압박 면접이 우수인재를 쫓아낸다   

2012. 1. 9.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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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머리가 좋은 사람과 지능이 그저 그런 사람이 있습니다. 이 두 사람에게 동일한 과제를 부여하면 평균적으로 누가 더 과제를 잘 수행할까요? 여러 과제를 던져보면 당연히 머리가 좋은 사람이 지능이 그저 그런 사람에 비해 과제 수행의 속도도 빠르고 완성도도 높습니다. 그런데, 과제를 부여할 때 압박감을 느끼도록 상황을 조성한다면 그래도 머리 좋은 사람이 과제를 훌륭히 수행할까요?

우리는 상식적으로 머리 좋은 사람이 중압감이 높은 상황에서도 주어진 과제를 빠르고 완성도 있게 완료하리라 생각하지만, 그렇지 못하다는 연구 결과가 있습니다. 머리가 좋은 사람, 즉 인지능력이 뛰어난 사람들이 그렇지 못한 사람들에 비해 압박 강도가 센 조건에서 초킹(choking) 현상을 보이며 무너질 확률이 크다는 것입니다.



심리학자 사이언 베일락(Sian L. Beilock)과 토마스 카(Thomas H. Carr)는 미시건 주립 대학교 학생 93명을 대상으로 실험을 진행했습니다. 그들은 학생들에게 지능 테스트와 비슷한 '작업기억(working memory)' 테스트를 보게 하여 높은 인지능력을 지닌 자(46명)와 낮은 인지능력(47명)을 가진 자로 분류했습니다. 베일락과 카가 학생들에게 부여한 과제는 '모듈러 연산'이라고 불리는 수학 문제였습니다. 이 연산을 수행하려면 중간 과정을 머리 속으로 기억해야 하기 때문에 작업기억을 많이 사용해야 합니다. 학생들은 각자 컴퓨터 앞에 앉아서 화면에 나타나는 문제를 재빨리 본 다음에 'True' 혹은 'False'라고 답해야 했습니다.

베일락과 카는 학생들에게 중압감이 적은 상황과 큰 상황에서 문제 풀이의 정확도와 속도가 어떻게 달라지는지 측정했습니다. 그들은 압박감을 주기 위해 학생들에게 문제를 푸는 속도가 컴퓨터에 의해 측정되고 각자가 문제를 푼 결과가 자기 자신의 보상금액(실험참가자에게 주기로 한 수고료)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의 보상금액에도 영향을 미친다고 일러줬습니다. 과거에 다른 사람들이 받았던 테스트 결과보다 20% 높은 성적을 올릴 때 5달러를 지급하겠다고 말하고, 다른 학생들은 이미 20% 높은 성적을 거두었다고 거짓으로 알렸습니다. 혼자만 잘한다고 되는 게 아니라는 점을 강조함으로써 학생들에게 중압감을 주기 위한 장치였습니다.

이렇게 실험 조건을 두 가지(압박감이 적은 상황과 큰 상황)로 조성하고 학생들에게 쉬운 문제 24개와 어려운 문제 24개를 풀도록 했더니, 흥미로운 결과가 나왔습니다. 인지능력이 높거나 낮거나 관계 없이 쉬운 문제를 풀 때는 압박감이 높은 상황이 되어도 문제 풀이의 정확도와 속도가 거의 변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중압감이 큰 상황에서 어려운 문제를 풀 때는 달랐습니다. 인지능력이 높은 학생들의 정확도가 인지능력이 낮은 학생들에 비해 크게 떨어졌던 겁니다. 특이한 점은 인지능력이 낮은 학생들의 정확도는 어려운 문제를 풀 때 오히려 올라갔다는 사실이었죠. 그래서 어려운 문제를 풀 때는 지능이 높은 학생과 지능이 낮은 학생의 정확도가 거의 비슷하게 나타났습니다.

왜 이런 현상이 발생하는 걸까요? 베일락과 카는 이렇게 설명합니다. 어려운 문제를 푸는 과제는 작업기억을 상당히 많이 사용하는 과정인데 압박감이 커지게 되면 '내가 이걸 못 풀면 어떻게 하지?' '나 때문에 다른 학생들이 수고료를 못 받게 되면 어떻게 하지?'란 근심이 작업기억을 장악하고 맙니다. 그래서 문제를 풀기 위한 작업기억의 자원이 부족한 상태가 되고 말죠. 그래서 작업기억이 발달된(즉 인지능력이 뛰어난) 학생일수록 성과의 하락폭이 훨씬 크게 나타납니다. 우수한 학생들은 자신의 낮은 성과를 외부의 탓으로 돌리지 않고 상황을 가볍게 받아들이지 않는 특성이 있기에 인지능력이 그저그런 학생들에 비해 걱정거리로 인해 작업기억이 장악되기 쉽다는 것이죠. 초킹 현상은 작업기억이 뛰어난 자들에게 더욱 빈번하게 나타납니다.

요즘 인력을 채용하는 과정에서 '압박 면접' 기법을 사용하는 회사가 많습니다. 짧은 시간 안에 피면접자가 어려운 질문에 대해 어떻게 대답하는지를 살펴봄으로써 그 사람이 발휘할 능력을 파악하겠다는 의도죠. 압박감이 크고 (면접관들에 의해) 궁지에 몰린 상황에서 드러내는 능력이야말로 진정한 능력이라고 여기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서점에 가보면 '케이스 인터뷰'라고 이름 붙여진 책들이 종종 눈에 띄는 것만 봐도 압박 면접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과 신뢰가 얼마나 큰지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베일락과 카의 실험은 역량이 뛰어난 자일수록 압박 면접에서 인상적이지 못한 대답을 할 가능성이 높다는 점, 뛰어난 인재를 오히려 놓칠 수 있다는 점, 실력보다는 순간적인 기지를 잘 발휘하는 사람을 높이 평가할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합니다. 압박 면접이 우수인재를 걸러서 '버리는' 역효과를 야기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시험에서의 성과가 조직에서 성공하는 데 필요한 자질을 말해주지 않는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인지능력이 우수한 학생들이 압박감이 적은 상황에서 좋은 성과를 나타냈다는 베일락과 카의 실험에서 보듯이, 중압감을 조성하는 상황을 연출하기보다 피면접자가 압박을 덜 느끼도록 배려한다면 우수한 인재 아니 적어도 인지능력이 뛰어난 사람을 떨어뜨리는 우를 범하지 않을 겁니다. 압박 면접을 하더라도 그것을 피면접자의 능력 대부분을 평가하는 수단으로 보지 말고 다른 방식의 평가로 보완하는 조치도 필요합니다. 

압박이 아니라 배려와 안정감이 더 큰 성과를 더 꾸준하게 유도하는 법입니다. 압박 면접이 우수인재를 쫓아내는 방법일지 모름을 경계해야겠습니다.

(*참고논문 : When High-Powered People Fail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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