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에게 친한 친구가 있다면, 여러분은 그 친구에 대해 얼마나 잘 알고 있습니까? 그리고 그 친구는 여러분에 대해 얼마나 잘 알고 있으리라 생각합니까? 그 친구가 여러분에 대해 아는 것보다 여러분은 자기 자신에 대해 더 잘 안다고 믿습니까? 자신이 자신에 대해 아는 바와 남이 자신에 대해 아는 것 사이에 차이는 인간관계와 조직 생활의 갈등을 일으키는 원인이 될 수 있기에 이 질문들에 사람들이 어떻게 대답하는지 살펴보는 것은 의미 있습니다.
스탠포드 대학의 에밀리 프로닌(Emily Pronin) 등의 연구자들은 '나는 나에 대해 잘 안다'와 '타인은 나에 대해 잘 안다' 사이의 인식 차이가 얼마나 큰지 알아보기 위해 일련의 실험을 수행했습니다. 먼저 125명의 참가자들에게 가장 친한 친구를 떠올리게 한 다음, 여러 항목의 질문을 던져 그 친구에 대해 얼마나 많이 아는지 11점 척도로 평가하게 했습니다. 그리고 그 친구가 참가자 자신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지를 역시 11점 척도로 평가하도록 했죠. 결과를 분석하니, 친구가 참가자를 안다고 믿는 점수보다 참가자가 친구에 대해 안다고 믿는 점수가 더 높았습니다. 쉽게 말해, 타인은 자신에 대해 잘 알지 못하지만 자신은 타인에 대해 잘 안다고 믿는다는 뜻이었습니다.
프로닌은 이러한 믿음의 원인이 무엇인지 알기 위해 참가자들에게 물 밖에 완전히 드러난 빙산부터 물 속에 완전히 잠긴 빙산까지 모두 10개의 그림을 보여주고서 질문을 던졌습니다. 자기 자신의 본 모습이 친구에게 드러난 정도를 가장 잘 표현하는 그림(A)을 하나 선택하도록 했고, 친구의 본 모습이 자신에게 드러난 정도를 가장 잘 나타내는 그림(B)을 또한 선택하도록 했죠. 그 결과, A가 B보다 물 속에 더 깊게 잠긴 모습이었습니다. 친구가 나에게 보여주지 않은 것보다 내가 친구에게 드러내지 않은 것이 더 크다고 느낀다는 뜻이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널 잘 알지만, 너는 나를 그만큼은 알지 못한다'라고 인식하는 것이죠.
좀더 면밀하게 이러한 인식의 차이를 살피기 위해 프로닌은 기숙사 룸메이트 45쌍을 대상으로 후속실험을 진행했습니다. 참가자들은 자기 룸메이트의 답변 내용을 보지 못하도록 서로 격리된 채 질문에 응답했습니다. 질문의 내용은 수줍음, 불결함, 경쟁력, 리스크 수용 경향 등 다양했습니다. 프로닌은 참가자들에게 문항별로 다음과 같이 4가지 질문을 던지고 9점 척도로 측정하게 했습니다.
나-남 : 당신은 룸메이트가 얼마나 '수줍음을 타는지' 얼마나 잘 알고 있습니까?
남-나 : 룸메이트는 당신이 얼마나 '수줍음을 타는지' 얼마나 잘 알고 있습니까?
나-나 : 당신은 당신 자신이 얼마나 '수줍음을 타는지' 얼마나 잘 알고 있습니까?
남-남: 룸메이트는 그 자신이 얼마나 '수줍음을 타는지' 얼마나 잘 알고 있습니까?
통계 분석 결과, 내가 나 자신을 아는 정도(나-나)와 남이 나 자신을 아는 정도(남-나)의 차이가 뚜렷하게 드러났습니다. 나는 나를 잘 알지만, 남은 나를 그만큼은 알지 못한다는 뜻이죠. '나-나'와 '남-남' 사이에도 차이가 발견되었습니다. 나는 나 자신을 잘 알지만, 상대적으로 남은 자기 자신을 잘 알지 못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나-남'과 '남-나' 사이의 차이는 첫 번째 실험과 마찬가지였습니다. 나는 남을 잘 알지만, 남은 나를 그만큼은 알지 못한다는 결과가 나왔으니 말입니다.
이러한 인식의 차이는 개인 사이 뿐만 아니라 집단 사이에서도 발견되었습니다. 보수주의자 집단과 진보주의자 집단, 낙태 찬성 집단과 낙태 반대 집단, 남성 집단과 여성 집단 등을 대상으로 한 실험에서 우리 집단은 상대 집단을 잘 알지만 상대 집단은 우리 집단을 그만큼은 알지 못한다는 믿음이 나타났습니다.
프로닌의 연구는 상사와 부하직원 사이, 동료와 동료 사이, 팀과 팀 사이에서 곧잘 발생하는 갈등의 원인이 무엇인지 보여줍니다. 이러한 갈등은 평가 시즌이 되면 가장 극렬하게 표출되죠. 양측이 무언가를 잘못했기 때문이 아니라 '나는 널 잘 알지만, 너는 날 그 정도로는 알지 못한다'는 인식의 차이가 갈등과 불만의 시초가 됨을 짐작케 합니다. 또한, 자신의 의견과 행동에 대하여 타인의 조언을 받아들이기를 꺼리거나 거부하는 현상도 이러한 인식의 편향으로 설명됩니다. 상사나 동료가 나의 잘못을 지적하면 '당신이 나에 대해 뭔 안다고 이래라 저래라야? 내가 날 더 잘 안다고!'라고 반발심이 생기기 때문이죠. 갈등이 한번 자리잡으면 이런 인식의 편향이 양측 간에 올바른 정보가 공유되지 못하도록 악순환을 야기하는 까닭에 그 갈등이 해소되기가 아주 어려워집니다.
해법은 '나는 널 잘 알지만, 너는 날 그 정도로는 알지 못한다'는 편향이 존재함을 양측이 순순히 인정하는 것에서 출발합니다. 대화를 통해 어떤 부분에서 서로 인식의 차이가 발생하는지 파악함으로써 오해를 푸는 것이 최선입니다. 인식의 차이를 인정하고 교정하는 과정이 없으면,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다'를 증명하기 위해 구성원들이 불필요한 에너지를 소모하거나, 남이 자신을 평가하거나 조언하는 행위를 삐딱하게 받아들일 겁니다.
'나는 널 잘 알지만, 너는 날 그만큼은 알지 못한다'라고 생각할 게 아니라, '나는 널 잘 알지 못하고, 너도 날 잘 알지 못한다'라고 겸손한 마음을 가질 때, 상사와 부하직원 사이, 직원과 직원 사이, 팀과 팀 사이의 갈등을 풀 수 있지 않을까요?
(*참고논문)
You Don't Know Me, But I Know You: The Illusion of Asymmetric Insigh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