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칙이 직원들을 '복지부동'하게 만든다   

2012. 3. 15. 1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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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몰아치는 망망대해에 탑승정원을 초과한 배가 위태롭게 떠 있습니다. 이 배가 구조선이 올 때까지 버티려면 적어도 1명의 승객이 바다에 빠져야 희생되어야 하는 상황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승객들 모두가 구조선이 오기도 전에 익사하고 말 겁니다. 한 사람만 희생되느냐, 아니면 모두 죽느냐, 이런 윤리적 딜레마에 빠질 때 사람들은 어떻게 행동할까요? 누군가 1명을 선택해 바다에 빠뜨리려 할까요, 아니면 아무런 행동을 취하지 않을까요?

약간 다른 예이지만 이런 경우도 생각해 보죠. 조직 내에서 파워를 가진 누군가가 고객에게 엄청난 피해를 입히는 제품의 결함을 알면서도 모른 척 한다는 것을 발견한 직원이 내부고발자가가 되어 그 사실을 외부에 알리려 할까요, 눈 감으려 할까요? 내부고발자가 되면 조직 내 다른 구성원들로부터 직간접적인 위해를 겪게 될 터이고 결국 잘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어야 할지도 모릅니다. 또는 어렵게 고발한 사건이 조직의 힘에 눌려 유야무야돼 버린다면 자신의 용감한 행동은 아무런 가치를 얻지 못해 참담함을 느껴야 할지도 모릅니다.



피터 드치올리(Peter DeScioli), 존 크리스트너(John Christner), 로버트 쿠르즈반(Robert Kurzban)은 사람들이 행동을 요구하는 윤리적인 딜레마나 갈등에 빠질 때 '행동하지 않는' 대안을 선택하는 경향이 강하다는 사실을 실험을 통해 밝혔습니다. 모두 그렇지는 않겠지만, 대개는 배가 가라앉는 모습을 바라보거나 조직의 비리에 눈을 감고만다는 것이죠. 연구자들은 실험참가자들을 무작위로 '소유자(owner)'와 '수취자(taker)'로 구분한 다음, 소유자들에게 1달러씩 나눠줬습니다. 

수취자들은 소유자에게서 자기 몫으로 10센트나 90센트를 가져올 수 있었습니다. 헌데 얼마를 가져올지를 수취자가 결정을 바로 내리지 못해서 15초가 경과되면, 수취자는 85센트를 가질 수 있었고 소유자는 한푼도 못 가지게 했습니다. 소유자에게서 90센트를 가져오는 것과 아무 결정을 하지 않고 자기만 85센트를 받는 것(동시에 소유자는 빈털털이가 되는 것)은 모두 이기적인 결정이겠죠. 연구자들은 소유자와 수취자의 심리 게임에 제3의 참가자인 '심판자'를 참여시키는 옵션을 추가했습니다. 심판자들에게는 수취자들의 결정을 지켜보고 수취자가 가져간 돈의 감액을 판단하는 역할이 주어졌습니다. 심판자들은 수취자들이 가져간 돈에서 최대 30센트를 감할 수 있었죠. 연구자들은 이렇게 심판자가 참여하는 게임과 참여하지 않는 게임을 나누어 진행했습니다.

수취자들은 어떻게 행동했을까요? 10센트나 90센트를 가지겠다고 바로 결정을 내렸을까요, 아니면 아무 결정도 하지 않고 시간이 경과하길 기다렸다가 85센트를 받았을까요? 우선 심판자가 참여하지 않는 게임에서 수취자들 중 65퍼센트는 90센트를 가지겠다고 결정했고 28퍼센트는 아무런 결정을 내리지 않고 시간이 지나기를 기다렸다가 85센트를 받았습니다. 이와 달리 심판자가 참여하는 게임에서는 아무런 결정을 내리지 않는 수취자가 51퍼센트로 늘어나는 결과가 나타났습니다. 벌을 주겠다고 하니 '결정을 내리지 않는 결정'을 택하는 경향이 커진 것이죠. 또한 10센트만 가지는 '상대적으로 이타적인' 수취자들은 심판자가 없을 때는 8퍼센트였지만 심판자가 개입하자 3퍼센트로 줄었습니다.

그렇다면 심판자들은 어떻게 행동했을까요? 심판자들은 수취자가 소유자로부터 90센트를 가져가겠다고 결정을 내리면 평균 20.8센트의 돈을 감액했습니다. 하지만 수취자가 시간이 가길 기다렸다가 혼자서 85센트를 가져가면 평균 14.4센트의 돈을 제했습니다. 심판자들의 눈에는 수취자가 90센트를 갖겠다고 내리는 결정이 아무 결정을 내리지 않는 것보다 더 이기적인 행동이라고 비쳤다는 의미입니다. 

심판자가 게임에 참여하면 아무런 행동을 하지 않는(inaction) 경향이 커져서 소유자의 피해가 더욱 커지고, 심판자는 아무런 행동을 하지 않는 사람을 상대적으로 좋게 봄으로써 소유자의 피해를 방관할 가능성이 크다는 이 실험의 결과는 참 아이러니합니다. 제3자의 비난이나 제재가 존재할 때 갈등을 일으키는 윤리적인 결정을 회피하고 '무행동(inaction)'을 택함으로써 그런 비난과 제재를 면제 받으려는 동기가 발생합니다.

무행동의 이유는 무행동 그 자체가 의도를 모호하게 만드는 효과가 있기 때문입니다. 위 실험에서 수취자가 아무 결정을 취하지 않으면, 심판자의 머리 속은 '수취자에게 꿍꿍이가 있는 것일까? 수취자가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기 때문일까?'하는 생각들이 서로 얽히겠죠. 또한 무행동에 비해 행동(action)으로 인한 결과는 머리 속에 강하게 각인되기 때문에 무행동을 택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행동으로 낳은 나쁜 결과는 무행동으로 인해 생긴 나쁜 결과보다 더욱 나쁘게 여겨지고 더 큰 비난을 받는 법이죠.

이 실험은 공공의 안녕과 혜택이 중요하지만 제품의 위해를 외부에 고발하지 않은 채 방관자로 남고자 함을 추측케 합니다. 내부고발자가 되어 자신은 사회에 기여했다는 고차원적인 이득을 얻고 소비자들 또한 나쁜 제품으로부터 보호 받는 혜택을 얻는 상황, 방관자로 남음으로써 자신의 기득권을 유지시키는 반면 소비자들은 아무런 혜택을 얻지 못하는 상황, 이 두 선택지 중에서 많은 이들이 후자를 택하고 마는 심리적인 한계성을 보여줍니다. 이 실험을 확장하여 해석하면(비록 다른 실험으로 밝혀져야 하지만), 벌칙의 존재가 사람들의 이타적이고 바람직한 행동을 유도하기보다는 무행동을 통한 이기적 욕구를 자극할지 모릅니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벌칙이나 제재를 도입할 때는 사람들의 '무행동 욕구'를 오히려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점을 주의해야 합니다. 벌칙이나 제재가 쉽게 생각할 수 있는 간단한 해법이지만, 그 해법이 문제를 고착시키거나 악화시킬지 모릅니다. 지금 여러분 조직에서 실행하는 여러 종류의 벌칙이 직원들의 복지부동을 권장(?)하는 것은 아닐까요?


(*참고 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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