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잘하는 직원을 승진시키면 안 되는 이유   

2012. 5. 3. 1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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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터의 법칙'이란 말을 들어본 적이 있을 겁니다. 캐나다의 심리학자인 로렌스 피터(Laurence J. Peter)는 자신의 경험적 관찰을 통해 "조직의 서열 구조 속에서 모든 구성원들은 자신들의 무능력을 극대화할 수 있는 위치까지 승진한다"는 유명한 말을 남겼습니다. 이 말을 좀더 쉽게 서술하면 "구성원들은 자신의 무능이 완전히 드러날 때까지 승진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결국 조직 전체의 역량 수준은 떨어진다"는 것입니다. 

그가 이런 결론을 내린 까닭은 어떤 직급에서 요구되는 역량과 한 단계 위의 직급에서 필요한 역량이 서로 독립적이라고 보았기 때문입니다. 피터의 관점이 맞는다면, 어떤 사람이 현재의 직급에서 아무리 높은 수준의 역량을 보이더라도 그가 상위 직급에 오른 후에도 높은 역량 수준을 나타내리라 장담하지는 못합니다. 그래서 그는 구성원들이 상위 직급으로 올라갈수록 무능함이 드러난다고 생각한 겁니다. 



물론 하위 직급의 역량과 상위 직급의 역량이 독립적이라는 피터의 가정이 틀렸을 수도 있습니다. 조직의 특성상 피터의 가정처럼 직급의 역할이 설정된 곳도 있고, 하위 직급과 상위 직급 간의 요구역량이 서로 의존적인 조직도 있을 테니까요. 이탈리아의 알레산드로 플루치노(Alessandro Pluchino)와 동료들은 컴퓨터를 통해 피터의 가정 하에서 어떤 식으로 구성원을 승진시키는 것이 좋은지를 시뮬레이션한 결과, 직관과 반하는 결과를 얻었습니다. 그들은 이 공로(?)로 2010년에 '이그 노벨상'을 수상하기도 했습니다.

플루치노는 컴퓨터 상에 6단계 직급을 가진 피라미드형 조직을 만들어 놓고 160명의 가상직원을 배치했습니다. 가장 높은 레벨에 1명(사장을 의미), 두 번째로 높은 레벨에는 5명... 이런 식으로 가장 낮은 레벨에는 81명을 배치했죠. 플루치는 각 구성원에게 역량 수준과 연령이라는 두 개의 속성을 부여하고, 정규분포를 따르도록 무작위로 1에서 10까지의 역량 값을, 18세에서 60세까지의 연령을 지정했습니다. 윗 직급으로 승진시킬 포지션을 만들기 위해 구성원의 역량이 4보다 낮거나 60세를 넘어서면 퇴직시켰습니다. 또한 공석이 발생하면 바로 아랫직급에 있는 구성원들 중에 한 명을 승진시켜서 채우고, 제일 낮은 직급에 공석이 발생하면 새로운 구성원을 채용하기로 정했죠. 

플루치노는 아랫직급의 직원을 윗직급의 공석으로 승진시키는 방식을 세 가지 로직으로 다르게 설정했습니다. '베스트 승진'은 아랫직급에서 가장 높은 역량을 보이는 구성원을 승진시킨다는 것이고, 반대로 '워스트 승진'은 가장 역량 수준이 낮은 구성원을 승진시킨다는 것이었죠. '무작위 승진'은 아랫직급에서의 역량과 관계없이 무작위로 한 사람을 뽑아 올리는 로직이었습니다.

플루치노는 아랫직급의 역량과 윗직급의 역량이 서로 의존적('윗직급의 역량은 아랫직급 역량에서 10% 이내의 변동을 가진다')이라는 '상식적인 가정' 하에서 세 가지 승진 방식을 적용했습니다. 초기의 조직 전체의 역량 수준은 69.68%이었는데, 시뮬레이션을 돌려보니 '베스트 승진'은 9%가 높은 79%로 수렴된 반면, '워스트 승진'은 5%가 떨어져 65%로 수렴되었습니다. 아랫직급에서 일 잘하면 윗직급에서도 일 잘할 거라는 가정 하에서 출발한 시뮬레이션이었기에 이는 당연한 결과라고 볼 수 있습니다. 헌데 아무나 뽑아 올리는 '무작위 승진' 방식도 초기 역량 수준을 2%P 끌어올렸다는 것은 주목할 만한 결과였습니다.

이번엔 피터의 가정 하에서 시뮬레이션을 돌려보기로 했습니다. 즉, 아랫직급의 역량과 윗직급의 역량은 서로 독립적('아랫직급에서 일 잘한다는 것이 윗직급에서의 성공적 수행을 담보하지 못한다')이라는 조건 하에서 세 가지 승진 방식을 적용했습니다. 그랬더니 놀라운 결과가 나왔습니다. '베스트 승진'보다 '워스트 승진'이 조직 전체의 역량 수준을 높이는 데에 훨씬 좋았으니 말입니다. 아이러니하게도 '베스트 승진'은 조직의 역량을 10%P 까먹는 반면, '워스트 승진'은 12%P 향상시켰습니다. 피터의 가정 하에서는 아랫직급에서 제일 역량이 떨어지는 직원을 승진시킬 때 조직 전체의 역량 수준이 높아졌던 겁니다. 아랫직급에서 역량 수준이 가장 높은 직원을 뽑아 올리면 종국에 조직 전체의 역량이 떨어진다는 결과는 참으로 당혹스러웠습니다. 한편  '무작위 승진'은 1%P의 역량 향상 효과를 나타냈습니다.

직급의 역할과 요구역량이 '상식적인 가정'에 들어맞을지 '피터의 가정'에 들어맞을지 모르는 상태라면, 아랫직급에서 일 잘하는 사람을 윗직급으로 뽑아올리는 승진 방식('베스트 승진')이 항상 좋은 전략은 아니라고 결론 내릴 수 있습니다. 피터의 가정이 들어맞을 경우 '베스트 승진'은 오히려 독이 되기 때문입니다. 이럴 때는 차라리 무작위로 뽑아올리는 것이 조직 전체의 역량 수준을 보호하는 안전한 전략임을 플루치노의 시뮬레이션은 시사하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승진심사 없이 공석이 생기면 아무나 뽑아올려서는 안 되겠죠. 절차와 형식도 중요하니까 말입니다. 하지만 최소한 아랫직급에서 기록한 역량평가 결과에 높은 비중을 주어서는 안 되겠죠. 평가센터(Assessment Center) 운영 등을 통해 윗직급에서 얼마나 일을 잘할지 평가하여 승진을 결정하기도 하나, 여전히 아랫직급에서의 역량에 높은 비중을 주는 것이 사실입니다. 역량평가에서 '죽을 쑨' 직원에게는 승진심사 자격 자체가 박탈되거나 기회가 늦게 주어지니까 말입니다. 허나 아랫직급에서 죽을 쒀도 윗직급에서는 일을 훌륭히 수행할지 모릅니다. 반대로 아랫직급에서 뛰어난 역량을 보여도 윗직급에서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일지 모르는 일이죠. 

물론 플루치노의 시뮬레이션은 현실을 단순화한 모델에 근거합니다. 그러나 윗직급에서 요구되는 역량이 무엇인지 정확히 파악하고 그것에 맞는 사람을 제로 베이스에서 뽑아올려야 하지, 아랫직급에서 일 잘한다고 그에게 높은 점수를 주거나 우선순위를 주어서는 안 된다는 점을 우리에게 일깨운다는 측면에서 충분한 의미를 갖습니다. 이것은 피터의 법칙이 강조하는 바이기도 합니다.

여러분의 조직은 피터의 법칙에서 얼마나 자유롭습니까? 만약 자유롭지 못하다면, 아랫직급에서 일 잘하는 사람을 뽑아올리는 일이 결국 조직의 역량을 떨어뜨리는 지름길일 수 있습니다. 그냥 무작위로 승진시키는 게 나을지 모릅니다. 직관에 반하는 일이지만, (현 직급에서) 일 잘하는 직원을 승진시키면 안 됩니다.


(*참고논문)
The Peter Principle Revisited- A Computational Stud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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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평가를 강화하면 직원들이 덜 놀까?   

2012. 5. 2.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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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단 속에서 개인들은 각자 최대한 낼 수 있는 노력을 경감한다는 링겔만 효과에 대하여 이야기했습니다. 100의 능력이 있는데도 집단에 속하면 50이나 60 정도 밖에 기여하지 않는다는 것이죠. 개인의 기여가 구분되어 측정되지 않기에 설령 집단의 성과에 무임승차하더라도 자기 자신이 비난 받지 않을 거라는 심리 때문에 링겔만 효과가 발생합니다.

그렇다면 집단 속에서 개인의 기여가 구분되어 평가되거나 각 개인의 성과가 비교되는 조건이라면 링겔만 효과가 약화되리란 가설을 세울 수 있겠죠. 각자 무엇을 달성해야 하는지 정확하게 일러주고 그 결과를 각자 구분해 평가한다면 집단에 '묻어가려는' 사회적 태만을 줄일 수 있을지 모릅니다. 아마 여러분도 지난 번 글('집단에 속한 당신은 분명 게으르다')에서 이 가설을 떠올렸을 것 같네요.



스테판 하킨스(Stephen G. Harkins)와 제프리 잭슨(Jeffrey M. Jackson)은 이런 가설 하에 실험을 실시했습니다. 그들은 160명의 학생들을 모집하여 어떤 물건의 이름을 제시하고 그것을 어떤 용도로 쓸 수 있을지 가능한 한 많이 생각해 보라는 과제를 부여했습니다. 예를 들어 벽돌이라면 담을 쌓는 데 쓰는 일반적인 용도 이외에 못을 박는다든지, 변기 물통 속에 집어넣어 물을 절약한다든지 등의 용도로 사용할 수 있겠죠. 

하킨스와 잭슨은 두 가지 실험 조건을 설정했습니다. 하나는 용도의 개수를 개인별로 구분하느냐, 아니면 4명으로 이뤄진 팀 단위로 합산하느냐의 여부였습니다. 즉 개인의 기여가 구분되어 측정되느냐, 집단의 성과로 희석되느냐였죠. 나머지 하나의 조건은 팀 멤버들이 모두 동일한 물건의 용도를 생각하느냐, 아니면 각자 다른 물건의 용도를 생각하느냐의 여부였죠. 멤버들이 동일한 과제를 수행하면 서로 누가 더 많은 용도를 생각해냈는지 비교 가능한 반면, 사로 다른 물건의 용도를 고민하면 비교하기가 곤란할 겁니다. 하킨스와 잭슨은 학생들을 4개의 그룹으로 나눠 이 두 가지 실험 조건에 따라 과제를 수행하도록 했습니다.

어떤 조건의 학생들이 가장 성과가 좋았을까요? 여러분도 예상했겠지만, '개인별 측정 - 비교 가능' 팀이 평균 24.9개의 용도를 생각해냄으로써 가장 높은 성과를 보였습니다. 즉 개인별 기여가 측정되고 팀원들이 동일한 과제를 수행할 때 가장 성과가 높았다는 뜻이죠. '개인별 측정 - 비교 불가능' 팀은 19.7개, '집단 측정 - 비교 가능' 팀은 19.8개, '집단 측정 - 비교 불가능' 팀은 19.3개로 성과가 서로 고만고만했습니다. 여기서 주목할 만한 것은 성과가 비록 개인별로 측정된다 하더라도 각자 다른 과제를 부여 받을 때(즉 서로 비교하기 어려울 때)는 개인의 노력이 집단 속으로 뭉뚱그려질 때와 별 차이가 없다는 사실입니다. 집단에 속한 개인의 기여가 정확하게 구분되어 평가되고 동시에 집단의 멤버들이 모두 동일한 과제를 수행할 때 링겔만 효과가 약화된다는 것이죠.

하지만 이 실험의 결과를 기업에 반영할 때 유의할 점이 있습니다. 이 실험에서 설정된 상황과 기업 내의 팀이라는 단위조직의 상황이 그다지 비슷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의 팀으로 묶여 있다 해도 팀원들은 각자 서로 다른 내용의 업무를 담당하기에 성과를 비교하기 어렵고 비교해서도 안 됩니다. 위 실험의 결과를 문자 그대로 해석하여 서로 다른 내용의 성과들을 비교하여 줄을 세우는 상대평가 방식이 직원들의 사회적 태만을 줄인다고 믿어서는 곤란하다는 말입니다. 설령 링겔만 효과가 줄어든다고 해도 상대평가 방식은 직원들이 협력하려는 동기를 소멸시키고 마니까요. 이에 대해선 그동안 다른 포스팅에서 여러 번 언급한 바 있습니다.

이 실험의 결과를 유의해야 하는 또 하나의 이유는 일반 조직에서 팀원들의 성과를 개인 단위로 구분하여 측정하기가 대단히 어렵다는 점입니다. 비록 팀원들이 각자 다른 업무를 수행한다고 해도 어느 한 팀원의 업무가 다른 팀원의 인풋이나 아웃풋이 되고 하나의 업무를 둘 이상의 직원이 협업하여 진행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A의 성과이고 나머지가 B의 성과인지 구분하는 일은 매우 어렵습니다. 이 실험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여 개인별 성과를 정확하게 평가하는 지표를 만들어서 링겔만 효과를 없애겠다고 생각한다면 실패가 자명합니다. 개인별 지표의 강화 역시 직원들의 협력 동기를 크게 약화시키고 맙니다. 

더욱이 이 실험은 '누가 얼마나 많은 개수의 용도를 생각해냈느냐?'와 같이 누구나 인정하는 정량지표로 평가했다는 것에 또한 유의해야 할 점입니다. 직원들의 업무 내용이 정성적이며 그 성과 또한 정성적으로 평가 받을 수밖에 없는 조직에서는 이 실험의 의미를 제한적으로 수용해야 합니다. 업무가 분명 정성적인데 정량적으로 평가해야겠다며 우스꽝스러운 정량지표(예 : 전략 보고서 제출 건수)를 만들어내면 곤란하겠죠.

따라서 이 실험은 콜센터나 영업조직과 같이 구성원들이 모두 동일한 과제를 수행하고 그 결과가 동일한 지표로 정량적으로 측정되어 서로 비교 가능한 조직에서나 의미를 갖습니다. 물론 이런 조직은 이미 사회적 태만을 줄이기 위한 나름의 장치를 가동 중이기에 이 실험이 추가적인 방법을 시사하지는 못할 겁니다. 사실 지난 번의 글('집단에 속한 당신은 분명 게으르다')에서 설명한 실험의 조건도 조직 내의 상황과 다르기 때문에 한번은 걸러서 교훈을 얻어야 합니다. 

오늘 글에서 소개한 실험은 태만과 무임승차를 없애는 데에 개인별 성과 측정이라는 단도직입적인 방법이 과연 통할까, 라는 질문에 '그렇다'라는 대답을 하기가 어렵다는 점을 역설적으로 시사합니다. One-size-fits-all 솔루션은 없습니다. 어쨌든 집단이 어떤 특성을 가지느냐와 상관없이 일정 정도의 사회적 태만과 무임승차자가 존재하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애석하지만, 어느 정도는 떠안고 가야 할 필요악일지 모릅니다.


(*참고논문)
The role of evaluation in eliminating social loaf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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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사가 비만이면 밥 먹고 결재 받아라   

2012. 4. 30. 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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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가 고플 때와 부를 때 내리는 의사결정의 결과가 매우 다르다는 점을 지난 번에 올린 글('밥 먹고 합시다'라고 말해야 하는 이유)에서 언급한 바 있습니다. 가석방 여부를 결정하는 심사관들이 새참을 먹기 바로 직전에는 가석방 승인율이 9~27% 밖에 안 됐지만, 새참을 먹은 후에는 승인율이 52~61%로 크게 상승한다는 연구 결과를 소개하며 객관적 의사결정이 불가능한 신체적인 한계를 이야기했었죠. 

오늘 글에서는 밥을 먹기 전과 먹은 후에 리스크에 대한 수용도가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이야기해볼까 합니다. 배가 고플수록 리스크가 큰 선택을 할까요, 아니면 리스크를 꺼려 할까요? 반대로 배가 부를 땐 어떤 결정을 할까요? 동물 실험에서는 통상적으로 배가 고프면 안전을 추구하는 경향이 있고 배가 부를 땐 리스크가 높은 행위를 더 많이 한다고 하는데, 인간의 경우는 어떨까요?



므카엘 사이몬즈(Mkael Symmonds)와 동료들은 19명의 남학생들을 대상으로 3주에 걸쳐 포만감과 리스크 수용도의 관계를 실험했습니다. 학생들은 네 개씩 한 묶음으로 된 두 개의 복권 세트 중에서 마음에 드는 세트를 선택하는 작업을 해야 했죠. 5가지 상금을 가진 복권(0파운드, 20파운드, 40파운드, 60파운드, 80파운드)을 (60, 60, 40, 40)으로 구성하면 상대적으로 리스크가 적은 세트이고, (80, 20, 80, 20)으로 이뤄진 세트는 상대적으로 리스크가 크지만 수익성이 좋은 선택이겠죠. 학생들은 3주 동안 1주일에 한번씩 연구실에 찾아와 모두 3차례씩(식사 전에, 식사 직후에, 식사하고 1시간 후에) 이 게임을 수행해야 했습니다. 학생들이 느끼는 배고픔과 배부름은 공복감을 자극하는 그렐린(Ghrelin)과 포만감을 나타내는 렙틴(Leptin)이라는 호르몬의 양으로 측정되었습니다.

연구자들은 포만감을 느끼는 정도와 리스크 수용도 사이에 흥미로운 결과를 발견하였습니다. 포만감을 늦게 느끼는 사람(즉 렙틴의 기준치가 높은 사람, 보통 뚱뚱한 사람)의 경우, 식사 전에는 리스크 수용도가 낮았으나 식사 직후에는 리스크 수용도가 높아졌습니다. 반면, 포만감을 빨리 느끼는 사람(보통 마른 사람)은 식사 전에는 리스크 수용도가 높았으나 식사를 하고나서는 리스크 수용도가 낮아졌죠. 식사하고 나서 1시간이 흐른 후에는 어떻게 변할까요? 1시간이 지난 후에 배가 덜 고프다고 느끼는 학생들은 상대적으로 리스크를 회피하려는 경향(리스크가 적은 복권 세트를 선택하는 경향)이 컸습니다. 

이 실험의 결과를 다시 정리하면 이렇습니니다. 비만인 사람은 식사하기 전보다 식사 직후에 좀더 리스크가 큰 의사결정을 내리고, 반대로 다이어트를 하거나 원래 많이 먹지 않는 사람들은 식사 전보다 밥을 먹고난 후에 좀더 리스크를 회피하는 경향이 있음을 시사합니다. 풀어 말하면, 비만인 사람은 식사 후에 관대해지고 마른 사람은 밥을 먹은 후에는 깐깐해진다는 뜻입니다. 신진대사의 균형을 추구하려는 신체의 본능적인 반응이 의사결정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는 것이죠.

여러분이 중요하지만 리스크 부담이 큰 결재를 받아야 할 때 상사가 뚱뚱하다면 식사 후에 결재를 받고, 평소에 별로 많이 먹지 않는 상사라면 식사 전에 결재를 받는 게 유리합니다.(100% 보장은 못하지만...). 또한 주식을 파고 사는 의사결정을 할 때도 여러분 자신의 몸 상태와 공복감을 유의해야겠죠. 어쨌든 이 실험의 결과는 지난 번에 올린 글과 함께 객관적 의사결정에 대한 우리의 믿음이 환상일지 모른다는 또 하나의 증거입니다. 


(*참고논문)
Metabolic State Alters Economic Decision Making under Risk in Huma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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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단에 속한 당신은 분명 게으르다   

2012. 4. 27. 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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링겔만 효과(Ringelmann Effect)란 말을 들어본 적이 있습니까? 이 말은 1913년에 독일의 심리학자 맥시밀리엔 링겔만(Maximilien)이 수행한 유명한 실험에서 유래되었습니다. 링겡말은 참가자들에게 줄다리기를 하도록 지시했는데, 그 줄에는 참가자들 각자 얼마나 세게 줄을 당기는지 측정할 수 있는 장치가 달려있어서 집단 전체가 줄을 당길 때의 힘과 개인이 혼자 줄을 당길 때의 힘을 비교할 수 있었습니다. 

여럿이 줄을 당기면 당연히 혼자 당길 때보다 힘이 커지지만, 놀랍게도 집단에 한 명의 참가자가 추가된다고 해서 비례적으로 집단의 힘이 커지지 않는다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집단이 3명이면 2.5명분의 힘이, 8명이면 고작 4명분의 힘이 측정되었으니까 말입니다. 이렇게 집단의 산출하는 결과는 개인들의 노력을 모두 합한 것보다 작다는 것이 링겔만 효과입니다. 다시 말해, 개인이 집단에 속해 있을 때는 자신의 힘을 최대로 내지 않는다는 것이죠.



오하이오 주립대의 빕 라테인(Bibb Latane), 키플링 윌리엄스(Kipling Williamns), 스테판 하킨스(Stephen Harkins)는 링겔만 효과를 다시 한번 검증하는 실험을 수행했습니다. 그들은 참가자들에게 혼자서 '손뼉 치기'나 '소리 지르기'를 하도록 하고, 그룹을 이루어 같이 하도록 요청한 다음 소리의 크기를 각각 측정했습니다. 참가자들에게 가능한 한 큰 소리를 내라고 주의를 주었지만, 역시 링겔만 효과가 나타났습니다. 참가자들은 혼자서 소리를 낼 때는 평균 3.7(dynes/sq cm)의 값을 기록했으나, 4명이 한 그룹이 되면 1인당 평균 1.8 밖에 소리를 내지 않았습니다. 혼자일 때에 비해 50% 밖에 힘을 쓰지 않은 셈이었죠. 그룹이 6명일 때는 1인당 평균 1.5로 떨어졌습니다.

연구자들은 여럿이서 함께 소리를 내면 소리의 간섭과 상쇄효과가 발생하기 때문에 그룹의 결과가 개인의 결과보다 저조하게 나타난 것은 아닌가 의심했습니다. 이를 확인하기 위해 라테인 등은 참가자들에게 헤드폰을 쓰게 하고 동일한 실험을 실시했습니다. 참가자들은 각자 격리되었지만 같이 소리를 내는 것이라 확신한 상태로 실험에 임했죠. 참가자들은 그룹을 이룰 때 첫 번째 실험 때보다 소리를 더 크게 내긴 했지만 링겔만 효과는 여지없이 나타났습니다. 둘을 짝 지을 때는 혼자일 때의 82% 정도의 크기로 소리를 질렀고, 6명이 한 그룹일 때는 74% 정도로 소리를 냈습니다.

두 실험의 결과가 검증해낸 링겔만 효과는 혼자서 일할 때보다는 동료가 옆에 있음을 느낄 때 책임감을 느끼고 성과가 더 향상된다는, 심리학자 로버트 자종크(Robert B. Zajonc)의 '사회적 촉진 효과(Social Facilitation Effect)와 배치됩니다. 혼자 골방에 앉아 공부를 할 때보다는 도서관에서 공부할 때 더 잘 되는 것(물론 반대인 사람도 있지만)이 대표적인 사회적 촉진 효과의 예입니다. 지난 번에 올린 바 있는 '백지장도 맞들면 나은 진짜 이유'도 일종의 사회적 촉진 효과에 대한 것입니다. 

하지만 사회적 촉진 효과는 개인의 성과가 집단 속으로 희석되지 않을 때 발생합니다. 위의 실험처럼 개인이 집단 속에 묻혀 자신의 노력을 정확하게 측정 받기 어려운 상황에 처하거나 자신의 게으름이 들키지 않을 거라는 안전감이 들면 혼자일 때 발휘하던 노력을 감(減)하려는 무의식적인 심리가 작동합니다. 연구자들은 이런 현상에 '사회적 태만(Social Loafing)'이라는 새로운 용어를 붙였습니다. 사회적 태만 현상은 개인들을 모아 집단을 이루게 할 때 필연적으로 무임승차자가 발생할 뿐만 아니라, 개인들도 일정한 양의 노력을 덜어내려고 하여 오히려 성과가 예전보다 떨어질 가능성이 있음을 일깨웁니다. 

어떤 일을 개인이 혼자서 수행할 수 없다면 사회적 촉진 효과를 최대화하고 사회적 태만 효과를 최소화하는 선에서 집단의 크기를 정해야 한다는 것이 이 실험이 조직 운영에 주는 시사점입니다. 집단이 커도 곤란하고 작아도 곤란합니다. 정답은 없습니다. 집단이 어떤 종류의 일을 수행하느냐, 기업이 어떤 산업에 속해 있느냐에 따라 집단의 적정 규모는 달라지기 때문입니다(그렇다고 아무런 가이드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생각없이 팀을 설계하지 마세요'란 글을 참조하세요). 무엇보다 사회적 태만 효과와 무임승차자의 발생은 어쩔 수 없는 자연스러운 현상이기에 완전히 '박멸'하자는 시도는 조직이 달성해야 할 목표의 본질을 훼손할 수 있으니 조심해야 합니다('무임승차자를 없애려 하지 말라' 참조).

여러분은 모두 조직 내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맞는 말입니다. 그러나 혼자서 100을 할 수 있는데 70 밖에 노력을 기울이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여러분이 게으르거나 약삭빠르거나 비윤리적이라기보다는 '집단은 개인보다 게으르다'는 인간의 심리 때문입니다. 개인과 조직 모두 70의 성과를 80이나 90정도로 끌어 올리려는 의식적인 노력(제도 개선, 구조 개편, 프로세스 변경 등)이 기울여야 하겠습니다. 그렇다고 개인들 모두 100의 성과를 내야 한다는 과욕은 금물입니다.


(*참고논문)
Many hands make light the work: The causes and consequences of social loaf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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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는 것은 독(毒)이다   

2012. 4. 26.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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샐리라는 아이가 사탕을 상자 안에 넣은 다음 방에서 나갑니다. 샐리가 없는 동안 누군가가 들어와 상자에서 사탕을 꺼내 바구니로 옮겨 놓은 후 사라집니다. 샐리가 돌아오면 상자와 바구니 중 어디에서 사탕을 찾으려 할까요? 당연히 상자를 먼저 들여다 볼 겁니다. 하지만 4살 미만의 아이들에게 이런 광경을 보여주면 샐리가 바구니에서 사탕을 찾으려 할 것이라고 대답합니다. 자기가 아는 것(누군가가 사탕을 옮겨 놓았다는 것)을 샐리도 알고 있으리라 여기기 때문입니다. 타인의 입장이 되어 생각할 줄 모른다는 것이죠.

헌데 이런 현상이 비단 미성숙한 아이들에게만 나타나는 것이라고 우습게 넘어갈 일이 아닙니다. 성인들도 자기가 아는 정보로 인해 객관적인 판단을 하지 못하는 '지식의 저주'에 빠지는 경우가 상당히 많기 때문입니다. 브리티시 콜럼비아 대학의 수잔 비르히(Susan A.J. Birch)와 예일 대학의 폴 블룸(Paul Bloom)은 155명의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실험을 통해 지식의 저주를 경고합니다.



비르히와 블룸은 참가자들에게 짧은 상황을 전달했습니다. "방 안에는 파란색, 빨간색, 보라색, 녹색의 상자가 있다. 바이올린 연습을 끝낸 '비키'라는 여자아이가 바이올린을 파란색 상자에 넣은 후에 밖으로 놀러 나갔다. 비키가 없는 사이에 동생인 데니스가 들어와서 바이올린을 다른 상자로 옮겼다. 그런 다음, 모든 상자의 위치를 바꿔 놓았다. 비키가 방으로 돌아와 어느 상자에서 바이올린을 찾을 것 같은지 각 확률을 써보라." 데니스가 상자의 위치를 바꾸기 전의 모습과 바꾼 후의 모습은 다음과 같습니다.


(출처 : 아래 링크의 논문)



(출처 : 아래 링크의 논문)



참가자들은 세 그룹으로 나뉘었는데, 1그룹은 위와 동일한 설명을 들었고, 2그룹은 '데니스가 바이올린을 '빨간색' 상자로 옮겼다는 설명을, 3그룹은 '데니스가 바이올린을 '보라색' 상자에 옮겼다는 설명을 전달 받았습니다. 1그룹에겐 데니스가 바이올린을 어느 상자로 옮겼는지 가르쳐 주지 않았지만, 2그룹과 3그룹에게 비키가 모르는 정보를 알려준 것입니다. 참가자들은 모두 데니스가 네 상자의 위치를 뒤섞을 때 원래 파란색 상자가 있던 자리에 빨간색 상자를 놓았다는 점을 알았지만, 그 의미는 2그룹에게 특별하게 느껴졌을 겁니다. 왜냐하면 2그룹은 데니스가 빨간색 상자로 바이올린을 옮겼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죠. 반면, 3그룹은 파란색 상자의 원래 위치와 보라색 상자의 새 위치 사이에 전혀 관련이 없었기에 2그룹과 같은 의미를 느낄 수 없었을 겁니다.

참가자들이 적어낸 확률을 평균해 보니, 데니스가 바이올린을 어디로 옮겼는지 듣지 못한 1그룹(일종의 대조군)은 비키가 파란색 상자를 제일 먼저 확인할 확률을 71%, 빨간색 상자를 가장 먼저 확인할 확률을 23%로 보았습니다. 3그룹의 학생들도 이와 비슷한 확률을 제시했습니다(파란색 상자 73%, 빨간색 상자 19%). 하지만 2그룹의 학생들은 다른 그룹과 확연한 차이를 나타냈습니다. 그들은 비키가 파란색 상자를 먼저 확인할 확률을 59%, 빨간색 상자를 먼저 꺼내볼 확률을 34%로 보았습니다.

1그룹과 비교하면 2그룹의 판단이 편향되었음이 금세 드러납니다. 비키는 분명 파란색 상자에 바이올린을 넣고 밖에 나갔기에 그 상자의 색깔을 기억할 겁니다. 물론 기억 못할 수도 있어서 파란색 상자가 원래 있던 위치에 놓여진 빨간색 상자를 제일 먼저 확인할지도 모릅니다. 1그룹은 비키가 이렇게 상자 색깔을 기억 못할 확률을 23%으로 본 반면, 2그룹은 34%으로 판단했습니다. 이는 바이올린이 실제로 들어있는 상자가 빨간색 상자임을 안다는 것이 2그룹 학생들의 판단을 흐리게 만들었다는 의미입니다. 2그룹의 학생들은 상황을 알지 못하는 비키의 입장이 되어 1그룹과 비슷한 확률을 추정해야 했지만, 자신이 알고 있는 사실에 영향을 받아 확률을 부풀려 생각한 것이죠. 그야말로 '지식의 저주'가 단적으로 나타나 버렸습니다.

우리는 조직 내외부적으로 상황이 매우 모호하게 흘러갈 때 상황을 설명해주는 지식이 주어지면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있으리라 기대하곤 하지만, 그 지식으로 인해 실제 수준보다 가능성을 더 크게 혹은 더 작게 판단할 위험이 상존하고 있습니다. 위의 간단한 실험이 이를 일깨워 줍니다. 여기에 본인이 보고싶어 하는 것만 근거로 채택하려는 확증편향까지 더해지면 지식의 저주는 우리의 눈에 안대를 씌우고 판단 실패라는 절벽으로 우리를 안내하는 길잡이가 됩니다.

판단은 항상 어떤 요인에 의해 편향될 수도 있음을 인정하는 것이 의사결정자의 바람직한 태도입니다. '아는 것이 힘'이기 이전에 '아는 것이 독'이 될 수도 있음을 의사결정을 할 때마다 항상 염두에 두어야겠습니다.


(*참고논문)
The Curse of Knowledge in Reasoning About False Belief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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