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처럼 딱딱하게 냉동된 감자를 벽에 던지면 당연히 여러 가지의 크기로 깨집니다. 어떤 것은 포도알만 하고 또 어떤 것은 쌀알 만하겠죠. 냉동 감자 수천 개를 벽에 던진 후에 깨진 감자 조각들을 크기가 큰 것부터 작은 것 순으로 나열해보고 그래프를 그린다면 어떤 패턴이 나타날까요? 아마 여러분은 중간 정도 크기의 조각이 가장 많고 양쪽으로 갈수록 개수가 줄어드는 종(bell) 모양의 정규분포 곡선을 머리 속에 그릴 겁니다.
하지만 깨진 감자들은 정규분포를 그리지 않음을 덴마크의 과학자들이 발견했습니다. 그들은 실제로 냉동감자를 깨뜨리는 실험을 한 결과, 조각의 무게가 반으로 줄 때마다 개수가 6배씩 늘어나는 패턴을 발견했습니다. 이를 그래프로 그려보면 오른쪽으로 갈수록 아래로 뚝 떨어지는 '둥근 L자' 모양이 됩니다. 무게가 큰 덩어리는 얼마 안 되는데 반해, 무게가 그보다 작은 덩어리들은 '긴 꼬리'를 형성하는 패턴이죠. 아래의 그림에서 음영이 칠해진 그래프처럼 오른쪽으로 갈수록 뚝 떨어지듯이 급감하는 모양을 갖는 분포를 ‘멱함수(power law) 분포’라고 부릅니다. 정규분포(실선으로 그려진 그래프)와 비교해 보면 그 차이가 상당히 크다는 점을 알 수 있습니다.
(*출처 : 하단에 명기한 논문)
정규분포를 따를 것 같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는 아주 많습니다. 지진의 경우에도 에너지 방출이 두 배로 되면 빈도가 네 배로 줄어드는 멱함수 패턴을 따릅니다. 산불의 경우에는 피해 면적이 두 배가 되면 그런 산불은 2.48배로 드물어진다고 합니다. 상위고객 20%가 매출의 80%를 기여하고, 20%의 제품이 이익의 80%를 올리는 등 우리가 보통 80대 20법칙으로 알고 있는 것도 사실은 멱함수의 일종입니다. 면적을 기준으로 미국에서 가장 큰 도시부터 순서대로 2,400곳을 나열해보면 어떤 분포가 나올까요? 1997년에 실시한 연구에 따르면 특정 크기의 도시의 수는 면적의 제곱에 반비례하는 멱함수 분포를 띱니다. 풀어서 말하면, 어떤 도시보다 면적이 절반인 도시는 4곳이 있고, 그보다 2배인 도시의 수는 4분의 1이라는 의미입니다.
그렇다면, 직원들의 성과 분포는 어떨까요? 역량이든 업적이든 평가가 끝나면 인사팀은 평가 서열을 결정하고 등급별로 직원들을 배분하는 작업을 합니다. 등급은 보통 5개로 나뉘는데, 가장 높은 등급인 S등급에 10퍼센트, A등급에 20퍼센트, 중간 등급인 B등급에는 40퍼센트, C등급에는 20퍼센트, 가장 낮은 등급인 D등급에는 10퍼센트의 직원들을 강제로 할당하곤 합니다. 이 등급을 기준으로 기본급 인상률과 성과급 지급액이 결정되고, 승진에 필요한 점수가 누적되죠. 이렇게 좌우 대칭의 분포로 평가 등급을 결정하는 이유는 직원들의 역량과 업적의 분포가 정규분포를 따른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거의 모든 기업의 인사 담당자들(경영자들도 마찬가지)은 신장(키)의 분포처럼 직원의 성과도 평균과 표준편차가 명확한 종(鍾) 모양의 곡선을 그릴 거라 여깁니다. 실제의 성과 분포가 정규분포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의심을 아무도 하지 않죠.
직원들의 성과는 정말 정규분포를 따를까요? S등급부터 D등급까지 직원들을 강제 할당하는 상대평가 방식이 정말 실제를 옳게 반영하는 걸까요? 어니스트 오보일 주니어(Ernest O'Boyle Jr.)와 허먼 아귀니스(Herman Aguinis)는 정규분포에 대한 사람들의 맹목적인 믿음이 과연 옳은지를 검증하기 위해 5가지 분야에서 총 633,263명을 대상으로 연구를 수행한 결과, 5가지 분야에서 모두 정규분포적 관점이 현실을 올바로 반영하지 못한다고 결론 내렸습니다.
오보일과 아귀니스는 연구자, 연예인, 정치인, 아마추어 및 프로 운동선수의 실제 성과 분포는 정규분포가 아니라 멱함수 분포에 가깝다는 사실을 규명했습니다. 먼저 오보일과 아귀니스는 54개의 세부 연구 영역에서 연구자들이 2000년 1월부터 2009년 6월 사이에 얼마나 많은 논문을 상위 5개 학술 잡지에 게재했는지 분석했습니다. 총 490,185명의 데이터가 수집됐는데, 54개 세부 영역들 모두 정규분포보다는 멱함수 분포에 가깝다는 사실이 발견되었습니다. 아래의 그래프가 보여주듯, 9년 동안 1편의 논문을 게재한 연구자들이 거의 대부분이고 그보다 더 많은 수의 논문을 펴낸 연구자들은 오른쪽으로 갈수록 급감하는 모양을 띠었습니다. 좌우 대칭의 종 모양을 갖는 정규분포와는 완전히 딴판이었죠.
(*출처 : 하단에 명기한 논문)
연예계에 종사하는 17,750명을 대상으로 한 분석에서도 마찬가지 패턴이 발견되었습니다. 에미상, 그래미상, 골든글로브상 등 42개의 시상에서 상을 받았거나 후보에 오른 사람들의 분포를 그려보니 역시 오른쪽으로 갈수록(상을 받거나 후보에 오른 회수가 증가할수록) 해당자가 급감하는 멱함수 패턴이 나타났습니다. 정치인들의 재임기간을 분석해도, 운동선수들의 성적과 범실(error) 분포를 따져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실제 데이터를 분석한 오보일과 아귀니스의 연구는 비록 실제 기업의 직원 성과를 직접적으로 분석하지는 않았지만, 직원들의 성과 분포도 멱함수 분포에 가까울 가능성이 높다는 점을 강하게 시사합니다. 직원들의 성과 분포를 정규분포라 간주하고 S등급부터 D등급까지 강제 할당하는 관행이 얼마나 잘못된 가정에 기반하고 있는지를 보여주죠.
정규분포는 표본을 이루는 개별 사건들이 독립적이고 서로 동일할 경우에 성립됩니다. 특정 학교 학생들의 신장(키) 분포가 정규분포를 따르는 이유는 신장에 관한 한 학생들이 서로 상호작용을 하지 않을뿐더러 학생 한 명이 표본에 추가될 때 분포에 미치는 영향력은 학생들 모두 동일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개별 사건들이 상호작용을 벌이는 네트워크의 일부이고 특정 사건의 영향력이 다른 것보다 월등할 수 있는 상황이라면 정규분포는 현실을 올바로 표현하지 못합니다.
조직 내의 직원들은 독립적인 존재가 아니라 서로 유기적으로 협력하고 정보를 주고 받는다고 우리는 모두 동의합니다. 따라서, 직원들의 성과가 정규분포를 따르리라는 가정은 정규분포의 형성 조건에 비춰 봐도 상당히 잘못된 믿음임을 알 수 있죠. 직원의 성과가 멱함수 분포에 가깝기 때문에 대부분의 직원들의 성과는 거의 비슷한 수준이고 특출 난 성과를 보이는 직원은 극소수라고 봐야 합니다. 그러므로 5개 등급으로 나눠 기본급과 성과급을 차등 적용하는 관행은 '성과에 따른 보상(Pay for Performance)'이라는 성과주의의 철학에 오히려 반하는 조치입니다. 성과주의 제도를 올바로 운영하려 한다면, 대부분의 직원들에게는 거의 비슷한 수준으로 보상하고, 누구나 공히 인정하는 특출한 직원이 있다면 그에게 모든 구성원들의 합의와 동의 하에 추가로 보상하는 것이 옳습니다.
신입사원을 채용할 때 역량이 떨어지는 사람부터 역량이 뛰어난 자까지 정규분포에 들어맞게 사람을 뽑는 기업은 없을 겁니다. 여러분 조직의 채용 능력이 형편 없는 수준이 아니라면, 대개 역량이 중간 이상은 되는 직원들을 뽑을 겁니다. 사람의 역량이 쉽게 변하지 않는 속성의 것이라면(사실 한 사람의 역량은 교육 등을 통해서 쉽게 바뀌지 않습니다), 직원들의 역량 분포가 회사에 들어오자마자 갑자기 정규분포를 띤다고 보기엔 무리가 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러므로 역량 분포를 정규분포에 맞게 재단해서 그에 따라 보상하겠다는 발상은 정말로 모순인 셈이죠.
직원들을 정규분포에 근거한 상대평가를 통해 강제 할당하는 조치는 대단히 잘못된 가정을 품고 있습니다. 행정적 편의를 위해 상대평가를 유지하면서 현실을 왜곡하고 불필요한 오해와 불만을 야기하는 우를 더 이상 범하지 말기 바랍니다. 직원들을 상대평가하지 마십시오.
(*추신 : 이 글은 '승자독식의 구조'가 옳다고 주장하는 게 아님을 말씀 드립니다. 직원들의 성과 분포가 적어도 정규분포는 아님을 말하는 글입니다.)
(*참고논문)
THE BEST AND THE REST- REVISITING THE NORM OF NORMALITY OF INDIVIDUAL PERFORMANC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