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운터 펀치보다는 잽을 날려라   

2011. 12. 30. 1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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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생물은 진화합니다. 생존을 위해 환경 변화에 적응하기 위한 진화의 매커니즘은 생태계의 '보이지 않는 손'입니다. 진화의 힘은 분명 존재하지만 그 힘의 위력을 느끼지 못하는 이유는 진화의 속도가 느리기 때문입니다. 아니, 진화의 속도가 느리다기보다는 우리 인간이 그 과정을 지켜보기에는 수명이 짧기 때문이겠죠.

인간과 같은 고등동물(사실 이 용어는 부적절하지만...)들의 진화 과정은 인내심을 가지고 세대와 세대를 거쳐 오랜 기간 관찰해야만 하지만, 박테리아와 같은 생물들은 조금만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면 동적으로 진화가 일어나는 모습을 지켜볼 수 있습니다. 인간에 비해 한 세대의 기간이 매우 짧기 때문이죠. 거피(Guppy)라고 불리는 작은 물고기도 진화의 양상을 관찰하기에 좋은 생물입니다.



거피는 몸 길이가 암컷이 약 6cm, 수컷이 약 3cm 정도 되는 작은 물고기인데, 수컷의 경우 몸에 화려한 무늬가 많고 색채 또한 다양하여 관상용으로 많이 사육되는 물고기입니다. 하지만 화려한 몸은 포식자 물고기의 눈에 자주 띄기 때문에 생존에 불리한 요소입니다. 존 엔들러(John Endler)라는 생물학자는 '선택압'을 가하면 거피의 화려한 무늬가 어떻게 변할지 알고 싶었습니다.

엔들러는 18곳에서 거피를 채취하여 자신이 만든 온실 내의 인공 연못으로 옮겨 6개월 동안 키웠습니다. 6개월이란 기간은 거피에게 상당히 긴 시간이라서 그 시간 동안 나이 든 개체는 죽고 다시 새로운 개체가 태어나면서 여러 세대를 거치게 되었죠. 엔들러는 이렇게 사육한 거피들을 각각 격리된 10개의 연못으로 분리시켰습니다. 그런 다음, 그 중 4개의 연못에는 시클리드(Cichlid)라 불리는 포식자 한 마리를 넣어 거피와 함께 살도록 했고, 다른 4개의 연못에는 리블루스(Rivulus)라 불리는 물고기 여섯 마리를 함께 넣었죠. 리불루스는 부유물을 먹고 살기 때문에 거피에게 아무런 해를 끼치지 않는 물고기입니다. 나머지 2개의 연못은 통제군으로서 거피들만 살도록 했습니다.

엔들러는 6개월, 11개월, 20개월 시점에 각 연못에서 수컷 거피들을 추출하여 몸에 있는 점의 숫자를 세어봤습니다. 그랬더니 시클리드(포식자 물고기)와 같이 자란 거피들의 점의 개수가 점점 줄어드는 패턴이 발견되었습니다. 반면, 리불루스와 함께 자란 거피들과 자기네끼리 자란 거피들의 몸에서는 점의 개수가 오히려 증가했습니다. 시클리드 한 마리의 존재로 인해 20개월 동안 몸의 점이 점점 사라지는 진화의 과정이 포착된 것입니다.

엔들러는 인공적인 조건 때문에 이런 결과가 나왔을지 모른다고 의심하고, 야생에서 사는 거피들을 관찰해보기로 했습니다. 결과는 위의 인공적인 실험과 같았습니다. 엔들러는 시클리드와 같이 살던 거피 100여 마리를 리불루스만 서식하는 냇물로 옮겨 봤습니다. 2년이 지나고 그 냇물로 다시 찾아간 엔들러는 거피 몸에 점의 개수가 평균 10개에서 13개 정도로 증가된 모습을 발견했습니다. 점의 개수뿐만 아니라, 전체적으로 몸의 색깔이 화려해진 현상도 발견했죠.

진화 프로세스가 거피로 하여금 화려한 몸으로 암컷을 유혹하여 얻는 유전적 이득과 그로 인해 포식자에게 잡아 먹히는 유전적 손실(자신의 유전자를 후대에 전하지 못하는) 간의 균형을 재빨리 잡아가면서 생존이라는 지상목표를 달성케 하는 것이죠. 이처럼 포식자의 출현이라는 환경의 변화에 따라 재빨리 진화 프로세스를 작동하는 거피의 생존법은 생태계의 보편적인 법칙입니다.

여러분이 시클리드와 함께 사는 거피라면 어떤 생존전략을 취해야 할까요? 시클리드의 위협으로 살아남기 위한 거피의 진화는 매우 흥미로운 현상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거피들이 스스로 진화 프로세스를 인식하고 계획한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시클리드에게 금방 눈에 띄는 거피들은 잡아먹히고 어쩌다가 화려하지 않은 몸을 타고난 거피들은 살아남아서 그 유전자를 후대에 물려줬기 때문이죠. 거피들 스스로 적응했다기보다는 '적응을 당한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스스로 적응할 수 있는 '의지'가 있습니다. 여기서 '적응의 의지'라 함은 시클리드와 같은 위험한 존재로부터 살아남기 위해 정교한 전략을 수립하여 실행한다는 의미는 절대 아닙니다. 물론 그러면 좋으련만 시시각각 변화하는 환경에 항상 꼭맞는 전략을 찾는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우리는 오늘 유효한 전략이 내일이면 휴지조각이 되는 현상을 매번 목격하기 때문입니다. 그 과정에서 한때 각광 받던 회사가 구시대적으로 변한 전략을 끌어안고 추락하는 기업들의 모습을 바라보며 거기서 기업 경영의 교훈을 찾으라고 강요 받고 있으니 말입니다.

진화의 관점에서 적응이란 이런 것입니다. 먼저 몇 가지의 새로운 것을 시도해 봅니다. 한 가지가 아니라 반드시 여러 가지를 끊임없이 시도해야 합니다. 생명체가 진화의 과정에서 생존을 이어가는 힘이 환경에 적응력이 높은 돌연변이를 끊임없이 창출하는 데 있는 것과 같습니다. 처음부터 성공 가능성이 높은 '돌연변이'는 없습니다. '우리가 처한 상황은 이러이러하니 이 전략이 가장 좋을 거야'라는 전통적인 전략 수립 방법은 '기업 생태계'의 진화를 너무나 얕보고 돌이킬 수 없는 실패를 자초하는 만용입니다. 수많은 돌연변이들은 실패로 끝나고 그 중에서 단 하나의 돌연변이만이 생명체의 생존을 보장하는 해법으로 선택되듯이, 다양한 시도 끝에 가장 적합한 전략이 스스로 존재를 드러내도록 해야 합니다.

요컨대, 다양한 여러 전략들을 실험하라는 말입니다. 기업의 사활을 걸겠다면서 하나의 전략에 올인하는 행동은 생존 아니면 절멸이라는 도박과 같습니다. 이런 러시안 룰렛 게임의 유혹에 빠져들기보다 전략의 실패 가능성을 인정하고, 실패하더라도 피해가 덜 가는 방식으로 여러 개의 전략들을 실행에 옮기는 '치고 빠지기'가 현명한 행동입니다. 카운터 펀치보다는 수차례 잽을 날려야 합니다. 직전에 날렸던 잽의 실패로부터 교훈을 얻으면서 적합성이 증명된 전략을 점진적으로 찾아내 그것에 집중하는 방식이 우리가 취할 수 있는(취해야만 하는) 올바른 적응의 과정입니다. 이것이 기업이 환경에 적응해 간다는 말의 진짜 의미입니다.

거피의 예에서 봤듯이 생명체는 지금 이 순간에도 끊임없이 진화합니다. 생명체는 진화의 흐름을 거부하지 않으며 거부할 의지도 없습니다. 기업은 어떻습니까? 진화의 흐름을 거부하는 기업, 옛날의 달콤한 환경을 그리워하는 기업, 스스로 환경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믿는(그러면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기업들이 많습니다. 기업 생태계에서 그런 기업들은 제일 먼저 자연선택되고 말, 겉만 화려한 거피 같은 존재입니다.

적응하지 않는다면 적응 당합니다. 여러분의 회사는 어떻습니까?

(*참고논문 : Natural Selection on Color Patterns in Poecilia reticulat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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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들도 믿고 싶은 것만 믿는다   

2011. 12. 29.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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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은 평소 가지고 있는 신념이나 지식과 반대되는 결과를 접할 때 어떤 반응을 보일까요? 그 반하는 결과가 그냥 제시된 것이 아니라 엄정한 과학적인 방법을 통해 나온 것이라면, 여러분은 자신의 신념을 버리거나 의심하게 될까요, 아니면 여전히 믿음을 고수할까요? 우리는 보통 '나는 객관적인 사람이야'라고 스스로를 평가합니다. 그래서 철저한 조건과 방법을 통해 산출된 객관적인 결과는 선입견이나 고정관념 없이 수용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곤 합니다. 무엇이든 포용할 수 있는, 너그러운 사람이라고 자신을 평가하죠. 하지만 과연 그럴까요?

마이클 마호니(Michael J. Mahoney)라는 학자는 교묘한 실험을 실시함으로써 '나는 객관적인 사람이야'라고 자평하는 사람들의 믿음이 얼마나 취약한지, 자신이 평소 가지고 있는 신념이 사물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데 얼마나 영향을 미치는지 알아보기로 했습니다.



마호니가 실험 대상으로 삼은 자들은 75명의 행동주의 심리학자들이었습니다. 행동주의 심리학이란 간단히 말해서 어떤 외부 자극(보상과 처벌 등)을 지속적으로 가하면 원하는 행동을 이끌어낼 수 있고 원하는 행동 패턴을 강화하고 유지할 수 있다고 믿는 심리학의 분파입니다. 쥐로 하여금 지렛대를 눌러 먹이를 먹도록 훈련시킨 B. F. 스키너가 행동주의 심리학을 대표하는 학자였죠.

마호니는 75명의 행동주의 심리학자에게 학술지에 게재될 예정인 논문 하나를 읽고 그 논문의 질과 학술잡지 게재 여부를 평가하도록 했습니다. 그 논문에는 아이들에게 나무 퍼즐 놀이와 책 읽기를 할 때 보상을 하느냐에 따라 그 두 가지 활동에 아이들이 계속 흥미를 느끼는지의 여부를 실험한 내용이 담겨 있었습니다.

만약 그 논문이 보상을 통해 두 가지 활동에 대한 흥미가 계속 유지됐다는 결과를 담고 있다면, 행동주의 심리학자들에게는 '마음에 쏙 드는' 논문일 겁니다. 반대로 보상이 오히려 놀이에 대한 아이들의 흥미를 떨어뜨린다는 논문이라면 행동주의 심리학자들의 심기는 꽤 불편하겠죠? 허나 그 논문은 엄밀한 데이터를 담고 있기에 실험 대상자인 행동주의 심리학자들은 아무리 마음에 안 드는 내용이더라도 그 논문을 객관적으로 평가해야 합니다. 과학자로서 지성과 양심이 있다면 말입니다.

마호니는 동일한 주제와 동일한 실험 방법을 담았지만 실험 결과가 다르게 조작된 5가지 버전의 논문을 만들었고, 심리학자들을 5개의 그룹으로 나누었습니다. 그런 다음, 각 그룹에게 5가지 버전 중 하나를 읽고 논문의 질과 잡지 게재 여부를 평가하여 45일 안에 보내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예를 들어, 1그룹에게는 행동주의 심리학을 뒷받침하는 논문을 보냈고, 2그룹에게는 데이터만 살짝 바꿔 상반되는 내용의 논문을 보냈던 것이죠(나머지 3개 그룹은 비교 목적으로 설정. 자세한 사항은 이 글 맨 아래의 참고논문 참조). 

수거된 행동주의 심리학자들의 평가 결과는 전문가들도 '믿고 싶은 것만 믿는다'는 보통 사람들의 편향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점을 뚜렷하게 나타냈습니다. 동일한 실험 방법론을 적용한 논문이기에 객관적인 눈을 가진 학자라면 편견 없이 두 가지 논문을 거의 비슷한 점수로 평가해야 옳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습니다.행동주의 심리학자들은 자신들의 견해와 일치하는 논문은 높게 평가하고 학술지에 게재해도 무난한 수준이라 평했습니다. 하지만 자신들의 믿음과 상반되는 논문은 질이 낮고 실험 방법에도 문제가 있으며 학술지에 게재하면 안 된다는 의견을 나타냈습니다.

마호니의 실험으로부터 우리는 전문가들이 무언가를 평가할 때 자신이 가지고 있는 주관적 편향이 강하게 개입한다는 결론을 이끌어낼 수 있습니다. 믿는 것만 보이고 믿는 것만 믿는다는 '확증 편향'은 보통 사람들보다 한 분야의 지식과 경험의 수준이 높은 전문가들에게도 만연된 현상이라는 점을 느끼게 합니다. 객관적인 판단이라는 것이 얼마나 달성 불가능한 목표인지 실감케 합니다.

알게 모르게 확증편향에 좌우된다면 우리가 내리는 판단이나 평가가 얼마나 취약한지 반성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한번 내려진 평가를 고수할 것이 아니라 '내 판단에 무슨 문제는 없는가? 나의 주관성이 개입되지 않았나?'라는 질문을 통해 수정해 가야 합니다. 또한 '나는 객관적인 사람이다'라며 자신감을 보이는 사람의 말을 한번 정도는 걸러서 들어야겠죠. 오히려 '나는 결코 객관적이지 못하다'는 인식을 가져야 합니다. 자신의 판단을 되돌아볼 때 비로소 주관적 편향에서 벗어나 객관적 판단으로 한걸음 더 나아갈 수 있죠.

상사가 부하직원의 성과와 역량을 평가할 때, 신사업의 타당성을 평가할 때, 새로운 제도와 시스템을 도입할 때, 확증편향은 도처에서 우리의 객관적 판단에 검은 안대를 씌웁니다. 그 검은 안대는 벗기려 해도 절대 벗겨지지 않습니다. 앞이 보이지 않는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행동하는 것이 현명할까요? '이쪽으로 가는 게 맞으니' 한 방향을 정해서 뚜벅뚜벅 걸어 가야할까요, 아니면 조금씩 앞을 더듬으며 나아가야 할까요? 후자의 행동이 확증 편향이라는 검은 안대의 방해로부터 우리의 판단을 보호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일 겁니다.

(*참고논문 : Publication Prejudices: An Experimental Study of Confirmatory Bias in the Peer Review Syste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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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 택배업체, 경찰서를 벤치마킹한 까닭은?   

2011. 12. 28. 1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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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1년에 아버지의 사업을 물려받은 일본 야마토운송의 오구라 마사오 사장은 화물운송 사업 위주였던 회사의 비즈니스 포트폴리오를 택배 사업으로 확장해 야마토운송을 급성장시켰다. 그의 성공 비결 가운데 하나는 경찰서 벤치마킹이다. 택배사업과 전혀 무관한 것 같은 경찰서에서 그는 성공의 비법을 찾아냈다. DBR(동아비즈니스리뷰) 95호(2011년 12월 15일자)에 실린 오구라 사장의 ‘창조적 모방’ 사례는 불확실한 상황에서 의사결정을 해야 하는 경영자들에게 좋은 교훈을 준다. 주요 내용을 요약한다.

오구라 사장은 택배 서비스를 일본에 처음으로 도입하면서 영업소 네트워크 등 인프라를 어떻게 구축해야 할지 좀처럼 감을 잡지 못했다. 영업소가 지나치게 많으면 운영비가 너무 많이 들 것이고, 반대로 적으면 배달 시간이 길어져 고객들에게 외면당할 것이기 때문이다. 영업소를 어디에 설치해야 할지도 고민거리였다.



절대 풀리지 않을 것 같았던 문제였지만 택배 서비스로 한정됐던 사고의 틀을 벗어나니 전혀 새로운 대안이 눈에 들어왔다. 그는 택배영업소처럼 전국 네트워크를 갖춘 다른 산업을 모방하기로 했다. 먼저 그는 당시 일본 내 우편물 취급소의 수를 확인해 봤다. 그 수는 5000개가 넘었다. 그러나 오구라 사장은 우편집배국이 소포를 취급하긴 했지만 다른 종류의 우편물들을 더 많이 배달하기 때문에 택배영업소 수가 이처럼 많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 다음에 그가 생각해낸 것은 중학교였다. 당시 중학교 수는 1만1250개였다. 그러나 중학교도 보통 걸어서 통학할 수 있는 거리에 있기 때문에 자동차를 이용한 택배 서비스의 참고 대상이 되기는 어려웠다.

마지막으로 참고한 대상은 경찰서였다. 경찰서는 주민들의 안전을 위해 인구밀도와 거리를 잘 따져서 자리를 잡았다. 게다가 경찰들은 차량으로 관할지역을 순찰했다. 오구라 사장은 전국의 경찰서 수와 비슷한 규모로 1200개의 영업소를 개설했고 영업소의 위치도 경찰서를 참고하여 결정해 합리적 비용으로 최적의 서비스를 제공했다.

새 일을 시작할 때 참고할 대상을 찾지 못해 의사결정에 애를 먹는 사례가 많다. 이때 사고의 범위를 익숙한 영역에만 한정시키지 말고 다른 영역으로 눈을 돌려야 한다. 해답은 이미 다른 곳에 존재하는 경우가 많다.

글 : 유정식 인퓨처컨설팅 대표

(*본 글은 '동아 비즈니스 리뷰' 95호(2011.12.9)'에 실린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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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무고개 넘기 하듯, 가설을 세우라   

2011. 12. 27. 0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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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해결사(문제를 해결하는 사람)는 문제를 인식하는 과정을 통해 문제를 일으킨 잠정적인 원인이 어떨지 대강의 이미지를 그리게 됩니다. 직원들이 태만하고 불평불만이 심하다는 문제에 직면했다면, 직원들이 왜 그럴 수밖에 없는지를 함께 보고 들으며 ‘월급이 너무 적다’든지 ‘CEO가 너무 강압적’이라든지 ‘직원들 모두 건강에 이상이 있다’ 등의 잠정적인 원인을 생각하게 됩니다. 이것이 문제 해결을 위한 가설이며, 이에 대해 살펴볼까 합니다.


#문제원인 밝히는 가설

가설이란 문제의 원인이 ‘이러이러하다’고 미리 답을 내리는 것과 같습니다. ‘월급이 적어서 직원들이 태만할 것’이라거나 ‘매출이 오르지 않는 이유는 제품에 하자가 많아서’라는 식으로 문제를 발생시킨 원인을 단정적으로 선언한 문장이 가설입니다. 단정적으로 선언한다는 말은 가설 설정이 곧 문제의 근본 원인을 예단한다는 말이 아니라 문제 해결을 효율적으로 진행하기 위한 일종의 기술임을 뜻합니다.

가설로 세우지 않고서 무작정 근본원인을 밝혀내겠다고 덤벼드는 일은 바위를 깨는 작업을 하면서 어떤 도구를 쓸지 궁리하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문제의 원인으로 짐작되는 사항을 여러 개의 가설로 수립해 놓는다면, 그것들을 하나씩 실증하면서 참과 거짓 여부를 가리는 방식이 효율적입니다. ‘월급이 적어서 직원들이 태만할 것’이라는 가설을 실증해 거짓이라는 결과를 얻었다면 두 번 다시 그 가설은 살필 필요가 없으므로 다른 가설에 역량을 집중하는 효과를 얻기 때문입니다.



#가설 설정의 효과

가설을 설정하면 문제해결사와 의뢰인이 가진 편견을 차단하는 효과도 있습니다. ‘직원의 태만은 월급이 적기 때문’이라는 고정관념이 조직 전체에 팽배하더라도 그것이 실증되지 못한다면, 문제의 근본원인으로 채택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가설 설정의 과정이 생략되면 실증의 초점이 흐릿하기 때문에 문제해결사와 의뢰인이 슬그머니 자신의 편견과 고정관념을 반영할 위험이 큽니다. 또 ‘문제의 원인을 단정적으로 선언하라’는 말은 실증 과정을 통해 문제의 근본원인에 빠르게 접근하라는 말과 같습니다. 해법의 효과뿐만 아니라 해결의 신속성도 문제해결의 품질에 굉장히 중요한 요소입니다. 

가설을 설정하면 어떻게 문제해결의 시간이 단축되는지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선생님이 1부터 100사이의 숫자 하나를 마음속에 생각해 둔 다음 학생들에게 그 숫자를 맞혀보라고 합니다. 가설 설정에 능한 학생이라면 “50보다 큽니까”라고 물을 겁니다. 선생님이 아니라고 대답하면 학생은 “25보다 큽니까”라고 묻고, 그렇다는 선생님의 대답에 “37보다 큽니까”라고 질문을 이어갈 것입니다.

이런 식으로 가설을 설정해서 묻고 선생님으로부터 검증을 받으면서 숫자를 빠르게 찾아냅니다. 만약 선생님이 생각해 둔 숫자가 27일 경우 6번 정도만 질문하면 답을 맞힐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어릴 적에 많이 했던 ‘스무고개 넘기’ 게임도 전형적인 가설 설정 게임입니다. 


#품질 좋은 가설을 찾는 법

스무고개를 하는 것처럼 인터뷰, 자료 분석 등을 통해 실증을 진행하는 동안 가설의 진위 여부는 금세 드러납니다. ‘월급이 적어 직원들이 태만하다’는 가설을 갖고 직원 5명과 인터뷰했지만 아무도 그런 문제를 언급하지 않고 다른 이유를 더 성토한다면, 그 가설을 폐기하거나 제쳐놓고 다른 가설을 세우면 됩니다. 유능한 문제해결사라면 굳이 50명의 인터뷰를 다 끝낼 때까지 기존의 가설을 붙들 필요가 없습니다.

하지만 모든 가설이 좋은 가설은 아니기 때문에 품질 좋은 가설을 설정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직원들이 태만하고 불평불만이 많다’는 문제를 접하고 다음과 같이 3개의 가설을 세웠다고 가정해보겠습니다.

△직원들이 멍하니 앉아 있는 시간이 많다
△사적인 용무로 자리를 비우는 일이 많다
△회사의 정책을 비방하는 글을 인트라넷에 자주 올린다.

결론적으로 말해 이것들은 나쁜 가설입니다. 왜냐하면 ‘직원들이 태만하고 불평불만이 많다’는 문제를 그대로 반복한 문장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좋은 가설이 되기 위해 가장 으뜸인 조건은 문제의 근본원인을 파고들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그래야 가설 설정의 목적 중 하나인 문제해결의 속도를 극대화하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입니다. 문제해결에 능수능란한 사람이라면 의도적으로 눈에 보이는 현상보다는 다음과 같이 눈에 보이지 않는 이면에 초점을 맞추려는 노력으로 좋은 가설을 세웠을 것입니다.

△직원들에게 충분한 양의 업무가 배정되지 않는다
△대외업무가 너무 많아 관리자들이 직원들에게 신경 쓸 겨를이 없다
△회사 정책에 대한 홍보가 부족하고 일방적으로 지시를 내린다.


#단순 접근으로 해법 제시해야

무엇보다 좋은 가설은 해법의 실마리를 제시합니다. 여러분이 여행을 떠나려고 자동차에 시동을 거는데 무슨 이유인지 시동이 걸리지 않는 문제에 처했다면 ‘배터리가 방전돼 시동이 걸리지 않는다’는 가설을 세울 수 있습니다. 배터리를 충전시키면 시동이 걸리리란 해법과 연결되므로 좋은 가설이지만, 만약 ‘나에게 앙심을 품은 누군가가 차를 이상하게 만들어 놓았다’는 가설이라면 시동이 걸리지 않는 문제의 해결과 직접적으로 연결짓기 어렵습니다. 차를 망가뜨린 범인을 색출하는 일이 중요할지 모르나 설령 범인을 밝혀낸들 자동차를 수리해서 문제를 해결하는 일과는 거리가 멉니다. 따라서 이 가설은 문제해결의 관점에서 좋은 가설이라고 보기 어렵습니다.

다음으로 좋은 가설은 복잡하지 않고 단순합니다. 영국의 철학자이자 신학자였던 오컴의 윌리엄(William of Ockham)은 “보다 간단하게 할 수 있는 것을 복잡하게 만드는 일은 헛수고”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 소위 ‘오컴의 면도날(Occam’s Razor)’이라고 불리는 유명한 말입니다. “조건이 같다면 가장 단순한 것이 더 진리에 가깝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가설을 수립할 때 오컴의 면도날을 날카롭게 들이대야 합니다. ‘직원들이 태만하다’는 문제의 발생 원인에 대해 ‘직원들의 뇌 구조가 일반인들과 다르다’는 가설을 세웠다면 과학자에겐 유용할지 모르겠지만, 지식과 장비가 없는 여러분의 입장에서 실증하기가 매우 어렵기 때문에 있으나마나 한 가설입니다. 

결국 좋은 가설이 되기 위해서는 문제의 근본원인을 파고들어 해법의 실마리를 제시하며, 최대한 단순해야 합니다. 가설이 참이냐 거짓이냐는 가설의 좋고 나쁨과 전혀 관련이 없습니다. 다시 말해 실증을 통해 참으로 판명되거나 참이라고 판명될 가능성이 높은 가설이라고 해서 좋은 가설은 아니라는 말입니다. 참과 거짓을 실증하고 나아가 근본원인을 밝히는 데 얼마나 효과적이냐가 좋은 가설의 여부를 결정함을 염두에 두시기 바랍니다. 

(*본 글은 한국경제신문 2011.12.9일자에 소개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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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신은 엉성함으로부터 창발한다   

2011. 12. 26. 1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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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워드 휴스 의학 연구소라는 곳이 있습니다. 이 연구소는 억만장자인 하워드 휴스가 설립한 비영리 연구기관인데, 1년에 의학 연구에 지원하는 돈이 7억 달러나 됩니다. 이 연구소는 이처럼 큰 예산을 가지고 있는 것뿐만 아니라, 연구를 장려함에 있어서 독특한 문화를 지니고 있습니다. 연구원들이 위험을 감수하고 발견되지 않은 불확실한 주제를 탐구하는 데 매진할 것을 적극적으로 독려한다는 점입니다. 예산을 받기 위해 연구 과제를 신청할 때 해당 연구가 '얼마나 불확실한지'를 설득하지 못하면 연구 자금을 지원 받기가 어렵다고 할 정도죠.

연구 과제 신청건이 올라오면 그 과제와 관련하여 몇 명의 전문가를 선정하여 해당 연구 과제가 얼마나 성공 가능성이 큰지, 연구 결과가 얼마나 확실하게 산출될지, 연구 결과에 따른 효과가 얼마나 큰지를 납득시켜야만 하는 보통의 연구 조직과는 다릅니다. 애초에 휴스가 이 연구소를 설립할 때부터 유연하고 자발적이면서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자유로운 연구가 조직의 지향점이었습니다.



'지식의 경계를 확장시킨다'는 모토 하에 이 연구소는 연구원들에게 상세한 연구계획서를 작성하느라 '진을 빼기'를 원하지 않았습니다. 대략적인 연구 방향만 제시하면 충분하다고 합니다. 연구 과제가 채택되면 5년간 자금을 지원하고 특이한 상황이 아니라면 한번 갱신되어 10년까지 연장해 줍니다. 10년이 되어도 연구 성과가 제대로 나오지 않으면 그때 자금 지원을 중단하는데, 연구원들이 처한 상황에 따라 지원을 철회하는 속도를 조절한다고 합니다. 연구 성과가 나오지 않으면 야멸차게 자금줄을 끊는 보통의 연구 조직과 또한 다른 모습입니다.

하워드 휴스 의학 연구소(HHMI)의 문화와 정반대의 문화를 지닌 곳이 미국의 국립보건원(NIH)입니다. 연구원이 확실한 연구 결과를 보장하고 납득시켜야 예산을 편성해주는 철저한 연구 관리 시스템을 지닌 곳이죠. 피에르 아줄라이(Pierre Azoulay), 구스타보 만소(Gustavo Manzo), 조슈아 그래프 지빈(Joshua Graff Zivin), 이 세 명의 경제학자들은 HHMI와 NIH의 서로 상반된 조직문화에 흥미를 느꼈습니다. 그들은 자유롭고 실패를 용인하는 문화와 위험을 최소화하려는 합리적인 문화가 각각 연구 성과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조사하기로 했습니다.

그들은 통계적으로 동일한 비교집단을 구성하기 위해서 각각 HHMI와 NIH에서 탑 클래스에 해당하는 과학자들을 선별했습니다. HHMI에서는 73명, NIH에서는 393명을 연구 대상으로 삼았습니다(NIH가 HHMI보다 상대적으로 큰 조직이라 NIH의 샘플이 더 큼). 그런 다음, '얼마나 논문의 인용 빈도가 큰지'와 같은 지표를 사용하여 그들의 연구 성과를 비교하기로 했습니다.

두 조직의 과학자들은 탑 클래스에 속하기 때문에 언뜻 봐서는 연구 성과가 비슷해 보였지만, 통계적으로 따져보니, 차이가 상당했습니다. HHMI와 같이 연구원들에게 불확실한 연구 수행을 장려하고 실패를 용인하며 지지부진한 연구에도 자금을 지속적으로 지원하는 문화라면 나태하고 안일한 '무임승차자'들이 득시글할 거라는 우려할지 모릅니다. 하지만 HHMI의 과학자들이 NIH의 과학자들보다 논문을 더 많이 발표했고 논문의 인용 빈도가 2배 이상 높았습니다. 해당 연구 분야에서 히트한(키워드에 오를 정도로 독창적인) 논문의 수를 비교해도 역시 HHMI의 과학자들이 더 나은 성과를 나타냈습니다. 

물론, 논문을 냈는데도 한번도 인용되지 못한 논문의 개수를 비교하면 NIH가 HHMI보다 더 적었습니다. HHMI의 실패율이 더 높다는 의미죠. 이는 HHMI가 연구원들의 실패를 용인하고 그들에게 불확실성이 큰 연구를 장려하다 보니 당연한 결과이지만, HHMI의 혁신성이 훨씬 월등하다는 점에서 그 정도의 실패는 혁신에 따르는 비용으로 충분히 감수할 만합니다. 반면, 연구 결과에 따른 위험(자금 손실 등)을 회피하고 안전한 연구만을 취하려는 NIH의 연구 방식은 '아직 완전하지 않지만 뛰어난 아이디어들'을 무시해 버릴 위험을 오히려 키우는 꼴은 아닐까요?

조사 결과, HHMI의 과학자들이 하나의 주제에서 다른 연구 주제로 더 자주 방향을 바꾸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그만큼 다양한 가능성을 추구하며 유연하고 자유롭게 지식의 지평을 넓힐 수 있기 때문에 뛰어난 성과로 이어진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방향을 전환한다는 것을 실패로 보지 않고 혁신적 연구를 위한 지적인 도약으로 인식한다는 뜻이기도 하죠.

'이것만 제대로 하면 혁신할 수 있다'는 충분조건이 무엇인지 우리는 알지 못합니다. 아마도 그런 충분조건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이 더 정확할 겁니다. 그러나 혁신을 위해서 처음부터 돌다리를 두드려 보면서 위험을 줄이고 효율을 극대화하려는 조치는 그 자체가 혁신의 걸림돌이 될 수 있음을 경계해야 합니다. 물론 방만할 정도로 자금을 퍼주다시피 하면서 실패를 용인하고 독창성을 찬양하라는 말은 아닙니다.

요점은 '균형'입니다. 새롭지만 아직 완성되지 않는 아이디어에 투자할 개방성과, 위험을 감수할 때와 회피할 때를 탄력적으로 분별할 줄 아는 '눈'을 가져야 합니다. 쉽지는 않죠. 하워드 휴스 의학 연구소처럼 할 수 없다면, 적어도 합리성이라는 탈을 쓴 관료주의적 문화가 다양한 시도를 옥죄고 실패를 크게 벌주려는 것만은 피하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실패를 피하고 벌주면서 조직을 위축시키는 일이 종국에 더 큰 비용으로 되돌아온다는 점을 공감하는 것만으로도 합리성의 함정을 피해 갈 수 있습니다. 

혁신은 철저함이 아니라 엉성함에서 더 자주(더 훨씬) 창발합니다. 오늘은 지난 한 해 동안 철저한 잣대를 들이대는 바람에 죽어간 아이디어를 회생시키는 시간을 가져보면 어떨까요? 

(*참고논문 : Incentives and Creativity: Evidence from the Academic Life Science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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