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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보통 한 분야에서 지식과 경험을 많이 쌓은 사람을 전문가라고 부릅니다. 전문가라고 하면 독자적으로 활동하는 사람들을 일컫는 말이라고 생각하겠지만, 사실 우리가 매일 접하는 직장 상사들도 전문가로 부를 만한 충분한 자격이 있습니다. 한 분야에 오랜 기간 근무하면서 온갖 어려움을 몸으로 부딪히며 업무를 익힌 사람들이기 때문이죠. 그들의 배경지식과 노하우는 아주 풍부해서 어떤 사안에 대해 간단하게 이야기해도 무슨 말인지 금세 알아차리곤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내부 전문가인 상사들이 부하직원들의 업무 능력을 올바르게 예측하여 일은 배분할 거라고 기대합니다. 그리고 그들이 자신들의 오랜 경험과 풍부한 지식을 바탕으로 부하직원들이 어떤 업무를 얼마나 빨리 끝낼 것인지 혹은 얼마나 빨리 끝내야 하는지를 정확하게 예측함으로써, 업무 흐름의 단절 없이 원하는 시간에 업무가 완료되도록 관리할 거라 믿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자신의 경험을 통해 부하직원들이 일을 할 때 어떤 어려움에 봉착할지, 그런 어려움을 해결하며 일을 배우기까지 어느 정도의 시간이 필요한지 잘 알고 있다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요? 한 분야의 전문가라 볼 수 있는 상사들은 부하직원들이 어떤 업무를 완료하기까지 소요되는 시간을 정확하게 예측할까요?
스탠포드 대학교의 파멜라 힌즈(Pamela J. Hinds) 교수는 이 가설이 옳은지 실험을 통해 규명하고자 했습니다. 힌즈는 실험의 도구로 휴대폰을 사용했는데, 그녀가 실험을 수행했던 1990년대 중반은 휴대폰이 아직 널리 보급되지 않았던 시기였습니다. 그래서 사람들 중에는 휴대폰을 한번도 사용해 보지 않은 사람이 있었죠. 힌즈는 휴대폰 기능을 능숙하게 사용하는 휴대폰 영업사원들(18명), 어느 정도 휴대폰을 써본 사용자들(44명), 그리고 휴대폰 이용 경험이 전혀 없는 초심자들(34명), 이렇게 세 그룹의 실험대상자들을 모았습니다.
그녀는 먼저 실험대상자들 모두에게 최신형 휴대폰을 보여주면서, 초심자가 휴대폰에 딸려오는 설명서만 보고 음성메시지함에 인사말을 저장하고, 음성메시지를 발송하고, 도착한 음성메시지를 확인하는 등의 일을 얼마의 시간 내에 완료할지 예측하라고 했습니다. 학습에 걸리는 시간을 예측해보라는 질문을 던진 겁니다. 그런 다음, 힌즈는 초심자들에게 휴대폰을 설명서와 함께 나눠 주고 실제로 과제를 수행하게 했습니다.
세 그룹 중에 누가 초심자의 학습 능력을 올바르게 예측했을까요? 휴대폰 사용 경험이 많은 영업사원들이 가장 근접한 답을 내놨을까요? 아니면, 초심자들이 스스로 자기들의 학습 능력을 객관적으로 판단했을까요? 두 그룹의 실험대상자들은 실제값과 크게 빗나가는 예측을 하고 말았습니다. 실제로 초심자들은 평균 31.5분 내에 과제를 수행했지만, 영업사원들은 초심자들이 휴대폰 음성메시지함 사용법을 익히는 데 13분도 채 걸리지 않을 거라 예측했습니다. 에측의 오차가 약 20분이나 됐죠. 흥미로운 점은 초심자들도 자신들이 과제를 완료하는 데에 13~15분 밖에 걸리지 않을 거라 예측했다는 것입니다. 자신의 능력을 과신했던 셈이죠.
초심자의 학습 능력을 가장 근사하게 예측한 그룹은 휴대폰을 사용한 경험이 어느 정도 있는 사용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은 19~22분 정도로 초심자의 완료 시간을 예측했습니다. 오차가 있긴 하지만, 전문가들과 초심자들보다는 양호했죠. 왜 이런 결과가 나왔을까요? 왜 휴대폰을 한번도 써보지 않은 초심자와 오랫동안 '전문적으로' 써 온 영업사원의 예측력이 별반 차이가 없을까요?
우리가 어떤 기술이나 방식을 처음 배울 때는 그것을 의식적인 기억 속에 저장하지만, 익숙해지고 능력이 발달할수록 그 기술은 무의식의 영역으로 자연스레 자리를 옮깁니다. 운전을 처음 배울 때는 운전강사로부터 배운 운전법을 외우고 기억해내지만, 시간이 흐르면 다른 생각을 하면서도 무의식에 의해 운전을 할 수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힌즈는 이렇게 어떤 기술이나 능력이 의식에서 무의식으로 자리를 옮기면 한 가지 부작용이 발생한다고 말합니다. 바로 어떤 과정을 거쳐 그 기술을 배웠는지, 그 기술을 배울 때 어떤 어려움에 봉착했는지, 그 어려움을 해결하는 데 얼마나 시간이 소요되는지 등을 망각한다는 것입니다. 즉, 자신은 그 기술에 이미 무의식적으로 능숙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그것을 배울 때 어떤 상황에 놓여 있을지를 느끼지 못하게 됩니다. 소위 '지식의 저주'에 빠지고 만다는 것입니다.
아마 여러분은 상사가 1주일 안에 완료하라고 지시한 업무를 데드라인이 지나도록 끝내지 못해서 상사에게 야단을 맞은 경험이 한번 이상은 있을 겁니다. 상사는 여러분의 게으름과 낮은 열정을 꾸짖으며 '왜 그렇게 간단한 일을 아직까지 못하느냐?'라고 질책했겠죠. 혹은 '나는 예전에 이런 일을 금방 끝냈다고!'라며 여러분의 무능을 질타했을지도 모릅니다.
절대로 일을 게을리 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꾸중을 듣는다는 것은 참으로 열받는 일입니다. 따지고 보면 상사가 준 기한이 일을 완료하기에는 터무니없이 짧았을지 모르는데 말이죠. 위에서 설명한 힌즈의 실험이 여러분의 불만에 정당성을 부여해 줍니다. 상사들이 부하직원들의 업무 능력을 예측하는 일에 그리 뛰어나지 않다는 점, 상사들이 무능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경험과 노하우가 풍부하기 때문에 그렇다는 점을 힌즈의 실험으로부터 유추할 수 있습니다.
힌즈의 실험으로부터 얻을 수 있는 또 하나의 교훈은 상사가 부하직원들의 업무 능력을 옳게 판단하여 업무 프로세스와 프로젝트를 원활하게 관리하려면 자신보다 경험과 지식이 조금 떨어지는 부하직원들의 의견을 경청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힌즈에 실험에서 초심자의 학습 능력을 근사하게 예측한 사람들은 영업사원만큼 전문적이진 않지만 휴대폰을 사용해본 사람들이었습니다. 팀 내에 그런 부류의 직원들이 '지식의 저주'로부터 상사를 구해냄으로써 상사와 부하직원 사이의 불필요한 반목을 줄일 수 있을지 모릅니다.
요컨대, 상사들은 지시를 내리거나 업무를 할당할 때 자신의 판단에 기초해 정하지 말고 부하직원들과 상의하는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이는 관리자의 필수요건입니다. 오랜 경험과 높은 수준의 지식이 자기 자신을 속일 수 있다는 점을 경계하는 관리자라면 말입니다.
(*참고논문 : The Curse of Expertise: The Effects of Expertise andDebiasing Methods on Predictions of Novice Performanc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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