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곳의 유'로 '이곳의 유'를 창조하라   

2011. 9. 8. 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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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구라 마사오는 일본의 '야마토 운송'의 회장이었던 인물입니다. 1971년에 아버지의 사업을 물려받아 사장이 된 그는 주력사업인 화물 운송 사업에서 택배사업 쪽으로 기업을 확장시킬 아이디어를 생각해 냈습니다. 당시가 1976년 무렵이었습니다.

하지만 문제가 있었습니다. 일본에서는 택배 서비스가 처음 시도되는 사업인지라 택배 인프라를 어떻게 어느 정도로 구축해야 하는지가 관건이었죠. 가장 중요한 인프라가 택배 영업소의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일이었습니다. 영업소가 필요 이상으로 많으면 운영비용이 과다하게 들 것이고, 그렇다고 적게 운영하면 고객에게 물건을 전달하는 시간이 길어져서 택배 서비스가 초기에 외면 당할 것이기 때문이겠죠. 결국 2가지 경우 모두 결과적으로 운영비용을 급증시킬 가능성이 컸습니다.



택배 영업소 수의 스위트 스폿(sweet spot)을 알아냈다 하더라도 어느 곳에 각각 영업소를 설치해야 하는 것도 오구라 사장의 고민거리였습니다. 그는 택배 서비스라는 한정된 사고의 틀에서 벗어나기로 합니다. 앞으로 설치될 택배 영업소처럼 전국에 분포되어 있는 네트워크를 '모방'하기로 합니다.

먼저 그는 택배 서비스와 유사한 서비스를 하는 우편 집배국(우리나라의 우편물 취급소와 비슷한 조직)의 수를 확인해 봤습니다. 그 수는 5천 개가 넘었죠. 우편 집배국이 소포(택배의 대상이 되는)를 취급하긴 했지만, 다른 우편물을 더 많이 배달하기 때문에 택배 영업소 수는 5천 개나 될 필요가 없다고 오구라 사장은 생각했습니다.

그 다음에 그가 생각해 낸 전국 네트워크는 중학교의 수였는데, 그 수는 당시에 11,250개였습니다. 중학교는 보통 걸어서 통학할 수 있는 거리에 위치하기 때문에, 자동차를 이용한 택배 서비스의 참고 대상이 되기는 어려웠습니다. 11,250개는 너무나 컸지요.

그가 마지막으로 참고한 대상은 경찰서였습니다. 생각해 보니 경찰서 만큼 딱 들어맞는 벤치마킹 대상도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경찰서는 주민들의 안전을 극대화하기 위해 인구밀도와 거리를 잘 따져서 설치되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경찰들은 관할지를 경찰차로 이동하기 때문에 택배 차량의 이동 범위와 유사하다고 오구라 사장은 짐작했습니다. 그는 전국의 경찰서 수와 비슷한 규모로 1,200개의 영업소를 오픈했고, 영업소의 위치도 경찰서의 위치를 참조했습니다.

이렇게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시작된 오구라의 택배 사업은 승승장구하여 야마토 운송을 일본 유수의 기업으로 성장시켰습니다. 사업 초기에 우편 서비스를 독점하는 정부의 운수성과 다툼이 있었지만 잘 견뎌냈고, 오구라 사장은 퇴임(1995년)한지 오래 됐지만, 존경 받는 일본의 경영자로 매번 오르고 있습니다.

남들이 하지 않은 새로운 것을 시작할 때 우리는 의사결정 내리는 일을 힘들어 합니다. 의사결정의 기준을 참고할 대상이 눈에 잘 띄지 않기 때문이죠. 또한 익숙한 영역에서 사고의 범위를 한정시키기 때문에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생각해내지 못하는 경향도 큽니다. 인사이드 아웃(inside-out) 방식의 사고로는 남들이 하지 않은 일을 시작하는 데에 그다지 큰 도움을 주지 못하거나 잘못된 판단을 야기하기도 합니다.

오구라 사장이 했듯이, 운송사업 안에서는 아무것도 참조할 것이 없을 때는 아웃사이드 인(outside in) 방식의 사고방식을 통해 앞서가는 아이디어를 찾을 필요가 있습니다. 택배 사업을 경찰서의 치안 활동에 대입할 줄 아는 사고를 통해 좋은 의사결정을 내린 것처럼 말입니다. 해답은 내부에 있을 경우도 있지만, 다른 곳에 이미 존재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다른 곳에서 이미 만들어 놓은 해답을 이쪽으로 빌려와 사용하는 것이야말로 창조적인 모방이죠. (반대로 같은 분야에 있는 다른 사람의 아이디어를 빌리면 그것은 표절이나 특허 침해가 될 수 있습니다.)

창의적인 사람은 무에서 유를 창조하지 않습니다. '다른 곳의 유'를 빌려와 '이곳의 유'를 창조하는 사람이 진정한 의미의 창의적인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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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 하나가 한 사람을 파멸시키다   

2011. 9. 6. 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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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6년 10월 초, 캘리포니아 에인절스(현재 애너하임 에인절스)와 보스톤 레드삭스와의 아메리칸 리그 챔피언 시리즈 5차전이 열렸습니다. 이 게임에서 승리하면 에인절스가 아메리칸 리그를 우승하고 월드 시리즈에 진출할 수 있었습니다. 9회초 현재 스코어가 5 대 2로 앞선 상태라서 우승은 바로 코 앞에 보이는 듯 했습니다. 3점 차이는 레드삭스가 뒤집기 어려운 듯 보였지요.

하지만 레드삭스는 막판까지 힘을 쏟으면서 5 대 4까지 점수차를 줄였습니다. 9회초 투아웃에 1루 주자가 있는 상황에서 감독인 진 마우치는 마무리 전문 투수인 도니 무어(Donnie Moore)를 마운드에 올립니다. 무어는 순식간에 투 스트라이크를 잡아냈습니다. 이제 스트라이크 하나면 경기가 종료되고 에인절스는 우승과 함께 월드 시리즈로 가는 티켓을 받을 수 있었죠.



그러나 그가 던진 마지막 공은 데이브 핸더슨(Dave Hendersen)의 방망이에 맞았고, 그 공은 좌측 담당을 뛰어넘고 말았습니다. 홈런이었죠. 5 대 4였던 점수가 5 대 6으로 역전되는 순간이었습니다. 무어는 망연자실한 채 베이스를 달리는 핸더슨을 바라봐야만 했죠. 에인절스는 (하지 않아도 될 뻔 했던) 9회말 공격에 나서서 경기를 다시 역전시키려 했으나 힘이 빠진 나머지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결국 레드삭스가 아메리칸 리그의 챔피언이 되고 월드 시리즈 행 기차에 탑승했습니다.

무어는 오랫동안 자신이 던진 마지막 공을 곱씹으며 괴로워했습니다. "그때 내가 그렇게 던지지만 않았더라면..."이라는 생각에 허덕였죠. 언론들도 무어를 강력하게 비난하면서 모든 패배의 책임을 그에게 돌리는 형국이었습니다. 잊을 만하면 끄집어내어 무어를 조롱했습니다. 1986년에 21 세이브를 기록하던 성적은 1987년이 되자 5 세이브로 급격히 저조해졌습니다. 성적 뿐만 아니라, 개인적인 삶도 피폐해져서 극심한 우울증에 시달렸죠.

결국 무어는 1988년 시즌을 끝으로 야구장을 떠났고 급기야 1989년 7월에는 권총 자살로 생을 마감하는 극단적 선택을 하기에 이릅니다. 그의 자살소식을 알리는 기사에는 그가 자살하기 전에 자신의 부인을 총으로 여러 차례 쐈다는 내용이 실렸습니다. 결국 공 하나가 게임을 망쳤고 개인의 삶을 망쳐버리고 말았습니다.

누가 도니 무어를 그렇게 만든 것일까요?

자기계발 전문가들은 도니 무어의 사례를 보고 '자신의 실패를 긍정적인 시각으로 보지 못하는 위험'에 대해 이야기할지도 모릅니다. '만약 내가 그렇게 하지 않았더라면...'이라는 생각을 한다고 해서 변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으며, 그런 자기 반성이 구체적인 실천과 변화로 이어지지 않으면 자기파괴적인 결과로 이어질 수밖에 없음을 지적하겠지요. 요컨대, 그런 상황을 개인 스스로 긍정적인 관점을 가지고 이겨내지 않으면 안 된다는 식으로 이야기를 전개할 겁니다. 

또한 실패를 잘 이겨내고 오히려 실패를 즐기는 사람들을 소개하면서 실패를 웃으며 털어내지 못하는 자들을 은근 비웃기도 하겠죠. 장방 드 벨드(Jean Van de Velde)라는 골프선수는 1999년에 열린 브리티시 오픈에서 17번 홀까지 2위를 3타 차이로 따돌리면서 이변이 없는 한 우승이 확실시됐습니다. 하지만 마지막 18번 홀에서 그만 트리블 보기를 범하는 바람에 연장전에 돌입했고 결국 힘이 빠진 그는 폴 로리에 우승컵을 넘겨주고 맙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실패에 매몰되지 않고 오히려 언론에 자신의 이름이 크게 회자되자 유명해졌다는 사실을 즐겼습니다. 그 게임은 그저 자신의 골프 인생 중에 한 페이지일 뿐이라고 말하면서 "나는 과거 속에 살지 않는다"란 말을 남기기도 했죠. 자기계발 전문가들은 이런 그의 긍정적 사고를 치하하면서 개인의 강건한 마음가짐이 실패를 이겨내고 더 나은 성공으로 가는 길임을 역설할 겁니다.

하지만 무어의 비극적 결말을 무어 자신에게만 책임을 지우는 것은 상황을 나아지게 만드는 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합니다. 오히려 불행을 계속 생산해낼지 모릅니다. 물론 무어 자신의 나약한 심성도 문제이겠지만, '바로 너 때문에 우리 모두가 이런 실패를 하고 말았어, 이 멍청아!'라고 비난하고 조롱하며 확대 재생산하는 사회의 부정적 메커니즘, 게임을 그저 게임으로 바라보지 않고 대단한 지상목표로 여기는 광적인 스포츠 팬덤 현상, 실패한 사람을 찍어 누름으로써 자신을 돋보이게 만들려는 야릇한 경쟁의식 등이 무어로 하여금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만든 근본적인 원인입니다.

A매치 축구경기에서 우리팀이 패배하면, '저 자식 때문에 다 이긴 경기를 지고 말았어!', '쟤가 잘 막았더라면 우리가 이겼을 텐데!' 등 온갖 비난이 경기 관람을 끝낸 사람들의 입에서 터져 나옵니다. 물론 경기에 진 속상함을 그렇게 푼다고 해서 나쁠 건 없겠죠. 하지만 그 비난의 대상이 된 선수는 그런 말을 하지 않아도 이미 자신이 실수하고 잘못한 점을 깨달으며 반성할 겁니다. 비난이 가벼운 불평 정도에서 끝나야지, '확대하고 꼬치꼬치 분석해서' 날카롭게 쏘아붙이고 몇날 며칠 우려먹는 언론과 '유사언론(블로그 등)'은 자신들의 거친 입이 한 사람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줄 수 있음을 한번쯤은 상기할 필요가 있습니다.

요즘 몇몇 블로그를 보면, 프로그램에 출연한 연예인들의 잘못된 점을 세세하게 지적하면서 '계속 그러다가는 망하고 만다'는 식의 글들이 올라오고, 그런 자극적인 글들은 높은 조회수와 추천수를 기록합니다. 연예인 자신도 아니면서 어쩜 그렇게 속속들이 잘 아는지 놀라울(?) 정도죠. 

누구나 실패를 합니다. 그리고 어떤 사람은 아주 '극적인' 순간에 '뼈아픈' 실수를 저지릅니다. 싸구려 언론과 싸구려 '입'들은 그런 사람들의 실패를 이용하는 데에 자신들의 재능 있는 글발과 말발을 세우지 않으면 좋겠습니다. 실패를 감싸안는 분위기가 실패를 이용하는 분위기보다 우세한 건강한 사회에 살고 있다면 말입니다.

공 하나가 한 사람을 파멸시켰습니다. 아니, 공 하나에 너무나 큰 의미를 부여하고 개인에게 큰 책임을 부여한 사회가 한 사람을 파멸시켰다고 해야 옳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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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사 첫해가 무엇보다 중요한 이유   

2011. 9. 5. 0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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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리칸 텔레폰 앤 텔레그래프의 신입사원 62명을 대상으로 5년간 실험을 진행한 사례가 있습니다. 
이 실험을 주도한 데이비드 벨류와 더글러스 홀은 입사하고 나서 첫해에 받은 평가 결과가 향후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를 실험의 주제로 삼았습니다. 

그들은 먼저 회사가 각 신입사원들에게 거는 기대를 독립변수로 삼은 후에 세부적으로 18가지 항목으로 나누고 1점부터 3점까지의 스케일로 측정하게 했습니다. 18개 항목에는 기술적 역량, 학습 능력, 의사결정력, 감독 스킬 등이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연구자들은 쉬운 업무보다는 어려운 업무에 배치된 직원일수록 회사가 높은 기대감을 갖을 거라고 추정했습니다. 



그런 다음, 종속변수로 모두 7가지의 변수를 택했습니다. 연봉, 전반적 평가, 평균 업적 등이 그것이었죠. 변수마다 다르긴 하지만, 1점부터 10점까지의 스케일로 결과를 측정하게 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5년간의 데이터를 분석해 보니, '처음에 높은 기대를 받은 직원들이 낮은 기대를 받은 직원들보다 계속해서 높은 성과를 거두고 조직 내에서 더 성공한다'는 가설을 뒷받침하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이상하게도 '첫해'에 직원이 얼마나 회사로부터 기대를 받았는지, 그리고 그 '첫해'에 얼마나 기대에 부응하는 성과를 냈는지가 5년 후의 평가나 연봉 등에 영향을 미쳤습니다. 첫해 이후의 기대와 첫해 이후의 성과는 그다지 관련성이 떨어졌습니다.

이 결과가 의미하는 바가 무엇일까요? 맞습니다. '첫해'가 가장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첫해에 회사에게 어떤 인상을 주느냐(그래서 좋은 기대를 받느냐), 그리고 첫해에 얼마나 성과를 높게 내느냐가 관건이라는 것이죠. 첫해에 회사로부터 높은 기대를 받은 직원이 그에 부응하는 높은 성과를 거두면 그것이 향후(실험에서는 향후 5년)의 보상에 영향을 미쳐 계속해서 높은 보상을 받을 가능성이 큽니다. 만일 회사가 어떤 직원에게 별다른 기대를 하지 않았다면 그 직원이 나름대로 높은 성과를 거뒀다고 해도 그저 그런 보상을 받을 수밖에 없음을 의미합니다.

어떤 직원이 첫해에 높은 기대를 받고 첫해에 그에 상응하는 높은 성과를 거두면, 그에게 각종 지원이 따라 붙습니다. 교육 기회부터 시작해서 고위 관리자가 멘토나 코치로 따라 붙습니다. 게다가 자신이 최대로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업무를 부여 받겠죠. 또한 다른 사람에게 미치는 영향력도 커집니다. 이렇게 되면 그 이후로도 그 직원은 높은 성과를 거둘 가능성이 커지게 되어 나중에 높은 연봉과 승진 기회를 거머쥘 수 있을 겁니다. 

이 실험의 의미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1. 첫해에 높은 기대감을 받을 경우
  (1) 높은 기대감에 부응한 성과를 냈을 경우 --> 높은 보상 --> 계속해서 높은 보상
  (2) 부응하지 못했을 경우 --> 보상 없음 --> 보통 수준의 보상

2. 첫해에 낮은 기대감을 받을 경우
  (1) 낮은 기대감에 부응한 성과를 냈을 경우 --> 낮은 보상 --> 보통 수준의 보상
  (2) 부응하지 못했을 경우 --> 연봉 감액과 같은 징계 --> 낮은 수준의 보상



어떤 직원이 첫해에 어떤 기대감을 받고 어떤 성과를 내느냐가 5년이란 시간 동안 계속해서 영향을 준다는 사실은 그만큼 객관적인 평가가 어렵다는 점을 다시 한번 일깨웁니다. '가진 자는 더 많은 것을 가진다'는 마태효과(Matthew Effect)를 떠올리게도 합니다. 적어도 위의 실험은 어떤 조직에 들어가서 일을 시작할 때 가능하면 회사로부터 높은 기대감을 얻고 첫해에 높은 성과를 올리는 것이 중요함을 일깨웁니다. 신입사원이나 경력입사자들은 참고하면 좋겠네요.

평가는 인상에 의해 크게 좌우되고 오래 간다는, 이런 왜곡 현상을 어떻게 하면 최소화할 수 있을까요? 글쎄요, 솔직히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어쩔 수 없이 평가에는 사람의 심리가 크게 작용을 하고, 인간의 심리는 본질적으로 불완전하기 때문에 그걸 이겨낼 방법을 찾기란 매우 어렵고 불가능할지 모르겠습니다. 

최선의 방법은 이러한 평가의 불완전성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과학적이고 계량적인 도구를 더 열심히 찾으면 객관적 평가가 가능하리라는 이루기 힘든 꿈을 꾸는 것보다, 평가는 본질적으로 불완전한 사람들이 행하는 것이기 때문에 완벽하지 못하다는 사실을 인정한 채 서로 한발 물러서서 평가(남을 평가할 때나 자신을 스스로 평가할 때) 결과를 되짚어 보고 잘못된 평가 결과를 수정하는 과정이 평가의 왜곡을 막을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아닐까요?

(*참고논문 : THE SOCIALIZATION OF MANAGERS: THE EFFECTS OF EXPECTATIONS ON PERFORMANC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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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7월 8월, 나는 이런 책을 읽었다   

2011. 9. 2. 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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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과 8월에 저는 7권의 책을 읽었습니다. 2개월 간 겨우 7권을 읽었으니, 저조해도 하주 저조한 독서량이군요. 7월과 8월 사이에 거의 18일 정도 여행을 다녀온 터라 책 읽을 시간이 부족(?)했다는 핑계를 대봅니다. 사실 여행 갈 때 책을 가져가긴 했지만, 낮에 한창 돌아다니다가 호텔에 오면 피곤이 엄습해서 책이 눈에 들어오지 않더군요. '휴가철에 읽으면 좋은 책'들이 여기저기에서 추천되지만(그리고 저도 추천한 바 있지만), 휴가 때는 책 읽기가 그리 쉬운 일은 아닙니다. ^^

9월부터는 독서에 좀더 매진할 것을 스스로 다짐하면서, 7권의 책에 대해 짧게 평을 달아봅니다. 얼마 안 되는 책이지만, 책을 고를 때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프랜시스 크릭 : 제임스 왓슨과 함께 DNA 구조를 밝혀낸 과학자, 프랜시스 크릭에 대한 평전입니다. 예전엔 왓슨을 수다쟁이로, 크릭을 과묵하고 진중한 사람으로 알았는데, 크릭도 꽤나 시끄럽고 수다스러운 인물이었다는 걸 이 책에서 알았습니다. 과학적인 내용이 많이 나와서 일반인들은 약간 어려울 수도 있는데, 과학도나 과학애호가들에게는 DNA 구조 발견의 스토리를 흥미롭게 읽을 수 있을 겁니다.





나는 궁금해 미치겠다 : 실험을 해보지 않고서는 믿지 않겠다는, 극단적(?) 실증주의자가 자신의 실험 경험을 유머롭게 서술한 글입니다. 착한 거짓말이든 나쁜 거짓말이든 하지 않기, 인터넷에서 여자인 척 하고 남자들과 이야기 나누기, 한달 동안 아내가 되어 살아보기 등 저자의 실제 이야기를 읽다 보면, 우리가 해보지도 않고 으레 그렇다고 믿는 것들이 얼마나 많은지 되돌아보게 됩니다. 일단 재미있습니다. 읽어 보세요. 





상식의 배반 : 네트워크학의 '재주꾼', 던컨 와츠의 신작입니다. 우리가 상식이라고 생각하는 것들이 과연 옳은지 뒤집어보고 의심하라는 주제를 담고 있습니다. 예측의 함정, 역사를 통해 교훈을 얻는다는 것의 불합리성, 특별한 사람들을 중심으로 생각하는 것의 오류 등을 과학적 근거를 가지고 탄탄하게 서술해 갑니다. 특히 역사는 사실의 기록이라기보다 일종의 스토리텔링이라는 주장은 저에게는 신선했지요. 읽어보기를 권합니다.





바로잉 : 창조적인 문제해결에 관한 책입니다. 제목에서 나타나듯이, 창조적인 아이디어는 무(無)에서 나오지 않고, 다른 곳에서 '빌려오는' 과정에서 태어난다고 저자는 말합니다. 같은 분야에서 빌리는 것은 표절이지만, 다른 분야에서 빌려오는 것은 창의적이라고 칭찬 받는다고 말하면서, 자신의 울타리를 깨고 넘어가 폭넓게 사물을 바라보라고 충고합니다. 내용이 약간 중언부언한다는 느낌이 들지만, 저자의 개인적 이야기를 듣는 재미도 있고, 창조적인 문제해결에 관한 저자의 신선한 관점을 알게 되어 유익한 책이었습니다. 추천합니다.





굿보스 베드보스 : 제프리 페퍼와 여러 권의 책을 같이 썼던 로버트 서튼 교수의 신작입니다. 전작인 '또라이 제로 법칙'의 후속작인데, 좋은 보스가 되려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서술한 책입니다. 일종의 리더십 책인데, 다른 책들과는 달리 서튼 특유의 직설적이고 현실적인 조언이 매력이죠. 모든 관리자들에게 이 책을 추천합니다. 읽는 재미도 쏠쏠합니다.





먹고, 쏘고, 튄다 : 처음엔 왜 제목이 이렇지, 라는 생각이 들지만 내용을 보면 고개가 끄덕여집니다. 영어에서 아포스트로피, 쉼표, 하이픈 등 문장부호를 오용하는 실수 때문에 뜻이 완전히 달라지는 경우를 재미있게 소개합니다. 쉼표 하나를 잘못 찍어서 전쟁이 일어나고 유죄 판결을 받은 일들도 있다고 하니 문장부호를 잘못 쓸 일이 아니죠. 영어 문법에 관련한 책이라서 재미없다는 편견은 가지겠지만, 뉴욕타임즈의 베스트셀러라는 카피에 걸맞게 읽는 재미가 큽니다. 하도 재미가 있어서 저는 4시간 만에 다 읽었답니다. 추천합니다.




인간을 인간이게 하는 원칙 : 제목처럼 심오한 내용을 담고 있는 책입니다. 삶의 수단과 목적이 경쟁이나 투쟁에 있지 않고, 협력과 공감에 있음을 생물학적인 관점에서 담담하게 서술한 책입니다. 이 책은 경쟁의 관점에서 생물의 진화를 바라보는 사회생물학을 강하게 비판합니다. 인간은 경쟁을 지향하는 동물이 아니라, 사회적인 관계를 지향한다는 주장, 그리고 인간이 공격적인 양상을 보이는 이유는 경쟁에서 이기기 위함이 아니라, 자신을 온전하게 보호하고 고통을 방지하기 위함이라는 주장이 신선합니다. 그리 길지 않은 책이니, 생물학 이야기가 나오긴 하지만 어렵지는 않습니다. 꼭 읽어보기를 권합니다.

이번 가을에도 좋은 책과 만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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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싼게 비지떡'인 진짜 이유   

2011. 9. 1. 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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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질, 성분, 브랜드 등이 모두 동일한 제품인데 하나는 정가로 팔고 다른 하나는 할인(반값 정도로)해서 판다면, 여러분은 어떤 것을 구입하겠습니까? 당연히 싼 제품을 사겠죠. 헌데, 싼 제품을 구입한 후에 갖는 느낌과 정가로 제품을 구입하고 나서의 느낌과 같을까요, 아니면 다를까요? 같은 제품을 싸게 살 때 얻는 효용이 더 크다고 생각할 겁니다. 비용 대비 효과 차원에서 말입니다.

하지만 동일한 제품임을 '머리'로는 알지라도, 싸게 구입했을 때의 효과가 정가로 구입할 때보다 낮다는 것이 실험으로 밝혀졌습니다. 3명의 연구자(바바 쉬브,  지브 칼몬, 댄 애리얼리)들이 실험에서 선택한 제품은 'Twinlab Ultra Fuel'라는 원기회복 음료였습니다. 카페인이 다량 함유되어 있어서 운동을 하고 난 후의 피로를 풀어 준다는 음료입니다.



연구자들은 운동을 마치고 나온 학생들을 대상으로 이 실험을 진행했습니다. 그들은 학생들을 둘로 나눠 첫번째 그룹에게는 정가로 음료를 팔고, 두번째 그룹에게는 반값으로 팔았습니다. 그런 다음에 설문을 돌려서 피로가 얼마나 줄어들었는지를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똑같은 음료를 마셨음에도 불구하고 정가로 구입한 학생들이 반값에 마신 학생들보다 덜 피곤하다는 통계적인 결과가 나왔습니다.

연구자들은 이 실험의 결과에 흥미를 느끼고 다른 주제로 확장하기로 했습니다. 이번에 사용된 음료는 'Sobe Adrenaline Rush(소비 아드레날린 러쉬)'라는 제품이었죠. 역시 원기회복 음료 중 하나입니다. 그들은 125명의 학생들에게 'Sobe'가 정신활동을 촉진시키는 데에도 효과가 크다는 점을 상기시킨 다음, 첫번째 그룹에게는 그 음료를 정가인 1.89달러에 팔고, 두번째 그룹에게는 할인가인 0.89달러에 팔았습니다. 음료가 정신활동에 효과를 가져다 주려면 시간이 필요한지라(이렇게 말해야 음료의 효과를 학생들에게 극대화하여 전달할 수 있는지라) 학생들에게 10분 동안 영화를 보여주었습니다.

그런 다음, 낱말 맞추기 퍼즐 15개를 학생들에게 냈습니다. 이 퍼즐은 예컨대 'TUPPIL' 이라고 뒤섞인 철자를 보고 'PULPIT'이라는 옳은 단어를 찾아내야 하는 것이었죠. 연구자들은 학생들이 15개의 퍼즐을 30분이라는 제한된 시간을 주고 풀게 했습니다. 정가로 구입한 학생들이 더 많이 풀었을까요, 아니면 구입가격과 상관없이 비슷한 결과가 나왔을까요?

실험 결과를 따져보니 정가에 구입한 학생들은 15개 중에서 9.7개를 맞혔습니다. 음료를 마시지 않고 퍼즐을 푼 학생들(대조군)이 9.1개를 맞혔으니, 통계적으로 음료가 정신활동을 활발하게 한다는 증거가 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연구자들의 관심은 음료의 성분이 진짜로 정신활동에 도움이 되는지가 아니었죠. 할인된 가격으로 음료를 마신 학생들이 정가로 구입한 학생보다 상대적으로 어떤 결과를 보였는지가 관심이었으니까요.

할인 가격으로 음료를 마신 학생들은 흥미롭게도 15개 중에 평균 6.75개의 퍼즐만 맞혔습니다. 9.7개와 비교하면 통계적으로 유의한 차이였습니다. 이로써 가격이 플라시보 효과를 일으키는 원인이고, 가격이 제품의 질을 평가하는 데 중요한 잣대라는 점이 분명하게 드러났습니다.

싼 제품들은 보통 품질이나 기능이 제대로 값을 받는 제품보다 떨어지는 게 사실입니다. 그래서 '싼게 비지떡'이라고 흔히들 말하면서 경제적인 여건이 허용되는 수준에서 괜찮은 브랜드의 좋은 그레이드의 것을 구입하려고 합니다. 하지만 이 실험은 품질, 기능, 브랜드 등이 '똑같은 제품'일지라도 싼 가격으로 구입했다는 사실이 사람들로 하여금 '싼게 비지떡'이라는 인식을 (어떤 경로로 그렇게 하는지 모르겠지만) 갖게 만든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줍니다.

'싼게 비지떡'이라는 말은 싼 제품의 품질과 기능이 실제로 떨어지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사람들의 머리 속에서 '값이 싸면 좋은 물건이 아니다'라는 본능적인 인식이 존재하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실제로 나쁜 게 아닌데도 나쁘다고 무의식적으로 인식한다는 말이죠.

이 실험은 제품의 가격을 정할 때 비용과 마진을 적용하는 재무적인 기준도 중요하지만 소비자들이 가격을 통해 제품의 품질과 기능을 어떻게 가늠할지 미리 충분히 검토하는 것이 더 중요할지 모름을 이야기합니다. 가격을 싸게 내놓으면 소비자들이 우리 제품을 선택할 거라 무조건으로 믿는 것이 착각일 수 있음을 시사하죠. 소비자들의 편향 때문에 좋은 제품을 내놓고도 가격이 싸다는 이유로 외면을 받을지 모르니까요.

이렇게 프라이싱(Pricing)도 회사의 내부의 '재무적인 기준'과 소비자 입장에서의 '심리적 기준' 사이에서 적절한 균형점을 찾아야만 소비자들로부터 좋은 제품이라는 칭찬을 받거나 더 많이 팔 수 있을 겁니다. 그러려면 '싼게 비지떡'인 진짜 이유를 올바르게 이해해야 하겠죠?

(*참고논문 : Placebo Effects of Marketing Actions: Consumers May Get What They Pay Fo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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