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원들이 리더의 업무 지시에 반발하거나 소홀히 대할 두려움을 극복하면서 직원들에게 일을 잘 시키기 위한 비결은 무엇일까? 바로 ‘뻔뻔해지는 것’이다. 조직 내가 아니더라도 주위에서 남에게 일을 잘 '떠안기는' 사람들의 모습을 관찰해 보면 상대방이 어떻게 생각하든, 비록 자신이 해야 할 당연한 일임에도 '뻔뻔하게' 일을 시킨다는 것을 알게 된다. 상대방이 '이걸 내가 왜 해야 하나?'라고 반발하거나 이런저런 핑계를 대어 회피를 하려고 하면, 쿨하게 물러서거나 반대로 자기 의지가 관철될 때까지 집요하게 굴곤 한다. 나는 일을 잘 시키기 위해서는 이런 '뻔뻔함'을 배울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오해할까 봐 덧붙인다면, 리더 본인이 해야 할 일임에도 직원에게 마구 떠안기라는 소리가 절대로 아니다. 리더의 합당한 업무 지시임에도 불구하고 직원에게 일을 시키기가 어렵고 두렵다면 ‘전략적’으로 뻔뻔해질 필요가 있다는 뜻이다. 사실, 일을 잘 시키지 못하는 리더들은 착하고 여리기 때문은 아닐까? '존경 받는 리더'가 돼야 한다는, 그래서 직원들로부터 싫은 소리가 나오면 안 된다는 콤플렉스에 빠져 있기에 직원들의 일을 본인이 떠안는 것은 아닐까?
이런 '착한 리더'들이 전략적으로 뻔뻔해지기 위한 첫 단계는 업무 지시를 거부하는 직원들의 반응을 예상하고 어떻게 대처할지 미리 생각해 두는 것이다. 그리고 직원이 어떻게 나오든 합당한 업무 지시일 경우에는 '무슨 일이 있어도 일을 시키겠다'는 다짐을 한 상태로 직원을 대해야 한다. 예를 들어 직원이 “지금 더 중요한 업무를 하고 있다”라고 둘러대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래, 어떤 업무를 수행하고 있나?”라고 반응하면 절대로 안 된다. 직원들이 어떤 업무를 어디까지 진행 중이라는 사실을 리더가 아예 모르고 있음을 자인하는 꼴이기 때문이다. “그 업무는 잠시 중단해 주기 바래. 이 업무의 우선순위가 더 높아”라고 말해야 옳다.
또한 “그건 제 업무가 아닌데요”라고 당당하게 대꾸하는 직원에게 “그래도 이 일을 해주면 좋겠어”라고 말해서도 안 된다. 애초에 업무 수행에 적합한 직원을 선정하지 않았다는 걸 드러내기 때문이다. 이럴 때는 직원의 역량이 해당 업무 수행에 가장 적합함을 강조하면서 그 업무가 조직에 얼마나 필요한 일인지를 직원에게 설명해야 한다. 단순히 해야 할 일을 알리기 전에 왜 이 이 일을 해야 하는가, 이 일이 조직에 얼마나 중요한가를 일깨워 줘야 한다.
다음과 같은 직원들의 예상되는 반응에 어떻게 대응할지 미리 생각해 보라.
- 이 일을 언제 다 하라는 말인가 - 지금 더 중요한 업무를 하고 있다 - 이제 말씀하시면 어떻게 하나 - 내 업무가 아니다 - 할 줄 모른다 - 김대리가 나보다 더 잘한다 - 조건만 만족되면 하겠다 - 일이 잘 안 되면 어떻게 하나
그렇다면 ‘전략적으로 뻔뻔해지려면’ 일을 시킬 때 어떤 원칙을 지켜야 할까? 첫째, 구체적으로 위임해야 한다. 무엇을 원하는지, 왜 그 일을 해야 하는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언제까지 해야 하는지 등을 명확하고 자세하게 일러줘야 한다. 물론 직원들의 역량과 스킬 수준에 따라 어떤 점을 강조할지가 달라질 것이다. 신입직원에게는 ‘어떻게’를, 경험이 많은 직원에게는 ‘왜’에 중심을 두어야 한다.
둘째, 계획적으로 위임해야 한다. 일을 시키기 전에, 일을 시킬 때, 직원이 일을 수행할 때, 일을 마무리할 때 리더와 직원이 무엇을 어떻게 할지 계획을 미리 세워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일이 진행되는 도중에 언제 중간점검을 하고 어떤 방식으로 피드백해야 하는지 등을 직원과 약속해야 한다. 잘 하겠거니, 하며 방임해서는 안 된다. 결국 일의 책임은 리더가 지기 때문이다.
셋째, 업무의 수행 방법은 직원에게 일임해야 한다. 직원이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혼란스러워 하는 경우라면 리더가 멘토 역할을 해서 직원을 가이드할 필요가 있지만, 그렇지 않다면 직원이 재량껏 세부적인 수행방법을 정하도록 해야 한다. 특히 어느 정도 경력이 있는 직원이라면 리더는 지원하는 역할로 그쳐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마이크로 매니저라는 소리를 듣게 된다.
넷째, 직원이 지원을 요청하면 언제든지 응하라. 일을 지시해 놓고 완전히 신경을 끄는 것이 위임은 아니다. 정기적으로 직원에게 필요한 지원이 무엇인지 확인하고, 직원이 요청하면 적절하게 자원과 인맥 등을 지원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다섯째, 계속 관찰하고 정기적으로 피드백해야 한다. 일의 성격에 따라 일주일 혹은 2주 단위로 한번씩 직원을 만나 업무의 진행 상황을 체크하고 어떤 애로사항이 있는지, 무엇을 어떻게 지원할지, 기존의 업무 수행 계획을 변경할 필요가 있는지 등을 확인하고 피드백해야 한다. 너무나 자주 아무때나 피드백하면 직원들은 리더가 지나치게 간섭한다고 느끼고 자신들을 신뢰하지 않는다고 여긴다. 직원들이 업무를 제대로 하지 못한다고 생각되더라도 가능한 한 정해진 시간에 피드백하는 것이 좋다.
여섯째, 직접 얼굴을 보며 일을 시켜야 한다. 어찌보면 가장 놓치기 쉬운 원칙일지 모르겠다. 메신저나 문자 메시지, 이메일만으로 일을 지시해서는 안 된다. 지시하는 내용이 문자화되면 직원이 업무의 중요도와 우선순위 등을 오해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미묘한 뉘앙스가 사라지기 마련이다. 피치 못할 사정 때문에 문자로 업무를 지시했더라도 그 후에 반드시 만나서 대면으로 업무 지시를 반복해야 한다. 대면으로 지시해야 직원으로 하여금 업무의 중요성을 느끼게 할 수 있다.
앞의 글에서 언급했듯이 리더는 '일을 시키는 사람'이다. 아니, 일을 '잘' 시키는 사람이다. 매주 금요일 오후에 내가 직원들에게 일을 잘 시켰는지, 직원들 각자 어떤 업무를 어떻게 수행하고 있는지 등을 확인하고 다음주에는 어떻게 본인의 일 시키는 기술을 개선할지 등을 반성하고 실천해야 한다. 훌륭한 리더십은 이렇게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기술을 교육하고 연마하는 과정에서 함양되는 것이니까.
직원들에게 적절하게 일을 시킬 경우 리더가 얻는 개인적 이득은 무엇일까? 앞의 글에서 업무 위임(delegation)의 목적 중 하나는 리더가 보다 고차원적인 업무(비전 및 전략 수립, 의사결정, 문제해결 등)에 집중하기 위한 시간적 여유를 갖기 위해서라고 언급했다. 이것이 분명 업무 위임을 통해 리더가 얻는 이득이라고 말하면, 일을 시키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비용 역시 상당히 크다는 반론이 제기된다. 업무 지시를 내릴 때 드는 시간, 업무 관련 지식과 노하우를 전달하는 과정에서 소요되는 시간, 일의 진행 과정을 확인하고 피드백하는 데 드는 시간, 직원이 잘못 수행한 일을 교정하는 데 드는 시간 등 그 비용이 리더에게 매우 크다는 것이다(이를 coordination cost라고 부른다). 결국, 이득과 비용을 모두 감안하면 0이 되거나 오히려 '적자'가 되는 경우가 흔하다고 말한다.
이런 점이 직원들에게 일을 시키기가 어렵고 꺼려지는 대표적인 이유로 대두된다. 또한, 일을 시킬 때의 비용은 현장에서 즉각 체감되지만 이득은 나중에 가서 발생한다는 점 혹은 아예 발생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점 역시 업무 위임을 주저하게 만든다. 여기에 단기적 성과를 강조하고 그에 따라 보상하는 조직문화가 더해지면 리더들은 자신도 모르게 마이크로매니저가 되거나 리더라기보다 그저 '고참 실무자'라는 말이 어울리는 상태가 된다. 그런 문화 속에서 직원들에게 이래저래 시간을 빼앗기면 본인의 성과 달성에도 나쁜 영향이 가해져 자신의 연봉이 마이크로매니저나 '고참 실무자'에 비해 떨어지지 않을까 염려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과연 일을 잘 시키는 리더의 연봉은 어떨까?
노스웨스턴 대학교의 토마스 허바드(Thomas N. Hubbard)와 런던 경제대학원의 루이스 개리카노(Luis Garicano)는 미국의 로펌들을 대상으로 수입의 불균형에 관해 조사를 벌인 결과,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했다. 바로 '일을 잘 시키는 리더일수록 연봉이 더 높다'는 점이었다. 그들은 수천 개의 로펌들을 대상으로 파트너 변호사의 수입, 파트너와 함께 일하는 어소시에이트의 수, 어소시에이트와 스태프의 인건비와 복리후생비 등의 데이터를 확보해서 분석을 진행했다. 바로 어소시에이트와 함께 일할 경우(즉, 업무 위임을 할수록) 파트너가 얼마나 큰 금전적 이득을 얻는가를 분석했던 것이다.
분석 결과, 어소시에이트에게 일을 분담시키는 파트너들이 그렇지 않는 파트너들에 비해 20퍼센트 내외로 소득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업무 위임의 스킬이 뛰어난 파트너 변호사들(95퍼센타일)의 경우에는 최소 50퍼센트 더 많은 수입을 벌어들였다. 어소시에이트를 고용한다는 것은 파트너에게 그만큼 비용(어소시에이트의 연봉, 복리후생비, coordination cost 등)을 부담시키지만, 결국 파트너가 얻는 이득이 그보다 크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왜냐하면, 어소시에이트에게 본인의 일상적 업무를 위임할 경우 의뢰인(고객)에게 좀더 많은 시간을 집중할 수 있기 때문이고, 의뢰인은 그에 따라 수임료를 더 많이 지불하기 때문이다. (아래 그래프 참조)
실선: 위임하는 파트너 변호사 / 점선: 그렇지 않은 변호사
(Source: Garicano, L., & Hubbard, T. N. (2007) )
로펌을 대상으로 한 연구이기 때문에 일반적인 조직의 리더가 업무 위임을 통해 얻는 이득을 대변하지 못한다고 반문할지 모르겠다. 물론 그렇지만, 파트너(리더) 단위의 수입과 지출을 '수치로' 산출하고 비교할 수 있다는 면에서 꽤 괜찮은 '모델 집단'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 모델을 통해 업무 위임으로 인한 비용이 비록 상당하다고는 하나 그 이득이 비용을 충당하고도 남는다는 점은 충분히 유추할 수 있지 않을까? 리더(팀장) 한 사람을 기업으로 간주하고 조직 내 다른 팀들을 고객의 관점으로 본다면 말이다. 또한, 직원의 업무능력이 미흡하여 처음에는 coordination cost가 이득을 상회한다고 해도 시간이 흐르면서 직원의 업무능력이 향상됨에 따라 리더가 얻는 '순이익'은 흑자로 전환될 것이고 그 이득은 시간이 흘러도 유지되거나 상승할 것이다.
'인내'가 중요
요컨대, 리더는 직원이 수행해도 될 일은 직원에게 시키고 본인은 좀더 복잡하고, 좀더 어려우며, 좀더 가치가 높고, 좀더 미래지향적인 업무에 집중해야 한다. 이것은 리더의 책임이기도 하지만 리더가 업무 위임을 통해 보다 큰 이득을 기대할 수 있다는 점에서 '권리'이기도 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직원들의 업무능력이 제수준에 이르지 못해서 비용이 이득보다 큰 초기의 상황을 '인내'하면서 언젠가는 이득이 비용을 크게 상회할 것이라는 낙관적이고 긍정적인 마음가짐을 유지해야 한다. 인내하지 못하면 마이크로매니저로 전락할 것이다.
(*참고논문)
Garicano, L., & Hubbard, T. N. (2007). The return to knowledge hierarchies (No. w12815). National Bureau of Economic Research.
Garicano, L., & Hubbard, T. (2009). Earnings inequality and coordination costs: evidence from US law firms (No. w14741). National Bureau of Economic Research.