이었습니다. 그는 고객들이 집에 앉아 물건을 받아보기보다는 자기가 원하는 물건을 직접 보고 고르기 위해 차를 몰고 가는 수고를 기꺼이 즐기리라고 간파했습니다. 실제로 여기저기에서 다양한 형태의 쇼핑몰들이 빠르게 증가하던 중이라서 우드는 머지않아 통신판매업이 사양산업되리라는 결론을 내렸죠.
 
우드는 ‘대형 쇼핑몰’이라는 해법을 사장인 테오도어 머셀스에게 제안했습니다. 그러나 머셀스는 통신판매업이 전도유망한 산업이라 굳게 믿은 터라 회사를 통신판매업체에서 쇼핑몰업체로 변모시키자는 우드의 해법이 눈에 들어올 리가 없었습니다. 영업손실은 그저 운이 나빴기 때문이라고 가볍게 치부했죠. 자동차 등록 대수의 급증은 대단히 중요한 변화이지만 당시에는 우드 이외에 그것으로부터 전략적 의미를 찾아낸 사람은 별로 없었던 모양입니다. 결국 머셀스는 눈엣가시처럼 끈질기게 주장하던 우드를 쫓아내 버립니다.


 
신념을 굽힐 수 없었던 우드는 경쟁사인 시어즈 로벅(Sears Robuck)에 입사하여 자신의 아이디어를 제안합니다. 다행히 사장인 줄리어스 로젠월드는 우드에게 기회를 주었습니다. 하지만 우드의 제안을 전적으로 수용한 것은 아니었죠. 로젠월드는 실질적인 검증을 원했습니다. 통신판매업을 버리고 쇼핑몰사업을 전환하는 전략은 회사의 존폐에 결정적일 수 있음을 우려했기 때문이었죠. 우드의 생각도 로젠월드와 같았습니다.
 
우드는 쇼핑몰사업이 회사의 새로운 도약을 위한 훌륭한 해법인지 검증하기 위해 실험을 해보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는 한꺼번에 많은 점포를 오픈하는 ‘융단폭격’식 전략을 지양하고, 일단 현재 사무소(지역별로 통신판매를 총괄하는 사무소)가 위치한 곳에 순차적으로 다섯 곳에 쇼핑몰을 열었습니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후에는 사무소가 없는 외곽 지역에 3개의 점포를 개설했습니다.

사무소가 위치한 곳에서는 직원들과 공간을 쉽게 확보할 수 있어서 점포 운영이 수월했지만, 사무소가 없는 지역에서는 처음부터 ‘맨땅에서’ 시작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었죠. 우드가 주목한 부분은 바로 사무소가 없는 외곽 지역의 점포들이었습니다. 그 점포들이 기반시설이나 지원인력이 충분하지 않은 곳에서도 성공을 거둔다면, 쇼핑몰 사업으로 전환한다는 우드의 해법이 고객들의 라이프 스타일 변화(자동차 소유 증가)에 대처하기 위한 최고의 전략임이 증명되기 때문이었죠.

우드는 이렇게 실험을 설계했습니다. 그는 사무소가 위치한 곳에 세운 점포를 대조군으로 삼았고, 사무소가 없는 외곽지역에 개설한 점포를 실험군으로 설정했습니다. 두 군데 모두 쇼핑몰이라는 동일한 사업구조를 가지게 한 다음, 기반시설과 인력이 충분한가 그렇지 않은가를 두 군의 차이로 두고 실험을 한 것이죠. 기반시설과 인력이 충분치 않음에도 외곽지역에 위치한 쇼핑몰이 상대적으로 높은 매출을 달성한다면, 자동차로 인해 행동반경이 넓어진 고객들의 라이프 스타일 변화가 쇼핑몰이란 새로운 형태의 소비 공간을 강력하게 지지하리라고 간주했기 때문입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습니다. 쇼핑몰 실험의 성공에 고무된 시어즈는 이후 통신판매업에서 쇼핑몰사업으로 완전히 체질을 변모시켜 유통업의 최강자로 우뚝 섰습니다. 그리고 이를 성공적으로 이끈 우드는 1939년에 시어즈의 CEO로 승진하여 15년 동안 회장으로 활약했죠. 그와 시어즈의 성공에는 ‘실험’이란 지렛대의 힘이 컸습니다. 

전략이 어려운 이유는 그것을 수립하기가 까다롭기 때문이기보다는 그것을 실행하는 데에 위험부담을 떠안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좋은 전략을 짜놓고도 주저하는 바람에 타이밍을 놓치고 경쟁사들이 앞서가는 모습을 부러운 듯 바라보는 일이 종종 있습니다. 반대로, 경영진의 신념이나 근거 없는 믿음이 가해지는 바람에 결코 좋다고 말할 수 없는 전략이 감행되기도 합니다. 근거 없는 전략은 실패할 확률이 클 수밖에 없겠죠. 제가 이 블로그를 통해 여러 번 강조한 바 있듯이, 믿음이 사실을 대체할 때 전략이 실패하고 그로인해 조직이 몰락할 수 있습니다.

우드처럼 실험을 통해 전략이 과연 효과가 있는지 따져 본다면, 좋은 전략을 빨리 실행시키기 위한 확실한 근거를 얻을 수 있고 나쁜 전략을 사전에 차단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사업을 둘러싼 문제의 심각성이 크고 전략을 실행하는 데 여러 가지(비용, 시간, 인력 등)로 부담이 크다면 전략의 타당성을 실험을 통해 검증해야 합니다. 마치 과학자가 자신의 가설을 실증하고 이론을 정립하기 위해서 실험을 수행하듯이, 여러분도 우드처럼 실험을 잘 설계하면 전략의 타당성을 미리 가려냄으로써 실행의 부담을 덜 수 있겠죠.

전략은 책상 서랍 속에 고이 모셔놓을 보고서가 아닙니다. 전략은 의지도 아닙니다. 전략은 과학입니다. 전략을 실행하기 전에 실험을 수행할 방법이 있는지 찾아보는, 과학적인 전략가가 되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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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산은 독약이다   

2011. 5. 12. 0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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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많은 기업들이 매년 9월 정도되면 슬슬 내년도 예산계획 수립(사업계획 수립이라고도 함)에 돌입합니다. 경영기획에서 내년도 사업에 관한 대략의 지침을 내려주면 각 사업부나 부서들이 정해진 포맷에 맞춰 달성하고자 하는 매출 목표과 비용 목표 등을 잠정적으로 결정합니다. 경영기획에서는 그것들을 취합하면 임원회의를 통해 세부적인 수치를 조정하고 전사 예산계획을 확정하는 프로세스를 거치게 됩니다. 예산계획 프로세스가 원활하게 돌아가면 11월 말이나 12월 초에 작업이 완료되겠죠.

하지만 문제는 이렇게 여러 사람이 달라붙어 만들어 낸 예산계획(짧게 말해 '예산')이 해가 바뀌고 나서도 계속 바뀐다는 것입니다. 그도 그럴 것이 시시각각 변하는 외부환경에 따라 매출이나 비용이 영향을 받기 때문이죠. 만일 여러분의 회사가 환율에 굉장히 민감한 사업구조를 가지고 있다면, 갑작스런 환율 폭등(혹은 폭락)으로 인해 작년 말에 세운 예산계획이 무용지물이 되는 경우가 생깁니다. 환율 때문에 구매비용이 커져서 예상했던 이익을 달성하지 못하는 등의 상황이 벌어집니다.



이렇게 되면 경영기획에서는 다시 각 사업부와 부서에게 소위 '수정 예산 수립'을 지시합니다. 작년 말의 시점과 달라진 점을 반영하여 매출 목표와 비용 목표를 새로 잡아서 올리라는 소리죠. 1월이나 2월에 이런 예산 수정 과정이 한번 정도 진행된다면 큰 문제가 아니지만, 어떤 회사는 예산 수정 작업을 3~4월까지 수차례 계속하기도 합니다. 심지어 반기가 거의 다 된 5월에도 예산 수정 때문에 현업에 방해를 받는 회사도 본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애써 만들어낸 예산계획이 사업 수행에 어떤 도움이 될까요? 만일 어떤 학생이 100점 받으려고 계획을 세웠는데, 공부를 하다보니 80점 밖에 못 받을 것 같으니까 "그래, 90점으로 목표를 낮추자" 라고 정한다면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그게 학생의 본래 목적인 '공부를 잘하는 것'을 달성하도록 이끌어 줄까요? 

예산계획도 마찬가지입니다. 사업의 지향점을 알려주고 돌발변수에 대한 대처 방향을 일러줍니까? 이 질문을 긍정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왜냐하면 예산계획은 말 그대로 미래를 미리 예측하여 사업계획을 수립하는 과정이지만, 많은 기업에서 벌어지는 실상은 과거와 현재 사이에서 발생한 내외부 환경의 변동을 반영하는 과정에 지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어, 이게 아니다. 바꾸자!" 라는 식으로 수정된 예산계획이 과연 사업을 수행하는 데에 어떤 혜안을 줄 수 있을까요? 이런 식의 예산계획 관행은 백미러만 보고 운전하는 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

예산계획을 수립하는 본래의 목적은 사업의 지향점을 분명히 설정하고 그것을 구성원들과 공유하기 위해서입니다. 하지만 이런 좋은 목적은 퇴색하고 구성원들을 '통제'하려는 목적으로 변질되고 맙니다. 그래서 예산계획은 곧 '표에 숫자 채우기' 작업으로 전락합니다. 예산을 수립하면서 얻은 여러 가지 정보를 실제로 활용하는 기업은 별로 없습니다.

그런 정보들이 더 중요한데도 실제로 예산결정 회의 때 설왕설래하는 내용의 대부분은 '숫자'입니다. "매출 목표가 왜 이리 작냐?" 혹은 "너무 과도한 매출 목표다!"라는 식으로 말입니다. 그래서 논쟁을 거듭해서 만들어진 예산계획에는 숫자가 가득 적힌 표만 눈에 띕니다. 그런 다음 예산계획을 구성원들에게 던져주면서 "이것을 준수하라!"고 지시 내리죠. 하지만 앞서 말했듯 준수하지 않는 사람은 구성원들이 아니라 경영진들입니다. 상황이 호전되거나 악화되면 곧바로 예산을 수정하라는 지시를 내리니 말입니다.

이렇게 별로 쓸모가 없는 예산계획을 세우느라 얼마나 많은 인력이 동원되는지 면밀히 따져보면, 예산계획의 무용성이 금방 가슴에 와 닿습니다. 예를 들어 예산계획 수립에 3개월 정도(예산 수정 과정까지 포함하여)가 소요되고 구성원 중 20% 정도가 부서, 사업부, 전사 단위의 계획 수립에 동원된다고 가정해 보죠. 동원된 구성원들이 매일 2시간 정도 예산계획에 노력을 투여할 경우, 예산계획 수립에 소요되는 비용은 얼마나 될까요? man/day로 계산하면 다음과 같겠죠.

예산계획 수립 비용(man/day) = 전 직원 수 * 3개월 * 20일 * (2시간/8시간) * 20%


만일 전 직원 수가 1,000명이고 평균 man/day가 10만원이라고 하면, 3억 원 돈이 예산계획 수립에 소요되는 것과 같습니다. 보수적으로 가정했는데도 이 정도 금액이 나옵니다. 전략적 혜안을 주지 못할 뿐더러 매번 수정되는 것에 들이는 비용 치고는 상당한 금액입니다. 어떤 사람에게 이렇게 과도한 비용을 낭비할 필요가 있느냐고 물으니 "어차피 월급이 나가는데 직원들이 예산계획을 수립한다고 해서 실제로 비용이 더 나가는 건 아니다"라고 말하더군요. 회계상으로는 옳은 말입니다. 하지만 예산계획 수립에 골몰하느라 고객 서비스를 위해 발로 뛰고 품질을 개선하기 위한 시간들이 적어진다는, 눈에 보이지 않는 비용을 간과하는 말입니다.

많은 기업에서 예산계획을 수립하는 이유 중 하나는 실적을 평가하는 잣대로 활용하기 위해서입니다. 매출, 비용, 이익 목표를 얼마나 달성했는가를 보고 성과급을 주거나 포상을 하는 데에 예산계획이 쓰이죠. 예산계획이 보상의 잣대로 쓰이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예산계획을 초과달성했는데도 성과급을 주기 '뭣한' 상황이 종종 발생합니다.

사업부나 부서가 잘해서 예산을 달성한 게 아니라, 산업이 전반적으로 호황이어서 실적이 올라간 것이라면 성과급을 줘야 할까요? 이 질문에 '예'라고 대답한다면, 경쟁사가 우리보다 더 잘했을 경우에도 성과급을 줘야 할까란 질문에도 '예'라고 답할 수 있는지 생각하기 바랍니다. 예산계획은 '내부에서 정한 기준'이라서 성과를 객관적으로 평가하기에 한계가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산계획을 성과를 판단하는 잣대로 쓴다면, 구성원들에게 "전략적 사고보다는 경영진과 예산계획을 놓고 어떻게 협상하느냐가 더 중요하다" 라는 잘못된 신호를 주게 됩니다. 사업 수행 능력보다는 소위 '말빨'이 성과급을 결정하는 요소가 되어 버리죠. 또한 성과를 '띄우려는' 눈속임이 여기저기에서 벌어지기 쉽습니다. 가장 빈번한 눈속임은 채널 스터핑(channel stuffing)입니다.

제가 예전에 다닌 자동차 회사에서는 이상하게도 월말에 판매대수가 집중되곤 했습니다. 왜 그런지는 굳이 이유를 말하지 않아도 알 겁니다. 비용 목표를 맞추려고 싼 부품을 사용하는 바람에 반품이 쇄도하고, 인력 채용 규모를 줄여서 기존 직원들의 생산성을 저하시키는 등의 부작용도 발생합니다. 이것 역시 '예산을 위한 예산 수립' 관행 때문에 빠져나가는 보이지 않는 비용입니다.

GE의 CEO 였던 잭 웰치는 "예산은 독약과 같다"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 예산을 위한 예산 수립으로 얼마나 많은 인력들이 동원되고 눈에 보이지 않는 비용이 술술 새는지 뒤돌아봐야 합니다. 그렇다고 예산이 아예 필요없다는 소리가 아닙니다. 금년 예산계획 수립 때는 '예산의 중용'을 지키기 위해 지금부터 '전략적으로' 생각하기 바랍니다. 

(*참고도서 : '지혜경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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