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은 누군가가 잘못을 저지르면 그 잘못이 기질, 성격, 기능처럼 그 사람의 '고정된' 특성으로부터 야기됐다고 봅니까, 아니면 그 사람이 처한 당시의 상황이나 조건이 그런 잘못을 저지르도록 유도한 측면을 고려해야 한다고 생각합니까? 만일 그 사람이 다른 상황에 처하거나 다른 조건에 주어진다면 그런 잘못을 저지르지 않으리라 생각합니까? 다시 말해 사물을 바라보고 판단하는 그 사람의 특성과 행동이 고정된 것이 아니라 내외부적 동기에 의해 탄력적으로 변할 수 있는 것이라 생각합니까?
이 질문들을 특정 인물이 아니라 우리와 반목하고 갈등을 일으키는 집단에게 던져 본다면 그때는 어떻게 대답하겠습니까? "쟤네들은 원래 그래.", "걔네들은 절대로 바뀌지 않아"라며 그 집단의 특성이 고정되어 있다고 봅니까, "그들은 바뀔 수 있을 거야", "상황이 걔네들을 그렇게 만든 거지"라며 그 집단의 변화 유연성(malleability)을 기대하겠습니까?
에란 할페린(Eran Halperin)과 동료 연구자들은 일련의 실험을 통해 갈등 상황에 처한 둘 이상의 집단들이 서로의 집단적 특성이 고착돼 있다고 믿을 경우 갈등 해소의 길은 요원하다고 지적합니다. 집단의 특성이 딱딱하게 굳어 있는 것이 아니라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변화하는 것이 믿을 때 만남과 대화의 물꼬를 틀 수 있고 화합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할페린이 연구 대상으로 삼은 집단은 국제 뉴스의 단골로 오르내리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집단이었습니다. 할페린은 먼저 500명의 이스라엘 유태인들과 인터뷰를 벌여 "집단은 자신들의 기본적 특성을 변화시킬 수 없다"란 문장에 얼마나 동의하는지 물었습니다. 그런 다음, 팔레스타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팔레스타인과 타협할 의지가 얼마나 되는지도 평가했죠. 분석해 보니 집단의 변화 유연성을 믿는 유태인일수록 팔레스타인에 대해 긍정적인 태도를 보였고 타협 의지도 더 컸습니다.
이번엔 이스라엘에서 태어난 76명의 유태인을 실험실에 모아 놓고 호전적인 집단(이스라엘-팔레스타인과 무관한 집단)에 관한 기사를 읽도록 했습니다. 참가자 중 절반은 그 호전적 집단의 특성이 고정적이라고 묘사된 기사를, 나머지 절반은 유연하게 변화 가능하다고 표현된 기사를 읽었습니다. 기사를 읽은 후에 팔레스타인 집단에 관해 질문을 던져보니, 후자의 참가자들이 팔레스타인을 더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팔레스타인과의 타협에도 더 큰 지지를 보냈습니다. 집단의 변화 유연성을 인식하는 것이 집단 간의 갈등 해소에 첫걸음임을 시사하는 결과였습니다.
이스라엘의 시민이지만 팔레스타인 출신이라는 이유로 감시를 받는 사람들은 할페린의 실험에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요? 그들 역시 집단의 변화 유연성이 표현된 글을 읽은 후에 유태인과의 관계 개선에 긍정적인 태도를 보였습니다. 할페린은 이스라엘과 대립하고 있는 팔레스타인 주민 53명을 대상으로도 동일한 실험을 실시했는데, 역시 같은 결과가 도출되었습니다. 특히 그들은 이스라엘인들을 기꺼이 만나보겠다는 반응을 보였습니다. 알다시피 만남은 갈등 해소의 시작입니다. 이는 집단의 특성이 고정적인 것이 아니라 유연한 것이라는 인식이 갈등 완화와 해소에 매우 중요함을 다시 한번 강조하는 결과죠.
기업이라는 집단도 가까이 들여다보면 그 안에 여러 소집단들이 존재합니다. 경영자와 노동자, '팀장'으로 대표되는 관리자 집단과 '팀원'으로 통칭되는 직원 집단, 사무직 집단과 생산직 집단, 사업부로 각각 나뉜 집단들이 대표적이죠. 애석하게도 소집단끼리 서로 반목하고 경원시하는 경우가 꽤 많을뿐더러 때로는 걷잡을 수 없는 충돌로 이어지기도 합니다. 할페린의 연구는 이런 갈등을 해결하고 타협하기 위한 출발점은 바로 상대 집단의 특성이 고정적이라고 여기지 않는 것임을 시사합니다.
"걔네들은 항상 그래."라며 특성의 고정성(fixation)을 믿고 그 믿음을 강화해 나간다면 대화와 타협보다는 통제와 징벌이 문제 해결의 방법으로 채택되고, 그로 인해 갈등은 해소되기는커녕 더 큰 물리적인 충돌로 악화될 가능성이 큽니다. 갈등 상황이 아니더라도 조직에 긍정적인 변화를 일으키고 싶을 때도 상대 집단의 변화 유연성을 자극하고 유도하려는 조치보다 "너희들은 우리가 하자는 대로 따라오면 돼."라며 상대 집단을 고정화된 시각으로 대한다면, 그 변화의 나침반은 앞이 아니라 뒤를 향하게 될 겁니다.
갈등 해소든 변화관리든, 집단이든 개인이든, 상대방에 대한 고정화된 시각을 가지고 있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다른 상황, 다른 조건에 의해 다른 동기를 가지게 되고 그로 인해 다른 행동을 보일 수 있다고 생각할 때 갈등 해소와 긍정적 변화가 시작됨을 유념해야겠습니다. 특히 노조와 반목 중인 기업에서는 더욱 그러하겠죠.
여러분 조직의 경영자는 직원들을 어떤 시각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는 직원들을 딱딱한 고체처럼 인식합니까, 아니면 그릇에 따라 모양을 달리하는 액체로 바라봅니까? 부디 후자이길 바랍니다.
(*참고논문)
Promoting the Middle East Peace Process by Changing Beliefs About Group Malleabil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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