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이 순간에도 기업들은 조직의 '좋은 변화'를 일으키기 위해 고심하고 있을 겁니다. 변화를 시도하려는 주제가 비용 절감이든 상사와 부하직원 간의 역동적인 피드백이든 구성원들의 마음을 움직이기 위해서 여러 가지 아이디어를 구상하곤 합니다. 고객사를 방문할 일이 있으면 벽에 붙은 게시판 내용을 보는 버릇이 있는데, 거기에는 정보를 공유하기 위한 유인물 뿐만 아니라 구성원들의 변화를 촉구하고 기대하는 문구도 함께 적혀 있곤 합니다. 대개 "화장실에서 담배를 피우지 말자", "PC 전원을 꼭 끄고 퇴근합시다"와 같이 직원들에게 '무언가를 하거나 하지 말자'는 말들이 주를 이룹니다.
하지만 이렇게 촉구하거나 설득하는 투로 메시지를 전달하는 방법은 긍정적인 변화로 향하는 먼 길을 더욱 요원하게 만들 뿐입니다. 설령 직원들이 변화하는 모습을 보였더라도 그 효과가 오래 지속되지 못할 가능성이 큽니다. 시카고의 공립 초등학교에 다니는 5학년 학생들에게 어떻게 하면 교실 바닥이나 복도에 쓰레기를 버리지 않도록 할 수 있는지를 연구한 리차드 밀러(Richard L. Miller)와 동료들의 실험이 그러한 사실을 지적하고 있죠.
밀러는 첫 번째 학급의 학생들에게는 "학교에서 너희 교실이 가장 깨끗하구나", "너희들처럼 교실을 깨끗하게 사용하는 아이들이 있다니 자랑스럽구나", "워낙 깨끗해서 청소하기가 쉽구나" 라는 메시지를 8일 동안 지속적으로 전달했습니다. 자긍심이 느껴지도록 '너희는 그렇게 좋은 아이들이야'라고 인정한 것입니다. 반면 두 번째 학급의 학생들에게는 "청소하는 아이들을 도와야 한다", "모두 정리정돈을 잘해야 한다", "바닥에 사탕 껍질을 버리지 말고 꼭 쓰레기통에 버려야 한다"는 식으로 '의무'를 강조하는 메시지를 주입시켰습니다. 대조군으로 선정된 세 번째 학급에는 아무런 메시지를 전달하지 않았습니다.
10일째 되는 날, 제과회사에서 나왔다고 가장한 홍보 사원이 학생들에게 껍질에 쌓인 사탕을 나눠준 후에 학생들의 행동을 살폈습니다. 쓰레기통에 버려진 사탕 껍질의 수도 세어 보았죠. 그랬더니 '자긍심 조건'의 학생들이 '의무 조건'의 학생들보다 교실 바닥이나 책상 아래에 사탕 껍질을 덜 버리는 것은 물론이었고 실험 진행자가 바닥에 몰래 버린 사탕 껍질도 더 많이 줍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의무를 강조하기보다는 자긍심을 자극하는 방법이 긍정적인 변화를 유도하는 데 효과적이었던 겁니다.
2주일이 흐른 후에 포장지에 쌓인 퍼즐을 학생들에게 나눠주고서 마음껏 즐기라고 한 후에 역시 쓰레기통에 잘 버려진 포장지 수를 세었습니다. 2주일이나 지났으니 메시지 주입 효과가 미약해졌으리라 예상했지만, '자긍심 조건'의 학생들은 여전히 쓰레기를 올바르게 처리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반면 '의무 조건'의 학생들은 바닥에 마구 쓰레기를 버리던, 실험을 시작하기 전의 상태로 돌아가 버렸죠. "나는 쓰레기를 버리지 않는 사람이다"란 메시지는 시간이 지나도 계속 유효했던 겁니다.
쓰레기를 올바로 처리하는 행동뿐만 아니라 학과 성적도 '자긍심 조건'의 학생들과 '의무 조건'의 학생들 사이에 큰 차이가 발생한다는 사실이 후속실험에서 밝혀졌습니다. 밀러는 초등학교 2학년 학생들을 둘로 나눠 첫 번째 그룹에게는 "너는 수학을 참 잘하는구나", "넌 수학을 잘 하기 위해 노력하는구나"는 식으로 자긍심을 북돋우는 메시지를 전달했습니다. 두 번째 그룹의 학생들에게는 "넌 수학을 잘 해야 해", "너는 수학을 잘 하기 위해 노력해야 해"라며 의무를 강조하는 메시지를 주입했습니다.
이렇게 8일 동안 메시지를 여러 방식으로 전달한 후에 수학 시험을 치러 보니 두 그룹 모두 성적이 향상되긴 했지만 자긍심을 인정 받은 학생들의 성적이 더 높게 나타났습니다. 더 흥미로운 사실은 2주일 후에 다시 한 번 치른 시험에서 자긍심 조건의 학생들 점수는 상승한 반면, 의무 조건의 학생들은 실험을 진행하기 전의 점수로 뚝 떨어져서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은 대조군의 점수와 같아져 버렸죠. 한번 인정 받은 자긍심은 시간이 흘러도 수학 점수를 높게 받으려는 동기를 지속적으로 강화했다는 의미입니다.
밀러의 실험이 비록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것이지만, 긍정적인 변화를 일으키고 그 변화가 꾸준히 유지될 것을 희망하는 기업들에게 '메시지를 어떻게 전달해야 하는지' 힌트를 줍니다. 무언가를 '하자', '해야 한다', '안 하면 안 된다'는 투의 전달 방식은 '반짝 효과'를 내겠지만 그 변화의 크기는 자긍심을 자극하는 방식에 비해 작을지 모릅니다. 변화의 크기뿐만 아니라 변화의 지속시간을 따져봐도 의무보다는 자긍심을 자극하는 메시지 전달이 효과적일 겁니다.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실험이라 미덥지 않다면, 의무보다는 자긍심을 자극하는 것이 지속 가능한 변화를 일으킨다는 실제 사례가 있습니다. 텍사스 주는 고속도로에 버려지는 쓰레기를 줄이기 위해서 쓰레기를 버리지 않는 것이 시민의 의무임을 강조하는 갖가지 방법의 캠페인에 막대한 돈을 들였습니다. 하지만 쓰레기 투기는 줄어들 줄 몰랐죠. 그러다가 방향을 전환하여 "진정한 텍사스인이라면 쓰레기를 아무데나 버리지 않는다"라는 식의 메시지를 광고 캠페인에 담아 전달하자 곧바로 효과가 나타났습니다. 1년 후 쓰레기 투기율은 29퍼센트나 감소했고, 5년 후에는 도로변의 쓰레기가 72퍼센트 감소했던 겁니다. 다른 주와 비교해도 도로변의 쓰레기 양은 절반에 불과했죠.
지금 사내 게시판 이곳저곳에 붙은 문구들을 한번 살펴보면 어떨까요? 그 문구들이 천편일률적으로 의무를 강조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왜 수많은 조치에도 불구하고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지, 그 이유가 무엇인지 깨닫기를 바랍니다.
(*참고논문)
Richard L. Miller, Philip Brickman, Diana Bolen(1975), Attribution Versus Persuasion as a Means for Modifying Behavior, Journal of 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 Vol. 31(3)
(*참고도서)
칩 히스 외, <스틱!>, 안진환, 박슬라 역, 웅진윙스,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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