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명 '또라이'와 화이트 칼라 범죄   

2012. 4. 12. 11:09
반응형


'화이트 칼라 범죄(White collar criminal)'란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은 사회적으로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이 자신의 권한을 이용하여 행하는 범죄를 아울러 이르는 말입니다. 흔히 말하는 배임이나 횡령, 탈세, 문서 위조, 뇌물 수수, 회계 장부 조작 등이 화이트 칼라 범죄의 대표적인 예이죠. 유럽의 경우, 대기업의 거의 절반 가까이가 화이트 칼라 범죄로 피해를 본다고 합니다. 화이트 칼라 범죄는 사회적으로 큰 피해를 입히는 중대한 범죄 행위임이 분명하지만(그리고 누구나 그렇게 말은 하지만), 살인이나 강도와 같은 범죄보다 간접적이고 겉으로 보이는 폭력성의 정도가 약하기 때문인지 사람들은 그 범죄의 심각성을 덜 느끼는 게 사실입니다. 우리나라는 법 적용 차원에서나 사회적 인식 차원에서나 화이트 칼라 범죄를 특히 관대하게 여깁니다.

더 큰 문제는 화이트 칼라 범죄를 일으키는 사람도 죄책감을 덜 느낄 뿐만 아니라 자신의 권력으로 응당 누려야 할 권리라고 여기는 데에 있습니다. 엔론을 망가뜨린 제프리 스킬링이 의회 청문회에 나와 죄를 뉘우치기는커녕 질문에 거만하게 대답하고 도도하게 굴었고,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도산 직전까지 갔다가 천문학적인 공적자금으로 겨우 살아난 금융회사들이 성과급 잔치를 벌였죠. 전혀 도덕적이지 않은 기업의 총수가 사람들을 향해 정직하게 살기를 바란다고 당당히 훈계하는 모습은 우리를 참담한 마음으로 이끕니다.



허나 높은 위치에 올라 막강한 권력을 소유했다고 해서 모두 화이트 칼라 범죄를 저지르는 것은 아닙니다. 무엇이 옳고 그른지 판단할 수 있는 건강한 가치관을 가진 사람은 여기저기에서 손을 뻗치는 유혹의 손길을 견뎌낼 겁니다. 그렇다면 어떤 특성을 가진 사람이 화이트 칼라 범죄를 저지를 가능성이 큰 걸까요? 물론 범죄를 일으키는 요인은 범죄자 자체의 성격적 특성 뿐만 아니라 그 사람을 둘러싼 환경적 구조적 상황 속에서 터져나올 수 있겠죠. 하지만 기업에서 벌어지는 화이트 칼라 범죄의 환경적인 구조는 거의 비슷하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요? 지위가 있고 그에 따른 권력이 있으며 '돈'이나 권력욕 자체가 범죄의 최종목표이기 때문입니다.

독일 본 대학의 게르하르트 블릭클레(Gerhard Blickle) 등은 이러한 가정 하에 화이트 칼라 범죄자의 성격적 특성을 연구한 결과를 내놓았습니다. 연구자들은 심각한 화이트 칼라 범죄를 저질러 수감 중인 76명의 죄수를 샘플로 삼았습니다. 그 죄수들이 수감 직전의 연봉 평균은 66,169 유로였고, 그들이 피해를 입힌 금액을 평균 내보니 약 190만 유로(약 24억 원)에 달했습니다. 연구자들은 이 범죄자 그룹과의 비교를 위해 범죄자들과 비슷한 지위에 있는 150명의 관리자를 따로 선정했습니다.

연구자들은 이 두 그룹을 대상으로 자기통제력, 쾌락주의 성향, 성실성, 나르시시즘 성향 등 4가지 특성을 측정하여 그 특성과 화이트 칼라 범죄와의 연관성을 통계적으로 분석했습니다. 그 결과, 리더의 지위에 있는 사람이 여성일 때보다는 남성일 때 화이트 칼라 범죄를 범할 가능성이 높았습니다. 쾌락주의 성향이 높을수록, 나르시시즘 성향이 높을수록, 자기통제력이 낮을수록 화이트 칼라 범죄를 저지를 확률이 높았습니다.  

특이한 것은 성실성 점수가 높을수록 화이트 칼라 범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결과는 성실성이 높으면 도덕에 저촉되는 범죄를 저지를 확률이 낮다는 기존의 연구와 반대되는 것이었죠. 연구자들은 화이트 칼라 범죄자들이 그 지위에 오르기 위해 평균 이상의 성실성이 필요하고, 화이트 칼라 범죄를 저지르는 데 필요한 기술적인 능력이 성실성을 바탕으로 갖춰지기 때문이라고 해석합니다. 성실성은 높을지라도 진실성(integrity)이 결여되어 있다는 말입니다.

이 연구를 요약하면 욕구를 통제하지 못하고 쾌락을 추구하는 나르시스트들이 권력을 잡으면 화이트 칼라 범죄의 유혹에 쉽게 빠진다는 것입니다. 또한 나르시스트들이 드러내 보이는 성실성은 진실함이 부족한, 어디까지나 수단이라는 점을 지적합니다. 나르시스트들이 모두 화이트 칼라 범죄를 저지르는 것은 아니지만, 배임과 횡령, 장부 조작, 탈세 등을 거리낌없이 저지르고도 죄의식을 별로 느끼지 못하는 자들은 자신이 그렇게 해도 될 만한 사람이라고 느끼는 나르시스트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지난 번 글에서 봤듯이 나르시스트인 리더는 성과를 떨어뜨림으로써 조직에 손실을 입히기도 하지만 화이트 칼라 범죄를 저질러서 재무적인 차원에서 회사의 이미지 차원에서 큰 피햬를 가져올지 모릅니다. 게다가 그들의 범죄가 범죄로 인식되지 않는다면 구성원들 사이에서 '나도 그렇게 해도 되겠지', '왜 나만 가지고 그래?'란 도덕적 해이가 독버섯처럼 자라나겠죠.

회사의 윤리적 기강은 나르시스트들에 의해 허약해질 수 있습니다. 

 
(*참고 논문)
Some Personality Correlates of Business White-Collar Crime

(*추신) 이 블로그에서 언급한 '나르시스트 리더'는 그저 잘난 척 하는 리더가 아니라, 로버트 서튼 교수가 '또라이(asshole)'라고 부르는 리더와 맥을 같이 합니다. 로버트 서튼 교수의 '또라이 제로 조직'이란 책을 참조하세요.


반응형

  
,

'자뻑'인 사람이 회사의 CEO가 된다면?   

2012. 4. 10. 11:27
반응형


나르시스트가 우리 회사의 가장 높은 지위인 CEO에 오른다면 회사 성과는 어떤 영향을 받을까요? 시쳇말로 '자뻑'인 사람이 조직의 리더가 된다면 회사가 좋아질까요, 아니면 나빠질까요? 몇몇 연구 결과들은 나르시스트들이 공상가적인 기질이 있기 때문에 조직의 혁신가로서 긍정적인 역할을 수행하고 그에 따라 회사 성과도 좋아질 거라 암시합니다. 하지만 나르시스트들이 누구보다 아이디어가 뛰어나고 능력이 출중한 인물이라 스스로를 가리켜 평가한다면, 그리고 성공적으로 조직을 이끈 소수의 나르시스트적 리더(예 : 스티브 잡스)를 보며 나르시스트적 성향이 성공의 핵심요소 중 하나라는 믿음이 든다면, 객관적이고 정량적인 데이터를 통해 그들이 조직 내 최상의 위치인 CEO 지위에 오른 후의 재무적 성과를 실제로 따져보는 일이 의미가 있을 겁니다.


펜실베니아 대학의 애리지트 채터지(Arijit Chatterjee)와 도널드 햄브리크(Donald C. Hambrick)는 이런 의문을 가지고 컴퓨터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업계에 종사하는 111명의 CEO(105개 업체)를 연구 대상으로 삼은 다음 그들이 이끄는 회사의 성과 데이터를 폭넓게 수집했습니다. 나르시스트적 성향의 수준을 측정하는 직접적인 방법이 있지만(통상 NPI라는 설문법이 많이 쓰임), CEO들을 일일이 만나 설문을 수행하기가 현실적으로 어려운 탓에 그들은 간접적인 방법을 사용했습니다. 먼저 그들은 매년 발행되는 연례 보고서(annual report)에서 CEO의 사진의 얼마나 크게 나왔는지, 해당 회사에 대한 언론 기사에서 CEO의 이름이 얼마나 많이 언급되는지를 일일이 측정하여 점수를 매겼습니다.



또한 CEO가 행하는 연설에서 '나'라는 1인칭 대명사를 '우리'라는 대명사에 비해 얼마나 많이 하는지를 헤아렸습니다. 자기자신에 몰입하는 성향이 나르시시즘의 특징 중 하나이기 때문이었죠. 채터지와 햄브리크는 조직 내에서 금전적, 비금전적 보상을 두 번째로 많이 받는 사람에 비해 얼마나 많은 보상을 받는지도 측정하여 나르시스트적 성향을 측정하기 위한 하나의 기준으로 삼았습니다. 나르시스트는 스스로를 '존귀한' 존재로 여기기 때문에 그 결과가 2인자와의 보상 차이로 나타난다는 것이 다른 연구에 의해 증명됐기에 이 지표는 CEO의 나르시스트적 성향을 측정하기에 적당하리라 판단됐죠. 이런 간접적인 지표는 별도로 진행된 테스트를 통해 나르시스트적 성향을 측정하는 데에 적당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체터지와 햄브리크는 CEO가 이끄는 회사의 광고비 비율, 연구개발비 비율, 판관비 비율, 부채 비율을 가지고 '전력적 활력'을 측정했습니다. 또한 각 회사가 얼마나 많이 다른 기업을 인수했는지, 그 인수 규모는 얼마나 컸는지에 관한 데이터를 수립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총주주수익(Total Shareholder Return)과 자산수익률(Return on Asset)를 측정하여 매년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도 살펴봤죠.

CEO의 나르시스트적 성향과 회사의 성과 지표를 대비하여 분석해 보니 흥미로운 결과가 도출됐습니다. 먼저 CEO가 나르시스트일수록 겉으로 보이는 전략적 활력이 상대적으로 컸습니다. 또한 나르시스트적 CEO들은 남들보다 기업 인수에 적극적이고 그 규모도 크다는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나르시스트가 남들에게 과시하고 떠벌리는 성향이 크다는 것을 감안하면 이는 당연한 결과죠. 하지만 여기까지는 나르시스트적 CEO가 특별히 문제가 있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문제는 나르시스트적 CEO가 총주주수익과 자산수익률 측면에서 매우 높은 수준을 달성하는 경향이 있었지만 동시에 매우 낮은 값을 기록했다는 것이었습니다. 특히 자산수익률의 연도별 변화를 살펴보면 그 변동폭이 컸습니다. 성과가 안정적이지 못하고 들쭉날쭉한다는 의미입니다. 크게 얻기도 하지만 크게 잃기도 했단 말이죠. 나르시스트가 CEO에 오르면 경영의 부침이 심할 것이라는 예측에 힘을 실어주는 결과입니다. 몇몇 기업의 경우 언론이 앞다투어 그 회사의 특출한 성과를 칭송하자마자 곧바로 고꾸라져서 투자자들을 실망시키고 다시 언론으로부터 맹공을 받는 사례가 드물지 않습니다. 그런 회사들의 영락은 어쩌면 CEO의 나르시스트적 성향과 관련이 있을지 모릅니다.

헌데 나르시스트적 CEO가 이끄는 회사가 다른 기업에 비해 비록 부침이 심하지만 기본적으로 성과가 더 나을 거라고 생각할지 모릅니다. 체터지와 햄브리크는 심화된 분석을 통해 CEO의 나르시스적 성향과 회사 성과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는 점을 알아냈습니다. 이 결과는 CEO의 나르시스트적 성향이 성과에 나쁜 영향을 미치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좋은 영향을 끼치지도 않는다는 의미입니다. 적어도 나르시스트를 조직의 리더로 올린다고 해서 좋을 것은 없다는 뜻이죠. 나르시스트는 스스로 자신이 리더가 되어야 회사가 좋아진다고 주장하겠지만 말입니다. 

채터지와 햄브리크는 자신들이 연구 대상으로 삼은 컴퓨터 하드웨어와 스프트웨어 산업이기에 다른 산업에 이런 결과를 다른 산업에도 동일하게 적용할 수 없다는 점을 인정합니다. 하지만 마코비(M. Maccoby)가 나르시시즘이 다이나믹하게 변화하는 산업에 종사하는 경영자들에게는 가치 있는 특성 중 하나라고 지적했다는 점을 인용하면서, 만일 안정적인 산업이라 한다면 나르시시즘이 회사 성과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이라 추론합니다. 나르시시즘이 중요한 특성으로 인정 받는 산업에서조차 나르시시즘과 회사 성과 사이에 체계적인 상관관계가 없다면, 다른 사업에서는 둘 간의 부정적인 관계가 있으리라 짐작할 수 있겠죠. 물론 추후 연구를 통해 밝혀져야 할 문제이지만, 적어도 나르시스트 성향이 높은 리더들은 그들 스스로의 주장과는 달리 회사 성과에 '체계적인' 영향을 끼치지 못하고 경영을 불안정하게 만드는 것만은 수용해야 할 겁니다.

앞서 올린 글에서 살펴봤듯이 나르시스트적 리더는 정보 흐름을 막고 자신의 창의적일 것 없는 아이디어를 창의적이라고 강요함으로써 조직의 성과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칩니다. 그리고 채터지와 햄브리크의 실험으로 짐작하건대, 나르시스트적 리더는 성과 창출의 체계적인 구조를 만드는 데 관심이 있기보다는 과시욕과 명예욕을 충족시키기 위하여 과감한 의사결정을 내리고 그 때문에 조직의 성과를 불안하게 만듭니다. 어쩌다 특출한 성과를 기록했다고 해서 그들의 경영능력을 칭송하고 그들을 본받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되겠죠. 엔론을 망가뜨린 케네스 레이와 제프리 스킬링이 한때 위대한 경영자로 칭송을 받았다는 점을 염두에 둔다면 말입니다.

과감한 의사결정이 반드시 나쁜 것은 아닙니다. 과감한 의사결정이 무엇보다 필요한 시점이 분명히 있습니다. 하지만 과감한 결정이 나르시스트에게서 나왔다면, 그 과감한의 기저가 무엇인지 따져볼 필요가 있습니다. 여러분 조직에서 나르시스트는 누구이며 그들의 결정은 지금까지 어떤 결과를 낳았는지 한번 돌아보기 바랍니다. 


(*참고 논문)
It’s All About Me: Narcissistic CEOs and Their Effects on Company Strategy and Performance


반응형

  
,

개인 성과급이 공유와 협력를 저해한다   

2012. 4. 9. 10:46
반응형


여러 기업들이 운영 중인 성과급을 살펴보면, 회사나 팀의 성과에 따라 지급하는 '그룹 성과급'과, 개인의 능력과 업적에 기초하여 지급하는 '개인 성과급'이 섞인 형태가 거의 대부분입니다. 둘 중 어느 하나만을 택하는 회사는 없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죠. 이렇게 두 가지 형태의 성과급을 섞어서 적용하는 이유를 파고 들어가면, 그룹 성과급만을 지급할 경우 그룹의 성과에 무임승차하려는 직원이 생길 것을 염려하기 때문입니다. 개인 단위로 성과를 측정해서 성과급을 주어야만 직원들의 동기를 높일 수 있고 '농땡이'치는 직원들을 벌 줄 수 있다고 믿습니다.

개인 성과급의 적용이 무임승차자를 줄이는 이득이 있다고 인정해 보죠. 하지만 그 이득을 얻기 위해 드는 '비용'을 고려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여러분이 경험적으로 항상 느끼고 있겠지만, 제도는 항상 트레이드-오프가 있기 마련이니까요. 그렇다면 그 비용은 과연 얼마나 될까요?



크리스토퍼 반스(Christopher M. Barnes)와 그의 동료들은 그룹 성과급과 개인 성과급을 섞어서 적용할 때와 그룹 성과급만을 적용할 때 팀의 성과와 구성원 개인의 행동이 어떻게 달라질지 실험을 통해 알아보기로 했습니다. 그들은 경영학과 학부생 304명을 모아서 4명씩 한 팀을 이루게 했습니다. 4명의 팀원들은 한 방에 모여 자신들의 영토를 침략한 적을 인식하여 가능한 한 빨리 적들을 섬멸해야 하는 일종의 전투 시뮬레이션 게임을 함께 수행해야 했습니다. 팀원들은 자신만의 PC 앞에 앉아 게임을 진행했지만 서로 자유롭게 이야기하면서 공동의 적을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 의논할 수 있었죠.

연구자들은 학생들 중 절반(38개팀)에게는 무작위로 선정한 라이벌 팀의 점수보다 높게 나올 경우 팀원 각자에게 10달러의 상금을 줄 예정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룹 성과급을 적용한 셈이었죠. 반면 나머지 팀의 학생들에게는 그룹 성과급과 개인 성과급을 섞어서 지급하겠다고 말했습니다. 팀의 점수가 라이벌 팀의 것보다 높으면 각자 5달러씩 받을 수 있고, 팀원 개인이 다른 팀의 특정 팀원보다 높은 점수를 받으면 개인에게 5달러를 지급할 예정이라고 말했던 겁니다.

게임을 수행하도록 한 결과, 그룹 성과급과 개인 성과급을 섞어서 받기로 한 팀의 학생들이 점수 쌓기에 열을 올렸고 몰려오는 적들을 더욱 빠르게 물리치는 모습이 관찰되었습니다. 하지만 이 팀의 학생들은 자기네 편을 적으로 오인하여 공격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4명의 팀원들이 한 방에서 게임을 진행했기 때문에 서로 이야기를 나누면서 공격 방법을 결정하고 '피아'의 구분을 명확히 할 기회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의사소통의 질이 높지 않았다는 증거로 볼 수 있습니다.

게임의 특성상 다른 팀원들보다 적들의 공격을 더 많이 받는 바람에 버거워하는 팀원이 있었는데, 그룹 성과급만을 약속 받은 팀들이 혼합된 성과급을 받기로 한 팀들보다 서로 도와주는 행동이 더 많이 나타났습니다. 바꿔 해석하면, 개인 성과급이 적용된 팀들이 상대적으로 비협조적이었다는 의미입니다.

개인 성과급의 존재가 개인의 이득을 최대화하려는 욕구와 팀의 성과에 기여하고자 하는 이타심 사이의 '내적 갈등'이 정보 흐름의 단절과 비협조를 유도했던 겁니다. 또한 자기 혼자 다른 팀원을 도와주는 등 이타적인 행동을 취한다면 이기적으로 행동하는 다른 팀원들로 인해 자기가 피해(개인 성과급을 못 받는)를 받으면 어쩌나 하는 염려와, '다른 팀원들도 나처럼 이기적으로 할 수밖에 없을 거야'란 인식도 은연 중에 작용했겠죠.

개인 성과급이 적용되면 팀원들 간에 활발히 일어나야 할 의사소통이 저하되고 협조적인 모습이 덜 나타나는 이런 현상을 기업에 존재하는 모든 형태의 팀에 투영하기는 어렵겠죠. 반스가 논문에서 언급했듯이, 이 실험의 결과는 적을 물리쳐야 하는 컴퓨터 게임으로 얻어진 것이기에 일상적인 운영 업무를 주로 하는 팀보다는 특정 주제로 프로젝트를 구성해 긴급히 해법을 마련해야 하는 '태스크 포스(Task-force)형' 팀에게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허나 점점 더 많은 팀들이 태스크 포스형 팀으로 운영된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반스의 실험을 글자 그대로의 태스크 포스팀에만 적용된다고 제쳐두어서는 안 됩니다.

그룹 성과급도 주고 개인 성과급도 주면 성과가 더욱 높아지리라는 기대는 근거가 없을뿐더러 매우 순진한 생각입니다. 팀원들이 합심하여 고객의 요구에 대응하고 회사 내의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기업환경의 변화와 개인 성과급의 적용은 시너지를 일으키기는커녕 정보의 원활한 흐름을 막고 협조적인 분위기를 깨뜨릴지 모릅니다. 

모든 제도는 트레이드 오프가 있습니다. 제도를 도입할 때 다른 회사는 어떻게 하고 있고 베스트 프랙티스가 무엇인지 알아보기 전에 무엇보다 깊은 성찰이 필요한 까닭입니다. 


(*참고 논문)
Mixing Individual Incentives and Group Incentives: Best of Both Worlds or Social Dilemma? 


반응형

  
,

자기평가를 금해야 하는 확실한 이유   

2012. 4. 6. 10:45
반응형


예전에 올린 포스팅 중에 '능력 없는 직원들이 더 많이 착각한다'란 글이 있습니다. 그 글에서 자신의 능력이 다른 사람에 미치지 못하는 데도 자신이 평균 이상의 실력을 지녔다고 인식한다는 실험 증거를 들며 '자기평가(Self-Assessment)'의 무용함을 지적했습니다. 오늘은 그 글을 확장하여 자기평가의 결과가 행동경제학에서 말하는 '닻 효과(Anchoring Effect)'을 일으킴으로써 평가자들로 하여금 피평가자의 진정한 역량을 올바로 판단하지 못하도록 유도한다는 점을 이야기하며 자기평가의 무용함을 강조하고자 합니다.

'닻 효과'란 사전에 노출된 정보에 의해 의사결정의 결과가 영향을 받는 현상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행동경제학의 선구자인 대니얼 카네만과 아모츠 트버스키가 수행한 실험을 통해 유명해진 개념이죠. 피실험자들에게 아프리카 국가 중 유엔(UN) 가입국은 몇 퍼센트일지를 맞혀보라고 질문을 던지기 전에 룰렛에 나온 수를 보여주면, 피실험자들이 어림짐작으로 내놓은 답은 룰렛 수에 근접해집니다. 피실험자들은 룰렛에 나온 숫자가 10이면 25%로, 룰렛 수가 65이면 45%로 답했습니다. 아프리카 국가의 유엔 가입률과 아무 상관 없는 숫자가 피실험자들의 판단이 멀리 가지 못하도록 닻이 됐던 겁니다.



뉴질랜드 캔터베리 대학교의 제 첸(Zhe Chen)과 사이먼 켐프(Simon Kemp)는 승진심사를 할 때 지원자들의 자기평가 결과가 평가자들의 판단을 잡아두는 닻이 됨을 실험을 통해 규명했습니다. 그들은 학부생 80명을 모집하여 무작위로 네 그룹으로 나눴습니다. 학생들에게는 승진을 원하는 가상의 대학 강사가 제출한 2~3페이지짜리 지원서를 읽고 그 사람의 승진 여부를 결정하는 학과장의 역할이 주어졌습니다. 지원서는 크게 지원자 신상정보, 강의 경력 및 연구 성과, 자기평가로 구분되었는데, 자기평가 부분에는 지원자가 스스로 자신의 강의 능력, 연구 성과, 기여도를 10단계로 평가한 표가 들어 있었습니다.

첸과 켐프는 지원자의 '강의 경력 및 연구 성과'를 '좋다', '별로다'의 2가지 경우로 조작하고, 자기평가 결과를 '높다', '낮다'의 2가지 경우로 꾸밈으로써 모두 4가지 종류의 지원서를 만들어 각 그룹의 학생들에게 하나씩 배포했습니다. 그런 다음, 지원자의 자기평가 표와 동일한 포맷의 표에 평가 점수를 기입하도록 했습니다. 그 결과, '좋다-높다'라고 조작된 지원서를 읽은 학생들은 평균 8.8점(10점 만점)이라고 평가한 반면, '별로다-낮다'란 지원서를 본 학생들의 답은 6.8점으로 나타났습니다. 지원자가 자기평가를 어떻게 했든 지원자의 강의 경력과 연구성과를 보고 평가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2점이라는 차이는 평가자의 평가가 지원자의 자기평가에 크게 영향을 받았다는 걸 뚜렷하게 보여줍니다. 

첸과 켐프는 이와 같은 닻 효과가 평가 초보자인 학생들 때문에 나타난 것은 아닌지 확인하기 위해 전문성을 갖춘 교수들을 차출하여 평가자의 역할을 맡겼습니다. 교수들을 두 그룹으로 나눠 자기평가 결과가 '높다'인 지원서와 '낮다'인 지원서를 검토한 후 평가하도록 하니, 이번에도 닻 효과가 뚜렷하게 나타났습니다. 지원자의 자기평가 점수가 높은 지원서를 본 교수들은 평균 6.4점으로, 자기평가 점수가 낮은 지원서를 검토한 교수들은 평균 4.7점으로 평가했던 겁니다. 전문성이 닻 효과를 줄이지 못한다는 걸 증명한 셈입니다. 흥미로운 것은 교수들이 초보자인 학생들에 비해 지원자에게 박한 점수를 주었다는 것입니다. 전문성이 높을수록 상대방에게 높은 기준을 요구하기 때문이겠죠. 하지만 그런 냉정한 판단 기준은 지원자의 자기평가가 유도하는 닻 효과 앞에서 무력해졌습니다. 교수들도 지원자의 강의 및 연구 성과보다는 자기평가 점수에 끌어당겨지고 말았습니다.

지원자가 1명이 아니라 2명이면 닻 효과는 어떻게 나타날까요? 첸과 켐프는 지원자별로 4가지 종류의 지원서(강의/연구성과와 자기평가가 각각 '좋다-높다', '좋다-낮다', '별로다-높다', '별로다-낮다')를 만든 다음, 두 지원자의 지원서를 짝을 지어 네 그룹의 평가자들에게 평가하도록 했습니다. 이때에도 역시 닻효과가 뚜렷하게 나타났습니다. 평가자들이 전체적으로 강의 및 연구 성과가 좋은 지원자에게 높은 점수를 주었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볼 수 있었지만, 그래도 여전히 지원자의 자기평가가 평가 결과를 좌우했습니다. '별로다-높다'인 지원자(7.3점)가 '좋다-낮다'인 지원자 만큼(7.5점)의 점수를 받았으니 말입니다.

일련의 실험으로 증명된 변하지 않는 사실은 지원자가 스스로 자신의 실력을 측정한 자기평가 점수가 평가자의 평가에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는 것입니다. 이 실험의 결과는 기업에서 이루어지는 평가 관행에 직접적인 시사점을 줍니다. 평가제도를 설계할 때 평가자가 피평가자의 자기평가 결과를 참조해야 하는지의 여부, 2차평가자가 1차평가자의 평가를 열람해야 하는지의 여부, 점수로 자기평가를 내려야 하는지의 여부 등을 놓고 논쟁이 벌어지곤 합니다. 첸과 켐프의 실험은 확실한 결론을 내리도록 해 줍니다. 점수로 쓰인 자기평가 결과는 무용하거니와 평가자에 의해 참조될 경우 평가 결과를 왜곡시키고 맙니다. 평가자가 전문성을 갖춘 사람이라 해도, 비교가 가능한 다른 피평가자가 있다 하더라도 닻 효과는 떨어질 줄 모릅니다. 자기평가 점수를 평가 점수에 반영하지 않는다고 해도 자기평가 결과를 참조(혹은 열람)하도록 하면 결국 자기평가 점수는 최종 평가 점수에 반영되는 꼴입니다.

자기평가를 수행하는 조직에서는 지금부터라도 닻 효과의 개입을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여러 평가(승진, 인사, 채용 등) 프로세스를 개선할 필요가 있습니다. 평가 지표를 만드는 지난한 과정보다 쉽고 빠르고 효과적인 방법이니까요.



(*참고논문)
Self-Assessments Produce Anchoring Effects in Promotion Decisions
Anchoring effects on performance judgments



반응형

  
,

백지장도 맞들면 나은 진짜 이유   

2012. 4. 5. 10:25
반응형


여러분 앞에 커다란 물건이 하나 놓여져 있습니다. 누군가가 그걸 들어달라고 부탁할 때 여러분의 머리 속에서는 자동적으로 무게가 어느 정도나 나갈지 추측하기 시작합니다. 실제로 무게가 가벼운데 무거울 거라 생각하고 과도하게 근육을 사용하면 몸짓이 우스꽝스러울 테니 말입니다. 반대로 무게가 무거운 물체를 가벼우리라 예상하고 들어올릴 때도 미처 대비하지 못한 팔근육에 무리가 갈 수 있습니다. 미처 의식하지 못하더라도 우리는 어떤 대상을 대할 때 그것의 무게, 촉감, 맛, 냄새 등을 미리 짐작하고 그 짐작에 따라 행동을 결정하곤 합니다. 오랜 옛날, 거친 사바나에서 생존하기 위해 이러한 능력은 인간에게 필수적이었겠죠.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떤 대상 자체를 보면서 그것의 무게, 촉감, 맛, 냄새 등을 짐작할까요? 아니면 그 대상을 둘러싼 환경을 함께 고려하여 행동(먹고, 만지고, 들고...)의 방향을 결정할까요? 깨끗한 접시 위에 담겨진 빵이 모던한 찻집에 있을 때와 화장실 변기 위에 놓여져 있을 때, 여러분은 전자의 빵을 선택하고자 할 겁니다. 빵의 신선도를 빵 자체 뿐만 아니라 주변 환경에 의해 평가하기 때문이죠. 어떤 사람이 밝은 곳에서 어딘가를 응시하며 앉아 있는 경우와, 컴컴한 밤에 동일한 장소에서 동일한 자세로 앉아 있는 경우는 매우 다릅니다. 대상의 성질을 판단할 때 우리는 항상 주변 환경을 함께 인식합니다.



다시 물건을 들어보라는 이야기로 돌아가 보죠. 여러분 혼자 그것을 들어보라고 할 때와, 동료가 그것을 함께 들 거라는 말을 들었을 때, 그 물건의 무게에 대한 여러분의 추측 결과는 같을까요, 아니면 다를까요? 물건을 들기 전이니 같이 들어 줄 동료가 있든 없든 물건의 무게를 동일하게 추측하리라 생각할지 모르지만, 놀랍게도 동료가 옆에 있다는 것 자체가 물건의 무게를 실제보다 적게 느끼도록 만듭니다.

에덤 도어펠트(Adam Doerrfeld) 등은 대학생 60명을 대상으로 한 실험에서 이를 증명했습니다. 연구자들은 골프공 177개가 담긴 총중량 20파운드의 바구니를 학생들에게 보여준 후에 바구니를 들기 전에 무게를 추측하도록 했습니다. 학생들은 무작위로 혼자서 들어야 하는 경우와 둘이 함께 드는 경우로 나뉘었죠. 둘이서 바구니를 함께 들어야 하는 학생들은 방의 한쪽 구석에 앉도록 하고 그를 도와줄 동료(실은 연구자 중 한 명)는 다른 쪽 구석에 앉게 했습니다. 도어펠트는 바구니의 무게가 15 파운드에서 25파운드 사이라고 일러줌으로써 과도한 추측을 방지했습니다.

실험 결과, 혼자서 바구니를 들어야 하는 학생들은 바구니의 무게를 약 21파운드 정도라고 추측함으로써 실제 무게인 20파운드에 근접한 정확도를 보였습니다. 반면, 동료와 함께 한 학생들은 바구니의 무게를 약 17.5 파운드라고 예측했습니다. 혼자 들어야 하는 학생들보다 약 3.5파운드를 적게 추측했던 겁니다. 바구니를 직접 들어보고 나서 무게를 추측하라고 하니, 혼자서 바구니를 들든 동료와 함께 들든 무게를 추측한 결과는 거의 비슷했습니다. 실험 방식을 약간 변형한 후속실험(골프공 개수도 추측해 보라는 요청이 추가)에서도 비슷한 결과가 도출되었습니다.

함께 바구니를 들어줄 동료가 옆에 있다는 것으로도 자신에게 부과된 부담을 적게 느낀다는 이 실험의 결과는 조직 내에서 구성원들 간의 서로 돕고 서로 배려하는 문화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시사합니다. 인간이 어떤 대상의 무게, 촉감, 맛, 냄새 등을 판단할 때 주변환경을 유리시키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로, 구성원들은 자신과 한 조직에 몸을 담고 있는 동료(상사나 부하직원)와의 관계 속에서 자신에게 부과된 목표나 일상업무의 부담을 인식합니다. 이런 측면에 볼 때, 직원들의 업무영역을 자로 잰듯 반듯하게 구분하고 개인성과목표를 정량적으로 측정하려고 하는 성과주의 문화는 구성원들 간에 협력하려는 동기 자체를 줄이도록 유도하고 그로 인해 동일한 난이도의 업무를 더욱 힘들게 여기게 만들 거라고 추측할 수 있습니다. 협력이 권장되고 협력이 문화로 정착된 조직은 그렇지 않은 조직보다 동일한 난이도의 업무를 착수하기 위해 필요한 '활성화 에너지'의 문턱값이 낮기에 목표 완료의 속도가 빠르고 목표 달성의 질도 뛰어날 것이기 때문이죠.

여러 기업에서 구현된 성과주의 제도의 방향은 개인의 업무(혹은 목표)를 주변의 조건과 얼마나 깔끔하게(?) 분리시킬 것인가를 지상과제로 여기는 듯합니다. 개인의 성과를 몇 개의 '객관적이고 정량적인' 지표(KPI)로 깔끔하게 평가하기 위해 골머리를 앓습니다. 구성원 간의 업무흐름이 엄연히 존재하는 조직에서 그런 시도는 애초에 불가능할 뿐더러 바람직하지도 않음을 도어펠트의 실험이 시사합니다. 개인의 업무(혹은 목표)를 주변 환경의 조건 하에서 인식하는 것이 우리 인간의 본능이기 때문입니다.

헌데 동료의 존재만으로도 정말 부담이 덜 느껴질까요? 도움이 안 되는 동료라는 생각이 든다면 어떻게 될까요? 도어펠트는 후속실험을 통해 그 동료가 도와줄 만한 능력이 없다고 판단될 경우에는 동료의 존재로 인한 경감 효과가 사라진다는 것을 규명했습니다. 목 보호대를 차고 잘 쓰는 한쪽 팔에 깁스를 한 동료(실은 연구자 중 한 명)와 함께 짝을 이루게 한 경우와, 건강한 동료와 짝지은 경우를 비교해 보니, 동료가 부상을 당해 힘을 제대로 쓰지 못할 거라 간주한 학생들은 건강한 동료와 함께 한 학생들에 비해 바구니의 무게를 더 무겁게 추측했습니다. 그 학생들은 오히려 혼자서 바구니를 들어보라고 요청 받은 학생들보다도 무겁게 짐작했습니다. 협력적인 문화도 중요하지만 그만큼 구성원들의 역량도 어느 정도 수준 이상은 되어야 함을 시사하는 결과입니다.

직원들에게 성과 목표를 강하게 부과하기보다는 협력적인 조직문화를 구축하는 일, 그리고 직원들 스스로 자신의 역량을 키움으로써 동료들에게 도움을 주고 받으려는 자발적인 조직문화를 일구는 일이 진짜 성과주의 문화입니다. 그다지 유용하지 않은(아니, 오히려 해가 되는) KPI 도출에 열을 올리고, 직원들에게 목표 달성을 채찍질하는 문화는 봉건적인 기업문화의 전형입니다.

여러분의 조직은 협력적입니까? 여러분의 회사는 직원들 간의 협력을 진정으로 원하고 바랍니까?


(*참고논문)
Expecting to lift a box together makes the load look lighter


반응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