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감일이 닥쳐야 일이 잘 될까?   

2012. 5. 30. 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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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감일이 코 앞에 다가왔을 때 일이 더 잘 된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시간적으로 압박이 가해질 때 좋은 아이디어가 떠오르고 결과물의 품질이 높다고도 말합니다. 그래서 충분한 시간이 주어져도 일부러 마감일까지 기다렸다가 일을 시작하는 게 좋다고 주장하기도 하죠. 하지만 시간의 압박이 판단과 의사결정의 질을 훼손할 뿐만 아니라 결과물의 품질도 저하시킨다는 연구 결과가 많다는 점을 안다면 그런 믿음은 그저 자신의 주관적인 느낌에서 비롯된다고 깨달을 겁니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이 시간의 압박이 주어지는 상황에서 참가자들에게 아이오아 갬블링 태스크(Iowa Gambling Task)라고 불리는 게임을 수행하게 한 마테오 셀라(Matteo Cella)와 동료들의 실험입니다. 이 게임은 컴퓨터 화면 상에 카드 데크 4개를 보여주고 하나의 데크에서 한 번에 한 장의 카드를 선택하게 합니다. 한 장을 뽑을 때마다 돈을 딸 수도 있고 잃을 수도 있는데, 4개의 데크 중 2개는 한 번에 따는 돈이 컸지만 그만큼 잃는 돈도 컸습니다. 나머지 2개의 데크는 따는 돈이 적은 대신에 잃는 돈도 적었죠. 그래서 이 게임에서 충분히 많은 수의 카드를 뽑아야 할 경우 '저수익 저위험' 데크가 무엇인지 빨리 파악하고 그 데크에서 카드를 선택하는 것이 유리합니다.



이런 정보를 모르는 상태에서 게임을 임한 참가자들은 카드를 한 장씩 뽑아가면서 이런 사실을 깨닫기 시작하는데, 셀라는 카드를 빨리 뽑으라고 압박을 가할 때와 아무런 압박을 가하지 않을 때 참가자들이 돈을 따는 데에 유리한 데크를 얼마나 빨리 깨닫는지 보고자 했습니다. 셀라는 참가자를 세 그룹으로 나눠서 첫 번째 그룹에게는 카드를 2초 안에, 두 번째 그룹에게는 4초 안에, 세 번째 그룹에게는 시간 제한 없이 카드를 선택하라고 했습니다. 시간 안에 카드를 뽑지 못하면 화면에 "너무 늦다"라는 메시지가 나타나게 하여 참가자에게 부담을 주었죠.

모두 100장의 카드를 뽑도록 한 후에 결과를 살펴보니, 모든 참가자들이 카드를 많이 뽑을수록 '좋은 데크'가 무엇인지 깨달았습니다. 그러나, 시간의 압박을 받지 않은 참가자들이 2초 안에 카드를 뽑아야 했던 참가자들보다 '좋은 데크'에서 카드를 더 많이 선택했습니다. 반면 4초 그룹과는 차이가 없었고, 2초 그룹과 4초 그룹 사이에서도 차이가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이 결과는 '2초 내'라는 시간 압박이 참가자로 하여금 '좋은 데크'가 무엇인지 늦게 깨닫게 만들었다는 뜻입니다(하지만 '4초 내'라는 제약은 참가자들에게 압박으로 느껴지지 않았음을 의미). 시간의 압박이 가해질 때 판단의 질이 떨어진다는 점을 단적으로 시사하는 결과입니다.

동일한 시간 제약이라 할지라도 사람들이 그 시간을 압박으로 여기도록 하느냐의 여부도 판단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점이 또 다른 실험으로 규명되었습니다. 마이클 드돈노(Michael A. DeDonno)와 동료들은 셀라의 실험과 동일한 방법을 따르되 참가자들에게 2초라는 시간 제약을 다르게 느끼도록 했습니다. 모든 참가자들은 각 카드를 2초 내에 뽑아야 했지만, 드돈노는 첫 번째 그룹에게 2초라는 시간이 게임을 성공적으로 수행하는 데에 충분하다고 일러준 반면, 두 번째 그룹에게는 2초라는 시간이 게임을 성공적으로 수행하기에는 충분치 않다고 알려줬습니다.

이렇게 동일한 시간을 서로 다르게 인지하도록 한 후에 100개의 카드를 뽑도록 하니, 결과에 상당한 차이가 발견되었습니다. 시간이 충분하다고 인지한 그룹이 그렇게 인지하지 않은 그룹보다 '좋은 데크'에서 더 많은 카드를 선택했습니다. 똑같은 시간 제한이라도 시간에 쫓기는 느낌이 드느냐 그렇지 않으냐가 역시 판단과 의사결정의 질에 영향을 미친다는 결과였죠.

두 실험의 결과를 통해 절대적으로 시간이 부족할 때와 상대적으로 시간적 압박을 느낄 때 모두 현명한 판단을 내리기 어렵다는 점을 알 수 있습니다. 마감일이 다 될 때까지 일을 미루는 것이 생산성과 결과물의 질을 높이기 위한 좋은 전략이 아닐뿐더러, 다른 이에게 시간적 압박을 가해야 보다 좋은 결과물이 나올 거라는 믿음이 헛된 기대라는 점도 말해 줍니다. 다시 말해, 마감일이 닥쳐서 일을 해야 일이 잘 된다는 생각은 잘못된 믿음입니다. 집중이 잘 된다는 느낌을 받을지는 몰라도 결과물의 질은 시간 여유를 가질 때보다 못하기 때문입니다. 

이 실험들은 조직의 의사결정 관행에도 시사하는 바가 있습니다. 내외부 환경이 급변할수록 직원들에게 빠른 판단과 빠른 행동을 독려하는 분위기가 조직 전체에 순식간에 퍼집니다. '빨리빨리'가 직원들에게 적절한 긴장감을 부여하는 수준을 넘어 버리면 빨리 의사결정을 내려야 한다는 것이 의사결정의 목표로 둔갑하고 맙니다. 시간의 압박을 뚫고 나온 전략이나 제도는 빠른 시간 안에 수립했다는 뿌듯함을 느끼게 하기엔 충분할지 몰라도 그 수립 과정에서 더 나은 결정을 내릴 수 있었던 기회를 비용을 치렀다는 점을 깨달아야 합니다. 

서둘러 마련한 전략이 삐걱거리거나 실패로 끝날 때 매우 촉박한 상황이었다 해도 적어도 한번쯤 차근차근 점검할 기회가 있었다고 후회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습니까? 그런 기회를 충분히 활용하냐의 여부는 환경의 갑작스러운 변화가 주는 압박을 압박 그 자체로 받아들이지 않는 냉철함에 있습니다. 과감한 의사결정일수록 시간적 압박의 결과물은 아닌지 찬찬히 뒤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참고논문)
Effects of decision-phase time constraints on emotion-based learning in the Iowa Gambling Task.
Perceived time pressure and the Iowa Gambling Tas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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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원들끼리 경쟁시키면 회사가 좋아질까?   

2012. 5. 29. 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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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의 생태를 단순화한 모델로 구성하여 관찰하면 우리 인간이 가진 습성이 어떠한지를 짐작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인간들의 행동과 조직의 제도나 방침 중에서 어떤 것들이 그런 습성에 반하는지 깨닫을 수 있습니다. 동물과 인간은 서로 본성의 원류를 공유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외부 경쟁이 심화될 때 일반적으로 기업들은 내부 경쟁을 강화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평가를 강화하고 차등보상을 도입하며 성과급 비중을 상향 조정하는 일련의 조치를 통해 직원들 간의 경쟁과 단위조직 간의 경쟁을 권장함으로써 조직 전체의 경쟁력을 제고하려고 합니다. 이런 시도가 논리적으로 타당한 듯 보이지만, 경쟁력의 진정한 원천인 구성원 간의 협력을 깨뜨린다는 점과 그로 인해 조직의 생존 가능성이 떨어진다는 점을 많은 경영자들은 간과하고 맙니다. 동물들이 어떻게 행동하는지를 살펴본다면, 내부 경쟁을 강화하여 외부 경쟁력을 끌어올리려는 조치가 생존을 추구하는 생명의 섭리와 맞지 않는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사진 출처 : http://www.globeimages.net )


인드리키스 크램스(Indrikis Krams)와 동료들은 얼룩무늬 딱새들을 대상으로 한 관찰 실험을 통해 포식자의 위협이 동료와의 협력을 강화시킨다는 점을 보였습니다. 크램스는 딱새 둥지 15개를 실험군으로, 나머지 13개를 대조군으로 설정했습니다. 그러고는 실험군 딱새들에게는 둥지로부터 150미터 떨어진 곳에 올빼미 박제 인형을 반복적으로 갖다 놓음으로써 잠재적인 위험이 존재함을 인식시켰습니다. 반면 대조군 딱새들에게는 동일한 위치에 개똥지빠귀 인형을 대신 가져다 놓았죠. 올빼미는 딱새들을 잡아먹는 포식자이지만, 개똥지빠귀는 딱새들에게 위협이 되는 대상이 아니라서 대조군 딱새들은 위험을 별로 느끼지 못했습니다.

크램스는 딱새 새끼가 태어난지 열흘 되는 날에 두 개의 딱새 둥지 사이에 올빼미 인형을 가져다 놓은 다음, 둘 중 하나의 둥지를 향하도록 했습니다. 올빼미의 위협을 받는 딱새 부부와 옆에 이웃한 딱새 부부가 어떻게 행동하는지 보기 위해서였죠. 보통 새들은 자기 영역을 침범한 포식자를 떼지어 공격하는 습성을 보이는데, 크램스는 그 공격의 정도를 0점(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는 상태)에서 3점(위에서 아래로 내리꽂듯 공격하는 상태)까지의 척도로 측정했습니다. 

관찰 결과, 실험군이나 대조군이나 포식자(올빼미 박제 인형)에게 떼지어 공격하는 경향이 비슷했습니다. 포식자에게 다가가는 거리도 차이가 나지 않았죠. 흥미로운 것은 직접적인 위협을 받지 않는 이웃 딱새들의 행동에서 나왔습니다. 실험군에 속한 이웃 딱새들이 대조군에 속한 이웃 딱새들보다 훨씬 높은 강도로 올빼미를 같이 공격하고 더 가까이 다가가는 경향을 보였습니다. 실험군일 때는 모든 딱새가 이웃 딱새가 처한 위협에 같이 대응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대조군일 때는 38.5퍼센트의 딱새가 이웃의 곤경을 모른 체 했습니다.

크램스는 이 실험이 끝나고 1시간 후에 다시 두 둥지 사이에 올빼미 인형을 놓되 그 방향을 이전과 반대로 함으로써 올빼미의 위협을 받았던 딱새 둥지와 그 이웃 둥지의 입장을 바꿔 놓았습니다. 이전 실험에서 도움을 받았던 것에 보답하는지 살펴보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랬더니, 실험군 딱새들은 80퍼센트가 보답했지만 대조군 딱새들은 25퍼센트만 올빼미의 위협에 공동 대응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이 관찰 실험은 동물들은 포식자의 위협이 팽팽한 긴장감을 형성할 때 이웃과 기꺼이 협력하려는 의지를 가지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그러한 협력이 개체가 갖게 될 리스크를 줄여서 생존에 도움이 된다는 점을 본능적으로 안다는 의미입니다. 크램스의 연구 외에도 자원이 부족할 때도 서로 경쟁하기보다는 협력을 추구한다는 또다른 연구 결과가 있습니다.

정부 정책의 변화든 경쟁사의 직간접적 위협이든 외부 경쟁이 심화될 때 직원들 간의 내부 경쟁을 강화하는 조치는 인간의 본성에 매우 반할뿐더러 조직의 생존력을 떨어뜨리는 악성요소가 된다는 점이 딱새들의 생태가 우리에게 일러주는 교훈입니다. 굳이 동물들의 생태를 연구하지 않아도 조직에 위협이 가해져 오면 구성원들이 합심하여 공동 대응하려 한다는 점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내부 경쟁이 외부경쟁력을 높인다는 생각이 아직도 경영자들에게 먹히는지 알 수 없는 노릇입니다.

아마도 그 이유는 진정한 경쟁력을 형성하는 방법을 알지 못하거나 알려고 하지 않기 때문일 겁니다. 당근과 채찍이 제일이라는 믿음을 신봉하는 까닭이겠죠. 신년사에서 흔히 "외부 환경이 우호적이지 않으니 금년에는 구성원들이 똘똘 뭉쳐 위기를 대처하자"라고 말하면서도 기존의 협력을 해칠 뿐만 아니라 새로운 협력이 자라날 수 없는 강력한 성과주의 제도를 실시하는 것은 참으로 모순이 아닐 수 없습니다.

협력이 외부경쟁력을 반드시 제고하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내부 경쟁은 결코 외부경쟁력을 키우지 못합니다.


(*참고논문)
The increased risk of predation enhances cooper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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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의 속도가 빠르면 리스크가 커진다   

2012. 5. 25. 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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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15년 전쯤 방영되었던 역사 대하 드라마를 케이블 TV에서 잠깐 본 적이 있습니다. 조선시대를 다룬 역사물인데도 15년이라는 세월이 화면에서 여실히 느껴지더군요. 등장인물들의 대화 내용은 고어체라서 지금과 별 차이가 없었지만, 시청하는 동안 내내 화면 전환 속도와 대화의 흐름이 답답하게 느껴졌습니다. 한 사람이 대화를 마쳐도 바로 다른 사람에게 화면이 넘어가지 않았고 대화 사이의 공백도 길었습니다. 배우들이 말하는 속도도 왠지 느리기만 해서 어색하고 지루하기까지 하더군요.

그 이유는 진행 속도가 지나치게 빠른 요즘 TV 프로그램에 익숙해졌기 때문이겠죠. 상황의 분위기와 배우의 표정을 찬찬히 살펴보고 싶어도 그럴 겨를이 없습니다. 프로그램의 낮은 질을 감추기 위해 일부러 화면을 빠르게 전환시키는 경우도 있어 보입니다. 심지어 시사 교양 프로그램들도 맹렬한 속도로 달리는 열차에 동승한 듯 합니다. 가뜩이나 TV가 시청자로 하여금 충분히 숙고할 기회를 빼앗아 바보로 만든다는 비난을 받아왔는데, 지금처럼 1~2초에 한번 이상 바뀌는 화면을 바라보고 있노라면(특히 뮤직 비디오와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이 심함) 진짜로 바보가 되는 듯한 느낌을 받곤 합니다. 



이렇게 빠른 속도로 움직이는 환경이 사람들을 아무 생각 없는 상태로 이끌기도 하지만, 그보다 더 심각한 것은 천천히 흘러가는 환경에 놓일 때보다 리스크가 큰 결정을 내린다는 점입니다. 프린스턴 대학의 제시 챈들러(Jesse J. Chandler)와 에밀리 프로닌(Emily Pronin)는 사람들이 생각의 속도를 빠르게 하도록 요구 받는 상황에 처하면 리스크 수용도가 높아진다는 점을 실험을 통해 규명했습니다.

그들은 컴퓨터 스크린 상에 "가스 스토브 위에 불씨가 계속 타오르고 있다."와 같은 문장이 빠르게 흘러가도록 하고 참가자들에 크게 소리를 내어 따라 읽으라고 요청했습니다. 다른 참가자들에게는 문장을 느리게 보여주면서 따라 읽으라고 지시했죠. 여러 문장을 읽은 다음, 참가자들은 '풍선에 바람 넣기'라는 컴퓨터 게임에 임했습니다. 화면의 풍선을 여러 번 클릭하여 부풀어 오르도록 만드는 게임이었는데 과도하게 클릭하면 풍선이 터져 버려서 풍선 하나에 5센트씩 설정된 상금을 받을 수 없었습니다. 게임 결과, 문장을 빠르게 읽은 참가자들이 느리게 읽은 참가자들보다 풍선을 더 많이 터뜨렸고 평균 클릭수도 더 많았습니다(26.6회 대 20.6회). 빠르게 문장을 읽다보니 생각의 속도가 빨라졌고 그 때문에 좀더 리스크가 큰 행동을 보였다는 의미였습니다.

이런 효과를 재차 검증하기 위해 챈들러와 프로닌은 세 그룹의 학생들에게 화면 전환 속도가 다른 세 개의 동영상을 각각 보여준 후에 향후 6개월 이내에 리스크가 큰 여러 가지 행동들을 얼마나 할 것 같냐고 질문을 던졌습니다. 화면 지속 시간이 0.75초에 불과하여 화면 전환 속도가 매우 빠른 동영상을 본 참가자들은 마리화나 흡연, 술 마시기 게임, 콘돔을 쓰지 않은 성관계 등과 같이 리스크가 큰 행동을 저지를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했습니다. 또한 이 참가자들은 느린 동영상을 본 참가자들에 비해 리스크가 큰 행동이 야기할 결과를 덜 부정적이라고 인식했습니다. 이 또한 환경의 변화 속도가 생각의 속도에 영향을 미치고, 생각의 빠른 속도는 리스크가 큰 행동을 유도한다는 점을 보여주는 결과입니다.

빠르게 변하는 환경에 길들여질수록 리스크가 큰 행동을 쉽게 받아들일 가능성이 있음을 규명한 이 연구는 조직 구성원들의 행동에도 시사하는 바가 있습니다. 금융시장의 변화, 정부 정책의 변화, 경쟁사의 공격적인 마케팅 등 기업을 둘러싼 환경이 급박하게 변할수록 직원들은 좀더 빠른 사고와 빠른 행동을 요구 받습니다. 이런 상황일수록 구성원들이 찬찬히 앉아 상황을 숙고하거나 자료를 충분히 살필 기회를 가져야 한다는 점을 이 실험의 결과로 새길 수 있습니다. 직원들의 경쟁 마인드를 고양하고 일하는 속도를 높여 빠르게 변하는 환경을 대처하겠다는 의도가 지나치면, 성공 가능성이 높지 않고 실패할 경우 손실이 큰 프로젝트를 선택할지도 모른다는 점을 경계해야 하겠죠. 

상황 변화에 부화뇌동하려는 심리를 누르고 차분한 시선으로 환경을 조망하고 불확실성을 찾아내려는 의식적인 노력이 복잡하고 돈 많이 드는 리스크 관리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보다 효과적일지 모릅니다. 무엇보다 여러분의 생각 속도가 빨라지고 급박해진다고 느껴진다면, 자리에서 일어나 10분 정도 산책이라도 해야 합니다. 불필요하게 발생시킨 리스크가 언젠가 우리의 목을 죄어오지 못하도록 만들려면 말입니다.

생각의 속도를 늦추세요.


(*참고논문)
Fast Thought Speed Induces Risk Tak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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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진할수록 표정이 비협조적으로 변한다?   

2012. 5. 24. 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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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번 글에서 랭킹이 높은 사람들끼리 팀을 이루게 하면 랭킹이 높지 않은 사람들이 모인 팀보다 협력하려는 경향이 덜하고 더 경쟁적이며 사회적인 비교에 민감하다는 연구 결과를 소개한 바 있습니다. 높은 랭킹은 사람들로 하여금 개인적으로 행동하게 만드는 잠재적 요소인 모양입니다.

그렇다면 높은 랭킹을 차지하는 사람들의 얼굴에서도 비협조적이고 경쟁적인 표정이 느껴지지 않을까요? 얼굴에서 나타나는 표정을 가지고 미국 의회 선거의 당선자를 70%의 정확도로 예측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Todorov et al. 2005)가 있듯이 얼굴 표정만 보고도  그 사람의 서열이 어디쯤인지 예측할 수 있지 않을까요? 이런 가설을 검증하고자 패트리샤 첸(Patricia Chen)과 동료들은 일련의 실험을 수행했습니다.



첸은 35명의 학생들에게 17개 경영대학원에 재직하는 학장들의 사진을 익명으로 보여주고 사진의 인물이 얼마나 협조적일지를 7점 척도로 평가하게 했습니다. 경영대학원의 순위는 U.S. News와 월드리포트(World Report)의 것을 이용했습니다. 그랬더니 학생들은 높은 순위의 경영대학원 학장일수록 비협조적일 거라고 평가했습니다. 순위가 높을수록 얼굴에 비협조적인 인상이 나타난 셈이죠. 표정만 보고도 그 사람이 어느 경영대학원에 근무하는지 대략 예측 가능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 실험만 가지고는 비협조적인 표정이 느껴지는 이유가 경영대학원의 높은 랭킹 때문인지, 아니면 덜 협조적인 사람이 학장으로 선발되는 경향 때문인지 알 수 없었습니다.

이런 이슈를 점검하기 위한 후속실험에서 첸은 미시건 대학교 학생들에게 다른 대학교 학생을 상대로 게임을 하겠냐고 제안했습니다. 학생들 중 절반은 예일 대학교(미시건 대학교보다 랭킹이 높은) 학생과, 나머지 절반은 워시트노 커뮤니티 칼리지(미시건 대학교보다 랭킹이 낮은) 학생과 게임을 하게 될 거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첸은 학생들에게 실험 도우미가 바로 게임을 벌일 상대라고 소개한 뒤 도우미와 나란히 세우고 사진을 찍었습니다.

첸은 이렇게 하여 26장의 사진을 확보한 후에 이 상황을 모르는 또다른 학생들에게 사진 속 인물이 얼마나 협조적일지를 7점 척도로 평가하도록 했습니다. 예일 대학생을 상대하기로 한 학생들이 워시노트 대학생을 상대하기로 한 학생들보다 더 협조적일 거라는 평가를 얻었습니다(4.38점 대 3.91점). 이것은 자신의 랭킹이 상대방보다 높다고 생각할 경우 사람들은 덜 협조적이 된다(적어도 덜 협조적인 표정이 얼굴에 나타난다)는 의미로 해석되는 결과였죠.

얼굴에서 느껴지는 협조의 정도가 협상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알아보기 위해 첸은 다시 한번 실험을 진행했습니다. 첸은 학생들에게 학생단체 대표의 역할을 부여한 후에 앞의 실험에서 사용했던 경영대학원 학장들의 사진 중 상위 5위 내에서 1장을, 하위 5위 내에서 1장을 무작위로 뽑아서 두 그룹의 학생들에게 둘 중 한 장만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런 다음, 사진 속 인물이 학생단체들 활동 예산을 할당하는 '로버트 스미스' 부학장이라 소개하고서 스미스 부학장이 얼마나 협조적으로 보이는지, 스미스 부학장이 승인할 거라고 예상되는 1년 예산 금액을 3천 달러와 5천 달러 사이에서 추측해 보라고 질문을 던졌습니다. 또한 스미스 부학장에게 1년 예산으로 얼마를 요구할지도 물었죠.

그 결과, 확실한 차이가 발견되었습니다. 첫 번째 실험과 마찬가지로 학생들은 상위 5위 내의 학장을 하위 5위 내의 학장보다 덜 협조적이라고 평가했습니다. 또 학장이 얼마나 협조적으로 보이는지가 예산 승인 금액과 요구 금액과 관련이 있었죠. 학장이 비협조적으로 보일수록 두 금액의 크기가 작아졌으니 말입니다.

첸이 수행한 일련의 실험은 서열상 높은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자신도 모르게 덜 협조적이고 자기 중심적으로 사고한다는 점을 얼굴 표정으로 나타낸다는 점을, 그리고 다른 이들이 그 표정의 의미를 무의식적으로 느낀다는 점을 분명하게 보여줍니다. 이는 다른 조직에 속한 사람들과 협상을 벌일 때 유념해야 할 중요한 시사점입니다. 상대방으로부터 우호적인 협상안을 끌어내야 하는데, 자기 조직의 높은 랭킹이 만들어내는 얼굴 표정 때문에 원치 않는 방향으로 협상이 진행될 수 있겠죠. 반대로 상대방의 조직의 높은 랭킹에 주눅 든다면 100이 필요한데 자신도 모르게 80~90만 요구하는 오류를 범할지도 모릅니다.

조직 간의 협상 뿐만 아니라, 같은 조직 내 서열이 다른 사람들끼리의 의사소통과 대인관계에 대해서도 이 연구는 중요한 시사점을 던져 줍니다. 리더(상사)는 부하직원들과 대화할 때 자신의 얼굴에 비협조적이고 오만한 인상이 나타날지 모른다는 점을 늘 경계해야 합니다. 부하직원들이 마음의 문을 열고 자신에게 협조하도록 만들려면 얼굴 표정을 단속하려는 의식적인 노력이 필요하겠죠. 상사의 표정에 '나는 비협조적이다'라는 인상이 그려지면 부하직원들 역시 비협조적이 되고 맙니다.

높은 서열은 얼굴 표정에 '비협조'라는 떼기 힘든 탈을 씌웁니다. 높은 위치에 오를수록 겸허함을 강조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직급이 오를수록 자신도 모르게 표정이 비협조적되는 건 아닌지 조심할 일입니다.


(*참고논문)
The Hierarchical Face: Higher Rankings Lead to Less Cooperative Looks.
Inferences of competence from faces predict election outco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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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인세가 정말 기업의 발목을 잡는가?   

2012. 5. 22. 1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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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 교수가 법인세 인상에 반대한다는 칼럼을 읽었습니다. '규제의 추억'이라는 말을 쓰면서 우리나라의 법인세율 인상 분위기가 기업이 세계 시장에서 활로를 찾는 데 발목을 잡고 있다는 논조였습니다. 그 말에 '욱!'하여 OECD 사이트에 들어가서 우리나라의 법인세율이 다른 나라에 비해 어떠한지 통계자료를 검색해 봤습니다. 꽤 자세하게 공개돼 있더군요.

결론적으로 우리나라의 법인세율(combined corporate income tax rate 기준)는 높은 수준이 아니더군요. 미국은 39.2%, 일본은 39.5%인데, 우리나라는 24.2%(명목 세율)에 불과했습니다. 게다가 우리나라 법인세 실효세율은 2010년 기준으로 16.6% 밖에 되지 않습니다(출처). 기업에 따라서는 법인세를 이보다 더욱 감면 받는 경우도 많습니다. 결코 높다고 할 수 없는 세율입니다. 오히려 엄청나게 저렴한 세율이니, 법인세율을 올리지 말아야 한다는 논리는 힘을 잃습니다.

법인세율이 높아서 경제 성장에 걸림돌이 된다는 논리가 맞는지 보기 위해 OECD 국가의 2011년 예상 GDP와 법인세율을 비교해 봤습니다. 아래의 그래프가 그것입니다. 가로축이 명목 법인세율, 세로축이 GDP(조 달러)입니다. 그래프에서 가장 꼭대기에 있는 나라는 미국입니다(GDP가 약 15조 달러).



아주 뚜렷하지는 않지만, 법인세율이 높을수록 GDP도 높은 경향을 보입니다. 물론 이 그래프는 법인세율을 올려야 GDP가 오른다는 논리를 증명하지는 못합니다. 하지만, 적어도 GDP를 올리기 위해(경제 성장을 위해) 법인세율을 낮춰야 한다는 논리가 옳지 않음을 보여줍니다. 칼럼을 쓴 그 교수는 무슨 근거로 법인세 감세를 주장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세로축을 1인당 GDP(달러, 2011년)로, 가로축을 명목 법인세율(%)로 하여 그래프를 그려보니, 법인세율이 낮을수록 1인당 GDP가 높다는 증거를 역시 찾을 수 없습니다.


기업의 성장과 이에 따른 경제 전반의 성장은 혁신에 있는 것이지 감세에 있지 않습니다. 기업에 현금은 이미 차고 넘칩니다. 감세를 통해 현금을 더 쥐어 준다고 해서 투자와 혁신이 일어날까요? 정부가 실효세율을 남용하지 않고 적어도 명목 세율 24.2%대로 세금을 걷어서 그 돈을 공공의 이익을 위해 사용해야 내수 기반이 튼튼해집니다. 기업은 그런 탄탄한 내수 기반이 있어야 세계시장에 도전할 수 있습니다. 기업에게 트리클 다운(낙수효과)을 기대할 수 없다는 것은 이미 역사적 사실이 증명합니다.

대기업의 발목을 법인세가 잡는 것이 아님을 대기업들도 이미 알고 있습니다. 핀란드의 명목 법인세율은 26%로 우리나라와 비슷하게 높지 않은 수준입니다. 노키아(Nokia)가 어려워진 이유가 법인세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법인세 타령은 이제 그만하고 혁신에 몰두할 시기입니다.

(*참고사이트)
법인세율, GDP 자료 : http://www.oecd.org
1인당 GDP 자료 : IM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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