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사가 나보다 나에 대해 더 잘 알까?   

2012. 10. 11.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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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은 자기 자신일까요, 아니면 다른 사람일까요? 우리는 자기 자신을 항상 관찰하고 느끼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보다 자기 자신을 더 잘 안다고 믿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이 나에게 무언가를 지적하면 그 내용이 맞건 틀리건 간에 일단 '당신이 나에 대해 뭘 안다고?'라는 감정이 일어나곤 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내가 모르는 것을 다른 사람이 정확하게 지적하고 있다는 사실에 또한 놀라기도 합니다. 그래서 때로는 나 자신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이 바로 나인지 아니면 다른 사람인지 명확하게 분간이 되질 않습니다. 


사이민 바지르(Simine Vazire)는 나 자신의 여러 가지 특성 중에 내가 잘 아는 부분이 따로 있고 다른 사람이 잘 아는 부분이 따로 있을 거라는 가설을 세우고 실험을 진행했습니다. 그는 165명의 학생들을 모은 다음 서로 잘 아는 친구끼리 5명씩 그룹을 이루도록 했습니다. 그런 다음 자기 자신을 포함해서 멤버들의 성격 특성들을 평가하게 했습니다. 이 과정이 끝나고 바지르는 이번에는 서로 모르는 사람끼리 그룹을 이루도록 한 다음에 역시 다른 멤버의 성격 특성을 평가하도록 요청했습니다. 평가 전에 10분 동안 각자 대화할 시간을 줌으로써 성격 특성을 파악하도록 했죠. 





이렇게 자기 자신, 친구, 모르는 사람이 각각 평가한 결과의 정확도를 계산해 보니 흥미로운 사실이 발견되었습니다. 먼저 신경증적 성질(neurotism)과 같이 알아차리기 어렵고 측정하기도 어려운 특성들은 자기 자신이 가장 정확하게 평가했습니다. 반면, 알아차리기는 어렵더라도 측정하기 쉬운 특성(예 : 지적능력(intellect))들은 친구가 가장 정확한 평가를 내렸습니다. 그리고 외향성(Extraversion)과 같이 겉으로 드러나서 알아차리기는 쉽지만 측정하기는 어려운 특성들에 대해서는 정확도가 모두 비슷했습니다. 이것으로 나 자신에 대해 내가 잘 아는 부분과 친한 사람이 잘 아는 부분이 같지 않다는 점이 분명해졌습니다.


이 실험 결과는 평가 결과에 대해 평가자와 피평가자 간에 시각 차이가 존재함을 시사합니다. 피평가자가 실제보다 높게 평가하는 특성에 대해 평가자는 다른 판단을 내릴 수 있다는 점, 평가자의 입장에서는 피평가자의 실제 특성을 정확히 평가할 수도 있다는 점을 이 실험이 보여줍니다. 요약하면, 창의력과 지능 등의 지적능력은 평가자가, 자존감과 불안감 같은 신경증적 성질은 피평가자 자신이 잘 평가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달변, 지배력, 리더십과 같은 외향성은 피평가와 평가자가 공히 잘 평가하는 특성입니다. 


이런 차이를 숙지한다면 상대방에 대해 알기 어려운 특성을 내가 잘 안다고 믿거나, 상대방이 나보다 더 잘 아는 나의 특성을 지적할 때 거부감이 드는 경우를 경계해야 할 겁니다. 나에 대해 상대방이 잘 아는 특성이 따로 있고 내가 잘 아는 특성이 따로 있음을 평가자와 피평가자가 유념해야만 엉뚱한 피드백이 오고 가는 일이 적어지고 평가에 대한 불만도 줄어들지 않을까요? 상사가 나보다 나에 대해 더 잘 알까요? 이 질문에 대한 답은 '더 잘 아는 부분도 있고 더 모르는 부분이 있다.'입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합니까?



(*참고논문)

Simine Vazire(2010), Who Knows What About a Person? The Self–Other Knowledge Asymmetry(SOKA) Model, Journal of 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 Vol. 9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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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전쟁에서 배우는 성과관리의 교훈   

2012. 10. 8. 1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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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의 목적은 무엇일까요? 당연히 '이기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전쟁에 참여한 병사들의 목적은 무엇일까요? 충성을 다하는 것? 아니면 '군인의 명예를 유지하는 것? 아닙니다. 병사들의 가장 큰 목적은 무엇보다 '살아서 돌아가는 것'입니다. '이기면 살아서 돌아갈 수 있다'는 믿음을 주지 못하면 그 전쟁은 패배합니다. 베트남 전쟁 패배의 근본적 원인은 전쟁의 목적과 병사들의 목적이 일치하지 않은 데에 있었습니다.1) 


베트남 전쟁의 목적은 물론 '이기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병사들의 목적도 역시 '살아서 돌아가는 것'이었죠. 하지만 베트남 전쟁은 '이기면 살아서 돌아갈 수 있다'는 믿음을 주지 못했습니다. 어쩔 수 없이 징집된 병사들은 '내 임무가 끝나야 살아서 돌아갈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런 이유로 어이없게도 막사에 수류탄을 까 넣거나  등 뒤에서 총을 쏴 상관을 살해하는 일(fragging, 프래깅)이 빈번했습니다. 1000여 명의 장교와 하사관들이 프래깅으로 죽었다고 합니다.2) 결국 베트남 전쟁은 철저히 패배하고 말았죠.





기업의 목적은 무엇일까요? 이윤 추구, 아니면 사회적 기여? 유일한 답은 없습니다. 기업의 목적은 기업마다 다르고 또 달라야 합니다. 직원들의 목적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조직 내에서 인간으로서 '존중 받는 것'입니다. 돈으로 존중 받든 일로 존중 받든 인간은 신뢰와 배려를 갈구하는 동물이니까요. 만일 고귀한 것이든 속물적인 것이든 간에 기업이 자신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그 과정에서 직원들을 존중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까요? 직원들이 그들의 상사를 어떻게 대할 것 같습니까? 프래깅이 전쟁에만 있으리란 법은 없습니다. 이런 기업은 자기네 목적을 달성하지도 못할 뿐만 아니라 끝내 망하고 말 것입니다.


조직의 목적의 개인의 목적이 일치하기는커녕 서로 다른 곳을 가리키고 있을 때 실패는 자명합니다. 성과관리의 목적은 무엇일까요? KPI를 어떻게 하면 객관적으로 도출하느냐가 아니라, 조직의 목적과 개인의 목적을 일치시키는 일이 성과관리의 유일한 목적이자 목표여야 합니다.



(*참고 문헌)

1) Steven Kerr(1975), On the Folly of Rewarding A, While Hoping for B., Academy of Management Journal, Vol.18(4)

2) 조너선 닐, <두 개의 미국>, 문현아 역, 책갈피,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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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펙 떨어지는 자를 채용하는 게 낫다   

2012. 10. 5. 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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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와 B, 이렇게 2명의 지원자 중에 한 명을 채용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가정해 보겠습니다. A는 누가 봐도 스펙과 경력이 뛰어난 반면, B는 그보다 못하다는 것이 분명해 보입니다. 둘 중 누구를 뽑아야 할까요? 상식적으로 볼 때 당연히 A를 뽑는 게 유리하겠죠? 하지만 이런 상식적 결정이 잘못될 수도 있다는 연구 결과가 있습니다. 막스 플랑크 경제연구소의 나탈리아 몬티나리(Matalia Montinari)와 동료들은 학력, 경력, 자격 등이 썩 좋지는 않은 평범한 지원자(less qualified)를 뽑아야 유리하다는, 논란을 일으키기에 충분한 실험 결과를 내놓았습니다. 


몬티나리가 어떤 실험으로 이와 같이 직관에 반하는 결론을 내렸는지 살펴볼까요? 몬티나리는 총 630명의 실험 참가자를 모집하여 3명씩 그룹을 이루도록 하고 각자 격리된 컴퓨터 모니터 앞에 앉도록 했습니다. 그런 다음 각자에게 고용주, 지원자 A, 지원자 B의 역할을 무작위로 부여했죠. 이때 지원자 B는 능력이나 스펙이 평범한 사람으로 인식시켰습니다. 참가자들이 수행한 과제는 고정 임금 조건으로 채용된 이후 지원자가 회사의 생산성을 위해 얼마만큼의 노력을 쏟을 것인지를 결정하는 일종의 게임이었습니다.




몬티나리는 크게 2가지의 실험 조건을 설정했는데, 하나는 고용주가 A와 B 중에 한 사람을 채용하기로 결정한 후에 자유로운 형식으로 합격자에게 메시지를 보낼 수 있는 조건('소통 조건')이었습니다. 메시지의 내용에는 제한을 두지 않았습니다. 나머지 조건은 합격자에게 합격됐다는 알림 이외에 아무런 메시지를 전달하지 못하게 하는 조건('불통 조건')이었죠. 각 그룹은 무작위로 이 2가지 조건으로 배정됐습니다(사실 다른 조건 2가지가 더 있는데 여기서는 생략).


실험으로 얻은 첫 번째 결과는 제법 많은 고용주들이 평범한 지원자인 B를 합격시켰다는 것입니다. '소통 조건'에서 29.3%, '불통 조건'에서 36.2%의 고용주가 지원자 B를 선택했습니다. 거의 모든 고용주들이 스펙이 우수한(high qualified) 지원자를 선택할 거라는 예상이 빗나간 것입니다. 두 번째 결과는 고용주가 누구를 선택했든 상관없이 '소통 조건'에서 선발된 지원자들이 '불통 조건'에서 선발된 지원자들에 비해 평균적으로 더 많은 노력을 쏟기로 결정했다는 것입니다. 이는 지원자 본인이 '왜 선발됐는지'를 분명히 인식시키는 게 중요하다는, 우리의 상식을 확인시켜 주는 결과입니다. 


세 번째 결과는 가장 충격적이었고 이 연구의 핵심이었습니다. '소통 조건'에서 선발된 평범한 지원자들은 스펙이 뛰어난 지원자들에 비해 50퍼센트나 더 많은 노력을 기울이기로 결정했습니다. 게다가 이 조건에서 고용주가 얻는 이익은 평범한 지원자를 뽑을 경우가 뛰어난 지원자를 뽑을 경우보다 40퍼센트나 많았습니다. 반면, '불통 조건'에서는 지원자들이 내놓는 노력의 차이와 고용주가 얻는 이득의 차이는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몬티나리는 이런 결과를 '유도된 상호성(Induced Reciprocity)'란 말로 정리합니다. 선발되기에 조금 모자란 능력과 스펙을 지닌 자들이 스스로 능력과 스펙이 뛰어나다고 느끼는 자들보다 더 열심히 일함으로써 고용주의 채용에 보답한다는 뜻입니다. '불통 조건'에서는 이런 효과가 나타나지 않은 것으로 보아 이는 평범한 지원자에게 '능력과 스펙이 그리 뛰어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당신을 뽑았다.'란 메시지를 어떤 식으로든 전달할 때 지원자가 그에 대한 보답으로 더 많은 노력을 기울이게 되고 그에 따라 고용주가 얻는 이득도 높아짐을 뜻합니다. 일종의 부채감이 더 열심히 일하도록 만드는 동력이 된다는 것이죠.


몬티나리도 밝혔듯이 이 연구는 몇 가지 약점이 있습니다. 장기적인 효과는 다루지 않았다는 점, 2명의 지원자 중 한 명을 뽑는 가장 단순한 상황을 가정했다는 점, 임금을 고정으로 설정했다는 점, 평범한 지원자의 보답이 더 열심히 일하는 모습으로 나타날지 의심스럽다는 점이 그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연구는 적어도 스펙이 떨어지는 직원을 뽑는다고 해서 손해는 아니라는 점은 분명히 시사합니다. 고용주가 적절하게 의사소통하면 스펙이 떨어지는 직원들을 통해 더 높은 성과를 달성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줍니다. '난 자격이 충분해'라고 스스로를 평가하는 고(高) 스펙의 직원들은 그런 스펙을 얻기까지 소요된 비용이 상대적으로 크기 때문에 자신의 노력을 덜 기여하려는 동기를 갖습니다. 그래서 잘난 직원들로 조직을 채워도 드림팀이 되지 못하는 것입니다(예전 글 '잘난 직원들을 모으면 드림팀이 될까' 참조). 몬티나리 실험에서 평범한 지원자를 선택한 고용주들은 이런 점을 알았던 모양입니다.


스펙은 회사에서의 노력을 보장하지 못합니다. 높은 성과는 더더욱 담보하지 못합니다. 지금 이순간도 스펙 쌓기에 열중하는 수많은 예비지원자들, 그리고 이왕이면 스펙이 뛰어난 자를 뽑으면 회사에 좋지 않겠냐며 단순하게 생각하는 경영자와 인사 담당자들에게 몬티나리의 연구가 따끔한 일침이길 바랍니다.



(*참고논문)

Natalia Montinari, Antonio Nicolò, Regine Oexl(2012), Mediocrity and Induced Reciprocity, Jena Economic Research Papers 2012-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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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등보상이 성과를 높이지 못하는 이유   

2012. 10. 4.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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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마르시아노(Paul L. Marciano)의 'Carrots and Sticks Don't Work'을 읽다가 고개를 끄떡이게 만드는 부분을 읽었습니다. 바로 차등보상(Reward Program)이 오히려 직원들의 동기를 전반적으로 떨어뜨린다는 이야기였습니다. 마르시아노는 직원들을 탑퍼포머(우수성과자), 저성과자, 중간성과자(탑퍼포머와 저성과자 사이의 직원)으로 구분한 후에 각각에게 차등보상이 효과가 없거나 부정적인 영향을 끼친다는 점을 지적합니다.


마르시아노의 논리가 수긍할 만한지 판단해 보기 바랍니다.





차등보상이 성과를 높이지 못하는 이유 1 


[질문] 어떤 직원들이 차등보상 프로그램에 의해 '인정'받는가?

[답변] 탑퍼포머(우수성과자)들이다.

[이유] 그렇다면, 이미 동기가 충만하고 성과가 높은 직원들이 보상 프로그램에 의해 혜택 받고 인정 받는다는 뜻이다. 그런 직원들이 얼마나 '더' 동기가 충만해지고 얼마나 성과를 '더' 높일 수 있을까? 탑퍼포머들은 이미 98점을 받은 학생에 비유할 수 있다. 성과를 더 높일 만한 여지가 없다.

[결론] 따라서, 차등보상은 탑퍼포머의 성과를 높이지 못한다.



차등보상이 성과를 높이지 못하는 이유 2 


[질문] 저성과자에게 차등보상 프로그램은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답변] 영향을 미치지 않거나,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이유] 탑퍼포머들만 인정 받을 뿐 저성과자들은 제외된다. 저성과자들의 입장에서 차등보상 프로그램은 자신들이 얼마나 인정 받지 못하고 있는지, 얼마나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고 있는지를 확인시켜 줄 뿐이다. 저성과자들의 동기는 더 떨어질 뿐이다.

[결론] 따라서, 차등보상은 저성과자의 성과를 높이지 못한다.



차등보상이 성과를 높이지 못하는 이유 3 


[질문] 중간성과자들에게 차등보상 프로그램은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답변]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이유] 차등보상 프로그램이 실시되는 동안에는 중간성과자들 중 많은 이들이 '당근'을 받기 위해서 자발적으로 노력한다. 하지만 당근의 대부분은 탑퍼포머들에게 돌아간다. 심리학적으로, 당근을 못 받은 중간성과자들은 '왜 받지도 못할 당근을 위해 애를 써야 하지?'라고 생각하며 태도를 바꾼다. 자발적으로 노력하려 하지 않고 차등보상 프로그램 실시 전에 비해 동기가 더 떨어진다.

[결론] 따라서, 차등보상은 중간성과자의 성과를 높이지 못한다.


[최종결론] 차등보상은 직원들의 성과를 높이지 못한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합니까?



(*참고도서)

Paul L. Marciano, <Carrots and Sticks Don't Work: Build a Culture of Employee Engagement with the Principles of RESPECT>, McGraw-Hill,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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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간쯤 읽다 만 책이 많은 이유는?   

2012. 9. 28. 1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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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번 글('살이 빠지면 다시 찌는 또 하나의 이유')에서 목표 달성도가 높아질수록 목표 달성에 방해되는 행동에 관심을 많이 가질 뿐만 아니라 실제로도 그렇게 행동한다는 점을 살펴봤습니다. 오늘은 언뜻 보면 그 글의 내용과 반대된 것 같지만 결국은 동일한 결과를 얻은 연구 결과를 살펴볼까 합니다. 켈로그 경영대학원의 안드레아 보네찌(Andrea Bonezzi)는 사람들이 목표를 달성하는 과정에서 최초 시작점을 기준으로 삼느냐 최종 도달점을 기준으로 삼느냐에 따라 목표를 이루려는 동기가 변해간다는 점을 실험으로 밝혔습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처음에는 '지금까지 얼마를 이루었느냐(To-Date 프레임)'란 기준으로 목표 달성도를 인식하지만, 중간을 지나면서는 '앞으로 얼마나 남았느냐(To-Go 프레임)'이란 기준으로 목표 달성도를 인식한다는 것입니다. 마치 U자형 그래프 모양으로 과제를 처음 시작할 때는 동기가 충만하다가 서서히 감소하고, 목표 달성도가 50% 정도되면 동기가 가장 낮은 수준에 이르며, 차차 목표에 가까이 갈수록 다시 동기가 살아난다는 것이 보네찌의 연구 결과입니다. 따라서 목표 달성도가 중간 정도에 이르렀을 때 목표를 포기할 가능성도 높음을 지적하고 있죠. 





250페이지짜리 책을 완독해야 하는 과제로 예를 들어볼까요? 책을 처음 읽을 때는 '지금까지 얼마나 읽었나'란 관점으로 목표를 인식합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10페이지를 읽었다면 그 다음에 읽는 1페이지는 10분의 1로 인식되지만, 50페이지까지 읽었다면 그 다음에 읽는 1페이지는 50분의 1로 느껴집니다. 1페이지의 '상대적인 기여'가 책읽기가 진행될수록 작게 느껴지기에 점점 동기가 줄어들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책의 중간 쯤을 읽을 때 가장 힘겹다는 느낌을 갖게 되죠. 보네찌의 표현대로 '꼼짝없이 중간에 끼이는(Stuck in the middle)'는 상태가 되어 자기도 모르게 책에서 손을 떼고 다른 일에 한눈 팔 가능성이 큽니다. 하지만 책읽기의 고통을 이겨내어 중간 지점을 넘어 읽기 시작하면 목표를 인식하는 기준이 '앞으로 얼마나 남았냐'로 바뀝니다. 앞으로 읽을 분량이 50페이지 남았을 때 그 다음에 읽는 1페이지는 50분의 1에 해당되지만, 10페이지가 남았을 때는 그 다음에 읽는 1페이지는 10분의 1로 느껴집니다. 따라서 책의 마지막 페이지에 이를수록 동기가 충만해집니다.


이런 가설을 검증하기 위해 보네찌는 실험 참가자들에게 영어 단어에 들어있는 철자를 사용하여 다른 단어를 최대한 많이 만드는 게임을 하도록 했습니다. 예를 들어 manager란 단어를 가지고 gear, range 등의 단어를 만들면 되는 게임이었죠. 모두 9개의 단어를 차례로 참가자에게 제시했는데, 특정 단어를 두 번째, 다섯 번째, 여덟 번째에 위치시켜서 참가자들의 성과를 살펴보기로 했습니다. 그랬더니, 참가자들이 특정 단어가 두 번째와 여덟번 째로 제시될 때보다 중간 순서인 다섯 번째에 제시될 때 가장 성적이 나빴습니다. 예상했던 것처럼 과제 수행 과정의 중간지점에서 동기가 가장 떨어진다는 사실이 나타났던 것이죠. 하지만 과제 수행의 초기와 말기에 성적이 좋은 이유는 아직 불분명했습니다.


보네찌는 다른 주제의 실험을 끝낸 후에 수고료로 15달러가 든 봉투를 주면서 총 300달러를 모금하기로 한 기부 프로젝트에 참여할 의사가 있는지를 물었습니다. 참가자들에게 모금 목표액에 이르기까지 앞으로 245달러, 145달러, 55달러가 남았다고 각각 설명할 경우(To-Go 프레임)와, 지금까지 모인 모금액이 55달러, 155달러, 245달러라고 알려줄 경우(To-Date 프레임)에 참가자들이 자기의 수고료에서 얼마나 돈을 기부할 의사가 있는지 알고자 했습니다. 목표 모금액에 도달하기 위해 필요한 금액을 들은 참가자(To-Go 프레임)들은 245달러나 155달러가 남았다는 말을 들을 때보다 '앞으로 55달러가 남았다'는 말을 들을 때 더 많은 돈을 기부했습니다. 반면, 지금까지 이미 모금한 금액을 들은 참가자(To-Date 프레임)들은 245달러나 155달러를 모금했다는 말을 접할 때보다 '지금까지 55달러를 모금했다'는 말을 들을 때 더 많은 돈을 기부했죠. 목표 달성도를 '지금까지 얼마를 이루었느냐(To-Date 프레임)'로 인식했을 때는 과제 수행의 초기에 동기가 높았지만, 목표 달성도를 '앞으로 얼마나 남았느냐(To-Go 프레임)'를 기준으로 목표 달성도를 인식했을 때는 과제 수행의 말기에 동기가 높았던 것입니다. 결국 어떤 프레임으로 목표 달성도를 인식하든 간에 중간 지점에서의 동기가 가장 낮았습니다.


9개의 에세이를 읽고서 오타를 잡아내도록 한 세 번째 실험에서도 동일한 결과가 나왔습니다. 단, 아무런 프레임을 제시하지 않는 조건을 이번에는 포함시켰죠. 프레임 없는 조건에서 참가자들은 첫 번째, 두 번째, 여덟 번째, 아홉 번째 에세이의 오타는 비교적 잘 잡아냈지만, 다섯 번째 에세이를 읽을 때는 성적이 가장 저조했습니다. 이것으로 사람들은 과제를 수행해 가면서 처음과 마지막에는 목표를 이루려는 동기가 크지만 중간 지점에서는 동기가 가장 낮다는, "U자형 가설"이 규명되었습니다.  즉, 처음에는 시작점으 목표 달성도의 기준을 삼지만 중간 지점을 지나면서는 도달점을 목표 달성도의 기준으로 삼는다는 것이죠.


지난 번 글('살이 빠지면 다시 찌는 또 하나의 이유')에서 설명한 피쉬바흐의 실험(목표에 가까이 갈수록 목표 달성에 반하는 행동을 하고 싶어한다는 결과)와 보네찌의 연구가 서로 배치되는 듯 보입니다. 하지만 피쉬바흐의 연구 내용을 곰곰히 살펴보면 '지금까지 얼마나 이루었냐'는 To-Date 프레임에서 사람들의 동기가 얼마나 저하되는지에 관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따라서 두 실험은 서로 맥이 통합니다. 


목표 달성 과정에서 '중간 지점에 끼여서(Stuck in the middle)' 앞으로 나아가기 힘들어 한다는 점이 보네찌 연구의 가장 큰 시사점입니다. 과제 수행의 초기에는 목표 달성 과정에 새로 돌입한다는 신선감에, 말기에는 목표 달성을 곧 이루어낸다는 기대감에 높은 동기를 갖습니다. 하지만 목표가 뭐든 간에 중기가 가장 힘든 시기입니다. 이 시기에 어떻게 해야 동기가 과도하게 떨어지지 않도록 방지할 것인지가 목표 달성을 담당한 직원과 그의 상사가 유념해야 할 부분입니다. 세심한 관심을 기울여야 할 부분은 과제 수행의 초기나 말기가 아니라 중기라는 점을 꼭 기억해야 하겠죠. 중기에 이르면 원래의 목표를 몇 개의 세부 목표로 나눠 제시함으로써 목표 달성에 임하는 마음을 새롭게 다지는 것도 하나의 방법입니다. 예를 들어 250페이지 책의 125페이지 부근에서 책읽기가 힘들어지면 '앞으로 20페이지만 더 읽자. 다 읽으면 미련없이 책을 덮고 나중에 또 보자.'라는 작은 목표들을 세우면 좋겠죠. 제가 주로 쓰는 방법인데, 어느 순간이 지나면 탄력을 받아 20페이지 이상을 읽게 됩니다.


동기 저하의 U자형 패턴을 기억한다면 오히려 힘든 중간 시기를 이겨내는 방법을 찾을 수 있을 겁니다. 지금 여러분은 중간에 끼어있지 않습니까? 중간쯤에서 읽기를 중단한 책이 얼마나 많습니까?



(*참고논문)

Andrea Bonezzi, C. Miguel Brendl, Matteo De Angelis(2011), Stuck in the Middle: The Psychophysics of Goal Pursuit, Psychological Science, Vol. 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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