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 하나가 한 사람을 파멸시키다   

2011. 9. 6. 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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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6년 10월 초, 캘리포니아 에인절스(현재 애너하임 에인절스)와 보스톤 레드삭스와의 아메리칸 리그 챔피언 시리즈 5차전이 열렸습니다. 이 게임에서 승리하면 에인절스가 아메리칸 리그를 우승하고 월드 시리즈에 진출할 수 있었습니다. 9회초 현재 스코어가 5 대 2로 앞선 상태라서 우승은 바로 코 앞에 보이는 듯 했습니다. 3점 차이는 레드삭스가 뒤집기 어려운 듯 보였지요.

하지만 레드삭스는 막판까지 힘을 쏟으면서 5 대 4까지 점수차를 줄였습니다. 9회초 투아웃에 1루 주자가 있는 상황에서 감독인 진 마우치는 마무리 전문 투수인 도니 무어(Donnie Moore)를 마운드에 올립니다. 무어는 순식간에 투 스트라이크를 잡아냈습니다. 이제 스트라이크 하나면 경기가 종료되고 에인절스는 우승과 함께 월드 시리즈로 가는 티켓을 받을 수 있었죠.



그러나 그가 던진 마지막 공은 데이브 핸더슨(Dave Hendersen)의 방망이에 맞았고, 그 공은 좌측 담당을 뛰어넘고 말았습니다. 홈런이었죠. 5 대 4였던 점수가 5 대 6으로 역전되는 순간이었습니다. 무어는 망연자실한 채 베이스를 달리는 핸더슨을 바라봐야만 했죠. 에인절스는 (하지 않아도 될 뻔 했던) 9회말 공격에 나서서 경기를 다시 역전시키려 했으나 힘이 빠진 나머지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결국 레드삭스가 아메리칸 리그의 챔피언이 되고 월드 시리즈 행 기차에 탑승했습니다.

무어는 오랫동안 자신이 던진 마지막 공을 곱씹으며 괴로워했습니다. "그때 내가 그렇게 던지지만 않았더라면..."이라는 생각에 허덕였죠. 언론들도 무어를 강력하게 비난하면서 모든 패배의 책임을 그에게 돌리는 형국이었습니다. 잊을 만하면 끄집어내어 무어를 조롱했습니다. 1986년에 21 세이브를 기록하던 성적은 1987년이 되자 5 세이브로 급격히 저조해졌습니다. 성적 뿐만 아니라, 개인적인 삶도 피폐해져서 극심한 우울증에 시달렸죠.

결국 무어는 1988년 시즌을 끝으로 야구장을 떠났고 급기야 1989년 7월에는 권총 자살로 생을 마감하는 극단적 선택을 하기에 이릅니다. 그의 자살소식을 알리는 기사에는 그가 자살하기 전에 자신의 부인을 총으로 여러 차례 쐈다는 내용이 실렸습니다. 결국 공 하나가 게임을 망쳤고 개인의 삶을 망쳐버리고 말았습니다.

누가 도니 무어를 그렇게 만든 것일까요?

자기계발 전문가들은 도니 무어의 사례를 보고 '자신의 실패를 긍정적인 시각으로 보지 못하는 위험'에 대해 이야기할지도 모릅니다. '만약 내가 그렇게 하지 않았더라면...'이라는 생각을 한다고 해서 변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으며, 그런 자기 반성이 구체적인 실천과 변화로 이어지지 않으면 자기파괴적인 결과로 이어질 수밖에 없음을 지적하겠지요. 요컨대, 그런 상황을 개인 스스로 긍정적인 관점을 가지고 이겨내지 않으면 안 된다는 식으로 이야기를 전개할 겁니다. 

또한 실패를 잘 이겨내고 오히려 실패를 즐기는 사람들을 소개하면서 실패를 웃으며 털어내지 못하는 자들을 은근 비웃기도 하겠죠. 장방 드 벨드(Jean Van de Velde)라는 골프선수는 1999년에 열린 브리티시 오픈에서 17번 홀까지 2위를 3타 차이로 따돌리면서 이변이 없는 한 우승이 확실시됐습니다. 하지만 마지막 18번 홀에서 그만 트리블 보기를 범하는 바람에 연장전에 돌입했고 결국 힘이 빠진 그는 폴 로리에 우승컵을 넘겨주고 맙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실패에 매몰되지 않고 오히려 언론에 자신의 이름이 크게 회자되자 유명해졌다는 사실을 즐겼습니다. 그 게임은 그저 자신의 골프 인생 중에 한 페이지일 뿐이라고 말하면서 "나는 과거 속에 살지 않는다"란 말을 남기기도 했죠. 자기계발 전문가들은 이런 그의 긍정적 사고를 치하하면서 개인의 강건한 마음가짐이 실패를 이겨내고 더 나은 성공으로 가는 길임을 역설할 겁니다.

하지만 무어의 비극적 결말을 무어 자신에게만 책임을 지우는 것은 상황을 나아지게 만드는 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합니다. 오히려 불행을 계속 생산해낼지 모릅니다. 물론 무어 자신의 나약한 심성도 문제이겠지만, '바로 너 때문에 우리 모두가 이런 실패를 하고 말았어, 이 멍청아!'라고 비난하고 조롱하며 확대 재생산하는 사회의 부정적 메커니즘, 게임을 그저 게임으로 바라보지 않고 대단한 지상목표로 여기는 광적인 스포츠 팬덤 현상, 실패한 사람을 찍어 누름으로써 자신을 돋보이게 만들려는 야릇한 경쟁의식 등이 무어로 하여금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만든 근본적인 원인입니다.

A매치 축구경기에서 우리팀이 패배하면, '저 자식 때문에 다 이긴 경기를 지고 말았어!', '쟤가 잘 막았더라면 우리가 이겼을 텐데!' 등 온갖 비난이 경기 관람을 끝낸 사람들의 입에서 터져 나옵니다. 물론 경기에 진 속상함을 그렇게 푼다고 해서 나쁠 건 없겠죠. 하지만 그 비난의 대상이 된 선수는 그런 말을 하지 않아도 이미 자신이 실수하고 잘못한 점을 깨달으며 반성할 겁니다. 비난이 가벼운 불평 정도에서 끝나야지, '확대하고 꼬치꼬치 분석해서' 날카롭게 쏘아붙이고 몇날 며칠 우려먹는 언론과 '유사언론(블로그 등)'은 자신들의 거친 입이 한 사람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줄 수 있음을 한번쯤은 상기할 필요가 있습니다.

요즘 몇몇 블로그를 보면, 프로그램에 출연한 연예인들의 잘못된 점을 세세하게 지적하면서 '계속 그러다가는 망하고 만다'는 식의 글들이 올라오고, 그런 자극적인 글들은 높은 조회수와 추천수를 기록합니다. 연예인 자신도 아니면서 어쩜 그렇게 속속들이 잘 아는지 놀라울(?) 정도죠. 

누구나 실패를 합니다. 그리고 어떤 사람은 아주 '극적인' 순간에 '뼈아픈' 실수를 저지릅니다. 싸구려 언론과 싸구려 '입'들은 그런 사람들의 실패를 이용하는 데에 자신들의 재능 있는 글발과 말발을 세우지 않으면 좋겠습니다. 실패를 감싸안는 분위기가 실패를 이용하는 분위기보다 우세한 건강한 사회에 살고 있다면 말입니다.

공 하나가 한 사람을 파멸시켰습니다. 아니, 공 하나에 너무나 큰 의미를 부여하고 개인에게 큰 책임을 부여한 사회가 한 사람을 파멸시켰다고 해야 옳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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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사 첫해가 무엇보다 중요한 이유   

2011. 9. 5. 0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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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리칸 텔레폰 앤 텔레그래프의 신입사원 62명을 대상으로 5년간 실험을 진행한 사례가 있습니다. 
이 실험을 주도한 데이비드 벨류와 더글러스 홀은 입사하고 나서 첫해에 받은 평가 결과가 향후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를 실험의 주제로 삼았습니다. 

그들은 먼저 회사가 각 신입사원들에게 거는 기대를 독립변수로 삼은 후에 세부적으로 18가지 항목으로 나누고 1점부터 3점까지의 스케일로 측정하게 했습니다. 18개 항목에는 기술적 역량, 학습 능력, 의사결정력, 감독 스킬 등이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연구자들은 쉬운 업무보다는 어려운 업무에 배치된 직원일수록 회사가 높은 기대감을 갖을 거라고 추정했습니다. 



그런 다음, 종속변수로 모두 7가지의 변수를 택했습니다. 연봉, 전반적 평가, 평균 업적 등이 그것이었죠. 변수마다 다르긴 하지만, 1점부터 10점까지의 스케일로 결과를 측정하게 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5년간의 데이터를 분석해 보니, '처음에 높은 기대를 받은 직원들이 낮은 기대를 받은 직원들보다 계속해서 높은 성과를 거두고 조직 내에서 더 성공한다'는 가설을 뒷받침하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이상하게도 '첫해'에 직원이 얼마나 회사로부터 기대를 받았는지, 그리고 그 '첫해'에 얼마나 기대에 부응하는 성과를 냈는지가 5년 후의 평가나 연봉 등에 영향을 미쳤습니다. 첫해 이후의 기대와 첫해 이후의 성과는 그다지 관련성이 떨어졌습니다.

이 결과가 의미하는 바가 무엇일까요? 맞습니다. '첫해'가 가장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첫해에 회사에게 어떤 인상을 주느냐(그래서 좋은 기대를 받느냐), 그리고 첫해에 얼마나 성과를 높게 내느냐가 관건이라는 것이죠. 첫해에 회사로부터 높은 기대를 받은 직원이 그에 부응하는 높은 성과를 거두면 그것이 향후(실험에서는 향후 5년)의 보상에 영향을 미쳐 계속해서 높은 보상을 받을 가능성이 큽니다. 만일 회사가 어떤 직원에게 별다른 기대를 하지 않았다면 그 직원이 나름대로 높은 성과를 거뒀다고 해도 그저 그런 보상을 받을 수밖에 없음을 의미합니다.

어떤 직원이 첫해에 높은 기대를 받고 첫해에 그에 상응하는 높은 성과를 거두면, 그에게 각종 지원이 따라 붙습니다. 교육 기회부터 시작해서 고위 관리자가 멘토나 코치로 따라 붙습니다. 게다가 자신이 최대로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업무를 부여 받겠죠. 또한 다른 사람에게 미치는 영향력도 커집니다. 이렇게 되면 그 이후로도 그 직원은 높은 성과를 거둘 가능성이 커지게 되어 나중에 높은 연봉과 승진 기회를 거머쥘 수 있을 겁니다. 

이 실험의 의미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1. 첫해에 높은 기대감을 받을 경우
  (1) 높은 기대감에 부응한 성과를 냈을 경우 --> 높은 보상 --> 계속해서 높은 보상
  (2) 부응하지 못했을 경우 --> 보상 없음 --> 보통 수준의 보상

2. 첫해에 낮은 기대감을 받을 경우
  (1) 낮은 기대감에 부응한 성과를 냈을 경우 --> 낮은 보상 --> 보통 수준의 보상
  (2) 부응하지 못했을 경우 --> 연봉 감액과 같은 징계 --> 낮은 수준의 보상



어떤 직원이 첫해에 어떤 기대감을 받고 어떤 성과를 내느냐가 5년이란 시간 동안 계속해서 영향을 준다는 사실은 그만큼 객관적인 평가가 어렵다는 점을 다시 한번 일깨웁니다. '가진 자는 더 많은 것을 가진다'는 마태효과(Matthew Effect)를 떠올리게도 합니다. 적어도 위의 실험은 어떤 조직에 들어가서 일을 시작할 때 가능하면 회사로부터 높은 기대감을 얻고 첫해에 높은 성과를 올리는 것이 중요함을 일깨웁니다. 신입사원이나 경력입사자들은 참고하면 좋겠네요.

평가는 인상에 의해 크게 좌우되고 오래 간다는, 이런 왜곡 현상을 어떻게 하면 최소화할 수 있을까요? 글쎄요, 솔직히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어쩔 수 없이 평가에는 사람의 심리가 크게 작용을 하고, 인간의 심리는 본질적으로 불완전하기 때문에 그걸 이겨낼 방법을 찾기란 매우 어렵고 불가능할지 모르겠습니다. 

최선의 방법은 이러한 평가의 불완전성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과학적이고 계량적인 도구를 더 열심히 찾으면 객관적 평가가 가능하리라는 이루기 힘든 꿈을 꾸는 것보다, 평가는 본질적으로 불완전한 사람들이 행하는 것이기 때문에 완벽하지 못하다는 사실을 인정한 채 서로 한발 물러서서 평가(남을 평가할 때나 자신을 스스로 평가할 때) 결과를 되짚어 보고 잘못된 평가 결과를 수정하는 과정이 평가의 왜곡을 막을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아닐까요?

(*참고논문 : THE SOCIALIZATION OF MANAGERS: THE EFFECTS OF EXPECTATIONS ON PERFORMANC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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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7월 8월, 나는 이런 책을 읽었다   

2011. 9. 2. 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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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과 8월에 저는 7권의 책을 읽었습니다. 2개월 간 겨우 7권을 읽었으니, 저조해도 하주 저조한 독서량이군요. 7월과 8월 사이에 거의 18일 정도 여행을 다녀온 터라 책 읽을 시간이 부족(?)했다는 핑계를 대봅니다. 사실 여행 갈 때 책을 가져가긴 했지만, 낮에 한창 돌아다니다가 호텔에 오면 피곤이 엄습해서 책이 눈에 들어오지 않더군요. '휴가철에 읽으면 좋은 책'들이 여기저기에서 추천되지만(그리고 저도 추천한 바 있지만), 휴가 때는 책 읽기가 그리 쉬운 일은 아닙니다. ^^

9월부터는 독서에 좀더 매진할 것을 스스로 다짐하면서, 7권의 책에 대해 짧게 평을 달아봅니다. 얼마 안 되는 책이지만, 책을 고를 때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프랜시스 크릭 : 제임스 왓슨과 함께 DNA 구조를 밝혀낸 과학자, 프랜시스 크릭에 대한 평전입니다. 예전엔 왓슨을 수다쟁이로, 크릭을 과묵하고 진중한 사람으로 알았는데, 크릭도 꽤나 시끄럽고 수다스러운 인물이었다는 걸 이 책에서 알았습니다. 과학적인 내용이 많이 나와서 일반인들은 약간 어려울 수도 있는데, 과학도나 과학애호가들에게는 DNA 구조 발견의 스토리를 흥미롭게 읽을 수 있을 겁니다.





나는 궁금해 미치겠다 : 실험을 해보지 않고서는 믿지 않겠다는, 극단적(?) 실증주의자가 자신의 실험 경험을 유머롭게 서술한 글입니다. 착한 거짓말이든 나쁜 거짓말이든 하지 않기, 인터넷에서 여자인 척 하고 남자들과 이야기 나누기, 한달 동안 아내가 되어 살아보기 등 저자의 실제 이야기를 읽다 보면, 우리가 해보지도 않고 으레 그렇다고 믿는 것들이 얼마나 많은지 되돌아보게 됩니다. 일단 재미있습니다. 읽어 보세요. 





상식의 배반 : 네트워크학의 '재주꾼', 던컨 와츠의 신작입니다. 우리가 상식이라고 생각하는 것들이 과연 옳은지 뒤집어보고 의심하라는 주제를 담고 있습니다. 예측의 함정, 역사를 통해 교훈을 얻는다는 것의 불합리성, 특별한 사람들을 중심으로 생각하는 것의 오류 등을 과학적 근거를 가지고 탄탄하게 서술해 갑니다. 특히 역사는 사실의 기록이라기보다 일종의 스토리텔링이라는 주장은 저에게는 신선했지요. 읽어보기를 권합니다.





바로잉 : 창조적인 문제해결에 관한 책입니다. 제목에서 나타나듯이, 창조적인 아이디어는 무(無)에서 나오지 않고, 다른 곳에서 '빌려오는' 과정에서 태어난다고 저자는 말합니다. 같은 분야에서 빌리는 것은 표절이지만, 다른 분야에서 빌려오는 것은 창의적이라고 칭찬 받는다고 말하면서, 자신의 울타리를 깨고 넘어가 폭넓게 사물을 바라보라고 충고합니다. 내용이 약간 중언부언한다는 느낌이 들지만, 저자의 개인적 이야기를 듣는 재미도 있고, 창조적인 문제해결에 관한 저자의 신선한 관점을 알게 되어 유익한 책이었습니다. 추천합니다.





굿보스 베드보스 : 제프리 페퍼와 여러 권의 책을 같이 썼던 로버트 서튼 교수의 신작입니다. 전작인 '또라이 제로 법칙'의 후속작인데, 좋은 보스가 되려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서술한 책입니다. 일종의 리더십 책인데, 다른 책들과는 달리 서튼 특유의 직설적이고 현실적인 조언이 매력이죠. 모든 관리자들에게 이 책을 추천합니다. 읽는 재미도 쏠쏠합니다.





먹고, 쏘고, 튄다 : 처음엔 왜 제목이 이렇지, 라는 생각이 들지만 내용을 보면 고개가 끄덕여집니다. 영어에서 아포스트로피, 쉼표, 하이픈 등 문장부호를 오용하는 실수 때문에 뜻이 완전히 달라지는 경우를 재미있게 소개합니다. 쉼표 하나를 잘못 찍어서 전쟁이 일어나고 유죄 판결을 받은 일들도 있다고 하니 문장부호를 잘못 쓸 일이 아니죠. 영어 문법에 관련한 책이라서 재미없다는 편견은 가지겠지만, 뉴욕타임즈의 베스트셀러라는 카피에 걸맞게 읽는 재미가 큽니다. 하도 재미가 있어서 저는 4시간 만에 다 읽었답니다. 추천합니다.




인간을 인간이게 하는 원칙 : 제목처럼 심오한 내용을 담고 있는 책입니다. 삶의 수단과 목적이 경쟁이나 투쟁에 있지 않고, 협력과 공감에 있음을 생물학적인 관점에서 담담하게 서술한 책입니다. 이 책은 경쟁의 관점에서 생물의 진화를 바라보는 사회생물학을 강하게 비판합니다. 인간은 경쟁을 지향하는 동물이 아니라, 사회적인 관계를 지향한다는 주장, 그리고 인간이 공격적인 양상을 보이는 이유는 경쟁에서 이기기 위함이 아니라, 자신을 온전하게 보호하고 고통을 방지하기 위함이라는 주장이 신선합니다. 그리 길지 않은 책이니, 생물학 이야기가 나오긴 하지만 어렵지는 않습니다. 꼭 읽어보기를 권합니다.

이번 가을에도 좋은 책과 만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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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싼게 비지떡'인 진짜 이유   

2011. 9. 1. 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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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질, 성분, 브랜드 등이 모두 동일한 제품인데 하나는 정가로 팔고 다른 하나는 할인(반값 정도로)해서 판다면, 여러분은 어떤 것을 구입하겠습니까? 당연히 싼 제품을 사겠죠. 헌데, 싼 제품을 구입한 후에 갖는 느낌과 정가로 제품을 구입하고 나서의 느낌과 같을까요, 아니면 다를까요? 같은 제품을 싸게 살 때 얻는 효용이 더 크다고 생각할 겁니다. 비용 대비 효과 차원에서 말입니다.

하지만 동일한 제품임을 '머리'로는 알지라도, 싸게 구입했을 때의 효과가 정가로 구입할 때보다 낮다는 것이 실험으로 밝혀졌습니다. 3명의 연구자(바바 쉬브,  지브 칼몬, 댄 애리얼리)들이 실험에서 선택한 제품은 'Twinlab Ultra Fuel'라는 원기회복 음료였습니다. 카페인이 다량 함유되어 있어서 운동을 하고 난 후의 피로를 풀어 준다는 음료입니다.



연구자들은 운동을 마치고 나온 학생들을 대상으로 이 실험을 진행했습니다. 그들은 학생들을 둘로 나눠 첫번째 그룹에게는 정가로 음료를 팔고, 두번째 그룹에게는 반값으로 팔았습니다. 그런 다음에 설문을 돌려서 피로가 얼마나 줄어들었는지를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똑같은 음료를 마셨음에도 불구하고 정가로 구입한 학생들이 반값에 마신 학생들보다 덜 피곤하다는 통계적인 결과가 나왔습니다.

연구자들은 이 실험의 결과에 흥미를 느끼고 다른 주제로 확장하기로 했습니다. 이번에 사용된 음료는 'Sobe Adrenaline Rush(소비 아드레날린 러쉬)'라는 제품이었죠. 역시 원기회복 음료 중 하나입니다. 그들은 125명의 학생들에게 'Sobe'가 정신활동을 촉진시키는 데에도 효과가 크다는 점을 상기시킨 다음, 첫번째 그룹에게는 그 음료를 정가인 1.89달러에 팔고, 두번째 그룹에게는 할인가인 0.89달러에 팔았습니다. 음료가 정신활동에 효과를 가져다 주려면 시간이 필요한지라(이렇게 말해야 음료의 효과를 학생들에게 극대화하여 전달할 수 있는지라) 학생들에게 10분 동안 영화를 보여주었습니다.

그런 다음, 낱말 맞추기 퍼즐 15개를 학생들에게 냈습니다. 이 퍼즐은 예컨대 'TUPPIL' 이라고 뒤섞인 철자를 보고 'PULPIT'이라는 옳은 단어를 찾아내야 하는 것이었죠. 연구자들은 학생들이 15개의 퍼즐을 30분이라는 제한된 시간을 주고 풀게 했습니다. 정가로 구입한 학생들이 더 많이 풀었을까요, 아니면 구입가격과 상관없이 비슷한 결과가 나왔을까요?

실험 결과를 따져보니 정가에 구입한 학생들은 15개 중에서 9.7개를 맞혔습니다. 음료를 마시지 않고 퍼즐을 푼 학생들(대조군)이 9.1개를 맞혔으니, 통계적으로 음료가 정신활동을 활발하게 한다는 증거가 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연구자들의 관심은 음료의 성분이 진짜로 정신활동에 도움이 되는지가 아니었죠. 할인된 가격으로 음료를 마신 학생들이 정가로 구입한 학생보다 상대적으로 어떤 결과를 보였는지가 관심이었으니까요.

할인 가격으로 음료를 마신 학생들은 흥미롭게도 15개 중에 평균 6.75개의 퍼즐만 맞혔습니다. 9.7개와 비교하면 통계적으로 유의한 차이였습니다. 이로써 가격이 플라시보 효과를 일으키는 원인이고, 가격이 제품의 질을 평가하는 데 중요한 잣대라는 점이 분명하게 드러났습니다.

싼 제품들은 보통 품질이나 기능이 제대로 값을 받는 제품보다 떨어지는 게 사실입니다. 그래서 '싼게 비지떡'이라고 흔히들 말하면서 경제적인 여건이 허용되는 수준에서 괜찮은 브랜드의 좋은 그레이드의 것을 구입하려고 합니다. 하지만 이 실험은 품질, 기능, 브랜드 등이 '똑같은 제품'일지라도 싼 가격으로 구입했다는 사실이 사람들로 하여금 '싼게 비지떡'이라는 인식을 (어떤 경로로 그렇게 하는지 모르겠지만) 갖게 만든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줍니다.

'싼게 비지떡'이라는 말은 싼 제품의 품질과 기능이 실제로 떨어지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사람들의 머리 속에서 '값이 싸면 좋은 물건이 아니다'라는 본능적인 인식이 존재하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실제로 나쁜 게 아닌데도 나쁘다고 무의식적으로 인식한다는 말이죠.

이 실험은 제품의 가격을 정할 때 비용과 마진을 적용하는 재무적인 기준도 중요하지만 소비자들이 가격을 통해 제품의 품질과 기능을 어떻게 가늠할지 미리 충분히 검토하는 것이 더 중요할지 모름을 이야기합니다. 가격을 싸게 내놓으면 소비자들이 우리 제품을 선택할 거라 무조건으로 믿는 것이 착각일 수 있음을 시사하죠. 소비자들의 편향 때문에 좋은 제품을 내놓고도 가격이 싸다는 이유로 외면을 받을지 모르니까요.

이렇게 프라이싱(Pricing)도 회사의 내부의 '재무적인 기준'과 소비자 입장에서의 '심리적 기준' 사이에서 적절한 균형점을 찾아야만 소비자들로부터 좋은 제품이라는 칭찬을 받거나 더 많이 팔 수 있을 겁니다. 그러려면 '싼게 비지떡'인 진짜 이유를 올바르게 이해해야 하겠죠?

(*참고논문 : Placebo Effects of Marketing Actions: Consumers May Get What They Pay Fo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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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밀한 전략을 수립하면 성공할까?   

2011. 8. 31. 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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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자동차 회사 혼다(Honda)는 1959년에 미국 시장에 모터사이클(오토바이)로 첫 진출했는데, 1960년엔 겨우 50만 달러이던 매출액이 1965년이 되자 7천 7백만 달러로 급증했습니다. 게다가 1966년에는 미국의 모터사이클 시장에서 63%의 점유율을 기록하기도 했습니다. 미국 시장에 진출한지 고작 7년만에 거둔 성과이기에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될 수밖에 없었죠. 모터사이클 경쟁자였던 야마하와 스즈키는 혼다의 성과에 비하면 새발의 피에 불과했습니다.



혼다의 성공을 두고 여기저기서 '성공의 비결'을 나름대로 해석하는 의견을 내놓았습니다. 성공기업에는 응당 이런 식의 '사후평가' 작업이 진행되기 마련이죠. 사람들이 성공기업의 비결을 알고 싶어하고, 그 비결을 배우면 자기네들도 성공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일 겁니다.

가장 먼저 스타트를 끊은 곳(제 생각에)은 미국의 컨설팅사인 BCG(보스톤 컨설팅 그룹)이었습니다. BCG는 영국 정부의 산업부로부터 연구를 의뢰받은 터였습니다. 영국의 모터사이클 산업(넓게 보면 자동차 산업)이 왜 몰락했는지, 타개책은 없는지가 연구 주제였죠. BCG는 연구를 진행하면서 미국 시장에서 스타기업이 된 혼다의 성공사례를 분석했습니다. 혼다의 성공요소를 파악하여 그것을 영국 정부에 제안할 목적이었나 봅니다.

BCG는 혼다의 성공포인트가 목표시장을 세분화(세그멘테이션)하고 그에 따라 치밀한 전략을 수립한 데 있다고 봤습니다. 그도 그럴것이 혼다가 미국 시장에서 성공을 거둔 모터사이클은 250cc 이상의 오토바이가 아니라 배기량이 50 ~ 100cc인 소형 오토바이였기 때문입니다. 미국은 대형 모터사이클이 주류를 이루고 있었는데 혼다가 소형 모터사이클로 빈 틈을 파고 들었고 그게 시장에 제대로 먹혀 들어갔다는 것이죠. 그리고 소형 오토바이의 성공을 발판으로 대형 오토바이 시장으로 확장할 수 있었다는 게 BCG가 분석한 내용의 골자입니다.

BCG는 혼다의 제품 디자인과 혁신능력이 월등하게 뛰어났고 눈 앞에 보이는 이익을 포기하고 장기적인 수익성 달성을 위해서 규모의 경제를 구축하는 일을 최우선적으로 실행했다고 주장합니다. 혼다가 일정한 시장점유율을 달성한 후에야 비용을 줄일 수 있었고, 그에 따라 높은 이익을 거둬들였다고 말하면서, 영국의 자동차 회사들도 혼다의 전략을 배워야 한다고 충고했죠. 간단히 말해, 규모가 먼저이고 그 다음이 이익이라는 공식을 영국 정부에게 제안한 것입니다.

하지만 BCG의 분석에 반론을 제기하는 사람이 나타났습니다. 그는 리차드 파스칼(Richard Pascale)이라는 맥킨지의 컨설턴트였습니다. 파스칼은 혼다가 미국에 진출할 당시에 활동했던 임원들과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혼다 성공의 '뒷이야기'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가 인터뷰한 가와시마 기하치로(나중에 미국 혼다 회장에 오른 인물)는 "우리는 그저 미국에 뭔가를 팔 수 있다고만 생각했다. 별다른 전략은 없었다. 그저 미국은 신천지였기 때문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BCG의 주장과는 달리, 혼다가 치밀한 사전 계획과 전략을 가지고 미국 시장에 접근한 것이 아니었고, 그런 사전 전략을 통해서 성공한 것도 아니었다는 결론 내립니다. 혼다의 소형 모터사이클이 선풍적인 인기를 끈 이유는 전혀 엉뚱한 데에서 기인한 것이라는 점도 알게 됐죠. 미국은 원래 장거리 이동에 대한 수요가 워낙 커서 50cc짜리 오토바이는 고객의 니즈와 거리가 한참이나 먼 제품이었습니다. 그래서 주력제품이 아니었죠.

그랬던 제품이 입소문을 타며 판매량이 급증한 이유는 미국 지사 직원들이 간단한 용무를 보기 위해 자기네가 만든 50cc짜리 오토바이(모델명은 Supercub)를 타고 왔다갔다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미국 사람들의 눈에는 그 오토바이의 모습이 꽤나 신기하고 귀여웠던 모양입니다. 여러 곳에서 문의전화가 쇄도하기 시작했습니다. 혼다의 경영진들은 원래 중대형 모터사이클 쪽에 집중하고 있었기에 50cc 오토바이 판매에 주저했죠. 하지만 워낙 죽을 쑤고 있었기에 그냥 한번 팔아보자는 심정으로 시장에 본격적으로 내놓았다고 합니다. 결과적으로 50cc짜리 오토바이는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죠.

파스칼에 따르면, 혼다에게 치밀한 사전 전략(세그멘테이션-->규모의 경제-->비용 감축-->이익 달성-->타 세그먼트로 확장) 따위는 없었습니다. 그냥 한번 팔아나 보자는 심정으로 내놓았던 게 우연히 엄청난 성공으로 이어진 것이죠. 파스칼은 혼다의 성공포인트가 '유연한 태도'와 '학습과 적응'에 있다고 말합니다. 시행착오를 통해 학습하고, 학습한 결과를 다시 적용하면서 시장에 빠르게 적응하는 것이 치밀한 사전 전략보다 더 중요하고 성공확률도 높인다는 것이죠. 파스칼은 이를 '혼다 효과(Honda Effect)'라고 명명합니다.

혼다의 성공을 놓고 BCG와 파스칼의 분석은 이렇게 첨예하게 대립됩니다. 간단히 말해, '사전 전략' 대 '사후 학습' 입니다. 누구의 의견이 옳으냐는 보는 관점에 따라 다르겠지만, 파스칼의 의견에 손을 들어주고 싶습니다. 우리는 보통 성공한 기업들에게는 그들이 성공할 수밖에 없는 능력이 있을 거라고 추론합니다. '선형적인(linear)' 인과관계를 찾아내려는 인간의 본성 때문입니다. 성공을 우연히 거둔 게 아니라 특별한 능력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야 논리적인 판단이라고 여겨지고 그래야 마음이 편해집니다. 그래서 한껏 포장된 성공 스토리가 나오게 되죠. BCG도 이런 함정에 빠진 게 아닌가 의심이 듭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합니까? 아래에 관련 논문을 첨부했으니 읽어 보고 판단하기 바랍니다.
(논문엔 하나의 관점이 더 있습니다.)

(*참고논문 :  The Many Faces of Hond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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